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35강
| 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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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2 | 43 | 49절, 67절 | ||||||
| 부제 | 그대 안에 있는 것을 낳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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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일자 | 2020. 09. 26. 土. |
| 게시일자 | 2021. 04. 02. |
| 동영상 길이 | 38:29 |
| 강의 중 인용 도서 | 도마복음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qerlN3P3M1o |
안녕하십니까? 도마복음 먼저하고 또 이후 진행하겠습니다. 도마복음 오늘은 68절부터 시작입니다. 글들이 짧아서 68, 69, 70, 71절 이렇게 4개 준비해봤습니다. 양이 얼마 안되서 의외로 빨리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자, 한번 보죠.
68, 69절은 또 내용이 통해요. 보시면 익히 잘 알던 내용이시기도 할텐데 좀 맛을 달리해서 보겠습니다.
《68절 미움과 박해를 받는 자들》
이걸 보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들이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을 때 그대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여기까지 익숙하시죠? 익숙하신 이유가 있어요.
각주 1번 보세요. 마태복음 5장 10절이면 유명한 팔복 입니다. 8가지 축복, 예수님이 축복해준 거,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 축복 받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 잘 아시죠? 그 중에 마지막이 이거에요.
[정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들은]
양심을 지키려다가, 성령의 뜻을 따르려다가 혈육의 자녀들에게 박해를 받은 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다]
그들에게 성령이 더욱 임하여 하늘의 왕국으로 인도할 거다. 이제 이런 내용이었죠. 이거를, 68절을 조금 다르게 풀어보는 게, 여기서는 지금 팔복 중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혈육의 자녀에게 핍박받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핍박받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 그래도 양심 지키려는 자들, 그래도 하나님 위하는 자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왕국을 차지할 거다. 이런 스토리였다면 도마복음은 좀 다르게 풀어 볼게요. 왜냐면 69절 때문에 그래요, 69절 내용을 미리 한번 볼까요. 비슷한 내용인데 좀 맛이 다릅니다. 아, 68절 마지막 구절 하나 안 읽었죠.
《그대들이 박해를 받았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말이 또 재미있죠?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그대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여러분이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축복받을 거다. 왜냐? 박해를 받았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재밌죠? 이거 자세히 풀어 볼게요.
69절 한번 가볼까요. 같이 이 두 이야기는 풀어 볼게요.
《마음 속에 박해 받는 자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의 마음 속에서 박해를 받는 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게 좀 맛이 달라지죠? 그러면 마태복음하고 많이 달라지죠? 마음속에서 박해를 받는데요. 여러분 마음 속에서 박해를 받는데요. 누구한테 박해를 받죠? 여러분 마음 안에 이야기인 거에요. 여러분 마음 안에 이야기예요. 제가 늘 그리던거 일단 한번 그려 볼까요. 여러분 이게 여러분의 에고, 자아의 마음이라면, (색을 달리해서) 성령, 자, 성령이, 십자가의 진리의 영이 여러분 마음 안에 임하고 있다. 그러면 이 마음, 진리의 마음 그대로 따르려는 성령의 마음이 있겠죠? 이게 속사람, 양심이라고 우리가 아는 거구요. 자, 이건요? 진리를 따르려는, 성령의 진리를 구현하려는 마음이 속사람이고, 양심이라면, 이 마음은요? 예, 탐진치의 마음, 자기만 아는 마음, 나와 남을 쪼개는 마음, 이쪽은 나와 남은 하나로 보는 마음, 그래서 이거는 겉사람에 해당되겠죠? 욕심에 해당됩니다. 이 둘이 싸우는 거예요. 누가 51% 이상 먹느냐에 따라서 이긴자가 결정되죠. 자, 속사람이 이겨야 이긴자죠, 겉사람이 이겨버리면 죄의 종이 되는 거고, 속사람이 이기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고, 그렇죠?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박해를 받는 다는게 69절에 가면 뚜렷해져요. 여기서는 여러분 마음 속에서 누가 박해를 해요? 성령의 진리를 구현하려고 하니까, 사랑, 남을 사랑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겸손하며, 지혜롭게 살려고 했더니 이 모든것을 성실하게 실천하려고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요? 여러분 마음 안에서 탐진치가 박해를 하는 겁니다. '그따위로 살래?'하고 '그따위로 살 거야?' 이렇게 박해를 해오는거죠. 이렇게 박해를 해오니까 좀 밀리죠? 겨우 자라났던 성령의 마음이 확 쪼그라들고 욕심에 마음, 질투의 마음, 분노의 마음들이, 탐욕의 마음들이 확 커지면 어떻게 돼요? 무지와 교만의 마음들이 확장되버리면 이게 박해받는 거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거예요. 그들의 마음속에서 박해를 받는 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여러분 박해를 받으면 복 받는데요. 왜냐?
