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3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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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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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8. 05. 26. 土.
게시일자 2020. 07. 17.
동영상 길이 41:54
강의 중 인용 도서 -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pNy_P4zmwoc



0:11 대승 보살의 길에 대해서 요점을 다시 한 번만 설명 드릴게요. 지금까지 해왔던 내용하고 관계도 있고 또 다른 부분도 있을 건데. 저희 학당 로고(⊚) 기억하시죠. 요거만 항상 잘 기억하시면 돼요. 저희 학당 로고에 빨간색으로 되어있는 게 태양이잖아요. 빨갛고 까맣고 이렇게 그려진 그림을 저희 학당에서 쓰고 있는데 제가 그 그림 그릴 때 갑자기 어떤 스님께서 전시회에, 저더러 원을 그려 달라고, 일원상을 그려달라고. 저는 이런 걸, 붓 자체도 없는 사람한테 큰 붓을 아무튼 좀 구해서

1:00 그려달라고 해서 저는 못 하겠다고 하니까 그리는 법까지 얘기해 주는 거예요. 어떤 느낌으로 그리래요. 기운이 좋으니까 좋을 거라고 해서, 그래서 제가 억지로 부탁 받아서 일원상을. 전문가도 있는데 제가 처음 그린 일원상을 어디다 쓰실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렸는데 그려서 몇 점 보내드리려고 보니까. 그리고 나니까 뭔가 임팩트가 부족하다. 가운데 빨간색. 빨간 먹물 하고 검은 먹물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빨간 먹물을 가운데 찍었죠. 저는 원래 봉우 선생님한테 배울 때부터 알을 배웠거든요. 이 알이 우리 민족의 핵심 철학이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알을 그려서 보냈는데 보내고 보니까 그냥 이걸 우리 학당 상징으로 쓰자 해서 지금 쓰게 된 겁니다. 애초에 로고를 그렇게 잡고 시작했던 건 아닌데 어떻게 보면 그 인연으로 학당에 로고가 하나

2:02 생겼죠. 감사하구요. 그런데 이제 자꾸 일장기나 욱일승천기의 태양이, 지금 우리 학당 그림이, 만방으로 뻗어 나가야 돼요. 그쵸. 이렇게 제가 못 그리는 게 신나게 그리다보면 욱일승천기가 돼요. 그래서 오해 받을까봐 잘 안 그리죠. 국기는 좋은 국기인데 일본이 욕심으로 만방에 뻗어 나가니까 욕을 먹죠. 원래 태양은 천부경에 우리 본심은 태양앙명이라고, 태양 같은 광명함에서 나온다 해서 원래 사실은 이런 태양이 만방으로 뻗치는 게요 진리를 상징하는 아주 좋은 그림이 돼서 예전부터 저 만주 땅 가도 이렇게 그리면 이게 하느님이에요. 가운데 태양이요 만방으로 뻗치고 있는 모습이에요. 태양이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니까 태양은 하느님을 상징해요. 빛과 열과 에너지를 가진 그 자리가 만방으로 뻗어간다. 그러면 그

3:04 빛이 지혜고 열이 사랑이구요 에너지가 힘이에요. 그 힘을 받아서 우리가 살거든요. 그래서 태양이 미치는 범위를 그려놓은 거예요. 이게 신이 미치는, 신이 우주 만물에 미치는 그 범위를 그려놓은 거예요. 그래서 이 알에 집중하면 우리 민족이 환인 그런 겁니다. 우주의 씨알이니까. 요거는 환인, 요거는요 환웅이요. 요거는 그 빛이 비치는 영향력이니까 그 웅장한 웅자 써서 수컷 웅자 써서 웅장하게 뻗어나가는 빛을 표현한 거예요. 그래서 신의 힘이 안 미치는 데가 어딨어요? 그래서 신의 힘이 미치는 모든 범위 안에서 신이 작용을 일으키는 걸 환웅 그러고 그 신에 초점이 있죠 근본 점을 환인 그러는 겁니다. 하느님만으로 얘기하면 이래요. 그런데 인간들 중에도 도를 이뤄서 하느님 역할 하는 분들한테도 환인, 환웅

4:04 이렇게 붙여주는 거지 원래 의미는 우주의 신 자체, 태양처럼 광명한 신성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는 거 다 그 신성으로 하는 겁니다. 남의 것만 알지 마시고 우리 민족철학도 알아두셔도 돼요. 환인 환웅 하는 데 다 들어있어요. 인이 씨알 인자잖아요. 웅은 수컷 웅자고 웅장하다 할 때 웅자고. 그 느낌이 다르죠. 그러니까 우리 민족한테 저 환인이 우주의 어떤 근본 신성으로부터 자식이 내려와 가지고 우리 민족을 다스리시고 어떻게 인간답게 사는지 다 가르쳐 주고 하신 분도 우리가 환웅이라고 부르고. 하늘나라에 있으면 환인.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면요 저기 하늘나라 북극성에 계시면 환인. 내려와서 우리 가르쳐 주시면, 그 힘을 우리 지구까지 뻗게 해 주시면 환웅. 이건 사람 가지고 얘기한 거예요. 사람 중에 하느님들 얘기한 거고,

