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1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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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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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그릇된 금식과 기도와 자선
강의일자 2020. 02. 15. 土.
게시일자 2020. 05. 02.
동영상 길이 31:31
강의 중 인용 도서 도마복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EMOdwmhRVvk


자,

《14절 그릇된 금식과 기도와 자선》

그 당시 바리새파들이 제일 잘하는게 이거거든요, 바리새파 당시 기득권층 입니다. 성직자들중에 아주 기득권, 부귀를 얻은 층들이, 그럼 혈육의 자녀는 어때요? 기득권층이 하는걸 따라가요, 누가 예수님이 하늘걸 따라해요, 기득권층이 하는걸 따라하려고 해요, 그 분들이 따라하려는 건 뭐죠? 금식, '나는 율법을 잘지킨다' 하는 그 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걸 또 보여줘야 인민이 따르니까 금식을 하고, 자선을 베풀고, 하나님 앞에서 멋지게 기도를 하는 이 세가지가 아주 핵이었단 말이예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만약 그대들이 ‘금식’ 한다면, 자신에게 죄를 불러 올 것이며,》

이거 그냥 읽으면 말이 너무 충격적이지 않으세요? 너희 금식하면 벌받을거야,

《만약 그대들이 ‘기도’를 한다면, 그대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며,》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을거야,

《만약 그대들이 ‘자선’을 베푼다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영’을 해치게 될 것이다.》

너무 센 얘기죠, 사실은 기존 복음에도 있는 얘기 입니다. 기존 복음에 마태복음 보면 나오죠, 이 얘기를 잘 풀어보죠. 먼저 '금식을 한다면 죄를 불러올거야' 예수님 어떤 관점에서 얘기를 하셨을까요?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는 ‘이기적 금식’은 정죄받을 것이고 자신의 영을 해칠 것이다!]

예수님은 핵심이 이겁니다, 이 그림을 꼭 그려놓고 보세요. 영, 성령 입니다, 혼육, 성령 받아서 성령이 혼을 리드해야 됩니다. 성령이 혼을 인도해야 됩니다. 이 육신을 끌고 다녀야 합니다. 이 육신도 성령의 인도로 움직여야죠.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때, 생각, 감정, 오감 이 혼의 작용, 다 이 성령이 인도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인도하지 않은 금식, 뭐냐? 그냥 바리새파들이 당시 최고의 성직자가 되고 천국에 가려면, 포인트는 이거죠. '천국에 가려면, 금식, 자선, 기도를 잘해야돼' 이게 상식인데 예수님이 충격적인 말을 하는 거예요. '쟤네들처럼 금식하면 너 벌받는다' 충격 오세요? 요즘식으로 말하면 이런거예요, '목사님처럼 기도하면 너 정죄받는다' 그러면 충격적이겠죠, '뭔 소리야?'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좀더 완화된 표현으로 이미 있었죠. 기존 복음에도 다 있는 말이예요. 마태복음 6장 16~18절에 보면

[“그대들이 ‘금식’(성령이 인도하는 금식) 할 때는,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이 소리 입니다.

[그대들이 금식 할 때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금식하는 티 내지마,' 이겁니다. '꼴보기 싫으니까,' 남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금식, 진짜 꼴보기 싫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되게 싫어하세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돼요? '금식 안하는 사람처럼 화장이라도 하고다녀' 이거예요. '머리에 기름 바르고, 얼굴 좀 씻고' 그런데 그 당시에 어땠단 얘기예요? 금식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더 꾀죄죄해 보여야 되는 거예요. '정말 힘든 일 하시네' 이렇게 보여야 되잖아요. '저걸 참고 버티시다니 천국 가시겠네요' 이 말을 들으려고 하는 거라, 더 꾀죄죄하고 머리도 일부러 안감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얼굴 씻고 머리에 기름 발라' 이겁니다.

[그리하여 그대들이 금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오직 그대들의 아버지에게만 보여라!]

