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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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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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자신을 속이지 말라!
강의일자 2020. 01. 11. 土.
게시일자 2020. 02. 27.
동영상 길이 23:37
강의 중 인용 도서 도마복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RQ_bX7O_7tQ


6절 가죠,

《자신을 속이지 말라》

거기 또 7번 각주가 있죠. 여기도 있다는 얘기죠. 기존 복음에 있다는 얘기죠. 자신을 속이지 말라. 본문 읽어 볼까요?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에게 묻고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십니까?》

금식은 굶거나 제한된 음식만 먹는거죠. 먼가 좀 깨끗한 음식만 먹겠다. 이런거죠.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저희가 기도도 해야되죠?' 이게 바리새파들이 하는 겁니다. 기도 라는 건 혼자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지금 목사님이 하는 기도 있죠? 여러분 기도는 혼자 잘하시죠. '여러분 여기 나와서 기도 좀 주관하시렵니까?' 그러면 '준비 안해왔는데요' 이러실 수 있죠. 남들 앞에서 '아버지, 여기 누구도 와있고, 누구도...' 어쩌구 저쩌구, 좍~ 그런거 잘하시잖아요.

이번에 애를 낳았는데, 병원 원장님이 저보고 '기도 하시겠어요?' '기도 하죠' 그랬더니, 해보래요. '우리 나은이가, 우리 애기가' '그건 못하죠' 그러니까 원장님이 하시더라구요. '잘돼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더라구요. 다 좋은 말씀인데

이게 남 앞에서 하는 기도예요. 이게 그런 기도를 말하는 거예요. 남 앞에서 기도를 멋지게 하는 거, 듣고 있는 사람도 감탄하는 '와, 저건 아버지가 감동하시겠는데' 이렇게, 지가 감동하면서,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을 감동시키는게 아니라 남들을 감동시키는 기도예요. 그래서 남 앞에서 바리새파처럼 기도하고, 바리새파처럼 날짜 정해놓고 금식하고, 또 바리새파처럼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까? 어떤 ‘식단’을 따라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이렇게 물어보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요. '뻥치지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거짓말하지 마라! 그대들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마라.》

지금 그걸 해야되겠다는 성령에서 오는 이런 계시죠. 성령에서 오는 계시, 성령에서 오는 직관도 없으면서 그냥 바리새인이 하니까 우리도 뭔가 '멋있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뻥치지마, 싫은 건 하지마' 이렇게 세게 얘기 하셨어요.

《모든 것이 하늘의 왕국 앞에서는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게 니 꼼수로 하는 것은 다 드러난다.' '꼼수 부리지마' 이 소리예요. '꼼수 부리지마' '성령이 시키는대로만 해' 성령이 하라고 하면 하는거지, 그걸 나한테 묻고 있는 그 마음은 성령의 소리가 아니라 꼼수예요. '우리도 그렇게 좀 해야 거룩해 보이지 않을까요? 천국가지 않을까요?' 성령 받으라고 했는데 이런거 질문하니까 '모든 것이 하늘의 왕국 천국에서는 다 밝혀진다,

《결국에는 모든 숨겨진 것은 밝혀질 것이며, 모든 감춰진 것은 드러날 것이다.”라고 하셨다.》

앞에 얘기랑 되게 비슷한 것 같지만 여기서는 다른 얘기 입니다. 여기서는 네가 겉으로 아무리 그럴싸하게 행동해도 속에서 탐진치가, 탐욕과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분노가, 질투가 요동했다면 그거 하나님 다 안다.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셨다. 다 안다' 이런 얘기 유명하죠. 자! 그거 누가복음에 있는 구절로 볼까요? 유사구절, 누가복음 12장 2절에서 3절 내용인데요.

[숨겨둔 것은 드러날 것이며, 감춰진 것은 알려질 것이다.]

이거 예수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신 거예요.

[그대들이 어두운 곳에서 말한 것들은 밝은 곳에서 들릴 것이며, 그대들이 안방에서 귀에다 속삭인 말들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누가복음 12:2~3)]

그러니까 뻘 생각 하지말라, 속으로 나쁜 생각해도 반드시 다 드러난다.

