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2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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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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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강의일자 2017. 12. 16. 土.
게시일자 2019. 01. 15.
동영상 길이 48:10
강의 중 인용 도서 -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l5Vw_kKByWQ



우리는 1주보살부터 시작합니다. 너무 멀리 가지 마시고요. 우리가 참나안에 들어앉으면 1주예요.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불성에 들어앉지 않으면 어떻게 양심 안에서 하나가 되고 불성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이런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뭐냐면 개인마다 신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식견이 다르면 모여가지고 다양함은 있는데 하나로 꿰어지지는 않아요. 우리가 보살공동체를 이루어서 이 땅을 정토로 만들려면 항상 이 그림을 기억하십시오. 이건 인류가 살아가는 모든 조직의 원상입니다. 정치의 원상입니다. 제가 洪範9條할 때 제가 다 그려드렸어요. 이것을 동양에서는 대대로 皇極이라고 합니다. 꼭대기 이것은 太極 우주가 나온 꼭대기 無極 이 자체는 극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를 확대해보면 음양을 품고 있어요. 그러면 太極이예요. 여기서 우주가 나옵니다. 근데 우주를 내기만 하겠어요. 경영까지 하지 無極 이 자체 하느님 자체, 어떤 극도 없습니다. 하느님 자체는 근데 우주를 낳는 하느님은 음양을 품고 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태극은 이렇게 그리는 겁니다. 3太極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데 이 3태극이 우주를 경영할 때는 皇極이라고 부릅니다. 일단 이 차원에서 皇極은 벌써 인간이 아니예요. 못해도 皇極할 때 皇極은 인간이 아닙니다. 神을 말합니다. 神의 3모습입니다. 神의 3모습으로써 皇極이 있어요. 우주를 경영합니다. 인류 자체도 경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모습으로 경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인간 중에 皇極이 등장한다는 것은요. 사람은 동양철학에서 사람은 식물 동물의 대표 주자죠. 생명체는 하나입니다. 이 중의 대표주자로서 사람이 皇極이기 때문에 만물을 다스린다는 말도 쓰는 겁니다. 자 보세요. 동양철학에서 제 天符經 강의에서 들으셨죠. 太極에서 둥그런 하늘, 공간이 나오고, 땅이 네모라는 것은 별들이 네모라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을 갖춘 물질이 등장하는 3차원 공간들이 등장해요. 이 시간까지 하면 4차원 공간이 등장하는데 요 3차원 물질, 입체물을 동서남북이 있다고 사각형으로 상징한 것이예요. 그 안의 생명체들은 이 삼각형들이 상징합니다. 머리를 위로 쳐들고 있는 것, 사람, 머리를 아래로 쳐박고 있는 것, 식물, 머리를 옆으로 하고 있는 것, 동물, 연예인들도 하고 있는 그 무슨 생명그림 있던데 상징, 이것과 똑같은 것인데 머리를 가운데로 해서 요렇게 하면 사람이죠. 요렇게 쳐박혀 있으면 식물이죠. 옆으로 있으면 물고기나 새죠. 또 요렇게 있으면 네발 달린 짐승이죠. 전 갑골문으로 그린 거고요. 그런 유사한 그림 그려가지고 연예인들이 문신도 하고 알리고, 그 도법스님 쪽인가 그쪽에서 저런 상징 표현을 쓰는 것을 봤는데 똑같아요. 요거랑 하나의 알에서 우주가 나오고 이게 靈이고 太極이예요. 太極이 동식물로도 표현됩니다. 땅으로도 표현됩니다. 하늘로도 표현됩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태극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천지만물, 우주를 하늘로 대표한 것 뿐입니다. 자세히 그리면 이 안에 땅도 생명체도 그려야 합니다. 우주를 낳은 씨알, 그냥 그 자체, 그리고 그 씨알이 동서남북을 경영할 때 상징은 이것입니다. 정치건 동물 집단의 군집 모습이건 다 만물은 이 모양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태양계도 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경영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은 다 저 모양을 취합니다. 구멍가게 하나를 해도, 가정도 이렇게 중심점이 있고, 동서남북이 있어서 경영해 갑니다. 그래서 저게 정치학의 이데아랄까요? 정치의 이데아는 이거예요. 사람 사는. 논어에서 이 자리를 북극성이라 부르는데 북극성은 자기는 안 움직이면서 모든 별을 움직이게 한다. 그게 올바른 정치의 모습이다. 이런 게 저 상을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다.