5:03 인격적이지 않는 무형의 신성을 가지고 얘기하면 그 신성의 본체가 환인, 신성의 작용이 환웅 이런 겁니다. 그럼 우리 민족 신학은 여기 이거면 다 돼요. 다른 민족은 책이 많이 전해 와서 공부할 게 많은데요 우리 민족은 좋은 게 책이 다 불타고 없어져가지고 달랑 몇 장 안 남아있어요. A4 한두 장이면 충분해요. 천부경의 A4 한 장 안 되죠. 삼일신고 A4 몇 장이고, 삼국유사의 단이 이야기 A4 한 장도 안 돼요. 거기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럽니다. 중국처럼 사고전서 가지고 있으면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우리 민족은 서머리만 갖고 있어요. 핵심 서머리는 거기 다 들어있어요. 제가 강의 다 해서 올렸습니다. 자 그런데 이런 관점을 가지고 한 번 보실래요. 이 태양처럼 광명한 이 신성이 우주만물의 모든 개체 존재의 중심점이에요.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A라는 사람, B라는 사람, C라는 생명체, D

라는 생명체 다양하겠지만 중심점은 하나예요. 이런 철학부터 알아야 우리가 대승이니 소승이니 논한다고요. 소승을 단순한 폄하로 보시면 안 돼요. 왜 소승이란 말이 나왔는가를 아셔야죠. 석가모니 가르침, 인도식 가르침들이 왜 소승이라고 대승철학으로부터 비판을 받는가? 그거 한 번만 생각해 보시면 그래야 우리가 대승도 알고 소승도 알고 대소승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알아야 되거든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냐? 이게 본판입니다. 신성의 힘으로, 이 태양처럼 광명한 이 빛과 열과 에너지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가요. 생각도 하고 감정도 품고 오감 활동도 합니다. 그쵸. 그래서 이게 지금 결국은 오온 작용이니까 불교에서 오온이 본래 공이더라.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더라 하는 것은 이 관계를 말합니다.

7:01 그래서 대승철학은 이미 이 그림을 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요. 모든 대승철학은 이 그림을 머리에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같으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널리 이웃들 간에 서로 사랑해라” 하는 건요 한 자리에서 나왔거든요. 본원을 바로 알고 우주 만물의 본판, 본원을 바로 알고, 절대계 차원이죠. 절대계 차원이고, 현상계 차원, 시공 안에서는 우리 모두가 본래 한 뿌리의 다른 가지죠. 한 뿌리의 다른 가지인데 다른 가지랑 나랑 둘이라고 말하면 되나요? 타고 들어가면 뿌리가 하나인데. 그거 알고 살아라 하는 게 인류에게 첫 번째 과제입니다. 요거 뿌리 알고 살아라. 뿌리를 모르면요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답이 안 나와요. 철학의 핵심은 우리 뿌리가 본래 하나고 거긴 하느님 자리다 신성이다. 지금 뿌리 알고 사셔야 돼요. 지금 내 개체 살림만 꾸리시면 안 돼요. 생각 감정 오감으로 굴러가는 개체 살림만 난 잘 꾸리면 된다.

8:05 내가 성공하고 내 뜻대로 내 행복하게 살다 가면 된다. 대승 차원에서 요런 게 이제 소승적인 거예요. 왜? 이 큰 그림을 지금 대승이라고 하는 거예요. 남을 위해 희생하라. 이타주의. 대승. 이렇게 외우시거든요. 자기만 챙기면 소승.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큰 그림이에요. 대승은 우주가 생긴 그대로 살아가는 걸 대승이라고 합니다. 우주가 생명체를 왜 낳았고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 이 관계를 보세요. 이게 둘이 아니에요. 여기 이게 본점이면 이게 지점이죠. 하나예요. 한 정보 속에서 작용합니다. 그런데 현상계 절대계 분명히 달라요. 차원은 다른데 왜 우리가 뿌리가 하나인 줄 모르느냐? 그 뿌리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4차원 시공간 안에서 뿌리가 안 보여요. 우리 각자 별개로만 보이지 연결됐다는 게 안 보이죠. 연결되어 있는 끈이 있어요. 그 끈이 절대계의 더 고차원의 신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하느님의 분신들인데도 우리는 몰라요.

9:04 우리가 한 생명의 분신이란 걸 모릅니다. 이게 한 생명이거든요. 기독교에서는 한 성령. 다 같은 얘기입니다. 공성. 불교에서는 일심 그러거든요. 한마음. 여기선 둘이 있을 수가 없거든요. 이원성이 없어요. 우리 민족은 여기를 하느님, 하나님 하는 거죠. 하느님 할게요. 다 같은 거예요. 요 자리에 뿌리를 박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게 실상이에요. 그냥 종교를 초월해서. 내 생각 내 감정 내 오감이 다 어디서 나와요? 근원을 추적해보면 이게 이제 참선이죠.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난 누구지? 어디서 나왔지? 이건 뭐지? 하면 한 자리만 발견 돼요. 범위가 생명이고 성령이고 공이고 한마음인 그 자리만 발견된다. 그 자리 알아낸 분들은 개체 살림을 꾸려나가더라도 바로 자기 본판을

10:01 알고 꾸려가요. 자기 본원을 알아요. 이 본원 자리가 이런 모든 절대계 차원이면서 동시에 이 자리는요 모든 진리가 여기서 나오고, 모든 에너지가 여기서 나오고, 모든 정신 활동이 다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안다, 이런 신, 하느님을 안다 한 마디로 하지만 쪼개보면요 진리 차원, 에너지 차원, 정신 차원의 요소들이 있어요. 그거를 각자 공부해 가지고 신의 이런 진리를 통해서, 신이 주는 에너지를 통해서, 신이 주는 어떤 의식 활동을 통해서 각자대로 생각 감정 오감으로 표현해내는 거. 이게 이제 잘 표현한다는 건 뭘까요? 신성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되고 주변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돼요. 그쵸. 어쩔 수 없어요. 현상계 안에 있는 존재는, 여러분은 저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또 다른 나예요. 그러니까 잘 지내야 된다구요.

