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17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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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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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세상에 분쟁을 주러 왔다
강의일자 2020. 02. 22. 土.
게시일자 2020. 05. 15.
동영상 길이 51:33
강의 중 인용 도서 도마복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1XipAP8HSvU



도마복음 진도 나갈게요.

《16절 세상에 분쟁을 주러 왔다》

많은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상이 자비, 이쪽 뺨 맞으면 이쪽 뺨 대고, 이런 것만 상상하시는데 예수님은 스스로 얘기를 분명히 하세요. 이건 기존 4대복음에도 있는 겁니다. '도마복음이라 특별히 셌나?' 이거 아니예요. 증명해 드릴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이 땅에 불과 검과 전쟁과 같은 ‘분쟁’(영적 분쟁)을 주러 왔음을 모른다.》

영적분쟁이요, 어떤 분쟁을 주러 왔다는 걸 모른다. 이 말씀이 모든 보살에 해당 됩니다. 모든 보살들이 사람들을, 자리이타, 이롭게 해주러 와준건 맞아요. '그러면 평화롭게 해주러 오신게 맞네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단순하지 않다는 거예요. 보살이 중생들을 건강하고 화평하게 살게 하려면 역경에 던져 넣어야 되는 거예요, 영적분쟁을 일으켜야 되는 거예요. 왜냐? 중생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탐진치의 만족이거든요. 본인 탐진치 감정에서 어떤 만족을 얻는 거예요. 탐내는 것을 이루어야 되고, 분노는 탐진, 분노는 가라앉히는 쪽으로 욕망이 성취되어야 돼요. 탐욕이 성취되서 분노가 안일어나야 되고, 자기 생각이 어리석더라도 그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성취가 되길 바란다구요. 현실화 되길 바라고, 탐진치의 적절한 만족을 중생들이 원하는데, 인류가 원하는데, 와서 평화를 준다는 건 뭐죠? 중생들이 생각하는 건 뭐겠어요? 인류가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주님이 오셨다, 메시아가 오셨다, 그러면 '나를 화평하게 해주시겠구나' 그런데 그 오신주님, 인자 생각은 어때요? 메시야 뭐예요? '이대로는 안된다' 예요, '이대로는 안된다, 인격을 뜯어 고쳐야 된다, 그대들의 인격을 뜯어 고쳐야 된다' 혈육의 자녀에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게 안하면 화평은 없다는 거예요. 밖에서 화평이 와서 평안해 질거였으면 그 전에 인류에 와서, 많은 성인들이 이미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어 놨겠죠, 그냥 쏴서 되는 거라면, 왜 어려울까요? 자기가 한명 한명이 진화해야 돼요, 한명한명이 힘들더라도

매미나 나비를 보면 변태할 때 번데기 안에서 죽습니다. 탈피 못하고 죽을 수도 있어요. 거듭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그 역경에 스스로 들어가서 자기를 단련하고 성숙시켜서 한번 거듭나야 돼요. 우리 민족 신화에도 호랑이는 굴에서 못벗어났죠, 마늘과 쑥으로 100일 못버텼죠? 사람 못됐습니다. 인내한 곰만 사람이 됐다고 하죠,

그게 상징하는게 뭐겠어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하고 똑같아요, 예수님은 이런 말씀 좋아해요, '그날 둘중에 한명은 올라가고 한명은 죽을 것이다' 이런식의 얘기 많이 하시거든요, 똑같아요, '그날 곰과 호랑이 중에 하나는 사람이 되고 하나는 사람이 못될 것이다.' 이게 도와서 될거면 예수님이 해주줘, 그건 저주와 같은 말씀을 하시겠어요? 내가 못해주니까 그러죠.

부모가 못해주잖아요, 자식이 역경에 빠질게 뻔해도, 이겨내기를 바라지, 역경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 그런 부모는 뉴스에 나오죠, 그런 부모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죠? '자식 역경을 어떻게 봐, 내가 도와서라도, 내가 문제 풀어주면 돼지' 이런식 발상, 자식 망치는 길이죠,

보살들도 그냥 도와준다는 것은 중생 망치는 길이예요, 그러니까 지금 분쟁을 안하고 있으면 분쟁을 하게 만들어야 돼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까 탐진치 안에서 욕망 성취만 되면 우리는 천국 가는 줄 알고 있단 말이예요

(양산범주) 또 하나, 양산범주라고 하는데 이 두개가 같은 겁니다. 뭐냐면? 자, 욕망을 성취 합시다. 욕망을 없앱시다. 욕망 성취하면 천국가지 않겠는가? 욕망이 성취될때 바로 천국이 열리죠? 쾌락의 천국, 중생들은 이걸 천국이라고 생각하겠죠? 또 일부는, '아니다, 하나님 믿는 다는 것은 금욕이다, 금욕을 해야 그 보상으로 천국 간다, 당장에는 쓰지만 금욕을 하면 결과물로 천국이 올거다. 당장에 천국에 갈 수 있다' 두개가 다 엉터리 라는게 예수님 말씀이죠. 이게 선이랑 똑같아요. A냐 B냐? 욕망을 성취시킬 것이냐? 욕망을 좌절시킬 것이냐? 어느게 도냐? 했을때 욕망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만 천국에 갑니다. 여기서 차원을 초월해서 차원을 깊게 인식하지 못하면, 깊은 차원까지 못 꿰뚫어보면, 성령 빼고 이걸 백날 얘기해 봤자 헛소리라는 거예요. 욕망을 눌러도 스트레스 받고, 탐진치가 좌절되니까 기분이 안좋아지고, 욕망을 이뤄도 그 마이너스 요소가 발생하니까 기분이 안좋고, 무상한 세상에서 욕망을 계속 성취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지금까지 욕망이 성취되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지금 부자인데요' 앞으로 다음일 어떻게 벌어질지 어떻게 압니까? 그거 망하면, 부자였다가 망하면 더 못받아들여요, 삶의 수준이 있어서, 심각해 집니다. 어떻게 할거예요? 그러니까 계속 욕망이 성취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거예요, 무상한 세계에서는 계속, 현상계에서라도 쾌락을 맛보려면 현상계의 무상함 이라는 것이 방해가 돼요. 그래서 하늘이 설계를 그렇게 해놓은 거죠. 하나님 찾아야 안식찾게 해놓은 거죠. 여기가 안식이고, 여기가 평화죠. 진짜 평화가 아닌 가짜 평화에 취해있어요. '저 당분간 집값도 오르고 돈도 좀 모아놔서요 괜찮습니다, 코로나도 괜찮습니다. 집안에 의사들도 있고 병실도 하나 찜해놨어요. 괜찮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고 '모든 욕망을 끊고 봉쇄해야 된다' 이런 사람도 있죠, '산에 들어가서 모든 욕망을 끊어야 우리가 천국갈거다.' 여기서 오는 평화, 모든 욕망을 끊고 산에 숨어 있으니까 또 평화가, 안식이 와요. 그 안식이 진짜 일까요? 다 가짜라는 거예요,

