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5강
| 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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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2 | 43 | 49절, 67절 | ||||||
| 부제 | 그대 자신을 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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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일자 | 2020. 01. 04. 土. |
| 게시일자 | 2020. 02. 19. |
| 동영상 길이 | 55:12 |
| 강의 중 인용 도서 | 도마복음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nwOPGchVV5Y |
각주 한 구절을 안하고 끝냈네요. 고린도후서 7장 1절 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약속들을 받았으니,]
2페이지 각주, 밑에 하나 더 남았습니다. 성화 관련된 이야기예요.
[‘육체’와 ‘영’을 더럽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 사도 바울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애초에 육체는 더러운 거예요? 아니예요? 아니예요. 사도 바울도 육체가 하나님의 성전이예요. 영이 깃든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이예요. 그렇죠. 내가 알건 모르건 성령이 임해있는 모든 곳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가 관리를 못해서 그렇죠. 잡상인 출입을 허하고 해서 개판이 된거지 육체 자체가 더럽다는게 아니예요. 육체나 영을 더럽히지 말라는 거예요. 누가 더럽혀요? 혼이요. 이 혼이 육에 취해서, 육에 빠져서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니까 더러워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것들로 부터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여,]
는 '혼을 성화하자' 이겁니다. '혼을 거룩하게 하자' 포인트는 '제발 혼이 육체 따르느라고 성령을 거부하는 짓은 하게 하지 말자' 이겁니다. '육체 자체가 성령과 반대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되고 사도 바울이 말을 과격하게 쓰셔서 그렇지 핵심은 뭐겠어요? '성령에 반대되는 육체적 쾌락에 빠져들지 말자' 이거죠. 양심에 반대되는 그런 것은 우리가 반드시 막자. '그러면 깨끗해 질까요?' 육체도 원래 깨끗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는 거니까, 우리가 더럽힌 것 우리가 치워서 깨끗이 하자' 이게 성화하자 이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뭐겠어요? 여러분 성령의 각성이예요. 영의 각성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하나님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하겠죠? 그런거 백날 드리느니 딱 성령과 다이렉트로 만나는게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여러분 에고가 무릎을 꿇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무릎을 꿇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단 한가요, 아니면 무릎 꿇고 바로 엎드려서 하나님하고 바로 만나는 사람이 더 대단한 경외감 인가요? 순종하는 사람인가요? 순종 안하니까 하나님 안만나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계속 뭐라고 기도해요. '순종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어디계세요?' 나는 무릎 꿇고 싶은데 다 던지겠는데 어디계신지 모르겠는 거예요. '위치만 알려주십시요, 하나님' 실제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성령은 각성되게 되어 있습니다. 에고가 무릎 딱 꿇으면 성령은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경외) 에고 무릎 꿀리는 법이 뭐예요? 몰라요. 에고가 하자는 것에 대해서 잠깐만 몰라 해보는 거예요.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몰라, '나는 지금 하나님 보느라 너를 못봐, 미안해, 몰라' 이 소리예요. 몰라하고 나의 존재감 자리만 들여다 보시면 그게 하나님만 보고 있는 거예요. 그게 경외예요. '몰라하고 세상일에 관심 끊고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 그게 진짜 기도고 그러면 바로 영의 기도가 되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게 순복이예요.
에고가 무릎 안꿇으면 절대 하나님 못만납니다. 여러분 이런거랑 비슷해요. 망상 버리지 않으면 잠에 못들어갑니다. 망상 끝까지 붙잡고 있어 보세요. 물론 붙잡고 있다가 잠들고 하겠죠. 아무튼 결국 잠들때는 놓고 잠들지, 이해되시죠? 잠들려면 놔야 잠듭니다. '잠들었다' 그러면 그게 무의식에 들어갔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하나님 의식에 들어갔다 그러면 들고 있던거 놔야 들어가요. 쥐고는 못들어가요. 놓고 들어가지, 그게 순복이예요. 내가 쥐고 있던거 다 놔야 하나님 자리에 들어가요. 성전 중에 최고 깊은 지성소에 들어갈때 다 놔야 들어가지 그냥은 못들어 갑니다. 혼이 가지고 있는 욕심, 탐진치 다 놓고 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몰라, 몰라, 몰라 하면서 들어 가는겁니다.
이런식으로 들어가는 건 좋은데 '육체를 봉쇄해놓고 모든 욕망으로부터 몰라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영혼에서 일어나야 될 일을 왜 육체로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죠. 영혼에서 해보세요. 문제는 육체만 끊고, 산에서 봉쇄해 놓고 영혼은 어때요? 영혼은 순복 안합니다. 달려가고 있어요. '내가 사회있을때 말야' 하면서 '난 산에 오면 다 해결될줄 알았어' 이러면서, 안끊어져요. 지금 여러분은 속세에 있고, 지친 삶속에 있으니까 '나는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없을거야' 아니요. 영혼이 들어가는데 뭔 상관이 있어요? 내 영혼이 순복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최고의 봉쇄죠. 완전 봉쇄하고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 그냥 하나님과 만나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 경외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거룩해집시다.” (고린도후서 7:1)]
이 얘기는 하나님하고 다이렉트로 연결 되야지만 여러분이 성령각성이 되야 혼과 육이 거룩해지지 절대로 하나님으로 부터 답을 찾지 않고서는 답이없다, 이 소리구요.
자, 드디어 다음 페이지, 이 그림도 이미 그린거죠. 영혼육이, 영의 각성인 칭의, 혼의 성화인 성화, 육의 영생, 여기는 영생이라고 했네요. 육의 부활, 육의 영생, 육의 영생인 영화,
이게 지금 한 개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입니다. 본질의 천국과 현상의 천국이 다 갖춰진 거예요. 온전한 하나님의 성전이 이루어 진거예요. 저는 천국을 개척했다고 그럽니다.
(전도의 핵심요결) 그래서 이렇게 천국에 사는 사람이 다른 사람까지 천국으로 인도하는게 뭐예요? 천국의 확장, 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한게 뭘까요? '그들의 혼을 거룩하게 해라, 육의 영생을 얻게 해라' 이런 것은 부차적 결과물 이잖아요. 핵심이 뭐겠어요? 예수님이 돌아가실때 제자들에게 뭐라고 했냐면, 땅끝까지 가서 뭔 짓을 하라고 했냐면,
☆ '성령의 세례 주고 다녀라'
고 그랬어요. '성령의 세례 주고 다녀라.' '성령 각성 시켜주고 다녀라, 성령 각성 시켜주고 그대들이 본보기가 되라. 그대들이 혼을 거룩하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인격을 보여줘라' 이거예요. 성령 각성 시켜주고 인격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이 스스로 각성된 성령 속에서 그 사람을 스스로 본받겠죠? 이렇게 해서 전도가 일어나야 됩니다. 전도의 핵심을 예수님이 다 얘기해 놨어요. '그래서 다 영생에 이르게 해라' 이거죠. 이게 전도입니다. 땅끝까지가서 뭔짓을 하라구요? 성령 각성시켜주고, 거룩한 혼을 보여주라는 거예요. '거룩한 인격을 보여줘라. 본보기가 돼라.'