《그들은 아버지를 알게 된 자들이다.》
박해를 왜 받는지 아세요? 성령을 만났기 때문에 박해가, 진정한 박해가 시작된 겁니다. 그전에 박해받는 건 박해인지도 몰라요. 좀 기특한 생각했다가 욕심한테 훅 끌려가 버리면 자기가 박해를 받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박해를 받는 줄 안다는 건 뭐예요? 성령 체험을 했다는 거예요. 성령 체험한 사람들이 박해받는 줄도 알아요.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박해 받는 자들은 축복받을 거다. 왜? 이미 축복을 받았어요. 아버지를 알았거든요. 아버지 알았으니까 축복받은 거죠.
《굶주린 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성령 안에서 성령의 뜻을 구현 하려다가 박해를 받고 성령의 뜻을 구현하려다가, 굶주림이 있다는 건 뭐예요? 채워지지 않음, 갈망이 있죠? 뭡니까? 이런 겉사람을 제압하고 성령의 마음을 확장시키려는 이 굶주림, 영적
《굶주림은 반드시 채워질 것이다.》
이 영적 굶주림이 채워지면 어떻게 돼요? 성령 체험 정도가 아니라 이제 칭의를 넘어서 성화로 나아가겠다. 성화, 거룩해지겠죠. 여러분 영혼이 거룩해지겠죠. 이긴자의 마음이 거룩한 마음 입니다. 이긴자가 성화한 사람이에요. 성화, 자기 영혼을 거룩하게 만들었다는 건 뭐예요? 성령의 마음이 51% 이상 이겼다. 69절 이해 되시죠? 그럼 이걸 가지고 68절 읽으면 어떻게 읽힐까요? '그대들이 미움받고 박해받을 때' 이것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에고의 마음, 자, 속사람이 성령의 마음이라면 겉사람은 에고의 마음이죠. 에고의 마음에 박해, 에고의 마음이 성령의 마음을 미워하고, 나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를 따르겠다고 하는데 욕심이 '그런식으로 하면 내가 손해잖아' 하면서 미워하고, 박해를 가할 때 '그대들은 축복받을 거다.' 왜? 성령 체험을 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겁니다. 성령을 아니까 아버지 뜻을 따르려다 박해를 받는 거에요. 그래서 말은 비슷한데 마태복음하고는 좀 상황이 달라요. 이 도마복음에 뽑힌 이 구절들은 다르게 해석하자구요. 좀 더 심화된 뜻이 있습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욕심에 박해를 받는 양심의 상황입니다. 이 양심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박해를 받았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돼요? 성화, 이긴자가 되서 결국은 박해를 물리치고 '박해를 받았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해 질 것이다.' 거룩해 지고 끝날 거다. 일단 이렇게 거칠게 풀어 봤어요. 이해되시나요? 68절, 69절 잘 아는 문구 같지만 맛이 다르기 때문에 맛이 다르게 해석을 해야돼요. 맛이 다르게 풀었단 말이에요. 도마가 여기 적을 때는 좀 다른 맛으로 적어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뜻을 존중해서 읽어봤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인용한 이 구절하고는 좀 맛이 달라요.
자, 각주 2번부터 볼게요. 68절 마지막 한번 정리하고 가볼게요. '미움받고 박해받을 때 그대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왜냐? 그대들이 박해를 받았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겨낼거기 때문에, 자, 이 부분에 대해서 좀 풀이 더 해보죠.
[오직 나와 나의 것만 추구하며]
나와 나의 것, 이기적이죠?
[소아적 효율성만]
이라는게 이기적 입니다. 나한테 이롭냐? 해롭냐?만
[따지는 에고의 마음]
겉사람, 욕심이랬지만, 에고의 마음이라고도 한번 표현해 봤어요. 이놈은
[전체를 나와 하나로 여기며]
인류 전체를, 우주 전체를 나와 하나로 여기며
[나누지 않고]
나누지 말라는 게 도마복음의 핵심주제 중에 하나죠. '하나가 되라'
[대아적 효율성을 따진다는]
건 모두에게, 하나인 모두에게 이롭냐? 해롭냐?만 따지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뭐예요?
[성령의 마음이죠]
속사람, 양심, 그래서 이 겉사람은 속사람을
[미워하고 박해한다.]