존재만으로 동서남북을 올바르게 경영되게 만들 정도의 통치자, 그런 양반을 皇極이라고 합니다. 양심 덩어리야 해요. 양심 덩어리로 임금 자리에만 있어도 신하들이 벌써 다 임금의 불타오르는 양심의 영향으로 양심 안하기 힘들어져서 다 같이 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조직, 그 조직의 중심점이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그런데 인류의 중심점으로 제시한 게 화엄경의 10지 보살입니다. 10지 보살은 三界의 왕이다. 그래서 온 우주의 왕이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겁니다. 화엄경에서 심지어 힌두교의 시바신 까지 들먹이면서 10지 보살이 힌두교의 시바신 같은 존재다. 10지 보살이 그 우주에서 제일의 왕, 인도 입장에서 볼 때는 시바신이 10지 보살입니다. 뭐 비슈누 신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데 많은 분들이 시바신을 10지 보살이라고 얘기하니까 화엄경이 그걸 가지고 인용한 거예요. 인도에서 시바신이 온 우주의 왕이라고 하는 그 존재가 우리 불교 화엄경에서 바로 10지 보살이다. 요게 화엄경 10보살 조에 가면 있습니다. 제가 강의 때 해드렸고요. 이렇게 벌써 화엄경 만드신 분만 해도 이미 다른 종교의 10지 보살과 소통시키고 있어요. 이 양반이 몰라서 그렇지 만약 우리나라 경전까지 알았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조선에서 桓雄, 환인 이라고 부른 그 존재가 이 존재이다. 다 나갑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라고 하더라. 이게 지금 원래 다 하나예요. 이런 우주적인 정부를 구상하고 우주적인 조직체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오로지 양심으로 굴러가야 합니다. 이게 사바 세계의 穢土, 땅에서 이루어지는 조직들과는 달라요. 이건 淨土라고 하고요. 淨土라는 조직은 양심으로 이루어지고 양심에 제일 밝은 이가 갈수록 양심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양심에 더 밝은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끌고 가는 시스템입니다. 가르치면서, 또 거듭나게 하면서 그러면서 또 하나의 조직으로 팀플레이를 하면서 가는 요런 것을 좀 생각하시면 이런게 교회공동체이기도 하고 불교의 승가공동체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는 교회나 이런 것 보다는 사도 공동체, 교회라는 것은 결국 성도나 사도 공동체이고 불교는 보살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불자나 보살이니 성도니 사도니 이런 말 들으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안에 있는, 우리 안에 있는 無極, 太極, 皇極의 하느님, 無極, 太極, 皇極의 佛性을 만나야 되지 않나요? 만나야 우리안의 마음에 중심점이 딱 찍힌거예요. 중심점이 딱 찍혀서 너도 보살의 일원이야, 너도 성도들의 일원이야. 라고 규정이 되는 겁니다. 점을 안 찍으면 안돼요. 그래서 홍익학당에서 信士이상 그냥 참나 체험만 해도 信士죠. 아직 개념화가 제대로 안되었더라도 체험만 해도 뭔가 점은 찍혀요. 왜냐면 알거든요, 우주의 중심점을 만났거든요. 정확히 이해는 못했지만 만나는 봐서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아요. 우주의 중심점이, 이 형이상학적 중심점, 하느님, 佛性, 聖靈, 양심의 본체를 만나시잖아요. 그게 얼마나 귀한 것 인줄 아세요? 그 점이 찍혀야 이제 성도도 되고 불자도 되는 거예요. 그 점 자체가 안찍히면 聖徒 佛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중심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그 조직의 일원이 돼요? 그러니까 이 조직의 일원을 받아들일 때, 불교에서는 견성 체험을 시키는 것이고요, 기독교에서는 성령의 세례를 주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서 물로 세례를 받거나 물에 담갔다 빼거나 이런 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세례라는 것은 여러분 안에서 성령을 한번 만나야 합니다. 무한한 평화와 무한한 靈과 무한한 양심의 자리인 모든 창조성의 근원인 그 성령 자리를 1초라도 체험하셔야 그때부터는 그전하고 달라집니다. 세례를 받으신게 돼요. 사도들의 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까 에베소서 강의 했지만 이방인들 지역 가서 세례 받았냐고 물어보니까 세례 받았다고 그래요 뭘로 받았냐? 물로 받았데요. 그러면 땡, 성령의 세례 안받으면 그건 땡 예수님 오신 이후 강조된 것이 성령의 세례예요. 성령의 세례를 바로 해줘요 바오로가 앉혀놓고 안수기도 합니다. 우리 학당 같으면 자! 눈을 바라보시고 모른다 하시고 존재하죠? 예 그게 성령의 세례예요 학당이 성령의 세례를 아주 쉽게 보편화해서 하는 겁니다.(10:34) 그러나 아무리 어리석어도 어! 뭐가 있긴 있네! 그럼 된거예요. 하나님이 계시기는 하네, 이거 확인한 것랑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 그게 세례예요. 그럼 이 양반의 삶이 달라지죠. 지금 세례를 받았는데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럼 내 靈 ,魂, 肉에 새로운 영감이 솟구쳐요. 靈에서부터 저 근원 성령에서 그게 세례입니다. 여러분 靈, 魂, 肉 밖에서 새롭게 들어올 것이 뭐가 있어요. 내 안의 靈에서 새로운 것이 솟구쳐 나와야 합니다. 요게 세례입니다. 거기에 뭐가 와서 좋겠지 하는 게 성령입니다. 그런데 원래 여러분 靈이 성령이예요. 靈이 각성했을 때를 성령이 강림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뭔가가 강림했으니까 원래 내 靈이 그렇게 훌륭하지 않는데 갑자기 내 안에서 드러나 가지고, 나라는 존재감이 靈인데 나라는 존재감이 별로 의미가 없었는데, 지금도 존재하시는 건 알아요. 공부 안하는 분도 자기 존재하는 것은 알아요. 자기 靈을 희미하게 느낍니다. 대개 죽은 靈 상태예요. 이게 산 靈이 된다는 것은 갑자기 靈이 또렷하게 내 안에서 살아납니다. 그러면 靈이 覺性되는게 성령이 강림하는 것이랑 똑같아요. 내 靈을 탁 각성하고 보니까 이게 내 靈이라고? 아닌데 이상한 靈인데 우주적인 靈인데 그럼 성령이예요. 그런데 어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내 靈이거든요. 내 靈魂의 본질이니까 내 靈이 각성했는데 성령이 강림했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요. 그게 성령이예요. 그래서 사도들이 성령도 사멸된다. 라고 해요. 성령이 죽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성령이 안 느껴지는 내가 이제 내 안에서 내 靈이 신통하게 안 느껴지면, 다시 희미해지면 성령이 사멸한 거 같은 거죠. 참나가 죽었구나 참나가 사라졌구나! 이렇게 느껴진 현상도 있어요. 그래서 계속 성령을 살려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요. 지속적인 자각을 통해서 지금 1주 보살이라는 것은요. 安住했다는 것이 뭐냐면 지금 여기 들어앉아 버린거예요. 지금 성령이 강림해서 여기 안주해 버린 거예요. 기독교식으로는 성령이 와서 여기 자리 잡아 버린 겁니다. 이제 여기 나 안 나갈거다. 하고 불교식으로 보면요 자신의 靈, 자신의 참나가 온전히 각성된거죠. 각성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게 아니라 항상 내 안에서 나의 존재감이 이제 비록 은은할 지라도 확고히 드러난 거죠. 자 그러니까 지금 이게 같은 사건입니다. 내 靈이 각성했다는 측면으로 말하면 불교고, 성령이 강림해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면 기독교인거죠. 똑같아요. 성령이 들어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성령이 강림하면 여러분이 신성과 하나될 때 여러분 魂과 肉에 어떤 은총의 세례가 펼쳐질까요? 魂은 원래 우리 에고작용 이잖아요. 魂은 늘 불안해요. 그런데 평안이 옵니다. 예수님 표현대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턱 와 버려요. 죽는다 해도 초연함이 있어요. 에고는 겁내 하는데 그 겁내하는 중에도 성령의 초연함이 있어요. 그게 느껴지시면 여러분은 성령하고 함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거룩해요. 양심덩어리입니다. 양심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진리를 소망하게 되어 있어요. 貪瞋痴를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소망하고 그리고 거룩하고 그리고 이 진리를 알아보는 지혜가 열려요. 영감이 와요. 이 지혜는 직관으로 오는 거예요. 어!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갑자기 문득 안에서 영감이 와요. 이게 다 세례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열매를 받는 거죠. 성령의 열매가 뭔데요 지혜, 자비, 기쁨, 화평 이런 거예요. 바오로가 얘기한 9가지 성령의 열매, 이것을 제가 육바라밀과 대조해서 산상수훈 인문학 책에 다 실어났습니다. 강의도 해서 올렸고요. 육바라밀이 여러분 안에서 등장하는게 성령의 세례예요.