11:00 별수 없어요. 맘에 안 드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잘 지내야 돼요. 이게 과업이에요. 그냥 잘 지내야지 그러면 열 받죠. A랑 B는 전혀 인연이 없어요. 남이에요. 뿌리를 통하지 않으면 남이에요. 한 뿌리라는 걸 알고 나면. 실제 그런 사례도 있잖아요. 친구로 잘 지내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형제였다. 형제자매였다. 그러니까 그게 알고 나면 또 눈물 나죠. 그러니까 이게 참나를 알고 나면 여러분 인류를 향해 눈물 나야 돼요. “나랑 형제였구나 자매였구나” 하는 거 알아야 돼요. “사실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한 뿌리에서 나와서 저렇게 살아 움직이고 꿈틀거리는구나” 이걸 아는 게, 그러니까 자비하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걸 알고 나면 이게 알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승이란 게 별게 아니라 신성을 정확히 알고, 신성의 입장에서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우주를 이해하면 “아 만물이 다 나랑 둘이 아니더라.” 대승철학에서 이걸 공부할 때 법공이라 그러죠. 법공.

12:06 “만법이 본래 참나의 작용이었구나” 하는 거. 사람이 이 법공까지 알아도요. 내 뿌리 모든 존재의 뿌리가 여기인줄 알겠어. 나는 생각 감정 오감이 여기의 작용인 줄도 다 알겠지만, 법공을 난 알겠는데, 나는 생각 감정 오감 다 없애고 그냥 참나로 복귀하고 끝낼래. 그럼 이게 대승으로부터 소승철학이라고 비판을 받죠. 왜 소승이라고 비판을 받겠어요? 일반적으로 나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을 소승이라고 하죠. 이기적인 거죠. 소아적인 거죠. 그런데 여기 나의 행복만 추구했다, 이기적인 행복만 추구했다 이걸 소승이라고 하는 건 다들 쉽게 이해하시는데 열반 사상도 소승이다 그러면 잘 이해 못 하세요. 특히 초기불교 하는 분들은 “나는 소승이 아닌데, 나는 내 존재를 날려

13:01 버리겠다는 사람인데, 현상계를 날려 버리겠다는 사람인데 어떻게 나더러 소승이라고 하지? 대승이 문제 있군.”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 큰 그림에서 볼 때는요 지금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전체가 한 생명이에요. 여러분 하나가요 그냥 개인이 아니라고요. 실상을 알고 보면 나 하나가 그냥 나 하나가 아니에요. 관계 속의 존재고요. 사실은 공동체 속의 나예요. 모든 인류 공동체, 생명 공동체 속의 나예요. 나 하나의 진보가 여러분 한 명의 진보는요 인류 전체의 진보예요. 여러분이 혼자 남모르는 데서 뭐 하나 정보를 알아내도 인류가 알아낸 거예요. 이 한 생명 차원에서 어느 한 부분에서 진보라는 건 전체의 진보입니다. 한 부분의 퇴보는요 전체의 퇴보예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보시면요 나 하나의 열반이라는 발상 자체가 안 맞아요. 그래서 이거를 소승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 하나 우주에서 내가 벗어나하겠다는데 완전히, 나의 쾌락을 위해서도

14:01 아니고 나는 이 우주에서 열반에 들겠다고 초월하겠다고. 그것도 지금 이 실상에 안 맞기 때문에 이런 사상도 소승적으로 분류하는 겁니다. 애초에 나 하나 열반에 들어서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인류는 공동생명체고 공동운명체고 함께 가야 되는 거예요. 만약에 보살들이, 여러분 한 분이 생각 감정 오감 차원에서 참나의 도움을 받아서, 엄청난 은총을 받아서, 자 이게 은총이고 가피고 참나의 힘이에요. 여러분 생각 감정 오감의 본원적인 힘의, 근원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서 여러분이 큰 성과를 낸다고 해도 그게 위대한 보살, 성자의 탄생이라 하더라도, 성자가요 나 혼자만의 열반을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인류 중의 한 명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그 위대한 성취를 하고도 뭐라 그래요? 인자라 그래요. “나는 사람의 아들일 뿐이다. 내가 얻은 것은 모든 사람이 이룰 수 있다.”

15:04 항상 이 공동체적 관점에서 자기의 성과를 얘기합니다. 경전들을 한 번 보세요. 성인급들은요 항상 공동체적 관점에서 자기예요. 나 하나의 성과라는 게 없어요. 그래서 내가 하나라도 좋은 거 알아내면 남들하고 나눠요. 그래서 이 정보가 남들한테도 퍼지게 해요. 나 하나의 성과 자체가 애초에 공동체의 성과입니다. 하지만 인류 전체의 성과입니다. 그리고 나눌 때 인류는 더 빨리 진화하겠죠. 진보하겠죠. 그러니까 항상 어떻게 해야 돼요? 남이 공부 안 하더라도 나는 혼자 공부해야 돼요. 왜? 나의 성취가 인류의 성취기 때문에, 나의 한 걸음이 인류의 한 걸음이기 때문에 나는 남들이 다 퇴보할지라도 혼자서 묵묵히 앞으로 가면서 나누는 거예요. 끝없이 나누는 작업 밖에 없어요. 그래서 논어에 보면 공자가 “나는 진리를 배우는 데 싫증 안 냈고 남 가르치는 데 게으른 적이 없다. 이게 나다” 하고 자기를 설명할 때 그랬어요.