나한테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웃기는 거에요. 뭐냐면, 그러면 겉사람이 여러분을 이롭게 해줄까요? 이겁니다, 이게 또 무서운 함정이 있어요. 사람들이 겉사람은 나를 이롭게 해준다 잖아요. 속사람은 우주를, 우주 모두를 이롭게 해 주고, 그럼 일단 나 기준으로 봤을때는 겉사람을 따르는 게 낫지 않나요? 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생각해보세요. 겉사람은 나 하나의 이로움만 따지는 마음이지 실질적으로 나를 이롭게 해준다는 건 아닙니다. 뭔말인지 아시겠어요? 여러분 욕심 따랐을 때 결국은 건강도 잃고, 마음도 황폐해지는 경우 있죠. 욕심을 따랐는데 즉, 나한테 이로울 것 같아서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손해가 되는, 겪어보셨을 거에요. 이겁니다. 결국은 양심을 따라야 이 에고도 삽니다. 그런데 에고가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게 겉사람이고, 이게 혈육의 자녀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자녀는 성령의 뜻대로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은 에고까지 다 우리의, 각자의 서로 다른 자아들까지 다 만족을 하게 됩니다. 이게 또 중요하게 보아야 할 포인트 입니다. 그래서 '아 겉사람이 더 이롭네' 이렇게 쉽게 생각하시면 안돼요. 소아적 효율성만 따진다고 했지, 실제로 이롭게 하느냐는 다른 문제예요. 반대인 경우가 많겠죠? 결과적으로는 반대가 될 거고요. 현상만 봐도 나 자신이 이로워지지 않는 많은 경우가 발생하겠죠 . 자, 그래서 대아적인 효율성을 따르다 보면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다 보면 나도 그 안에 한 명이기 때문에 결국 나까도 만족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또 대아적 효율성을 따르는 이 성령의 마음은 답까지 가지고 있거든요. 에고는 답이 없어요. 모른단 말이에요. 이로울 것 같아서 하는거고 성령은 확실하게 이로우니까 가라고 하는 겁니다. 모두에게 이로우니까 가라고, 그래서 성령을 따르는 마음과 에고를 따르는 이 마음은 결과가 다르다. 자, 에고 입장에서 봐도 사실은 성령을 따르는 게 이롭다. 이게 예수님 말씀하신 오직 하나님 나라와 정의만 구하면 하늘이 의식주도 해결해준다. 이 소리입니다. 공식이 있는 거에요.
[성령을 따르는 하나님 자녀의 내면에서는 속사람과 겉사람의 치열한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이게 아마게돈도 이거에요. 영적 전쟁, 이게 우리 내면에도 있지만 혈육의 자녀의 마음과 양심을 따르는 하나님 자녀의 마음의 싸움이잖아요. 이게 밖으로 확장되면 뭐죠? 양심을 따르는 하나님 자녀들과 혈육의 자녀들과의 싸움이 이게 아마게돈인 거에요. 이게 사회 속에서 벌어지며 아마게돈이고 한 사람 마음속에 벌어져도 똑같은 영적 전쟁입니다. 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 미움과 박해가 일어나는 사람의 혼은 축복받을 것이다. 왜냐! 결국 그 사람의 혼은 성령의 뜻에 따라 거룩해질 거다]
성령의 뜻이 그 사람의 혼을 지배하게될 거고 결국 거룩해질 겁니다.
[더 이상 미움도 박해도 없는 온전한 경지에 이르게될 거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시는 거죠. 좀 맛이 다르죠.
69절도 유사 구절이 있어요. 마태복음 5장 6절에 보면
[정의에 굶주린 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그들이 채워질 것이다]
뭔가 굶주린 자들 채워질 거다. 이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좀더 심오하게 들어갔잖아요. 마음속에 란 말이 들어가 버리면서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장차 어떻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그들은 아버지를 알게 된 자들이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라고 친단 말이에요. 이 말씀 오묘하죠?
그래서 각주 4번 보시면 69절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깨달은 자라야 에고의 마음에 핍박과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을 아는 자라야]
진짜 핍박을 받아요. 성령을 아는 자라야, 성령 체험을 해야만, 겉사람이 얼마나 나를 박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박해인지 몰라요. 그냥 일진이 나를 박해하는 것 같지만 또 일진 따라 다니는 재미도 있다. 하고 강자한테 붙어서 따라다니고 있었단 말이에요. 뭔가 힘들면서도 그 욕심을 따라다니고 있다가, 욕심 따라가야 성공하는 줄 알고 있다가 성령을 딱 만나고 나니까 따라가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진짜 박해가 시작되는 겁니다. 이 자식 요즘 왜 안갔다 바치냐? 하면서 이제 괴롭히는 거죠. 왜 내 뜻대로 안하느냐 성령이 뭐라고 성령 뜻을 따르려고 하느냐? 양심이 뭐라고 그 알량한 양심을 챙기려고 하냐? 이런식으로 박해가 들어와요. 성령을 아는 자라야, 욕심의 박해,
[겉사람의 박해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체험 이후 오히려 욕정에 휘둘리는 자신을 한탄한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성령체험하고 나서 오히려 내가 욕정에 휘둘리고 있었구나. 하고 한탄한 게 사도 바울이예요. 한번 보세요.
