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21강
| 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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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2 | 43 | 49절, 67절 | ||||||
| 부제 | 육체의 주인이 오기 전에 영생을 얻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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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일자 | 2020. 06. 14. 日. |
| 게시일자 | 2020. 10. 02. |
| 동영상 길이 | 32:24 |
| 강의 중 인용 도서 | 도마복음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zl_h3AzHlyg |
도마복음 21절 오늘 살펴보죠,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21절 육체의 주인이 오기전에 영생을 얻어라.》
이상한 말인데요 이런 구절들 때문에 도마복음이 좀 기존 기독교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 같아요. 기존 기독교에서는 어떤 영생의 문제를 다룰 때 사도 바울만 해도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성령의 뜻을 따라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나아가서 영생은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고, 마지막날을 기다리면서 신앙하는 모습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졌는데 예수님의 영생에 대한 이런 말씀들은 좀 충격적이실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에서 뭐라고 하냐면, 그런데 분명히 요한복음에 통하는 말씀들이 있었어요, '살아서 날 믿으면 죽음을 맛보지 않을거다, 죽음을 체험하지 않을거다' 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구절하고 통하는 말인데 사실은 막연하게 우리가 '심판의 날에 영생을 얻을 거다' 기대하고 있다가 이런 말씀들으면 되게 세요, 뭔데 제가 미리 막 뜸을 드리냐면 '지금 죽기전에 빨리 영생을 못얻으면 끝이다' 이런식의 얘기를 예수님이 자꾸 하신단 말이예요, 이런 내용들이 도마복음에서 계속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면 이 단락들 말씀이 잘 매끄럽게 연결은 안되지만 도마복음의 저자가 뜻이 통하는 내용을 묶어놓은 것 같아요. 이 단락 하나하나가 매끄럽게 연결은 안됩니다만 비슷한 주제의 말씀들을 모아놓은 것 같아요. 보시면
《 예수님께 묻기를 "당신의 제자들은 무엇과 같습니까?" 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은 남의 밭에 사는 어린아이들과 같다."》
이런 얘기 참신하죠? '남의 밭에 사는 어린이들 같다'
《그 밭에 주인이 나타나서 '우리 밭을 다시 돌려주거라!'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밭을 돌려주기 위해서, 그들 앞에서 옷을 벗고 그들에게 땅을 돌려줄 것이다.》
옷을 벗고 돌려준다는게 뭘까요? 이거 한번 잘 생각해 보시면, 첫번째 각주 보시죠, 1번 각주 보시면
[땅은 여기서 육체를 말한다고 보입니다. 땅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밭의 주인은 따로있다. 땅의 주인, 우리 육신의 주인은 따로있다. 그러니까
[이 육체는 버려야되고]
죽음의 신이죠, 죽음의 신이 오면 이 육체는 내놔야된다. 이 육체의 주인 따로있다. 와서 달라고하면 줘야된다. 그러니까 내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쓸때는 내 것같이 쓰지만 빌려서 쓰고있다. 이거죠. 전세로 쓰고있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내려놓고 가야돼요. 내거는 아니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때가되면 주저없이 벗어던지고 부활체로 영생을 누릴 수 있어야 된다]
내 제자들은 남의 밭에 노는 어린이 같아서 밭 주인이 와서 돌려주거라 하면 그 앞에서 옷을 벗어버린다고 하는 건 이 육체를 벗어주고, 땅을 돌려주고 부활할거야. 그러니까 영생을 얻은이들이야, 이렇게 지금 얘기해 주는거죠. 내 제자들은 영생을 추구하는 이들이야, 영생을 얻은이들이야, 이렇게 이해하시면 '예수님 생전에 영생을 다 얻었나요?' 그건 알수없지만 그 영생을 추구하는 길을 가고 있는, 영생의 보증을 받은, '내가 죽더라도 내 제자들은 영생을 반드시 얻을거야' 라는, '그래서 밭 주인이 육체 달라고 하면 벗어주고 가버릴거야,' 이런 어떤 존재들이다 라고 얘기를 해주신거죠. 그러니까 그 얘기 당시에 제자들이 다 영생을 얻었느냐? 그건 아니지만 성령만 체험해도 기존 복음에는 나옵니다. '영생의 보증을 얻었다' 라고, 그러니까 영생이 확정됐다. 이런식으로 표현하시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포인트는 분명히 우리가 죽음을 당할텐데 죽기전에 영생을 얻어라, 죽기전에 살아서 죽음을 맛보지마라 이 부분에 포인트가 있다. 이 말씀드릴게요. 두번째 얘기는요,
《이런 이유로 내가 말하노니, 만약 집의 주인들이》
여기서는 우리가 또 주인이 됐어요, 아까는 주인이 따로 있었죠? 그래서 제가 논리적으로는 잘 연결이 안된다는 얘기를 드린거예요, 이야기가 좀 달라요, 지금 이 글에서는 연결되어 있지만 내용은 좀 다릅니다.