이겁니다. 그럼 아버지에게만 보이면

[은밀한 것도 보시는 그대들의 아버지께서 그대들에게 보상해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16~18)]

'왜? 사람들에게 잘난체를 해? 사람들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진짜 금식아냐, 성령에서 인도된 금식 아냐' 이 소리입니다. 그래서 금식도 성령이 인도하는 금식을 할때는 '위선자들 처럼 침통한 얼굴 하지 마라'

[그들은 그들이 금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런 어두운 얼굴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그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이제 이 소리입니다. 자, 다음이요, '만약 그대들이 ‘기도’를 한다면, 그대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며,' 이것도 여러분 기도가 그냥 막 한다고 기도가 아니예요.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여야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상태에서 하는 기도라야 그게 하나님과 일단 하나가 될 수 있고, 하나님도 내 속사정을 다 알아주고, 말도 많이 필요없다구요, 영으로 하는 기도니까, 영으로 하는 기도가 진짜 기도죠. 영으로 하는 기도가 뭐죠? 혼은 입을 다물어야 돼요. 온전히 영에 집중해 주면 됩니다. 에고가 입을 다물고 온전히 영에게 바치는 기도, 영에게 집중하는 기도, 그럼 영은 원래 무슨 영이냐? 이 안을 분석해 보면, 영은 십자가의 진리를 꿰뚫고 있는 영입니다. 사랑, 정의, 겸손, 지혜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직관하고 있는 영이기 때문에 성령을 뭐라고 해요? 진리, 말씀을 품고 있는 영이니까 진리의 영 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그냥 혼은 입 다물고 혼에게 무슨 진리가 있어요?, 혼은 입 다물고 영에게 집중해줄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게 돼요. 그러니까 이게 진짜 기도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이기적 기도 하지 마라,' 네 욕심에서 나오는 얘기를 아무리 떠든들 그건 자기 욕심의 우주적 선언이죠? '난 이걸 얻어야 겠습니다. 이거 안해주시면 아버지도 아닙니다.' 이 얘기를 계속 떠드는 거예요. 그러다 혹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건 땡깡으로 받은거지 아버지 뜻대로가 아니예요, 내 뜻대로지, '내 뜻대로 아버지는 내 명령을 들을 지어다' 이런, 준우가 그러면 제가 가만두겠습니까? '아버지는 내 명령을 들을 지어다' 그게 땡깡을 부리는 거죠. '안사주면 나는 더 울겠다' 그래서 사주더라도 아버지 뜻이 아니죠. 진짜 입 다물게 하려고 사주는, 교회에서 이걸 가르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하나님 자녀되는 법을 가르쳐야 되는데 땡깡부리는 법을 가르쳐요. 통성기도, '막 발을 굴러라' 제가 그런 얘기까지 들었어요. '그렇게해서 아버지가 들어주겠냐? 더 굴러라' 그럼 딱 마트에 드러누운 우리 준우죠, 발을 구르면서 막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 창피해서 사주죠. 도저히 부끄러워서 내가 어떻게 통제가 안되면 사주는 거죠. 이런식으로 아버지에게 따내겠다, 이 노하우를 전수하는 곳이 교회가 되면 큰일나는 겁니다. 교회는 내 뜻 말고 아버지 뜻 따르는 곳이예요,

(묵상, 관상) 그래서 먼저 혼이 내 욕심 내려놓고 아버지에게 집중해 줘야 돼요. 온전한 집중, 엄밀히 말하면 이 혼이 집중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묵상이라고 하고, 영하고 하나가 된 것을 관상이라고 합니다. 묵상은 어떤 일념 상태예요. 마음을 '예수님, 아버지' 하면서 하나로 모으고 있는 상태고, 관상에 들어가면 이제 무념의 상태입니다. 이렇게도 나눌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일념의 극치라고 할 수 있죠.

어떤 상태냐? 이제는 힘이 딱 빠지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가 된 상태, 아버지를 관조만 하고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그냥 아버지를 다이렉트로 보고있는 상태인데 사실은 내가 있고, 아버지 따로 있고가 아니라 아버지랑 하나가 된 상태예요. 하나가 되서 쭉 흐릅니다. I AM 로,

보세요! 내가 현존한다는 느낌 밖에 없어요. 그러면 이게 아버지의 이름이죠, 성령, 성령이기도 하고 나의 영 이기도한 그 상태에 들어가는 거예요. 혼이 열심히 몰입을 해서 탁 영으로 초월해 버리면 힘이 쭉 빠져버려요. 왜 무념이라고 하느냐? 이때는 노력을 안해도 돼요.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흘러요, 하나님과 함께 현존하면서 흘러요.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이때는 노력이 있고, 이때는 노력이 없습니다. 노력이 필요없고 그냥, 그래서 묵상은 하는 거고, 관상은 되는 거예요, 쭉~ 되는 상태예요. 이때는 하나님과 하나가 됐으니까, 하나님과 하나가 되서 독대하는 상태예요, 이게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입니다. 이 안에서, 자, 보세요, 내가 영이 됐으니, 하나님과 하나가 됐으니 하나님이 아는 걸 나도 압니다. 성령의 지혜가 나한테도 그대로 드러나요,