로마서 8장 22, 23절 입니다.
[나의 내심은 하나님 법을 기뻐합니다.]
이거 성령의 마음, 속사람이에요.
[그러나 내 지체 안에]
내 몸뚱이 안에
[다른 법이 존재하여 내 마음의 법과 대결하고 있으며, 나를 이 몸뚱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하는 걸 나는 봅니다.]
내 몸뚱이 안에 겉사람도 있어서 겉사람은 뭘 좋아해요? 죄의 법, 욕심을 따르다가 사망에 이르는 죄의 법을 따르려고 한단 말이에요. 하나님 뜻을 어기려는, 이쪽은요? 하나님 법을 따르고 영생을 얻으려는 마음이 있고요. 두 마음이 싸우드라. 이게 속사람, 겉사람 얘기 입니다. 바울이 이런 체험을 가지고 속사람, 겉사람을 확실히 나눌 수 있게 된거죠. 또 보실래요. 그래서
[아버지를 깨달아 아는 자라야]
이거 제 설명입니다.
[참으로 배고플 수 있습니다]
왜? 굶주림 얘기가 69절에는 나왔잖아요. 진짜 배고프려면, 이건 육체적 배고픔이 아니라 영적인 갈망인데 아버지를 알아야 진짜 영적 굶주림, 갈망을 알 수 있습니다.
[끝없이 성령과 욕정의 투쟁 속에서]
성령과 욕정의 투쟁 속에서
[욕정의 배부름이 아닌, 욕심의 만족이 아닌, 성령의 만족, 양심의 만족을 갈구했던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자, 한번 보시죠.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17절이요.
[성령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육체의 욕망을 채우지 마십시오.]
말이 좀 너무 야박하죠.
[육체의 욕망은 성령에 반대되고, 성령의 뜻은 육체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너무 과해요. 사도 바울이 원만하게 얘기 하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뜻이 바로 충돌나면 우리는 밥도 먹으면 안되죠? 예수님도 식사나 이런거 하시면 안됐겠죠? 의식주는 다 거부 해야되겠죠? 아닙니다. 육체의 욕망 중에 비양심이 된 부분이 성령하고 충돌나죠. 욕심이 성령과 충돌 나는게 아니고 욕심 또한 성령의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이 욕심 중에 성령하고 싸우겠다고 덤비는 영역은 거기는 비양심이죠. 성령을 어겨버리는 경지, 성령을 어겨서라도 내 뜻을 관철하겠다. 그 부분만큼은 이제 비양심이죠. 그건 일반 욕심이 아니라 악심 입니다. 악해진 마음이에요. 확실한 건 사탄의 마음이죠. 자, 그런 부분, 아무튼 사도 바울도 성령을 따를거냐? 육체의 욕정을 따를거냐? 를 가지고 고뇌했다. 그리고 끝없이 육체의 욕정을 채우는 것보다는 성령의 뜻을 따르는 것 이게 성령의 마음을 채우는 거겠죠, 만족시키는 거겠죠, 이런 얘기하신 거 한번 같이 봤습니다.
자, 70절 가볼까요. 70절은 진짜 신비한 얘기입니다. 이거를 쉽게 푸시는 분들 많은데 그렇게 풀어서는 뭔 뜻인지 몰라요. 일반적으로 풀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70절하고 71절은, 또 에너지체 얘기에요. 제가 도마복음할 때 에너지체 얘기하면 재미도 있으면서 힘들어 하시는 분들 많은데, 70절 한번 가볼게요. 인간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이 투쟁은 방금 그려드린 게 다예요. 조선 선비들도 다 이거 연구했고 불교도 다 이거, 보리심, 보리심과 중생심, 유교는 양심과 욕심, 기독교는 속사람과 겉사람 다 이거 문제입니다. 우리 내면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건, 이게 사회 속에서 벌어질 때도 군자와 소인배의 싸움, 이게 영적 전쟁이죠. 아마게돈이죠. 하나님 자녀와 혈육의 자녀의 싸움, 그렇죠? 보살과 마구니의 싸움, 이게 다 똑같은 소리입니다. 70절 가볼게요.
