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1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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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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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2 43 49절, 67절
부제 나는 그대의 선생이 아니다
강의일자 2020. 02. 15. 土.
게시일자 2020. 04. 28.
동영상 길이 52:06
강의 중 인용 도서 도마복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5NtlpCEdX4E


13절 한번 해보죠.

《나는 그대의 선생이 아니다》

충격적이죠! 예수님한테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는 게, 도마복음 강의 들으실때는 마음을 좀 열어놓고 보셔야 돼요. 이게 도마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면 다른 복음도 달라보입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복음인데 다른 복음을 가지고 너무 머리속에 이미 기존의 틀을 짜놓으면, 사실은 그 복음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예요. 그런데 이제 선배들이 해놓은 거, 목사님이 가르쳐준 걸로 머리에 작은 틀을 짜놓고 도마복음을 대하면 되게 충격적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충격적일 수 있다는 거지 사실은 다 지당한 얘기만 있어요. '너는 뭘 기준으로 그러냐?' 제가 성령 안에서 자명하게, 제 안에서, 제 내면에서 찾아보고, 경전에서, 복음에서 찾아본 걸로 볼때는 지당한 얘기예요. 그런데 그렇게 안찾아보고 남의 말만 듣고 기독교를 이해했다가 자기가 이해한 것과 다르면 예수님 말 아니라고 생각한다구요. '본인이 예수님 수준을 넘어선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라고 저는 그렇게 밖에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했는데 예수님 말 아니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여러분 어디가서 '저거 윤홍식 말 아닌데' 이럴 수도 있어요. '윤홍식이 단학을 강의할리가 없는데, 기독교인 인데' 자기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강의중에 유교 강의만 들으신 분은 유교인줄 알아요. 불교 강의만 들으면 불교인줄 알아요. 또 어떤 분들은 원불교인줄 아세요. 원불교 강의만 들으면, 그러다 다른 얘기를 꺼내면 '저거 이상하다' 고 할 수 있어요. 도마복음이 딱 그 격이예요. 4대복음만 알다가 갑자기 예수님이 도마복음에서는 에너지체 얘기도 하고 다양한 얘기를 한단 말이예요. 그럼 인정안하려고 합니다. '그럴리가 없다' 뭐랑 똑같냐면, 제가 쓴 유교관련 책만 보다가 '윤홍식이 단학책도 썻던데' 그러면 '그럴리가, 유교는 단학을 금하는데' 이런식으로 자기 선입견으로, 그 사람말 아닐거야,

인터넷에서 저는 옛날 가수들 음악 자주 찾아서 듣거든요. 그런일이 많습니다. 그 가수 노래예요. 그런데 그 밑에 댓글중에 상당수가 뭔지 아세요? '가짜네, 그 가수 아니네' 그래요. 이게 헛똑똑이들이 진짜 많습니다. 자기가 아는 기준으로 아니라는 거예요. 밑에 다 달립니다. '이게 몇년도 언제 앨범이다' 그래도 안믿어요. '딱 들으니깐 내가 아는 그 가수 목소리가 아닌데' 한번 찾아 보세요. 옛날 가수들 노래 밑에 댓글에 가보면 이거 아니라고 자기가 판정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참 웃긴게, 이런 안목으로 도마복음을 보시면 큰일 납니다. '이게 아닌데' 이런 말 쉽게 하시기 전에 음미하고 즐겨보세요. 도마복음에 얼마나 놀라운 얘기가 있는지,

제가 왜 놀랍다고 하느냐? 여기 나온 내용은 이미 유불선 합일이 되어 있는 내용이예요. 그정도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도마복음에 있는 것은 유교도, 불교도, 제가 끝없이 선불교나 이런 불교의 경전도 인용할 겁니다. 왜? 내용이 똑같으니까, 금강경 같은 경전도 인용할 겁니다. 그러면 도교, 에너지체 얘기는 도교 경전도 인용할 겁니다. 그래도 맞아떨어져요. 놀라운건 도마복음은 선불교보다 앞서 쓰여진 책이라는 거예요. 충격적인거죠. 많은 불교적인 얘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당나라때 유행했던 선불교 문화보다 앞서 쓰여진 책에서 선불교의 원형이 나온단 말이예요. 그러면 이런게 진리에 기반하니까 통하는 거지 '여기서 이걸 베꼈으려니' 이게 아니예요. 말하자면 오히려 선불교가 도마복음을 베낀게 되는 거예요.

이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진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진리를 정확히 알고 구현하는 글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철학과도 시대의 벽을, 공간의 벽을 넘어서도 하나로 통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요. 도마복음은 엄청 많이 나옵니다. 무슨 얘기냐? 예수님이 쓴 글이 아니더라도 이 글은 엄청난 내용을 담은 글이라는 거예요. 이 판단도 못하는 분들이 '예수님 글 아니네, 기네' 이걸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코미디라는 거예요. 예수님 글이 아니건, 기건 '이건 진리의 글이다' 이걸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있느냐 이거죠. 실제로 4대복음, 요한복음 요한이 썼을까요? 마태복음, 마태가 썼을까요? 증거없어요. 여러 문헌학자들이 분석하면 또 다양한 의견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어요. 왜? 이건 진리를 담은 글이니까 '이건 복음이 맞다' 라고 믿으면서 도마복음은 분석도 안해보고 '예수님 글 아니네, 예수님 말씀 아닌거 같네' 이런게 코미디 입니다. 자기 고정관념만 강화하고 있을 뿐이예요. 자, 마음을 좀 비우고, 여기 되게 센 내용이 나와서 미리 약을 좀 친겁니다. 보험을 좀 들어놓고, 이야기가 되게 세요, 놀라지 마시라. 제목이 '나는 그대의 선생이 아니다' 도 좀 이상하잖아요. 보실래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길 “나를 다른 것에 견주어 보라. 그리고 내가 무엇과 같은지 말해보라.”라고 하셨다.》

제자들 괴롭히는 거죠. 불러다가 '야, 한명씩 말해봐, 내가 뭐같아?' 이런거죠. 여러분 뭐라고 하실래요? 예수님이 불러서 '내가 뭐 같아? 누구 같아? 다른 것에 좀 비교해봐' 그러면 베드로가 먼저 대답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기를 “당신은 ‘정의로운 사자使者’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라고 하였다. 마태가 그분께 대답하기를 “당신은 ‘지혜로운 철인哲人’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정말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태는 그렇게 봤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사자 같습니다. 도마복음이라 도마가 중요하잖아요, 도마의 대답이, 아무튼 책을 써도 본인 위주로 쓸거 아닙니까? 남이 뭐라고 하는지 대충 듣고 내 얘기가 중요하죠.