진짜는 어디서 와요? 성령에서, 이게 석가모니께서 깨닫고 선언한게 '고행도 안된다, 쾌락도 안된다, 선정에서 오는 쾌락은 괜찮다. 오직 진리안에서, 깨어있음 안에서 오는 법열만 아라한은, 깨달은 자는 취해야 된다.' 같은 취지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얘기, 저 얘기 안해요, '욕망 따르는 애들도 아니다, 금욕하고 있는 애들도 아니다, 그런식으로 천국 못간다' '그러면 답은 뭡니까?' '성령 받아라, 성령 안에서 차원이 그냥 높아져야 사람된다. 안그러면 고등침팬지이다'

그럼 오셨을때 분쟁을 안시키고 어떻게, 혈육의 자녀로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화를 유도할 거예요? 성령으로 가게 인도할 거예요? 영적분쟁이 일어나요, 에고가 속이 시끄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강의 듣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분들 생기는 것도 맞고, 제 강의 듣고 좋아서 성령 찾고 깨어나는 분들 있는 것도 맞지만 또 어떤 분들은 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깨어난 분들도 분쟁이 일어납니다. 왜냐? 성령이 빛이 조금 비치니까 속이 더 시끄러워져요. 어두워서 몰랐는데 성령의 빛이 비추니까 사도 바울처럼 속이 더 시끄러워질 수도 있어요. 평소에 문제인지 몰랐던 것도 문제인지 알게돼요. 그동안 늘 해오던 일이 성령을 받고 나니까 찜찜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일이 심각해 집니다. 이제는 평소대로 못살거든요, 자기 내면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에고가 충만한 혈육의 자녀들과 빛을 받은 하나님 자녀들과의 분쟁이 또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볼때는 나는 화평을 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러 온 사람이다, 어느 한 부분에서는 이런 말도 맞는 거예요, 원대한 목표는 화평과 평화겠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우리는 분쟁을 이겨내야 된다. 이 역경, 삶에서 오는 역경을 이겨내야 된다, 이겁니다.

《한 집에 ‘5명’이 있음에, 3명이 2명을 대적하고, 2명이 3명과 대적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대적하고, 아들이 아버지와 대적할 것이다.》

그럼 이런 구절들 되게 위험한 구절들이죠, 사이비교가 집안을 꼭 이렇게 해놓거든요, '아 성경에 나오는대로 되는구나,' 내가 이 사이비교를 믿겠다고 하니까 부모가 와서 나를 뜯어 말리고, 형제랑 싸우고 '역시 내가 성경대로 잘 하고 있군' 오해하기 딱 좋은 구절입니다. 정확히 이해를 못하면 이 소리는 큰일날 소리예요, 이 소리는 하나님 자녀, 진짜로 거듭난 자녀와 혈육의 자녀의 투쟁입니다. 에고의 삶과 성령의 삶이 충돌하는 거예요, 본질이, 뭐냐면? 사이비교에 빠진 사람을 부모가 와서 대적하는 것은 사이비교에서 건질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이 아니고, 성령받은 사람들과 에고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간에 대결은 본질이 다르다, 본질을 정확히, 영적분쟁의 본질이 뭐냐? 이거 아마게돈 이예요, 하나님 자녀와 사탄의 자녀의 대결, 이 대결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거예요, 분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승리해야 된다. 이긴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게 포인트구요,

《그리고 그들은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싸우면 끝이냐? 아니예요, 결국 성령이 이기고 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모두가 다 성령의 자녀인데, 결국은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런 말씀들이 참 좋습니다. 결국은 하나가 될 것이다. 자, 이걸 위해서 이 구절 자체가 공관복음에도 그대로 있거든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보실래요? 실제로 이런말씀 하셨던 거예요.

[“나는 세상을 ‘불’(성령의 불)로 태우려 왔다.]

성령의 불이겠죠?

[그 불이 이미 밝게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내가 받아야 할 ‘세례’(부활의 세례)가 있으니,]

나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나야 된다. 하나님의 세례가 있어야 된다. 나도 그거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완성될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불은 잘 안붙지, 지상에서 활활타오르게 하고 싶은데, 불은 잘 안붙지, 세상에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은 잘 안붙어요, 물에 젖어 다니는 사람처럼 불을 붙일 수가 없고, 그나마 말라서 불을 좀 붙일만한 기름 먹은 분들은 어부, 세리, 창녀 이러고 있고, 이 사회가 알죠, 사회가 변하려면 하층민 변화도 중요하지만 상층민에서도 호응을 해줘야 이 변화가 빨라지는데 잘 안붙겠구나 하는거 바로 아실 수 있죠? 불 붙여보면 알죠, 예수님은 바로 아셨죠, '아, 불이 잘 안붙겠구나, 그런데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나는 한번 죽었다, 이들을 위해서 나는 한번 죽었다 살아나야 되는데

[그 일이 완성될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에고의 말도 같이 겸해서 하는 겁니다. 양심에 어긋나지 않지만 에고의 힘든 부분도 같이 고백하시는 거죠, 목표는 뭐예요? 예수님 마음은 '불이 밝게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요. 보살의 마음이 애절하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다 정토에 갔으면, 다 보살되었으면, 성불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날까지 나는 내가 받아야할 세례도 있고,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마음이 지금 그렇게 기쁘지 않으신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부활의 세례를 받아서 불이 온 천지에 붙을 것 같으면 기쁘실텐데 나는 나대로 역할은 해야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좋지 않으신 거죠. 불이 잘 안붙으니까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그렇지 않다. 나는 분쟁을 일으키려고 왔다.]

