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39강
| 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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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일자 | 2018. 06. 23. 土. |
| 게시일자 | 2020. 09. 09. |
| 동영상 길이 | 57:27 |
| 강의 중 인용 도서 | 대승기신론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NqW0002xYJk |
0:11 오늘은 그림까지 설명해 드리려니까 진도를 빨리 좀 뽑겠습니다. 그림이 참 재미있어요. 예전에도 퇴계 선생의 심통성정도를 해드렸는데 유튜브에 자료 있어요. 그래서 그거랑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얘기, 그때 못 했던 얘기를 좀 해 드릴게요. 그런데 그 얘기가 어떤 차원에서 지금 나오는 거냐?
1:21 우리가 대승 보살의 길이라고 하는 걸 특정 종교의 길로 아시면 안 됩니다. 제 강의 그래도 몇 편이라도 들으시면 아실 거예요. 감 잡으실 텐데. 대승기신론에는 이걸 한마음이라 그래요. 그냥 한마음(일심)이라고 아시는 게 좋아요. 종교를 떠나 한마음. 이게 기독교로 치면 성령이죠. 그냥 성령이죠. 성령은 어차피 하나죠. 사도 바울이 엄청 좋아한 표현입니다. 한 성령, 우리는 한 성령이다. 한 마음의 작용이다. 한 성령의 작용이다. 이 전체가 한마음이에요. 이것은 본체고
2:04 요거는 작용일 뿐이죠. 자 한 마음의 본체와 작용을 얘기했습니다. 대승기신론 위주로 일단 얘기해볼게요. 이걸 나중에 유교랑 맞춰 볼게요. 이 본체 안에 형상이 있어요. 이게(⊛) 형상이라고 했고, 또 지난 시간에 읽었을 땐 뭐라고 그랬죠? 진여의 법성. 이게 유교에서 말하는 본성입니다. 유교는요 본체를 지금 본성이라고 하고 작용을 감정이라 그래요. 본성과 감정으로 얘기합니다. 불교에서는 본체와 작용. 본체 안에는 형상이 들어 있죠. 이게 진리의 형상이에요. 진여의 법성이란 말이 진리의 형상이라는 거예요. 우리 안에 진리의 종자가 들어 있다가 그게 밖으로 표출된다는 거예요. 우리 안에 육바라밀의 종자가 들어 있으니까 밖으로
3:03 육바라밀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안에 종자가 있으니까. 우리가 왜 육근이 있을까요? 이 안에 육바라밀의 종자가 있다가 밖으로 작용하면서 육근도 나오고 다 돌아가는 거예요. 오행으로 보면 오온이 돌아가고 육바라밀 관점에서 보면 육근이 돌아가고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안팎이 하나예요. 하나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어요. 이거를 유교에서 설명을 잘한단 말이에요. 유교에서 우리 안에 오행의 원리가 들어 있다가 이 오행이 밖으로 펼쳐지면 수많은 우주 만물에 보이는 오행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이게 본체죠. 밖으로 펼쳐진 게 작용이고. 안팎이 하나의 원리예요. 유교에서는 일리 그럽니다. 하나의 원리. 불교로 치면, 불교식으로 말하면 바로 일법이에요. 한 법이에요. 생각해보세요. 하나의 법이 이게 지금 각각인가요? 쪼개져 있는 것 같죠. 일법이에요. 한 법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의 법이 이게 지금 각각인가요? 쪼개져 있는 것 같죠? 한 법이에요. 한 법의 본체, 한 법의 작용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우주는 한 진리가
4:03 그냥 굴러가는 거예요. 한 진리의 나툼일 뿐이에요. 그래서 우주가 한 법계라는 걸 꿰뚫어 보신 분은 견성하신 분이고 그걸 온몸으로 소화하신 분은 부처님이에요. 우주가 하나로 굴러간다는 걸 아신 분. 쪼개면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쪼개면 여섯 개. 이 여섯 개의 조합이 무한한 조합이 나와요. 무한한 선행은 다 육바라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선적인 측면만 얘기해서 그래요. 악도 그래요. 동양의 모두 만물은 오행으로 나오죠. 악도 다 오행에서 나옵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려고 그래도 이 법이 있어요. 이 법을 가지고 악을 하는 겁니다. 불교도 똑같아요. 여러분 악을 하려고 해도 여섯 가지 법으로 하는 거예요. 자 6가지 법에서 뭐라고 합니까? 보시, 사랑하라 그러죠. 사랑 어기면 잔인함이 나오는 것도 이 법으로 하는 거예요. 이 법 반대로 해보는 거예요. 사랑하라. 정의로워라 지계. 계율 지켜라. 그러면 파계, 계율 어겨보는 거예요. 인욕하라. 안 참아요. 분노해봐요. 정진하라. 나태해봐요. 깨어있으라. 선정하라. 난동부려 봐요. 마음을 심란하게 써 봐요.
5:05 지혜. 자명하게 하라. 어리석게 해봐요. 이게 또 악의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6가지. 결국 이 음양오행에서 안 벗어납니다. 오행이랑 육바라밀은 어떤 관계냐? 제가 많이 해드렸는데 한 번만 더 해 드릴게요. 어차피 오늘 오행을 해야 되니까. 수 기운, 봄의 목 기운, 요렇게 돌죠. 불(화) 기운. 양이 극성했다가 쪼그라듭니다. 쇠(금) 기운에서 쪼그라들고 물(수) 기운에서 확 쪼그라듭니다. 서늘한 쇠(금) 기운, 더 압축된 쪼그라든 물(수) 기운. 고체인데 위로 자라는 목 기운, 기체(화)면서 위로 자라는 화 기운. 자 고체, 기체죠. 요놈(화)이 훨씬 발산력이 좋죠. 요건(금) 이제 쇳덩어리잖아요. 이건(수) 물이죠. 요놈(금)이 더 쪼그라들어서 액체(수)가 된다는 겁니다.
6:00 쪼그라들고 발산하고. 그렇죠. 중간이 토 기운. 근데 재미있는 게 이 토 기운이요. 물(수)이 나무(목)를 낳으려면 물(수)에서 나무(목)가 곧장 못 나와요. 물(수)이 땅(토)을 얻어야 토극수 토가 물(수)을 이기고, 목극토 목이 흙(토)를 누르면서 뚫고 올라옵니다. 요 극이라는 게 토극수니까요 흙(토)이 물(수)을 머금어버려요. 물(수)을 흙(토)이 먹어요. 머금고 있어요. 물(수)을 머금은 흙(토)에서 목 기운이 위로 뚫고 올라옵니다. 제압하면서 기운이 올라와요. 그래서 결국 토가 여기서 작용해줘야 돼요. 주역에서 여기는 간토입니다. 간(☶)토, 토 중에 양토예요. 여기에서 또 음토가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화생토. 불은 재(토)를 낳고 재(토)는요 흙(토)은 뭉쳐서 또 쇳덩이(금)가 돼요. 자 그래서 여기서 토 기운이 도와줘야 돼요. 여기는 주역 8괘에서는 곤(☷)토 음토죠. 마이너스토 곤토가 있고, 양토 플러스토 간토가 여기서 작용해주는 거죠.