《도마가 그분께 대답하기를 “선생님, 저의 입은 당신이 무엇과 같은지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세게 나왔죠. 베드로가 낭패감을 느꼈겠죠. 나중에 대답할 걸, 원래 먼저 대답한 사람이 불리합니다. 왜냐하면 먼저 대답하고, 예수님 표정보고, 두번째 대답하고 예수님 표정보고, 세번째 대답하는 거랑 이미 다 감안되서 나오거든요. '이건 아닌거 같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선생님' 도마가 이랬잖아요. '선생님 저는 당신이 누군지 말을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그것마저 쳐버려요.

《“나는 그대의 ‘선생’이 아니다.》

'선생이라고 하지마라,' 쳐버립니다. 이건 진짜 선의 정신이예요. 선의 정신, 딱 쳐버려요. '이게 선불교 문화랑 너무 닮았는데 도마복음 불교 아닙니까?' 그런게 아니라 연대도 여기가 오래됐고 그런 선불교적인 문화가 어디서 보이냐? 노자, 장자에서도 보여요. 뭐냐면? 도를 제대로 통한 분들은 그런식으로 도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거예요. 말로 할 수 없는 도를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까 선문답 같은게 나오는 거예요. 이거는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베꼈다는게 아니라, 다같은 진리의 말씀이다, 이 말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나는 그대의 선생이 아니다' '선생이라는 상도 버려' 이겁니다. 선생이라는 상도 날려 버립니다. 금강경에도 나오죠. 아라한이 아라한 이라는 상이 있으면 안된다. 선생이라는 상도 날려버려라, 난 선생아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취했는데,》

성령에 취해 있다는 거예요. 그대는 성령에 취해 있는데

《그대는 내가 돌보던 ‘샘솟는 물’에 도취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성령입니다. 나도 성령을 돌보고 있다. 샘솟는 물을, 내가 돌보는, 관리하는, 샘솟는 물에 그대도 취한거다. 이해되시죠? 이런 상황 입니다. 여기만 딱 연결되어야죠. 자, 여기는 예수님, 여기는 도마, 예수님이 돌보는, 샘솟는 물이 뭘까요? 계속 에너지와 영감이 샘솟는 물, 성령입니다. 성령에서 대표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에서 에너지를 받겠죠, 생명, 빛이라는 건 또 길이고, 그러니까 '내가 빛이요, 길이요, 생명이요' 이런 말 할 수 있는 거죠. 성령 받아서 한거예요. 예수님의 혼과 육은 우리랑 오십보백보죠, 그런데 성령을 온전히 수용했기 때문에 광명해진 겁니다. 육이 거듭나고 혼이 거룩해 진거예요. 그러니까 도마 입장에서도 도마도 성령 받아서 사는데 그런데 온전히 구현한 혼과 육과, 성령을 받긴 받았지만 온전히 구현 못하는 이 혼육 입장은 다르죠. 이 입장에서 (도마) 이 입장은 (예수님) 당연히 선생님이죠. 그러니까 예수님도 내가 빛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럴때가 있는거죠. 길이 또 진리라는 뜻이니까, 당연히 선생님 맞아요. 여기서는 도마에게, 제자들에게 다른 가르침을 주고 싶으신 거예요. '선생님이라고 나한테만 매달리지 말라' 는 거예요. 이거 지금 현상적 접근이잖아요. 본질은 뭐예요? 성령에 달려 있는 거다. 나는 성령을 온전히 구현했고 그대들은 온전히 구현 못해서 내가 선생님 소리를 듣지만 그대도 내가 돌보는 샘솟는 물을 취한거다. 우리의 근원적인 스승, 선생님은 누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요. 여기는 하나님의 영이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선생님이다.

이런 말 예수님이 생전에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모르죠. 그런데 이거 했다고 '도마복음이 이상하네' 이게 이상한거 아닌가요? '예수님이 왜 이런말을 해?' 그게 이상한 소리 아닌가요? 왜?

'선한이여' 할때 공관복음에 예수님이 뭐라고 했죠? '선한이여' 우리 4대복음에 나오죠. '선한이여' 했을때 '선한이는 한 분 뿐이다, 아버지 한 분 뿐이다, 나는 선한이가 아니다' 라고 하셨단 말이예요.

지금 같아요. 예수님 입장은 왔다갔다 하시는 거예요. 인간적 입장에서는 '나는 온전히 선한이가 아니다.한 분 뿐이다.'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선생님 했을때 '진짜 선한분은 한분 뿐이다.' '진짜 선생님은 한분 뿐이다.' 물론 자기도 선생님 이지만 랍비, 랍비가 선생님 이라는 말인데 랍비라고 불리거든요. 그런데 잘 듣다가 도마 말에는 아니라고 했냐? 더 본질적인 걸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죠.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만 알아도 좋은데 너는 하나 더 알아야 된다. 나한테 선생님이라고 하지말고 너도, 나도 다 같은 한 성령의 취해있을 뿐이다. 나는 제대로 취했고, 너는 좀 덜 취했다. 이런 차이를 얘기 하시는 거죠. 여기 보실래요, 각주 2번

[도마 또한 예수님을]

자! 뜨거운 쇠공들 이란 말이예요. 예수님도 쇠공이고, 도마도 쇠공입니다. 보세요, 그런데 이 쇠공이, 쇠공은 차가와요. 성령의 불이 붙으면 전체가 불덩어리가 되버리잖아요. 지금 이게 예수님 입니다. 우리는 어때요? 다시 그릴까요? 도마 입장이라면, 불은 붙었다고 하죠, 그럼 이 정도는 달궈져 있고, 이 정도는 뜨겁고, 이쪽은 차갑겠죠. 이런 차이가 있다. 혼과 육의 수준의 차이가, 전체가 불덩어리로 타오르는 존재는,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 자체로 하나님 소리를 듣는 이유가 이미 불이거든요. 이 정도 타오르면 쇠가 아니라 불이잖아요. 그럼 모양 자체도 뻘개져 있을거 아니예요. 이쪽은요? 여기는 쇠 색깔이겠죠. 여기는 만지면 뜨거운 정도고, 여기만 빨갛겠죠. 이렇게 서로 모양이, 형상이 달라져 있습니다. '도마 또한 예수님을'

[뜨거운 쇠공으로 만든 ‘뜨거운 불’(하나님의 영원한 현존)에 달궈져 있다.]

