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9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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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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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사람에게 먹힌 사자
강의일자 2020. 01. 18. 土.
게시일자 2020. 03. 28.
동영상 길이 56:58
강의 중 인용 도서 도마복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BI4I3fHDHbY


7절 해 볼게요.

《사람에게 먹힌 사자》

이런 글들 정말 참신합니다. 도마복음이 '영지주의다' 헛소리구요. 영지주의랑은 상관도 없는 글이고 기독교의 원형이 되는 글이예요.

(성경의 시초) 아까, 제가 거기서 빠졌군요. 교회 얘기하다가 멀리 갔어요. 원래 이 얘기 하려고 했던건데, 교회가 가정집에서 그냥 예배보면 교회 였어요. 성도들의 모임, 그러니까 그때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만 만약 모임을 가진다면 '믿는 사람들끼리 모였다, 성령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끼리 모였다' 고 해도 모인김에 예수님 말씀 들어봐야 될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성경들이 쓰여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대로 썼어요. 내가 들은 예수님 이야기, 내가 깨달은 바, 막 써서 그걸 돌리다 보니까 제일 먼저 쓰여진 성경이 뭐겠어요? 예수님 얘기는 나중에 나온 거예요. 예수님 얘기를 다 알아서 누가 조사해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랐어요. 이미 신자들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누구 얘기가 제일 와닿아요? 그때 선생님, 사도 바울 편지글이 제일 히트를 친거예요. 사도 바울이 쓴 편지를 교회마다 돌려보고 막 읽으면 감동이 오고 하니까 누군가 한명이 나와서 종이에 써서 이걸 읽습니다. 사도 바울 편지글이 제일 먼저 성립된 신약 성서예요. 왜냐? 애초에 쓸때 이미 썼잖아요. 글로 쓴걸 필사해서 읽어주면서 읽고 같이 감동하고 그러다가 마태복음, 누가복음 이런거, '마가가 제일 먼저다' 이런 학설이 현재 지배적인데, 마태가 먼저라고 끝까지 우기는, 유대교 좀 중시하는 분들은 마태복음을 중시합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복음이 있었다' 는 걸 주장하면서, '현재 남아있지 않아도 원형은 있을 것이다' 주장하면서 마태가 먼저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다수 학설은 마가가 먼저다. 그래서 그런 복음들이 나오면 복음을 읽고 또 같이 나누고,

이 도마복음 같은 것은 그렇게 널리 읽히고 했던 작품이 아닌거죠. 이런 작품이 읽혔더라도 좀 내용이 나중에 들어보니 '문제가 많다. 오해의 소지도 많다. 정리가 잘 안된것 같다.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잘 못한것 같다' 는 건 빠지는 거예요. 그때 외경, 정경이 나뉘는 거예요. 두루 교회마다 읽다가 나중에 그거를 로마에서 공인하면서 '성경도 통일해야지' 라고 로마 황제가 얘기 하니까, '한 나라에 경전도 하나여야지 잡다하면 안돼' 그때 강제로 나라에서 통합을 한거예요. 민간에서는 다양하게 읽었는데 그걸 모아서 정경을 발표한거죠. 4대복음을 발표하고, '이것만 진짜다 앞으로 나머지는 읽지마' 라고 한거예요.

도마복음은 거기에 못끼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도 외경이니까 '이단이다' 이렇게 얘기하기 쉬운데,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로마 황제가 성령 받았습니까? 그 밑에 있는 학자들이 성령 받았을까요? 성령의 안목으로 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해요? 시켜서 한거예요. 그러니까 뭐냐? 여러분 안목으로 도마복음을 보고 '음, 이건 성령의 글이군, 음, 성령의 글이 아니군' 하고 판정을 해볼 기회는 가지셔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기회도 갖지 않고 남이 '이단이래요' 그러면 같이 이단이라고 외치면 그게 아버지 뜻인가요? 여기에 많은 진리가 들어있고 4대복음 못지않게 중요한 성령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면 이건 복음입니다. 그 당시 다, 아니 마태복음은 예수님 돌아가신 한참 뒤에 나온건데 마태복음을 예수님이 인가했어요? 생전에? '마태복음' 감수 마치셨나요? '나의 뜻을 충실히 표현한 복음임' 아니예요. 다 그냥 임의로 정한 거예요. 좀더 낫더라. 사실은 누가봐도 좀더 나은거 고른 거예요. 그건 맞는데, 제가 볼때는 도마복음도 그만한, 충분한 보편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읽어드리는 겁니다.

이런저런 사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저는 내용으로 검증하겠다는 거예요. 분명히 도마복음은 연대가 오래된 글이예요. 다른 복음보다 오래됐냐? 이거는 아직 물증이 없어요. 심증만 있지, '어록체' 인걸 보니 더 오래된 원형인것 같다. 왜냐하면 여러분 예수님 얘기를 스토리로 만들기 전에 뭐부터 있을까요? 예수님이 한 얘기 기록부터 해놓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가깝단 말이예요. 예수님의 말씀수첩에 가깝단 말이예요. 그래서 '더 오래된 원형 자료일 수도 있다' 는 의견이 많이 있는 거예요.

김용욱씨는 이게 반드시 오래됐다고 확실히 주장하시고, 그런데 물증이 확실히 있는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열어두고 보되, 내용이 좋으면, 내용이 맞으면 예수님이 진짜, 예수님 아니고 할 수 없는 말들이 많다면 이건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수 밖에 없다. 영지주의니 뭐니 이런거랑 상관 전혀없다. 그건 영지주의 잘 모르시는 분이 주장하는 거다. 그건 하도 많이 말씀 드려서 그만하고요.


도마복음 7절 (5:30)

7절 '사람에게 먹힌 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에게 먹힐 ‘사자’는 운이 좋다.》

운이 좋은 가요? 안와닿죠? 무슨 말이지?

《그 사자는 사람이 될 것이다.》

윤회설인가? 이러시면 안돼요. 사자가 인도환생人道還生 한다는 건가?