이게 힘든 거예요, 세례를 편하게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 이 영적분쟁들을 일으켜야 되는 거예요, 그 속에서 성령의 세례만 받고 성령의 세례를 받는았는데도 싸워서 되는데 그 영적분쟁 속에서 마음을 일으켜서 세례를 받더라도 성령 받고난 뒤에 또 에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핍박과 박해가 있을거란 말이예요, 가족으로 지금 상징되지만, '가족이라 하더라도 노선이 다르면 싸움이 나는데 그걸 다 이겨내야 되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힘든 여정이 있는가' 이걸 아신거죠. '내가 평화주러 온줄 아느냐? 나는 분쟁을 주러왔다, 내 고뇌 아느냐?' 이거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요, 성자시니까 그냥 성령 쫙 쏴주시고 가세요' 이럴 수도 있지만 일이 그렇게 될일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게 있어요, 자유의지, 자기가 선택해야 돼요. 예수님은 선택하고 싶게 유혹하는거지 대신 선택해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 는 이 말도 얼마나 어려워요? 왜냐면 행복하기만 하고, 그냥 꿀빠는 거라면 사람들이 바로 선택을 하겠죠. '성령세례 받았더니 그 이후로 꿀빨고 살고 있어' 그러면 입소문 나면 다 받겠죠, 그런데 성령세례를 준 뒤에도 분쟁이 있다며 누가 하겠어요. 이거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이거 되게 심각한 겁니다. '이거 어떻게 팔아?' 이거죠. '차라리 내가 아프리카에서' 뭘 팔아야 되나요? 뭘 팔면 어려울까요? 아프리카에서 보일러 팔아야 되나요? '아 이거 어려운데, 이거 진짜 어려운 건데, 어렵다, 거기다 난 또 이제 부활의 세례도 받아야 되고' 이게 사정이 녹녹치 않으신 걸 실감나게 이야기 하시는 중에 이 얘기가 나와요. 어떻게 싸우느냐?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대적할 것이다.]

집안이 편 갈라서 싸우는 겁니다. 하나님 자녀패와 혈육의 자녀패가 영적분쟁, 아마게돈이 집에서도 일어난다. 한 사람 마음속에서도 일어날 것이고, 집에서도 일어날거고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너무 구체적이세요,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계속 싸우고 있죠? '우리도 싸워요' 이러지 마세요, 그 분쟁 아닙니다. '저희도 늘 싸워 왔는데요' 그거는 아마게돈 아니예요. 혈육의 자녀들 간의 싸움이지, 지금 여기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하셔야 돼요.

[분쟁할 것이다.” (누가복음 12:49~53)]

이 정도로 '가정이 너덜너덜하게, 갈기갈기 찢어질 수도 있는 영적분쟁을 난 주러 왔다. 내 입장 어떻겠냐?' 하는 거예요. 보살은 진짜 이런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엄하게 키워야되는 그 마음, 이 자녀가 잘못되지 않게,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야 되는 그 마음, 그럼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려면 성령 받게 해야 되는데 에고가 쉽게 따르겠어요. 성령세례 받는 것도 에고가 쉽게 따르지 않을거고, 한사람 내면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거고, 성령 받은 뒤에도 그 사람 내면에서,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 나오는 고백처럼 성령을 따르려는 양심과 성령을 거부하려는 욕심이 싸우게 되는 분쟁이 일어나게 되죠, 자, 마태복음 볼께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얼마나 말씀을 명확하게 하셨으면 복음마다 나옵니다.

[생각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내가 칼을 줄게, 스타워즈에 라이트세이버 같은 거죠. 집안 식구들 뭘 들고 있어요? 시스, 빨간 검 들고 있으면 이제 싸워야 되죠, 결국은 양심이 승리해야 됩니다. 영적 전쟁은 성령이 승리해야 끝납니다. 당연히 평화주러 오신게 맞는데 우리가 그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난관을 겪어야 되나? 이 부분, 본인도 난관을 겪어야 되는 처지, 성자라고 해서 쉽게 하고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영적 사업, 영적분쟁은 이걸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나대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쉬운 전쟁이 아니다. 여기도 또 나옵니다.

[내가 온 것은 아들이 아버지와,]

검으로 싸우는 거예요.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게 하려 함이다.]

'나는 분쟁을 시킬거야' 이겁니다. 이대로 있으면, 욕망이 좀 성취되면 천국인줄 알고, 율법만 지키면 천국인줄 알고, 이렇게 착각하고 살거 아니예요? 욕망파들은 자기 욕망이 성취되니까 천국이라고 생각할 거고, 율법파들은 금욕이 뜻대로 이루어지면 나는 천국에 갈거라고 믿고 또 살고 있을거고, 분쟁을 일으키겠다, '지금 이 중생들의 삶에 나는 파탄을 주고 싶다.' 이겁니다. '깨버리고 싶다' 제 강의에도 악플 달리는 건 그런거 아닐까요? 제 강의를 듣고 자기가 사는 마음에,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니까 강렬하게 거부하시지 않을까요? '종교, 철학은 좋은데 정치는 하지 마세요' 하시는 분도 이미 어떤 종교의 신자인 거예요. 그래서 그런거예요, 정치도 종교이거든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에 충격이 온거죠, 예전에 그런 분도 있었어요, '다른 종교 강의는 너무 좋은데 성경은 하지 마세요' 그럼 그분이 믿는 기독교 신앙에 제 얘기를 듣고 위협이 온거죠, 결국 저는 뭐라고 그러겠어요? 예수님 처럼, '저는 강의 듣는데 너무 평화로웠는데 평화가 깨져요, 이 강의 하지 마세요' 그럼 제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저는 검을 주러 왔습니다. 분쟁을 주러 왔습니다. 제 유튜브 본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기를 바랍니다.' 이러면 '저거 미친거 아냐?' 하겠지만 예수님, 진짜 보살의 마음이라면 아실거예요, 지금 코로나가 창궐하는데 누군가 백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예요, 지금 이걸줘야 되는데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안믿어요, 이게 쉬운게 아니예요, 사실 이건 눈에 보이니까 치료가 되면 쉬운건데, 영적인 거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그럼 보살의 마음은 얼마나 다급하고 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강구해서 설득하려고 할거란 말이예요, 엄청 격렬한 저항에 직면 합니다. '니가 뭘 안다고 이 돌파리야' 하면서 '하버드 의사가 아니래잖아' 하면서 권위로 누르려고 할거고, 아니 '먹으면 낫는데' 이거 가지고도 어마어마하게 싸워야 돼요, 기득권하고 싸워야 돼죠, 탐진치의 마음이 이미 기득권이죠, 욕심의 마음과 싸워야 돼요, 자기 내면에 있는 욕심과 인류 모두의 욕심과 싸워야 돼요, 내 말에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는 분노한 사람들이 막을 겁니다, 그게 핍박과 박해예요, 예수님 말씀이 진리에 맞을수록 당연히 핍박하고 박해하려는 세력도 더 커지는 거예요, 큰 힘을 가지고 저항하려고 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왜? 예수님 말씀의 자기의 안락을 깨니까, 자기의 탐진치를 좌절시키고, 더욱 분노하고, 어리석게 만드니까,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보시구요, 자 그 뒤에 얘기가 좀 더 있어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가 될 것이니,]