'같은 불에 달궈져 있다' 이겁니다. '우리 선생님은 하나다, 한분이다' 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 같은 ‘혼과 육’(쇠공)을 지닌 인간 예수님이 ‘근원적인 스승’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뜨거운 불)’이 바로 우리의 스승이자, 아버지이며, 주님이시다. 예수님을 최고의 사람인 ‘사람의 아들’로]

사람 중에 사람, 인자라고 하죠, 인자로

[만든 것도 바로 이 ‘성령’이시다.]

누가복음 보실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왜 나에게 선하다고 이르는가? 하나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선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8:19)]

이것도 센 말이예요. 예수님도 죄 없는 이로 불리고, 인간중에 하나님으로 불릴만 하십니다. 다만 이렇게 얘기하실 때는 확실하게 근원을 얘기하고 싶으신 거예요. 성부와 성자의 차이를 얘기하고 싶으신 거예요. 성부, 성령과 성자의 차이를 얘기하고 싶을 때에는 선을 확실하게 그으십니다. 그리고 한덩어리로,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일때를 얘기할 때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렇게 얘기하실 수도 있는 거예요. 보세요, 마가복음에 보면 1장 12절에

[“‘성령’(하나님의 영)께서 곧장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마가복음 (1:12)]

예수님은 누구의 인도로 움직이세요? 성령이요. 성령의 인도로 가고, 말고까지 결정하십니다. 가는게 자명하면 가요, 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되어 광야로 나가셨다.” (마태복음 4:1),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마태복음 4:14)]

예수님의 힘이 강해지는게 아니예요. 성령의 힘을 많이 수용할 수록 강해지는 겁니다. 성령의 힘을 받아서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마태복음 4장 14절, 예수님의 힘의 근원이 뭐예요? 예수님의 지혜와 자비와 권능의 원천은 성령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의 성령이고 한 성령이예요.

왜그러냐? 창세기에서 보면 창세기 2장 7절인가요? '하나님이 흙을 빚어서 거기다가 영을,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니, 이게 영입니다.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고 되어 있어요.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원문에, 그러니까 창세기에 영혼육이 다 나와요. 보시면 육은 흙에서 왔데요, 지구에 있는 흙으로 만들었데요 우리 몸뚱이는 하늘나라로 갈때 못가지고 가요. 애초에 지구 소속이기 때문에 자,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숨결이 부어져요, 그 숨결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부어져요. 하나님의 성령이, 그러니까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는 것은 생각, 감정, 오감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이겁니다. 영이 없다면 생각, 감정, 오감을 어떻게 일으킵니까? 우리 흙을, 육신을 어떻게 주재합니까? 어떻게 경영하고, 관리합니까? 이 영은 하나님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보면, 나중에 각주로 다 들어 있어요. 오늘은 아마 교재에 없을 거예요. 나중에 자세히 또 설명 드릴게요. 전도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날이 오면 육은 원래있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니까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그전에, 그렇게 되기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이게 전도서의 경고문 이예요. 거기서도 인식이 어때요? 영은 다시 하나님에게 가는 거예요. 왜?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이 영이 하나님 거예요. 혼은 에고예요, 그 영의 작용이죠. 그러니까 혼도 영의 작용이라 영혼 이렇게 한 세트로 부르는 거예요. 영혼 이라고 해도 맞는데, 들어가보면 영은 하나님 겁니다. 혼은? 에고의 겁니다. 우리 자신의 에고 입니다. 영은? 하나님에게 속한 거예요. 여러분의 영이 성령이라는게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영이예요.

하나님의 영과 별도로 여러분의 영이 있다는 발상이 기독교적으로 좀 세게, 사탄, 마귀적인 발상이예요. 기독교 좋은게 이런게 좋아요. 세게 얘기할때 세게 얘기하기 좋아요. 불교는? 마구니의 발상이다, 약해요, '사탄, 마귀의 발상이다.' 세게 말하면, 재미있죠? 이게 영혼도 구분 못합니다. 제가 보면 가끔 구분하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영혼을 나누는, 영혼 못나누면 답이 안나와요. 왜? 성경에서는 영과 혼을 계속해서 구분해서 써요. 영 쓸자리에 꼭 영 씁니다. 혼 쓸자리에 혼 쓰고, 그런데 이걸 우리말로 번역할때 영혼 이렇게 번역해 버려요. 섞어 버리는 거죠. 안그래요. 이런 말이 좀 낯선데, '흙을 빚어서 육체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셔서,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혼이라고 쓰였단 말이예요, 이런것도 번역을,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거기 원문에 찾아보세요,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도 재미있죠?

앞으로 제가 성경 강의하는 모든, 제가 신약성경 다 해드릴거예요, 각 복음 해드릴게요. 완역이냐? 부분역이냐? 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성서는 다 건드릴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더라구요. 요한계시록 하는데 막 1년씩 가고 하더라구요. 저는 한꺼번에 다 하고 싶었는데, 시간은 걸리는데 다 해드릴겁니다. 어차피 유튜브는 계속 찍어야되고 할거 많으면 좋죠. 이미 맡아놓은 것만해도 저는 엄청나요. 여러분 논어, 맹자도 안해드렸죠. 하다하다 할게 없으면 논어, 맹자라도, 또 그거 몇년짜리 입니다. 화엄경급의 대작이예요. 논어, 맹자요 양이 많아서, 저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계속 있어요. 할게 너무 많아요. 못해드려서 안타깝지,

자, 그래서 여기서 영혼은 구분하고 가자. 제가 늘 얘기드리는데, 또 강조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 불이 영이예요. 혼과 육이라고 제가 강의때마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어요, 혼육과 영을 구분하세요. 성령은 여러분의 영입니다. 여러분 영을 모르고 사세요. 그런데 안타까운건 영혼육 구분하시는 분도 어디서 헤매냐면? 우리는 혼과 육으로만 태어났고, 창세기를 잘못 읽으셔서, 성령이 부어져서 혼이 돌아간다는 건데, 성령없이 혼이 돌아가는 것처럼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우리는 혼과 육으로만 살고 있었고, 예수님이 성령 받아라 해서 영을 쏴줘야만 영이 생긴다고 믿는, 거기서 또 뭐가 어긋나더라구요. 영은 원래 있는 거예요. 영이 없으면 여러분이 무슨 수로 이 흙 덩어리를 지금 들고 다닙니까? 이거 영이 임하니까 이 흙이 내말 듣는 거예요. 영 떠나면 이거 다 흙으로 돌아가요. 원위치, 자대 복귀하고, 그것도 흩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영이 관리해서 질서정연하게 부패해서 흩어지게 합니다. 여러분이 관여할 수도 없는 일이예요. 혼이 까불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요.