16:04 맹자에 보면 공자의 일화가 나오는데 자공이란 제자가 “선생님은 성인입니다. 성인이시잖아요?” 하니까 성인 성(聖)자가 원래요 천명, 남이 못 듣는 하느님의 명령을 잘 듣고(耳), 남한테 설명을 잘해 주는(口) 데, 탁월한 임(壬)자거든요,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당신 성인이십니다” 하니까 공자님이 똑같은 말을 해요. “나는 성인이 아니다. 단지 공부하는 데 싫증 안 냈고 진리를 배우는 데 싫증 안 냈고 내가 알아낸 진리를 남하고 나누는 데, 남 가르쳐주는 데 게으르지 않았을 뿐이다.” 자공이란 제자가 똑똑해요. “진리를 배우는 데 싫증 안 낸 것은 지혜고 요건(耳) 지혜죠. 천명을 잘 듣는다는 건 지혜입니다. 남한테 잘 가르쳐줬다는 것(口)은 자비니까 지혜와 자비를 갖췄으니 성인 맞네요.” 이렇게 칩니다. 그것도 제자가 똑똑해야지 이렇게 했을 때 반응이 오지

17:01 모르면 “아 아니시군요” 하고 경전에 안 남았겠죠. 아시겠죠? 별거 아니라는 게 그러니까 여러분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이렇게 살았다니까요. 원시시대 정보가 없잖아요. 인류가 이 땅에 던져졌어요. 그런데 정보가 없어요. 화려한 버섯이 있어요. 누가 하나 부족 중에 하나가 먹어봐요. 가요. 보세요. 이 한 명의 실험이요 의미 있는 실험이 되려면요, 인류 전체의 실험 정보가 되려면 이 하나의 경험을 통해서 지혜가 남습니다. 정보는 이게 결국 지혜예요. 지혜. 씨알이, 여러분 실제 생물의 씨라는 건 정보를 담고 있는 거죠? DNA부터 다 정보예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어떤 봄 여름 가을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요. 경험을 해요. 겨울에는 그게 뭐로 갈무리되죠? 정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뭔가 한 명 한 명이 경험을 하고 이 땅에서 살죠. 사시면 정보로 남아요.

18:05 그 정보가 인류 전체의 정보로 활용이 잘 되게 돕는 게 성인들의 역할이고 보살의 역할일 뿐입니다. 자기가 해서 얻은 경험을요 그 중에 보편적인 정보들을 인류랑 계속 공유하는 거예요. 그냥 개별적인 것은 꼭 아니더라도 인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보편적인 정보는 반드시 남기는 거. 그거는 반드시 해야 되잖아요. 그건 필수고 개인적인 것은 또 남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남길 수 있으면 남기는 게 좋지만, 정보가 필요한 사람한테 가야 되니까. 하지만 보편적인 정보는 필수로 남겨야죠. 그러니까 한 사람이 어떤 화려한 버섯을 예전에 원시시대 때 먹고 죽었다. 그러면 “저런 버섯을 먹으면 어떻게 된다더라” 하는 정보가 그 부족한테 남습니다. 그걸 많이 가진 부족은 현명한 부족이 되고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게 없는 부족은요 또다시 다 해봐야 돼요. 그거 먹어 봐야 되고 어디 가서 또 당하고 추울 때 추워서 죽고 더울 때 더워서 죽고 이러면서 살다가 경험이 경험이 쌓이고

19:04 쌓여서 그 경험이 지혜로 저장되는 거예요. 이게 인류의 생명이에요. 다른 동물들이 지금 못 하고 있는 거고. 인류가 이 짓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발전해온 거고, 인류가 남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이게 이 그림 속에서 이해가 되셔야 돼요. 인류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여러분 인류는 한 생명이고 한 공동체고 다른 동물들까지도 사실은 고민하고 있는 존재죠. 다른 동물들이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할 필요가 없죠. 그러나 인류는 해야 됩니다. 이 우주에서 지금 생각하는 걸 맡았으니까. 우주에서요 생각하는 걸 맡은 존재가 인류예요. 이게 단순히 생명체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구성 요소입니다. 우주 전체가. 여기에 이제 생명체만 넣었지만, 무생물을 넣어도 똑같아요. 한 신의 작용이라고요. 자 그러니까 지금 난 어떻게 살아야 되냐? 왜 대승

20:01 보살의 길을 걸어야 되냐? 하느님의 이 신성을 시공간 안에서 생각 감정 오감이란 한 개체성 안에서 이 진리와 이 에너지와 이 정신을 내가 온전히 담아 가지고 신성과 조화를 이루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느냐? 이걸 화두로 삼으셔야 된다구요. 그럼 그냥 이게 말 안 해도 대승이라고요. 소승이라는 이게 그냥 크고 작음을 논하려는 게 아니에요. 이게 원래 그냥 맞는 삶의 모습인데 “나 하나의 열반이면 족하다”라는 사상이 끼어드니까 그건 작은 거다, 스케일이 작다라고 얘기하는 것뿐이에요. 아시겠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여기 뭐 진리가 우리 다른 얘기 안 하잖아요. 육바라밀하고 인의예지. 내용이 같죠. 사랑하라. 남을 나처럼 사랑하라. 정의로워라. 내가 당해서 싫은 건 남한테도 하지 마라. 예절을 지켜라. 남과 이 상황과 항상 조화를 이뤄라.