《그리고 사자에게 먹힐 사람은 불운하다. 그 사자가 사람이 될것이다.” 라고 하셨다.》

어떠세요? 이래서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이거 빼자, 도마복음 이상하다. 인도환생을 얘기하는 건가? 불교인가?' 이럴 수도 있고,

자! 보시면 사자는 뭐겠어요? 하나님과 분리된 마음인 욕심. 영, 성령입니다. 항상 제가 적어드리는 이유가 기억하시라구요. 영하고 성령하고 같이 적어드리는게 여러분 영은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지 여러분이 잘나서 독자적으로 영 따로있고 그러지 않아요. 혼이 따로 있는 거예요. 혼이 따로 있고 육이라는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혼에서 속사람이 있고 겉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는게 나을까요? 여기서 한번 층을 나눌 것 그랬네, 아무튼 이렇게 오늘은 해볼께요. 겉사람은 혼중에 육을 따르는 혼입니다. 속사람, 영을 따르는 혼입니다. 양심이예요. 속사람은 그냥 양심이예요. 겉사람은요? 욕심이요. 욕심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욕심을 여러분이 만든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준거지, 욕심을 갖게 해놨어요. 그 욕심을 어떻게 쓰느냐로 갈리는 겁니다. 죄냐? 이게 죄가 아니냐? 는 욕심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 마음에서 양심이 51% 이상 헤게모니를 장악해 주냐? 아니냐? 예요. 그럼 욕심이 있어도 죄가 안되게 됩니다. 즉, 그 욕심으로 인해 해를 입는 사람이 없어요. 만약에 양심이 약하면 어떻게 돼요? 겉사람이 강하고 속사람이 약하면 피해자가 나와요. 자기에게도 주고, 남한테도 주고, 그래서 겉사람, 속사람을 분명히 구분하시고 보시면

자! 겉사람은 욕심, 사자는 하나님과 분리된 마음인 에고의 욕심을 말합니다. 사자,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는 마음인 양심, 그럼 어떻게 돼요? 양심에게 제압된 욕심은 어떻게 돼요? 양심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욕심에게 제압된 양심은 어때요? 욕심안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사자가 사람을 먹어버리면' 자! 욕심이 양심을 먹어버리면 어떻게 돼요? 불운한거죠. 사자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양심자리까지 욕심이 차지한다. 반대로 사람에게 먹힌 사자는 운이 좋다. 그 욕심은 자기가 자기 뜻대로 주도 했으면 악을 저질렀을텐데 사람한테 먹히는 바람에 어떻게 됐어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이 욕심도 양심을 위해서 복무합니다. 이해되시죠?

이게 그 뜻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느냐? 아니면 좋은 의견을 내주시던지, 됐죠? 아니면 책을 쓰시던지,

자! 8절

《지혜로운 어부가 되어라》

이거는 기존 복음에 있는 얘기예요. 그런데 보시면 맛이 달라요. '지혜로운 어부가 되어라.'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누구겠어요? 하나님 자녀요. 성령안에서 구원받은 사람, 거듭난 사람은, 어때요?

《그물을 바다에 던져 작은 물고기를 가득 잡아 올리는 ’지혜로운 어부’와 같다.》

그 어부는 어때요?

《그 지혜로운 어부는 그 가운데서 크고 훌륭한 물고기 한 마리를 발견하고, 모든 작은 물고기들을 바다에 돌려보냈다. 그는 아주 쉽게 그 큰 물고기를 선택하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라도 들을만한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뭘 선택하라는 거예요? 잔챙이들 취하지 말고 큰거 잡으라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게 뭔지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지혜로운 어부라면, 이거를 왜 비유로 들었느냐? 그 당시 사람들이 생생하게 안단 말이예요. 물고기 잡으면 작은 것들은 더 크라고 돌려보내주고 큰 것만 취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자녀는 누구랑 같냐? 어부랑 같다. 어부중에 지혜로운 어부, 초짜 어부들은 엉뚱한 짓 할 수 있죠. 작은 물고기 많이 잡아서 '질보다 양이다' 이런 주장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핵심만 취하잖아요.

☆ 본말을 알고,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이죠.

그래서 하나님 자녀는 취할 것, 그걸 취하고 취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다 버리는 사람들이다. '누구라도 들을만한 귀가 있는 자들은 들어라.' 귀가 뚤린자는 들어라. 우리가 이게 귀 뚤린거 같지만 똘린게 아니예요. 들으면 못알아 들어요. 알아들을만한 사람들은 알아들어라. 이 얘기를 듣고 이치를 깨달을 사람들은 깨달아라 이 얘기 입니다. '들을만한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이 소리가요,

자! 기존 복음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실래요. 마태복음 13장 47절~50절인데

[‘하나님의 왕국’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와 같다.]

그럼 어부가 왕국이라는 거냐? 그런 뜻은 아니예요. 성경에 이 표현들이 말이 많이 생략된 거예요. '하나님 왕국에 대해서 내가 얘기해 줄께, 하나님 왕국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어부를 먼저 이해해야돼, 어부 알지?, 어부?' 이런식으로 얘기가 간거예요. '하나님 왕국을 내가 설명해 줄텐데 어부 알지? 어부'

[그물이 가득 차면 어부는 그물을 끌어올려서,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물고기는 내버린다. 세상 끝날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천사들이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것이다. 거기서 울부짖으며 이를 갈 것이다. (마태복음 13:47~50)]

자기가 여기 떨어진 것에 대해서 저주하고, '그때가서 너 뭐라고 하지마' 이런 얘기죠. '그때가서 너 이갈고, 울부짓고 해도 소용없어' '천국에 대해서 정확히 알면 너희는 본질적인 것을 택할 수 밖에 없어' 이 소리입니다. '천국이 어부라는 건가?' 이게 아니고, 천국에 대해서 얘기하실 때 꼭 이렇게 얘기하세요. '천국은 겨자씨 같아' 그럼 바로 겨자씨가 천국에 해당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해당 안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 얘기는 '내가 천국에 대한 비유를 들어줄게, 어부알지, 어부' 이러면서 시작합니다. '어부가 물고기 잡으면 이렇게 하잖아, 천국 아는 사람은 이렇게해' 그걸 풀어놓은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서 한번 좀 설명해 놓은 것 보실래요? 각주 3번

[‘하나님의 왕국을 깨달은 사람’]

을 말하구요. 그 사람은,

[즉 늘 ‘성령’(천국) 안에 거하며 ‘사랑의 진리’(천국의 법)를 따르는 ‘빛의 사람’을 말한다.]

성령 안에 거하면서, 성령은 진리의 영이죠. 자! 보세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성령안에 거하면서, 성령의 진리를 아니까, 성령의 진리를 다른 이름으로 사랑의 진리, 천국에 살면서 천국의 법을 따르는 사람, 이미 천국이라는 말 안에는 성령의 법, 천국의 법이 구현된 나라가 그 영토 개념이, 그 통치권이 확립돼야 영토예요. 물질적 영토만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그 사람의 통치권이 확립된 곳, 그러니까 성령의 법이 구현되는 곳이 천국이거든요. 그래서 천국과 성령의 현존이라고 하면 이미 성령과 하나가 되고 천국에 살고계신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천국의 법이 분명히 있죠. 그래서 이게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따로 있는게 아니예요. 법이 구현된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천국에 살면서 법을 모를 수가 없단 말이예요. 그럼 천국의 법을 알고, 그 천국의 법, 성령의 법대로 실천합니다. 그런 사람을 뭐라고 그래요 '빛의 사람' 이렇게 살아가는 분은 빛의 사람입니다. 이 반대로 살아가요 성령의 현존 대신에 뭐가 있어요? 에고의 현존속에서 에고의 계시가 와요. '사라, 질러라' 분석을 대충하고, 이거하면 죽이겠다는 분석을 한 뒤에 실천을 해봐요. 하고나면 낭패를 보고 다시 돌아가요. 에고의 현존, 다시, '어떻게든 해봐라' 그럼 다시 해보고, 그럼 탐진치만 점점 커지는 방식, 좌절되면 분노가 커지고 탐욕도 계속 이 과정에서 커지고, 분노도 커지고, 어리석음도 같이 커져요. 왜? 점점 이상한 생각을 하거든요.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쩔수 없어요. 아무리 똑똑해도 탐진치 동하면 이상해 지는 겁니다.