그런거 똑같아요. 자동차 열심히 타고 다니지만 자동차 작은 고장만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모르는 그런 경지예요.

그거 다 누가 관리했어요? 성령이요. 여러분 몸 땀구멍 하나 열고 닫고, 심장 뛰고 이거 다 성령이 하는 거예요. 여러분 혼이 하는 일은 그거 가지고 생각하고, 울고, 웃고, 내가 조정 가능한 영역 안에서 신나게 조정해서 최대한 최대한 쾌락을 추구하는 쪽으로 가보는, 내가 더 행복한 쪽으로 가보는,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혼이 하는 기본 속성이다, 그래서 혼의 기본 속성이 탐진치라는 거예요. 탐내는 거 해보고 안되면 분노하고 시야가 좁아서 또 어리석은 생각만 계속하고, 이게 속성인데, 이게 쇠공의 속성이 탐진치인데, 불 받으면? 양심이 터져나오는 거예요. 남을 나처럼 사랑해야 되겠다. 내가 당해서 싫은거 남에게 안해야 되겠다. 이런 사랑과 정의의 마음, 겸손의 마음, 지혜로운 마음이 터져 나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터져 나옵니다. 신기하죠? 이거 엄청난 신비 아닙니까?

☆ 이 성령이 없다면 우린 구원 가능성은 없는 거예요.

영이 없는데 혼과 육의 존재만으로 이미 성립 가능하다면 이 혼과 육의 존재에게 억지로 성령을 때려 넣어야 하는데, 이건 개에게 말을 시키겠다는 위험한 발상 입니다. 말이 안되는 소리예요. 애초에 성령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알아볼 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성령이 없다면 이런 얘기 다 무용해요. 왜? 하나님과 소통할 길이 없기 때문에, 영이 주어져야만 된다고 믿는 다면 그거는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안에 신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는 거예요. 믿음이 하나님의 은총인 걸 아시겠죠? 뭘 믿는다는 것도 우리 안에 성령이 있어야 그게 자명하게 믿기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서 자명, 찜찜 판단하고 있는 그 주체가 성령이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스승인 이유가, 성령이 자명하다는 걸 여러분은, 여러분 교회 아니라, 어떤 철학을 모르더라도 일상사에서 일반인도 이렇게 삽니다. 성령이 성령인줄도 모르죠. 안에서 근원적으로 찜찜하다고 하는 것은 거부하고, 근원적으로 자명하다고 하는 것은 진리라고 인정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셨을 거예요. 누가 스승이예요? 성령이 스승이었어요. 보혜사 성령이, 성령 받기 전부터, 이미 받았기 때문에 내 삶을 그렇게 계속 관리해 오고 계셨던 거예요. 지독히 말을 안들어서 그렇지 성령이 계속 말은 해줘요. 성령 대단하지 않나요? 제가 안할 걸 알면서도 '그러는거 아니다' 이 얘기를 또 성실하게 해주잖아요. 어차피 하겠지만 '그러는거 아니다, 찜찜, 찜찜, 그러지마, 그러지마' 욕망에 눈이 멀어서 그래도 또 합니다. 해놓고 나서도 또 성령이 포기를 안해요. 이렇게 타락한 자는 포기해도 되잖아요. 포기를 안해요. '찜찜하지? 찜찜하지?' 또, 또, 계속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힙니다. 이게 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예요. 여러분이 하는게 아니예요. 자, 여기까지, 지금 좀 위험합니다. 그래서 멀리갈 징조가,

그래서 예수님과 도마의 대화가 이해되시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도마를 데리고 물러나와, 그에게 3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도마가 그의 동료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이 그에게 묻기를 “예수님께서 그대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라고 하였다. 도마가 그들에게 말하길 “만약 내가 예수님께서 해주신 말씀들 중 하나라도 이야기한다면, 그대들은 바위들을 들어서 나를 칠 것이며,》

'너 죽여버려, 이렇게 나올거야' 이거죠

《그 바위들로부터 불이 나와서 그대들을 삼켜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혹시 겁이 났나보죠? '혹시 그러면 너희도 죽을 거야' 뭐, 이런거죠. 그래서 나한테 혹시 해꼬지하면 너희도 죽을 거야, 그정도로 너희 못받아들일거야, 예수님의 제자들도 못받아들일 말을 나는 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구절들이 읽었을때 도마복음을 이단시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뭐야, 도마 지 혼자 뭘 들었데' 말도 안해줘요. 이게 끝이예요. 충격적이죠. 유튜브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다음편 안올라오고, 아무리 기다려도 안올라오고, 이게 궁금증만 부풀리고 자기만 대단하다고 하고 끝내버리는 것 같은 이야기, 그런데 이런 것도, 제가 누구입니까? 그 세마디를 추리해서 써놨습니다. 각주를 보시죠

[예수님께서는 가장 예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도마에게,]

왜? 도마복음이라고 도마가 제일 잘 이해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하죠. 여러분도 여러분이 복음쓰면 여러분 위주로 쓰지 사실 다른 사람은 관심 없죠. 도마는 자기가 얻은 감동을 써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도마와 예수님 간에 교감이 있었던 거예요. '다른 제자랑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게 아니라, 도마복음 이니까 도마가 느낀 예수님과의 교감을 주로 써놨겠죠. 그 교감중에

[기존의 유대인식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다른 제자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던 ‘진실’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 말이 빈말이 아닐 확률이 높은게 도마는 나중에 사역을 인도로 갑니다. 도마는 좀 달라요. 보통 유대인 사역을 하던가, 헬라쪽 그리스쪽으로 사역을 나가는데 이 양반은 특이하게 인도에서 순교했다고 전하는 분이거든요. 다 야사입니다만 인도로 사역 갔다는 것은 인정받죠. 그러면 이분 되게 독특합니다. 도마복음에서 에너지체 얘기가 나오고, 부활체 얘기가 나오는 것만 봐도요 도마의 관심사가 그쪽 이었다는 걸 아실 수 있겠죠. 여러분 제자들도 자기 관심사 위주로 들어요. 예수님이 에너지체 얘기할 때,