이게 원래 납비들 전통입니다. 랍비들 전통이 스승과 제자간에 스승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게 철칙이예요. 스승이 본이 되야 돼요. 제자들이 스승하는걸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이 전통속에서 생각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제자들의 본보기가 되준거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천국을 확장하려면 그들의 성령 각성은, 원죄를 사하게 해주는 것은 도와줘야 돼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가서 풀어주면 풀릴 것이다' 하는게 원죄 풀어주고 다니라는 거예요.
자범죄는 아닙니다. 자범죄까지 풀어주고 다닌다고하면 그건 예수님보다 대단한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못해준거예요. 예수님도 베드로 어떻게 못했어요. 그게 아니고 예수님이 한걸 그대로 닮게 하려면 성령 각성시켜주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본이 되주는 거예요. 이게 다 입니다. 전도의 핵심요결을 예수님이 얘기해 주신 거예요. 이대로만 하면 돼요.
지금 전도의 문제점은 뭐죠? 성령을 각성시켜 줄 수가 없어요. 왜? 나도 모르니까, 교회 다니면 성령 세례 받은 줄 알아요. 착각입니다. 성령 세례는 그당시 사도 바울만 해도 안수를 통해서 상대방이 성령을 각성하도록 도와줬어요. 실질적으로 병고치는 것은 다음 얘기고 성령이 임하게 도와줘야 돼요. 성령 각성을 도외줘야 돼요. 그 성령이 신비현상 체험이 아니고, 그 성령이 인격의 거룩으로 이어지는 성령체험 이어야 돼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사랑, 자비 그런 좋은 덕목들이 터져 나오는 성령각성 이어야 돼요.
이게 아니고 '등줄기로 뭐가 지나갔어요' 이건 아무, 이거 했다고 내가 거룩해질 근거가 없어요. 그럼 집에 와서도 뭐해요? 등에 뭐 안지나가나? 그거만 보게 돼죠. 기도하다 나도 못알아듣는 외국말이 나왔어요. '빵상' 이든 뭐가 나왔어요. 그러면 계속 이거 안나오나만 신경씁니다. '다음주에 교회 갔을때 좀 나왔으면 좋겠다.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게 거룩하고 무슨 상관 입니까? 아무 상관없죠. 그러니까 오직하면 사도 바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는 것보다 알아듣는 말 몇마디 하는게 훨씬 낫다. 그 말 듣고 누가 성령 찾으면 그게 더 장한 일이다.' 성경안에 답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왜 문제냐? 자기 맘에 드는 구절만 풀어요. 병고치고 뭐하고 신비한거 영업에 도움이 되는 구절만 풀어요. 저는 영업에 관심이 없으니까, 저는 교회 영업에 관심이 없죠? 그러니까 저는 성경에 나와있는 본질들만 말씀 드리는 거예요. 그 안에 계신 분들은 영업까지 신경써야 돼요. 말이 아무래도 꼬입니다. 제 얘기를 들으시면 더 객관적으로 보실 수도 있다. 이 말씀 드립니다. '교회도 안다니는 놈이 뭘 알아' 그게 아니라 '교회 안다니니까 잘알아' 이거예요. '내가 가면 내가 몰랐지, 안가서 잘알아' '아주 안가면 모르지, 그러니까 몇번 가봤지' 됐죠. 이런식으로 항상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칭의, 성화, 영화에 대해서 설명드릴께요. 각주 보시죠.
이게 원불교에서 강조하는 거죠.
[영육쌍전靈肉雙全’으로]
원불교에서 영육쌍전하면 뭔지 아세요? 영의 삼학이 있고, 육의 삼학이 있습니다. 영의 삼학은 뭐예요? 계정혜, 육의 삼학은요? 의식주, 의식주 한마디로 하면? 돈, 계정혜를 한마디로 하면 도, 돈 벌면서 도 닦아라가 영육쌍전 입니다. 돈 벌면서 도 닦아라. 스스로 돈 벌면서 도 닦아라. 얼마나 귀한 가르침인지 아세요? 소승불교는 비구가 돈 만져도 안돼요. 원래 그거 파계예요. 돈 만져도 안돼요. 그런데 스스로 돈을 벌면서 도를 닦아라? 대승 보살도 입니다. 그렇죠?
여기서는 그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그 용어를 가져다가 영혼육이 온전해지는 이 영육쌍전을 말한 거예요.
[영육이 온전한 자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서]
이게 또 기독교의 특색입니다. 기독교가 영혼만 천국 가자고 주장하면 일이 쉬웠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이 '내 피와 살을 먹어라' 하는 이상한 식인을 강요하고 그렇죠? '너희들 내 피와 살 먹어야돼' 자꾸 왜 몸을 얘기할까요? '예수님 자꾸 왜 몸에 집착하지?' 이게 예수님이 그 당시 다른 파들하고 다른 입장이예요. 다른 파들은 그때 그노시스 주의 같은 경우는 육을 악마화 합니다. 이 육을 악으로 봐요. 그런데 예수님은 안그래요. 이 육도 잘 살려써야되고 적당히 쓰다 버리는 거지, 육을 악마화 하지 않고 그렇죠. 이 육까지도 온전히 해야 된다. 영적인 육체를 얻더라도 육체는 필요하다는게 특이한 거예요. 육체는 필요하다. 왜?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낼때 영혼육으로 냈지 영혼만 내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 창조 의도가 뭐예요? 흙을 빚어서 하나님의 숨결, 영을 불어넣으니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줄여서 영육이 갖춰져야 온전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온전해 지자는게 기독교 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육을 버리지 않습니다. 유대교부터 육은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육을 끌고 가자는 부활주의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대교부터 '부활해야 한다, 육이 필요하다' 중세 수도사들도 천국에 가려면 육체가 있어야 된다는 주장을 토마스 아퀴나스나 그 신학 대전에 보면 한참 논증을 합니다. 육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천국에 맞는 육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동양의 신선술 같죠. 통하는게 있어요. 육에 대한 강조, 이게 기독교의 특색입니다. '영육쌍전' 영육이 온전해야 하나님 왕국 간다.
[영원한 쾌락을 누릴 수 있다.]
자! 첫번째
[① 영(성령)의 각성을]
성령의 각성을
[바탕으로]
두번째
[② 혼의 성화聖化(지혜, 선행, 사랑)와]
측면에서 혼의 성화를 이루어야 되고
[③ 육의 영생이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영적 부활’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혼육’이 온전해짐, 완덕完德)이 이루어진다.]
