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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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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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인간의 기본값과 하나님의 형상
강의일자 2019. 12. 21. 土.
게시일자 2020. 02. 13.
동영상 길이 44:39
강의 중 인용 도서 도마복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O3tHF7r2XX8


자 이제 도마복음 들어갈께요. 다른 강의나 다른 책으로 도마복음 많이 보신 분들은 비교해 보시고, 처음이신 분들은 '너무 성경을 읽는다' 이런 부담없이, 예수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실겁니다.

이게 도마복음 앞에 이 말이 써있는데 우리가 책 사면 앞에 머릿말과 본문 사이에 '이 책을 누구에게 바칩니다' 이런 것처럼

《이 글은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밀교입니다. 밀교죠.

《디두모 유다 도마가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이거는 4대 복음에도 나옵니다. 도마의 이름이 디두모 인데요 밑에 각주 보시면

그리스어로 ‘쌍둥이’예요.

'쌍둥이 도마' 라고 성경에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냥 도마 이름 이예요. 쌍둥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도마가 쌍둥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름에 쌍둥이라는 뜻을 갖는 '디두모'가 도마 이름인데, ‘도마’(Thomas) 또한 아랍어로 ‘쌍둥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디두모, 도마가 다 쌍둥이를 의미하니까 '여기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이해하면 좋을까?' 이거죠. 여기서 이 글을 좀 확대 해석일 수도 있지만 시작할때 디두모 도마라고 궂이 써놓은 것은 여기서 쌍둥이라는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기를 바래서 그런거 아닌가' 하고 학자분들이 많이 푸세요. 저도 그냥 기본적인 정리를 해놓고 그 밑에는 제 느낌을 써놓은 건데요

“즉 도마복음은 예수님의 쌍둥이인 도마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형식을 취한 글이다.”

실제 예수님의 쌍둥이라는게 아니라 누구나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형제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형제, 남매, '누구나 예수님처럼 될 수 있는 동등한 도마가' 이런 표현 인거죠. '쌍둥이 도마가' 예수님 얘기를 하면서 쌍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도마 이름이 재미 있어서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하는 것 같아요. 이런 해석도 재미 있으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 그런 희망적 메세지를 준거 아니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셔서 저도 이 관점에서 한번 해석해 봤습니다.

“이 은밀한 가르침을 그대로 닦은 자는 예수님의 온전히 쌍둥이 즉 ‘예수님의 온전한 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실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분신’이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과 한 형제가 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분신이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빛의 자녀가 되어라.” (요한복음 12:36) 라고 말하셨다. 또 “하늘에 계신 그대들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그대들도 완전해야 한다!” (마태복음 5:48) 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은 인류에게 어떻게 기대하셨죠? 빛의 자녀가, 성령의 자녀가 되야 되고, '아버지처럼,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이 경지를 완덕完德 이라고 합니다. 완전한 덕을 갖춘, 이게 아버지와 동등해진 자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와 동등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에 가까워진 자리, 아버지처럼 완전해진 인간이니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니까, 인간으로 하나님과 가장 동등해진 자리, 이렇게 이해하시면 지금은 이 완덕을 이루신 분이 누구겠어요? 예수님이죠. 우리도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 그게 쌍둥이여서 우리가 음미해볼 수 있는 부분 같고, 또 보시면 사도바울의 얘기 한번 볼께요. 로마서 8장 15절에서 17절 얘기 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의 노예’가 되게 하는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라고 성령을 받은게 아닙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 받았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분신 입니다.' 이겁니다. 하나님처럼 빛의 존재가 되어야 하고,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거죠.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Abba)!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아빠 입니다. 왜? 아빠라고 하셨습니까? 말 바꿔주세요. 이런 분도 계셨는데, 제가 정한게 아닙니다. 거기 발음이 그냥 아빠예요.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영’(참나)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의 영, 하나님의 영이 둘 있는 것 같죠? 사실 하나 입니다. 그래서 함께 뭐라고 하는 거예요?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자! 보세요. 아까도 그렸지만 우리의 영의 자리가, 영이라는 건 I AM 이예요. 그거말고 영이 어디에 있어요? 혼이 생각, 감정, 오감,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죠. 지성, 의지, 감정 혼의 작용을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생각, 감정, 오감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그리고 육체, 영혼육인데, 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영을 모르죠. 영을 모르고 삽니다. 혼만 알아요. 우리가 생각, 감정, 오감만 알지, 지성, 의지, 감정 이걸로 산단 말이예요. 판단하고, 의욕하고, 울고 웃고... 지성과 의지를 생각으로 받으면 생각에 감정에 오감하나 더 추가한 겁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물고 뜯고 하면서 육체를 가지고 산다. 이게 다죠. 영을 몰라요.