(영적식별) 이 기도가 끝나고, 이 관상 기도가 끝나고 나왔을때 이 영에서 혼으로 많은 계시가 와 있어요. 영감이라고도 하죠. 계시가 와 있어요. 뭐로 와있냐? 자명, 찜찜의 느낌으로 와 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보다 더 자명하게 느끼는게 생기고, 더 찜찜하다고 느끼는게 생겨요. 무슨 기준으로? 영으로 기준으로, 혼의 기준으로가 아니라 혈육의 자녀로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서의 기준을 가지고 사리판단을 하게 되는 거예요. 사리판단을 해서 선이다, 악이다, 자명하다, 찜찜하다 하는 이걸, 자찜 구분을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이 자명, 찜찜의 느낌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자명, 찜찜에 대해서 분석까지 하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이것을 영적식별 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식별을 하는 것, 영적식별을 해요, 계시받은 그 자명, 찜찜의 느낌을 가지고 내가 처한 일에 대해서 선과 악을 따져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영적식별 능력이 저런 식으로 개발됩니다.

자명, 찜찜 이거는 직관이죠. 계시와 자명, 찜찜의 느낌까지는 직관입니다. 아직 생각이 동원안돼요. 분석은 생각입니다.

직관과 분석이 합쳐지면서, 결합되면서 뭐가 만들어지냐? 영적식별 능력이 생깁니다.

이거 없으면 꽝이예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거 없으면, 히브리서 보시면 영적식별 능력이 없는 단계는 유치한 신앙의 단계라고 나와요. 젓먹이 단계, 단단한 걸 씹을 수 없는, 엄마 젓밖에 못먹는 그래서 그냥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믿어야만 하는 단계에서 스스로 영적식별 능력이 생겼을때 성숙한 신앙으로 변한다고 하고 사도바울도 똑같이 얘기합니다. 스스로 저런 식별능력이 생겼을때 신령한 사람이 된다고 그래요, 신령한 사람, 왜? 이제 성령의 지혜를 끌어다 쓰는 사람이 된거예요, 이게 성령의 지혜입니다. 영으로부터 계시받아서 쓰는게, 이걸 삶에서 얼마나 쓰느냐가 이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느냐? 저급한, 유치한 신앙인이 되느냐? 유치부가 돼요. 유치부 신앙을 계속하면 유치원 선생님 말만 믿는 수준의 단계입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만 유치하게 믿고 조금만 다르면 이단이네, 뭐네, 삼단이네 서로 싸웁니다. 서로 '니가 이단이다, 니가 이단이다' 남들이 보면 다 이단같죠. 싸우고 있는 모든 애들이, 그 유치한 상태에 빠져드는 이유가 성숙한 신앙을 안했기 때문에 성령의 안목으로 판단할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목사라고 하면 막연히 믿는 거예요. 절도 똑같습니다. 자기가 견성을 못하면 스님이 하는 말은 다 진리인줄 알고 다 믿어요. 스님이 주로 뭐하자고 그래요? 천도제, 불공, 뭔가 요구해요, 다해요, 왜? '그렇게 하면 너에게 복이된다' 라고 세뇌를 이미 시켜놨거든요. 절에 하는 모든 투자행위는 모두 복덕으로 이어진다. 길가다가 머리깍고 회색복 입었으면, 거기다 돈을 주면, 복전이다, 복 밭이라 내가 복을 수확한다. 이렇게 다 세뇌시켜 놨습니다 종교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이런 논리 입니다. 그냥 다 세뇌시켜놔서, 자본주의 무섭다고 하는데 자본가 세뇌시켜서 돈 착취하는 사람이 종교인들 이예요. 그 사람들은 이빨 잘까면 투자도 안하고 돈을 땡깁니다. 무섭죠? 자본가 피 빨아 먹는 사람이, 자본가들도 경계하셔야 돼요. 자본가 피 빨아 먹는게 뭐냐? 사람 세뇌 잘 시켜서 이빨 잘까는 놈들이라구요. 현실에서 없는 걸, 자본가들이 돈을 가졌잖아요. 못가진게 뭐예요? 천상세계요, 사후세계요, 내세요, 두렵잖아요. 이걸로 해서 팔아먹는 사업가들이죠. 이런 분들이 태반 입니다. 진짜는 진짜 귀하고, 대부분은, 왜? 고등침팬지 마음에 그게 와 닿거든요. 그러니까 교회 크기가 얼마나 크냐로 영성을 구별해요. 여기 영발이 있구나, 없구나를 돈 얼마나 모였느냐로, 그런데 그게 실제로 되게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게 불편할 정도로 자연스로운 삶의 문화예요, '그걸 왜 지적해' 하는 '다 이렇게 사는거지' 그정도로 우리 중생심, 탐진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혈육의 자녀에게는 익숙하다는