인간으로써 하나님을 최대한 닮은 모습이죠. 영적부활,
[영적 부활이 온전히 이루어져야만,]
제가 의미하는 영적부활은 이겁니다. 성령이 혼과 육으로 온전히 부활된 모습을 말하는 거예요. 영적부활이라고 영적으로 부활하자는게 아니고, 육적부활은 육체가 부활하자는 얘기를 하니까, 영적부활은 '영만 부활하자' 는 거냐? 그게 아니라 영이 부활한다는게 '혼과 육으로 온전한 부활의 모습을 갖추자.' 이런 의미로 썼습니다.
[우리는 당당히 ‘하나님의 왕국’에 나아가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더욱 자세히 말하면,]
이거 예전에도 한번 성령과 구원 때 말씀드린적 있는 것 같은데요. 자세히 설명드려 볼께요. 공부의 과정입니다. 크리스천은 이런식으로 칭의, 성화, 영화를 닦아 갑니다. 3단계를 제가 좀더 나눠서 해봤어요. 복잡할 수는 있습니다. 보세요!
[① 성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처음에는 믿음으로 가요. 믿음이 중요합니다만 믿음으로만 계속 가고 계시면 잘못가고 계신 거예요. 믿음이 커져야 돼요. 믿음이 자명한 확신, 지혜로 변해야 돼요. 믿음이 승화되야 합니다. 그게 큰 믿음인거예요. 그런데 작은 믿음 상태에서 계속 가다보면 맹신, 미신으로 끝나요. '처음에는 믿음을 통해' 그런데 처음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겠어요? 자! 성자가 뭔지는 알겠습니까? 성자가 있다니까 그런가보다 '인간중에 하나님같은 인간이 있어, 오, 믿고 싶은데, 어, 믿어' 여기에 어떤 지혜가 있나요? 없어요. 그런데 저 내면에 뭐는 있어요? '뭔가 그쪽이 자명한거 같은데' 하는 성령의 인도는 있어요. 그런데 성령은 알고 인도하겠지만 우리는 모르고 가는 거기 때문에 우리는 무지한 상태의 믿음이예요. 이 부분이 중요해요. '성령이 인도하니까 괜찮아' 가 아니라, 우리는 무지에 있다는게 문제예요. 성령은 알고 나를 인도했겠지만 우리는 무지 하니까 이 상태로 계속 있으면 안된다는 거예요. 성령하고 통해야 되니까,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원죄의 사함’을 받고 ‘성령’을 체험하며]
믿음은 성령 체험까지 인도를 해줘야만 제 역할을 하는거고, 성령을 체험한 뒤에 믿음은 어떤 믿음이예요? '아는 믿음' 이예요. 성령을 체험해서 아니까 믿는 거예요. 확신하는 거죠.
[(성령체험, 칭의稱義, 원죄에서 벗어남), ② 성령 안에 거주하여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되어]
이제 성령과 하나된 삶이 펼쳐져요. 아버지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아버지 있는 경지가 이때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 같지는 않지만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가 되며(성령안주, 칭의),]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내 안에 확고히 자리잡아서 24시간 성령의 불이 안꺼져요. 그러면 이 분은 사실은 영생을 한거죠. 성령이 영원히 사니까 영생을 얻은 거지만 육체의 부활까지 생각한다면 영생의 보증을 얻은거고, 그 자체로도 이미 영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두가지 차원에서 이해하세요.
'성령 안에 거주하여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되어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 그래서 칭의라고 합니다. 의로운 자녀가 됩니다. 여기까지가 칭의구요. 성령 안주가 이루어진 겁니다.
자! 처음에는 뭐가 이루어져요? 여기 지금 칭의 단계는 성령 안주입니다. 성령에 안주해요. 두번째 성화의 단계는 뭐에 안주하겠어요? 진리에 안주 합니다. 같은 말 같지만 조금씩 구분해 놓은게 성령 자체에는 안주하지만 성령의 진리는 아직 몰라요. 성령 안에서 선악을 따져봐야 하나님의 기준이 내 기준이 돼요.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서 또렸해 지면서 하나님이 원하는게 뭔지 압니다. 뭘 원해요? 구약때 부터 강조 된거예요. '사랑하라, 정의로워라, 지혜로워라, 겸손하라' 입니다. 그게 이루어 집니다.
그러니까 이제 성화로 갈께요.
[③ 성령 안에서 영적 분별력으로]
즉, 선악을 따져보는 분별력으로
[‘성령의 법’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따르고자 소망하고 노력하며 (성화聖化, 죄의 종이 되지 않고자 노력),]
'그런 노력을 통해,' 제가 단계를 좀 구분해 놓은 거예요.
[④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성령의 법에 안주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진리 안주는 하나님의 형상에 안주했다는 뜻이예요. 법의 안주, 진리의 안주, 형상의 안주가 이어지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며 (진리안주, 성화, 거룩한 영혼/열매, 새사람),]
성화입니다. 거룩해 진다는 거예요. 거룩한 영혼, 거룩한 열매가 됩니다.
(새사람) 어디였죠? 사도 바울은 새사람이라고 표현한적도 있어요. 새사람이 된다. 새사람이 뭔지 아세요? 옛사람은 탐진치를 기본값으로 하는 사람이고, 혈육의 자녀, 새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기본값으로 하는 자녀예요. 기본값은 노력하지 않을때 자동으로 돌아가는 기본 상태를 말하잖아요. 여러분 별 노력을 안해도 어때요? 별노력을 안해도 탐진치가 늘 솟구치죠? 기본값이 탐진치라 그래요. 혈육의 자녀 맞으세요. '난 노력 안했는데 막 사랑이 솟구쳐' 이러면 여러분 아마 하나님 자녀예요. 노력 안했는데 '이웃 사랑, 공정, 자비, 환희' 이런게 솟구치면 여러분은 기본값이 바뀐거죠. 하나님 자녀예요.
문제는 혈육의 자녀 기본값도 여전히 같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괴로워 한거예요. 노력 안했을때 이쪽과 이쪽이 같이 작동하는 거예요. 그러면 충돌이 일어나요. 이때는 뭐가 중요해요? 누가 더 헤게모니를 잡느냐예요. 이쪽이 51%이상 확실한 헤게모니를 잡아버리면 정복한 거고, 끌려갔다가 바로바로 돌아올 수 있으면 이긴자고, 아시겠죠?