21:05 항상 자명한 진리에 서라. 신 더하면 인의예지신 하면 성실하라. 육바라밀 중에 하나 빠졌죠. 선정에 해당되는 것. 유교 선비들이 제일 강조하던 경. 항상 깨어 있어라. 자 깨어 있어라(경). 성실하라(신). 양심을 따르는 데 성실하라 입니다. 그리고 항상 자명한 것만 옳다고, 근거가 있는 것만 옳다고 인정하라(지). 항상 겸손하고 조화롭게 살아라(예). 정의롭게 살아라(의). 남을 나처럼 사랑하며 살아라(인). 요 진리를요 삶 속에서 내가 그냥 지식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정보로 얻으셨다면 주변에서 구현하면서 살아야죠. 한 명 한 명이요 저 진리를 깨닫고 우주의 에너지를 같이 나눠 쓰면서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아가면요 충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깨어 살아가면, 우주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절대계의 신성의 진리대로 그대로

22:03 우주에 돌아갈 때가 오겠죠. 이게 이제 우리나라에서 추구하는 이화세계입니다. 진리 그대로 다스려지는 세계. 이거는요 우주의 숙원사업이에요. 지금까지 안 됐죠. 왜? 일단 우리 지구만 봤을 때 잘 안 됐죠. 이거는 영원한, 어떤 우주의 영원한 목표일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가는 거. 이렇게 가려면 우주가 인간한테 뭐라고 하지 다른 생명체들한테는 뭐라고 안 합니다. 인간은 이걸 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거든요. 인간이 잘 나서가 아니라, 다른 부분을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부분이 특출나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고 하느님을 이해해서 하느님 뜻대로 자기의 생각과 감정과 오감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영성을 갖고 있어요. 요 부분을 구현만 해주면 이 지구에서도 정토니 극락이니 뭐 이화

23:03 세계니 하는 게 이뤄지겠지만 우주적 차원에서도 이게 우주의 꽃입니다. 인류가요 우주의 제일 결정체고 인류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주는요 질이 바뀌어요. 지금 이대로 살면요 우주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물리법칙밖에 없어요. 욕망의 법칙, 물리법칙 밖에 우주는 표현을 못 합니다. 인간이요 우주로부터 이런 고급 정보를 끌어내서 사랑 정의를 구현해버리면요 우주는 그대로 그게 천국이 되어버리고 정토가 되고 수준 높은 영성의 구현장이 돼요. 우주의 레벨을 결정하는 건 인간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 예전부터 천지인이 삼재인데 그 중에 인간이 제일 신령하다라고 가르쳐요. 예전에요 서당 가면 막 배우는 글에도 나와요. 유학에서도 소학 교재들에 천지 만물 중에 인간이 제일 신령하다 하고 시작해요. 어느 종교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24:00 이런 큰 역할을 가진 인간이 신성을 못 꺼내 쓰면 어떻게 돼요? 우주의 제일 막행이가 돼요. 지구도 날려버리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생명체 파괴할 수 있고 뭐든지. 그만큼 이게 공부 안 하면 큰일 나는 게 인간이고. 그러니까 대승이라는 걸로 제가 자꾸 이렇게 강의하는 이유가 대소승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 꺼는 위대해 하고 혼자 대한민국처럼 괜히 자기 혼자 앞에 대자 쓰면 뿌듯해서 대승을 하는 게 아니에요. 예전 어른들이 대승이라고 해서 그냥 대승이라고 쓰는데 그냥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길이라고 했던 거예요. 그냥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면서 사는 게 너무 지당하다는 걸 그냥 알고 있어요. 이런 얘기는요 저기 어린이집 가서 유치원 가서 물어봐도 애들이 다 알아요. 그런데 나이 들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걸요” 하는 눈빛으로 변하고 사상이 바뀌죠. 어려서는 친구한테 잘해야지 그러면 당연하게 알아요. 나이 들수록 꼭 그렇지 않다는 것.

25:01 친구한테 사기도 당해보고 사기도 쳐보고 하면서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걸 극복하고 다시 사랑과 정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건 이제 인류의 큰 성공이죠. 그래서 저는 항상 인류는 이걸 지향하는 게 맞다. 우리 시대에 될까요? 예전에 안 됐는데요. 될까 해서 가는 게 아니에요. 인류는 이걸 지향하고 갈 때 제일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하자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사셔야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힘들 때는 다 됐고 우주고 뭐고 모르겠고 나는 하느님 안으로 돌아갈래. 힘들 때는 그래도 괜찮아요. 그렇게 돌아가세요. 본인이 지금 남 도울 처지가 안 되면 돌아가서 쉬세요. 힘 생기면 또 도와주시면 돼요. 그러니까 이 큰 그림을 이해하신다면 난 영원히 돕지 않겠어라는 사상을 굳이 가질 필요가 없죠. 큰 그림이 그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게 보면요 태양과 지구처럼요 이렇게 자전과 공전 있죠? 이런 것처럼 이 욕심을 가지고 보면요 한 개인이 자기만의 욕심을 추구하는 거 이게 자전입니다.

26:09 이렇게 자전한다면 또 공전 방향이 있죠. 공전을 하면요 공전은요 양심이에요. 모두를 이롭게 하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큰 명분하에서 또 내 사리사욕도 추구해보는 거예요. 이게 조화만 이루면 돼요. 그리고 양심이라 하더라도 또 자전 공전이 있어요. 양심 안에서도요 자리, 나를 양심적으로 만드는 작업. 이 공전에 해당되는 게 이타. 모두를 위하는 것. 그런데 보세요. 항상 자기 욕심도 챙겨야 되지만 양심도 나부터 먼저 닦아야죠. 나부터 닦으면서 인류 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이게 항상 자전과 공전처럼 함께 가는 겁니다. 그래야 인류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걸 추구하셔야 돼요. 보살로 사시는 게 대승보살로 사시는 게

27:00 정신건강에도 좋고 몸에도 좋고. 자 인의예지 진리 곱씹으시는 게 쓸데없는 망상 속에서 헤매고 다니시는 거보다 이런 인간의 길, 인생의 올바른 길을 확연하게 아는 데 도움이 되고 호흡수련 하셔서 항상 단전을 빵빵하게 좀 해 놓으시면요 단전이 빵빵해져야 몸이 펴지고 정신이 펴지면서 진리를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됩니다. 에너지가 쪼그라들어 있으면요 안 돼요. 진리를 알아도 실천을 못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봐도요 인가를 쉽게 못해요. 맞다 그르다 선택도 에너지를 써야 되거든요. 호흡 길게 안 하셔도 돼요. 10초-10초만 하셔도 몸 건강 정신 건강에는요 아주 효험이 있습니다. 더 길게 하시면 오히려 다른 부작용이 생기고 그래요. 그러니까 힘 받으시려면 10초-10초 정도만 하시라. 그 다음에 정신 늘 깨어계시라. 정신적으로는 늘 참나를 자각하는 삶을 사시라.