예수님때도 그게 익숙했던 거예요. 바리새파가 그러는게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는 시대에 예수님이 혼자 이의제기를 한거예요. 바리새파를 까도 웬만한 말로 해서는 충격을 안받으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말을 세게한 이유가, 그렇게 세게해야 사람들이 '왜 저렇게까지 하나'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왜 저렇게까지 까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 같은데, 원래 구약에 나온 율법대로 하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까지 시비를 거나' 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것 같으니까 요즘말로 되게 어그로 끄신거죠. 같은 말도 되게 세게하세요. 그래야 뭔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까해서, 했다고 밖에 저는 볼수없습니다. 왜냐? 그렇게 세게할 필요가 없는 말인데도 세게 하시는게 많아요. 특히 바리새파를 향해서, 그거는 사람들이 막연히 바리새파 처럼 해야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깨고 싶었던 거 거든요. 그런데 지금 안그럴까요? 지금 똑같아요. 막연히 절에가면 부처가 될거야, 교회가면 천국 갈거야, 이게 진짜 막연한 메타인지의 오류죠. 마치 그럴 것 같이 느껴지는, 이걸 깨야되니까, 고정관념을 깨야되니까, 센 얘기도 저도 해봅니다만 예수님처럼 세게는 못하겠더라구요. 독사의 자식들아 이럴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경각심을 드릴려고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마음이 이해가 돼요, 그 당시에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가, '나는 분쟁을 주러왔다' 이런 말까지 하신 이유가 뭔지? '이대로 두면 다 죽는다, 난리를 내가 쳐야겠다' 이거예요, '내가 잡혀서 죽더라도 내가 난리를 좀 쳐야겠다. 그래야 인류가 조금이라도 깨어날거다' 사실은 이런 보살의 마음이죠. 사도의 마음으로 하신 것 같다. 이런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시면서 이 구절들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도를 하더라도 그런 영적인 기도를 해야되는데, 성령 안에서 기도를 해야되는데, 자! 지금도 어떤 기도를 해요? 지금 교회가면 일어나는 일이예요, 낯선게 아니예요. 남 앞에서 멋진 기도를 해요, '저 목사님 기도 잘하신다' 그러거든요. 말이 청산유수인데, 감동도 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원래 기도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건데 왜 내가 감동을 받을까하는, 이상하지 않으세요? 저 말로 하나님이 감동받을까? 듣고 있는 사람들이 감동받을까? 와 할까? 이거 조금만 생각해 보시면 이상한거 나와요. 대게 목사님들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아버지, 이런건 이런 겁니다, 아버지, 이런건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저에게 이런 걸 해주세요' 이런, 뭐냐면? 저게 듣는 사람이 누굴까? 하는거죠. 아버지에게 할때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 하세요. 아버지 내가 청하기 전에 들어주실 줄 압니다. 그런데 내가 얘기하는 건 남들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때 들으라고 하는 건 뭐예요? '아, 예수님이 기도 잘하네' 가 아니라, '예수님이 기도하니까 진짜 이루어지네' 기도의 성취, 하나님이 실존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싶어서 남에게 말하는 경우는 있어도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식 기도를 안한다구요.