7:00 그래서 주역 괘가요 감괘, 물에 해당되는 감(☵) 간(☶), 진(☳)괘 목괘입니다. 손(☴)괘도 목괘예요. 목 기운이에요. 이게(☳) 이제 양목, 이게(☴) 음목. 음양이 다 있어요. 화괘 리(☲)괘, 감간진손리 곤. 곤(☷)괘. 태(☱) 태금도 금이고 건금도 금인데 음금(태금) 양금(건금)이에요. 둘 다 금이에요. 그 다음에 다시 감간진손리. 그래서 팔괘를 보면 양쪽에 토가 있어요. 토가 잡아주고 있어요. 균형작용. 아시겠죠. 어렵지 않죠. 그래서 양토 음토가 있어요. 이렇게 이해하시면, 봄은 사랑, 가을은 정의, 아주 이거는 숙살기입니다. 엄격한 기운. 요쪽은 살려주는 온화한 기운. 여기는 불 기운. 예절, 남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불 기운이라 표현이에요. 확 표현해야 되는데 표현하되 남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표현하는 거예요. 남을 잘 수용해 주면서 조화를 이루는 기운. 물 기운은 지혜. 정보만 갖고
8:05 있는 지혜. 토 기운은 성실인데 음토와 양토가 있어요. 양토는요 하늘하고 만나는 토입니다. 요거(양토)는 선정에 해당되고요. 음토는 땅이 힘이 있는 거죠. 땅이 넓고 땅이 두텁게 쌓여 있는 그 힘. 그 성실함이라 요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실로 보시면 돼요. 음적인 거고 양적인 것. 요건(양토) 하늘이 원래 안 쉬는 걸 말하고. 요건(음토) 땅이 안 쉬는 걸 말해요. 둘 다 안 쉬는 건데 하늘은 초월적이라서 안 쉬어요. 땅은요? 하늘을 따라가는 열심히 따라가는 형이하학적인 힘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성실, 선정은 몰입이죠. 몰입. 하늘하고 하나로 통하는 거. 우주는 원래 성실해요. 안 쉬어요. 참나니까. 거기랑 통하는 게 이 양토고, 형이하학적으로 실제로 어떤 일을 안 쉬는 거
9:03 이게 음토입니다. 아시겠죠. 그럼 이게 어떻게 돼요? 보시(목), 지계(금). 여기(목)는 나무의 남한테 베푸는 거, 요거(금)는 엄격히 아닌 건 아니라고 다 끊어 버리는 힘. 에너지가 다릅니다. 인욕(화), 남 참아주고 남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 지혜(수), 반야. 요거는 정보만 품고 있는 거. 성실(음토)에서 요거는 정진, 쉬지 않는 거. 요거(양토)는 선정, 참나랑 하나가 돼서 깨어있는 거. 자 어떠세요. 오행이랑 육바라밀이 딱 만나게 돼 있어요. 이게 놀라운 거예요. 제가 여기까지 연구하고 나서요 “웬만하면 진리겠다.” 왜냐? 이쪽 동양, 극동 쪽이랑 저쪽 인도 쪽이랑 따로 연구했는데 결론이 똑같이 난 거예요. 인간의 본성이 웬만하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겠어요. 이게 똑같아요. 동양은 우리 본체 안에 오행 원리 들어있다는 거고, 인도는 우리 본체 안에 육바라밀 들어있다는 거예요.
10:03 그게 한쪽에서는 대승기신론, 한쪽에서는 유교 경전에 잘 나옵니다. 자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음양오행 유교를 넘어선 거예요. 음양오행은 유교 이전부터 있었어요. 이게 음양오행 안에 이미 들어있던 논리입니다. 음양오행은 동이족들이 연구했다고 연구해서 알아낸 거라고 전해 오죠. 우리 DNA가 동이족 DNA라 안 하셔서 그렇지 우리가 연구 잘하게 자질은 있어요. 그래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인의예지만 연구했던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인과가 있어요. 인연이 있어요. 왜냐하면 중국이 사람도 많고 성리학도 중국에서 나왔는데 왜 조선이 그렇게 성리학에 미쳤을까요? 그 인과도 있을 거 아녜요. 그 인과 인연을 따져보면 그게 동이족에서 나온 건데 동이족 제일 적통이 사실 우리나라입니다. 그 문화가 제일 고스란히 잘 전해 옵니다. 중국은 또 거기서 많이 부풀려 가지고 작품
11:04 만들어낸 건 중국이 많이 만들었는데 그 원천 기술은 이쪽이 고조선 쪽이 갖고 있어요. 그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돼요. 저는 서로의 역할을 말합니다. 그것도 왜 그러냐면 동방은, 우리 만주 땅은 주역에서 간방이에요. 간괘는 만물을 시작시키고 끝내게 해요. 이 토가 이 토 기운이요 만물을 시작시키고 끝내고 합니다. 역학에서 많은 거 아실 필요 없어요. 제가 지금 설명하는 정도만 역학에 대해서 알아두세요. 제가 얘기하지 않는 건 별로 여러분 공부에 도움 안 되는 거예요. 도움 되는 건 제가 다 얘기해 드렸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갑자기 얘기 듣고 주역 책부터 사시면 공부 안 하시겠다는 거예요. 한 1페이지 읽고 혼절하실 거예요. 그러지 마시고 제 얘기만 이해하세요. 왜 간방이 만물의 시작이자 만물의 끝이라고 하느냐? 한 사이클 이렇게 돌고 나서 간방에 와서 끝납니다. 그리고 새 사이클이 간방에서 시작해요. 즉 이 토가 중심이잖아요.
12:03 토가 만물의 주재자예요. 여기가 황극 자리라고요. 그러니까 우주 만물의 사이클이 한 바퀴 돌고 간방에 와가지고 여기(수와 목 사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여기(중앙)서 작용한다고요. 간방에 와가지고 정리가 돼서 새로 새 문명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 문명을 정리해 주는 것도 간방이고, 깔끔하게 끝맺어 주는 것도 간방입니다. 기존의 경험치를 가지고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게 간방의 할 일이고, 이제 앞으로 새 문명은 기존 정보를 바탕으로 이렇게 시작하자고 새 문명의 대안을 내놓는 것도 간방의 할 일이에요. 그게 달로 치면요 이 달이 여기(화)가 지금 춘분이고 이쪽(수)이 동지면 그 사이입니다. 보세요. 요 사이에 한 번 돌았던 만물이 싹이 나서 꽃을 피우고(화) 열매 맺다가(금) 씨알로 남겨요(수). 씨알을 남겨요. 그 씨알이 다시 싹이 나는 그 계절이 지금 간방의 계절이에요. 주역에서 우리 만주 땅이 간방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무명을 정리해서 새 문명. 깔끔하게 요렇게 하세요.