그 중에 첫 번째 오는 게, 육바라밀 우리도 공부하지만 처음에 육바라밀이 다 오지는 않죠. 다 내가 수용할 수 있겐 오지 않아요. 오더라도 내가 다 수용을 못해요. 처음에 내가 바로 수용 가능한 것들이 禪定이죠. 평안은 바로 옵니다. 처음에 접근하기 쉬운 것이 禪定과 智慧예요. 이 평안과 지적 직관이 여러분이 처음에 포착하기 좋아요. 그리고 이게 되게 중요해요. 중요하니까 먼저 오는 거예요. 작업을 먼저 할려고 오는 거예요. 평안을 주고 새로운 지혜의 안목을 열어주어야만 여러분이. 진통제를 주면서 치료제를 제시해야 여러분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육바라밀 중에 선정과 지혜가 먼저 옵니다. 여러분 지금 선정과 지혜를 통해 1주 보살에 이르는 길을 지난 시간까지 강의했잖아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령을 만나면서 이 혼이 안정을 찾고 새로운 안목이 열리는거. 심안이 열리는 것, 요게 定慧雙修이고, 이제 성령이 여길 떠나지 않아요. 딱 자리 잡은 것 같애요. 내 영이 각성 된거고, 성령이 강림 한거죠. 강림해서 자리를 잡아버렸어요. 이제 소멸된다, 안된다를 떠난 상태가 되면 1주 보살이예요. 기독교에서도 그 정도하면 1주 보살, 이 정도면 처음에 한번 성령을 맛만 봐도 우리가 말씀드리는 “몰라” 체험을 통해서 참나, 즉 I AM 상태, 나라는 존재감을 깨치기만 해도 있다는 것, 그 자리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각만 해도 세례를 받고 돈오 체험을 하신 거예요. 그 정도면 학당에서는 한 信士나 되죠. 이제 첫 체험, 제대로 된 체험은 아니예요. 하지만 분명히 중요합니다. 만났다는 것 그런데 1주 보살, 예비 8급보다 더 낮은 信士에서 聞士가 예비 8급이죠. 學士가 8급입니다. 학당 8급 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信士는 급수로는 9급이지만 참나 체험을 한 9급이예요. 달라요. 그 정도 되면 이제 기독교에서 聖徒 불교에서 佛子니 하는 말을 해도 부끄럽지는 않아요. 체험은 했으니까 사람이요 해봤다, 안 해봤다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뭐 우주비행사들도 달나라에 가서 삽니까? 달나라 가 봤다지. 그쵸. 그러나 가보기 전과 가본 후는 너무도 다르죠. 그러니까 체험해 봤다가 중요해요. 일단 해봤다 그게 세례를 받았다는 얘기이고요 세례 받았는데 더러 타락하더라. 이게 사도들의 글에 나오거든요. 타락할 만 하죠. 참나 체험했다고 여러분이 늘 하는 것은 아니죠. 또 타락해요. 다시 그래도 나는 예전처럼 사는 게 더 좋더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치 않고 그 체험을 살려가고 있다 그럼 훌륭한 성도이고 훌륭한 불자죠. 저희가 볼 때는 훌륭한 양심지킴이죠. 그럼 되죠. 이렇게 해서 가다가 1주 보살 정도 된다는 것은 내면의 평안이 늘 흐르고, 그리고 늘 평안이 넘치고 이런 것은 아니라고요. 힘든 중에도 늘 평안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성령이 내 안에 거하니까 우리가 佛性 안에 사니까 그래서 평안이 늘 흐르고 그 평안 속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요. 내가 힘들 때는 에고의 안목으로 세상을 봐요. 힘들어 죽겠다. 그니까 1주 보살이 되어도 힘들다 우리가 말하는 1주 보살이 되어도 힘들어요. 힘들어 죽겠다는 에고의 이 소리는 다 나와요. 아니 오죽하면 예수님도 아! 이 잔이 안 왔으면,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똑같이 에고의 말을 하시잖아요. 똑같이 하는데 평안이 늘 흐른다는 얘기는 항상 다른 안목이 있다는 거예요.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내 안에서 또 다른 나는 지금 뭘 보고 있어요. 이걸 또 수용하고 있는 안목이 있어요. 수용하면서 그래도 받아들이고 답을 다시 찾아보자. 라고 말할 수 있는 안목이 안에 있어요. 그게 같이 가니까 定慧雙運이고 고게 우리가 제대로 자리 잡은 사람이죠. 성령 안에서 거듭났다. 이 정도 되면 제대로 거듭난 사람, 온전하게는 아니예요. 거듭남을 확실히는 체험할 수 있는데 온전한 거듭남은 靈, 魂, 肉이 다 聖化되어야 우리가 온전하게 거듭났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靈이 내 안에서 질적으로 변화되면서 드러났기 때문에 魂과 肉은 이제靈에서 오는 세례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되요. 여기서 오는 뭔가 영적인 공급이 계속 있어요. 이게 놀라운 거죠. 그게 1급 보살의 핵심입니다. 기독교랑 불교를 통합해서 말씀드렸어요. 왜냐면 불교 분들 위주로 말씀드리면 기독교 분들이 이해를 못해요. 나도 1주 보살 되고 싶은데, 나도 성도가 되고 싶은데 이런 얘기가 되게 현실적인 얘기입니다. 