28:01 진리적으로는 항상 인의예지를 명심하시라. 우주가 어떤 원리로 굴러가는지 항상 명심하시라. 항상 호흡수련하시라. 그게 신을 우리가 온전히 지상에 구현하는 방법입니다. 한 개체를 통해 신성을 구현하려면요 그래서 홍익학당에서는 깨어 있으실 것, 양심성찰하실 것, 호흡수련하실 것. 항상 요 3가지만 강조합니다. 요 기본기만 되면 여러분은 여러분 삶에서 중심을 잡고 살 수가 있어요. 진리(理)는 내비게이션에 해당됩니다. 여러분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 있어야 되죠. 기름이 차 있어야죠. 기운(氣)은요 기름이에요. 여긴(心) 운전자 깨어있는 거거든요. 운전자가 정신 차리고 있고 졸음운전 안 하고 내비가 정확히 길을 안내해줘도 기름이 없으면 또 못 가죠. 요 3개가, 삼박자가 맞으면 제일 수월하게 운전이 가능해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내 마음의 운전이 제일 잘 돼요. 마음의 운전이라는 거는 몸의 운전까지 첨가해서 말하는 거니까 마음이

29:01 하는 대로 몸이 잘 따라주면서 일이 되려면 요 진리 알아야 되고 에너지 충만해야 되고 정신이 깨어있어야 돼요. 정신이 일반 희로애락에만 휘둘리는 상태로서는 운전이 안 되죠. 진리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수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 자리이타가 자전 공전처럼 우리 삶에서 항상 균형을 이루게 해야 돼요. 항상 나 자신의 성장, 영적 성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되고, 그게 이타, 모든 인류에게 공유될 수 있게 또 그 정보를 잘 가공해서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줘야 돼요. 이것만 잘하시면 돼요. 많은 사람을 구해야 된다는 게 아니라 한 명하고 나누더라도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는 모습이 중요한 겁니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길을 지향하셔야 정신도 빨리 더 건강해지시고 몸도요 생명력이 더 뻗어 나요. 묘하게 명상을 하고 뭘 한다고 할 때 소승 철학으로 자꾸 무장하시면요 사고가 좁아지고 이 우주가 추구하는 바랑 뭔가 안 맞게 돼요.

30:06 그 안 맞은 미묘한 찜찜함도요 결국에는 그게 나중에 표가 납니다. 아싸리 그냥 마음을 넓게 쓰시면 편하게 됩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 어떻게 되냐면 나를 닦는 게 그대로 남을 돕는 게 되고요. 또 남을 도와주는 게 그대로 자리로 연결되는 걸 알아요. 남을 도울 때 육바라밀로 양심으로 도와야 되잖아요. 남을 도울 때 힘내서 양심으로 남을 돕다 보면 내 양심 실력이 높아져요. 내 양심 실력을 계발하다보면 남을 더 많이 돕게 돼요. 이게 서로 도와줍니다. 진리에 맞는 것들은 특징이요 진리에 진짜 맞는 거는요 한 귀퉁이만 붙잡아도 전체적으로 나중에 원만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발견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이 있다는 걸 아시게 되면 그건 진리를 찾아가시는 거 맞아요. 진리가 아닌 건요 내 딴엔 큰 그림인데 가보면 잘 안 맞아요.

31:01 실제 적용해보면 현실하고 안 맞는데 진리는 작은 거 하나 실마리만 잡고 들어가도 자꾸자꾸 풀려나가면서 더 큰 그림에 내가 도달하게 돼요. 한 번 해보시라고요. 여러분의 삶에서 육바라밀이 진짜 진리인지 실험해 보셔야 되고, 실제로 호흡수련 해서 몸의 에너지가 잘 도는지 실험해 보시고, 정신이 깨어 있다는 게 뭔지도 실험하셔서 이게 어떻게 하나로 조화돼서 내 삶에서 구현될 것인가 이걸 잘 연구해 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 한 명의 성취가 인류의 성취라는 걸 명심하시면서 공부를 하시면 무인도에 혼자 가서 수행을 하시더라도요 여러분 한 분의 성취는 인류의 성취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남들 모르는 데서 혼자서 명상하면서 이렇게 양심을 연구하고 계시다. 한 분이 혼자 멀리서 남들도 모르는 데서 하고 계셔도 그 분은요 지금 인류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계신 거예요. 인류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32:00 있는가를 또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성공은 인류 전체의 성공으로 기록됩니다. 여러분은 몰라도 우주는 압니다. 그래서 “아 인류는 여기까지 도달한 종족” 이렇게 우주에서는 판단이 되는 겁니다. 인류는 현재 여기까지 성과를 냈다. 그 카르마가 모든 사람한테 또 돌아가요. 왜? 우주는 애초에 나 혼자라는 게 아니거든요. 분명히 에고 입장에서는 나는 남과 다른데 근원적으로 볼 때는 이 에고 자체도 전체 생명의 한 가지이기 때문에 원래 하나로 돌아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또 원래 하나인데 나 혼자 어떻게 “제 계정만 좀 지워주시면 안 돼요?” 이게 열반 사상입니다. “솔직히 좀 삶이 버겁고 또 태어나서 뽀로로 볼 용기도 없고 나는 여기서 좀 지워주세요. 다시 윤회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이게 통할 수가 없는, 이런 생각 자체가 진리에 우주에 맞지 않는 생각이다. 그래서 소승이라고 지적을 하는 거예요 대승에서. 좀 달라요 단순히 이기적이다라는 차원이 아니에요. 사고의 폭이 좁다. 실상을 정확히