'저 사람 저렇게 안봤는데' 갑자기 어리석은 소리를 하고, 사리판단 못하고 이럴 수 있어요. 탐욕이 동해 버리면 어리석어 집니다. 탐진치가 그렇잖아요. 어리석으니까 탐이 나고, 탐이 나니까 어리석어 져요. 사리판단 못하고 사람은 그럴 수 있어요. 탐욕이 동해버리면 어리석어 집니다. 탐진치가 그렇잖아요. 어리석으니까 탐이나고, 탐을 내니까 어리석어져요. 여러분 지금 다 현명하시죠? 강의 듣고, 토요일날은 이런 도담을 듣는게 너무 좋아. 지금 제가 '밖에 BTS 왔는데요' 그러면 몇분 남아 계실까요? '강의야 다음에 들어도 되지, 유튜브로 듣겠습니다.' 하고, 당장 더 급한게 없으니까 여러분이 지금 안정적인 겁니다. 이걸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평안한 것은 내 욕망이 충족이 안되서, 적절히 안됐기 때문에 오히려 내 마음이 진정되어 있다. 탐나는 물건이 안보여서 지금 내 마음이 진정되있는 거다.' 자만하면 안돼요. 보이면 '견물생심' 견물한 순간 끝나는 겁니다. 견물→생심→분석→실천, 견물→생심→땡깡→실천, 어떻게든 우겨서라도 '난 그거 해야된다' 고, '해야된다' 이렇게 돌아갈 수도 있다. 재미있죠?

우리가 이렇게 점잔뺄 수 있는 것은 탐진치가 진정되어 있고, 성령과 진리의 빛에 더 예민해져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속사람이 더 강건해져 있고 겉사람이 지금 힘을 잃고 있죠. 그런데 겉사람이 강해지면 어떻게 돼요? 사자에게 잡아먹혀요. 그래서 사자가 되버려요. 아까 지나갔는데 더 좋은 생각이 났는데, 사자에게 먹혀서 사자가 되면 뭐라고 할까요? 욕심의 화신이 되죠. 사자가 되버린 거죠. 욕심 그 자체가 되서, 그래서 욕심이 좀 있더라도 양심에 잡아 먹히면 양심의 화신이 되고, 진리의 화신이 되고, 양심 그 자체가 돼요. 사람이 먹었으면 욕심 좀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얘기도 아까 도마복음에서 한 얘기구요.

자! 지금 여기서도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자가 나와도 잡아먹을 기세로, 잡아먹으면 사자도 사람이 된다. 욕심에 쫄지 마시고, '욕심도 성령으로 잡아먹으면 욕심도 양심이 된다' 이렇게 믿고 갈 수 있는 분이어야죠. 그래야 빛의 사람 입니다. 그때 말씀 드렸죠, 끝내 이긴자. 사자에게 몇 번 물리더라도, 끝내 내가, 사자가 날 먹더라도 다시 똥구멍으로라도 내가 나와서 다시 사자를 먹겠다. 이런 각오, 이해되시죠? 너무 리얼 했나요? 자!

[‘세속의 지혜’가 아닌 ‘영적인 지혜’를 갖추고서]

자! '빛의 사람' 은 성령의 지혜를 갖게 되어 있잖아요. 성령의 지혜, 성령으로부터 진리의 직관을 얻기 때문에 '세속의 지혜가 아닌 영적 지혜, 성령의 지혜를 갖추고'

[‘양심의 자명ㆍ찜찜의 신호’에 따라 양심적인 것과 비양심적인 식별할 수 있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양심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오, 죽이네요. 제가 이 얘를 왜 했냐면, 이 글은 예전에 써놓은 글인데 요즘 제가 만들어서 하는 거랑 똑같이 써놓은 걸 보니까 참, 제가 제거 보고 놀래고 그렇습니다. 무한루프에 빠져있고, 그때그때 새로운 생각인 줄 알고 했는데 예전 글에 그대로 써있는 걸 보고 또 놀랬습니다. 음~ 이렇게 설명하면 좋죠. 이해되시죠?

현명하신 어부가 되셔야 됩니다. 뭐가 더 큰 물고기예요? 성령, 항상 성령을 선택하고, 항상 양심을 선택하고, 작은 물고기는 뭐예요? 욕심, 욕심을 좀 내려놓을 수도 있는, 욕심을 내려놓을때 에고는 욕심이 성취되어야 진정될 수 있다고 믿어요. 현명한 사람은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욕심을 내려놓으면 바로, 평화가 오고 진정이 온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우리가 욕심을 성취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욕심을 성취하더라도 양심의 헤게모니를 잃지 않는 범위에서 성취하고 그리고 작은 물고기 잔챙이 욕심들은, 그냥 몰라, 괜찮아로 자잘한 욕심들은 날려 버리시고, 그럼 현명한 어부입니다. 꼭 해야될 욕심은 성취하되 어떻게요? 사람이 사자를 잡아먹듯이 양심 속에서 욕심을 성취하자. 그러니까 욕심을 성취하되 그게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나도 좋고, 남도 좋게 항상 그렇게 돌리자. 그러면 누군가 욕심을 성취할수록 주변에서도 좋아합니다. '저 사람이 월급을 타면 꼭 술을 사' 그 사람이 월급 많이 받기를 옆사람이 기도해요. 이정도면, '술은 악 아닌가요?' 이렇게 불편러처럼 굴지 마시고, 인생에 뭐 행복한게 얼마나 있다구요? 건강 덜 상하는 범위내에서는 적절히 다 하셔야 돼요. 그렇죠? 그런다고 천년만년 삽니까? 적절하게 에고도 즐겁게 해주셔야 돼요. 다만 양심이 주가 되면 된다. 자, 여기까지 했구요. 벌써 진도 무섭게 나가고 있죠.

《9절 씨를 뿌리는 자》

이것도 있어요. 마가복음에 있는 구절인데, 보세요, 들어보시면 알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한 움큼 집어 들고 나가서 뿌림에, 어떤 것들은 길 위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었다. 다른 것들은 돌 위에 떨어져 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또 다른 것들은 가시덤불에 떨어져 가시덤불에 막히고 벌레들에게 먹혔다. 그리도 다른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결실을 맺어 60배, 120배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좋은 말씀이죠. 자! 이 얘기를 마가복음 4장 3절~8절 에서는 뭐라고 했냐면

[들어보라!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림에, 어떤 것들은 길 위에 떨어져]

너무 똑같아서 읽는 맛이 없네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어떤 것들은 돌 위에 떨어져서,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이 즉시 돋아났으나, 뿌리가 없었기에 해가 솟아오르자 말라버렸다.]