영이 I AM 입니다. I AM 이라는 것은 영원한 현존 이예요. I AM 뒤에 뭐가 붙어야 제약이 일어나요. I AM 뒤에 슬프다가 붙어야 지금 어느 시점, 어느 공간에 누구 때문에 슬픈 나가 되는데 뒤에 아무것도 안붙으면 뭐죠? I AM. 하나님이 그래서 얘기하신 거예요. 나는 I AM 이다. 그냥 영원한 현존 입니다. 존재할 뿐인 그 영,

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해서 우리 영이 되준거예요. 자, 그러니까 이게 성령과 우리 영이 둘이 아니예요. 우리 영은 참나라고 부를게요. 성령과 참나가 둘이 아니다. 왜냐?

다 나올 것 같아요. 제가 혼자 이렇게 얘기 안해도 뒤에 다 나올 것 같은데 그래도 미리 말씀 드릴게요.

창세기에 뭐라고 돼 있냐면? '흙을 모아서 육을 만드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 넣으니까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육의 근거 입니다. 영혼육 삼분설의... 그럼 하나님의 숨결이 영이죠. 하나님의 바람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원래 바람이라는 뜻과 숨결 이라는 뜻이 있거든요.

성령을 받아서 이 영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성부의 영이고 그러면 성령이고, 이 영이 우리 입장에서는 내 혼, 에고의, 나라는 개체적 자아 에고의 뿌리니까 내 입장에서는 영입니다.

원래 하나라구요. 내 입장에서는 영,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성부의 작용이신 성령, 이해되세요? 그래서 이 자리를, 영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성령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뿌리를 모르시는 거예요. 지금 이 혼이 왜 하나님 자녀라는 말이 바로 나오느냐?

성령 깨달으시면 바로 하나님 자녀인줄 압니다. 왜? 그동안 이 혼이 주인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쪽이 (혼) 자녀고 이쪽이 (영) 부모라는 걸 알게 됩니다. 여기에 (영)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내 모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행위, 살면서 해왔던 모든 생각, 감정, 오감의 행위, 이거 말고 뭘 하셨어요? 다른거 안하셨죠. 이 행위의 뿌리가 뭐였냐? 내 안에 워가 있어서 내가 웃고 떠들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따지고 보고, 듣고, 맛보고 했느냐? 성령이 있어서 했던 거예요.

성령을 밖에서 받았다고 믿는 분들은 아주 기초적인 교리에 빠져계신 거죠. 교리 그대로 믿는 분들은 사도 바울이나 히브리서에 근거해 볼때 젓먹이 단계 입니다. 그렇게 나와요. '기초 교리 그대로 믿고 있으면 젓먹이 단계이다. 어른이 되면 단단한 것도 씹어 먹는데 어려서 부드러운 젓만 먹고 있는 단계다.' 씹어먹을 단계까지 가시면 이게 보여야 돼요. 뭐냐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혼의 입장에서 영을 새롭게 아니까 받는 거같지 원래는 뭐예요? 우리의 뿌리였던 거예요.

여러분 아버지랑 별도로 살다가 아버지를 받는다고요? 말이 됩니까? 아버지의 뿌리를 박지않고 우리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본체는 성령이예요. 아버지의 작용인 성령. 그래서 이 성령이 우리에게 영이 돼요. 그래서 영을 모르는 사람은 성령도 모르고 성령을 모르면 영도 모릅니다.

혼만 알아요. 에고성, 나라고 하는 자아의 마음만 알고 살죠. 이 혈육의 자녀라는게 별개 아니라 기독교에서 이 혼과 육만 존재하면 이 혼이 뭐 하겠어요? 육에서 오는 자극을 받아서 혼이 원하는 육이 이루고 또 육이 원하는 걸 혼이 그리 또 마음이 따라가고 해서 혼과 육으로만 살아가죠. 그럼 이게 혈육의 자녀 입니다. 혈육의 자녀로 살다가 이 혼이 영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영과 소통하는 하나님 자녀가 되버려요. 갑자기 승격합니다. 혈육의 자녀, 육을 위해 봉사하는 혼이었다가 갑자기 영을 위해 봉사하는 혼이 되버리니까 신분이 상승하죠. 이걸 보시면, 이걸 미리 혈육의 자녀라고 할께요. 글자가 혈육의 자녀 같지 않은데, 하나님 자녀, 혼이 거듭 납니다. 영을 위해 봉사하는 이 혼은 하나님 자녀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에 의하면 이거는 속사람, 혈육의 자녀, 혼이 육에 이바지하는 이 경지에 있는 사람을 겉사람, 혼의 두 부분이죠. 이거는 양심적인 부분, 이쪽은 욕심적인 부분, 욕심에 가득차서, 욕심을 본성으로 해서 살아가는 겉사람으로 살아가면 계속 육정을 따라갑니다.