단전호흡 안하시는 분들은 제가 단학 얘기할 때 안듣고 계십니다. 들으면 더 재수없다고, 들으면서 더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나는 단전호흡도 안하는데, 부활 얘기하면 안듣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재미있는 얘기만 들어요. '아, 그렇지 황금률 중요하지' 이게 다 자기식으로 듣기 때문에

도마에게서 에너지체 얘기가 많이 나온건 도마가 거기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는 거죠. '그 부분에 있어 도마와 교감이 잘되었다' 고 보시면 돼요. 다른 제자들과 비교해서 도마가 최고 대단했냐? 이런 얘기 보다는 도마랑은 이런 에너지체 얘기를 해도 도마가 잘 소화를 했다는 거죠. 다른, 아주 유대인식 사고에 쩔어있는 분들 보다는 좀 유대인 사고를 깨는 얘기를 해도 잘 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따로 얘기는 해준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 입장에서는 정보는 전해야 되니까, 해준건데, 도마가 안적었어요. 적으면 너무 충격적이라 아마 안적었나봐요.

제가 한번 추측을 해본 겁니다. 들으시면 정말 돌로 치겠구나 싶을 거예요. 제가 돌로 치겠구나 싶은 얘기를 추측해 본겁니다. '기존의 유대인식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다른 제자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던 ‘진실’을 가르쳐 주셨다.' 저는 되게 유추 가능한게 예수님 입장은 다른 얘기가 없어요. 충격을 주려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진리를 말하는데 유대인이 못받아들일까봐 도마 따로 불러서 도마에게 얘기한 것 뿐이예요. '넌 좀 알것같다' 그런데 그 얘기가 뭐겠어요? 칭의, 성화, 영화 외에 무슨 얘기가 있겠어요? 지금 이 얘기만 해도 충격적이잖아요. 그런데 구약에서 찾아보면 근거들이 있어요. 근거들이 있는데 '당시 유대인들이 못받아들였다' 는거지 성경에 아예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왜? 구약에는 여호와가 인간들에게 '하나님들' 이라고 부르는 장면까지 나와요. 그런데 그 구절을 그렇게 해석 안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심각하게 해석을 안하는데 예수님은 그 구절을 되게 중시합니다. '너희가 하나님들이다' 이런 해석의 차이들 입니다. 근거가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니예요.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들

그런데 지금 보시면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영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여기에 혼, 우리의 에고, 에고의 세계는 혼과 육이죠. 내 육신, 그래서 성령을 각성하는 것은 칭의, 혼이 거룩해 지는 것은 성화, 육의 부활이 영화, 이렇게 해서 영혼육이 온전해져야 완덕의 경지, 예수님과 같이 덕이 완성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님과 같은 충만한 경지에 갈 수 있죠. 그런데 여기 칭의, 영화, 성화의 비밀 아니면 얘기해줄 필요도 없어요. 예수님 관심사도 아니예요. 도마복음 전체가 이 얘기예요. '너 안에 있는' 지난 시간에 뭐까지했죠?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자는' 그렇죠, '축복받을 것이다.' 그 존재하는 자리가 뭐죠? 영, '그대안에 천지창조가 되기 전부터 존재하는 그 자리가 그대들 안에 있다. 찾아라' 이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기존 복음을 다시 해석하게 해주는 거예요. 기존 복음에 예수님이 이 얘기를 해요. '아브라함이 있기전에 I AM, 아브라함이 있기전에 나는 현존했다.' 이 말을 가지고 지금 뭘로 쓰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라는 근거로 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뭐예요? '나만 현존 했던게 아니라' 도마복음을 보면 '그대들 모두 다 현존했다' 는, '성령으로써 현존했다' 는, '우리는 원래 성령이다, 우리의 본체는 영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천지창조 전부터 현존했다' 가 도마복음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그걸 찾아라, 지금 빨리 찾아라' 이 얘기를 듣고 4대복음을 보면 같은 구절인데도 다르게 해석된단 말이예요. 아, 예수님이 선포했구나, '나는 천지창조 이전부터 현존했다' 이 말과 같아요. 아브라함 전부터 현존했다. 그런데 이게 예수님만, '나만 그렇다' 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도마복음을 보면 알 수 있단 말이죠. '모두가 그렇다, 우리 모두가 천지창조 이전에 영으로써 현존했다.' 에고로써 현존한게 아니라 '영으로써, 존재로써는 그때 모두 존재했다, I AM으로써 모두 함께 존재했다. 한 I AM으로써 우리 모두가 분화되서 나온거다' 이겁니다. 이런 얘기들은 센 얘기죠. 예수님이 했어도 못받아들이고 돌을 던질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을거다. 제가 세가지 추측해 봅니다. 꼭 이 세가지가 아닐 수 있지만, 이 세가지 다 도마복음과 관련이 있는 말씀이고, 다 근거가 있고 또 유대인들이 당시 충격 받을만한 얘기예요. 지금 기독교인들이 들어도 충격받습니다. 다르지 않아요. 그때 유대인하고 지금 기독교인 크게 다르지 않아요. 들어보세요. 첫째

[① 내가 “죄(원죄)를 사하노라!” 라고 하였으나, 사실 그대들은 본래 원죄가 없다. 그대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원한 현존’(I Am) 안에 머물러 왔다! ]

그대들은 이미 천지창조 이전에 현존했다. 이게 도마복음 핵심 아닙니까? 이말을 이렇게 얘기하면 유대인들이 못받아들일 얘기가 되는 '원죄가 없었다, 그대들은 이미 성령을 인지하고 살고 있다, 성령 안에서 살아숨쉬고 행동하고 살고 있다, 하나님이 그대안에 임해계시기 때문에 살고 있고 그대들도 무의식적으로 사실은 하나님을 느끼고 살고 있다, 하나님의 빛과 열이 아니면 살 수 없다.' 이런 얘기죠. 두번째

[② 내가 “성령을 받아라!” 라고 하였으나, 사실 그대들의 ‘영’이 바로 ‘성령’이다. 그대들이 바로 ‘하나님들’이다! ]

성령을 따로 받을 수가 없다. 지금 이거 교회에 얘기해도 이상한 얘기죠, 돌로 치려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탈퇴감이죠. 제명 당하고, 이단 취급 당할 소리죠. 세번째

[③ 내가 “심판의 날 영생을 줄 것이다!” 라고 하였으나,]

지금 칭의의 문제를 좀 얘기 했구요, 성화하고도 연결되지만 영화 문제도 얘기해 볼까요? 영화 차원에서 '내가 영생을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대들 스스로가 성령의 힘으로 ‘지금 여기서’ 부활을 얻어야 한다!]