좀 맛이 다르죠. 마가복음이 더 디테일 하죠.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서, 가시덤불에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 (마가복음 4:3~8)]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구분해 놓으신 거네요. 그렇죠? 돌위에 떨어진 놈들은 싹은 낳는데 뿌리를 못내렸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놈들은 뿌리는 내렸는데 열매를 못맺었고, 좋은 땅에 떨어지니까 싹도 나고 자라서 열매까지 맺었다. 더 치밀하게 얘기를 하셨네요. 도마복음이 대충 적었네요.

그렇죠. 원래 제 얘기 듣고도 대충 적는 분 있죠? 집에서 몰라요. '사자, 겉사람, 사람, 속사람' 집에 가서 무슨 소리지? 사자가 왜 겉사람이지? 대충 적는 분들은 자기가 당황하죠. 이때 제자 하나는 자세히 기억한거죠. '돌멩이', 돌멩이는 싹, 초식까지 해서 외우겠죠. '돌싹, 가열' 이렇게,

이 말씀 자체는 쉬운 비유죠. 이 씨가 뭐겠어요? 사실 성령이죠.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해서 얼마나 싹을 내느냐가 이렇게 다르다. 땅은요? 사람 마음이겠죠. 사람 마음에 진리의 영이 임해서 그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얼마나 구현되는가? 결국 그 영이라는 건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의 빛이 우리 안에 임해도 그 빛 속에서 진리를 보고, 그 빛으로 진리를 보고 그 진리를 구현해내야 내가 60배, 120배로 열매를 맺는거 아닙니까? 좋은 열매를 맺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제가 이렇게 한게, '씨는 성령 아닙니까?'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직접 풀이하실 때 말씀이라고 하셨어요. 직접 이 비유를 풀어줄때, 그러니까 성령 안에 담긴 말씀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하나님의 진리라는 얘기 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의 영’(성령)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법’ ‘사랑의 진리’ ‘양심의 진리’이다. 이 진리 안에 안주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성화聖化’의 핵심이다.]

지금 성화를 얘기하시는 거예요. 이런거예요 성령을 받아도 성령의 현존에서 성령의 진리를 직관했는데, 내가 알았는데 그걸 가지고 내 삶에 적용해서 실천해 봤냐 이거죠. 어떤 사람은 어때요? 성령이 나한테 임했는데 '싹이 났다' 하는것은 계시도 받았는데 더 안해버려요. 분석도 안해요. 누구는? 좀 자라긴 했는데 열매를 못 맺었다는 것은 여기다 가져다 붙이면요? 그 느낌대로 분석을 해서, 좀 따져보다가 안해요. 혼자 책에 분석해 놓고 '분석 훌륭한데' 그러고 살때는 어떻게 살아요? 견물생심으로 살아요. '딱 여기까지만' 열매를 못맺었죠. 자, 열매까지 맺은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산 사람이예요. 그러면 이 사람은 '뿌린대로 거두리라' 는 하나님의 공식대로 열매를 거둬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원치 않아도,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보시니까 남 보이는 곳에서 자선하고, 멋진 기도 하려고 말 멋있게하고, 남들 보는데서 자선하고, 남들 보는데서 굶고, 굶으면서 남에게 힘든 모습 보여주고, 되게 처절한 고행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이런 것은 정제받는다고 했단 말이예요. 댓가를 받더라도 정제받을 것이다. '천국은 못간다' 이 소리입니다. 그런데 '남이 모르는 곳에서 해라' 그랬죠. 남이 모르는 곳에서 자선해라,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게 뭐죠? 자기도 모르게 자선하라고 그랬잖아요. 오른손이 한거 왼손이 모르게, 하나님은 그거 다 아신다는 거예요. 즉, 성령의 뜻대로 이렇게 살라는 겁니다. 실제로 오른손이 한거 왼손이 어떻게 몰라요? 무슨 얘기냐? 성령안에서 욕심이 올라와도 양심으로 잡아먹으면서 진리를 구현하면, 그 성령의 인도로 금식을 하건, 기도를 하건, 자선을 하건 그건 다 열매를 맺겠죠. 왜? 성령의 인도로 필요에 따라서 했으니까, 그러니까 예수님도 금식을 주장하시는 분이 아닌데 어떤때는 성령에 이끌려서 금식하시죠. 광야에 나가서 40일간 금식 하실때는 하시잖아요. 그 열매가 또 풍성합니다. 성령이 금식하라고 안했는데, 하늘이 금식하라고 안했는데 지가 괜히 '금식을 해야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을까, 천국에 가려는데 너무 먹을거 다 먹고 가는건 아니지 않나' 그러면서 금식식단을 만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볼때 한심한 놈이죠. 예수님이 그래서 그건 아니라 그러고, 그건 정죄받는다. 그런 꼼수 부리는 건 반드시 댓가를 그 열매를 또 치르게 된다.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이런식으로 이해하시면 쉬우실 겁니다. 그래서 이건 지금 성화다.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직관하고, 선악을 식별하면서, 그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이것은 성화의 모습입니다. 칭의는 여기거든요. 성령안에서 안주하는 것, 성령에서 안주하면서 직관까지 가요. 직관까지는 가지만 싹은 난다고 볼 수 있겠죠. 칭의죠? 싹의 단계는 칭의 입니다. 싹은 나도 거기서 금방 말라 죽어 버린다는 것은 거기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고민도 안하고 실천도 안한거죠. 그러면 거기서 말라죽어 버리고, 누군가는 그걸 열심히 해서 열매까지 맺고,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이게 성화예요. 칭의만 얘기하고 있는게 아니고, 그렇게 해야 거룩해 진다. 성화까지 되어야 진짜 성도입니다. 보세요! 성도聖徒에서 성인 성자 쓰잖아요. 성스러운 무리라고, 그럼 성자들의 무리라는 뜻이예요. 성스러운 사람들의 무리예요. 그런데 이 성자가 붙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이 진리의 무한 루프에서 살아야 그나마 성인이 된다니까요. 성화, 거룩해 진다고요. 성화전에 칭의는 아직 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녀라고 도장만 받았지, 씨앗만 받았지 제대로 배양을 못한거예요.

지금 이런 얘기는 한국 교회에서 아주 싫어합니다. 성화 주장하면 아주 싫어합니다. 이건 내가 뭔가 거룩해져야 되잖아요. 하나님을 믿고 끝내는 걸 좋아하지, 칭의도 교회 다니면서 칭의 되었다고 그냥 생각하는 거예요. 실제로 성령을 받아서 칭의도 아니예요. 성령을 받아서 칭의가 되도 문제입니다. 성화가 안되서 또 문제인데, 지금 한국 교회는 그런 논의를 해볼 기반도 없어요. 기독교 안에서 누군가가 성화가 중요하다고 하면 바로 공격합니다. '니가 감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좌지우지, 니가 꼼수다' 서로 '니가 꼼수다, 니가 꼼수다' 싸우는 거예요.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게 꼼수라는 거다' '성화해야 된다' '그게 니 생각이다, 하나님이 구원해주기로 했으면 구원하시는 거지, 니가 뭔데 거룩해진다고 난리냐' 서로 오해를 해 가는게 정확히 알면 그런 말이 필요없습니다.