자기가 다짐을 하던가, 자기 에고를, 자기 혼을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 혼에게 선포를 하던가, 남 들으라고 하는게 아니라 내 혼에게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너 들어라, 이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 자기 혼에게, 주기도문 보면 자기 혼에게 하는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할테니, 또 아버지에게도 같이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할테니 아버지, 지혜와 사랑과 능력으로 저를 잘 인도해 주세요. 제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런 각오와 다짐, 하나님께 그런 능력을 청함, 이런거 거든요. 그게 남이 들으면 신경쓰이잖아요. 예수님 말씀은 골방가서 기도하라는 거예요. 진솔하게 네가 들으라는 거예요. 네가 얘기하고 네가 듣고, 또 듣는 분은 하나님 이니까, 아버지 앞에서 진솔하라. 양심에 솔직하고, 자기 에고에게도 솔직한 하나님한테도 솔직한 기도를 해라. 이런 기도는 뭔가 마음의 울림이 있겠죠. 그런데 지금 보시면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는 ‘이기적 기도’는 정죄받을 것이고 자신의 영을 해칠 것이다!]

[“또한 그대들은 ‘기도’(성령과 하나 되는 기도)를 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마라!]

여기 마태복음 6장 5절에서 8절 입니다. 많이 아시겠지만 한번 읽어 볼께요.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회당이면 지금 교회 건물 이예요. 유대교는 회당이라고 하죠. '회당이나'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유대인들 보면 거리에 서서 막 기도하고 있잖아요. 회당가서도 기도하고, 거기서 더 리드미컬하게 기도하면 '저 사람 기도 잘한다' 이럴수도 있죠, 그런데 '회당이나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데'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그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와~ 기도 좀 하는데' 이게 보상이예요. 남들에게 인정 받았지 않냐? 이거죠. 그런데 진짜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라면

[그러니 그대들은 기도할 때, 그대의 방으로 가서,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그대들의 아버지께 기도하라! (영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한 것도 보시는 그대들의 아버지께서 그대들에게 보상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마라.]

아버지가 귀머거리냐? 왜 한 소리 또하고 또하고 그러느냐, 가식적인 말하지 말라는 거죠,

[그들은 말이 많아야 아버지께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처럼 기도하지 마라. 그대들의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을 그대들이 그분께 요청하기 전에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5~8)]

그러니까 실제로 여러분 진짜 기도는 말 안하는게 더 상급 기도고, 말 안하고 뭐해요? 말 안하고 영과 합일 하는 것이 최고 기도입니다. I AM 상태를 유지하는게 최고 기도예요. 이게 관상상태, 처음에 바로 집중하는데 애로가 있다면 '아버지',

(향심기도) 제가 몰라를 말씀드리는 거는요, 몰라는 유명한 기도 입니다. 이게 책으로 있어요. 무지의 구름, 무지의 구름에 들어가면 바로 하나님 만난다가, 중세 수도사가 쓴 최고의 묵상, 관상법 책입니다. 무지의 구름을 한번 사보세요. 무지의 구름에 들어가 버리면, 모세가 구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 역사적 이야기를 가지고 쓴거예요. 무지라는 구름에 들어가면 바로 하나님 만난다. 그러면 무지는 뭡니까? '니 몸뚱이, 시간, 장소를 다 몰라 해버리는 거다.' 제가 몰라 하는 거예요. 몰라 해버리면 무지의 기도라고 그래요. 이 무지의 구름에 나온 기도가 '무지의 기도' 가 있고, 무지의 기도 얘기하면서 좀더 소개한게 이왕 말을 하려면 단어 하나 정도만 얘기해라, 아버지, 사랑, 하나님 이것까지 이 책에서 방편으로 소개해 줍니다. 이 책에서 나온 방법으로 기도하는 것을 처음에 구름의 기도라고 불렀어요. 그 다음에 이름을 바꿨어요. 향심기도라구, 무지의 구름이 향심기도의 바이블입니다. 이 책대로 하는 것이 향심기도예요. 향심이 센터, 마음 심자가 아니구요. 센터, 하나님으로 곧장 향하는 기도, 여러분의 어떤 실존도, 아까 육도윤회 얘기했죠. 육도윤회중에 어디 계시건 곧장 센터로 향하는 거예요. 아버지 하고 바로 중심으로 들어가 버려라. 그런데 거기서 말하는 최고의 기도는 몰라입니다. 몰라 해버리던가, 궂이 말을 하려면 아버지, 하나님 하시면, 예수님 하시면, 이제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도 동원해서 써야죠. 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궂이 기도를 해야겠다면 이렇게 해라 하고 소개해준게 이겁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 거룩하십니다.]