13:07 기존 유불선 기독교 이슬람 복잡하죠. 정리해서 “이게 핵심입니다”라고 얘기해 주는 게 간방의 할 일이고 그게 확 부풀어지기는 진방에서 해요. 진방이 중국 쪽입니다. 원천 기술들이 다 어디서 나왔다구요? 주역에 근거할 때도 동이족한테서 나왔다고 주역에다가 써 놓은 거예요. 모든 만물에. 그리고 공자님이 간방은 성시성종이라 그랬어요. 시작과 끝이 되는 곳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대강 이해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공자님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합치면 정성 誠자예요. 요 토가 정성 성이에요. 에고가 하나도 없어서 정성스럽다는 건 선정이고요. 에고가 정성스럽다는 것은 성실이라는 거예요. 두 개 구분만 하자는 거예요. 다 하나로 정성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로 얘기하자면 인의예지신, 인의예지성이에요. 그러면 그 안에 다 들어
14:01 있어요. 신은 밖으로 신뢰를 준다는 거고. 성실하니까 신뢰를 주는 거거든요. 자 말을 늘 이루니까(성) 자 보세요 말만 해도 사람들한테 믿어지는 게 믿음(신)이에요. 인의예지신에서 신은 말만 해도 난 믿어준다 예요. 그러니까 성실이 꽉 찼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신=성) 같은 겁니다. 인의예지신만 생각하지 마세요. 인의예지성이라는 걸 아셔야 돼요. 인의예지성, 정성. “사랑 정의 예절 지혜를 정성껏 하자” 이것입니다. 사랑 예절 정의 지혜를 정성껏 하자 예요. 그 정성에는 하늘하고 하나 된 정성이 있고 내가 쉬지 않는 정성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선정과 정진이 딱 구별돼 버려요. 자 아시겠죠. 이게 주역 돌아가는 원리입니다. 왜 나머지들은 하나씩 먹고 토만 두 개 먹나요? 토가 그렇게 중요해요. 토가 만물의 중심이 돼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15:01 이게 지금 구공의 다 예요. 제가 구공이라고 한 게 우리 마음, 한 마음 안에 본체가 있는데 본체 안에 우주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작용은 어디서 나왔냐? 본체에서. 본체에서 어떻게 작용이 나왔냐? 본체 안에 정보가 있거든요. 본체 안에 법들이 들어 있거든요. 진리가 들어 있거든요. 그 얘기입니다. 그래서 참나 안에 어떤 진리가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알면 이건 불생불멸이거든요. 이 법은 영원한 거예요. 참나가 영원하면 참나 안에 들어있는 이 법도 영원해요. 그래서 불생불멸이라는 말로 무생법이라 그래요. 불생불멸의 진리를 인가한다고 그래서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러는데 이게 8지 보살에서 얻는 겁니다. 여러분이 육바라밀의 진리를요 본체와 형상과 작용을 온전히 이해하면 8지 보살이 돼요. 여러분이 늘 깨어 계시고 내 안에 육바라밀의 정보를 늘 담고
16:09 다닌다는 걸 알고, 건드리기만 하면 그 정보를 정확하게 작용으로 펼쳐내실 수 있으면 8지 보살이에요. 화엄경은 간단합니다. 건드리면 계속 내 안에 있는 진리의 말씀이 계속 형상화되어서 나오기만 하면,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표현되기만 하면 8지 보살이에요. 이게 예수님이 말한 “난 아버지 뜻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하는 경지예요. 예수님이 말한 경지가 그게 8지 이상의 경지입니다. 공자님이 말한 “종심소욕불유구” 내 마음대로 해도 법을 어기는 법이 없다. 그러면 그게 쉽게 말하면 7지 8지 경지신 거죠. 7지 8지 경지. 7지는 그게 의도적인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서 이루어지는 거고. 8지는 아주 그냥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일어난 현상은 같은데 얼마나 힘이 더 들어가냐 덜 들어가냐로 7지 8지를 구분해요. 사실은 7지 이상은 다 성자라고 하는 거예요. 왜? 7지 이상은 의도적인 노력이
17:04 살짝 들어갔다 하더라도 이미 현상적으로는요 육바라밀 그대로 똑같이 살고 계시는 경지예요. 성인의 경지예요. 7지 이상. 이 정도 정리하셨으면 지금 화엄경의 요약도 제가 해 드린 거예요. 화엄경 요약해 드렸고 불교 얘기해 드렸고 유교 얘기해 드렸어요. 이게 다 합쳐져서 결국 뭐냐? 제가 지금 구공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구공. 구공은 뭐냐? 우리가 그동안 배운 공은, “에고 이전에 공이 있더라.” 이게 아공이었구요. “에고가 실체가 아니고 공이 나의 실체더라” 아공. “이 공에서 만법이 다 나왔더라.” 법공. 법공은 “일체의 만물이 참나로부터 나왔다”는 얘기만 해요. 그럼 이게 뭐랑 똑같냐면 “모든 것은 유전자가 결정합니다” 이 얘기랑 똑같아요.
18:03 그런데 구공은 뭔지 아세요? 유전자 지도를 한 번 그려보는 거예요. 유전자 안에 어떤 정보를 갖추고 있길래 만법이 이렇게 돌아가는가까지 얘기하는 거예요. 이거 엄청 정밀하게 들어가는 거예요. 둘이 아니에요. 구공은 법공이랑 둘이 아닌데 법공의 극치예요. “만법이 다 참나 자리에서 나왔다” 이게 법공이라면 그 법이 참나 자리에 어떤 모양으로 생겨 있길래 이런 식으로 나오나?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되나? 이런 부분까지 실천적으로 점검해 본 겁니다. 참나와 함께 한참 살아봐야 알 수 있죠. 확철대오 이후, 1주 보살 이후, 참나가 늘 내 안에 나타난 이후, 한참 공부해 가셔야 돼요. 사실은 거의 무량겁을 공부하셔야 돼요. 견성 이후로도 무량겁 공부하셔야 돼요. 자 원래 1주 보살까지 만겁 걸립니다. 만겁.
19:01 우리가 공부 진짜 안 하죠. 만겁 걸려요. 다 해서 1무량겁이 걸려요. 어디까지냐? 1지까지. 자 요거는 그냥 예를 든 겁니다. 요 정도 걸려요. 그런데 1지부터 또 1무량겁이 걸려요. 언제까지 걸릴까요? 7지 보살 되는 데까지. 여러분 지금 1주 보살이 7지 가려면요 “1무량겁+1무량겁-만겁” 걸려요. 저렇게 사느니 죽겠다. “그냥 나 열반에 들래요” 하고 막 갑자기 여기까지 얘기 듣다가 소승학원으로 전향하실 수도 있어요. 나 저거 못 기다린다고. 그런데 그렇게 놀라실 필요가 없는 게 소승학원 가봤자 아라한이에요. 아라한이면 대승으로 치면 경지가 1급 밖에 안 돼요. 결국은 그쪽 간다고 레벨이 올라가는 건 아니라고요. 이렇게 닦아 가시면 돼요. 지금 저 말 듣고
20:00 흔들린다. 1주 아니에요. 1주는 저 말을 듣고 흔들리면 안 됩니다. 이미 열반이시기 때문에 “본래 열반이지. 무한한 세월도 본래 한 순간일 뿐이지” 요거 알고 계시는 게 1주거든요. 저런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이 세월을 닦아갈 근기가 1주에서 만들어져요. 그래서 1주가 확철대오라고 하는 거예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일 마쳤다는 소리 들어요. 요 정도면 “1차 공부는 끝났다” 이것입니다. 1차 공부가 뭐였죠? “참나가 늘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거.” 참나는 원래 있었어요. 늘 자각하는 경지까지 가고 속사정까지 이해해야 돼요. 참나가 늘 내 안에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내 에고의 본체라는 걸 알아야 되고, 내 에고가 일으키는 생각 감정 오감의 모든 현상은 참나의 작용이란 것을 의심 없이 인가하고 수용할 정도 돼야 1주 보살입니다. 저기에 대해서 더 이상 의심 없어야 돼요. 근데 지금 제 얘기 듣고도 강의들을 때는 수용이 되다가