《그대 안에 있는 것을 낳아라》
이건은 이렇게 한번 그려 볼까요. 우리 안에 영이 있죠. 성령 자리, 그 다음 혼이 있죠. 영이 노른자라면 혼은 제가 흰자라고 했죠. 그 다음에 하나 더 있고 바깥으로 육체가 있습니다. 우리 흔히 영혼육 그러는데 하나 더 있는 요소가 있어요. 이게 백이라고 제가 부르는데, 혼은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영혼이 함께 날아가는 거죠. 육과 백은, 백은 땅으로 흩어져버린다. 해서 혼비백산 이렇게 부르면 이게 죽음 이거든요. 죽음은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의 주체인 영혼과 이 물질적 요소를 맡은 백과의 분리가 죽음이에요. 이 부분이 분리되는 게 죽음입니다. 죽음을 여기서 관찰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도마복음에서 계속 얘기하는, 그리고 기존의 요한복음에서도 다뤄졌던,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는 건 이 육체는 누구나 죽는단 말이에요. 자, 이 백의 요소입니다. 동양에서 백이라고 하는데 이게 제가 말한 에너지체, 에너지의 몸이 있어요. 이 에너지 몸을 활용해라. 자, 노른자, 계란 노른자, 계란 흰자, 계란 껍질이 면 껍질에 붙어 있는 막 같은게 있죠? 그걸 에너지체로 보자구요. 왜냐? 한 덩어리로 기능 하거든요. 우리 육신 세포 하나하나 마다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 입니다. 생명 에너지인데 이 에너지를 기존 도마복음에서 뭐라고 했죠? 5원소를 가지고 설명했었잖아요. 낙원에 5그루의 나무가 있다. 5원소를 획득해야 된다. 5원소를 얻어야 영생한다. 생명의 열매라는 게 결국 에너지체 거든요. 생명의 열매, 그런데 이 5원소는 근본은 이 성령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성령의 에너지기 때문에 5원소 중에 지수화풍공은 여기다 붙이고, 지수화풍 4원소는 백에 붙이고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고, 지수화풍공을 다 여기다 붙여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공은 좀 거친 공이고 순수 에너지를 의미하는 공일때는 이제 성령 에너지 그대로 이건 성령 에너지, 순수 에너지면 진짜 공이죠. 진정한 공에서 더 근원적인 에너지에서 지수화풍이나, 지수화풍공 이때는 좀 더 거친 에너지, 현상적인 에너지로서의 공이고요. 지수화풍에 중재를 해주는 에너지 정도, 자, 헷갈립니까 지수화풍만 이야기 할게요. 지수 화풍과 이 공, 5원소를 알아야 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이 백은 결국 영적육체 입니다. 영적육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된다. 이 얘기를 이렇게까지 드린 이유가 이걸 모르면 이 구절은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걸 성령으로 푸는 분들로 있는데 절대 안 풀립니다. 보세요. 70절, '그대 안에 있는 것을 낳아라' 어떻게 낳을 건지 한번, 스스로 답을 찾아보세요. '나는 어떻게 낳아야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 것을 낳으면,》
그대 안에 이미 가지고 있데요. 여러분 몸 안에 갖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몸안에 있는 그거를 낳으면, 출산을 하면,
《그대가 지닌 그것이 그대를 구할 것이다》
이게 백입니다. 백을 배양해서, 양성해서, 이 5원소를 양성해서, 원래 5원소로 이루어져 있는 이 백을 5원소를 양성해서 영적육체로 자립할 수 있게 만들어내면, 자, 영혼백이 육 역할을 해 버리기 때문에, 백도 영적육체니까, 영혼육이 갖춰지니까 죽음을 초월해 버린다고요. 이 육신은 죽더라도 죽음을 맛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이게 비밀이에요. 도마복음은 정확히 알고 있어요. 새 손발 만들어내라고 했잖아요. 남과 여를 합치고, 위와 아래를 합치고, 안과 밖을 합쳐서 만들어내라. 물과 불을 합쳐서 영적인 육체, 지수화풍이 결합된 영적육체 만들어내라. 성령에너지에 기반한 뭐 만들어 내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대 안에 이미 있어요. 낙원의 그 5그루 나무에 해당되는 생명의 열매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걸 낳으면 그게 그대를 구할 것이고, 영생에 이르게 해 줄 것이고,
《만약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걸 지니지 못하면》
죽을 때는 이 백이 분리된단 말이예요. 성령은 분리가 안되잖아요. 애초에 성령이 어떻게 분리가 돼요? 지금 성령이 아니라고요. 백의 얘기를 하고 있는거지, 이 에너지가 분리되면 어떻게 돼요? 그대 안에 있는걸 지니지 못하게 되면, 죽을때는 우리가 못지녀요.
《그대 안에 지니지 못한게 그대를 죽일거다.》
여러분 백이 떠나는게 죽음이예요. 에너지가 여러분을 떠나면 죽어요. 아멘이시죠. 이게 영생의 비밀입니다. 이거 답 못내면 영생은 얻을 수 없다. 도마복음은 정확하게 이런 모든 종교의 있는 밀교적인 가르침에 해당되는 부분이에요. 얘기를, 답을 던져 놓은 겁니다. 그 전에 위와 아래, 남녀, 안밖을 하나로 해라. 여기서도 한번 나왔던 얘기고, 낙원의 5그루의 나무에서도 한번 나왔던 얘기고, 또 그대 안에 있는걸 낳아야 니가 산다. 그거 못 낳으면, 못 낳으면 결국 그대로부터 그게 떠나기 때문에, 그대가 지니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게 널 죽일 거다. 정확하죠? 이거 외에는 이렇게 딱 들어맞게 설명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각주 한번 보실래요?