이거 (성령현존 → 성령직관 → 선악식별 → 진리실천) 안되면 가짜예요. 성령을 받았는데 여기까지 자동으로 안나온다? 그럼 그 사람은 예정자가 아니라는 증거예요. 예정자라면 나와야 돼요. 성화까지 가야 진정한 하나님 자녀입니다. 왜? 그래야 성도라고 말할 수 있어요. 거룩한 무리, 거룩해 지는 법을 배우지를 않았는데, 교회다니시는 분은 본인만 혼자 거룩해요, 셀프거룩이죠. '와, 거룩해, 와, 거룩해' 그것도 하나님 만나서 그런것도 맞아요. 왜냐하면 마음을 몰아가다보면 뭔가 신성과 접속이 일어납니다. 맛은 살짝봐요, 그런데 정확히 몰라요. 하나님의 현존이 내 안에서 어떤 일을 못하신 다구요. 역사하실 기회를 안줘요. 잠깐 접속하고 혼자 감정뽕에 빠져서 확~~ 하나님께 은혜 받았다고, 그런분들은 아마 BTS 공연가면 더 은혜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정도의 은혜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왜냐하면 내가 뭔가 욕심을 내잖아요. 그러면 마음이 뭉쳐요. 내가 뭔가 원하는 것에 염체가 만들어 집니다. 날마다 생각하잖아요 점점 그 염이 빛나요 내 안에서 힘을 가져요. 원래 교회에서 '믿으세요, 믿으세요' 그러는게 염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성령이 아니라 자기가 염을 만들어요. 자기 안에 큰 염을 만들어 놓고 위안을 받는 식이예요. 이거는 임시방편 이예요. 그것 또한 성령의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성령의 아주 곁가지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의 힘을 키워놓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성령의 작용이니까, 거기에 성령이 응해요, 응하기는 하지만 내 위주로 만들어진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힘이 약해요. 진짜 힘들어지면 날아갑니다.

그런데 진짜 성도들은 다이렉트로 하나님을 봐요. 중간에 상을 안만들어요. 다이렉트로 만나요. 그게 진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연예인 하나 좋아하고, 누구하나 좋아해도 내 마음에 엄청난 염체가 만들어 집니다. 아마 주무실때도 생각날 거예요. 오매일여에 들어가고, 자다가도, 먹다가도,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 생겨도 밥을 먹어도 생각나고 하루종일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그 정성으로 우리마음에 그게 만들어지니까 이별 통보를 받으면 미쳐버리는 거죠. 자기 우주가 붕괴하거든요. 내 마음 안에 그 정도 힘을 갖는 염체가 돼버린 거예요. 그게 진리가 아닐 경우는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게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잠깐은 위로를 받는데, 실체가 드러날 때는, 왜냐? 내 위주로 만든 염체니까 벌써 남하고 얘기해 보면 달라요. '우리 썸 탔잖아' '전혀' 누가 썸을 타요? 자기만의 법계에서는 이미 계획이 있어요. 큰 그림이 잘되고 있어요. 남이 볼때는요? '와, 그 사람 때문에 죽겠어, 스토커가 생겼어' 서로 완전히 다른 법계라 못받아 들여요. 자기는 자기, 사회가 힘들수록 자기 염체에 빠져듭니다. 남하고 소통이 잘 안돼요. 대화도 안되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계속 그림을 그려요. 종교가 그걸 도와주고 있으면 사회가 더 빨리 망하는 거예요. 종교는 뭘 해줘야 돼요? 그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게, 정신차리게, 벼락을 내려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줘야 되죠. 예수님이 와서 달콤안 말 해주셨나요? '야, 이 위선자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얼마나 센 얘기 많이 하셨는데요. 그거 하나가 바리새인들의 마음의 우주를 붕괴시키는 목표였죠. 깨버릴려고, 깨고 정신차리라고, 실상을 보라고, 그런 얘기 입니다.

자! 성화에 대한 얘기 좀 볼까요,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 32절 얘기 인데요.

[“만약 그대들이 나의 ‘말씀’(사랑의 진리, 서로 사랑하라!)에 머물면,]

말씀은 항상 진리라고 보시면 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뭐예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있죠? 십자가의 진리, 사랑과 정의, 질서와 지혜,

자! 사랑과 정의가 서로 반대되서 적어놓은 거예요.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봄기운 입니다. 그거 모르실 분 없어요. 정의는 가을 기운이예요. 서늘한, 왜? 가을이 되면 자연이 쭉정이는 쳐버려요. 그게 정의 입니다. 봄에는요? 봄에는 잡초도 길러줘요. 만물이 다, 모두가 다 생기를 받아요. 그래서 봄은 사랑이고, 가을은 정의입니다. 여름과 겨울은, 겨울은 씨앗으로 있잖아요. 그러니까 정보만 있기 때문에 지혜, 지적인게 여기 겨울에 오고, 질서라는 건 우주를 질서있게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예요. 그 질서라는게 만물을 다 조화시켜서 일정한 질서대로 굴리는게 여름, 왜? 여름에는 만물이 겨울에 감춰놨던걸 다 표현하는 것, 이 우주가 어떤걸 구현하려고 했는지 우주가 가지고 있는 질서와 결이 언제 드러나요? 여름에 드러나요. 이런걸 우주가 표현하려고 했구나, 그런데 다 표현해야 되니까, 조화롭게 해야되니까 여기 질서와 조화까지 하면 더 맞는 덕목입니다. 질서와 조화,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는 이렇고 인간 안에서 말하면 사랑과 정의, 지혜와 여기 겸손을 넣어주는게 좋아요. 그 질서에 대한 순응, '하나님의 질서에 조화를 이루겠습니다' 하는 순복, 순응이 저 자리에 맞아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질서라고 하는 거예요. 우주를 통치하는 질서 자리구요. 이 정보대로 실제로 통치하는 겁니다. 질서, 여기 겨울은 안움직이지만 여름은 모든 만물이 다 드러내기 때문에 표현이 중요해요. 여름의 덕목은 질서있게, 조화롭게 표현하기, 그런데 인간에게는 하늘에서도 조화가 중요하고 인간에게도 조화니까 겸손과 조화, 이렇게 하는게 맞고, 하늘 입장에서는 질서와 조화, 이렇게 표현해 주는게 하늘과 인간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더 이해가 되실 거예요.

하나님 형상대로 산다는게 뭐냐? 질서있게 산다는 거고 겸손하게 산다는 거예요. 남하고 나를 다 맞추면서 모두가 각자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니 너도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고 나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겠다. 이런게 질서죠, 조화고, 그래서 알아야 조화를 이루고 사랑을 하고 정의를 하는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뜻이 구현됩니다.