이게 도마복음 스토리예요. 도마복음의 핵심 이야기들 이예요. 이 이야기들을 이렇게 엮어놓고 보면 충격적인 얘기들이 되죠. 저는 이 세마디 말이 뭔지 모릅니다만 도마복음의 핵심 사상을 지금 세줄로 정리해 본거예요. 이것을 유대인이 당시 들었으면 돌로 칠 수 있는 얘기를 뽑아본 겁니다, 어떠세요? 충격적이죠?

'내가 죄를 사하노라 했는데 뻥이었지롱, 사할 죄가 원래 없지롱, 내가 성령 받아라 했는데 원래 네가, 그대들이 갖고 있지롱, 내가 영생줄 거라고 했는데 그대들이 해야 되지롱, 나는 방법만 가르쳐줄 거지롱'

이러면 어떻게 되죠? 충격이죠. '예수 아니다' 이렇게 나올 수 있죠. 그러든지 말든지요, 아무튼 시편에 나온 얘기입니다.

[“내가 말하길 ‘너희들은 하나님들이며, 지극히 존귀한 분의 아들들이다.” 라고 하였다.” (시편 82:6)]

여호와가 한 말이예요. 이런 얘기가 얘랑 관계있지 않으세요? 우리 수심결에 있는 내용,

[“어떤 스님이 귀종歸宗화상에게 묻기를 ‘무엇이 부처입니까?’ 라고 하였다. 귀종화상께서 답하시길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그대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제자가 황당하잖아요? 내가 지금 멀리 찾아와서 묻는데 '안믿을거라니요?'

[스님이 말하길 ‘화상의 가르침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자, 화상이 말씀하시길 ‘그대가 바로 부처다!’라고 하셨다.”]

    • (僧問歸宗和尙 如何是佛 宗云我今向汝道 恐汝不信 僧云和尙誡言 焉敢不信 師云卽汝是, 수심결修心訣)

에이, 하겠죠? '역시나 이상한 소리 하시는구나' 안믿어요. 지금 여러분도, 저를 보고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 자리, 영이 아닌데 어떻게 저를 봐요? 영이 아닌데 어떻게 이 몸뚱이를 운전하고 계시며 생각, 감정, 오감을 어떻게 쓰고 계시며, 어떻게 저를 보고 계시냐는 거예요? 영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을 떠올리세요? 이 모든게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신비로운 역사예요. 이게 알아져야 칭의 입니다. 이걸 모르는데 의로운 자녀가 어떻게 돼요? '이 모든게 하나님의 역사였구나' 하고 성령 안에 살면서 성령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봐야 돼요. '일체가 하나님의 신비구나' 여기까지가 칭의예요. 성화는 그래서 하나님이 자명하다고 하는 선은 꼭 하고, 하나님이 찜찜하다고 하는 악은 안하는 생활습관이 박혀서 인격이 거룩해졌을 때 그래서 마귀에게 아무리 패해도 끝내 다시 이겨놓을 수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을 때 '성화의 기본은 됐다.' 그럽니다. 이 성화의 극치는 완덕에서 끝나겠지만, 덕이 완성되려면 성화는 계속 됩니다. 칭의도 사실 계속되는 격이예요. 더 의로워지거든요, 더 거룩해지고, 더 영광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통 영화, 영광하면 협의로 말하면 뭐죠? 협소하게 말하면, 육체가 부활하는 것, 그것도 성령의 에너지가 그걸 다 할 수 있다는 거, 흙을 빚어서도 육체를 만드는데 하나님이 에너지를 빚어서 육체를 못만들겠어요?

이렇게 하면 그럴싸하죠? 이런 논리에 빠지면 그것도 답 없어요. 그런데 자꾸 남발하시면 안되고, 왜냐하면 빕니다. '로또, 로또, 로또' 그러면 누가 '하나님이 그것도 해주시냐?' 그러면 '하나님은 흙으로 몸도 만드셨어' 이런식이면, 그런데 하나님이 들으시면 '내가 로또 당첨을 빌라고 한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맘대로 자의적 판단이죠. 그런것은 유의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남발하면 안됩니다만

하지만 이 부분은 분명히 답이 있다고 보는거죠. 예수님도 증언하셨고, 사도 바울, 모든 사도들이 영적 육체는 따로있다. 왜? 육신에 온건, 이건 지구 소속이예요. 애초에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있는게 아니예요. 이해되시죠? 옛날 예언자들, 사도들의 기본 관념이 이 육신은 지구 소속입니다. 내려놓고 하늘나라에 갈때는 하늘에서 원래 온 성령과 그 성령 에너지로 만들어진 에너지체를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이게 기본 인식이예요.

이게 동서양 다르지 않아요. 동양의 신선들도 다 그 인식이었어요. 이 육체는, 매미로 이해했어요, 신선되는 걸 금선탈각 이라고 그래요. 금선이 매미입니다. 탈각은 허물 각자 거든요. 허물을 벗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길가다 보면 매미 허물 벗어진거 있죠? 그러면 본체는 어디갔죠? 날라갔죠. 옛날사람들 신선 되는걸, 우리 육체는 허물이예요. 지구에 살아야되는 허물 이예요. 이것 벗어놓고 천상계에 속한 에너지로 만든 몸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가는, 동양에서는 선계로 가죠. 선계로 가면 옥황상제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왔다고 축하파티 해주고 해요, 거기 써있어요. 도경에, 고참 신선들이 와서 축하해주고, 그런데

(포박자) 포박자 같은데 보면 지상에서 신선노릇하지 천상 안간다. 지상선들이 천상 안가려고 한다. 왜냐? 지상에서는 대빵인데 천상가면 시다바리 해야 된다고 안간다. 그말까지 써있어요. 되게 디테일하게 연구하고 있어요. 동양 신선사상은 들어가면 완전 디테일해요. 몸 만드는 법하고, 올라갔을때 일어날 여러 인간관계의 위상에 대한 고민까지 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묘사도 포박자에 보면 또렸해요. 지금 도마복음도 그렇게 보시라고 저는 얘기하고 싶은건데, 최고의 하나님이 인간이래요, 인간이 도를 많이 닦아서 올라가신 거지, 그 옥황상제 같은, 명칭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하나님인데, 원래부터 하나님 아니었다. 도 닦아서 그자리 가신거다. 그러니까 존경스러운 거예요. 만렙인거예요.