왜냐면 요즘 보니까 교회나 절이나 다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신문 지상에 좋은 걸로 절대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드디어 한국에서 義人 발견 이런 식 기사는 거의 드물고 있어요. 있기는. 그런데 대부분은 우리 입에서 쌍욕이 나오게 하는 이거는 상식인들도 안할 짓거리인데 일반인도 안할 짓거리인데 종교인들이 이런 짓거리를 한다. 그런 얘기들이 자꾸 나오게 하는 건요 이게 큰 악업 짓는 겁니다. 왜냐 이 성직자들은 자기 사명감을 가져야 되는 것이 佛性의 그리고 聖靈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하셔야 되요. 자기가 되게 막중한 임무를 자처한 거예요. 그걸 통해서 자기가 생계도 해결하면서 道도 펴고, 전도도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어떤 악업을 짓게 되느냐? 그게 만약에 진짜 생계를 위해서 움직인다고 하면 일반인들, 장사꾼들은 생계를 위해 움직인다고 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성직자가 그런 짓거리를 하면 道를 망쳐 버리거든요. 일반인들이 그 사람을 보고 낙망을 하게 됩니다. 道라는게 저런 거야? 하고 따른다고 해도 誤導 되는 것이고 그걸 보고 낙망을 해도 우리가 진리에서 낙망을 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커요.

여러분이 장사를 하다가 인간의 못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고 낙망하지 않아요. 아니 장사꾼이 저러다니 하면서 난 어떻게 살라고 이렇지 않아요. 장사꾼이 돈을 쫒다보니 저렇게 됐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는데 성직자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道란 없는 것인가? 이렇게 문제가 달라져요. 역시 믿을 놈이 없구만! 양심은 무슨 얼어 죽을 양심! 그런 분들이 괜히 저를 대선 나간다고 하니까 이 새끼도 사이비였군! 이런 댓글을 다시더라고요. 억울했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다른 분들이 하도 그런 모습을 보이셔서 사람들이 보고 전형적인 패턴이군! 이렇게 파악하신 거예요. 그러니 어쩔 수 없죠. 저는 왜 이 지경이 됐냐? 성직자가 성인들을 대신해서 道를 전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자각하신다면, 그냥 내가 장사를 하지,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 이러셔야 하는데 안그래요. 왜냐? 너무 매력적이어요. 靈적 사업이라는 것이 자본금 없이도 자본가들을 뒤통수 쳐서 착취할 수 있는, 이빨만 잘 까면 사람을 세뇌시켜서 투자를 제일 적게 하면서도 제일 뽑아낼 수 있는 사업입니다. 욕심으로 접근하면 무섭죠. 그것 때문에 사실은 매력적인 직업이예요. 사업이예요. 인류가 있는 한 사이비 교주들은 계속 극성을 부릴 겁니다. 이만한 게 없거든요. 한 번 세뇌만 걸면 다 갖다 바치게 됩니다. 몸, 마음, 돈 다 갖다 바칩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럴수록 그런 욕심 세력, 소시오패스들이 세상에서 힘을 못쓰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더 나서서 양심공동체를 구축해야 합니다. 공동체라고 해서 모여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 안에서 하나 되자는 겁니다. 우리가 외국에 살더라도 양심 안에서 하나 되어 움직이다 보면 우리가 꼭 한 몸의 다른 부분처럼 움직일 수도 있다니까요. 양심 안에서는 이 기적이 일어나요. 서로 자명에 서있을 뿐인데 서로 협업이 되는 거예요. 이 놀라운 신비를 아는 사람들이 이 공동체를 주장하는 거예요. 양심 안에서만 움직이면 놀랍게도 하나된, 윗사람이 명령해서 한다. 그런 조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벌써 부당해도 해야 되잖아요. 그럼 양심에 어긋나도 해야 되는 조직이 되어 버리면 이미 그건 꽝인 거고요. 제가 얘기하는 조직은 오직 양심이 살아 있고 제 양심에 복종하기로 맹세한 조직이요. 자 1주 보살은 그런 조직 그런 공동체의 아주 훌륭한 구성원이 되는, 1주 보살부터는 아주 훌륭한 구성원입니다. 참나 안에 들어 앉아 있기 때문에 자기의 영혼 안에서 참나의 세계를 구축한 거예요. 자기의 영혼 안에서 성령의 세계를 구축한 거예요. 늘 양심적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이제 늘 양심을 보고 살 수는 있게 된 거예요. 잘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얼마나 기적입니까?

설명한 번 들어 보실래요.