내가 양심이 아니라 욕심으로 좋은 일을 했어요. 욕심을 가지고 남보다 볻보이려고 자선도 했고, 멋지게 남들이 하기 힘들다는 단식도 해보고, 금식도 해보고, 고행도 해봤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내 속을 다 알고 계시죠? 그거는 다 들통난다. 욕심으로 한 일은 다 들통난다.

속은 모를 것 같지만, 남들도 다 알아요. 욕심으로 했는지, 양심으로 했는지? 사실 남들도 알아요. 표정으로 다 들어납니다. 여러분 가식적인 사람 만나면 느낌이 그냥 오지 않으세요? 진심이 하나도 없고 다 가식같은 사람, 남들도 알아요. 표정으로, 눈으로, 눈빛으로 다 드러나요.

그런데 하나님을 속여요? 하나님은 그냥 알지, 속에서 그냥 알아요. 내가 사심을 부리면 성령이 내 정신의 본체인데, 영인데 혼이 사심을 부리면 다 들키죠. 남들에게는 육신을 통해 표현되기 전이라도, 보세요, 육신을 통해 내가 하나도 표현을 안해도, 속으로만 했어도 성령은 바로 압니다. 왜? 성령 에너지가 어디 있어요? 이상한 생각하는데 쓰이고 있잖아요. 어떻게 몰라요? 누굴 속여요? 그러니까 속일 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게 유교의 경전 말씀하고 너무 똑같아서, 제가 인용해놨을 거예요. 각주 8번 가보시죠.

[속으로는 진심으로 원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하는 선행은 정죄될 것이다!]

꼼수 부린거 다 나중에 마이너스 차감, 마이너스 입니다. 천국갈때 다 마이너스 짓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숨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알고, 자신의 양심이 알며, 남에게도 티가 나는 이런 짓을 어떻게 감출 것인가?]

예수님 말씀 들어볼께요. 마태복음 5장 37절

[“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惡’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복음 5:37)]

'꼼수 부리지 마라' 예요. '예' 할거 '예'하고 '아니오' 할거 '아니오' 해야지 나에게 유리하다고 '예' 해야 되는데 '아니오' 하고, '아니오' 해야 되는데 나에게 유리하다고 '예' 하고, 요즘 사회에서 소시오패스들 하는 짓이고 욕심꾼들 하는 짓이죠. 그거 다 악에서 나온 소리다. 그건 악이다. 악에서 나오는 소리 해대고 있는데 어떻게 천국을 가요?

대학에 나온 말 볼께요. 유교 경전 대학중에

[“이른바 그 생각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악惡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미워하고,]

여러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악취나면 '억' 이러죠. 진심으로 '어우, 이거 아닌데' 어쩔 수가 없죠. 아무리 좋아하는 새끼인데 딱 아났는데 입벌리니까 입에서 확~ 난다, 이때는 가식이 없어요. 악취는 진심으로 피합니다. 마찬가지로

[(선善을 좋아하기를) 어여쁜 여자를]

이거 제가 한 얘기 아니예요. '어여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

자꾸 저를 '왜 그렇게 이쁜 여자만 밝히십니까?' 그러는데 제가 한 얘기가 아닙니다. 번역한 거예요. 호색을 번역했어요. 이쁜 색을 좋아한다는게 여성의 안색을 색이라고 합니다. 예전 한자에서, 한자 만든 남자들이 뭐가 제일 좋은 색인가 했더니 여자 안색이 제일 좋더라는 거예요. 저걸 보면, 경국지색이라고 하잖아요. 나라도 휘청한, 이 색이 나라도 휘청하더라는 거예요. 보통 색이 아니라. 그냥 색을 봐서는 이'색이군, 이색이군' 그런데 탁 봤다가는 멘탈이 흔들리는 색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호색 그러면 거기서 거짓이 없죠. 진심으로 빠져드는 그 색을 말해요.