[주검]
시체의
[주인인 죽음이]
죽음의 신이
[자신의 걸 찾으러 오기 전에 자신 안에 있는 육체의 에너지를 배양하여 영적육체를 낳으면, 영이 육체로 인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됩니다]
이 얘기도 예전에 나왔었죠? 육체로 인해 영이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나 그가 영적육체를 이루지 못하면 그는 자신을 떠나 분리된 백]
에너지체죠? 이 에너지로
[인해서 죽음을 맛보게 될 것이다. 혼백이 분리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혼백이 분리될 때 영혼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에너지와 이 육체는 백과 이 육체는 땅에서 흩어집니다. 지상에서,
노자에 이런 말이 나와요.
[혼과 백을 하나로 껴안아서 분리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신선 사상의 근원인 노자에서 뭐라고 나와요? 혼백을 하나로 합칠 수 있겠는가? 그게 다예요. 노자에는 심지어 이런 말도 나오죠. 갓난아이, 갓난아이처럼 순수할 수 있겠는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혼백을 합쳐서 갓난아이가 될 수 있겠는가? 노자한테서 이미 예수님의 말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와 연결해서 71절 보세요.
《아무도 이 집을 다시 짓지 못할 것이다》
이거 낯익지 않으세요? 불교분들은, 부처님 오도송 이거든요. 부처님 오도성이 도마복음에 나옵니다. 보세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내가 이집을 허물 것이다. 아무도 이 집을 다시 짓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뭔데 이게, 집 허무는 얘기가 여기 나왔을까요? 이게, 이걸 또 소승 불교식으로 해석해도 안되요. 그러니까 다시는 이 윤회계 안에 안들어오겠다. 현상계 안에 안들어 오겠다. 이런 소리도 아니예요. 이게 뭐 겠어요? 내 육체는 죽었고 나는 영원한 육체를 얻었기 때문에 영원한 육체를 얻었으니 다시 이 육체가 필요없다. 이 얘길 하신 거예요. '인류를 구하러 다시 재림하지 않겠다.'도 아니에요. 그냥 이 얘기를 하신 거예요. 나는 이 육체를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존재다. 라고 얘기 하신 거예요. 너희도 나처럼 부활해서 에너지체를 얻어서 영생을 얻어라. 라고 하신 거에요.
자, 부처님 오도송도 사실은 똑같은 소리예요. 부처님 오도송 볼까요? 각주 6번,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집을 지은 자를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하였으니 다시 태어나는 것이 실로 고통이었네]
이 부분은 되게 소승적인 얘기시지만,
[집을 지은 자(애욕, 갈애)를 이제 찾았으니 다시는 새로운 집(육신)을 짓지 않으리. 서까래와 기둥은 이미 끊어졌고 대들보는 무너졌네. 나의 마음은 열반을 증득했으며 일체의 애욕은 사라졌네]
이게 법구경에 나온 부처님 오도송 입니다. 이거를 순수하게 열반에 안주해서 다시 안 태어나는데 초점을 두는 게 소승 불교지만 이 얘기도 쉽지 않은 얘기예요. 실제로 부처님은 대승보살이시고, 대승보살이 이런 얘길하셨을 때는 원래는 어떤 내용일까요? 아라한들이 이해하는 거랑 부처님의 경지는 다를 거라고 본 거예요.
그런 내용이 능가경에 나옵니다. 보시면 능가경에
[이는 5, 6지 보살이]
방금 그 오도송 이에요. 그런 내용은 5, 6지 보살이, 그럼 이게 벌써 에너지체 다 배양한 양반들이예요.