33:03 모르고 있다는 의미도 있는 겁니다. 우리가 소승 대승 나눌 때 스케일이 작다, 덜 아름답다, 이런 뜻도 있어요. 이 신성의 근원 이 하느님의 자리가요 여기는 모든 진선미, 모든 진리, 선한 거, 아름다움의 근원이죠. 그것을 내 삶에 얼마나 끌어들일 거냐를 끝없이 연구하셔야 돼요. 내가 가진 패가 있죠. 내가 가진 재료가 있죠. 그 재료 가지고 내 우주가 허락하는 한 멋지게 한 번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재료가 별로 마음에 안 드셔도 어쩔 수 없어요. 그 재료 가지고 하셔야지 엉뚱한 것 바라시면 아예 아무것도 작품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재료를 가지고, 내가 예수님처럼 성인처럼 갑자기 되길 바라지 마시고. 우주도 그렇게기대를 안 합니다. “그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당신이 사는 그때, 그 장소에서 그 재료 가지고 주변의 동료들과 한 번 멋지게 우주의 이런 진리를 거기서 한 번 구현해 보시오.” 이게 우리 삶의 미션이지 과한 거 바라시는

34:05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 큰 그림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면요 제가 얘기 안 드리는 것도 여러분 제 얘기가 진리라면 이런 그림으로 살아가시면 인생이 달리 보이시고 뭔가 계속해서 자명한 영감들이 끝없이 오실 거예요. 이게 진리가 맞다면 그러면 인생이 바뀌실 겁니다. 제가 말씀 안 드린 것까지 찾아갈 거예요. 이게 진리가 아니라면 요것도 날아갈 겁니다. 적용해 보면 이것도 안 맞다는 게 나오겠지만 진리 맞다면요 이렇게 한 번 살아 보시면 말로 할 수 없는 뭔가 다양한 것들이 삶에 오십니다. 마음은 점점 넓어지고 깨어나고 진리는 선명해지고 에너지는 충만한 그런 삶이 되시기만 하면 잘 가고 계신 거니까 그 길로 꼭 걸어가시면 대승 보살의 길은 그냥 이렇게 열리는 겁니다. 어떤 특정 종교만의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어려운

35:00 얘기도 없잖아요. 우리 근원이 원래 하나고 우리는 한 뿌리의 가지들이니까 가지는 가지대로 열심히 자기가 위치한 곳에서 열심히 삽시다. 어떤 가지는요 태양 못 받는 데 있을 수도 있죠. 열 받을 수도 있죠. 누구는 양지바른 데서 가지가 자라고 나는 음지에서 자라고 있고 막 짜증내고 그러다가 이게 원래 한 뿌리라는 거 알면 어떻겠어요? “나는 음지에서라도 나 있는 데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답이 나와야 되는데 이게 한 뿌리라는 걸 모르면요 억울한 거죠. 끝없이 억울한 거죠. 내가 아무리 잘 살려고 노력하다가도 양지바른 곳에서 좀 햇빛 받고 있는 가지를 보면 또 빡 치죠. 다르다고 보면 계속 빡 치는 일인데 “아버지한테 맡깁니다” 하고 계속 맡기면서 가면요 전체가 하나라는 한 그림 속에서 내 역할이 분명히 보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엄한 생각 덜하고 더 성실할 수 있게 됩니다. 엄한 생각 덜하고요 자명하게만 살다 가시면 돼요. 여러분 다 하느님 되자는 게 아니라 “내가 위치한 곳에서 좀 더 자명하게

36:02 좀 더 깨어있게 좀 더 에너지 넘치게 살다 가자” 그 생각만 하시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이건 자리구요 자리는 항상 이타로 연결되어야 된다. 나의 이 작은 성장이지만 인류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정보를 또 남들에게 잘 공유하는 것, 소개하고 공유. 꼭 책으로만 공유되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남들이 그 정보를 또 얻습니다. 그러니까 꼭 정보를 잘해서 멋지게 블로그나 페북이나 책으로만 쓰시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정보를 계속 남들하고 공유하면서 살려고 이렇게 마음을 먹으시고 사시면 다양한 수단들이 나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게 대승보살도다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복잡하지만 결국 우리 학당 로고죠. 학당 로고를 마음속에 그리시고 내 마음의 태양, 영적 태양의 빛을 받아서 나도 살고 남도 살고 다 같은 태양의 빛 받아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한 생명이다. 우주는 한 생명이다. 이런 시각 가지고 사시면

37:03 좀 덜 외로우실 거예요. 혼자 계실 때도 덜 외로우시고 누가 나한테 어떤 일을 안 맡겨도 혼자 사명이 생깁니다. 혼자 사명감이 나와요. “내 양심에 오늘 뭘 좀 해야 찜찜함이 덜하겠다 뭘 해야 더 자명하겠다” 이게 분명히 보이시면 그날 하루 그 과업 받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그걸 하시면, 여러분이 결과까지 기대하실 필요가 없어요. 한 생명이라 우주에서 명령이 온 거죠. 우주에서 명령이 올 때 자명함으로 옵니다. 찜찜함으로 옵니다. 자명한 건 자꾸 하고요 찜찜한 건 하지 마세요. 그 찜찜함도 들여다보세요. 에고가 뭘 겁내서 불안해서 에고가 욕심이 나서 찜찜하신 건지? 에고가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한테 다 맡겼는데도 찜찜한 지를 잘 분간해보시면 우주가 찜찜하다고 하는지 내가 찜찜하다고 하는지 그게 보여요. 잘 안 보이시면요 애매하면요 한 번 해보세요. 실험을 해보시면 바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자꾸 실험을 통해서 우주랑 올바르게 소통하면서. 우주랑