오늘 기분 난 김에 기독교에 대해서 설명 다 한것 같은데요. 새해 첫 강의라고 나름, 신촌에서는 첫 강의죠. 제가 몇년간 했던 기독교 강의의 핵심을 한번 또 재정리해서 올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알아들으시면 돼요. 몇년 동안 못알아들으셔도 괜찮아요. 오늘 알아들으시면 끝나는 거예요. '아, 이 얘기 였구나' 이러시면, 교회 오래 다닌다고 아는게 아니예요. 교회 오래 다니다보면 노래 실력이 좋아지고, 다른 여러 능력들이 좋아져요. 사교 능력이 좋아지고, 인내력이 좋아지고, 가면 또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또 있으니까, 인내력이 좋아지고 이러지만
성령의 힘이 내 안에서 터져나와야 되거든요. 성령의 열매를 누려야, 그게 기본값이 되야 하나님 자녀예요. 즉, 내가 어떤 노력 안했을때 '사랑, 정의, 인내, 온유' 이런게 터져 나와야 돼요. 그런데 보통 안그래요. 혈육의 자녀가 노력을 해야 '인내, 사랑' 이런게 나오면 여러분 혈육의 자녀라는 거예요. 노력을 해야만 겨우 그런 모습에 유사해져요. 이게 바리새파예요. 용 겁나써서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와서 뭐라고 그런거예요? '야, 기본값이 탐진치구만, 니네 그냥 고등침팬치야, 용쓰고 있는 고등침팬치야, 그렇게는 천국 못가' 하고 찔러버린 거예요. '나는 성령 받아서 내 기본값이 그냥 사랑이야, 내 제자들도 기본값이 사랑이야, 일시적으로는 흔들리지만 놔두면 사랑으로 돌아가, 너희는 용쓰고 있을때는 그럴싸 하지만 놔두면 다 탐진치로 돌아가' 이해되시죠? '기본값이 달라' 성령 안받은 사람은 기본값이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왜 의로운 존재가 됐다고 하냐? 기본값이 바껴서 그런거예요. 이 사람이 아직 잘하지도 못하는데 의롭다고 하느냐? 이 사람은 돌아가도, 놀아도 성령으로 돌아가요. 최소 수준이 성령은 깔렸단 말이예요. 이 사람은 성령이라는 프로그램이 깔렸단 말이예요. 자동으로 성령에서 팝업창이 자꾸 뜬단 말이예요. 이게 깔렸으니까, 이해되시죠? 이게 자꾸 떠요. '깨어나실래요' 하고 자꾸 팝업창 뜨면 신경 쓰이잖아요. 기본값이 성령, '어 사랑에 위배되지 않나요?' 이런게 자꾸 뜨면 신경 쓰이잖아요. 그전에는 뭐만 떴어요? '색근한 뭐를 찾으시나요?' 이런것만, 탐진치가 기본값이라 계속 그런 것만 떴는데 어느날 부터 다른게 뜨기 시작한 거예요. 왜? 깔렸으니까, 아직 잘하지는 못해도 기본값이 바꼈다. '칭의'
섬세한 느낌까지 전달 받으셔야 됩니다. 이런 말씀 쓰신 것 하나하나에 영혼의 결정체들이, 말씀 하나에 많은 진리들이 들어 있어요. 그 말씀 제대로 받아 먹으면 내 성령이 각성해 버려요.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믿어버리면 내 성령이 각성해 버립니다. 그래서 성화까지 왔죠. 자!
[⑤ 천국의 몸인 ‘영적인 몸’(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며 (천국안주, 영화榮華),]
이건 천국안주죠. 천국에 안주해 버립니다. 영생을 얻었다는 거는 천국에 안주한 거예요.
천국 영주권자, 시민권자, 여기는 통치권자 그랬죠. 제대로 통치권까지 얻어서 안주한다. 영화, 영광스러운 자녀가 됐다는 뜻이죠. 영화를 얻었다. 마지막 6단계
[⑥‘하나님의 형상’그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법을 그대로 밖으로 구현하는, 하나님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나아간다 (칭의, 성화, 영화의 극치, 완덕完德).]
자, 기독교의 공부 단계론 다 설명 드렸어요.
이런 것도 얘기 안해주고 천국 간다고 밀어 붙이는 분들은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브로커들 입니다. 따라가시면 반드시 피 봅니다. 천국 밀항 시켜준다는 분들과 똑같아요. '내가 뒤로 어떻게 알아봐 줄께, 솔직히 우리식으로 하면 천국 못가, 그런데 내가 어떻게 좀 알선해 볼께, 천국에 내가 통하는 사람 있거든' 뭐가 있겠어요?
이거를 속일수가 없는게,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거는 모든 종교를 초월한 우리 영혼육에 박힌 본 판이예요. 종교가 달라도 설명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 영혼을 해부하면 그것밖에 안나와요. 인의예지, 육바라밀, 성령의 열매 이것밖에 안나와요. 하나님의 형상, 영혼육 이것밖에 없어요. 모든 종교 해부해 보면 핵심이 영혼육 이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속일수가 없어요. 이 영이 각성이 안됐는데 천국에 간다는 것은 무조건 사기예요.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믿고 싶단 말이예요. '솔직히 나는 영이 뭔지도 모르고 견성도 못했어, 정토는 가고싶어' 그러면 '염불외면 됩니다' 하는 상품이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딱 맞는 상품이 있어요. 죄도 많이 지으셨고 혼도 타락했는데 정토는 가고 싶으시죠? 그거 맞춤형 상품이 있습니다. 아미타 염불을 외면 아미타불이 와서 천국으로, 정토로 잡아가요' '아, 이거 괜찮네요'
그것도 미끼예요. 들어가보면 염불을 어느정도 해야돼요? '졸라 열심히 해야돼요' '어느정도로요?' '부처님이 보일 정도로요' '그럼 견성을 하고 말지' 똑같죠. 그럼 결국 견성해야 돼요. 결국은 견성합니다. 견성해서 가요. 왜냐?
(1주보살) 자나깨나 아미타불이 보일 정도되면 여러분은 이미 1주보살 입니다. 간단해요. 이거는 참선 공식이예요. 자기가 원하는 대상에 몰입해서 항상 그 대상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하면 불교에서 1주보살 이예요. 말만 바꿔 놓은 거예요. 화두가 터지면 1주보살 이예요. 말만 바꿔놓은 거예요. '화두 잘 안되시죠? 염불로 쉽게 갑시다' '아, 그래요, 어떻게 해야될까요?' '열심히 하셔서' 그런데 염불은 하기만 하면 데려간다며요 약간 상품이, 설명이 달라요. '그냥 죽기전에 한번만 해도 데려갑니다' 대신에 그렇게가면 저기 가서 연꽃돼서 한 몇백겁 대기 타야돼요. 엄청 고생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갈려면 상급으로 1등석 타야죠' '1등석은요?' 견성해야 돼요. 결국 1주보살은 죽는 순간 거기서 아미타불이 바로 1주보살로 견성 시켜주고, 거기서 부터 같이 보살도 수업 바로 들어갑니다.
(9등급 이하) 그 아래에 9등급 있거든요. 아래 등급들은요? 가서 대기를 한참씩 타요. 저 마지막은 몇백겁을 대기타요.
'결국 이렇게 할거면 여기서 공부 열심히 해서 가야 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해요? 아미타불이 견불할때까지, 부처 볼때까지, 그 정도 하시면 사실 견성 하십니다. 자, 방법만 다르다.