불교에서는 이 경지가 뭐죠? 탐진치가 본성인 경지예요. 자! 일단 어리석어요. 아버지 모르니까, 성령을 모르니까 어리석고 어리석으니까 물욕을 못이기고 탐내고, 탐내니까, 탐낸다고 내가 다 갖나요? 안되니까 화나고, 그럼 더 어리석어지고 탐욕은 더욱 커지고 악순환 입니다. 이게 이제 본성이 되는 거죠. 카톨릭의 칠죄종이 이런 것들이 똑같아요. 탐진치의 확장판 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녀면, 제가 로마서에서 얘기했지만 유교식으로 말하면 사랑, 정의, 예절 즉, 겸손이죠. 지혜, 성실 왜 유교로 얘기하느냐? 유교랑 똑같이 구약에 써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공정이시여, 지혜시여, 성실이시여, 하나님은 겸손이라고 하면 안되고, 질서,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분이요, 인간 입장에서는 그 질서에 순종하는 겸손,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도 다 똑같이 들어 있습니다. 이게 (오행) 다 들어있어요. 열매도 이거랑 (오행) 다 통합니다.

자! 성령의 열매를 받은 혼, 속사람과 육정에, 욕심에 휘둘리는 겉사람,

자! 이렇게 이해해 보시면 재미있어요. 영은 하나님이고 이렇게 되면 사탄은 뭘까요? 영은 하나님이고, 이 영을 따르는 양심의 혼은 하나님 자녀, 육을 따르는 혼인 욕심은 겉사람, 여기는 하나님 자녀, 그러면 여기는 사실은 혈육의 자녀는 다른 말로 죄, 사탄의 종입니다. 사탄의 종이냐? 하나님 자녀냐? 기독교는 이게 관건이죠. 왜 갑자기 사탄이 등장하느냐? 이게 우리 혼은 하나인데 이쪽에 이바지하냐? 이쪽에 이바지하냐에 따라서 뭐랄까 속성이 다르죠. 탐진치의 속성과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의 속성, 사랑과 정의의 속성, 탐욕과 어리석음과 분노의 속성, 속성이 다르죠. 이걸 요즘 컴퓨터 하시는 분들, 게임하시는 분들은 기본값 이라고 그러잖아요 잘 아시는 기본값 이게 애초에 설정된 기본값 이예요. 우리가 창조될때 설정된 기본값 입니다.

아담은 원래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 졌는데 원죄를 받아서 다시 인간으로 됐다고 그랬죠? 원래 하나님의 자녀였다고 하면, 아담은 기본값이 뭐 겠어요?

영자리에 진리의 십자가의 마음, 성령의 법 그대로의 속성이 우리의 속성이어야 돼요. 왜? 이게 지금 하나님 형상 이거든요. 창세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 남여를 만드셨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정의, 지혜, 질서가 우리 성령에 그대로 새겨져 있어야 돼요. 자! 이 성령에 혼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무조건 거룩해 집니다. 그럼 이 속사람이 강건해 지겠죠. 하나님 자녀가 될 수 밖에 없겠죠. 이건 하나님 자녀로써의 기본값 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아담이 뭔가 문제를 일으켜서 원죄를 받아서 영을 모르게 된거예요. 혼과 육으로만 사는 존재가 됐어요. 육의 가죽 뒤집어쓰고 혼으로만 살아요. 그러니까 기본값이 어떻게 됐어요? 기본값이 탐진치가 됐죠. 그럼 이게 뭡니까? 혈육의 자녀고, 하나님 자녀에서 혈육의 자녀로 천국에서 쫓겨난 겁니다. 기본값이 어떻게 됐어요? 하나님의 성령의 법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의 법, 육신의 법으로 기본값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뭐라고 불러요? 고등침팬치라고, 저는 빠지는 것 같으니까 저까지 해서 고등침팬치라고 우리를 부르면 맞습니다.

탐진치의 기본 속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기본값 이라는 게 그런거죠, 뭐냐면 조작을 안하면 기본값으로 돌아가요. 애초에 설정해 놓은 값으로 돌아가요. 그러니까 우리가 막 별 지랄을 안하면 돌아가요. 뭐로요? 탐진치로 돌아가 있어요. 그러니까 기도하고, 도 닦고, 말씀 묵상하고, 진리를, 선을 실천하고 하면 좀 나아졌다가 하나님 자녀스러워 졌다가 잠깐 방심하면 어떻게 돼요? '저거 탐나는데' 바로 잠깐 사이에 와 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원래 그게 기본값 이예요. 작동 안하고 있으면 바로 그리 가버린다구요.

끝없이 뭘해요? 노력을 해야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기에서 혈육의 자녀의 의문입니다. 죽어라 노력하면, 바리새파처럼 노력하면 기분이 좀 하나님 자녀가 된거 같아요. 그런데 잠깐 방심하면 어떻게 돼요? 다시 돌아가 있어요. 예수님이 왜 바리새파들 천국 못 간다고 하는지 아세요? 기본값이 안바꼈어요. 고등침팬치가 되게 멋지게 치장하고 안되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거지 율법을 지킨다고 지금 구약에서는 '율법만 지키면 천국 간다' 그러는데 겉사람이 율법으로 치장한들 속이 영을 모르는데요. 성령을 모르는데 무슨 수로 하나님의 행위를 합니까? 겉만, 하나님의 행위만 따라하고 있는 거예요. 기본값이 안달라졌기 때문에 잠깐 방심하면 도로 돌아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해서는 천국 못간다' 하는 겁니다. 그럼 답은 뭐겠어요? 그때 바리새파들에게 예수님 이라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성령 받아라' 예요.