저런 진리를 언제 아느냐? 성령의 현존안에 있다보면 알아지겠죠. 성령의 현존안에 살다보면 자동으로 뭐가 알아져요? 이게 한번에 알아지지 않아요. 성령은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겠지만 나한테 계시되는 것은 그 중에 일부예요. 그렇죠? 아무리 여러분이 칭의를 이루어서, 성령 안에서, 성령의 불이 24시간 안꺼져도 성령이 알고 있는 모든 지혜가 나한테 오는게 아니라구요. 사도바울이 받은 지혜가 다르고, 예수님이 받은 지혜가 다르고, 일반 성도들이 받은 지혜가 또 달라요. 계시되고 있는게 달라요. 그 수준이 결국 이게 근본인데 이 중에 사랑에 대해서도 우리가 조금씩 알아가게되고, 정의에 대해서도 알아가게되고, 그런데 성령의 현존 안에 있지 않다면 '사랑은 정말 옳은 거야, 사랑해야돼, 정의로워야돼, 지혜로워야돼, 남과 조화를 이루어야돼' 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겠냐는 거죠? 몰라요. 저 무의식 중에는 알고 있어요. 왜? 우리도 성령 안에서 사니까, 하지만 에고가 막아버려요, 견물생심, '야, 남의 것, 내것 다따지다가 어떻게 살려고 그래?' 자기 합리화가 일어나고, 그런데 성령 안에서 보면 계시가 정확하죠. 이건 자명, 이건 찜찜,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이런게 일회성으로 이루어 지는게 아니고 무한하게 우리 삶에서 구현되어야죠. 그러다 보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계속 이런식으로 살다보면 어느날 선명히 알지 않겠어요? 하나님은 뭘 원하신다, 뭘 싫어하신다 이거 모르겠어요? 바보가 아니면 알아요. 바보도 알 수 있어요. 왜? '내가 이걸 할 때 하나님이 날 때리더라, 이걸 하면 잘했다고 하더라, 이거하면 기분 좋더라, 이거하면 찜찜 하더라' 이거 모를까요? 알아요. 왜? 바보라고 했냐? 분석이 안되면 누구나 바보 입니다. 분석이 안된채로 하고 있으면, 느낌만 가지고 있으면 아직 바보 상태고 분석까지 되버리면 누구나 다 똑똑해 지는 겁니다. '아! 이거 였구나' 그러면 현실화가 돼요. '이거 였구나' 까지 알아버리고 안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성령을 받고 성령 뜻대로 살다보면 어느날 성령뜻도 선명해지고 자기가 그렇게 살고 있는 변화된 삶의 양식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게 성화예요.

여기까지 오는 법을 지금 가르쳐줘야 될 곳도 원래 교회고, 교회가면 어려서 입문부터 계속 이것만 가르쳐야 돼요. 성령받는 법, '자! 성령 안받은 사람?', 나오면 바로 끌고가서 성령, 몰라 하라고 하고 기도 쏴주고 다 해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마음이 급하면 멘토들이 몰라, 괜찮아 하라고, 감사, 기쁨, 몰라, 괜찮아, 감사, 기쁨, 기도 빨리 하고 있고, 등에서 뭐 해줘야 돼요? 무협지처럼 딱 등에, 심장 차크라 뒤에 손대고 막 기운 넣어주고, 아니면 정수리에서 안수해 주고, 아니면 둘다 해주면 됩니다.

제가 누가 아프다고 그러면 머리나 등이나 가슴 쪽에 기운을 이렇게 대주고 있으면 차크라가 좀 각성 되거든요. 그때는 깨어나고 뭐하기 더 좋아요. 남의 기운까지 좀 도움을 받죠. 그래서 안수해주고 성령세례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해주고, '일어나라' 이런게 아니고, 그건 특수한 경우죠. 이렇게 해주고 뭐가 일어나야 돼요? 성령이 일어나야죠. '성령 받아라' 이거예요. 대주고 몰라 하라고 그러면 훨씬 빨리 생각이 진정되면서 성령의 현존을 잘 자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까지 해주면 이제... 우리 학당에서 이러고 있으면 이제 학당이 멀리 갔구나 할 수도 있어서 자제 합니다만 스스로 하는게 좋으니까 어차피 결국 스스로 해야 되니까, 절박하니까 이렇게 라도 해준다는 거예요. 지금 교회 같은면 입문 '신자 되려고 왔습니다.' 홍익학당식이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써야돼요. 체크 사항 있어요. 성령 안다. 받았다, 안받았다. 체크 다 합니다. 이렇게 양심분석 할 줄 안다, 모른다. 써내면 그거 다 체크해서 빨리 그쪽 반으로 가서 거기 멘토가 붙어서 어떻게 해야돼요? 집중적으로, '오늘 집에 가시려면 성령 받았다는 말 하시기 전에는 못갑니다' 하고 다그치면서 '알 것 같아요' 이런 분들 나오시겠죠. '받은것 같아요. 보통 성령 수련회 하면 그런식으로 해요. 다그쳐서 안다고 할때까지 막 다그치고, 아닌거 같아도 멘토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다 알잖아요. 다 아니까 미루고 참고 하다가 집은 가야겠고, '압니다' 그러면 가요. 다 그렇게 합니다.

저희는 그게 아니라 진짜 받게 도와주겠다, 진짜 받으면 어떻게 돼요? 성령 알면? 그러면 이 삶의 양식을 또 가르쳐 주는거죠. '지금 이렇게 가야 합니다, 지금 성도들은 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도까지 안가도 일반 성도들 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남 지도하는 역할 맡은 사도들은 아주 본보기까지 되줄수 있는 사람들 입니다. 이 삶의 새로운 양식을 이렇게 해서 소개하고 이게 천국 생활 양식 입니다. 그렇죠? 이게 천국에서 사는 방식입니다. 천국의 삶의 방식 처음 접하셨죠? 이거 알고 성경 읽으면 다 이 얘기밖에 안써있어요. 이거 모르고 성경 보면 다 '기도하면 네가 원하는 것 이루어진다.' 만 보여요. '누구는 죽은 사람도 살렸대더라' 착각에 빠집니다. 왜? 성경에 에고를 자극하는 말도 너무 많거든요. 특히 구약에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제가 되도록이면 신약을 보시라고 권하는 겁니다. 이런 삶을 사시는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라면 구약을 봐두요 욕심이 나오면 바로 사자를 잡아 먹으면서 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되는데 그 전에는 구약 보다가 사자에게 먹힐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신약 위주로 보시라. 자! 대충 이해되시죠?

여기서 이미 영주권 나온 겁니다. 성령의 현존은 천국탐험 가능, 성령이 이미 본질로서의 천국이기 때문에 천국 여행 티켓 받은거죠. 사실은 영주권 얻은 겁니다. 성령 한번씩 받을때 마다 천국에 여행 다녀오는 것이고, 여러분 안에 성령의 현존이 24시간 안착해 버리면 여러분은 영주권자,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게 되면 시민권자, 여러분 저대로 살면 천국의 시민권자라는 걸 아셔야 돼요. 이렇게 사시는 분들은 자기가 천국에 산다는 것을 아실거예요.