定慧雙運 禪定과 智慧가 쌍으로 닦인 경지인데 어려운 얘기 등장합니다. 我空 法空의 보편 법칙과 근본 원리를 자명하게 이해하여 (앞에 강의 들으셨던 분들은 아시죠.) 아공의 보편 법칙, 법공의 보편 법칙은 뭡니까?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법칙을 말해요 우리가 현상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我空은 뭐였죠? 에고의 작용들은 無常, 苦, 無我요, 참나는 常樂我淨 하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게 지금 법칙으로 표현되죠. 이러면 보편법칙 이예요. 근본 원리는 뭐라고요? 이렇게 말로 하기 전의 원형의 정보를 근본 원리라고 해요. 같은 겁니다. 동전의 앞뒤입니다. 현상계 안에서 말로든 행동으로든 표현되면 보편 법칙이라고 부르는 거고요, 지금 말로, 행동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원형의 정보를 근본 원리, 서양 철학에서는 이데아 그러죠. 이데아라고 합니다. 法空의 이데아는 뭘까요? 여러분 안에 직관으로 알아지는 정보가 있을 거예요. 그게 이데아 이고요. 말로 표현하면 뭐가 되지요? 萬法은 참나의 작용이라는 것, 萬法은 空性의 작용이라는 것, 자 이거를 자명하게 이해하여 참나 체험을 하면 참나를 여러분이 몇 초만 만나도 이걸 이해할 수도 있어요. 참나를 몇 초만 만나도 그 사이에 직관이 딱 올 수도 있습니다. 아! 일체가 아공이고 법공이구나! 이거 아실 수도 있어요. 실제로 그러니까 만남이 길었냐, 짧았냐 보다 만남이 진했냐, 약했냐 이게 중요하겠죠. 만남이 진하기만 하면 짧은 만남에서도 이 지혜를 자명하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定慧雙修는 우리가 짧더라도 定慧雙修 상태가 있고 명상을 오래 하시라도 定慧雙修 아닌 상태가 있어요. 즉, 참나를 만날 정도의 禪定이 안되고 마음이 편하기는 하는데 참나를 모르겠거나 혼으로 닦는 수행은 靈을 못 만나면 禪定은 닦는데 魂으로 닦는 수행은 선정바라밀은 아닌 거예요. 그냥 禪定은 해요. 평소보다 마음이 편하기는 해요. 참나는 못만났어요. 참나가 주는 평안은 아직 맛을 못봤어요. 禪定 波羅密은 아닌 거고요. 智慧, 제 강의 듣고 我空 法空에 대해 꽤 이해는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직관적 체험은 없어요. 즉, 참나를 만나야 참나 안에서 我空 法空을 이해할 텐데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聖靈 안에서 聖父 聖子를 이해하는 데, 자! 우리는 참나 안에서 我空 法空을 이해하는데 결국 같은 거예요. 안에 들어 가보면 聖父 聖子 이해한다는 게 결국 我空, 法空, 俱空 양심의 空까지 다 이해하는 거예요. 그게 이제 聖父 聖子를 이해한다. 로 갈무리되어 있습니다.

왜냐? 聖父를 이해 한다는 것은 일체 우주의 근원이 참나라는 것을 아는 거거든요. 我空 法空을 다 아는 거예요. 그리고 聖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양심을 구현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俱空을 알아야 돼요. 그래야 알게 된다는 것은 다른 표현입니다. 我空, 法空, 俱空을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聖靈안에서 聖父 聖子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참나 안에서 我空, 法空, 俱空 즉 자아의 진리, 존재의 진리, 양심의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 같은 말이예요. 그런데 짧은 성령 체험만으로도 聖父 聖子가 직관적으로 올 수도 있죠. 아, 이런 분이구나! 마찬가지로 짧은 체험에서도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체험이건 긴 체험이건, 禪定波羅蜜을 얻고 智慧波羅蜜을 얻으면 짧더라도 定慧雙修는 그냥 저런 후천적인 禪定과 智慧도 쌍수라고는 할 수가 있으니까 같은 표현을 쓰기는 뭐하지만 어떤 진정한 제대로 된 定慧雙修를 얻으신 거예요. 진짜 참나를 만나게 되면 그런데 그 만남이 길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길어지다가 만남이 짧으면, 8급 7급이었죠, 1시간 정도 만나면 5급, 6급, 원하는 대로 만나면 3급 4급, 그러다가 참나 안에 들어앉으면 이제 1급까지 도달했잖아요. 그 1급의 경지니까 我空 法空의 보편 법칙과 근본 원리를 자명하게 이해하여 삶의 토대로 삼아버린 경지인, 거기 완전히 안착 되어 버린, 참나가 날 떠난다는 생각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경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참나 안에서 살아 가는 구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聖父 聖子 聖靈 안에서 살아 가는 구나! 이거 알아버린 경지예요. 이제 제대로 된 聖徒 제대로 된 佛子 아닌가요? 내가 부처의 자녀란걸 정확히 진짜로 알아버린 거예요, 자 그런 경지 이거는요 제가 설명을 좀 드렸어요. 불에 손을 넣으면 아는 것처럼 자명하게 이해하고 삶에 활용하는 경지이다. 즉 여러분이 매일 불에다가 손을 넣으면 안된다고 의식하며 사시진 않죠. 불을 보면 자동으로 조심하시죠. 마찬가지로 定慧雙修가 되면 늘 깊은 선정, 깊은 지혜 속에 있다는 것은 아닌데 이제 我空 法空의 智慧가 내 삶에 뼈속까지 새겨져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我空 法空의 지혜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갈려고 한다는 것이죠. 기독교 聖徒 같으면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겠어요? 뭔 문제 생길 때마다 聖父 의식하고 聖子 의식하면서 풀어간다는 거죠. 이해 되시죠.(30:00)