그래서 애초에 구약에서부터 내려온게 누구에게나 성령이 부어져야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게 아니예요. 기본값이 고등침팬치인데 뭘 해요? 우리 솔직히 점잖게 앉아 있어서 그렇지 저 속마음에서는 난리가 아니죠. '제발~' 또 가버리고 없고, 그렇죠? 왜? 기본값이 안바뀌었다.

사실 인간은 성인이 되도 이건 안바껴요. 혈육의 자녀로써의 기본값은 안바뀝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본값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예요. 이걸 알아내야 돼요. 우리 안에는 또다른 기본값이 있다. 성령을 찾아내면 성령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요? 우리가 하지 않으려해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수 밖에 없게 우리 마음을 내모는 그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숨겨진 기본값을 찾는다고 할까요.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숨겨진 기능을 찾는 거예요. 숨겨진 기능을 찾아서 우리 안에 영을 각성해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기본값이 달라집니다. 우리를 두가지 기본값이 작동합니다. 육의 법이 우리를 어느쪽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안하려고 해도 육의 법이 탐진치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그때 성령의 법이 발동합니다. 기본값이 이미 설정이 되어 있는 거니까 작동합니다. '그런데 황금률에 위배되서는 안되지' 같이 작동해 주면 이게 일단 로마서에 쓰여져있는 사도 바울의 경지 입니다. 두개가 같이 작동해요. 로마서에서 힘들어 죽겠다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거쳐야 돼요. 그게 성화의 단계예요.

칭의는 뭐냐면 성령에 안정적 접속이 가능해지는 게 칭의 단계예요. 성화는요? 새로운 기본값이 작동하는게 성화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욕심이 일어난 만큼 뭐도 일어나요? 양심도 일어나요. 이정도 되면 인간이 인간다워져요. 그 전까지는 못볼 꼴이다가 이제는 인간다워져요. 그게 성화, 거룩해져가는 단계에서 일어나는 성과입니다. 이렇게 인간 좀 됐을때 영화, 에너지 몸을 얻는 거예요. 몸부터 얻는게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몸만 얻어놓으면 뭐하게요. 영생하는 몸만 얻었는데 속은 고등침팬치의 기본값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심각한 일이죠. 말이 안되는 소리예요. 그래서 영혼이 거룩해진 뒤에 에너지 몸에 대한, 부활체에 대한 답도 나오는 겁니다. 혹시 도마복음 강의 듣고 영생할 욕심으로 육만 노리신다면 100% 실패하실 거라는 걸 미리 말씀 드립니다. 나중에 왜 먼저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할까봐 미리 얘기해 드립니다. 경고 드렸어요. 육만 노리시면 안됩니다. 오래사는 고등침팬치가 되시는 거잖아요. 그건 아니죠. '부활한 고등침팬치' 이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그분은 도마복음이 논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다른 계통을 찾아 보셔야 돼요. 아시겠죠?

동양 중국에서도 오래 사는 것만 노리고 접근하는게 신선술이죠. 영혼을 거룩하게 할 생각보다는 영생을 얻어야 겠다. 실제로 장생불사를 노리고 수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육의 부활만 노리는 분들이예요. 그러면 산에서 실패합니다. 산에 오래 있다 보니까 자연인이 되시죠. 부활은 아닙니다. 장생불사도 아닙니다. 남보다 좀 오래 살 수는 있죠. 그건 제대로된 신선이 못돼요. 왜? 영혼을 거듭나게 하지 못하는 신선은 어차피 불가능 합니다.

어느쪽으로 접근하건 탈선한 쪽이지, 정규대로 가면 누구나 영혼육이 온전히 건강해지는 (없죠. 아까) 이 그림을 기억하세요. 이 그림은 엉망이지만 삼각형 두개가 온전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다빈치코드 영화보면 이게 마리아를 상징하는 걸로 남자가 있으면 여자도 있어야 되니까, 이런식으로 해서 다빈치코드 읽어내는 소설 쓴 것도 저 그림을 가지고 푼거예요. 이건 보편적인 그림입니다. 삼각형, 위로 솟구친 삼각형, 아래로 향하는 삼각형, 수하, 남녀가 균형을 이룬 모습, 형이상과 형이하, 음양이 균형을 이룬 모습, 동양에서도 궁극의 이상적인 경지예요.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 이러잖아요. 음양이 균형을 이룬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법 입니다. 그러니까 치우쳐서는 안돼요. 균형이 맞아야죠.