《내가 말하노니, 만약 집의 주인들이 도둑이 올 것을 안다면》
이제는 도둑이 내 집에 쳐들어온다는 상황인 거예요. 설정이 좀 다르죠
《그들은 도둑이 이르기 전에 깨어 있을 것이다》
도둑이 오기전에 깨어 있을 것이다. 언제 도둑이 들어올 줄 모르니까 정신차리고 있어야 되겠죠.
《그리하여 그들이 집에 침입하여 재산을 훔쳐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자, 이때에 2번 보시면, 각주 2번 보시면 제가 재미있게 유교경전 글을 써 놨어요. 주자어류 글인데 각주에 넣어놨습니다. “경” 유교에서는 이 경이 기독교랑 통해요. 경천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게 깨어있는 거고, 그게 정신차리고 있는 거예요. 유교에서도 그렇습니다. 잘통해서 제가 이걸 썼는데, ‘깨어있으면 어떻게 된다는 거냐?’ 유교경전에서, 주자라는 송나라때 큰 선비의 주장이 이렇습니다.
[”경” 깨어있으면 “천리”]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진리” 유교에서는 천명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명령”이
[항상 광명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항상 알아차려진다는 거죠. 광명하게 드러나서 깨어있기만해도 천리에 밝아지니까
[자연히]
어떤 일이 일어나죠? 인욕, 여기서 인욕은 단순한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양심들이예요, 유교에서 인욕 그러면 비양심이예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마음, 황금률을 어기는 마음이예요. 이
[인욕이 억제되어 사라질 것이다.]
욕심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비양심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천리는 보존하고 인욕은 제거하자. 이게 주자의 핵심 주장이죠. 깨어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진리가 내 안에서 밝아지고 그러면, 깨어있다는게 뭐죠?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령과 접속한 것 아닙니까. 성령 접속, 성령과 접속했을때를 우리가 의로워졌다고 해서, 접속 못할 때는 혈육의 자녀, 성령과 접속하는 순간 칭의, 의롭다 칭해지는 하나님의 자녀, 그런데 접속만 하면 선악의 기준인 천리를 알게되서, 사랑의 진리죠, 황금률, 내가 받고 싶은 것 남에게 해주는 사랑의 진리에 밝아지고 황금률 어기는 비양심에 대해서는 제압할 수 있게 힘이 생겨난다. 그게 어디서요? 깨어있음에서, 즉 성령에서 시작된다. 성령과의 접속에서 그게 유교에서는 양심과의 접속입니다만 성령과의 접속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양심은 강해지고, 욕심중에 비양심은 제거된다. 그러니까 이 감각으로 보셔야, ‘도둑이 들어오기 전에 깨어있어라’ 깨어있으라는 말이 성령하고 접속하라는 거잖아요, 성령과의 접속이 다른 말로 뭡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니까, 하나님의 영과 접속, 하나가 됨이니까 이게 믿음의 상태입니다. 깨어있으라는 것은 하나님과 믿음으로 결속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을 믿어라, 이거죠. 하나님 안에서, 성령 안에서 믿음 충만할 때 깨어있는 거고 그러면 그들이, 도둑들이 집에 침입해 올 때 재산을 훔쳐가지 못할거다. 주인이 정신차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대들은 세상에 대해서 깨어있어야 된다》
세상의 모든 경계가 우리를 유혹해오죠, 우리 안에서 탐욕이나 분노, 어리석음이 샘솟게 만듭니다. 거기에 항상 깨어있어서 양심은 배양하고 비양심은 제거해라. 이게 다른말로 사도바울은 양심을 뭐라고 했죠? 천리에 해당되는 양심을 속사람, 그렇죠 속사람, 그리고 이쪽이 겉사람이죠. 비양심 쪽이 겉사람,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랬죠 ‘속사람이 날로 강건하게 하고, 겉사람은 날로 폐퇴시켜라’ 힘을 빼라. 자,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도적이 우리 마음에 침입해왔을 때 세상에 대한 우리의 알아차림이, 세상에 대해서 푹빠져서, 매몰되어서 세상을 알아차리는 상태에서 우리는 도적에게 바로 끌려갈거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빠질거고, 깨어서 세상을 알아차리면 성령 안에서 세상을 알아차리면 세상에서 나를 유혹하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는 힘이 나올거다.