그러면 기독교는 또? '그거 안되면 우리 교회로 오세요' '어떻게 해야돼요?' '성령세례 받으면 됩니다.' '여기 성령세례 해주나요?' '예' 가면 세례해준다고 내가 성령을 아나요? 내가 성령 안에서 성령불이 24시간 꺼지지 않고 살아가려면 결국 견성해야 돼요. 다, 뭘로 가든지 자기 영혼안에 이런 변화가 안일어난다 다 가짜예요. 그런데 된다, 가짜예요.
사이비교에 안당하는 공식입니다. 이거 다 갖추어져 있다, 그러면 사이비 일리가 없고, 사이비는 이런 설명을 해줄리가 없죠. 사이비는 조금만 그럴싸한 얘기를 하다가, 그다음 무슨 얘기를 하게 되어있어요? 교주를 믿으라고 하게 되어 있어요. '교주한테 잘해야 천국간다'로 이 논리를 빠뜨릴 수가 없어요. 안그러면 사이비교 열려고 했다가 보살학교 되버리면 원하던게 아니잖아요. 나를 믿게 해야지 다 견성해 버리면 안되거든요. 뭐든지 내놓게 해야 되니까, 그런데 가서 이런 영적 식별능력으로 보시면 다 보입니다. 공식만 알고 가서 보면, 제가 사이비 간별법도 항상 강조해 온 거고, 제가 홍익학당을 한 15년 전에 열었을때 저희 학당에 오셨던 분들에게 제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말씀드렸던게 그거예요. 우리 공부를 하시면 다른건 몰라도 사이비에게는 안당하실 겁니다. 왜냐? 사기치는 것 다 알아볼 정도의 기본 소양은 될겁니다. 그 얘기 드린적 있어요.
자, 우리나라, 우리민족 삼일신고라는 경전에 뭐라고 되어있나 보세요.
[자신의 불변의 본성을 각성하고 (영의 각성) 닦아야할 공덕을 완수한(혼의 성화, 육의 영생)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올라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惟性通功完者 朝永得快樂, 삼일신고三一神誥)]
이게 삼일신고 라고 하는 환웅때부터 내려왔다고 전하지만 실제로 문헌화 된거는 언제 됐는지 알수없는, 발견은? 일제 강점기때 발견된 문헌이니까 그때 쓰여진거 아니냐? 하더라도 이런 가르침은 내려왔다고 보는게 맞죠. 이 가르침의 핵심이 정확해요. 이것도 이해하면 재미있잖아요. 우리 민족식 표현 입니다. 한자로 표현되어 있지만, 원래 가르친 말씀이 있을텐데, 한자로 표현된 말씀은 딱 이렇게 네글자예요. 性通功完, 하나님이 주신 본성에 통하고, 이루어야할 공덕을 다 완수한 자는 천국에 가서 영득쾌락 하리라. 그러니까 성령 각성하고 혼과 육의 공부, 혼은 뭐해야 돼요? 육을 가지고 거룩한 홍익인간 실천해야죠. 육은요? 신선사상이 우리 민족에서 나간거 잖아요. 호흡수련해서 에너지 개발하고 홍익인간 실천해야 하나님이 준 '널리 인간을 사랑하라' 는 본성 완수하고 하늘나라 가서 신선되서 살수 있다. 이게 우리 민족 고유 철학 입니다. 똑같죠?
(벽오금학도) 그래서 이외수씨 소설 벽오금학도에 외국 선교사가 와서 시골에 계신 우리나라 할머니에게 '하나님 믿으세요?' 하니까 작가의 상상력 이지만, '아, 그 하나님이 허허공공한데 우주를 낳고, 기르고, 주재하시는 그 하나님인가?' 삼일신고 얘기를 하신거예요. 선교사가 '맞는데요' 그래서 '그 하나님이 믿고 하면 우리가 닦아서 천국 가는 그건가?' '예, 맞는데요' 거기 삼일신고 나와요. 시골 할머니가 삼일신고를 꿰고 있다가 쭉 얘기하니까 선교사가 당황하는 재미나게 소설에 넣으셨더라구요. 저도 대학때 본거라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어요. 대학때 읽었던 벽오금학도라는 소설에 삼일신고가 나와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 그래서 오늘 여기까지는 해야죠. 점하나 찍으면 성령입니다. 그럼 이게 영의 각성이죠. 여러분 지금 점을 하나 못찍어서 인생에 답이 안나오는 거예요. 점하나가 하나님 자리예요. 우리 영혼에, 우리 혼에 점하나 딱 찍어야 하나님 자리입니다. 화룡정점, 하나님 자리가, 영적 부활이 뭐냐? 이 영이 부활한다는게 뭐냐? 시공을 초월한 이 영자리, 시공을 초월한 자리가 시공 안에서 온전하게 부활해야 된다는 거예요. 시공 안에서도 그 성령의 거룩함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가 영이 혼과 육으로까지 온전하게 표현되었을 때, 입체물로 드러났을 때, 부활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냐? 이겁니다. 그 느낌 가지시라구요. 영은 현상계의 시공을 초월하니까 말로, 생각으로, 오감으로도 포착할 수가 없어요. 그것을 지금 우리는 우리가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그렇죠? 지금 이게 정육면체 아닙니까? 육면을 가진 모습, 모든 만물은, 덩어리 있는 것은 정육면체죠. 전후좌후상하를 가지고 있어요. 중심, 그 중심자리에서 성령이 시공 안에서 혼으로 기능해서, 영이 시공 안에서 혼으로 기능해서 나머지 여섯방향으로 잘 원만하게 굴러가게 운전할 수 있겠냐? 이거죠. 영이 혼을 통해서 육을 온전하게 운전할 수 있겠느냐? 이랬을때 천국이 개척된 거고, 천국이 시공안에 표현된 거죠. 본질의 천국이 현상의 천국으로 드러난 겁니다. 그럼 나만 이럴거냐? 남들도 남들도... 제가 이 마음을 담아본게 이 점을 가지고 있는, 이게 우리 학당의 로고잖아요. 이게 알이예요. 영이 시공안에 원만하게 표현된 모습이 알이예요.