그런데 1주 보살 전에 이래요. 聖靈안에서 聖父, 聖子 만날 땐 좋다가 막상 오늘 주식이 떨어졌다. 그러면 다 어디 가요? 聖父 聖子는 안계세요. 나 혼자 우주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자각을 합니다. 아! 그렇지! 하고 또 10분 명상 틀어놓고 “모른다”, “괜찮다” 하다 보면 또 만나요 아 아버지 제가 또 멀리 돌아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면서 만나니 이렇게 좋은데 왜 그렇게 만남을 피했을까요? 이런 마음이 늘 생겨요. 그러다 이런 만남 이런 고민이 사라져 가는게 1주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我空 法空 지혜도 명상에 들 때는 아 일체가 無常, 苦, 無我지 참나가 영원하지. 요거 참나에서 우주가 다 나왔지. 이런 기가 막힌 생각들을 막 하다가도 딱 또 문제 터지면 그런 생각을 잊어버려요. 사라져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안 사라진다는 거예요. 불에다가 손을 넣으면 안 사라진다. 요거 안 사라지죠. 없는 것 같지만 안사라져요. 이 생각을 늘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안 사라져요. 필요할 때 바로 튀어 나와요. 그런 느낌으로 定慧雙修가 굴러가면 된다. 은근한 참나의 느낌에서 禪定과 般若를 끌어내는 것이 습관화된 경지, 평소에 깊은 禪定이 아니라도 참나의 존재, 나의 존재감을 은은하게 느끼다가 필요하면 바로 禪定과 般若를 끌어낼 수 있는 경지, 더 깊은 단계로 끌어낼 수 있는 경지, 습관화 됐다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경지라는 겁니다. 순경이건 역경이건, 힘들건 편하건, 내가 대하는 경계에 대해 곧장 “몰라” 하고 내려놓고, 자! 이거 하실 수 있는지 보세요. 어떤 경계, 되게 힘든 경계도 “몰라”하고 내려놓고 즉 내 안에 있는 평안을 끌어내면서 자명한 육바라밀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판단, 我空, 法空에 근거한 육바라밀 분석, 육바라밀을 잘하진 못하더라도 육바라밀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정도의 그런 智慧, 요건 있어야 1주 보살이다. 나머지 바라밀은 참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곧장 구현되지 않는 경지이다. 즉 여러분이 은은한 참나를 느끼잖아요. 참나한테 좀 더 몰입했을 때 평안이 오고 지혜는 오는데 베푸는 마음, 유혹을 끊어내는 마음, 진실을 수용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바로 출동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노력하면 나오겠지만 禪定과 智慧 나오는 것만큼은 바로 나오지 않더라 그럼 그 정도면 1주 보살이다 아직 육바라밀을 자기 안에서 다 끌어내어 쓰지는 못하지만 선정과 지혜는 확실히 챙기고 사는 사람, 이러면 되죠. 제 몰입 책에 보면 선정이 몰입이고, 지혜가 몰입 사고죠. 어떤 일에도 참나, 슈퍼 의식을 각성해서 몰입해 가지고 자명한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정도는 된다는 거예요. 자명한 사고를 통해 결론을 잘 이끌어 내면 보시도 할 수 있고, 持戒도 할 수 있는 좋은 상태가 이루어지겠죠. 1지 보살과의 차이는 1지 보살은 “몰라”만 해도 육바라밀이 들썩하는데 1주 보살은 “몰라”만 하면 선정과 지혜만 들썩하는 겁니다. 고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1지 보살은 육바라밀 하는 데 전체적으로 힘이 덜 들고, 1급 보살은 禪定과 智慧는 힘이 덜 드는데, 나머지 할려면 각오도 다지고 “몰라”도 더 투입하고 해야 일이 진행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혜도 좀 다르죠. 1지 보살이 갖고 있는 지혜는 구공의 지혜이잖아요. 양심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잘 알고, 1급 보살은 어떤 체험적 이해는 있습니다. 체험은 있는데 양심을 선명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고, 고 차이인데 그런다고 육바라밀 분석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바라밀 분석은 상급이예요. 지난 시간에 설명드렸어요. 근데 체험적 이해가 있으면 상급이예요. 즉 내 안에서 양심을 만나기는 해요. 그런데 자명한 이해가 아니라는 것은 시원하게 알고 있지는 못해요. 그래서 바로 출동이 안되는 겁니다. 좀 더 설명해 볼께요. 선정 측면에서는요. 은근히 느껴지는 참나가 이미 온전함을 자명하게 깨닫고 있고요. 참나에 진심으로 안주할 수 있는 경지가 이루어진, 그럼 이걸 기독교식으로 하면 대박 아닌가요? 은근히 느껴지는 성령이 이미 온전하심을 깨닫고 성령에 진심으로 안주할 수 있는 경지가 이루어진, 어떻게 하면 이 경지가 이루어질까요? 교회 다니면서, 십일조 아닙니다. 돈 낸 사람이 억울할 수도 있지만 돈과 상관이 없습니다. 돈하고 상관이 없다. 이건 바울이 한 얘기입니다. 계율과 율법과 상관이 없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은 계율이니, 돈이니 이런 거랑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 얼마나 몰입 했냐 입니다. 믿음이 뭐냐면 몰입입니다. 얼마나 몰입 했냐에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한테 정확하게 몰입을 하면 바로 얻어집니다. 아무리 죄짓고 사셨더라도 몰입을 하면 바로 얻어집니다. 그래서 율법하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뭘까요? 얻어진 뒤에는 율법을 더 잘 지키며 살아야 됩니다. 이게 반전이죠. 만난 뒤에는 이제 죄 지으면 안됩니다. 만나기 전에는 죄 지으셔도 되는데, 만난 뒤에는 이제 죄 지으면 힘들어 지죠. 죄 못짓게 하는 성령이 내 안에서 작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더 찜찜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되요. 