(칭의) 그래서 완덕을 향해 가는데 칭의는 성령과 안정적 접속 입니다. 이것을 데살로니카 전서인가에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나면 '성령의 불이 24시간 늘 꺼지지 않아야 한다' 칭의의 조건,

(성화) 두번째 성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새로운 기본값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이죠. 새로운 기본값, 하나님의 속성이, 기본값이 자동으로 작동해야죠. 기본값은 원래 자동으로 작동되야죠. 내가 손떼면, 안해도 기본값은 그렇게 돌아가야 돼요. 그런데 혈육의 자녀는 방심하면 탐진치로 돌아가 있어요. 하나님 자녀는 방심하면 어디로 돌아가 있어요? 혈육의 기본값도 당연히 작동하지만 동시에 뭐가 작동한다구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돌아가 있어요. 사랑과 정의가 솟구칩니다. 그래서 양심에 어긋난 짓을 하면 찜찜해서 못견딥니다. 그게 기본값이 작동하는 모습이예요.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찜찜해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찜찜해서 (성화 단계에 가면) 못견딥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기독교 가지고 할 얘기가 진짜 많습니다만 도마복음을 읽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런거죠. 여러분의 혼이 혈육의, 피와 살, 혈육의 육정에 봉사하는 혼, 탐진치라는 기본값을 받는 그런 혼이 아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과 정의의 기본값을 갖는, 영 그대로의 혼이니까, 영을 따르는, 영과 공명하는 혼이니까 혼이 지금 이 속성을 갖게 된거죠. 영의 속성을 혼이 갖게 된겁니다. 그전에는 탐진치의 속성을 혼이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영의 속성까지 갖게 된겁니다. 그러면 내 안에서 양심과 욕심이 더 싸우겠죠.

(바울) 그게 '이렇게 사는 사람이 누가있나?' 하면 로마서의 사도 바울을 보면 둘이 싸워가지고 '난 한편으로는 성령의 법을 따르고 싶어 죽겠는데 내 몸의 또 한 부분은 육의 법을 따르고 있다. 죽겠다. 이 둘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다.'

이게 지금 두개의 기본값이 막 충돌나는 상황입니다. 그게 점점 해결이 되서 원만하게 해결이 되면 예수님의 경지, 완덕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충돌이 나요. 그러다가 다스려진다. 그게 도마복음에도 다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자! 하나님 자녀,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상속자 하니까 예전에 '별에서 온 그대' 랑 '상속자' 두개가 히트를 쳐서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별에서 온 상속자' 중국인들 마저도 부끄럽다. 갑자기 별에서 온 상속자가 생각 났어요. 여러분 혹시 별에서 온 상속자가 아니신지?

'하나님의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상속자는 뭐죠? 유산 다 물려받을 사람, 하나님의 왕국을 물려받을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통치자가 되야 돼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자가 되실 분 모집, 인원 00명, 아니면 무한대, 사실 온 인류를 초대하니까, '온 인류를 초대합니다.' 그런 공고문을 보신 거랑 같은 거예요. 상속자,

사실 그 동안 의심하지 않으셨어요? '분명 우리 아버지가 어딘가의 재벌 회장일 수도 있다. 우리 친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고 재벌 아버지가 있을 수 있다.' 드디어 꿈을 이루신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가 사실 아버지셨다는... 이 우주에서 제일 부유하신 분인데 그분의 왕국을 여러분이 좀 물려받았으면 한데요. 경영권까지 좀... 이 얘기 듣고 흥분 하셔야 되는데 흥분 안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자세히 소개를 좀 해드리는 겁니다. 이거 엄청난 얘기인데, 그 경영권을 여러분에게 넘기고 싶다는 얘기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똑같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중에 예수님이 리더일 수는 있어도 '우리도 통치자다' 이겁니다. 예수님하고 파트너 관계죠.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로마서 8:15~17)”

바울이 파트너 관계라는 걸 분명히 합니다. '이런 건방진' 그러지 마시고 여기서 지금 '쌍둥이' 라는 말도 맞잖아요. 이미 공동의 상속자, 동등한 형제, 동등한 형제, 자매, 이 개념이 있다. 이 말씀 드리고요.

자! 기독교 재미있죠? 저는 어느 종교할 때마다 푹 빠져서 원불교 강의할 때는 '우리 원불교' 이러고, 기독교 강의할 때는 '우리 기독교' 이럽니다. 정체성이 좀 모호해요. 유교할 때는 '우리 유교' 이러고, '우리 불교' 그러구요. 이해해 주시고요.

로마서 얘기 읽었구요. 고린도전서 볼까요. 고린도전서 2장 6절에서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도 성숙한 이들 사이에서는 ‘지혜의 계시’를 말합니다.”

이 말이 왜 나왔냐면 사도 바울이나, 요한이나 영지주의자들 하고 그렇게 싸웠어요. 결국은 이 영지, 신령한 지혜, 지혜를 강조합니다.

(영지주의) 이 분들은 지혜를 강조하면서 물질을 혐오해요. 그러니까 되게 소승적 사상이예요. 물질 세계가 다 악이라고 보는 거예요. 영적인 세계로 우리는 가야 된다. 각자 내면에 있는 지혜를 얻어서 영적인 세계로 가자.