그래서 진심으로 이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렇게 선이 좋아야 진짜다. 이건 기본값이 바뀐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육체의 기본값에서 작동하는 탐진치를 가져다가 영적인 것도 이렇게 하라고 해주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인류면 피할 수 없는 이성에 대한 어떤 욕망, 이거 숨길 수 없죠. 또 악취에 대한 혐오, 이거 숨길 수 없죠. 그것처럼 악을 그렇게 피하고, 선을 좋아하면 끝이죠. 기본값이 바뀌면 그냥 그거는 성령의 사람이죠. 유교에서는 양심의 사람이죠. 성령 대신에 양심이라고, 양심의 사람이 되는 길은 양심에 맞는 것은 호색하듯이 좋아하고, 비양심은 악취 싫어하듯이 진심으로 싫어하면 이 양반은 이미 군자예요. 기본값이 바뀌었잖아요. 이런 양반이 군자다. 그러면서 하는 거예요.

[이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진심으로 선善을 좋아하고 실천함)을]

그런데 가짜들은 뭐예요? 위선자 들이죠. 위선, 가짜 선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뭐냐? 반대겠죠. 악이 사실 그렇게 싫지 않아요. 이거 반대로 해보세요. 어떤 존재가 나오겠어요? 소시오패스가 나옵니다. 악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악이랑 타협을 되게 잘해요. 왜냐? 악이 그렇게 싫지 않아요. 악이 악취 싫듯이 싫지 않아요. 그리고 늘 자기들은 선을 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주장해요. 그런데 뭐예요? 사실 선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호색은 진짜 좋아하는데, 선은 그렇게까지 안좋은 거예요. 일반인도 그래요. 일반인은 그런줄알고 '나는 선을 그렇게 못하겠어, 사실 나는 악이 그렇게 싫지 않아, 선악이 그렇게 딱 잘라지나' 이게 중생이예요. 중생보다 소시오패스는 뭐가 문제냐면, 소시오패스, 기독교의 바리새파들은 뭐가 문제냐면 위선자 들이예요. 그래서 가장을 합니다. 나는 선만 하는 사람이라고 가장을 하는데 사실 악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요. 사실 선이 그렇게 좋지를 않아요. 이래서 욕먹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제일 문제 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솔직하잖아요. '나는 사실 선악은 잘 모르겠습니다.' 군자는? 나는 진짜 선이 좋아요. 이 사람들은 문제가 없어요. 이 사람들은 지금 정상적이예요. 한쪽은 혈육의 자녀로 정상이고, 한쪽은 하나님 자녀로 정상인데, 그런데 문제는 중간에 이상한 놈들이 있어요. 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놈들, 양의 탈을 쓰고 다니는 늑대들, 생태계 교란 시키고 다니는 놈들 아니예요? 겉은 선인인 척하고 속은 악인인, 이 존재들이 위선자 입니다. 그런데 4대 성인이 제일 미워했던게 위선자예요. 차라리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면 '너는 구원받을 수 있다.' 진짜 구원받는 사람은 이미 구원 받았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구원 받지 않았는데 구원받은 사람인척 하고 다녀요. 금식하고, 자선하면서 막 인자한 표정으로 자선하고 다니고, 항상 미담의 주인공들

맹자에 나와요. 사이비라고, 이 놈들이 사이비다. 그래서 사이비 라는 말은 원래 맹자에서 나온 말이고, 위선자에 쓰는 말입니다. 소시오패스들, 유사한데 아닌 애들, 유사품인데 아니예요.

유사품인데 유사한 효과라도 나면 좋은데 유사품인데 이 놈들은 독이예요. 약이 아니라, 독버섯이죠. 먹는 버섯 유사한데 먹으면 죽는 거예요. 그게 사이비예요. 유사한데 아닌 애들이 제일 무섭습니다. 아예 '나는 독버섯이다' 하고 있으면 괜찮은데 먹기 좋게 포장되어 있는 독버섯들, 그래서 성인들이 다 미워합니다.