《그 큰 힘으로 자신을 준비시켜서》
이렇게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있으면서
《도둑들이 그대들에게 오는 길을 찾지 못하게 하라》
아예 ‘저 사람 영혼은 침입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만들어라. ‘비양심이 솟구치는 것을 원천 차단하라’ 이 말입니다.
《그대들이 예상하는 역경이 올거다》
그 경계를 당해서 역경이 온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차릴 때 정신을 못차리고 알아차리면 탐진치에 끌려가 버리겠죠. 그게 역경이죠. 3번각주 보실래요?
[나에게 육체를 훔쳐가는 도둑이 올겁니다.]
죽음에 이르게하는 존재예요. 육체를 훔쳐가는 도둑이라는게 앞단락과 연결시켜서 보면 ‘육체를 훔쳐간다’ 이런 느낌으로 보시면 더 좋겠죠. 도적이 와서 육체를 훔쳐가려고 그래요
[그 전에 육체적 에너지를 배양하라]
이렇게도 풀수있겠죠. 아까 깨어있음에서는 양심의 문제로만 설명했는데 제가 각주에서 이걸 좀 보강해 본거예요. 앞단락과 연결해 볼때는 육체의 문제, 영생의 문제로도 이걸 해석할 수 있어야겠죠. 그러니까 깨어있으면서 천리대로, 하나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이런 영적 에너지, 부활체를 배양하는 부분도 들어가 있겠죠. 그러니까 먼저 육체적 에너지, 5원소를 지난 시간에도 살펴봤지만
[5원소를 지닌 에너지체, 그런 기운체를 잘 배양해서 영적 육체를 배양해야 됩니다.]
도적이 오기전에 깨어서 배양해놔라.
[그래서 불사의 몸을 이뤄놔야지 도둑이 와서 육체랑 내 몸에 있는 5원소의 에너지를 훔쳐가지 못할것이다]
내가 깨어서 성령안에서 5원소의 에너지, 다섯 그루의 나무를 내것으로 만들어놔야 된다. 죽기전에 영생을 얻어라. 이렇게 밀교적으로 풀수도 있겠죠. 두가지 풀이가 다 가능합니다. 제가 둘다 풀어드렸어요. 각주에서 풀이는 밀교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대 몸 안에서 영적인 에너지를 배양해놔라. 다섯 그루의 나무, 지수화풍공이라고 하는 5원소에 해당되는 에너지체의 재료들을 잘 배양해서, 육체적 에너지를 잘 배양해서 영적 육체, 부활체를 배양해라. 미리 해놔야지 도적이 훔쳐가지 못할 것이다. 안그러면 죽을 때 어떻게 돼요? ‘혼비백산’ 혼은?, 영혼은? 날아가버리고 영계로 갈거고, 몸 안에 있던 5원소, 에너지는 시체와 함께 썩어갈거다. 화장을 하면 그 자리에서 태워지겠죠. 자, 이렇게도 풀어볼 수 있겠습니다. 원래 ‘도적이 들어올 때 깨어있어라’ 이 구절만 따로있다면 아까 처럼 ‘성령 안에서 양심실천하라’ 이렇게만 풀수도 있는데 이 이야기가 밭에 사는 어린아이들 얘기를 하다가, 육체를 벗어주는 어린아이 얘기를 하고 그 다음 단락 얘기가 또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러니까 이렇게 영적인 몸의 문제로도 제가 한번 풀어봤습니다. 두가지 풀이를 다 염두해 두시고요.