이 소리는 식구간에도 양심, 욕심, 패 갈리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게 진짜로 성령으로 거듭나고 나면, 진짜로 성령으로 깨어나고 나면, 혈육의 자녀들하고 충돌이 나게 되어 있는데 가장 가까운 자기 식구랑도 충돌이 난다는 거예요, 식구가 최고인줄 알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나면 자기 혈육으로 이어진 식구들 보다 성령으로 이어진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보세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고,]

이것도 사이비 교주가 좋아할 말이죠, '네 부모님이 교주인 나보다 우선이면 너는 내 신자가 아니다' '네' 하고 그럴때 빨리 나와야 돼요, '아닙니다, 저는 교주님을 더 믿습니다.' 그러면 멀리가는 거죠. 예수님은 그런 차원이 아니죠, 여기서는 성령이예요, 성령의 대리인으로써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성령의 화신이고 성령의 대리인인데, 성령보다 부모를 더 챙기면 안된다. 혈육을 챙기고 있으면 안된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

성령은 자기 자식이나 식구들 보다 더 네가 사랑하고 거기에 모든걸 걸어야되는 그런 것이다.

[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

그러니까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는 거는요,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은 성령의 진리입니다. 각자대로 자기 안에서 성령을 찾고 성령이 인도하는 십자가의 진리에 자기 에고를 못박아야 돼요. 자기대로 자기 에고의 비양심을 못박아야 돼요.

에고를 다 못박으면 안돼죠, 에고의 비양심을 못박아야 돼요, 저는 탐진치 자체를 거부하라고 말씀 드리지 않습니다. 성자들도 그렇게까지 얘기하지 않으세요, 어쭙잖은 성자들이 탐진치를 없애라고 그래요, 탐진치가 아니라 실제로 뭘 없애야 돼요? 탐진치는 기독교적으로 하나님이 만들어준 겁니다. 다만 뭘 없애야 돼요? 죄를 없애야 돼요, 탐진치 자체가 죄가 아니예요, 카톨릭에서 7죄종이라고 인간의 죄악의 근원으로 7가지 마음을 설정하는데 거기 탐진치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카톨릭에서도 뭐라고 그래요? 7죄종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그래요. 이게 죄로 인도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지, 성령 놓치고 그것만 따라가다보면 바로 죄가 되는 그런 마음이 탐진치예요, 탐진치를 없애는게 아니라 뭘 없애야 돼요? 비양심을요, 죄악을요, 비양심으로 변질된 탐진치는 없애야 되는게 맞는데 탐진치 자체는 없애는게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본성이예요, 이걸 죄성이라고 하는 것은 탐진치 자체가 죄가 아니라, 탐진치가 늘 우리를 죄로 인도하니깐 죄성아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의 죄성이 탐진치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오묘한 차이가 있어요 구분해서 보세요, 그래서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 따르라는 것은 하나님 뜻을 어기면서도 탐진치를 이루겠다는게 비양심 이예요,이거하나 정리하고 갈께요,

(사탄) 사탄의 마음이 있고요, 성경에서 사탄의 영적 작용이라고 그러죠, 원죄가 있다면, 이걸 좀 구분해 보시면 원죄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과 단절된게 원죄 때문이죠, 하나님과 단절되게 만든거예요, 그래서 원죄 사해지는 것은 쉬워요, 성령세례 받고 성령 받으면 죄사함 받아요, 원죄는 그때 털립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안털리는게 뭐죠? 원죄랑 짝이되는거? 원죄말고 본죄가 있어요. 자범죄라고 하는 '내가 짓는 범죄' 이것은 하나님하고 우리가 친해지는 것을 막는 하나님을, 내 안에서 성령을 인식시키는 것을 막는 죄가 원죄였습니다. 그래서 원죄는 사해질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고, 성령을 받으면, 성령 받았다는 것은 원죄의 죄사함을 이미 받은 거예요, 문제는 성령 받은 후에도 하나님과 온전한 합일은 못돼요, 왜? 자범죄 때문에, 이 본죄를 계속 짓는단 말이예요, 이건 우리 혼이 짓는 겁니다. 혼이 계속 지어요, 이 원죄는 혼과 영의 관계죠, 혼이 영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런데 영을 인식 했더라도 이 혼이 계속해서 본죄를 짓는단 말이예요, 그래서 영을 알건 모르건 이 혼이 계속 죄를 짓고 있는 그러면 이 죄는 탐진치로 짓겠죠. 탐진치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만 탐진치만 따라가다보면 죄로 인도 돼요.