21:01 나가시면서 바로 또 흔들려요. “진짜 그럴까?” 그럼 아직 아닌 거예요. 근데 그런 식으로 계속 공부를 하시다보면 여러분이 어느 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고 수용할 때가 와요. 저한테 승복하는 게 아니에요. 진리에 승복할 때가 와요. 그때 여러분이 1주 보살이 되신 거예요. 부정 못 하는 단계가 와요. 이제 내 모든 삶에 이 아공 법공의 진리는 내 삶의 기본이 될 때가 와요. 지금은 기본이 안 돼요. 가끔 정신 맑을 때는 그걸 취했다가 정신 흐려지면 또 버립니다. 그게 아니라 정신이 맑건 흐리건 술에 취했건 여러분 의식이 아무리 혼미해졌건 저게 진리라는 걸 부정 못 할 때가 와요. 그때 여러분 1주 보살이신 거예요. 그냥 명상을 통해 참나만 늘 흐른다고 1주가 아니에요. 제 강의 듣고 참나 체험하시고 다 고마운데 셀프 인가해 가지고 1주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법공은요 법공의 지혜까지 갖고 있는지 또 검증 따로
22:01 해야 돼요. 여러분 삶이 늘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 계시고 그 진리를 온전히 수용하고 계신지는 또 다른 문제거든요. 그래서 선정과 지혜가 하나로 만날 때 1주 보살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선정과 지혜만 하나로 하면 안 된다고요. 1주 보살은 이미 이제 됐고, 구공을 공부하시려면 선정과 지혜를 기본으로 6가지 근본법. 6가지 근본원리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셔야 돼요. 지금 1주까지 오는 동안 지혜도 점검해 봤고. 지혜는 아공 법공까지 점검했어요. 선정도 늘 참나 안주, 참나가 늘 흘러요. 자 이제 뭘 본격적으로 점검해야 됩니까? 사랑, 남의 입장을 내 입장처럼 배려하는 것. 정의, 남한테 부당한 피해 주지 않는 거. 인욕, 상황을 진심으로 수용하는 거. 진실을 수용하는 것. 정진, 항상 쉬지 않고 양심에 최선을 다하는 거. 요것들을요 닦으시면서 참나 안주가 이런 육바라밀이 진행되는 속에서도 이어지는지
23:05 확인하셔야 되고, 아공 법공 플러스 구공, 내 안에는 6가지 진리가 박혀 있다는 것을 행으로 입증해내야 돼요. 이것도 기본일 뿐이에요. 그래야 1주 보살이 돼요. 1주 이후 10지까지는요? 저거를요 더 더 정밀하게 입증해서 8지 보살이 되면 안에 있는 6가지 종자가 밖으로 그냥 흘러나오게 만들어야 돼요. 그전까지는 업장이 많아서 그렇게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기분 좋을 때는 나오는데 아닐 때는 딱 막혀 있어요. 그런데 기분이 좋건 나쁘건 흘러나오게 만들고 나면 여러분이 성인이 돼요. 성인이 7지부터 성인이에요. 그때부터는 7지부터는 여러분 부처라고 불릴 수 있어요. 7지부턴 부처입니다. 왜냐? 그분은 하느님 뜻대로 살기 때문에 하느님이라고도 하는 거고 성자라고도 불리는 거고 부처로도 불려요. 보살이라는 건 중생성이 있으니까 보살이라고 부르는 거고. 그건 예수님도 똑같아요. 중생성을 갖고 있으니까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거고
24:02 그런데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진리 그대로 사시니까 그분은 동시에 하느님인 거예요. 불교도 똑같아요. 불성 그대로 사니까 7지부터는 부처님이에요. 불성대로 사니까. 동시에 중생성을 갖고 있으니까 보살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그냥 보살이 주인데 7지 이후는요 보살이면서 부처라는 걸 아셔야 됩니다. 7지부터는 원래 여래라고 불러야 돼요. 화엄경에도 보시면 7지는 의도성이 있다고 해서 빼고 8지부터 화엄경에서는 여래라고 불러요. 여래의 일원이 됐다라고 불러요. 10지한테는 확실히 여래라고 하는데 8지부터는 이미 여래의 일원이라고 불러줘요. 일반 중생보다는 여래 쪽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래라고 불릴 사람이라는 것을 화엄경에서 확실히 구분합니다. 그 이유가 간단해요. 여러분 안에 있는 육바라밀이 인의예지신의 그 본 종자가 여러분 마음에서 밖으로 온전히 나오냐 안 나오냐 예요.
25:01 그것만 보면 알아요. 다 알아요. 그래서 지금 실제로 여러분이 여러분 육신으로 가려져서 그렇지 영혼만 보면 그게 어느 정도 나오고 있는지 다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우주적으로 자기 레벨을 속일 수가 없어요. 저희 봉우 선생님이 말이 세신데 북극성 왔다 갔다 할 때 얘기를 해주시는데 북극성 가서 지구를 보면요 빛으로 보인대요. 그 빛 하나하나가 그 사람의 영성인 거죠. 어느 지역에 큰 불이 있고 어느 지역에 반딧불 같은 것들이 있고. 영성을 비추는 빛의 강약으로 보신대요. 말이 조금씩 다르시긴 한데 근데 북극성까지 비치는 빛은요 한 9지 보살 되면 북극성까지 비친대요. 7지 이상. 좀 넉넉히 잡아서 7지 이상들은 그 빛이 저 하늘나라 쉽게 말해서 북극성까지 빛이 이른대요. 북극성이면요 불교에서 부처님들이 계신다고 말하는 색구경천이에요.
26:03 이건 영적인 세계를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실제 우주에 나가면 북극성 없어요. 우리 지구에서 딱 그 위치에 있는 별이 있을 뿐이지 거기가 그 북극성이니까 영적으로 높은 별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제가 얘기하는 거는 영적인 북극성을 말하는 거예요. 가장 레벨 높은 분들이 계신 거기가 우주의 꼭대기라 북극성이라고 합니다. 실제 동양에서는 우리별의 꼭대기인 북극성하고 하느님이 사신다는 북극성을 하나로 보기도 해요. 그건 좀 구분해서 일단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연구하다 결론이 하나로 나오면 몰라도 일단은 구분해서 접근해 보시는 게 좋아요. 자 이 정도로 대충 소개해 드렸어요. 어떠세요? 짧은 시간에 지금 멀리 갔다 왔는데. 우주 저기까지 갔다 왔습니다. 결국 북극성도 별거 없다. 북극성에 누가 들어가느냐? 색구경천에 누가 거기 가 사느냐? 불교에서는 8지 이상이에요. 우리 민족 철학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성통공완자가 거기
27:00 들어간다. 본성 다 통해서 온전히 공덕까지 완수한 사람이 거기 들어간다. 우리 안에 있는 인의예지의 본성 다 구현해 가지고 밖으로. 보세요 우리 민족 철학입니다. 우리 민족에 의해서 오행도 나왔기 때문에 지금 인의예지신으로 보시면 돼요. 본성을 다 꿰뚫어 봐 가지고 밖으로 작용해서 공덕을 완수한 사람이, 성통공완자가 하느님 계신 북극성이 들어간다. 이게 우리 민족 철학이에요. 이 지상에서 제대로 산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죽어서 그 빛이 이제 북극성까지 비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죽어서 그 별에 간다. 이제 인간계에 안 와도 되니까 거기 간다. 근데 그 분들도 다시 와요. 인류 구하려고 와요. 불교도 똑같아요. 8지 보살 이상은 정토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중생 구제하러 또 끝없이 와요. “그러려면 뭐 하러 가나?” 거기 가서 또 고급 정보 얻어서 인류 돕겠다고 와요. 거기 가도 또 여러분 짬밥 높은 부처님들 있기 때문에 “니가 이번에 지구
28:02 좀 가야겠다”고 그러면 와야죠 어떡해요. 그렇죠? ”너가 좀 가라“ 그러면 지구에 인연이 있는 보살이 또 지구에 다시 와서 해야 돼요. 인연이 무섭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주변에 인연 많이 맺어 놓으셨죠? 나중에 저기 정토 가셔도 구하러 또 여기 오셔야 돼요. “거기 누구 보낼까?” 그러면 여러분이 거론되겠죠. “우리 지구 출신이 있는데요.” 가서 또 풀고 오는 거예요. 이게 결국 이 대승보살도는요 중생계를 떠난다는 개념이 아예 없어요. 극락 간다. 거기도 중생계예요. 똑같아요. 사람 사는 세계라고요. 결국 대승에는 사람 사는 세계에서 떠난다는 철학이 없습니다. 소승은요? 떠나서 열반에 든다는 발상이 있죠. 그걸 거부해버린 게 대승인데 놀랍게도 대승, 유교, 기독교 다 그게 없어요. 중생 구제가 목표입니다. 특히 우리 민족 대종교 철학마저도 뭡니까? 목표가 홍익인간이에요.