(아리랑) 나도 알이고 여러분도 알이고 그래서 제가 아리랑을 그렇게 풀어드린적 있잖아요. 제 마음대로 푼거지만 이 공부하다가 떠오른 영감으로 푼거는, 이게 역사적으로 맞다는게 아니라 아리랑, 우리는 '알이랑', 하나님의 알이랑, 무극이랑, 태극이랑, '알이랑' 함께하는 나도 '알하리요' 무극이랑, 태극이랑 함께 해서 나도 알이 되서 우주에서 살아가자. 이렇게 해도 재미있고, '아리랑, 아리랑'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뜻에서, 이스라엘에서 엘이 하나님이죠. 엘이 하나님 이예요. 우리는 알이 하나님 이예요. 아리랑이 이스라엘이랑 다 비슷한 거예요. 임마누엘도 우리 곁에 있는 엘, 하나님 이런 뜻이거든요. 우리는 아리랑 민족이죠. 그냥 아리랑 하면 '속이 알이다' 그런 뜻도 가능하니까. 알이랑 하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민족이 돼요. 내 영혼의 중심이랑 함께한다. '알이랑, 알이랑' 하나님이랑, 하나님이랑 우리 함께 한다. 아까 무극, 태극 나눠본 건 두 알을 한번 해본건데요. 그냥 하나님이라고 하면 돼요, '알이랑, 알이랑 함께한다.' 나도 하나님 하리요. 나도 알이다. 온전한 하나님과 하나되는 사람 되고 싶다. '아리랑, 아리랑' 그렇게 풀어도 재미 있어요. 제 마음대로 푼 겁니다. '알이랑, 알이랑, 알하리요' 알이랑 고개를, 힘든 역경을 알이랑 넘어간다. 그런데 알이 누구라구요? 알의 핵심이? 나요. 참나가 알이니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자빠질 것이다. 알이 뭐다? 사실은 알고 보면 나다. 내가 알이다. 맘대로 풀었는데 재미있죠? 힘들때 이 풀이도 하나 기억해 두세요. '너 그게 역사적으로 맞냐?' '내가 언제 맞다고 했냐?' 이거죠. 내 피셜인데, 재미있으면 쓰는거지, 그렇죠? 창조적 해석 가능하죠? 저는 그렇게 아리랑을 많이 이해합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을 알이라고 본거예요. 우주의 중심점 이니까, 왜 제가 아까 무극, 태극 한지 아세요? 이 극이 꼭대기 극자 거든요. 무극은 꼭대기 없는 꼭대기예요. 텅빈 꼭대기, 그럼 태극은요? 우주가 낳은 이 씨알인 꼭대기, 사실 하나인데 동전의 앞뒤죠. 텅비어있으면서 꽉 차있단 말이예요. 텅비어있을 때는 무극, 꽉 차있을때는 태극, 그 알에서 우주가 다 나왔다. 그래서 나도 그 무극, 태극을 품고 있으니까 밖으로 이렇게 전후좌후 균형까지 잘 잡는 알이 되겠다. 이것을 동양에서 황극이라고 합니다. 임금으로써의 알, 텅빈 알이랑, 꽉찬 알이랑 어차피 내 안에 하나의 알로 품어져 있으니까 나도 또하나의 알이 되겠다. 내가 할일은 뭐예요? 무극, 태극은 원래 주어진 거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예요? 경영, 혼육을 잘 경영하는 것, 이것을 함으로써 나도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됐다는게 완덕 이예요. 인간으로써의 하나님을 성자라고 하고 완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성자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하나님이 됐다는 거예요. 모든 성도들의 목표는 뭐예요? 성자되는거야 돼요. 예수님 시다바리가 목표가 아니라, 예수님은 나의 형제요 쌍둥이니까 나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 이게 도마복음이죠. 예수님도 '되라' 이거고, 다 빛의 자녀가 되서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예수님이 얘기한 거예요. '나보다는 좀 덜 온전한 자녀가 되라' 이런적이 없다구요. 이해되시죠?
자! 3절을 시간이 애매한데 좀 읽어볼까요? 여기까지 진도 나가면 되게 뿌듯할거 같기는 한데, 10분 남았거든요. 해볼께요 3절.
《3절 그대 자신을 알라》
여기 제목 옆에 5번 이렇게 있는 경우는 4대복음 중에 유사 구절을 제가 넣어놓은 겁니다. 제목 옆에 각주가 있으면 '4대복음에 유사 구절이 있구나,'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유사 구절 먼저 한번 볼까요? 이게 익숙하실 거니까, 아까 한 얘기네요.
[한 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셨다.]
'하나님 왕국 언제와요?' 그러니까
[그들에게 대답하시길 “하나님의 왕국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거나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왕국’은 그대들 가운데 있다”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7:20~21)]
'있을 것이다'가 아니예요. '있다' 바리새인들이라 예수님말 듣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와서 시비걸었을 수도 있어요. 시비걸었을 확률이 커요. '하나님 왕국 언제와요?' '니네 가운데 있다' 성령을 말해요 성령, '성령은 모두에게 이미 있다. 그걸 못 찾아서 문제지,' 자! 성령이 천국입니다. 여기서 현상으로써 천국을 말할 수가 없어요. 바리새인들에게도 있는 그 천국,
그런데 예수님은 본질로써의 천국만 말한게 아니예요. 왜? 자기는 이미 영혼육이 거룩해졌고 부활까지 했어요. 변화산 사건에서 보여주셨죠. 하얀 옷을 입은 예수님의 모습, 이미 부활체까지 다 만드셨어요. 살아서 영생 다 얻은 분이예요. 죽은뒤에 살아나는 건 보여주는 거고, 하나님의 하나의 역사죠. 그런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 인거고, 보여주기식, 실제 예수님은 이미 영혼육이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본인이 선포한 거예요. 천국은 이미 왔다. 왜? 자기에게 왔으니까 '이제 봄은 왔다. 개나리 하나 폈다. 내가 그 개나리다. 이제 온 천지가 꽃으로 만발할거다.' 그랬는데 2천년 지났는데도 개나리 몇개 안핀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왜? 특히 우리 한민족은 벼락치기에 강합니다. 갑자기 개나리 밭을 만들 수 있는 소질이 한국인에게는 있다고 봐요. 지금 이런 얘기를 그 벼락치기 하라고 제가 유튜브에 올려드리는 거예요. 한국인에게 자극하는 거죠. '벼락치기 한번 해봅시다. 그래서 천지개벽 한번 만들어 봅시다.' 뭐, 이제라도 개나리 피면 피는거지. '천지를 꽃으로 한번 뒤덮어 봅시다' 하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2천년전에 시작은 했는데 아직, 하드웨어는, 교회는 전세계에 나갔어요. 땅끝까지 갔어요. 문제는 성령받은 성도들이 없다는 거예요. 성령을 깨친 성도가 진짜 교회인데 지금 집만 지어져 있단 말이예요. 거길 뭘로 채워야 되느냐? 성령으로 채워야죠. 그 짓을 우리 한국인이 주도해서 전세계에서 이 짓을 해버리면 천국을 이땅에 퍼뜨린건 한국인이 되죠. 이런거 한번 해볼만 하지 않나요? 이거 분명 욕심이예요. '다른 나라도 할 수 있는데 한국인이 먼저 하겠다는 거냐?' 욕심이지만, 양심에 안걸리는 욕심 아닌가요? 좋은 일 먼저 하겠다는데, '그럼 너희도 하든지, 안말릴테니 너희가 먼저 하든지, 안하면 우리가 한다' 이런 각오로 덤벼보자 이거구요. 자 본문 들어가 볼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그대들의 지도자들이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아버지의 왕국(성령)이 하늘에 있다’라고 한다면 하늘을 나는 새들이 그대들보다 앞설 것이다.》
성령이 하늘에 있으면 이 얘기는 벌써 성령은 시공을 초월해 있다는 겁니다. 시공 안에서 하늘에 있다면, 공간중에 하늘에 있다면 새들이 너희보다 천국에 먼저 갈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그것이 바다에 있다’ 라고 한다면 물고기들이 그대들보다 앞설 것이다. 차라리 ‘그 왕국’은 그대들 안에 있으며, (동시에) 그 왕국은 그대들 밖에 있다.》
안밖을 날려버리는 거예요. 안이고 밖이고 따지지 않으면 이미 천국이다. '안밖을 몰라하면 이미 천국이다' 이 소리예요. 이 얘기 듣고 여러분이 하셔야될 일은 몰라예요. 이 자리에서 그냥 몰라 해버리면 이미 천국에 계시는 거예요. 안이냐 밖이냐 하늘이냐 바다냐 따지고 계시면 까마득하게 시공안에서 헤매고 계시는 거고,
사실 이게 불교 선문답이랑 똑같죠. '안에 있다고 해도 30방이요, 밖에 있다고 해도 30방이니 성령이 어디있냐?' 그러면 '짝' '그냥 이자리에 있습니다' 하는 소리예요. '시공도 없는 이자리에 있습니다.' 'I AM, 영원히 현존하고 있습니다' 드러내는게 선문답 이예요. 자, 지금 이말이 죽이죠.