오늘 아침에 나은이 얼굴 표정이 유달리 좋아서 제가 인스타나 사진 올렸었거든요, 하필 제가 못 닦고 찍었는데 엄마 젖을 먹은게 이렇게 입주변에 말라 있었어요. 한분이 '정토에 사는 것 같다' 너무 행복한 얼굴 짓고 있어서, 제가 재미있었던게 그러고 사진을 보니까 젖이 말라 붙었잖아요? 젖 빨다가 찍은 거잖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꿀 빨다가 찍은 거잖아요. 이거 괜찮다. 정토 사진은 여기 꿀도 좀 묻어있고, 성령 안에서 행복하면 완전 꿀 빨며 천국에 사는 사람의 모습 아닌가? 이런 생각이 났는데, 진짜로 나은이는 천국에 살고 있겠죠. 왜? 지금 나와 남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어요. 나와 남이 없고, 배고프다 그러면 계속 젖이 공급되고, 분유가 공급되고 그렇죠? 울면 천지가 뭔가 바로 반응해주고, 내 우주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내가 울기만 하면 변화가 계속 일어나요. 적절하게 울기만 하면 돼요. 천국이죠.

그런데 이거는 천국을 닮은 거고, 진짜 천국은 성령안에서 그렇게, 성령 안에서 성령에게 맡기고 성령의 뜻대로만 살면 나는 영원히 안식을 얻고 보호 받을 수 있다는, 그 아이가 엄마 안에서 보호 받듯이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온전히 보호해 주고 있다. 성령 부모님이, 이렇게 생각하고 살수 있으면 천국이죠. 그 기분 들어야 돼요. 실존적으로 안들면 그만큼 천국에서 벗어나 있고, 어떻게 보면 지금 이를 갈고 있는 상태일 수 있어요. 억울하다 나만 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에 떨어진게 아니라, 지금 괴로우면 지옥이죠. 지금 내가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졌는데 '신은 어디있느냐?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그럴수도 있죠? 그런것도 생각해 보시고, 여기까지만 빨리하고 쉬죠.

'만약 그대들이 나의 말씀에 머물면' 이게 유명한 구절이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게 성화예요. 내가 한 그 말, 사랑의 진리, 예수님이 내 말 했다고 안했잖아요. 나는 하나님 말씀만 전했지, 그럼 뭔 얘기예요. '사랑하라' '사랑의 진리 나는 그것만 얘기했다. 제일 중요한게 사랑이다. 사랑, 정의, 지혜, 질서 중에 제일 중요한게 사랑이다.' '사랑하라고 나는 전했다.' '그 말에 머물면' 이 소리는 '하나님의 형상에 머물면' 자!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머물면, 글이 잘 안보여서 다시 쓸께요. 진리, 직관 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뭐예요? 성령의 진리예요. 성령의 영이니까, 하나님의 진리 안에 머물면, 이 소리가 성령안에 머물면 사실은 성령안에, 진리안에 머물면 여기까지만 머물면 아니라구요 싹만 난거지 그 진리를 분석하고, 진리를 실천까지 해야, 여기까지 다 했을때 안주라고 할 수 있죠. 진리에 안주한거 아닌가요? 성령에만 안주하면 안된다구요. 진리에 안주한다는 말을 따로 써주는 이유가 성령에만 안주하면 칭의, 성령안에 있는 진리까지 이해하고 구현하면 진리의 안주, 그게 성화 입니다. 성화의 다른 표현이예요. 진리의 안주한거, 성령에 안주하면 칭의, 그래서 영적 육체까지 얻으면 영화, 이런 거예요. 그 진리에 안주하면,

[진리를 알면 진리가 그대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미 진리에 머물면, 말씀에 머물면이 먼저 나오죠? 그게 진리에 안주하면 이예요. 내 말씀에 안주하면, 진리에 안주하면 성령안에서 진리를 정확히 알 것이니, 진리를 알아야 너희가 자유로워 질거다. 이 얘기는 실천까지 다 들어있는 거예요. 진리를 알고 그대로만 살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선악식별이 자유자재한데 자유죠. 여러분 삶에서 힘든게 매순간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게 올바른 판단인가? 이것 때문에 힘든데 선악을 정확히 판단하면 아버지 뜻대로 그냥 판단하면 쉬워요. 뭐가 어려워요? 내 뜻대로 판단하려니까 어려워요. 내 뜻대로 하려니까 이것도 나는 좀 얻었으면 좋겠고, 이것도 얻고 싶고, 이것도 갖고 싶고, 이게 너무 많으니까 매순간순간 그 많은 내 욕심을 가지고 결정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점을 칩니다. 정보가 없거든요. 내 욕심은 누구나 다, 현상계에서 제일 중요한게 뭐예요? 이게 진리이기도 하지만, 돈, 돈, 현상계에서는 돈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의식주를 다 뭘로 해결해요? 돈이요. 일단 돈이 많았으면 좋겠잖아요. 딱히 당장 목표가 없을때는 돈이 많은게 일단 목표죠. 왜?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 하면 되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도 또 이게 필요해요. 결국은 현상계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세속의 진리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 는 얘기를 해줘요. 이것도 진리입니다. 세속의 진리는 가짜라는게 아니예요. 삶의 어느 한면만 얘기하고 있어서 문제인거지, '이게 제일 중요하다' 맞아요. 그런데 영적인 면까지 고려하면 성령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개를 다 볼 수 있는게 중요하다' 하는 거지, 세속의 진리를 부정하고는 못삽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게 선악만 따져서 사시면 돼요. 그러면 요원한 얘기처럼 들리실 수 있다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이루어야 되고, 돈도 벌어야 되고, 나한테 유리한 것도 찾아야지 어떻게 선악만 판별하고 살수있어? 그런데요 그런걸 다 전제하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걸 전제해서 선한 것, 즉, 돈을 벌어도 얼마나 벌지? 언제까지 벌지? 어떤 방식으로 벌지? 이것도 선악이 결정한다니까요. 모든 걸 선악을 보면서 내 욕심 이걸 하나님에게 모든 걸 까발린 다음에 그중에 하나님이 인도하는 가장 자명한 방식으로 내 욕심을 성취하면 된다는 거예요. 욕심을 누르자는게 아니라 욕심을 성취하는 방식이 가장 선한 방식으로 우리가 성취하는게 옳다. '나는 그것도 인정 못하겠다' 그러면 그냥 고등침팬치로 사시는 거고, 그런데 나는 욕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욕심을 성취할 때 이왕이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방식으로 성취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하고 타협을 해야죠. 선악만 식별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모든 걸 책임져 준다. 이게 예수님이 '오직 하나님 나라와 정의만 구해라. 그러면 의식주 다 해결해 준다' 그 얘기는 뭐예요? 돈 문제도 해결해 준다는 거예요.