☆ 그럴때 이 사탄의 영은 뭐냐면 탐진치 자체가 아니라 뭐 겠어요? 비양심적 탐진치로 인도하는 영적 작용을 말해요. 그런 영, 영의 작용, 뭔가 자꾸 죄로, 비양심 탐진치가 뭐겠어요? 죄죠, 죄 중에서 본죄죠, 자꾸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 짓는 쪽으로 가게 이끄는 그 영의 작용을 사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려면 언제 벗어나겠어요? 죄를 더이상 안지을때요, 탐진치가 없어질 때가 아닙니다. 이런 마음은 인간의 기본 속성, 그래서 예수님도 '선한이여' 하니까 '나 그렇게 선하지 않아, 하나님만 선하지 혈육을 가진 존재들은 완벽하게 선할 수가 없어, '나 선생아냐' 지난 시간에 이런 말까지 했잖아요. 성자와 성부, 성령의 차이를 분명히 얘기 합니다. '혈육을 가진 존재는 완벽하게 선할 수는 없어' 그 얘기는 뭐냐면, 탐진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나도 탐내는 마음도 있고, 분도의 마음도 있고, 어리석음도 있어요. 여전히 있는데 그게 티 안나지? 이거죠. 티 안나는 이유는 성령이 51% 이상 나를 이끄니까, 사탄의 힘을 성령이 제압했기 때문에, 그러면 '사탄이 사라졌나요?' 아니요, 사탄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작용합니다. 다만, 성령의 힘으로 완벽하게 제압한 자가 누구겠어요? 이긴자죠. 사탄을 이긴자, 성화만 되어도 이긴자라고 했죠, 왜냐면? 지더라도 이겨놓을 수 있어서 이긴자고, 예수님 같은 경우는 완전히 이긴자요. 사탄이 죽은 건 아니죠, 그런데 예수님에게 마귀가 어땠어요? 힘을 못쓰는거죠. 힘을 못쓰게 만드는 게 진짜 이긴자 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이긴자, 그럼 사탄이 뭔지 알아야 이긴자가 나오죠. 지금 여러분 탐진치랑 싸우고 있으면 안돼요, '예수님 저는 탐욕이 있어서 공부 못할거 같아요, 예수님 저는 화가 많아서 공부 못할것 같아요, 예수님 저는 어리석어서 안될 것 같아요' 이게 아니예요, 그러면 예수님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 헛소리 할 시간에 성령 받아라' 하겠죠. 그럼 성령을 받았어요, 탐진치가 사라지나요? 안사라져요.

사도들 각자도 다 어리석음과 탐욕과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끼리 서로 이견나서 싸우죠, 사도 바울이랑 베드로랑 이견 나서 싸우고 서로 화해하기도 하고 이렇게, 사도들 간에도 다 달라요. 그게 단순히 개성 차이가 아니라 각자 자기 탐진치가 있거든요. 자기 마음에는 이스라엘 먼저 구원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이방인 우선시 한 사람들은 '이방인 먼저 받아야 하지 않나' 이런 사람도 있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게 달라요, 화나는게 달라요, 탐진치가 다르다는 얘기는 어떤 사람은 어떤 일에 화 안납니다. '뭐 저런 일 가지고 그래'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 일이 막 화나는 일일 수 있어요. 이 사람은 여기에만 화 안내는 거지, 그럼 탐진치가 없냐? 그런 분은 또 엉뚱한데 화를 내요, '왜 저런걸로 화를 내지?' 하는 것에 화를 냅니다.

탐진치는 기본적으로 다 있는데 조금씩 발현되는게 다르기는 하지만 그걸 통틀어서 탐진치를 양심, 성령의 뜻을 어기는 쪽으로 인도하는 양심의 작용이 사탄이기 때문에 사실 사탄은 하나님의 작용입니다. 사탄이 뭐라고 존재하겠어요?

(자유의지) 하나님이 이원성의 세계를 만들어 놓으니까 이원성의 세계에서는 선을 자유의지로 해야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유의지로 선을 한다는 것은 악의 유혹이 있다는 거예요, 그 악의 유혹은 필연적으로 생겨요. 그 악의 유혹을 우리가 사탄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탄이 없다면 하나님의 거룩한 자유의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성자들, 하나님의 진정한 거룩한 자녀들을 뽑아낼 수가 없죠. 악의 유혹이 없다면 기계적으로 그냥 선을 하겠죠. 그런데 악의 유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진리를 성령 안에서 깨닫고 택하는 존재들이 성도고, 성자가 되는 거죠.

'하늘은 왜 그렇게 했데요?' 그건 저도 모르죠, 돌아가는 형세가 그러니까 그렇다고 하는 거죠,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공부 안하면 안되게 만들어져 있고요, 그렇죠? 공부하면 또 얻을 수 있게 해놨단 말이죠, 그러면 하늘의 뜻이 공부하라는 거고, 공부 안해서 인생에서 날벼락 맞는거 보면 '아, 선하게 살아야 겠구나' 하고 우리 일반인들도 기초적인 감각은 있잖아요? 그런데 좀 더 나아가서 영성이 밝은 분들은 이게 보인단 말이예요. '어떤 공식이 있는 것 같다.' 그 공식을 찾아보니까 이런 거예요. '인류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살지? 원죄 때문인것 같다' 실제로 아담의 죄 때문에 이렇겠습니까? 그건 신화지, 우주에서 인간을 낼때 하늘이 자유의지를 준거예요, 악의 가능성을 인정할때 자유의지가 있는거지 악으로 못가게 해놓고 무슨 자유의지가 있어요?

'아들아, 준우야 너 마음대로 해라, 너 커서 하고 싶은거 다해라, 그런데 절대 사학과는 가지말고, 철학과는 안되고, 뭔 안되고, 뭔 안되고' 다 막아놓고 의사 되는 길만 열어 놓고 '너 마음껏 해라' 중국집 가서 사장님이 '마음껏 시키세요, 저는 짜장면' 그러면 눈치 보이잖아요? 자유의지를 준거 같은데 이상하잖아요? 자유의지를 줘놓고 박탈하는게 아니예요.

자유의지를 진짜로 줬어요, 그 근거가 뭐냐? 엄청난 흉악범들이 나오잖아요. 자유의지를 인류가 받았으니까, 악의 유혹도 듬뿍줬단 말이예요. 그걸 이겨내라 이거예요. 이게 싫어하는 분들은 '모든건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분이 아닙니다' 아니예요, 하나님은 시험하는 분이예요. 살아남은 자만 데리고 갑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살아남은 자만 데리고 갑니다. 마음은 다 구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스스로 거듭난 자 외에는 천국에 못데리고 가요. 그러니까 '너희들 유황불로 직행할 도리 밖에 없어' 그런데 사랑의 마음이 있으니까 한명이라도 건질려고 애쓰는거지 다 구원해줄 수는 없다구요. 이 사실도 얘기를 해줘야 돼요.