기독교는 예수님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아요. 저는 거기에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중에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본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게 맞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예수님은 분명히 진리의 화신은 맞는데, 인간이 진리를 온전히 구현하니까, 원래 쇠공이었는데, 진리, 불을 온전히 구현하니까 불의 화신이 된거는 맞는데, 사도들은 반대로 생각해요. 불,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했다라고 이해합니다. 이 같은 그림을 놓고, 하나님이 쇠공의 모습을 한게 예수님이다. 이렇게 보는 사도들의 시각과 예수님의 말씀에서 제가 보는 시각은 '나는 쇠공인데 불덩어리가 되서 진리의 화신이 됐다' 그러니까 타오를때는 '나는 불이다' 라고 외칠수도 있죠. 하지만 쇠공의 측면에서는 '나는 불 자체는 아니다, 불 자체랑 나는 겸상할 수 없다' 이 얘기를 또 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의 시각은 그랬다고 확신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신데 인간중에 최고의 성취를 하신 인간,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항상 스스로 밝히셨다 이렇게 봅니다. 자, 이렇게 대충 말씀 드렸고요.

뒤에 그림 먼저 보고 앞에 각주로 갈께요. 뒤에 그림 보시면 이제 이해되시죠? 자, 보세요, 이거, 별 그림 아닙니다. 지금 이 아버지 자리, 아버지의 불에, 성령의 불에 활활 타고있는게 예수님 입니다. 그렇죠? 그럼 이 분은 이미 불이잖아요, 지금 차가운 쇠공이 있어요. 차가운 쇠공이 만약에 딱 붙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가가서 딱 붙어 있으면, 탈까요? 안탈까요? 자! 뭐냐면 이 얘기예요. 아버지는 실제로 무형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게 거친 비유로 불이라고 했지만 실제 성령은 형체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 차가운 쇠공 눈에는 뭐만 보여요? 달궈진 쇠공만 보여요, 예수님만, 하나님은 안보인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무슨 역할을 해줘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역할을 해준다는 거예요. 차가운 쇠공인데 불이란 말이예요. 즉, 혈육의 자녀인데 성령의 자녀인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붙어 있으면 타오르겠죠? 예수님이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하는게 성령 불을 여기저기 불을 지핀단 말이예요. 그러면 이 친구도 불이 타겠죠? 그럼 이 친구도 알게됩니다. 이 불이 예수님 덕에 타올랐지만 결국 이 불은 어디서 온거예요? 예수님 이라는 쇠공에게서 온게 아니고 아버지에게서 온거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넌 나로 인해 타올랐지만 너나 나나 같은 샘물에 취한거다, 그거 먹고 취한 거다.' 이 말도 가능하죠, 사제 관계도 확실히 성립되지만 더 근원적인 스승도 얘기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지금 성자가 귀한게 이거예요.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자녀가 되는 것은 온전히 타오르는 겁니다. 양심과 성령의 불로 지금 타오르시는 거예요. 바로 성령과 접속해서 내 혼에서 바로 자명한 건 하고, 찜찜한 건 안하고 내 육 마저도 성령 에너지로 충만하게 해버리면 이 존재는 그냥 불덩어리가, 예수님 만큼은 아니어도 불로 타오르고 있는 존재예요. 여기는 영은 불씨를 얻은 거고, 혼은 내 마음을 태우고, 육은 육체까지 태워버려요, 그 성령의 불로, 실제로 태운다는 것이 아니고, 차가운 부분이 없게 달궈지게 만든다는 겁니다. 예수님 만큼 화력은 높지 않아도, 온도는 낮아도, 나름대로 달궈진 거잖아요. 그럼 이 양반이 천국 안 갈 도리가 있냐 이거죠, 그럼 왜 예수님, 성자가 귀하냐? 지금 성부, 성령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은 지금 불로 그려놓으니까 보이지만 눈에 안보이는 영이라 쇠공 눈에는 쇠공들만 보여요. 달궈진 쇠공이 없다면 이 존재는 불을 알기가 너무 어렵다. 즉, 성령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사람에게 배울수가 있다. 눈에 안보이니까 성령에게 바로 배운다는 것이 어렵다. 요한복음에 나오듯이 '아무도 아버지를 본자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 독생자만 봤다.' 라고 하듯이, 이 얘기는요, 아예 안봤겠어요? 다만 아버지를 정확히 이해한 양반이 없다는 거예요. 정확히 보고 아버지의 뜻을 구현할 수 있는 양반은 예수님 밖에 없다. 진정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아들이다. 다른 존재들이 아들, 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뜻입니다. '그럼 우리들도 아들, 딸 되겠다' 가 도마복음 이잖아요. 우리도 쌍둥이다. 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럼 예수님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 예수님이 예수님이 된 원인은 성령 때문이다. 성령 받으면 우리도 다 똑같이 될 수 있다.

베드로나 바오로의 답변은 예수님이 타오르는 불덩어리라는 것을 보고 소감을 얘기한 거고, 이 글에서 도마는 '나는 말로 못하겠습니다' 는 더 성령을 깊이 느꼈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니가 더 내 골수를 얻었구나 해서 더 얘기를 해주는 정도 보시면 됩니다. 어차피 도마가 주인공이니까 도마 위주로 쓰여졌다고 보고 다만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도마가 이때 제일 뛰어났구나' 이거 보다는 도마복음 이니까 도마 위주로 쓰여진 것은 감안하시고, 다만 '도마가 그런 영적 정보에 더 관심도 많고 예수님에게 따로 말을 들을 정도로 뭔가 소화력이 있었구나' 정도만 이라도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이 얘기를, 달마대사 선문염송을 읽어드릴게요. 너무 똑같아요. 1페이지 1번 각주 입니다. 이걸 다 읽고 이걸 읽는 이유가 있어요. 보세요.