여기서 사실 기도가 끝난다니까요. '아버지' 할때 여러분 실제 기도문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는데 실제로 하늘 어딘가 계신, 이렇게 하면 안돼요. 하늘이라는 것은 차원의 차이입니다. 지금 이 현상계에 계시면서 몰라하시면 바뇨 아버지를 만납니다. 왜? 이 차원의 이면에 아버지가 계세요. 눈에 보이는 차원 너머에 뿌리로써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지금 생각, 감정, 오감의 혼의 마음 작용 이면에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이 몰라하고 내면에만 집중해 버리면, 몰라하고 I AM에만 집중하고 생각, 감정, 오감을 무시해 버리는 순간 이미 차원이 상승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 버립니다. 여기서 하늘은 저 어딘가 하늘이 아니예요. 고차원을 말해요. 우리가 사는 현상계 이면의 절대계를 말합니다. 절대계의 하늘에 계신거예요. 그래서 바로 접속이 되버립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 여기서 끝나야 돼요. '아~' 하면 더 할말이 안나와야 돼요. 진짜로 기도하면, 진짜로 통해버리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할때 통해버립니다. 그럼 그 뒷말을 잊어버릴 정도되야 제대로 영의 기도고, 또 통했더라도 말이 나오면 계속 하는 거예요. '그 이름 거룩하십니다'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시고,]

당신의 왕국이 사실 이미 임했어요. 지금 내 영혼에, 이 혼에는 임했죠, 이 영이, 왕국이 임하게 하시라는 것은 내 혼과 육에서도 온전히 구현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혼과 육에서도 다 구현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거죠. '왕국이 임하게 하시고'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 영의 세계에서

[이루어졌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일단 내 몸과 혼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래서 구체적인 얘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건 이 육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육에도 임하셔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영적 에너지를 달라는 겁니다. 이게 단순히 밥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성령의 에너지를 내 육신에 주시고 사실은 마음도 다 해당되지만 내 몸뚱이 굴릴 힘 달라는 거 거든요. 육신으로 잡고 볼께요, '일용할 양식을 육신에 주시고' 우리 혼의 세계에서는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하겠습니다. 이런거죠, 내 혼을 그렇게 쓸테니 아버지도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용서는 감정차원 이구요, 생각차원에서는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않는 그런 영적식별 능력을 달라는 겁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생각, 감정, 오감 차원에서 지금 천국이 구현되는 모습을 예수님이 얘기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아버지 뜻대로 다 이루세요' 하는 말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거기서 이미 구현이 되어야 돼요. 그래도 또 말로 해야겠다면 말로 해보는 거예요. 내 육신의 에너지, 영적인 맛나로 에너지 충만하게 해주시고, 내 감정이 남을 용서하게 해주시고, 나도 노력하겠습니다. 도와주시고, 또 내 생각이 항상 선악을 분별해서 유혹에 빠지지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총체적으로 아버지 뜻이 내 영혼육에서 구현되면 뭐예요?

[오직 ‘악’에서 구원해 주소서.” (마태복음 6:9~13)]

이 기도안에 지상천국 구현법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마디로 뭐라구요? '아버지' 할때 다 이루어져야 된다구요. 아버지랑 바로 통하면서 촥 펼쳐질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아버지 뜻이 알아져서 혼이 남을 용서하고, 지혜로워지고, 몸은 성령의 에너지로 충만해지고, 영적인 생명수가, 생수가 샘솟고, 이렇게 변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이 이루어 지는거고 방금 제가 얘기한 차가운 쇠공이었던 내가 성령의 불이 들어와서 땃땃해 진거죠. 다 불타오르지는 못하더라도 타오르고, 겉이라도 따뜻해질 정도로 열기가 돌아야죠. 차가운 부분이 없어질 정도로 쫙 돌면 좋지 않습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쉴게요.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는 ‘이기적 자선’은 정죄받을 것이고 자신의 영을 해칠 것이다!]