29:00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 구원하려고 이 땅에 왔다는 게 우리 민족 신화 아닙니까. 하느님 아들인 단계가 하느님 분신인데 하느님이 지금 분신 보냈다는 거예요. 지구별 거기 살려야 된다고 회장님이 자기 분신 보냈어요. 이게 기본 철학이에요. 그러니까 고등철학으로 들어가면 다 대승입니다. 다른 거 아예 생각하지를 마세요. 왜냐? 열반에 들어가야 한다는 발상 자체를 인도인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기 전에는 사실은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나 하나 편하자”는 생각은 해도 “우주에서 열외하자”는 발상은 그게 센 겁니다.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발상이에요.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우리 동양에서 그런 건 없었죠. 어디 산에 가서 혼자 살자는 있어도, “극락 가서 좋은 데 가서 살자”는 있어도.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래. 극락 가봤자 또
30:00 고민에 빠지게 돼 있어. 왜? 현상계는 고통이거든. 극락 가도 고통 있을 거야. 그 정도 고통도 난 못 견디겠어. 그냥 죽어버릴래. 사라져버릴래. 이게 인도의 열반 사상입니다. 그거 아주 센 거예요. 그걸 보편적으로 아시면 안 돼요. 그런데 인도에서 전 세계 명상을 가르쳐 놔서 지금 전 세계가 다 혼재돼 있어요. 한 입으로 두 말을 해요. “중생을 구제합시다. 그리고 빨리 이 우주에서 사라집시다.” 구제가 먼저예요? 사라지는 게 먼저예요? 그럼 벌써 이건 선택 못 합니다. 지금 다음 생 또 태어나셔서 구제 더 하실래요? 아니면 이번 생이 마지막이신가요? 저는 좀 가겠습니다 그런다구요. 전 열반에 들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가겠습니다. 구제가 먼저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홍익인간 사상이라는 건요 구제가 지상 목표예요. 홍익인간이 지상 목표예요. 수행을 왜 하세요? 홍익인간 하려고요. 보살들한테 물어봅니다. 왜 도 닦으세요? 중생 구제하려고요.
31:00 선명해야 돼요. 기독교에서 하느님 사도가 뭐 하는 겁니까?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 중생 구하러 어디든 가셔야 돼요. 기독교 분들 모여서 눈물 흘리시면서 늘 이런 노래 부르지 않나요. 주님이 가라면 어디든지 가겠다. 막상 가라고 하면 또 선약이 있어서 급한 일이 있어서 이러실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대승의 마음이라는 거 아셔야 돼요. 그게 대승덩어리예요. 화엄경 보세요. 대승보살경들 보세요. 다 그 내용이에요. 중생이 있는 곳 어디든 가리라. 내가 가서 그 중생들한테 모욕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그 중생 구원시키고 말겠다고. 불경에는 그 원들만 계속 쓰여 있어요. 너무 다른 철학입니다. 소승하고 절대 섞지 마세요. 다른 철학이에요. 소승은 특정 방편에서만 의미 있는 거예요. 정법은 대승입니다. 자 보세요, 예전 부처님도 이해가 돼요. 예전에 인도에 정법을 못 받아들일 사람들이에요.
32:04 대승 얘기하면요 나도 죽겠는데 무슨 육바라밀이에요. 내가 지금 당장 죽겠는데. 여러분 대승을 못 받아들일 사람들한테 가서 방편으로 견성이라도 일단 하자 하는 차원에서 열반을 권할 순 있어요. “너 지금 우주 떠나고 싶지? 그러면 방법이 있어. 몰라 하면서 자명 체크해봐. 아공 연구해봐. 우주 떠날 수 있어.” 죽어라 아공해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부처님이 다시 그 대승 가르침 법화경에서 뭐라고 했나요? “뻥이었지롱” 그랬다고요. “그땐 구라였다.” 중생 탓을 해요. “니네 탓이었다. 니네가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다. 어쩔 수 없이 부득이 방편을 썼다. 이제는 너네도 아공까지 따라 왔으니 이제 법공 가자.” 이게 법화경 내용입니다. 저는 더 얘기하는 거예요. “법공에서 이제 구공 가자”고 얘기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불경에 보면 결국 구공 가야 스토리가 끝나요. 자 아시겠죠.
33:01 우리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윤회를 더하고 싶어서 대승 보살도를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무생법인이라는 건요? 원래 생겨난 적이 없는 불생불멸의 불멸의 진리에 대한 인가예요. 이게 열반이 아니고요. 대승에서는 이게 진정한 열반이죠. 무생법인을 증득해버리면 여러분은요 열반을 들겠네 말겠네도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 진리를 온전히 구현하면서 우주에 존재할 뿐이에요. 이해되시죠? 생명이 없는 그 진리의 구현자로서 여러분이 이 우주에서 영원히 기능하셔야 돼요. 그게 불보살입니다. 여러분은 선택권이 없어요. 왜? 진리대로만 살기 로 서약했기 때문에 진리가 여러분 안에서 뭐라고 외쳐요? “한 명의 중생이라도 더 사랑해라. 그 중생한테 피해를 주지 마라. 그 중생을 참아 주면서 그 중생을 성실하게 선으로 인도해라.” 이 공부는 끝이 없는 거예요.