6번도 보시면 제가 불교 선문답에 많이 거론되는 구절들 뽑아 봤어요.
[밖에서 ‘천국’(성령)을 찾아 헤매지 마라. 안과 밖을 모든 것을 다 잊어라. 안과 밖을 모두 잊어라(내외양망內外兩忘)!]
이게 장자에 나온 내외양망 입니다. 안밖을 그냥 다 잊어버리면 된다. '안에 있다, 밖에 있다 하지 말아라 둘다 잊어 버려라.' 그 자리가 그대로 도다. 자!
[“큰 길은 문이 없다.]
'대도무문이니' 유명한 구절이죠. 한 정치인이 늘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이 되겠다고 쓰신 대도무문, '아니 대통령 되면 되지 문이 따로 있나' 이런게 아니고, 여기는 목표가 성불이예요. 성불에 문이 따로 없다. 견성에 문이 따로 없다. 왜 없냐? 지금 내가 어디있건 안밖만 잊어버리면 견성이니까 문이 따로 없는 거죠. 동시에 뭐예요? 큰 길에 문이 없다.
[그러나 모든 곳에 길이 있다.]
이해되시죠? 천차유로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천지를 홀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무문관無門關)]
천지를 초월한다는게 시공을 초월해서 홀로 걸을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한 자리랑 개합할 것이다. 하나로 딱 합해버린다. '성령과 하나되 버린다.' 이 소리 입니다. 성경 읽다가 선문답 같이 보니까 더 재미 있으시죠? 이상한 일이죠. 영가 현각 스님의 증도가 볼까요?
[“빽빽이 펼쳐진 온갖 형상의 그림자가 나타난 가운데,]
천지만물이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한 알의 둥글고 밝은 그 자리는 안과 밖이 없도다!” (萬象森羅 影現中 一顆圓明 非內外, 영가永嘉 현각玄覺, 증도가證道歌)]
이론상 자리죠? 하나의 둥근 이론상 자리가 있는데 거기는 안밖이 없도다. 둥근 그자리가 통으로 알아차리는데 '공적영지'죠. 둥글고 텅빈 자리가 통으로 알아차리는데 안밖이 없다. 여기는, 하나님 자리는, 부처님 자리는 시공에 잡히는 자리가 아니다.
[“본성에는 본래 안과 밖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미 안과 밖을 두 가지 근본으로 삼는다면, 또한 어떻게 궁색하게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거는 정성서에 있는 유학자인 정명도 선생님의 말씀인데, 누가 정명도 선생에게 질문을 했어요. '나는 안으로는 마음이 되게 고요한데, 밖으로 외물을 만나면 흔들린다.' 그럼 또 봉쇄해야죠. 안으로는 성령안에 혼이 안주했을때는 되게 좋은데, 육의 유혹을 만나면 흔들린다. 그러니까 정명도 선생이 도가 더 높아요. 연배도 많은 장행거 선생이 질문한건데, 젊은 정명도에게 물어본거예요. 정명도 이 양반이 도가 더 높거든요. 안밖을 따지지를 마시라, 육체의 유혹을 겨우 극복하고 영에 안주한 정도, 본성에 안주한 정도로는 안정이라는 말을 못쓴다. 안밖을 나누지 말고, 육체 또한 참나의 작용인줄 알고 둘을 가르지 말고 살아가시라, 이런 답을 줍니다. 그걸 어떻게 안정이라고 합니까? 겨우 유혹 막고, 방어하고 있는 그 경지가 어떻게 안정입니까?
[차라리 둘 다 잊는 것이 낫습니다. 둘 다 잊으면 마음이 맑아져서 아무 일도 없게 됩니다.]
'외부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어' 이런 소리 하지 마세요. 외부도 참나 작용입니다. 외부도 다 하나님의 신비요 성령의 작용이니 안밖을 나누지 마세요. 그 자리가 이미 천국이고, 불성자리고, 견성자리죠. 그 소리예요.
[마음에 아무런 일이 없으면 마음이 안정되며, 마음이 안정되면 광명해집니다. 마음이 광명한데 어찌 사물에 대응함이 누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不知性之無內外也 旣以內外爲二本 則又烏可遽語定哉 … 不若內外之兩忘也 兩忘 則澄然無事矣 無事則定 定則明 明則尙何應物之爲累哉, 정명도, 정성서定性書)]
이미 성령 충만해서 진리가 터져 나오는데 무슨 육체가 방해가 되겠어요? 유학자도 이런 말 합니다. 그렇죠?
다시 우리 직지심체요절 최초이 금속활자, 그렇죠? 직지심체요절을 쓰신 고려말에 백운 스님 말씀에 이런게 있어요.
[“있는 그대로의 ‘본성’은 본래 스스로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다.]
누가 만든게 아니고 본래 원만한, 영원히, 영원불멸하게
['하늘, 땅'보다 먼저 존재하였으며, 그 뒤로 곧장 지금 이 순간에까지 이르고 있다.]
천지창조도 다 이 자리에서 됐는데 이 자리는 여전히 시공 밖에 있으니까 또렷하게 있다.
[이 자리는 본래 어떠한 흠결 없이 둥글게 광명하며]
이게 이론상 자리예요.