[달마 대사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떠나야할 때가 가깝도다.]

왜 이렇게 비슷해요? 나 떠나야 겠다. 달마대사도 인도로 떠나야 돼요. '내가 온데로 가야겠다' 중국에 와서 교화하다가 인도로 가야겠다.

[그대들은 각기 얻은 것을 말해 보라.”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제자중에

[문인 도부道副가 말하길 “제가 보는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되 문자를 떠나지 않는 것이 도의 작용입니다"라고 하자,]

도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되지도 않지만 또 언어를 떠나지도 않습니다. 이 말도 맞잖아요? 다 틀린 말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고 하셨다.]

나름 얻은 거예요. 내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는 했구나, 다만 가죽을 얻었구나

[총지摠持 비구니가 말하길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의 불국토를 보는 것과 같아서,]

경전중에 그런 부분을 인용한 겁니다. 여러분 사정 잘 모르겠죠? 아난이 아촉불의 불국토가 우리 눈에 안보이는데 한번 본거예요. 그거랑 같아서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습니다(불국토도 본래 공함).”라고 하자,]

이 얘기는 불국토도 본래 공하더라 입니다. 그 찬란한 불국토도 다 참나의 작용이라 한번 봤으면 됐지 거기에 집착할 그런게 없더라. 일체 우주 현상이, 찬란한 불국토까지도 일체가 공하더라 참나 작용이더라 그 소리를 딱 얘기한 겁니다. '일체가 공하더라' 하니까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살을 얻었다.”라고 하셨다.]

이것도 웃기죠? 순서대로 점점 깊어져 가는 것도, 편집이 된거죠, 줄섰다가 하수부터 얘기한 것도 아닐텐데, 그런데 순서상 점점 어떻게 들어가요? 가죽에서 살로 갔습니다. 기대하게 되죠. 그다음은 뭐겠어요? 뼈죠,

[도육道育이 말하길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지수화풍, 사대가 공하고, 색수상행식의

[오온五縕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는 바로는 하나의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하자,]

'일체가 공합니다.' 하고 공을 세게 얘기했죠,

(몸의 4요소) 내 몸뚱이가, 사대가, 그냥 한 얘기가 아니라 내 몸뚱이 입니다. 지수화풍, 몸을 이루는 4가지 요소입니다. 지수화풍, 지, 풍, 화, 이렇게 써볼까요? 지? 이거는 응집성, 견고성, 견고한 것, 여러분 몸에 있는 견고한 성질, 응집성, 화, 이거는 열, 이거는 (수) 뭐 습윤, 습기, 어떤 열성 (화), 이거는 (풍) 유동성, 유동성은 원래 액체가 흐르는 건데요 그냥 바람이 흘러다니는 것을, 경전에 보면 운동성, 유동성 이렇게 번역하기 딱 맞게 불경에 얘기를 해서 저렇게 쓰는 겁니다. 액체가 흐르듯이 바람이 흘러다니는 거예요. 우리 몸안에 바람이 흘러다니는 거예요. 호흡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거, 이런게 풍이구요. 지는 견고성, 응집성 이 살덩어리, 수는 이 액체, 그리고 습기고, 열기는 화, 이 4가지가 모여서 몸을 이루고 그리고


오온, 오온에는 색수상행식중에 색빼고는 정신작용이죠. 그 색을 나누면 지수화풍 이예요. 그래서 지수화풍, 오온이면 심신작용 다 써놓은 거예요. 우리 몸뚱이이의 여러 구성요소와 마음의 구성요소는 뭐죠? 이거 다해서, 이거 다해서 색이예요. 몸뚱이, 그럼 몸의 4요소죠,

(마음의 4요소) 마음의 4요소는 뭐냐? 수, 감정이나 느낌, 상, 생각, 행, 의지작용, 하고 싶다 안하고 싶다, 식, 식별, 이 모든 것, 이것들을 알아차리는 작용, 내가 어떤 색이다,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생각을 했다. 이 모든걸 식별하는 작용, 식별,

(오온) 수상행식, 지수화풍 하면, 5온을 풀면 수상행식, 지수화풍 입니다. 몸의 4요소, 마음의 4작용,

몸의 4요소, 마음의 4작용이 다 뭐라구요? 공하다. 참나 작용이다. 이거예요. '일체가 참나로 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설명이 좀 더 리얼하게 갔죠.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뼈를 얻었다.”라고 하셨다.]

법공을 깨달은 거죠. 만법이 공하더라, 그런데 최고 고수는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여러분이 아는 달마대사 다음 대사가, 2조죠, 2조가 혜가죠.

[마지막으로 혜가慧可가 나와서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서 있으니,]

말을 안해요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셨다. (선문염송禪門拈頌)]

말하면 지는 겁니다. 말 안하고 딱, 깨어서 말을 안하면, 달마의 모든 마음을 다 이해하고, 어떻게 말로 표현하면 제약이 오니까 말을 못하고 있는, 마음을 다 전수받은 그런 이심전심의 상태에서 달마가 보니까 실제로 그러니까 인가를 해준 거죠.

이게 도마복음하고 되게 비슷하죠. 도마가 말을 못하잖아요. 예수님 마음을 느끼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성령의 화신이라는 걸 어떻게 표현을 못하고 있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그냥 '하나님 명령 받고 온사람 같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 같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철인이라고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 같아요, 모르시는게 없는 분 같아요'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명령대로 움직이는 분 같아요.' 도마는 뭘 느낀 거예요? 성령 그대로 사시는 분 같다는 얘기를 말로 못한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도와준거죠. '선생님 저는 말로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선생이라는 말도 붙이지마' 이거예요. '너나 나나 그 자리에서 같이 물 길러다 먹고 취한 거잖아' 이해되세요?

지금 눈빛들이 오묘하셔요, 아시겠죠? 모를 얘기가 아니라는 것만 해도 다행아닙니까? 이게 모를 얘기예요. 이게 이해가 됐다는 건, 엄청난 사건입니다. 여러분 축하드리구요, 자부하셔도 돼요. '나 이해한것 같아' 얼핏 보이시잖아요? 뭔말인지, 그게 중요한 겁니다. '뭔 말인지 알겠다' 심오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 혼자 곱씹으면서 더 깊어지실 거예요. 제가 소개만 해드린거고

10분 쉬었다가, 충분히 쉬었다가 14절로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