그러니까 지금 밀교적으로 부활체 문제가지고, 영생의 문제 가지고 두번째 단락을 풀면 우리에게 닥칠 역경이라는게 뭘까요? 탐진치에 끌려가는 것만이 아니라 영생을 못얻는거죠. 죽었을 때 그냥 사망을 맞이하고 기독교 식으로 겁주는 말로는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지는 거’ 그게 역경이구요. 그걸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살아있는 동안 영생을 얻어서, 도적이 찾아오기 전에 도적이 찾아올 길을 차단해 버리는 것은 내가 영생을 얻어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밀교적으로도 한번 풀어봤습니다. 이게 종교에서 밀교적 풀이라고 하고, ‘성령을 얻어서 양심하자’ 이건 양심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보편적인 얘기니까 이거는 현교, 드러낼 현자써서 현교적인 풀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 마지막 단락 볼까요? 이 단락 보면 다시 죽음의 얘기가 나와요. 지금 예수님께서 평소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보셔야 돼요.
《그대들 중에 깨닫는 자들이 있어야 될 것이다. 곡식이 익으면 거두는 자가 재빨리 낫을 들고 와서 추수를 해버린다》
이게 좋은 의미의 추수 같지가 않죠? 이 이야기에서는 사람이 나이가 익으면 죽음의 신이 낫을 들고 와서 수확해 버린다. 육신을 거두어간다 이 말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라도 들을만한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내 말 이해되거든 이 말을 명심해라 이 소리죠. 그러니까 ‘곡식이 익으면’ 즉, '나이가 들면 추수하는 자가 와서 이 육체와 이 에너지를 가져가 버린다’ 그 전에 에너지를 내것으로 만들어서 부활체를 얻으면 영혼육이 온전해 지겠죠. 아까 풀이로보면 성령접속도 깨어있는거고, 성령 안에서 양심을 배양하는 것,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것도 깨어있는 거고, 자 그러면 ‘칭의’ 영적인 각성도 깨어있는 거고, ‘성화’ 혼의 성화, 혼의 거룩해짐도 깨어있는 거고, 나아가서 육체의 부활도 사실은 깨어있는 거죠. 하나님 안에서, 성령 안에서 깨어있는 거죠. 이렇게 깨어있으면 영혼육이 온전해져서 역경을 맞이하지 않을거다. 이게 요한복음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 랑 통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도마복음을 이단시하고 보면 이야기가 이상할 것이고, 음미하시면서 보면 기존 복음에 빠진 부분을 보충해 줍니다. 기존 복음에서는 선언만, 선포만 있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런 얘기들은, ‘다섯 그루의 나무를 얻어야 낙원에 이를 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5원소를 확보하라’ 이런식의 말씀도 있었단 말이예요.
인간 영혼육의 구조한번 살펴볼까요? 지금 이런 얘기가 가능한 토대는 우리 안에 근본적인 영이 있고, 영의 자리가 있고 혼의 자리가 있습니다. 혼에서는 뭐가 있었죠? 생각과 감정, 생각체, 감정체, 자 그 다음에 이 육의 자리에서는 육과 에너지, 기운체라고 있는데 에너지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 감정, 에너지, 육체 이런 구조인데 지금 보시면 성령 자리는 영 맞죠? 영이고,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이성, 감성, 의지의 영역이니까 혼입니다. 그리고 육체는 확실하게 육이고, 영혼육 이렇게 알고 있는데, 이 에너지, 5원소를 가지고 있는 이 에너지가 문제입니다. 이게 동양에서는 백이라고 그래요. 혼백,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혼비백산이라고 여기가 경계선에서 이 영혼만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리고 육과 백은 무덤에서 함께 소멸되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백이 신통한 거라, 이게 우리 육체에 있는 신비예요, ‘어떻게 이런 비천한 육체에 이런 신비한 게 있을까’ 라는 도마복음 구절도 나중에 또 나와요. ‘우리 안에 신비한 게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성령 얘기로 푸는데 저는 이 5원소의 에너지 얘기로 풉니다. 실제 이게 우리가 낙원에 가는 다섯 그루의 나무거든요. 그 나무와 열매를 얻어야 우리가 간다고 했고, 그래서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기 때문에 영혼만 육신을 벗고가면 이것은 지금 육이 부족하니까 ‘온전한 영혼육을 갖춘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라는게 기독교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육체의 부활을 얘기 안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인간을 낼 때 영혼육을 함께 냈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육체까지 갖춰야 사람이예요. 보세요. 각주 5번 보시면