예수님도 '분쟁을 주러왔다' 고 본인 입으로 얘기를 하잖아요. '내 말 들으면 에고들 간에 싸움날 걸, 필연적으로 싸움날 걸' '화평을 주러 온 분이 왜 그래요? 당신 보살 아닌 것 같네요, 성자도 아니예요' 라고 하더라도 그러건 말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건 네 사정이고, 내 사정은 달라' 보살이나 성자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니까, 자비의 화신, 인내의 화신, 내가 때리면 맞을 것 같고, 지나가다가 예수님 때리면 어떻게 될까요? 졸라 맞을걸요, '내가 마구니를 쫓아 주겠다' 하고 아마, '네가 마귀가 붙어서 그래' 논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말에 속지 마시고 본질이 그거예요, 말에 속지 마시고 그래서 ① 성령 드러났냐? ② 원죄 떨어져 나갔냐? ③ 사탄 제압했냐? 이게 본질들이예요. '인간을 어렵게 만들고, 하늘은 왜 그렇게 하나요?' 그런 소리할 시간에 원죄 털고, 사탄 이길 능력을 배양하세요, 무슨 얘기인줄 아시겠죠? 본질이 이거예요, 하나님 탓 하다가 일생이 갑니다. 그럼 이거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께 따질때 따지더라도 뭘 하면서 소송준비를 해야돼요? 원죄 극복하고 사탄 극복하면서 준비하셔야 돼요. 하나님에게 따지더라도 할 건 하면서 하셔야 돼요. 우리 귀한 생명의 시간이 소비되는 것을 방치하지 마시고, 이 귀한 시간 어디다 쓸거냐?

이거 알고나면 여러분 인류는 한가하게 이럴 시간이 없어요. 일생을 공부하고, 성령에 대해서 연구하고, 명상하고, 묵상하고, 또 공부하고 이게 굴에 들어갈 시간도 없어요. 그냥 집에서 하셔야 돼요. 어디 산 찾고, 수도원 찾고 한가한 분들 입니다. 풍강이 어떤가 보고 이런거 한가한 분들, 그냥 본질을 바로 찾아야 돼요, 그냥 내 안에 이미 임해계신 성령 바로 만나야 되고, 그걸 글로도 연구하고, 말씀으로도 연구하고, 성령체험도 하고, 내 삶에서 성령 뜻을 구현해 보면서 사탄의 유혹, 탐진치를 끊는게 아니라 비양심적 탐진치를 계속 끊어내면서, 따르지 않으면서 성령의 뜻대로 탐진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죄로 향하지 않게 이끌어 내는 거예요, 이 공부가 안착하면 그 분은 최고의 성도고 성자가 될 수 있는 성자 후보생이죠,

수도원 찾고, 예수님이 수도원 찾은적이 없는데 수도원 왜 찾으시고, 그런 수도원 반대 하신 거예요, 에세네파에 반대하고 시장통에 뛰어든 분 제자들이 왜? 좋은 터에 수도원 짓고 거기 들어가서 나오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 성령의 인도가 아니예요. 분쟁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예요, 분쟁을 피하고 싶다. 싸우지 않고 싶어서 그래요, 자기 에고랑 싸우지 않고 싶어서, 타협안을 자꾸 찾는 거예요. 자기 에고랑 타협하는 거예요. '욕망을 끊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분은 부자들 아닐까?' 지금 한국교회의 기본적인 논리 입니다. '부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더 받고 있다' 다 착각인거죠. 에고들이 좋아하는 논리예요, 자기가 편한 논리에 타협을 해버리고 진정한 분쟁에 뛰어들지 않는다니까요. 진정한 분쟁에 뛰어들려면 지금 당장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몰라해버리시고 바로 성령에 접속을 하셔야 돼요. 내가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순복을 해야돼요. 어렵지도 않아요

여러분 지금 가지고 계신 재산 저에게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렵지 않아요 가난한 이웃에게 다 나눠줘라도 아니예요. 저는 그런 오버를 바라는게 아니라, 진짜 무소유요. 지금 여러분이 내 혼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감정, 오감을 다 몰라 해버리시고 영에, 성령에 귀의하시고 온전히 순복할 수 있는지? 영적분쟁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이걸 에고가 또 저항할 거예요, 사탄이 인도할 거예요. '그러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너 이렇게 몰라하고 성령 만난다고 네 삶 나아질 것 같아?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돈을 더 벌고 있다는 걸 기억해' 이렇게 자꾸 '너 그렇게 안일하게 수행해서 천국 갈거같아? 지금 너 몰라하는 시간에 남들은 빡세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걸 기억해' 그럴싸하죠? 그럴싸하죠.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잘 안먹힌 거예요. 불이 안붙은 거예요, 쾌락파와 이 고행파들이 예수님 말씀을 안들은 거예요. '저렇게 안일하게 도 닦아서 천국 간다고? 되나보자' 예수님이 절대 하나님 자녀일리가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왜? 율법을 안지키는 걸 보고, 손도 안씻고 먹죠, 죄인들하고 밥먹죠, '제가 하나님 자녀면 나는 하나님이다' 에고랑 타협한 사람들이 이런식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분쟁을 피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잘살고 싶었던 사람들, 세상에서 천국 간다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 세상에서 부귀영화 독점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타협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그걸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진정한 평화라고 착각을 하니까, 예수님이 평화주러 온 줄 알면 '나를 더 잘살게 해주시겠네요, 내 에고 삶을 더 풍성하게 해주시겠네요' 라고 기대하니까 예수님이 오죽하면 '난 너네 싸움 붙이러 왔는데, 한번 죽어봐라' 이런식의 얘기가 왜 나올까요? 본질이 이런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화평이 화평이 아니다.

도마복음 시작부분부터 있었죠? '너희가 성령 받으면 혼란에 빠질거다, 놀랠거다, 결국은 너희가 그것을 승리로 이끌어 내야된다. 그 뒤에야 진정한 안식이 온다' 그러니까 성령을 찾고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삶속에서 사탄과 싸워가면서 평화를 얻어야지 사탄과 싸우지 않고, 지금 이 부분은 교회에서 하는 말 같네요, 여러분 사탄과 싸우지 않고 세속에서 성공하면 행복할줄 아세요?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이런 말 들으면 일반인이 들으면 되게 거부감 드는데요, '뭘 자꾸 싸우라는 거야?' 제가 아니고 예수님이 그렇게 얘기 하셨어요.