[불가사의한 생사(즉, 영적인 몸)을 성취하고]
불가사의한 생사는 이 육체의 생사는 끝났다는 거예요. 육체 생사는 끝나서 다시는 이 육체를, 물질적 육체를 지닌 세계에는 올 필요가 없는 그런 분이
[정토에서 누리는 생사를 누리면서 말하기를 나는 이미 태어남을 다했고 청정한 행위는 확립되었으니 해야 할 것은 이미 다 갖추어져서 다시는 뒤의 생을 받지 않을 것이다]
'다시 육체를 또 만들 필요가 없네'라고 말하는 그 경지다. 사실 이거 석가모니 오도송이죠. 이걸 능가경에서 뭐라고 하냐면, 5, 6지 얻은 양반이 정토갈 때 하는 소리다. 에너지체 얻어서 정토 갈때 하는 소리다. 이렇게 쳐버렸단 말이예요. 지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단 얘기죠. 그래서 소승불교는 이런식으로 해석을 절대 안 합니다. 그래서 이 부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하고 사실 지금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에요.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예수님도 무슨 얘기 하시냐면, 나는 에너지체가 다 완성되서 다시는 육체가 필요없고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조건을 완전히 갖췄다. 이 얘기를 하신 거란 말이예요. '그대들도 그렇게 하라' 방편 얘기하려고, '그대들도 그렇게 하라' 예수님 입장에서 집을 짓고 안짓고가 뭔 문제겠어요? 그대들도 나처럼 다시는 이 육체, 물질적 육체가 필요없을 정도로 온전한 영생을 얻어라. 이 소리죠? 부처님도 나는 다시는 지구에, 이 땅에, 물질의 세계에 안와도 될 정도로 온전한 보신을 갖췄네. 이렇게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이 오도송을 해석해요. 이 대승불교식 오도송의 해석과 예수님의 관점이 같다는 얘기를 드리려고 이 능가경까지 제가 인용한 거에요.
[우리의 밝은 영을 구속하는 일체의 장애에서 자유를 얻어서]
성령을 가리는 일체의 장애에서 자유를 얻어, 무지와 아집을 타파하고
[다시는 지상에 육체를 얻지 않을 대자유를 얻었음을 선포한 겁니다. 소멸하고 부패하는]
그래서 이 무지와 아집도 제거되야 돼요. 무지와 아집도 제거되고, 즉, 영혼육이 영이 각성되고, 혼이 거룩해지고, 육이 온전해져야, 온전하게 부활 돼야 이게 영혼육이 온전한 진짜 대자유가 되죠. 그래서 대자유를 얻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소멸하고 부패하는
[지상의 육체 대신에 불멸하고 영원한 육체를 얻은 걸 말한다. 불가에서는 의성신(생각으로 만든 몸) 이라고 합니다.의성신이나 보신, 영적인 육체를 말한다]
영적인 인과의 결과물로 받은 몸입니다. 자,
[이러한 영적 육체는 자유자재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또 언제든지 자유롭게 물질계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랬을때는 화신이라고 하죠. 보신이 우리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 나타날때는 화신 그래요. 사실은 예수님도 이미 불교식으로 말하면 보신으로 천국의 주인이셨으며 물질로 또 나타난 겁니다. 인류를 구하려고, 그러니까 이미 예수님이나 그 예수님 차원에서는 뭐 이렇게 집을 짓네, 마네 할 필요가 없죠. 사람들한테 얘기한 거에요. 물질적 육체가 필요없을 정도로 영적육체를 완성하라.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부처님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거죠. 자, 그래서 이 보신과 화신이 자유자재한 부처님들 세계에도 같은 얘기 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육체는 개체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애욕의 몸이 이미 아니에요]
이미 영적인 몸을 온전히 얻으신 분들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자비의 몸입니다.]
이런 얘긴 달라이라마께서도 많이 해요. 불교에서는 성령을 법신이라고 하고요, 지금 혼백육 다 통합해서 색신이라고 합니다. 색깔이 있는 몸이라고, 그래서 법신은 자신의 해탈을 위해서, 색신은 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필요한 몸이다. 이런 말씀을 하는 게 같은 얘기입니다.
자, 그래서 부처님도 초기불경인 사문과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사문은 이와 같이 명상에 들어서 4선정까지 정신을 고양시킨 다음에 생각으로 만드는 몸(의성신)을 만드는 것에 마음을 기울여서 집중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육신에서 다른 몸뚱이를 변화시켜 나투게 됩니다.]
이 육신은 어차피 버려요. 다른 육신, 영원한 육신을 만들어 버려요.
[색깔도 있구요.]
그래서 그것도 역시 색신인 거에요. 에너지체도, 색깔도 있고, 예수님의 부활한 몸도 다 색깔 있었죠. 색깔도 있고,
[여러 몸의 각 부분을 다 갖추고 있고, 감각기관도 전혀 열등하지 않고]
이 육신 이상으로 감각기관도, 육근도 잘 돌아가는,
[그런 몸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뱀에게서 허물을 벗겨내고는 이것이 뱀이고 저것은 허물이다.]
하듯이, 이 육신은 허물이고 이 에너지체가 진짜 뱀니다. 이게 알곡이고, 이거는 싹이 나서 죽은 뒤에 알곡을 얻는다. 이런 소리죠. 이건 죽은 허물이고 이게 진짜 알곡이다.
[이 소리한다.]