[흙에서 온 너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전도서에 나온 말입니다. 구약 전도서에, 12장 7절이죠. ‘흙에서 온 너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갈거다’ 자! 육체는 어디서 왔다고 했죠? 흙이요. 기독교적인 신앙의 입장에서도 하나님이 흙을 모아서, 빚어서 육체를 만드거예요. 그러니까 흙은 지구소속이예요. 지구소속이니까 지금 천지창조를 하시고 흙을 모아서 만드셨다는 얘기는 육체는 지구소속이라는 얘기 입니다. 천국에 갈 때 이 몸을 가지고는 못가요. 이 몸은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너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까, 하나님 소속이니까 영은 하늘로 간다. 여기서 하늘이라는 게 꼭 땅에 반대되는 하늘은 아닙니다. 영적인 세계를 말하는 거예요. ‘영적인 세계로 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로, 하나님께로 갈거다. 하나님께 갈텐데
[그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사실 우리 영이 그대로 하나님 영이 거든요. 보세요, 우리 영은 성령이예요. 그러니까 성령은 무조건 하나님 소속이죠. 내 혼이 아무리 더럽고 추한 생각과 감정으로 살아왔더라도 성령의 세계, 영의 세계, 여기는 하나님에게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육신을 갈고 닦아도 이거는 흙의 소속이니까 죽으면 흙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뭐냐? 부활체라는 건 뭐냐? 이 에너지예요. 우리 육안에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또 다른 몸을 하나 만들면 영혼육이, 여기서는 영적인 육이죠, 영적인 육체가 갖춰지면 이 흙으로 당연히 가야할 육체는 버리고, 이게 씨알이 죽은 뒤에 열매를 맺는다는 게 영적인 육체입니다. ‘씨가 죽어야 열매를 맺으리라’ 해서, 자! 창세기에 2장 7절 한번 보시면
[그때 주 하나님께서 흙의 먼지로 육체를 만드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셨다]
이게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숨인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서 그러니까 하나님 소속이죠. 영이 하나님에게 왔기 때문에 인간은 무조건 다 하나님 소속이예요. 그래서 무슨 짓을 해요? 이 영이 이 육을 경영하면서 좋다, 싫다, 이렇다, 저렇다의 마음작용이 일어나죠? 그것을
[살아있는 혼]
이라고 그래요.
[혼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에고성은 이 혼에 있습니다. 나와 남이 지지고 볶고 싸울 수 있는 것도 다 우리가 혼을 지녔기 때문에 그래요. 혼의 세계에서 가능합니다. 생각하고 울고 웃고, 여기 사실 빠졌지만 오감도 사실 혼의 작용입니다. 이 육체와 에너지에 대해서 느끼고 감응하는게 오감이죠. 생각, 감정, 오감이 다 혼의 작용이라 내가 살아가는 모든 우주는 내 혼의 세계죠. 영이 있는지도 모르고 혼의 세계로만 살아오다가 육체 에너지를 통해서 경험하는 세계를 생각, 감정, 오감으로 느끼고 살다가 영을 앎으로써 하나님 자녀가 되고, 승객이 되는 거죠. 칭의, 그리고 하나님 뜻까지 성령안에 새겨진 이 진리까지 앎으로써, 이 진리를 자기 영혼육에 구현함으로써 우리는 뭐가 되는 거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성화가 일어납니다. 혼의 성화가 일어나고 나아가서 이 육체까지 이 진리 안에서 완전히 거듭날 때 육체적 부활까지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때도 우리 육체가 부활하는 건 아니예요. 부활체라는 게 있는 거지. 도마복음은 이런 부분을 강조합니다. 지금 이 메시지도 다 ‘죽기전에’ ‘추수가 일어나기 전에' 그때 빨리 답을 얻어라. 이 얘기 입니다. 옷 벗어서 돌려주고 깨끗하게 천국에 갈 수 있게 준비하라, 그게 내 제자들이다. 항상 깨어있어야 되고,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답을 내라,’ 이게 ‘이 구절만 보고 그렇게 풀이할게 있습니까?’ 합니다만 그런 얘기들이 도마복음은 끝없이 나옵니다. 일관되게 나오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풀어드린 거예요.