[자신의 생명을 얻으려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 10:34~39)]

이게 이순신 장군이 한말 같은데 약간 이상하죠? '자신의 생명을 얻으려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요'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나를 위하여' 그러면 사이비교주가 딱 써먹기 좋은 말이잖아요. 이것도 우리가 잘 해석하자구요. 그러니까 자신의 생명, 육체적 생명에 집착하는 자는 영생을 잃을 것이다. 이 말입니다. 앞뒤 생명이 의미하는게 달라요, '혈육의 안녕만 추구하다가는, 혈육의 식구만 챙기고, 혈육의 안녕만 추구하다가는, 성령 놓쳤다가는 너희 작살나' 이겁니다. '영생 못 얻는다' 는 것은 '영생 원래 바라지도 않았어' 이게 아닙니다. 지옥 간다는 소리죠. 유대인에게 '영생 못얻어' 이거는요 사망에 빠진다는 거, 영벌을 받아서 지옥 유황불에 던져진다는 것을 의미해요. '한쪽은 천국 가는데 너느 지옥 가는거야' 이렇게 얘기해야지 실감이 나지 '영생 못얻는거야' '애초에 영생 얻을 생각도 없었어' 이러면 안먹히겠죠, 여기서 말하는 의도는 그거예요. '나를 위하여' 이거는 성자니까 '성령을 위하여' 예요. 지금 예수님은 성령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성령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자는, 육신의 생명도 초계처럼 버릴 수 있는 자는 영생을 얻을 거야' 이걸 어느 교주가 한 에고를 위해서 이 말을 해버리면, 그 놈은 진짜 지옥 맡아놓은 거죠. 그렇죠? '비켜, 나는 프로 지옥러가 될거야, 이 구역 지옥러는 나야' 이렇게, 혼자 그냥 지옥에 뛰어드는 사람이구요. 이 말을 잘 이해해야 됩니다. 성인들의 말씀은 성령 안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완전히 잘못 해석돼요. 에고가 이걸 마음대로 풀어버리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에고는 에고들의 말이 편하기 때문에 거기로 뛰어가요. 사이비교로 잘 갑니다. 예수님 말씀 믿기보다 사이비교주 말 믿는게 쉬워요. 왜? 에고를 다 안배해서 얘기하거든요. 에고가 원하는 걸로 얘기합니다. '욕망을 성취시켜줄게' 아니면 '나 봐라, 엄청난 고행을 하지? 나 겨울에 난방기구 없이 텐트에서 3개월간 나 고행했다' 그러면 '와~' 합니다. 여러분 힘든 분들은 지금 집에서 더 엄청난 고행을 하고 계세요. 보일러도 끊기고, 가스도 끊기고, 그럼 그 분들 찾아가서 도인이라고 하지 그러세요? 그러니까 자기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어차피 말 안듣겠지만 부자들에게 가서 도를 묻고, 고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도를 물으세요, 그게 진실이라고, 그런데 그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자기 맘대로 진리를 자기들 유리할때, 유리한대로만 활용해 먹을 뿐이예요. 자 이렇게, 이 얘기가 뭐 이렇게 할 얘기가 많죠? 별 얘기도 아닌데,

아무튼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인 전쟁을 겪기를 바라십니다. 저도 그래요, 저도 여러분이 욕심과 양심의 투쟁에 뛰어들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보면 되게 이상해 보이죠? 그래서 불교에서 보세요, 아공 얻은 사람은 '일체가 무상합니다, 일체를 초월해서 열반에 들어갑시다' 열반은 불교의 하나님이죠? '이 에고의 세계를 초월해서 열반에 들어갑시다, 에고라는 건 다 무상한 겁니다.' 법공, 일체 진리가 원래 참나의 작용입니다. 이게 참나, 성령 자리잖아요. '일체가 하나님 신비입니다.' 같은 소리예요. '일체가, 만법이 공성, 참나의 작용입니다.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니 선악도 없는 겁니다. 선악도 다 하나님의 작용입니다.' 여기까지 공부한 사람들은 진짜 속편한 사람들 이예요.

그런데 구공, 공 안에 뭐가 들어있더라, 십자가의 진리가 들어있더라, 불교에서는 이 십자가의 진리가 육바라밀이죠, 육바라밀을 따르지 않으면 악이 되고 육바라밀을 구현해야 선이 되니까 선악은 엄정하게 다르고 선의 과보와 악의 과보가 다르니까 악은 절대 하지말고 선만 해라, 너만 그럴게 아니라 온 우주 중생을 다 이렇게 만들어 놔라, 이 구공을 모르면 저에게 그렇게 비방해 온다니까요, 아공만 아는 사람들이, 에고가 공한줄만 아는 사람들이 '뭘 그렇게 너는 탐진치가 많냐? 탐진치가 많기도 하거니와 탐진치를 없앨 생각도 없다' 저는 없앨 생각이 없죠. 비양심을 없애야지 탐진치를 왜 없애요. 제 탐진치가 미쳐서 죄로 변할때 쳐내야지 죄로 변하지도 않았는데 왜 제 탐진치를 쳐내요? 제 탐진치는 하나님이 준거예요, 제거예요, 왜 없애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 탐진치 빼면 여러분 인생에 뭐가 있어요? '아, 내인생' 하면, 인생이라는게 탐진치예요, 뭐 먹었었지, 행복했었지, 시험 합격했었지, 다 탐진치예요, 탐욕 성취된 얘기만 하고 있어요, 맛있었지 뭐했지... 그때 어디 관광가서 좋았지, 풍경 좋았지, 오감 만족 다 오감 만족 아니면, 생각, 감정 만족스러웠던 거, 그게 내 인생 전부인데 탐진치를 없애면 인생 전부를 없애라는 건데, 아공파들은 에고 부정이니까 그렇게 살라고 하시고, 법공파는 일체를 그냥 수용해 버려요 '선악도 본래 공하다' 이런 분들이 어디 룸 가셔서 '룸도 공하다' 이러실 분들 이예요, '남녀가 본래 공한 법' 이러면서 별짓 다합니다. 선악이 공한줄 알아요. 이거 다 엉터리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볼때는 저희가 주장하는 보살도 라는게 맨 선악만 따지고 있고, 답답해 보여요. 고정관념이 선악을 넘어서야 수행인지 자꾸 선악을 따지고 있으니까 답답해 보이죠, 그러니까 이런 예수님 말씀 이해되겠어요?