소크라테스때 적이 누구예요? 소피스트, 소피스트들이 진리를 왜곡시켜서 지들만 진리를 아는 것처럼 하고 다니는데 사실은 욕심꾼들 이예요.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매춘부보다 못하다고 욕했어요. 그렇게 심한 욕을 한적이 없는데 걔네들에게 합니다. 예수님이 항상 사랑과 자비 얘기하시다가 언제만 심한 욕을 해요? '이 독사의 자식들아, 사탄의 자식들아' 바리새파들에게, 위선자들에게 이 말을 합니다. 죄인들에게 실제로 이 말 안해요. 그렇죠' 아니 창녀, 죄인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안해요. 위선자들에게 해요. 성인들은 진짜 미운거예요. 공자님도 누가 우리집 앞에 지나가다가 집에 안들려도 서운하지 않은 놈들은 '향원' 동네에서 제일 착하다는 그 위선자들이다. 맹자가 그걸 사이비라고 하면서 풀어줘요. '공자님이 왜 그렇게 그 사람들 싫어했나요? 그 사람들이 사이비 거든' 그러면서 맹자가 이런 말해요. '그 놈들은 아주 교묘한 놈들이라 들추려고 해도 지적하기가 애매하고 하도 미담의 주인공 이라 욕하기도 애매한 놈들이다' 그런데 군자들은 알 수 있죠. 걔네들은 가식이라는 걸, 가짜로 하고 있는 거, 속에는 탐진치가 있는데 기본값은 탐진치 인데, 겉만 인의예지가 자기 본성이 된것처럼 하고 다닌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위선자 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도 제일 싫어하는게 위선자라서 제자들에게도 그럽니다. '위선 떨지마' 이거에요. '야, 너 하고싶지 않으면 하지마' 차라리 이런 제자는 인정받는다니까요 '저, 기도 못하겠어요. 도저히 졸려서 못하겠어요.' 그러면 안졸고 하는 기도 방법을 얘기해 주겠죠. 그런데 '기도 좀 해볼까요?' '하지마 이 자식아' 이건 뭔가 좀 이상하죠? 꼬여 있다는 거죠? 이 차이를 아셔야 돼요. '기도를 할려는데 수마 때문에 졸음 때문에 힘들어요. 그럼 더 노력해 보자' 하겠지만, '어~ 예수님, 저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하지마'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차라리 죄인이 천국에 가지 위선자 너희는 천국 못간다고 성경에서 예수님이 그렇게 욕하시는 그 느낌으로 읽으셔야 이해가 됩니다. 아니 기도 좀 하겠다는데 '거짓말 하지마라' '예수님 좀 야박하시네' 이러지 말고, 예수님이 아주 경계하는게 위선입니다. 가식, 위선, 유교도 똑같아요. 유교도 보세요. '이렇게 진심으로 해야된다. 이걸 일러,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진심으로 선을 좋아하는 것, 이것을'

[일러 ‘스스로 뿌듯해함’(양심의 희열, 신바람)이라 이른다.]

이게 성령안에서 오는 진정한 안식 이예요. 이것 없이, 성령에서 오는 안식없이, 뭔가 꼼수로 가식적인 선을 한다. 가짜입니다. 그건 자기를 속이는 짓이예요. 지는 원하지 않으면서 지가 원하는 것은 명예면서 겉은 인의예지를 하는 것처럼 하면 그것은 사기 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자신만 홀로 아는 자리’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대학大學)]

'남은 몰라도 자기만 아는 속마음, 이 혼을 관리 잘해야 된다.' 이 소리예요. 이 혼에서 사기친것은 다 들통난다. 감춰진건 받드시 드러난다. 이 소리를 9번 가보실래요. 9번에서 또 하세요. 여기도 대학에서 나온 말인데

[“소인이 한가로이 있을 때에 악한 짓을 함에 못하는 짓이 없다가,]

속으로 별 나쁜 생각 다하다가

[군자를 본 뒤에 슬그머니 그 악한 짓을 숨기고 선함을 드러낸다.]

속으로 별 악한 생각 다 하다가, 군자를 만나면 자기도 군자인 것처럼 군다는 거예요. '나도 사실은 선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하는데

[남들이 그 사람을 봄에 폐부를 다 들여다보듯 할 것이니]

'남들 눈에 다보여' 이거예요. 감춰진건 다 드러나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사기치지 마라.