그 전에는 죄의식을 못 느꼈는데 이제 죄의식을 팍팍 느끼게 되요. 이 차이입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이걸 왜곡시켜서 구원을 받는 데는 행실을 보는 것이 아니고 믿음만 보면 천국 간대. 아니예요. 천국은 행실을 봐요, 성령 강림하는 것은 여러분 믿음을 보고요, 천국은 행실을 봅니다. 구분하셔야 되요. 천국은 못가세요. 그런데 성령은 강림할 수 있다. 성령의 세례는 받을 수 있다. 믿음만으로, 두 개 구분하세요. 믿음만으로 頓悟는 가능한데 漸修는 행실로 이루어 집니다. 요거만 딱 구분하시면 성경 오해 하실 일이 없습니다. 이 얘기를 안하세요. 성직자들이 목사님들이, 왜요? 영업에 방해가 되니까요 자꾸 지적하고 그러시면 교회에 오시겠어요? 믿습니다. 하고 가야죠. 般若, 참나에 집중만 하면 곧장 我空, 法空을 자명하게 직관하게 되요. 그 느낌이 바로 와요, 그렇지, 우주가 그렇게 돌아가지, 그게 탁 직관으로 여러분한테 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육바라밀 분석도 일반인보다 잘합니다. 요 정도가 1급이예요. 저 같으면 1급만 얻고 재미있게 살 겁니다. 10지 된다고 잠 못자고 이러지 마시고, 1급만 얻으면 놀아도 공부가 되요. 왜? 1급 정도 해 놓으면 습관이 있고, 얻어 놓은 실력이 있잖아요. 이제 이때부터는 만화를 봐도 육바라밀 분석을 하고 있고요, 영화를 봐도 깨어 있고, 집에서 뭔일이 생겨도 “몰라” 하게 되어 있고, 왜냐? 일단 맛을 알고 있잖아요. 참나가 늘 내 안에 있고 “몰라” 할 수 있고, 육바라밀 분석할 수 있고, 我空 法空 지혜를 자명하게 아는데, 벌써 인생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 1급 정도 하고 한참 놀면, 놀아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게 되요. 잘하고 못하건, 계속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 전략이 1급까지만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몰고 가면 1급이면 톨게이트 보이는 데 까지는 온 거든요. 톨게이트 들어가시면 되요. 놀다가 들어 갑니다. 난 절대 빨리 들어가지 않을거야! 하셔도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면 들어가 있게 될 거예요. 제 공부 지도 전략이 이래요. 1급까지 알차게 공부를 딱 시키면 1급에서 1단은 사시면서 여러분이 알아서 들어가시게 되요. 죽기 전까지 들어가실 거예요. 한 생에 1지 보살들을 뽑아 낼 수가 있죠. 학당에 오셔서, 앞으로 빠르면 유치원생들도 올 거예요. 근데 늦게 와도 괜찮아요. 1급까지 일단 빨리 가시고 1급이 확고해 지면 놀면서 해도 1지 까지 간다는 거예요. 육바라밀 모르실 수가 없어요. 이렇게 깨어서 사시면 육바라밀이 이해되게 되요. 삶이 계속 공부를 시키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이 1급까지 얻으신 뒤 진공 상태에 사시는 것이 아니예요. 1급까지 얻으신 다음에 세상 풍파 속에서 사신단 말이예요. 세상 풍파 속에서 이런 “몰라”와 “자명함”을 계속 쓰시는데 1급이 안되실 것 같아요? 결국 육바라밀이 답이라는 것을 미리 지도 받았는데 그걸 지도 안 받았다고 그러면 또 모르겠는데 이미 유튜브 강의를 통해 지식은 넘쳐요. 그런데 거기다가 定慧雙修를 얻었다. 그러면 1지 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분명히 가십니다. 제가 이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급까지만 강조하면 1지는 강조 안해도 여러분이 알아서 들어 가실 거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 돌아가시기 전에는 “양심이 답이다” 이런 말을 주변에 막 하시다 갈 겁니다. 손자 붙잡고 야! 양심이 답이다. 이런게 생활화 되실 겁니다.

그러면 이제 볼 만 해 집니다. 이런 양반들이 넘칩니다. 제가 예전에 꿈꿨던 거예요. 한국가면 불교인들이 한국을 무서워하게 되요. 그냥 밭 매는 할머니들도 我空, 法空을 알아! 이런 나라 멋있지 않나요. 기독교적으로는 요즘 꿈이 하나 더 생겼어요. 한국가면 그냥 聖父, 聖子, 聖靈을 편의점 직원도 다 알고 있는. 제가 편의점 직원을 얘기한 이유가 공항에서 처음 들어와서 편의점 직원에게 물을 딱 달라고 하는데 “아시죠. 이거 다 성령의 작용인거” 바로 그럴 수 있는, 외국인들을 쫄게. ‘한국 무서운 나라다’, 어때요?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저는 이건 잘 할 자신이 있어요. 뭐 다른 걸 저한테 하라 하면, 인공지능 이런 것은 제가 모릅니다. 저는 전자계산기 만든 분도 존경해요. 제가 알 수 없는 기계를 만든 분입니다. 스마트폰 만드신 분들은 하느님이죠. 이런 거 만드신 분들을 다 존경해요. 그런데 이 분야 만큼은 제가 자신이 있어요. 사람의 영성을 계발시켜서 이런 신성의 세계 속에 살게 하는 것, 이런 건 제가 자신이 있으니까 제 말씀 한 번 듣고 믿고 해보시면 1급까지는 꼭 가시길 바래요. 1주 보살만 가시면 그 이후는 제가 농담처럼 말씀드렸지만 만약 제가 ‘1급까지 간 뒤에 나 재미있게 살겠다’는 게 그거예요. 1급까지 얻으신 그 실력을 가지고 자기 삶에서 활용해 가면서 재미있게 사시다 보면, 또 얻는 게 있어요. 남이 해라 마라 가 아니라 본인 내면에서 터져 나와요. 사람이 이렇게 사는 거다! 육바라밀의 진수를 만행을 통해 맛보시게 되면 그게 진짜 여러분 거예요. 그러면 세세생생 여러분의 실력이 확고한 토대위에 들어섭니다. 그래서 1주 보살을 불교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1주 보살을 불토지라고 해요. 1주 보살 부터는 不退轉이라고 뒤로 잘 후퇴를 안한다. 노력하면 후퇴할 수 있는데요 잘 후퇴를 하지 않는 자리예요. 그래서 1주 보살까지만 여러분이 가시면 놀아도 공부를 하고 있게 되요. 자기도 모르게, 재미있죠. 그래서 제가 권해 보는 겁니다. 보조스님도 1주를 頓悟의 극치처럼 얘기하신 게 1주만 가라 이거죠. 