[흙의 먼지로 빚은 몸은 역시 지수화풍공 5원소로 빚어져 있죠]
우리 육신도 지수화풍공 5원소 입니다. 우리 몸안에 공간도 있고, 우리 몸안에 살 덩어리도 있고, 땅이죠. 땅도 있고, 물도 흐르고, 피도 흐르고, 열기, 불도 있고, 호흡, 바람도 왔다갔다 합니다. 공간도 있고요. 그럼 이게 지수화풍공으로 거친 육체도 만들어져 있지만 이 낙원에 이르는 다섯 그루의 나무라는 것은 미세한 5원소예요. 거친 육체가 아닙니다. 미세한 육체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바람, 미세한 흙, 미세한 열기, 미세한 에너지들, 그 에너지들이 지수화풍공 입니다. 그리고 각주 5번 보고 있죠
[생명의 숨은 성령, 하나님의 영이고, 혼은 생각, 감정, 오감의 작용을 일으키는 에고의 마음을 말합니다.]
어떠세요? 21절 하나를 쭉 살펴봤습니다. 이게 애매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교재를 22절까지 나눠드렸는데 22절이 제가 준비한 자료가 많아요. 22절을 다 보기도 그렇고 한시간 단위로 강의하니까 좀 애매합니다. 22절 한번 읽어보고 오늘 제가 강의 마칠게요.
《22절 영적 육체로 거듭나는 방법》
21절에 이어서, 도마복음은 친절하다니까요, 4대복음은 이렇게 한번 지르고 갑니다. 지나가 버리는데, 멋진 말씀을 선포하고 끝나는데 도마복음은 구체적으로 접근해요, 22절 보세요, ‘영적 육체로 거듭나는 방법’
《예수님께서 몇 명의 젖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시더니》
지금 딱 나은이 수준일 것 같은데 ‘젖 먹이들을 보시더니’
《제자들에게 말씀하세요, 이 젖 먹는 아이들과 같아야만 그 왕국》
아버지의 왕국,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리라》
하니까
《제자들이》
많이 그런 얘기를 들었겠죠. 이제 또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갓난아이처럼 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천지분간 못하는 간난아이처럼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얘기입니까? 이런 느낌이예요. 왜나하면 실제로 이게 요한복음에도 비슷한 니고데모와의 대화도 있잖아요, 그 니고데모와의 대화도 각주 6번 보실래요? 각주는 6번만 볼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하노니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여기서는 바로 다시 태어나라고 그러잖아요
[이미 나이든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다시 태어나려고 엄마 뱃속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내가 갓난아이로 돌아갑니까? 여기서도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말씀해주세요.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로 말하노니, 누구든지 물, 성령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물과]
자 이거죠. 물과 불, 기호가 이래요.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국기가 이거 합쳐진거죠. 물과 불이 합쳐진거, 다윗의 별이라는게 수화의 균형입니다. 물은 내려가기만 하고 불은 올라가기만 하니까 불이 아래에 와있고 물이 위에 있으면 계속 만날 것 아닙니까, 안그러면 둘이 못만나죠. 음양의 하나됨. 음양이 하나됨으로써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조화, 빛과 어둠의 조화, 여기서 어둠이라는 것은 악을 말하는게 아니고 빛과 어둠이, 음양이 있어야 우리가 사니까요. 낮과 밤이 있듯이 있어야 되니까, 이런식으로 남녀의 하나됨, 하나님을 본떠서, 창세기에 남녀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남녀가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처럼 될거 아니예요? 그런데 난 이미 남자 아니면 여자, 뭐 절충이라도 하나님에서의 온전한 하나님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 육체를 어떻게 개조하는게 아니라 그건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럼 이 영적인 하나됨을 어떻게 만들어 냅니까? 이 소리랑 같아요.