38:05 올바르게 소통한다는 건 하느님의 소리를 잘 들으면서, 남은 못 들어도 난 들어요. 남한테 그걸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고 정보를 전해주는 데 있어서 탁월하신 분들이 다 되실 겁니다. 다 성자되실 수 있어요. 이번에 그 마블 영화 있죠? “어벤저스” 보니까 슈퍼 히어로들은 못 듣는데 타노스 혼자 듣고 있는 소리가 있어요. “인류 절반을 죽여라.” 다른 사람들이 막 아니라고 그래도 “너넨 몰라” 이러면서. 좀 안 좋은 그림인데 성인들도 사실은 비슷해요. 반대죠. 반대지만 성인들도 양심의 소리가 들려요. 사람들한테 얘기하면요 사람들은 아니라 그래요. 아마 예수님 때도 그랬어요. “예수님 이런 식으로 하면 여기서 출세 못 하십니다. 말을 좀 담으세요. 입을 좀 닥치세요.” 아마 이런 제자들이나 친구도 있었을 거예요. “너 그 말 하고 다니면 안 돼.”

39:02 공자님도 그랬어요. “그런 소리 자꾸 하고 다니면 선생님 출세 못 합니다.” 심지어 자기 수제자 중의 한 명인 자로마저 공자님이 “정치를 하려면은 그 개념을 바로 잡아야 돼” 하니까 “아 선생님은 이런 식이라니까요. 이렇게 그냥 세상에 발을 못 딛고 사신다니까요.” 이 말을 해가지고 공자님이 빡 쳐가지고 “아닥해라.” 거기 한문인데도 매섭게 쓰여 있어요. “군자는 모르면 입을 열지 않는 법이다. 다무는 법이다. 진짜 닥쳐라.” 거기가 공자님 아주 화내신 부분 중에 하나예요. 순리대로 풀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 제자들마저도 뭐라고 생각했냐면 “이런 식이니까 공자님이 세상에 등용이 안 되지. 스카웃이 안 되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논어에 보면 다 나와요. 공자님만 당한 일이 아니에요. 다 당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인류 중에 어떡해야 인류가 사는데 하는 걸 알아낸 사람들이 있는데

40:00 이 양반들이 얘기할 때 사실 잘 안 들어요. 그런데 그때 보살이 빡 쳐서 “에이 망해버려라” 하고, 인터넷에 도는 사진 있는데 예수님이 “아버지 얘네들 안 될 것 같아요. 종말이 답인 것 같아요.” 이런 짤방 사진이 도는 거 봤는데요. 성인들도 보살도 인간적 심정으로는 그래요. 왜냐하면 내가 진리를 알아냈는데 공유하려고 할 때 막 비난을 하지 박해를 하지. 그런데 보살은 어떤 마음으로 이 사업을 할까요? 요 그림을 이해하시면 답이 나와요. 내가 알아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인류의 성취입니다. 내가 전달할 때 인류가 안 받아주는 건요 그건 현재 인류의 카르마예요. 어쩔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인류를 위해, 전체가 한 생명이라 그게 또 짜증난다고 잘라버릴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전달되게 다양한 방편을 찾아보는 거예요. 이렇게도 얘기해보고 겁도 줘보고 구슬려도 보고 하면서. 왜냐? 이 자체를 안 할 수가 없으니까

41:00 피할 길도 없으니까. 여러분 가족이 잘못되는데 순간 마음에는 에이 내 말 안 들으니까 너 망할 것이다. 하지만 또 돌아서면 가족이 망하는 것은 또 나랑 다 연결되어 있는데요. 끝까지 매정하게 못 굴어요. 보살도 인격에 이 욕심 차원이 있기 때문에 한 개인적인 인격 차원에서는 불만도 있고 서러운 것도 있고 다 있지만 또 이 양심 차원에서는요 이렇게 또 굴러갑니다. 또 큰 그림 속에서 또 수를 놓습니다. 이게 숙명이에요. 보살의 숙명이고 사명인데 이런 길을 한 번 걸어 보시면 이게 힘들 것 같아도 여러분 제 얘기 듣고 “야 보살 빡센데” 하시는데 제가 봐서는 여러분이 더 빡세게 사세요. 보살들은요 하느님 안에서 안식도 취하고 평안 누릴 건 누리면서 가세요. 쌩으로 하시는 여러분들이 훨씬 대단하십니다. 더 힘든 길을 가고 계세요. 좀 더 쉽게 사시는 법이에요. 이렇게 사셔서 오는 고민하고

42:04 자기가 개체가 혼자 쌩으로 우주에서 뿌리도 끊어져 있고 혼자 뭐 해 보겠다고 덤벼서 지금 인생에서 겪는 그 스트레스와 그거랑요 비교가 안 됩니다. 왜? 보살은 이미 자기는 얻었거든요. 자기는 얻었는데 공유하려는데 공유가 안 돼요. 답답하고 이건 하느님 뜻에 안 맞는 거라 찜찜하지만 자기대로 또 역량대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대로 수용하면서 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요. 우주가 하라니까 이렇게 해야 제일 옳다니까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살아가실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말로 하자면 끝도 없고요. 요 정도하고 또 진도 나가야 되니까 요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5분 쉬었다 다시 하겠습니다. 4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