이 말 되게 무섭습니다. 자! 보세요, 이 혼이 거짓된 금식, 거짓된 기도, 거짓된 자선을 베푼다면 성령이 시키는게 아닌데 욕심으로 이런 짓을 한다면 자, 바리새파들은 욕심으로라도 하라고 합니다. '자꾸 해버릇해야 습관도 붙고, 요령도 붙고 하나님이 욕심으로 하더라도 좋아한다' 바리새파는 이거예요. 예수님 입장은 뭐예요? '욕심으로 하는 것은 천국가는데 도움 안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보상을 받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는 보상이 없을 거다, 왜냐? 오히려 영을 해친다. 혼이 자꾸 이런 위선에 빠져들면 성령과 더 멀어진다. 성령과 더 멀어질뿐더러, 이런걸 못하는 사람들은 '아, 나는 아버지에게 이런 것도 못하네, 죄인 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영과 가까워져요. 자기를 성찰하고 반성하니까 '나는 이런걸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천국갈 사람이야' 하는 순간, 아버지랑 사실 더 멀어져요. 이제 거만하기까지 한거예요. 영적 교만을 갖게 돼요. '난 이런걸 했기 때문에 나는 위대한 사람이야' 라는 교만, 이러면 더 멀어집니다. 반성하는 사람보다 교만한 사람이 아버지로부터 더 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축복을 한거예요. '내세울것 없는 사람들, 그대들이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얘기도 생각해 보시고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는 ‘이기적 자선’은 정죄받을 것이다.' 자, 한번 보실래요.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4절까지 뭐라고 하셨는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정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대들이 그렇게 한다면,]

율법 지키고 하는 것을 남에게 보일려고 하지마라,

[그대들은 하늘에 계신 그대들의 아버지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자선’(성령이 인도하는 자선)을 풀 때에는,]

성령이 인도하는 자선입니다. 그런 것을 베풀때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막 자랑하고 다니지말고,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그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요즘 같으면 페북, 인스타에 올려서 좋아요 많이 받았으면 보상 받은거라 이거예요. 그거는 하나님에게까지 바라지 마라, 원하는 것을 얻었지 않냐?

[그대들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것은 뭐냐? '인간적 마음으로 하지말고, 할때는 성령의 마음으로 해라, 나와 남을 둘로보지 않는 사랑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 뜻에 부합한 것, 자명한 것만 하고 찜찜한 것은 하지 않는 지혜의 마음으로 공정하게 베풀어라' 이거죠. '그렇게 베풀고 또 잊어버려라' 이겁니다 '이것도 다 하나님이 하신거다' 하고 잊어버리라는 거예요. '나는, 내 손은 거둘뿐 하나님이 하신거다' 하고 잊어버려라. 이 소리죠.

[그렇게 하여 그대들의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은밀한 것도 보시는 그대들의 아버지께서 그대들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1~4)]

이 말과 함께요, 중요한 말에 이런게 있어요. 여러분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에게 예수님이 이랬죠. '그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녹슬거나 도적이 훔쳐간다. 이것들로부터 막는 법은 하늘에 감추는 거다' 그게 뭐냐면 자선을 베풀라는 거예요. 자선을 베풀어 버리면 공덕 포인트가 하늘에 쌓여요. '이건 누구도 못 훔쳐간다.' 재물을 내가 쥐고 있으면 누가 훔쳐갈 수 있지만, 이것을 가지고 내가 자선을 베풀어 버리면 그 공덕은 아무도 못훔쳐간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라, 포인트로 바꿔서 하늘에 차곡차곡 포인트로 적립하라는 거에요. 바로 현금화는 안되지만 포인트로 적립해 놓으면, 그게 쌓이면 마일리지 효과가 나겠죠. 나중에 살다가 중요한 순간에 그게 현금화 되는 겁니다. 복으로, 복으로 나한테 올거다 이거죠. 그리고 마일리지가 많이 남아있어야 기도했을때 먹히지 거기 포인트가 없으면 기도해도 안이루어진다. 왜? 공덕이 없으니까, 기도해도 뭐가 이루어지려면 공덕이 있어야 이루어지죠, 이런식으로 말씀해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욕심관리도 못한거다 라고 얘기하신것도 있어요. 오히려 마이너스다, 일시적인 이익만 얻고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오히려 손해되는 짓을 하고 있다. 눈이 멀어서, 유혹에 눈이 멀어서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 정의를 구현했을때 오히려 장기적으로 큰 복덕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남들이 하니까, 이기적인 마음으로 금식, 기도, 자선 하는 사람들에게 세게 얘기하신 겁니다. '그대들 영을 해치게 된다' 는 정도까지 충격적인 얘기를 하셨다.

여기까지 보고, 또 10분 쉬었다가 나머지 부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