34:01 “어! 이거 힘든데. 그냥 열반에 들까?” 이건 에고의 판단이고 에고의 소리지 참나는 절대 여러분한테 열반에 들어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참나는 오히려 뭐라고 얘기하는지 아세요? “그대는 본래 열반이다”라고 얘기해요. “그대는 본래 열반이고 그대는 본래 진리기 때문에 있는 갖추고 있는 진리를, 구공을 드러내라. 작용으로도 보여라. 본체가 갖추고 있는 형상을 작용으로 드러내라.” 이 얘기만 하지 절대 열반에 들어라 마라는 참나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건 에고의 소리에요. 에고가 이렇게 생각해요. 열반에 들자는 건 다시 태어나는 게 싫다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또 고생할 것에 대한 두려움, 다시 태어나면 또 감정의 아픔을 겪어야 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참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어요. 여러분이 그런 감정을 겪건 말건 참나는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습니다. 참나는 뭐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지 아세요? 진리를 구현하라는 얘기예요. 여러분 죽겠죠. 여러분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서 여러분이 도와주려면
35:01 나도 같이 죽을 것 같아 죽겠는데 안에서 참나가 계속 뭐라고 그래요? “구하라”고 하죠. 참나는 지금 내가 죽는 것도 생각 안 한다니까요. 참나는 구하는 게 옳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니까요. 그게 욕심과 참나가 서로 충돌이 나면서 “니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라”고 이렇게 어떤 타협안이 나오는 거지 원래 참나 자체가 원하는 건 뭐예요? 다 살리라는 거죠. 제가 죽을 수도 있는데요. “아 그럼 들어가지 마.” 양심이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고요. 못 구하면 내내 찜찜하다구요. 못 구하고 나면 찜찜하단 말이에요. 양심은 그때 구했어야 된단 얘기를 계속한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또 무조건 뛰어 들라는 게 아니라 양심은 모두를 위한다는 거예요. 한 개체만을 위하질 않아요. 이게 무섭다는 거예요. 우주적인 진리기 때문에 나 하나의 개체만을 배려해주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여러분 역량껏 구현하시라는 거예요. 오버
36:01 하지 마시고. 또 이 얘기 듣고는 갑자기 온 우주를 위해 몸을 던지시면 여러분이 감당을 못해요. 여러분의 에고의 성숙도가, 선근이 감당할 정도로 끝없이 진리를 닦아 가시는 게 보살도의 본식입니다. 요 정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구공 공부하는 법을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 거예요. 자 보시죠. *6가지 바라밀로 1지에 이르는 길(가행위). 지난 시간에 우리 본성 안에 육바라밀의 근본 종자가 들어있단 얘기 드렸고요. 구공 핵심은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닦아야 되는지. 내 안의 본성에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다는 걸 이해하시고, 그런 진여의 법성, 진리의 형상이 있다는 걸 이해하시고 사랑이라는 참나의 말씀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라고 했죠. 그게 사실은
37:00 6가지 바라밀로 1지에 이르는 길입니다. 읽어 볼게요. 아공ㆍ법공의 ‘반야’를 자명하게 인가한 뒤. 자 이건 1주 보살이 됐다고 전제한 거예요. 1주 보살이 되시면 여러분 아공 법공은 자명하게 인가합니다. 자명하게 인가했다는 건요 의심 없이 수용한 거예요. 삶의 완전히 수용한 거예요. 여러분이 중력의 법칙을 수용하고 사시죠. 중력의 법칙 무시하시면 우리 지금 바로 떨어져 죽어요. 그걸 수용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아공 법공을 내 삶에 수용하고 살아가요. “내 에고는 실체가 없다.” 참나 그리고 법공, “에고를 포함한 모든 존재는 다 참나의 작용이다.” 이걸 진심으로 수용하고 살아가시려면 참나 상태가 늘 흘러야 돼요. 따라서 선정은 기본이고 이런 지혜까지 갖춰진 상태, 정혜쌍수의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육바라밀의 닦음을 통해 ‘방편’을 원만하게 할 때. 육바라밀을 총체적으로 닦아가는 거예요. 어떻게 닦느냐? 자 보세요. 내면에 늘 참나가 흐르고.
38:05 아공 법공에 대한 진리를 의심 없이 인가한 상태로 살아가시면 닦고 싶건 말건 육바라밀을 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안 닦는 분들은 계세요. 그런데 자연스러운 결을 제가 말씀드릴 게요. 선입견 없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한다면 “나는 열반할 거야. 나는 애초에 목표가 열반이었어” 이런 분들이 있어요. 제 대학 때도 그런 분도 있었어요. “PD가 되고 싶어. PD 시험 볼 거야.” “왜요?” “여배우랑 어떻게 잘해 보려고.” 순수한 그 일념이시더라고요. 목표가 딱 하나예요. 제발 안 되길 바랐습니다. 안 되시더라고요. 그 마음만 가지고는 그 시험을 못 보시더라고요. 무섭죠. 우리 에고가 순수하게 한 마음일 수 있어요. 그게 욕망의 한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주 편견이 하나로 뭉쳐 있으면 견성을 해도 사실은 답이 안 나와요.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거든요.
39:03 그런데 그런 선입견이 약하다고 가정하면요, 선입견이 약하다가 사실은 다른 말로 선근이 두텁다 예요. 보세요. 육바라밀을 전생부터 알고 모르고 계속해온 양심적인 습관이 있는 분들은 견성 이후에 몰라를 하실 수 있고 참나를 자각하실 수 있고, 자명하게 늘 아공 법공을 꿰뚫어 보시는 분들은요 어떤 일 닥쳐도 일단 몰라를 합니다. 지금 길 가다가 어려운 사람 만났어요. 도와줄까 말까 할 때 자동으로 몰라를 한 번 해봐요. 참나가 늘 자동으로 흐르니까. 자동으로 흘러도 참나가 약해요. 사실은 몰라를 또 해주셔야 돼요. 자동으로 흘러도 “몰라” 해야 참나가 강해져요. 참나를 좀 강하게 한 다음에 또 아공 법공도 은은하게는 인가해서 알고 있지만 한 번 생각을 일으켜 봐요. “일체가 다 본래 참나 작용 아닌가” 해보면 내 안에 강력해집니다. 자 1주 보살은 은은하게 늘 있어요. 1주 보살도 늘 그게
40:00 51%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조금 자극하면 바로 커져요. 51%가 돼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될까요? 어려운 사람 도와줄 힘이 더 나겠죠. 그러면 보시바라밀이 이루어져요. 자 누가 와서 뇌물 찔러줄 때 “몰라” 한 다음에 자명하게 분석했더니 “돈 또한 본래 공할 뿐” 하면서 돈을 이겨냈어요. 그럼 지계바라밀이 이루어져요. 원래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가시게 되어있어요. 원래 돼 있는데 사람들이 안 해요. 에고가 더 작동해 버리면 산에 딱 앉아 가지고 “참나하고만 있으니 죽인다” 하면서 거기 그러고만 계시면서 남의 입장도 배려 안 하고 지계도 안 지키면서 계실 수도 있다구요. 견성은 했는데 그런 문제아가 됩니다. 공부가 거기서 멈춰 버려요. 그래서 육바라밀이 안 닦여 버려요. “육바라밀 좀 닦으세요” 그러면 “그건 하근기나 하는 것들” 하고 말아 버립니다. 아니에요. 선정하고 반야 닦는 것 같은 정성으로, 그만한 정성으로 하나하나 해보셔야지 늘어요. 남의 입장 배려해 보기, 부당한 피해 남한테 안 줘 보기. 이거 안 하면요
41:05 고승들도요 남의 입장 배려 하나도 안 하고요. 고승이라는 사람들도 남한테 부당한 짓하고 파계하고 막 합니다. 근데 자기는 참나가 늘 느껴지니까 깨어서 하는 건 괜찮은 줄 알아요. 안 그래요. 깨어서 하는 건 깨어서 벌 받아요. 다 인과가 그래요. “저 모르고 했는데요.” “그러면 모르고 맞아라.” 때린 거 모르고 그랬어도 똑같이 맞아야 돼요. “아니 모르고 했어요.” 나중에 “너도 그럼 모르고 당해 봐라.” 인과가 그런 거예요. “근데 나는 깨어서 했어요.” “그러면 깨어서 맞아.” 맞는 거 똑같다고요. 나 깨어서 상처를 줬다. 깨어서 맞아야죠. 착각한다니까요. 그런데 인도 경전들은요 “깨어서 한 짓에 대해서는 어떤 대가도 없다‘라고 바가바드기타부터 쭉 쓰여 있어요. 깨어있는 자가 한 건요 인과가 안 남는대요. 사람을 죽여도 인과가 안 남는다는 식으로 말이 교묘하게 쓰여 있어요.