[이것을 일러 ‘속마음이 정성스러우면 밖으로 형체가 나타난다.’라고 하는 것이다.]

'속에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밖으로도 다 드러난다' 하는 거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자신만 홀로 아는 자리’를]

속마음을 말하는 거예요. 속마음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 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대학)]

자녀가 '저, 오늘부터 새학기를 맞아 공부 열심히 할거예요, 게임을 줄일거예요' '그래, 빨리가서 공부해라' 그러면 눈이 죽어있죠. 그러면 공부를 또 억지로 해요. '게임도 한시간만 해' 눈이 빛납니다. 그러면 속일수가 없죠. 속에 정성스러운게 밖으로 드러난다는게 이겁니다. 못숨겨요. 딱 보면 다 티나죠. '공부해라' 그러면 '예' 하고 발걸음도 최대한 '게임해라' 이미 저기 가 있습니다. 좍~~

정성스러운것은 진짜 좋아하는 거예요. 진짜 자기가 정성들이는 것은 밖으로 그 마음이 다 들어납니다.

소개팅 하고 와서 '그 사람 괜찮았어?' '어, 훌륭하시더라고' 그럼 아니죠. 싫은 말을 못하는 제 친구, 소개팅 하고, '어땠어?' '잘생기시고' 여자가 잘생기면 좋은건데, 느낌이 좀 이상하잖아요. '왜 잘생기지?' '귀여우시더라구' 막 이러면서, 그것도 진심으로 빛나면서 하면 모르겠지만 '뭐라도 좀 말은 해야겠다.' 이러면 들을때 좀 안와닿잖아요? 정성이 안들어 있잖아요. 이미 흥분되 있어야 되거든요. 그렇죠? 카톡 보내고, 흥분하고, 그런데 이렇게 뭔가 점잔빼고 있다 그러면 뭔가 아니잖아요.

정성을 안들이고 있다는게 보이잖아요. 우리 마음이 뭔가에, 정성은 몰입입니다. 몰입 했다는 건 꽂혔다는 겁니다. 꽂히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숨길 수가 없어요.

자! 또 중용에 구절도 똑같은 구절이 있어요. 대학, 중용이 유교의 제일 심법을 써놓은 건데, 거기 핵심이 '자기를 속이지 마라' 예요. 지금 예수님은 유교 경전에 근거해서 볼때도 예수님은 성인이십니다. 정확한 말을 하세요. '감춰진건 드러난다. 속을 속이지 마라' 이 말씀만 해놓으면 예수님은 지금 유교 성인 이세요. 보세요, 유교 경전, 성인들의 심법인 경전에 뭐라고 되어 있냐?

[“‘도’(진리의 길)는 잠깐이라도 떨어질 수 없으니,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진리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속마음 속에서도 항상 구현되야 한다. 그러니까 이 속마음에서도 진리가 구현 되어야 돼요. 사랑과 자비와 정의와 지혜가 속마음에서도 꽉 차있어야 돼요. 도는 떨어질 수 있는게 아니예요. 그러니

[이런 까닭에 군자는 보이지 않는 바를]

남이 안보는 것을

[경계하고 진실하게 하며,]

남이 안볼때도 진리에 어긋날까봐 경계하고, 도는 떨어질 수가 없으니까

[들리지 않는 바를]

남에게 안들릴때도, 남이 내 말을 못들을 때도 어때요?

[두려워한다.]