그 뒤로는, 보조스님 이론은 그래요 1주만 가면, 1지 2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마라는 겁니다. 定慧雙修로만 계속 살면 되는 거야, 1지, 2지는 살다 보면 하나씩 얻어지는 거지, 定慧雙修 할 줄 알면 된 거지! 게임으로 치면 1주 보살은 게임을 즐기는 요령을 확실히 얻은 거예요. 그러면 레벨은 중요치 않다는 거예요. 왜냐면 게임 자체를 즐기는 법을 다 알았기 때문에 재미있게 게임을 하다보면 레벨은 알아서 오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1지, 2지 올라가는 것을 보조스님은 전혀 신경을 안써요. 앞으로 수신결 강의, 제가 원음방송에서 하는데 들어 보시면 1지, 2지, 3지 얘기 안합니다. 오로지 定慧雙修예요. 定慧雙修 얻었냐 못 얻었냐? 얻었으면 인생을 재미있게 살 거고 남는 장사를 할 거고, 못 얻었다면 인생이 팍팍할 거고 인생을 손해 본거다. 오로지 이거예요. 관점이. 1급 되어서 定慧雙修만 쓰면서 살다 보면 무슨 문제가 닥치건 “몰라” 하고 “자명”, 我空 法空 되새기면서 육바라밀 분석하시면서 살아가시면 여러분 이미 훌륭한 보살이세요. 훌륭한 보살 공동체의 일원이세요. 이런 분들은 아주 훌륭한 분들이죠. 그럼 지상에서 華嚴世界 만들 각자 소임이 나옵니다. 자기 맡은 게 나와요. 고거 열심히 하시면서 사시면 되요. 세세생생 이렇게 재미있게 살다 가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또 윤회해야 되요, 이런 분도 계시고, 최근에 학당에도 전 다시 안태어나는 게 목표인데 그 답을 학당에서 얻고 싶습니다. 이런. 강의를 안들으신 것 같은데, 저는 이런 분들에게 그렇게 까지 얘기하고 싶어요. 여러분 “몰라”, “괜찮아”그리고 我空 法空 분석, 六波羅密 분석을 왜 할까요? 전 오히려 이 정도로 얘기하고 싶어요. 세세생생 살아갈 수 있는 심리적 토대를 갖출려고 하시는 거예요. 죽음이 겁나시죠, 다음 생 겁나시죠. 지금 이러면 땡입니다.

定慧雙修 투입하세요. “몰라” 투입하셔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다음 생에 대한 걱정 내려놓으시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을 참나의 작용이란걸 我空, 法空으로 인지하신 다음에 六波羅密 잘 하실 생각만 하시면 여러분은 보살이예요. 즉 1주 보살만 되면 여러분은 이미 보살이예요. 더 안 바라셔도 되요. 세세생생 이렇게 사시면 1지, 2지 따는 것은 일도 아니예요. 意成身 이런 것 신경도 쓰지 마세요. 진짜 중요한 것은 이거예요. 그쵸, 이건 되면 된 거죠. 이거 되면 여러분 생사 걱정 다 끝나신 겁니다. 그래서 관자재 보살이 行深般若波羅蜜을 행할 때, 一切五蘊皆空, 法空만 깨치시고도 俱空 얘기도 안 나왔어요. 法空을 깨치시고 一切 苦厄을 넘어가 버리셨다는 것은요, 생사 걱정도 일어나도 그것도 空한 줄 아시고, 그것도 놔두고 그냥 가실 수 있기 때문에 一切 苦厄을 넘어 섰다는 거예요. 괴롭다는 마음도 이것 또한 空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됐다는 거예요. 法空 깨치시고도 그 큰소리를 하시는데 俱空까지 깨치면 끝나요 我空, 法空, 俱空까지 가면 一切 苦厄을 넘어간다. 지금 여기서 바로 넘어가셔야지 다음 생에, 수행이 완성되면, 이러지 마시고, “지금 여기”서 찰나찰나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我空, 法空, 俱空 六波羅密까지 총출동시켜 여러분 역량되는 대로 요리를 하시다 보면 현상계 안에서 생사 걱정 안하고, 내생 걱정 안하고, 사실 정도가 돼야 여러분이 깨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생사 걱정하고, 내생 걱정 할 때는 깨어있지 못할 때예요. 그쵸, 깨어 있지 못할 때, 我空 法空을 신뢰하지 못할 때, 그 걱정이 나요. 그니까 생사 걱정이 날 때, 아, 내가 선정을 놓쳤구나! 아, 지혜가 약해졌구나! 다시 “몰라” 투입, 我空, 法空 되새김, 그리고 六波羅密 분석 투입 딱 하면 그 문제가 지금 여기서 해결되는 거예요. 생사 문제 걱정되어서 답을 주세요, 사후세계는 있나요? 없나요? 있다고만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질문도 받아요. 미안한데 그냥 “몰라” 하시고 “지금 여기서 자명해” 지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靈界를 경험해 보았다 한들, 여러분한테 도움이 될까요? 진짜 여러분이 힘들 때 그 얘기가 여러분한테 도움이 될까요? 예수님이 하신 얘기도 못미더워서 저한테 물어보시면서 부처님이 하신 얘기도 못 미더워서 저한테 물어보시면서 제가 있다고 하면 안심이 될 것 같죠? 근본적인 해결은 안돼요. 이미 충분해요. 그런 얘기는 저 말고도 성자들이 해 놓은 얘기들이 많아요. 근데 저는 이 얘기를 하고 싶어요. 거기에다 마음을 쏟고 있는 마음을 돌리시는 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게 답입니다. 저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그 마음을 빨리 내려놓으시고 “몰라” 하시고 我空 法空을 되새기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답은. 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묘하죠. 그게 般若心經에서 해 놓은 얘기입니다. 탁 첫 대가리에서. 觀自在菩薩이 般若波羅蜜 해 가지고 法空 깨친 후에 一切의 苦를 넘어가 버렸다. 소승 식으로 이해하면 無常, 苦, 無我인 세계를 버리셨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땡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 가시는데, 一切가 空한 줄 알고 그냥 살아가실 수 있게 됐다. 실력이 됐다. 그게 1住 보살부터는 가능해요. 이해되시죠. 5분간 화장실 다녀오시고 圓頓成佛論 좀 읽어 드릴께요. 오늘 재미있는 얘기들이 기다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