말은 그럴싸 한데 영지주의 그러면 사람들이 요즘에 종교 다원주의랑도 잘 맞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자기만의 교리 체계,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상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저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저런 영지주의식으로 예수님을 해석하는 문화가 그때 많았어요. 요한복음도 반대하고, 바울도 영지주의자들 하고 싸웁니다. 그래서 안타까운게 뭐냐면 도마복음이 영지주의 복음서라고 흔히 얘기를 해요. 왜? 도마복음이 자기 내면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게 영지주의 아니냐는 거예요. 영지주의를 잘 모르시는 거예요. 영지주의는 되게 한정된 내용을 주장하는 특수한 학파 입니다. 보편적인 영지를 주장하는게 아니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하냐면 '그러니까 지혜를 얘기하는 것들이 많은데 우리도 성숙한 이들 사이에는 지혜의 계시를 말합니다.' 이 말이 왜 중요하냐면 저 영지주의에서 영지라는 말만 나오면 기독교인들이 놀래요. 그래서 도마복음이 지혜를 강조했다고 도마복음을 비판하는데 오히려 영지라는 저 말은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에서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 지혜를 강조하고 있단 말이예요. 얼마나 강조 하는지 사도 바울 보세요. '우리도 성숙한 이들 사이에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혜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젓먹이 단계의 신자들에게는 지혜를 얘기 많이 안하고 십자가에서 예수님 돌아가시고 부활한 걸 믿으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 것 뿐이지, '우리도 성숙한 이들' 이제 성령 안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 안에서 지혜의 계시를 말합니다.

“그러나 장차 사라질 이 세상의 지혜도 아니며, 이 세상의 권력자들의 지혜도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지혜는 수준이 다릅니다. 성령에서 오는 지혜 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에서 오는 지혜를 말하는 걸 다 영지주의라고 몰면 안된다는 거예요. (영지주의는) 바울이 볼때는, 사도들이 볼때 영지주의는 성령에서 오는 지혜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 무지와 편견 속에서 오는 지혜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무시하는 겁니다. 그거는 예수님이 전해주신 말씀도 아니고, 예수님 삶을 맘대로 해석해요. 물질은 악한 것이니 예수님이 오실 때 물질 안가지고 오셨데요. 홀로그램 같은 존재 였데요. 영지주의는 그렇게 주장합니다. 자기들 만의 복잡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도마복음에는 그런거 하나도 안나옵니다. 영지주의가 아니예요. 그래서 그것도 아셔야 되구요. 막연한 영지주의 그러면 이것도 (사도 바울도) 영지주의죠. 성령의 지혜 라는게 영지 아닙니까? 그런식 해석을 하시면 안되고 영지주의는 아주 특수한 학파를 부를 때만 쓰셔야 됩니다. 아무 곳이나 적용시키면 안되구요. 자! 사도 바울도

“우리는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지혜’를 말합니다.”

우리야 말로 진짜 신령한 지혜를 논 합니다.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야 말로 진짜 영지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영지주의자들 '가짜다' 이거예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이 생겨나기 전부터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해 놓으신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것들을 우리에게 드러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깊은 생각들까지도 통찰하십니다.” (31:29)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니까 '하나님의 모든 속사정을 성령은 다 압니다.' 이겁니다.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 누가 그 사람의 생각들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들’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본적 진리를 누가 알까요?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신 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6~12)”

하나님의 분신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과 동등한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 입니다. 왜?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동등해 지기 때문에, 물론 인간의 한계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수준에서 밖에 구현을 못하니까 한계는 있지만 그 한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완덕의 경지까지 우리는 갈 수 있다고 바울은 분명히 얘기 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예수님의 경지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왜? 우리는 쌍둥이 니까, 똑같아 질 수 있다는 거, (32:32)

어떠세요? '기존 성경에는 없던 내용이다' 이렇게 하시면 안돼요. '감히 예수님과 겸상하려 하다니' 기존 성경에, 신약성경에 다 있는 내용들 입니다.

자! 여기까지 했고, 1절 들어가 볼께요. 드디어 1절 입니다. 지금 머릿말에서 힘을 많이 뺐는데 드디어 감격스러운 첫걸음이죠. 자! 갑니다.

“1절 죽음을 맛보지 않는 비결”

엄청난 비결이 나올 것 같죠? 타이틀은 좋은데 내용이 어떤지 보십시요.

“그분(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이 가르침의”

도마복음의 가르침 이겠죠. 도마복음에 나올 이 가르침, 내가 전해줄 이 가르침의

“참뜻을 깨닫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자! 여기까지 입니다. 실망하셨죠? 그런데 이게 뭐가 중요한지 아세요? 도마복음은 첫 시작부터 뭘 얘기해요? 죽음을 맛보지 않을 비결을 얘기 합니다. 어, 이거 장난 아니죠. '이 책 재미있겠는데' 하고, 얘기도 안해주면서 예고편 제대로 때리신 거죠. '뭔데, 뭔데' 하고 뒤지게 만드는 이게 도마복음의 취지를 표현한 거예요. '영생의 비결이 있다' 이건 모든 종교에 밀교에 해당되는 부분 입니다. 지금 티벳 불교도 밀교에서는 호흡 조절해서 의성신 이라는 에너지 몸 만드는 걸 밀교법으로 삼습니다.