[물과 불로 다시 태어나라]
물과 불로 음양의 조화를 통해서 성령의 에너지와 성령, 성령 불이고 성령 에너지는 물이고, 생명수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 이게 온전한 부활입니다. 상징물로서는 다윗의 별 생각하세요
[그래야 하나님 왕국을 다시볼거다, 육체는 물질적 육체를 낳고, 성령은 영적인 육체를 낳는다 ‘그대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내가 말했다고 놀라지말라. 바람은 불고싶은대로 분다 그대들은 바람을 볼 수 없다. 단지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 영적인 육체라는 것도 이렇다.] (요한복음 3:3~8)
이겁니다. 영적인 육체도 사실은 이렇다. 네가 지금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지금 환생이죠. 환생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다시 태어남이란 물과 불의 조화를 통해서 영적인 육체를 지닌 갓난 아이로 다시 태어나라는 거다. 이게 요한복음에 나온 얘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 도마복음 얘기가 아주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보완이 되는 얘기 입니다. 그래서 ‘젖 먹는 아이처럼 되어야 그 왕국에 간다’ 이 얘기도 다시 태어나라는 소리예요. 평소에 자꾸 이런 얘기를 하셨다구요. 다시 태어나야돼, 갓난아이로 돌아가야돼, ‘어떻게 돌아갑니까?’ 그러니까 똑 같은 얘기를 하시잖아요. 이 얘기가 다른 얘기가 아니라는게 똑같아요.
《그대들이 둘을 하나로 만들 수 있어야 된다.》
물과 불을 하나로 만들어야된다. 아까 얘기하셨는데 똑같잖아요. 안과 바깥을 하나로 만들어라 이소리 입니다.
《안을 바깥처럼》
안에 있는게 밖으로 나와야 되고,
《바깥에 있는게 안에 들어갈 수 있어야 된다.》
이게 영에서 나온 영의 에너지는 눈에 안보입니다. 그 영의 에너지가 바깥으로 육체처럼 나타날 수도 있어야 되고, 물질적 육체처럼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사실은 성령의 몸이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눈에 안보이는 존재로 될 수도 있어야 한다.
《위를 아래처럼 만들어야 되고》
우리 육체에서는 머리가 하늘이고 배가 땅입니다. 그래서 머리는 뜨겁고 배는 냉합니다. 머리는 불이고 배는 물이예요. 머리의 불과 배의 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음양을 합일 시켜야 된다.
《남성과 여성을 하나로 만들어서 남성이 더 이상 남성이 아니며》
남성이 만약에 자신의 몸 안에서 물과 불 합쳐서, 5원소 중에 물과 불이라는 두가지 원소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물과 불을 하나로 만들어서 그게 흙처럼 굳어지고 그게 바람과 같은 에너지를 머금고 있으면 지수화풍공이 다 갖추어 지는 겁니다. 이 얘기는 예전에 드렸어요. 그래서 육체적으로는 남성이지만 내면이 음양이 합일되어 있고,
《육체적으로는 여성이지만 그 여성이 아니게 된다》
이미 그 안에서, 자기 내면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일을 이미 이루었기 때문에, 머리의 불 에너지와 아랫배의 물 에너지가 하나가 됐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요한복음에서 ‘아랫배에서 생명수가 샘솟을 거다’ 이 얘기도 물과 불을 합치는 것을 강조하시는 얘기 입니다.
《그대들이 그렇게 해서 육체의 눈 대신 새로운 눈》
이게 아까 말씀드린 육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육체, 동양에서 백이라고 부르는 그 에너지체의 눈이겠죠.
《육체의 손 대신 에너지체의 손을 만들 수 있고, 육체의 발 대신 새로운 발을 만들 수 있어야 된다. 육체의 형상대신 새로운 형상을 만들 수 있을 때 그대들은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게 부활체 얘기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된 얘기가 없죠. 이 얘기 각주를 풀이해드리면 동양의 신선사상, 에너지체 배양 사상의 정수 거든요. 그대로 통합니다. 그럼 각주한번 미리 보시고 다음 시간에 제가 22절을 다시, 오늘 설명드린것에 이어서 자세히 각주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갈께요. 여기 지금 엄청난 얘기가 이미 나와있다. 이 말씀 드리면서 이게 또 기존 복음하고, 신약의 다른 바울의 글이나, 사도바울도 영적인 육체를 강조했거든요. 어떻게 연결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영적육체로 거듭나는 방법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시간에 꼭 함께 도마복음 공부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