42:00 “사람을 죽였다. 그래도 그 사람 참나는 안 죽어. 그러니까 너 사람 죽인 거 아니야.” 이런 내용이 바가바드기타에 나옵니다. 황당하죠. 여러분 이런 논리가 한국에 안 퍼진 게 다행인 줄 아셔야 돼요. 살인범들이 “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본래 공할 뿐.” 뭐 이러면 살벌해집니다. 소시오가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위험하다고 하는 거예요. 인도 철학에 상당히 위험한 내용이 많아요. 다행히 양심적인 분들이 이걸 공부하시면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데 삐딱한 분이 공부해버리면 그분들은 멀리 가버려요. 쓰여 있어요. “참나는 죽일 수가 없다. 불에도 안 탄다. 물에도 안 젖는다. 너가 전쟁에 나가 사람을 죽이더라도 원래 죽인 게 없는 거다.” 바가바드기타가 이게 전쟁 독려하는 내용이거든요. 전쟁 앞두고 겁내고 있는 왕한테 크리슈나가 이제 마부로 화신을 나타내 가지고 싸우라고 독려하는 내용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인도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기본입니다. 도를 닦건 안 닦건 그런 내용을 듣게 되어 있어요. 다릅니다. 보살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43:06 그래서 구공을 꼭 공부하셔야 됩니다. 1주 이후의 내용을 미리 지금 얘기 들으시는 거예요. 1주 되시면 꼭 이렇게 하셔야 되고 이걸 미리 듣는 보람은 지금 공부할 때부터 양심분석을 잘하시라고요. 그러면 그게 좋은 선근이 되어서 나중에 1주 보살된 뒤에도 또라이 견성자 안 되고 제대로 된 보살이 나온다고요. 그 선근의 문제라는 게 그 전에 어떻게 양심적인 삶을 살았냐가 결정하는 거예요. 자기가 양심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서, 막 살면서 “도를 얻는 게 원래 이런 거야”라고 변호까지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요 정확히 아셔야 됩니다. ‘방편’을 원만하게 할 때, ‘반야ㆍ방편쌍운’의. 자 제가 1주 보살은 뭘 닦는다 그랬죠? 정혜쌍운, 선정과 지혜가 쌍으로 돌아가요. 자 선정바라밀, 참나 안주가 돼 있죠. 지혜바라밀,
44:05 아공과 법공은 정확히 인가했죠. 그게 쌍으로 굴러가는데 요거 정혜 다해서 결국 아공 법공 알아낸 거잖아요. 이게 반야고. 방편은 나머지 바라밀이요. 선정바라밀은 (반야와 방편) 양쪽에 다 중요합니다. 자 선정을 통해 정혜쌍운을 통해 반야를 얻었죠. 그러면 이 반야를 더 심화시켜서 구공까지 나아가야 되구요. 방편이라는 건 실천입니다. 구공의 반야를 이 실천을 통해 구현해내는 게, 결국 이게 다 해서 육바라밀 닦으란 얘기에요. 그래서 반야방편쌍운을 닦으십니다. 이걸 줄여서 말하면 정혜쌍운처럼 말하면 복혜쌍운이라 그래요. 방편이라는 게 내 입장에서는 선의 실천이지만 남한테는 또 덕이 되고 복덕이 되고 또 나한테도 공덕이 되는 거라,
45:05 복덕을 쌓는다는 입장에서는, 선의 실천이란 입장에서는 나의 영성의 계발인데 그게 다 결국 남을 도와준 거잖아요. 선을 베푼 것이기 때문에 복덕이 됩니다. 그래서 복덕을 쌓고 지혜를 계발하고 해서 복혜쌍운이라고 합니다. 반야‧방편쌍운은 내가 진리를 얼마나 명상을 통해 알아내느냐가 포인트면, 복혜쌍운은 그 알아낸 진리를 가지고 얼마나 선을 실천했느냐가 포인트예요. 중생을 얼마나 구제했느냐가 포인트예요. 보살도는 무조건 중생 구제예요. 알고만 있으면 안 돼요. 그래서 복을 쌓으셔야 됩니다. 공덕을 쌓으셔야 됩니다. 그럼 이게 똑같지 않나요? 우리 민족의 성통공완은 ‘본성을 통해’ 하는 건 지혜고 ‘공덕을 완수하라’ 하는 것은 지금 복덕이죠. 그래서 복혜쌍운 해야만 하늘나라 간다 하는 내용이랑 같아요.
46:00 내 입장에서는 선의 실천이지만 내가 선을, 양심을 실천하면 누군가 이득을 보겠죠. 그게 이제 계속 복덕이 쌓여가는 거예요. 무량공덕이 지어지는 겁니다. 그 부분도 생각해 보세요. ‘반야ㆍ방편쌍운’의 ‘구공’(구공․진여)을 얻어. 자 그렇게 해서 반야방편쌍운의 구공을 얻어야 됩니다. 구공. “내 안에 육바라밀 있더라” 이 말을 하실 수 있으려면 육바라밀을 잘하셔야 돼요. “내 안에 공적영지 있더라” 하는 거는 명상과 반야 공부, 선정과 지혜 공부만 잘 되면 돼요. 그런데 육바라밀을 안 닦고서 “내 안에 육바라밀 있더라”라고 말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1주 보살 정도 되면 자기 안에 육바라밀 있는 거 알아요. 느껴요. 느끼는데 내가 잘 연마해서 습관화하지 못 했기 때문에 직관은 있지만 그걸 인가라고는 안 하는 거예요. 인가 하시려면
47:04 실제로 공을 들여서 계속하셔서 좋은 습관이 꽉 차야 돼요. 그게 그대로 이제 좋은 공덕을 짓는 터전이 돼요. 여러분이 스스로 선의 실천 능력을 엄청 끌어 올리셔야 돼요. 그 실천 능력으로 실천을 실제 하시게 되면 이제 공덕을 짓게 되는 겁니다. 이거 다 불경에 있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안 풀어 드리면 이렇게 이해를 안 하세요. 똑같은 불경을 읽고요 이 엄청난 복덕을 지닌 참나만 깨달으면 끝입니다. 논리가 이상해져요. 견성 안에 엄청난 공덕이 있기 때문에 견성만 하면 다 끝납니다. 아니에요. 견성을 한 뒤에 엄청난 공덕을 지으셔야 돼요. 지을수록 정밀해지고 닦이면서 레벨이 올라가는 겁니다. 육바라밀을 모두 갖춘 ‘구일체묘상공’(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여의지 않는 공성)을 자명하게 인가할 수 있어야 됩니다. 구일체묘상공은 뭐냐? 일체의 신묘한 형상. 자 요겁니다.
48:02 요거. “진리의 형상이 내 안에 갖춰져 있더라.” “내 참나 자리, 공 자리 안에 갖춰져 있더라”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일체묘상공의 인가. 자명한 인가는 어떠한 의심도 없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인가가 이루어져야 돼요. 일시적으로는 이런 기분이 드실 수 있다고요. 1주 보살만 돼도 명상하다보면 “내 안에 사랑 정의 예절 지혜 다 들어 있구나” 아는 순간인데 그 명상 끝나고 사랑 정의가 어디 가버리고 바로 또 가족이랑 싸우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중요합니다. 찰나찰나 인가가 계속되다가 이게 점점 연장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도 다 소중히 여기세요. 잠깐 잠깐 “내 참나 안에 그 자리에 텅 빈 공만 있는 게 아니고 육바라밀이 온전히 있더라” 하는 것을 순간순간 자각은 해요. 그런데 그게 금방금방 잊혀지면
49:00 그거를 인가라고 말할 수가 없죠. “내가 자명하게 인가했다” 그러면 평생 앞으로 그렇게 살아야 될 텐데 그렇게 못 산단 말이에요. 그래서 요 못 사는 거는 차치하고 그랬다는 인식도 자꾸 사라져요. 한참 또 명상을 해야 “아 내 안에 사랑 정의 있었지” 이렇게 되면 이 텀(term)이 끊기는 시간이 길어진다고요. 근데 이게 점점 짧아지다가 언제부턴가는 내 안에 육바라밀 있지 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 의심을 못 하고 그걸 아공 법공처럼 내 삶의 기본으로 그냥 받아들일 때가 와요. 그때가 구공의 인가, 그게 1지 보살되는 때입니다. 1지 보살은요 자동으로 자기 안에서 육바라밀이 돌아가요. 자 1주 보살은 자동으로 선정이 이루어지고 자동으로 아공 법공의 지혜가 흐릅니다. 똑같이 1지 보살은 자동으로 구공의 지혜가 흐르고 자동으로 육바라밀이 복을 짓는 식으로 달려갑니다. 그게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내 본성이 가요.