이론상이 진리이면서 돈도 이론상이고, 이거 하나로 다 해결됩니다. 돈도 벌고 도도 닦자. 원불교에서 영육쌍전이 이겁니다. 돈도 벌고 도도 닦자. 그걸 동그라미 하나에 에고 문제도 해결하고, 양심문제, 참나문제도 해결하자, 다 해결할 수 있는 답이 거기 다 있다. 원만 구족하게 다 있다. 성령 안에 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서 뭐만 바래요? 돈이요. 완전히 반대되 있는 거예요. 예수님 제자가 아닌 거예요.

예수님은 '선악식별에만 너희가 매몰되면 하나님이 다 도와준다니까' 이거예요. 아버지 뜻대로 돈 벌려고 노력하면 도와준다니까, 그런데 내 뜻대로 돈 벌려고 하면 안도와준다니까 이 얘기인데 '아니 아버지 그런데 돈도 벌어야죠' '아니, 내 얘기를 못알아 듣는거야?' 아버지 뜻대로 하나님 나라와 정의를 구하면 다 도와준다니까 이 얘기예요. '돈을 벌더라도 양심적인 방식으로 고르라고 그리고 하나님에게 결과를 맡기면 네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니까, 네 뜻에 딱 맞는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라, 다 해결되게 도와준다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방식으로 해결돼, 하나님이 널 죽이겠냐?' 이거죠. '동물도 다 옷입혀주고 식물도 옷입혀주는 하나님이 너 굶주리게 하겠느냐? 먼저 하나님 뜻대로 네가 욕심을 성취하는 방식을 익혀라' 이겁니다.

그게 이겁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를 안해주면 헷갈리실 것 같아서 제가 자세히 말씀드린 거예요. '선악만 따지고 살수있다고요?' 또 이러신다구요. 여기서는 여기 기운에 '음, 맞다' 하고 집에 가면 '이상한데, 선악만 식별하라고 아닌데, 그러면 사람이 밥을 어떻게 먹어?' 밥을 선하게 먹으라는 겁니다. 돈을 선하게 벌어라. 남의 것 짓밟고 벌지말고,

자! 보세요. 경제가 이럽니다. 경제 활동의 목표가 뭡니까? 돈을 버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돈과 도가 둘이 아니라니까요. 돈을 잘벌려면 어떻게 해야돼요? 남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돼요. 남을 도와줘야 남이 도움을 받는 만큼 남이 돈을 많이 내놓습니다. 그렇죠? 그럼 서로 깨끗하잖아요. 내가 사기를 쳐서 돈을 받으면, 남에게 해를 끼쳐서 내가 돈을 많이 벌었잖아요. 그러면 나는 댓가를 치러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지금 선악식별 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거냐도 선악으로 따져보시면 나온다. 내가 만든 제품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나도 그 댓가로 그 공덕으로 이윤을 얻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윤을 얻더라도 내가 한 것 이상으로 얻는 것은 원치 않는다. 또 누군가의 것을 뺏는게 될테니까 나는 내가 한 것 만큼 벌고 싶다.' 이 분은 이미 도인이잖아요. 이 분이 경제인 같으세요? 사실은 훌륭한 경제인은 도인입니다. 성령받은 사람이라야 진짜 이런 훌륭한 경제인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중간에 잘 가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요. '여기다 기름을 넣어버릴까?' 이상한 생각, '라면에 이상한 걸 넣어버릴까? 못먹는 기름을 넣어버릴까? 뭘 해버릴까?, 이렇게하면 싸다니까요' 아파트 지었는데 아파트 벽 부수는거 봤더니 쓰레기 다 넣어놨더라구요. 공사장 쓰레기를 벽에 넣어놨어요. 확장공사한 곳을 부수는 걸 봤는데, 저도 말로만 늘 들었어요. 건설업하시는 분들한테 그렇게 한다고, 그런데 진짜 보니까 진짜 쓰레기 알뜰하게 버리고 갔더라구요. 그분은 확장공사한 벽에 쓰레기 넣을 때 어땠을까요? '야, 이게 여기 딱 맞네' 하면서, '아버지가 날 돕는구나' 쓰레기가 어떻게 넣으니까 다 맞아요. '와, 내가 역시 아버지 뜻대로 일했다' 이러실 수도 있죠? 우리가 욕망을 성취하다보면 그런다니까요, 돈에 눈이 멀면 하나님 나라를 버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고가다보면 여러분 삶 자체가 풍족해지고 남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성공을 하더라도 박수받는 성공을 할 수 있어요. 이왕이면 이렇게 해야지. 이게 하나님 자녀의 생각이죠. 현실하고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하실까봐 제가 노파심 때문에 말씀 좀 드렸어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그대들의 영혼을 구원할 힘을 지닌 여러분 안의 심겨진 말씀을]

여러분 안의 말씀이 심겨졌다는 것은 성령이 여러분 안에 있어서 그래요. 원래 말씀이 성령안에 새겨진 겁니다. 성령안에 새겨진 말씀이 여러분의 혼에도 새겨져야 되겠죠. 그렇죠? 애초에 어디에 새겨져 있어요? 성령에, 성령을 받아야 성령안에 새겨진 하나님 말씀이 우리 혼에도 새겨지는 거예요. 자! 아시겠죠? 영에, 성령에 새겨져있는 이 진리의 도장이 혼에도 찍혀야죠. 그러니까 성령의 진리가 혼에 온전히 새겨지는 것을 성화라고 하는 거예요. 혼도 성스럽게 살아가게된 그 경지, 그래서

[사랑의 진리를 온유하게 받아들이십시요. 그대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마십시요.]

듣기만 하고, 성령 안에서 듣기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자기 혼에는 안새기고, 실천도 안해버리면 엉터리죠. 그러면서 나는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칭의' '나는 이미 의로워졌다. 성령이 내 안에 임했다.' '그러면 성령이 너에게 뭐라고 하시더냐? 선은하고 악은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더냐' '어, 나도 그말 들었다.' 그런데 안한다. 분석도 안하고, 실천도 안한다. 그러면 그게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칭의를 받고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을 모르는 자보다 더 처참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게 베드로나 이런분 입장입니다. 야고보 입장입니다. 사도들의 입장이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능멸한게 돼요. 사도들은 예수님 피 값으로 구원받았다고 믿는데, 예수님 피 값으로, 구원받아놓고 지랄대는 건 최악이라고 보는 거예요. 아직 구원 안받은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열리지만 이 사람들은 예수님 피 값을 조롱한 거예요. 칭의를 얻어놓고도, 예수님 피값으로 성령을 받아놓고도 따르지 않았어요. '이 사람은 더 처참한 벌을 받을 것이다' 이게 사도들의 입장입니다. 그건 야고보에 있죠. 야고보서 1장 21절에서 22절 말씀 입니다. 여기까지하고 야고보서 얘기 하나더 남았는데

10분 충분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