혹시 진리에 어긋날까봐, 양심에게 다 들키잖아요. 양심에 들키는 것을 무섭게 여깁니다. 하늘은 다 안단 말이예요. 하늘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숨겨진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자신만 홀로 아는 자리’를 진실하게 하는 것이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중용中庸)]

이게 '신독' 입니다. 신독을 이렇게 제가 푸는 거에요. 신愼, 진실하게 해라, 삼가해라, 뭐를? 독獨, 혼자 있는 자리를, 보통 남 없고 혼자있을 때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예요. 남하고 같이 있어도 여러분 속마음은 여러분만 알죠. 그게 '독' 이예요. 여러분 '독'이예요. 홀로 여러분만 아는 그 마음,

아니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지금 속으로는 욕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내 속마음은 자기만 알잖아요. '안녕하십니까, 언제 밥한끼 하죠' 속마음이 뭐예요? 웬만하면 보지말자, 이거죠. 언제? 언제? 저 언제, 오지 않을 미래로써 저 언제, 언젠가는 언젠가 오지 않는거죠. 오지 않는 언제, '밥 한끼 하자고 그랬잖아' '내가 언젠가 하자고 그랬잖아, 지금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이거죠. 자! 이렇게 속마음은 그럴 수 있잖아요. 진짜로 언젠가 하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속마음은 모른단 말이예요. 그런데 이거예요. 속마음으로는 남에게 다 탐진치의 마음으로 대해놓고 겉으로는 예법에 맞게, 율법에 맞게 대했단 말이예요.

그리고 바리새파는 내가 천국갈 사람이라고 오판까지 해요. '남과 다르게 내가 율법에 따라 남들을 대했어, 정말 나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남들은 금식도 못하더라구, 금식도 못하고 금방 밥 쳐먹고 있고, 기도한다구 하다가 기도도 잘 못하고, 자선한다고 하면서 자선도 나보다 더 싼 것만 하더라구, 나는 비싼걸루 했는데' 자! 아무리 봐도 겉으로 보면 내가 천국갈 사람인거예요. 속으로 보면 어때요? 예수님이 볼때 속을 보죠. 하늘은 속을 보죠. '속이 어떻드냐?' 속이 중요해요. 왜냐하면 속을 알아야 겉의 의미가 달라지거든요. 겉을 안본다게 아니라, 속이 중요한 이유가 왜 그짓을 했는지 알아야 그 짓거리에 대해서도 평가가 정확히 나갈 수 있잖아요. 속을 알고 보니까, '나만 천국 간다. 남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 는 의식으로 꽉 차있다고 그러면, 탐진치, 무지와 아집으로 꽉차있다. 그러면 땡인거죠. 속을 관리를 잘해야 된다. 그런데 왜 죄인보다 이 사람들이 천국을 더 못가는지 이유가 분명한 합니다. 겉은 율법에 맞았지만 속은 남들 짓밟고 자기 혼자 천국가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은요? 천국 못갈거라고 생각해요. 왜? 나는 죄인이니까, 사실은 이 사람 영혼이 더 맑은 거예요. 왜? 이 사람은 부끄러운지라도 알아요. 이 사람은 부끄러운줄 몰라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층 문제가, 첫번째가 이거예요. 부끄러운줄 모릅니다. 신독이 안되있어요. 자기 혼자 있어도 부끄러운줄 알아야 돼요. '아~ 내가 부끄러운 생각 했네' 이거 알아야 돼요. 이건 하늘이 알고, 내가 알고, 다 알고 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천지신명이 알고 내 양심이 알고 있다. 이거 다 들킨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돼요. 그러니까 속으로 생각한 것은 10사람이, 10명이 다, 대중들이 다 내 속을 보고 있다고 느끼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게 군자다 했듯이 예수님도 똑같은 얘기를 하신 거예요. 감춰진 건 다 드러나는 줄 알고 살라는 거예요. 그러면 바리새파가 감히 다른 마음 먹겠어요? 자기가 우월한 생각한게 다 들통난다면, 남들이 욕할거 뻔히 알거 아니예요. 이런식으로 살아가라. 이 얘기를 해놓으신 겁니다.

자! 오늘 여기까지, 6절까지 하겠습니다. 사자 이야기는 별 얘기는 아닙니다. 다음에 또 도마복음 재미있게 공부 같이 하시죠. 도마복음 재미있죠? 기존 복음보다 훨씬 거칠고 표현도 거칠면서 되게 재미있습니다. 기존 복음까지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영감을 줍니다. 진리에 대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주는 복음이니까 올 한해 도마복음 한번 제대로 공부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