50:00 그런데 자동으로 된다는 거지 잘하는 건 아니에요. 자 이쪽 내면에서 자동으로 육바라밀의 마음이 나오고 이렇게 해서 현실화된다는 거지 썩 만족스럽게 된다는 건 아니에요. 그게 늘 만족스럽게 되면 8지 보살이라는 거예요. 자동으로 나왔는데 일처리까지 퍼펙트하게 해버린다. 그러면 8지 보살이에요. 1지 보살은 자동으로 나오긴 하는데 해보면 뭔가 잘 안 맞아요. 그 한계가 있습니다. 자동으로 된다는 것만 너무 생각하시면 안 돼요. 불교에서요 공부하신 분들이 문제가 뭐냐면 자동으로 된다에서 멈춰 버려요. 1주 보살만 돼도 “자동으로 깨어있고 자동으로 지혜가 흐른다” 여기서, 1주에서 멈춰 버려요. 자동으로 되면 “됐다. 일 마쳤다. 이제 한가한 도인이다.” 이러면서 멈춰 버려요. 아니에요. 자동으로 될 때 원래 더 열심히 해야 됩니다. 이게 어느 기술도 똑같아요. 여러분 어디 가서 뭐 하나 작은 기술 배워도 그게 눈감고 될 때가 자동으로 될 때죠.
51:01 눈감고 될 때부터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눈감고 된다는 것에 만족해 버리면 거기서 멈춥니다. 그게 견성해서 멈춘 분들의 특징이에요. 딱 거기서 멈춰요. 그래서 이제 뭔 일이 있어도 평생 선문답만 하면서 살아요. “자동으로 참나가 흐른다. 자동으로 일체유심조의 법공의 진리를 안다” 하는 데서만 멈춰서 그것만 유의하면서 살아가세요. 그것만 계속 확인하면서 살아가요. “이 펜도 펜이 아니요. 밥을 먹어도 밥이 아니오.” 늘 이러면서 그냥 살아가죠. 육바라밀도 잘 지키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가시면서 맨 남한테 싫은 소리 하고, 아집부리고 그러고 다녀요. “이 아집 또한 본래 공할 뿐” 이러면서 막 돌아다녀요. 사람들이 “이게 뭐가 이상한데. 이상한데 도인인 거 같은데 이상한데.” 되게 애매한 분들이 이분들이에요. 저희 학당 강의를 들으시면 이제 그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
52:00 생겨요. “당신은 이래서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가 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당당히 말씀드립니다. 1주 다음엔 1지로 가셔야 돼요. 이 가는 과정을 제가 가행위(加行位)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게 한문으로 괄호 열고 가행위 있죠? 이제 본격적으로 용맹정진 할 때라는 거예요. 1주 이후가 진짜로 가행정진 할 때입니다. 요 관점은요, 제가 지금 취하는 1주 이상이 가행위라고 보는 관점은 티베트 불교가 이렇게 봐요. 또 우리 학당이 이렇게 봅니다. 기존 대승불교에서는 또 그렇게 안 봐요. 왜냐하면 기존 대승불교가요 소승불교를 많이 수용하면서 이론을 정리하다 보니까 소승불교의 영향이 너무 남아있어요. 그래서 이 부분도 되게 오해가 심합니다. 진짜 가행위는요 1주 보살 이후예요. 제가 이 말 왜 드리느냐 하면 다른 데 가서 제 강의 듣고 보고 다른
53:02 불교학자 분한테 “1주 이상이 가행위잖아요?” 그럼 아마 그분이 아니라고 할 거예요. 기본 이론은 아니에요. 기본 이론은 1지 직전에 닦는 게 가행위라고 돼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초기불교에서 그리고 소승불교에서 견성 직전에 하는 게 가행위라고 알고 있어요. 그 이론이 대승에 들어와 가지고 정리되어 버리다 보니까 전혀 다른 이론 체계인데 통합되어서 정리되다 보니까 오해가 있어요. 근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게 제가 늘 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는데 티베트 불교는 정확히 저랑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안심했죠. “오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구나.” 달라이라마 존자 강의 들으시면 딱 1주 이후는 가행위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저 혼자만 이런 주장하는 건 아니다.
54:00 이런 얘기 드려도 의심도 없었는데 또 그냥 가행위. 가행위 외우는 거죠. 제가 괜히 어디 가서 이러지 마시라는 게 제 강의 중에 상당수는 제가 정한 것들이에요. 일일이 다 말씀을 못 드려요. 문제가 뭐냐면 그걸 가지고 어디 딴 데 가서 전문가들한테 얘기하시면 서로 난감해집니다. 제가 예전에 유교 대학 강의도 제 식으로 해드렸는데 또 그분도 대학생이었는데 가서 동양철학 강사한테 “그건 아닌데요” 하면서. 강사 난감하고 서로 난감하게. 그런 일이 많이 있길래. 제 강의에서 제가 이렇게 정리한 게 너무 많아요. 다 얘기는 못 해 드리는데 이 얘기는 꼭 드릴게요. 지금 일반적인 대승불교 유식학 체계나 이런 데 보시면 가행위를 1지 직전을 가행위라고 많이 부르실 거예요. 그렇게 보지 마시고 정혜쌍운의
55:04 경지, 1주 보살의 경지를 특별히 취급 안 하고 너무 초기불교식 이론을 그대로, 부처님 해놓은 거니까 그대로 용어를 쓰려다 보니까 일어난 문제예요. 대승불교는 좀 다르게 정립해야 되는데. 같은 용어도 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된다. 대승불교식으로는 1주 보살에 이미 견성한 거예요. 견성은 이미 한 거예요. 이미 아라한이에요. 초기불교의 가행위 따위를 여기다 붙일 게 아니고 이미 지금 아라한 이후의 경지예요. 그러니까 이미 그 의미도 다릅니다. 다만 가행위라고 부르는 게 1주 보살 이전은 자량위 밑천을 쌓는 단계였다면 1주 보살부터는 참나가 늘 흐르고 정혜쌍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행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가행위라고 이름 붙인 거예요. 초기불교적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만 구분하시고요. 자 조금만 더 설명 드릴게요. 4단계를 통해 이제 공부해 나갈 겁니다.
56:04 한 번 대충 보실래요. 첫 번째 ① 구공의 체험적 이해 가능(난위, 신인). 제가 지난 시간, 바로 지난 시간이 아니라. 아공 법공의 공부 단계도 다 이렇게 정리해 드렸죠. 똑같은 순서입니다. ① 구공의 체험적 이해 가능, ② 구공의 체험적 이해 심화. 그 다음에 ③ 구공의 자명한 이해 가능. ④ 구공의 자명한 이해 심화. 요 4단계예요. 불교는 다 이 4단계로 설명해요. 이게 초기불교 때부터 이 논법을 써요. 그런데 저는 이 논법은 대승에 적용해도 자명해서 그대로 쓰는 겁니다. 자명한 것은 살려두되 찜찜하게 된 부분은 제가 과감히 바꿔서 쓸 거예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미리 한 선배들이 이미 있더라. 그 얘기만 말씀드린 겁니다. 5분 쉬었다가 본격적으로 지금, 제목만 읽어도 의식이 혼미해질 것 같은 1번 2번 3번 4번 이걸 한 번 깔끔하게 정리하고 구공 공부의 핵심을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5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