이게 불경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저, 허물은 뱀으로부터 벗겨낸 거지, 저건 그냥 허물벗은 거지 저 육신이 뭐 의미있는 게 아니다. 진짜는 영혼육이 온전한 이 알곡, 에너지체를 갖춘 거룩한 영혼이 진짜다. 이쪽이 진짜다. 이 말 나온다. 이게 사문과경, 사문, 출가한 승려가 공부해서 얻은 과보에 대해서 다루는 경전에 나옵니다.
[의성신은 영으로 거듭난 몸입니다. 이 몸을 이룬 자는 이 세상에 육신을 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의성신, 온전하게
[영적인 몸을 얻은 사람이]
살아갈 세계가 어딜까요? 물질의 몸을 갖춘 사람이 살아갈 세계는 이런 물질계겠죠. 영적인 몸을 얻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는 일반 영계도 아니고, 일반 영계는 몸뚱이 없는 영혼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대부분이겠죠. 특수한 영계인 정토로 갑니다. 이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예요. 연옥이나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갑니다. 이 천국은, 또 이 천국 중에서도 진짜 예수님계시는 그 천국이예요. 천국에도 여러 차원이 있다고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얘기 하셨잖아요. 진짜 여기서 말하는, 정토,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에도 여러차원 있으니까
[가장 상급의 정토, 가장 상급의 천국으로 나아갑니다.]
일반적인 영혼의 세계도 아니고 정토나 천국인데 거기서도 가장 상급의 세계에 가면 뭐해요? 거기서 영적인 몸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거기 가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높은 경지에 가있는 분들이
[중생 구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육신을 취하여 중생을 구제하러 옵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추수군으로 다시 오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보살로 다시 옵니다. 천사로 다시 내려올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다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재림하실 수도 있는 거죠. 예수님만이 아니라 혹시 이런 경지를 얻은 존재들도 모두 다시 지상에 또 얼마든지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마복음 28절을 잊지마세요.
[나는 세상 가운데 내 자리를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일부러 나타나셨어요. 이 얘기는 뭐예요? 집을 다시 짓지 않을 수 있는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지어서도 올 수 있다. 이 말까지 다 내포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사정까지 모르고 읽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도마복음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글입니다만 그 이유가 에너지체고, 칭의, 성화, 영화 이 세 가지 차원을 자유자재로 얘기하신단 말이에요. 그냥 깨어나게 할 땐, 성령 각성시킬 때는 '태어난 적 없는 자를 만나라'하고 바로 때려버리고 칭의, 성화를 얘기할 때는 아까 말씀했듯이 마음속에 있는 박해를, '박해받는 자들이여 축복받은 거다.' '너희가 박해받지 않는 그 자리까지 갈거다, 성화를 이룰거다' 그리고 또 성화의 비결을 얘기해주죠. 오른손이 하는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불교의 보시바라밀 같은 걸 얘기해 주시고 영화의 얘기할 때는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야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새로운 육체 만들어라. 여기에 요한복음에도 나오는 그런 영생의 비결인 겁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는 비결인 겁니다. 생명의 에너지, 그 샘솟는 생명의 물을 얻은, 그래서 계속 배양되가면서 영생에 이를 때까지 배양 되가는 그 영적인 육체의 이야긴 거죠. 그래서 이런 얘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게 도마복음이라, 도마복음 안에는 제가 볼때는, 그런 인의예지의 구체적인, 양심의 구현을 강조하는, 성화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르침도, 견성, 칭의를, 칭의차원이죠. 견성을 강조하는 불교차원도, 에너지체, 영화를 강조하는 도교, 유불선의 핵심이 다 들어가 있어요. 도마복음은 그 자체로 이미 유불선이 합일되어있다. 기독교의 그릇 속에서, 얼마나 신비로운 경전이예요? 이걸 함부로 풀 수 있겠어요? 못 푸는게 당연하지, 이거 기독교인도 풀기 어렵고, 어느 하나 알아가지고 못 풉니다. 불교도 그렇고, 견성만 알아서 선불교적인 마인드로 이거 풀겠어요? 못 풉니다. 에너지체 얘기 모르면, 밀교적인 내용 모르면 또 못 풀어요. 하필 저는 선문답 책도 썼죠, 유교 뭐 논어도 최근에 냈죠. 용호비결을 쓴 사람이죠. 딱 푸는데 좋죠, 기독교는 산상수훈 책도 썼죠. 요한복음을 위시한 다른 복음도 다 강의하고 있죠. 그러니까 제가 딱 풀기 맞는거 같아서 풀어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식의 풀이는 다른 곳에서 맛보지 못 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유불선이 다 녹아져 있고, 거기에 기독교까지 하나로 다 녹아져 있으니까 이 풀이 한번 참고해서 생을 걸고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