동양에서 밀교는 뭐예요? 도교, 신선의 몸, 육신을 매미, 우화등선羽化登仙 이라는게, 또 금선탈각金蟬脫殼 그럽니다. 금선탈각도 금선이 매미 입니다. 탈각은 허물 각자 예요. 금선이 허물을 벗는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 오른다. 그냥 기어다니던 벌레가 어느날 날개가 달려서 날아오른다. 허물을 벗고, 허물을 벗는다는게 중요합니다. 우화등선도 뭐예요? 우화, 나비가 번데기 안에서 날개가 달려서 등선, 하늘로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 둘다 뭔 얘기 하냐면 바울이랑 똑같은 얘기예요. 육신을 벗고 영적인 몸으로 거듭나서 날아오른다.

거듭남 이라는게 이런 겁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과 물, 불과 물, 남여의 영적인 정자와 난자를 결합해서 새로운 육신을 얻어서 거듭난다.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도마복음에 나옵니다. 이게 미리 이렇게 소개 된겁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는 비결을 논하마'

(밀교서적) 이게 기독교에서만 이상한 책이 아니고 세계 종교에서도 이상한 책이예요. 기독교 논하지 않고 보더라도 그 내용을 얘기 했다는 것도 이건 밀교 서적 중에 아주 훌륭한 밀교 서적 입니다. 그런데 이게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것은 또 충격적인 얘기 입니다. 예수님이 말한 영생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근거가 되거든요. 영생이 구체화 되는 거예요. 막연한 영생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금선탈각 우화등선은 다 무슨 사상을 가지고 있냐면? 인간은 지금 모습이 최종 진화 형태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기본값, 탐진치의 기본값을 가지고 고등침팬치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최종 진화 형태가 아니다. 밀교 사상 가지고 있는 곳은 다 그렇게 생각해요. '더 진화해서 날아 오를 수 있는 존재다. 영적인 육체를 얻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 신선세계 가서,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원래 인간이다' 라는 사상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극락에 가서, 천국에 가서, 신선세계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이게 지금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거죠. '거듭나야 된다' 근데 유대교 논리로는 '원래 우리는 그런 존재였는데 쫓겨났다. 거듭나서 다시 우리는 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

그래서 성경이 1장에서 쫓겨나고, 첫번째 창세기에서 쫓겨나고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에 부활체를 얻어서 다시 들어갑니다. 성경은 당당하게, '아버지 저 왔습니다' 하고 부활체 얻고 금의환향하는 스토리로 끝납니다. 이게 유대교인 들에게는 기본 이예요. 천국에 가려면 부활해야 하거든요.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메세지가 나왔어야 돼요. 그런데 기존 복음에는 그 얘기가 없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도마복음에는 있다는 거죠.

이건 밀교적으로 엄청난 얘기예요. 밀교적인 얘기는 전문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세계 거든요. 그래서 중요성을 잘 모르셔서 그렇지

뭔가 호흡조절 하고 계신 분들에게 도마복음 구절들 잘 풀어 드리면 깜짝 놀랄 얘기 일걸요. '어느 도경에 있는거냐?' 아마 이럴 겁니다. 도장경 몇권에 있는 내용이냐? '사실은 예수님이 한 얘기다' 그러면 깜짝 놀래죠. 그럴 정도의 내용입니다. 제가 나중에 하나씩 소개해 드릴께요.

기본값 이라는 얘기 되게 중요하죠. 기본값이 다르다. 하나님이 우리를 애초에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것에서 우리 기본값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고등침팬치,

제가 아까 얘기 하다가 잊어버리고 지나갔네요. 사탄은 뭘까요? 왜 갑자기 사탄의 종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사탄이라는게 다른게 아니라 이 탐진치의 기본값으로 인류가 살게 잡아주는 하나님 성령의 작용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고등침팬치로 창조 됐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성경의 논리를 존중해 주자고요. 우리는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 됐는데 애초부터 하나님 형상과 고등침팬치 모습을 같이 가지고 창조되고, 하나님 형상은 우리가 노력해야 찾게 해놓고... 그렇게 설정되어 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기독교 신화에는 어떻게 되어있어요? 원래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했는데 까불다가 쫒겨나서 기본값 재설정 되고, 하나님이 열받아서 컴퓨터에 기본값 탐진치, 웬만하게 뭔일 없으면 이렇게 가도록, 아주 성령 받거나,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서 성령을 받거나, 어떤 특별한 경우 아니면 이렇게, 스스로 자기 내면의 성령을 찾거나, 예언자가 되거나 예언자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웬만하면 이렇게 살도록 세팅을 해놨단 말이예요.