여러분 법공이나 아는 인도 성자들, 마하리시, 마하라지 이런 성자들 말을 가지고 예수님 이 얘기를 풀어볼게요.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온게 아니라 분쟁을 주러왔다' '이거 미친놈일세' 예요, 아니 곧장 몰라하면 바로 평화가 오는데 왜 분쟁을 일으켜요? 잘못된 발상이죠, 분쟁을 왜 일으켜요? 왜요? 선이 악을 이기게 하려구요, 이건 보살정신에서만 이해가 됩니다. 구공의 보살정신에서만 이해가 되지, 초/중/고등과정 이라면 초/중등과정에서는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초/중등과정이나 아는 사람들이 어디가 있어요? 산에 가서 봉쇄하고 안나오는 거예요, '선악도 하나님의 신비요, 모든게 하나님의 신비구나' 하고 들어가서 안나옵니다. 악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발상이 없어요, 말로야 있죠? 악으로부터 사탄으로부터 이겨내겠다는, 그것을 이 세상까지 확장을 못시키는 이유는 절박하지가 않아요. 왜그러냐? 하나님의 신비 안에서 이미 평화를 얻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아주 얕은 평화인데, 성령에서 오는 얕은 평화도 또 깨져야 합니다. 그래서 도마복음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성령을 찾고도 또 혼란에 빠지고, 놀라고 해야된다, 계속 영적으로 난리가 나야된다. 그래야 진짜 나를 닮은 쌍둥이 성자가 될 수 있다' 중간에 안식해 버리면, 그냥 에고의 세계에 안식해 버려도 안되는 거고, 성령 좀 만났다고 성령 안에서만 안식한다던가 이 세계의 선악의 영적전쟁에 뛰어들지 않으려고 하고, 영적전쟁에서 열외해서 쉬려고 한다던가 이런 태도들은 다 예수님의 태도가 아닙니다. 자, 2번 각주 볼께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성령’(I Am)을 각성하게 되면, 안으로는 ‘성령의 법’을 따르는 ‘속사람’(양심)과 ‘죄의 법’을 따르는 ‘겉사람’(욕심)의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안에서도 이미 전쟁이 일어납니다.

[밖으로는 ‘혈육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의 분쟁이]

한 가족 안에서도 벌어지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 것이다.]

결국은요? 진정한 평화를 주러 오신거죠? 진정한 안식을 주러 오신거지만, 이 땅에 지상천국을 이루려고 오신거지만, 가는 과정에서는 분쟁을 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분쟁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영적 분쟁을 승리로 이끌어 모두의 마음에서 속사람이 겉사람을 제압하고 ‘성령의 법’이 승리할 때, 모두가 다]

다 함께입니다, 다 함께

[‘하나의 성령’안에서 안식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에 있는 사도 바울의 내면의 영적 분쟁의 고백 같이 보죠.

[“그러므로 내가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도 역시 어때요? 사탄이, 악이 함께 있더라는 건 뭐예요? 내 안에 악이 함께 있더라는 거예요, 난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혈육의 자녀더라는 거예요, 두가지 기본값을 갖게 된 것 뿐입니다. 기본값이 완전히 바뀐게 아니예요,

[나의 ‘속사람’(양심,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으로는]

영혼이라고 했지만 혼이죠, 영의 작용을 거듭난 이 혼은, 혼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몸의 다른 부분 속에서 ‘한 가지 다른 법’(죄의 법)이]

사탄의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몸의 다른 부분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봅니다.” (로마서 7:21~23)]

그냥 끌려가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이겁니다. 죄의 법에 그냥 끌려더라는 거예요, 왜? 탐진치가 제시하는게 너무 유혹적이예요, 안갈수가 없는 거예요.

(강의냐 맛집이냐) 여기까지 강남역에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강남 토즈까지 와서 들어갈까말까 하실때 즈음에 옆집에 내가 꿈에 그리던 맛집이 있다면 여기서 어떤 분은 들어오시겠죠, 그런데 어떤 분은 '내가 오늘 여기 오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간다구요, 그러니까 에고에게는 모든게 하나님의 인도로 보여요. 그러니까 끌려가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는 하나님 인도인 줄 아는데 이렇게 성령을 받고난 바울 눈에는 이게 사탄의 유혹이라는게 보이는 거예요. 성령을 받고나면 영적 분쟁이 더 심화되더라는 거예요, 왜? 지금 일반인들은 영적 분쟁이 있다고 해도 사실 그게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으로 안보여요. 다 하나님의 인도같죠? 나에게 오는 축복같고

(은행털기와 양심) 러분 보세요, 어느날 큰 맘먹고 은행을 털러 갔어요. 그런데 오늘은 오긴 왔는데 내 양심이 허락 안하는데 욕심이 절박해서 왔어요. '진짜 나 이거 아냐, 아닌것 같아' '가자' 딱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경비가 놀러갔네요, '와, 이건 하늘이 인도한거다, 오늘이다' 이건 '하늘이 이끄셨네' 라고 판단 하시겠어요? 안하시겠어요? 범죄자 입장에서는 할 수 있죠. 살인하려고 막, 그런데 사람들이 막 눈 부릅뜨고 다녀서, '만만해 보이지 않는데, 오늘은 이거 아닌 것 같다, 하늘이 이거 하지 말라는 것 같다' 이러는데 갑자기 눈풀린 사람 하나가 지나가면, 저 사람이다 하면 '아버지 감사합니다. 보내주셨군요'

이런 생각 할까요? 안할까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안하더라도 분명히 할겁니다, 우리도 어떤 일 하다가 진짜 안되서 포기하려고 할때 길이 열리면 하늘이 열어준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에고가 착각한다니까요, '아버지가 저분을 나에게 보내주셨구나' 이렇게 말은 안하더라도 비슷한 감정은 먹게 됩니다. 그러니까 분쟁이 속에서 안일어나죠, 에고가 미미하게 양심의 소리를 듣는 상태에서는 제대로된 분쟁이 안일어나요, 그러면 언제 분쟁이 일어나요? 성령 받으면 분쟁이 나요, 성령 받을때도 분쟁이 나겠지만 받고난 뒤에가 심각합니다. 이제 하나님 자녀와 혈육의 자녀가 본격적으로 붙게돼요. 이때 이겨내셔야 되는데, 이때 타협해 버리면 에고의 상태로 다시 잠식되 버리겠죠.

이런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당시 남아있는게 이런 구절이지 디테일한 얘기를 엄청나게 해주셨을 거예요. 심법들을, 이거 완전 실전팁들이거든요. 그 중에 일부만 남아있는 거예요. 사도들이 그 당시 다 기록했겠어요? 기억에 남은 것들만 살아남아서 전하는거죠. 녹음기가 있겠어요? 사도들이 자기들에게 와 닿는것만 기억했겠죠. 그나마도 그게 다 정리되었다고 볼 수도 없죠. 이런거 하나를 보면 분명히 그 당시에는 구체적인 영적 개발의 실전팁들이 논의됐었다고 봐야 맞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여기까지하고 10분 쉬었다가 다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