[시방세계에 투철히 사무쳤으니,]
그러니까 시공 밖에 있으면서 시공 안의 모든 조짐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거예요. 차원이 달라서, 차원이 다르니까 가능합니다. 자! 현상계 안의 물건은 여기 있으면 저기 있을 수 없죠? 그런데 시공을 초월한 참나 자리는 시공 밖에 있으면서도 시공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어요. 이걸 단순한 초월이 아니라 감쌀 포包자 써서 포월包越이라고 하죠. 포함하면서 초월하고 있다. 포함하면서 초월한다. 포함하면서 초월해 버려요. 그러니까 무소부재 하시다 이거예요. '시공을 낳고 시공 안에 무소부재하게 임해계신 그 자리가 우리 참나 자리다' 이 소리 입니다.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맑고 항상 고요한지라, 그 묘한 작용이]
진공묘효하여
[한없이 펼쳐진 모래와 같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도다!”(眞如之性 本自圓成 先天地而生 直至如今 合下圓明 洞澈十方無內無外 湛然常 寂 妙用恒沙,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무한한 천지만물이 무량세계가 펼쳐진다. 헤아릴 수가 없다. 어떠세요? 이 도인들이 깨달은게 성령이 아닐까요? 스님들이 마구니를 깨닫고 이런 얘기를 하셨을까요? 말이 안되는 소리죠. 자! 그런데 예수님 말씀이 거기서 끝난게 아니예요.
자! 천국은 안밖을 초월해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데 그 다음 더 충격적인 얘기를 하세요.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직접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들어보세요.
《그대들이 자신(영)을 알게 되면, 그대들이 알려질 것이다.》
자! 뭔소리 일까요? 그대들이 자신을 모른다는 거예요. 자신을 알아야 된다.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영을 알아야 된다. 자기 참나를 알아야 된다는 소리예요. 그대들의 본래 모습을 알아야 된다. 그래야 그대들이 알려진다.
《그리고 그대들이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의 영을 찾으면 성령을 찾은 거기 때문에 성령을 만나면 그때 알아요. 뭘 알아요? 자! 보세요. 성령을 만나면 자신을 안다는게 여러분의 영을 알면 영이 아버지 자리고 우리 혼이 자식 자리라는 걸 알아요. 부자 관계라는 걸, 그래서 바로 여러분이 영을 향해 아빠 소리가 나옵니다. 영이 성령이예요. 내 자신을 알았는데 아버지를 알게되고 아빠 소리가 바로 나오게 돼요. 내가 하나님 자녀였구나, 울고 떠들고 했던 내 혼이 아버지의 길에서 울고 떠들었구나. 내가 아무리 힘든 역경속에 있을 때도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 주고 계셨구나. 빛을 대주고, 지혜를 대주고, 사랑을 대주고, 능력을 대주고 계셨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압니다. 성령 각성 했을 때 성령을 통해 성부, 아버지를 알게 되고 아버지 소리가 나와요. 성령을 찾았는데 아버지 소리가 나와요. 성부를 알게되고, 그 다음 성자를 알게돼요. 이런 소식을 전해준 맏이, 우리 형제중에 맏이인 예수님이 이해가 돼요. '아, 예수님은 이 아버지 뜻 그대로 사신 분이구나.' 그 전에는 예수님 정체를 모릅니다. 자기 안에서 성령을 못찾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면 엉망이 돼요. 그런데 성령을 만나고 나면 성부를 알게되고 성자를 알게돼요. 깨끗하게 알게돼요. '아, 어떤 분이구나. 성부, 성자는 나랑 늘 함께 하시는 구나.' 왜? 한 성령이라 아버지랑, 형제중에 맏이인 예수님이 나랑 항상 함께하는 구나. 내가 성령 각성해 있는 동안 항상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 분들로 부터, 성령으로 부터 나에게 은총이 내리고 성자로 부터 은총이 내린다는 걸 알게돼요.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내가 현상계에서 천국의 사역을 하는구나. 천국을 개척하고 확장하는 사역을 하는구나.
이게 안온다 가짜입니다. 성령 세례 받은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지금 도마복음에 그 얘기를 써놓으신 거예요.'그대들이 자신을 알게되면 그대들이 알려질 것이다' 누구에게? 그대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알거다. '그리고 그대들이 살아계신 아버지 자녀임을' 뭐, 어머니라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도마복음에는 하나님을 어머니로 표현하는게 나중에 구절이 나와요. '살아계신 어머니 자녀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대들이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 영의 각성을 못이루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대들은 빈곤 속에 살게 될 것이니, 그대들이 바로 빈곤이다.”라고 하셨다.》
빈곤 itself, 빈곤의 화신, 어떠세요? 거의 저주죠. '너희가 그냥 빈곤의 로고스야. 빈곤의 로고스를 구현하고 있어' 맞는 말이예요. 빈곤의 로고스가 뭐예요? 하나님과의 단절이죠. 그게 빈곤의 로고스 자기 자신과의 단절, 뿌리와의 단절, 이게 빈곤이다. 세죠? 각주까지 빨리 보고 끝내겠습니다.
[우리의 혼의 본체가 바로 ‘영’(참나)이다.]
영을 제가 참나라고 부를게요. 성령과 하나로도 따로 구분도 하겠습니다.
[‘참나’(I Am)를 각성하라!]
나의 현존입니다. 영원한 나의 현존,
[‘참나’ 는 사실 내 안에 자리하신 ‘하나님의 영’(성령)이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분신’인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그때 주 하나님께서 ‘흙의 먼지’(육)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결’]
영입니다. 성령이라는게 숨결이라는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영)을 불어넣으셨다. 그리하여 사람이 ‘살아있는 존재’(혼)가 되었다. (창세기 2:7)]
영혼육 삼분설의 기원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참나)과]
성령과 영을 구분할때는 이겁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로마서 8:16)]
이 소리예요. 처음에 나는 영을 깨달아요. 나의 영, I AM 자리, 나의 존재감의 뿌리를 찾았더니 알고보니 이 자리가 성령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성령, 내 혼의 뿌리라는 측면에서는 영, 이해되시죠? 내 혼의 뿌리는 뭐예요? 영, 하나님 성부의 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성령, 성부의 영의 작용으로 우리가 사니까, 그래서 이 자리를 두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성령, 나의 영. 성령과 나의 영이 다 뭐라고 한다구요? '너는 아버지 자녀다.' 라고 한다구요. 이런 체험들이 갖춰져야 이런 말씀들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나겠죠? 영적 체험과 지혜로 살아나서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 사랑, 정의, 겸손, 지혜가 펼쳐지기를 그러면 칭의, 성화가 이루어 지고 거기에 영화까지 갖춰져서 천국의 온전한 주인, 예수님의 형제, 남매가 되시기를 그런 거룩한 일들이 이땅에 일어나기를, 이것은 시공을 초월한 명령입니다.
자! 여러분 안됐지만 '이번에 천국이 된다는 보장이 있나요? 그래야 제가 이 사역에 뛰어들겠는데요' 그건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지금 이 명령은 시공을 초월해서 내려오니까 시공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이 명령의 지배에 시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을 건설하라, 천국을 확장하라' 어차피 여러분도 별수없이 성령에 가까이 갈수록 이 명령에 시달리게 되어 있어요. 그냥 빨리 자수하고 광명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