기본값이 설정 되어있으면 어떻게 되냐면? 지금 우리가 왜 하나님의 영을 못만나고 사느냐? 기본값이 우릴 계속 잡아줘요. 여러분이 방심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해주는게 아니라 다시 탐진치로 싹 돌려놔요. 이게 뭐겠어요? 이게 사탄 입니다. 사탄에 대해서 실체를 아셔야 돼요. 사탄은 하나님 성령의 작용이예요. 우리를 원죄있는 상태로 묶어두는 하나님의 영적 작용이예요. 이거를 이제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우리를 막는 힘이니까 세상의 영이니, 사탄이니, 저주의 대상으로 보는것도 맞아요. 맞는데 동시에 한 수 더 알아야 돼요. 그것까지만 알고 있으면 안돼요. 한 수 더 알아야 돼요. '그런데 왜 사탄이 세상에 존재할까? 하나님이 무능력 해서인가?' 아니예요. 지금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원죄로 인해 성령을 모르고 육신을 통해서 고초를 겪고 있는 상태, 고등침팬치 상태로 묶어두는 영적 작용입니다. 하나님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게 만들었던지, 애초에 이런 고등침팬치로 만들었던지 간에 이렇게 작동하라고 설정을 하셨을거 아니예요?

개는요? 개 기본값대로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렇죠? 개가 갑자기 일어나서 사람처럼 말을 합니까? 갑자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저 이상한 개라고 하겠죠.

마찬가지로 사람도 웬만하면 탐진치를 가지고 살게 프로그램을 해놓은거죠. 이게 사탄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만약에 평소에 사탄을 잘 모르죠? 왜 우리는 이대로 사는게 편했으니까, 사탄을 모르다가 언제 여러분이 사탄을 실감 하시냐면, 여기서 깨어나려고 해보면 사탄을 실감 하십니다.

(매트릭스) 매트릭스 영화있죠? 거기보면 스미스 요원 나와서 네오를 못벗어나게 하려고 사사건건 막죠.

사탄이 하는 역할이 뭔지 아세요? 누군가 하나가 여기서 기본값을 넘어 가려고 하면, 영적 각성을 하려고 하면 막을려는 힘이 작동합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그렇게 설정 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 넘어가려고 하면 저항하는 힘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네오가 깨어나려고 하니까 그렇게 쫒아다니면서 추적하죠.

(마왕) 이게 불경에 그대로 있는 얘기예요. 석가모니께서 견성을 하시려고 하니까 어느날 마왕이, 불교의 사탄이예요. 마왕이 자고 있는데 자기 우주가 흔들려요. '뭔일이냐?' 하니까 '석가모니가 지금 깨어나려고 한다. 내 세계를 벗어나서 다른 세계로 가려고 한다. 막아라' 해서 군대를 보내도 안되니까, 딸을 보내서 유혹하고 이렇게 해서... 끝내 못막죠. 그게 상징하는게 있습니다. 느낌 오시죠?

(중력) 여러분이 뭔가 지구의 강력한 중력처럼 지구에서 좀 올라가려고 하면 뭔가 막고있다. 자꾸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걸 넘어서야 올라가죠.

여러분이 성령 각성을 해서도 그 기본값, 사탄의 작용이 계속 있는 겁니다. 뭐냐? 다시 탐진치 세계로 돌아가자고 하는 유혹이 계속 일어납니다.

(로마서) 그걸 사도 바울이 온몸으로 느끼고 써 놓은 게 로마서예요. 성령 안에서 있을때는 너무 고상하고 자비롭고 이런데 현상 세계의 경계만 만나면 어떻게 돼요? '지나가도 날 유혹하는 것들이 저기서 지나갔나?' 이거죠. 견물생심 진리죠. 안볼때는 괜찮습니다. 보면 끌려갑니다. 확 끌려가요. 안봤을때...

안본 눈 삽니다. 이런게 나쁜 의미로 쓰이는데 사실 좋은 것에도 써야 돼요. '저가 안봤을때 마음 평온 했는데' 괜히 봤어요. 그런일을 도인들은 겪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 자녀들도 견물생심에 너무 취약해요. 왜냐? 이게 강력하게 설정돼 있어요. 두세계를 살아야 돼요. 왜냐? 여러분이 성령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고 혈육이 없어지나요? 아니요. 같이 지내야 돼요. 그러니까 이게 처음에 충돌이 어마어마하게 나다가 이겨내야 됩니다. 그래서 진정시키는게 성화예요. 이 모든게 성화의 과정이예요. 여러분이 거룩함이 승리하면서 이겨 냅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사탄의 작용에서 사탄의 마지막 저항에서 이겨냈다는 것이 예수님이 자유를 얻었다는 걸 상징하는, 40일 금식기도할 때 사탄의 유혹에서 이겨냈다. 그런게 거기서 완전한 자유를 성취했다. 완덕의 경지로 가셨다. 이걸 말하는 거지, 우리도 다 똑같이 사탄의 유혹을 겪어야 됩니다.

어디까지 갔다 왔나요?

자! 또 10분 쉬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