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11강
| 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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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9급~예비8급 |
| 강의일자 | 2016. 08. 13. 土. |
| 게시일자 | 2017. 01. 22. |
| 동영상 길이 | 35:50 |
| 강의 중 인용 도서 | -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CQ3ifynXQ5Q |
(00:00)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김연아 나왔다고 갑자기 우리나라가 피겨 강국이라고 불리면 좀 이상하잖아요? 부끄럽잖아요. 그 때 벼락치기 한 거죠, 국민들도 다.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고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그렇게 간간히 정말 안 되어서 우주가 알아서 공부해서 합격하는 애들을 내보내서 한번씩 그런 사람들이 고급 정보를 주긴 하는데 그런데 그 학원이 뛰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못 길러내요. 합격생을 배출을 못합니다. 정확히 아셔야 돼요. 뭐가 문제인지. 뭘로 합격했는지. 이 얘기를 듣지 못하시면, 여러분, 평생 엄청난 시간과 정력을 써서 잘못된 공부를 하시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 드리는 거고, 요것만 아시면 돼요.
(0:52) 방금 제가 읽어드린 아공, 법공, 제가 그것도 늘려 쓴 거예요. 늘려서 아공, 법공의 이런 점, 저런 점 다 아셨으면 좋겠다는 제일 핵심 되는 것을 제가 뽑아 놓은 건데, 그 몇 줄 안 되죠? 지금 이 A4 한 장도 안되는 내용에 대해서 평생을 통해서 입증해 보시라는 거예요, 진짜 그런지. 그거 우리가 알고 가야 됩니다, 이 땅에서. 알고 살아야 됩니다. 가는 건 나중이고 알고 살아야 돼요. 그러면 뭔 문제 하나가 생겨도요, 가족과의 문제가 생겨, 나랏일이 생겨, 항상 깨어서 참나와 에고를 선명히 나눠서 보고, 참나는 시공을 초월한 상락아정의 세계라는 것을 느끼면서, 에고의 문제는 또 무상, 고, 무아의 맛이 있다는 것도 알면서도, 둘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걸 알면서, 이런 기본적인 시각을 갖추고 그 문제를 풀고 계신지. 이런 거 다 날아가고 나와 남이 다 분리 되어있고, 쪼개져 있고, 그 안에 나도 하나의 에고로서만 존재한다는 입장에서 문제를 풀고 계신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답이 나오고 있다는 말이에요. 아공, 법공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이 6바라밀… 아공, 법공은요 결국 6바라밀을 잘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본 지식이에요. 기본 지식이자 진리예요. 요거를 정확히 아셔야 6바라밀을 잘 할 수가 있게 돼요. 이해되시죠? 이 전제가 안 깔리면 6바라밀도 납득이 안돼요. 보세요, 아공, 법공의 전제가 없으면 6바라밀이란 것도 결국은요 에고로서 다른 에고한테 되게 베풀어야 되고, 참아줘야 되고, 이런 논리밖에 성립이 안 된다니까요.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라는 것까지 나와야 6바라밀이라는 게 결국은 내가 내 우주를 경영하는 우주적인 진리라는 개념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우주적인 6바라밀이 아니고, 우주적인 양심이 아니고는요 개인마다 서로 다른 양심을 가지고 우길 수가 있죠? 그런데 보세요, 아공을 모르면 벌써 참나를 모릅니다. 법공을 모르면 참나와 에고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몰라요. 이런 관점으로 우주적인 문제를 풀어가면 어떻게 제대로 된 양심이 발현되겠냐는 거죠. 이 관점에서 공부를 하시면 돼요. 그래서 이 세 과목이 하나가 되면 여러분 안에서 자명해지기만 하면 된다.
(03:08) 그런데 지금 크게 얘기했죠? 아공은 이거다, 법공은 이거다. 많은 정보가 지금 너무 모여 있죠? 압축되어 있죠? 이걸 좀 풀어서 접근하려면,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자, 시험에는 아까 그거를 대답해야 합격하십니다. 시험공부를 할 땐 지금 그거를 바로 통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자, 제 몰입책에도 나오지만, 그 통으로 자명하지 않을 땐 쪼개야 돼요. 쪼개면 됩니다. 쪼개서, 먹을 만하게 쪼개서 만만한 것들부터 먹어 치워야 돼요. 만만한 것부터 소화해야 됩니다. 쪼개서 이제 보자는 거죠. 자, 그래서 그 쪼개 놓은 게 옆에 보시면, 아공의 기초가 되는 보편법칙 있지 않나요, 2페이지에? 밑에 법공의 기초가 되는 보편법칙 있죠? 그게 쪼개 놓은 거예요. 그거 하나씩 먹을 수 있냐는 거죠. 한 번 보실까요, 먼저? 요거부터 먼저 읽어볼까요? 자, 아공을 이해하시려면요, 첫번째 이렇게 물어보세요. 여기 내용들은요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 14조 제가 삶의 지침으로 삼으라고 그랬잖아요? 근데 더 들어가면요 14조도 좋은데 공부하시는 입장에서 이것들을 좀 따로 뽑아서 매일 점검해 보세요. 물어보세요. 여기에 대해서 자명하다는 대답이 나오고 지금 이 순간 그게 한참 생각해야 자명한지 바로 자명한지 이런 것부터 스스로 점검을 해보세요.
(04:35) 자, 보세요. 첫번째, 에고, 자아는 생각, 감정, 오감으로 작용한다. ‘O’, ‘X’. 이거 바로바로 버튼 누르실 수 있어야 돼요. 자명하지 않은데 누르시면 전기 감전됩니다. 이런 기계 있으면 좋겠죠? 학당에 이런 거를 하나 갖다 놓고… 거짓말 탐지기 있죠? 거짓말 탐지기를 갖다 놓고, 그럼 점검 금방 되지 않을까요? 그 기계 들고 전국의 사찰과 종교단체를 돌면요 급수 금방 나올 거 같은데요. 자, 두번째, 생각은, 괄호 열고, 제가 쪼개는 이유가 생각만 먼저 물어 보시라는 거예요. 생각은 무상하다, ‘O’, ‘X’. 자, 감정은 무상하다. 오감은 무상하다. 자, 이거를 그냥 얘기하지 마시고, 지난 시간에 뭐했습니까? 몰입 4단계까지 간 뒤에 연구하시라고 했잖아요? 정사마타. 제목이 뭡니까? 정사마타와 정위빠사나로 해오에 가보자는 거잖아요, 지금 이 시간의 주제는. 그래서 몰입 4단계를 이룬 뒤에 몰입 4단계 상태에서 이걸 연구해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에, 즉, 참나랑 접속한 뒤의 얘기예요. 참나랑 접속한 상태에서 에고를, 생각을 알아차리면서 이 생각이 무상한지 한번 자명하게 결론을 내려 보시라는 거예요, 몰입해가지고. 감정에 몰입해가지고 이 감정이 무상한지 우주적인 시각에서 한번 자명한지 따져보세요. 우주적인 시각이란 게 선입견 없는 상태에서. 자, 안 그러면요, 생각은 무상하다 그러면 여러분 메타인지에 이미, 이미 너무 많이 들었어요. 제 강의도 많이 들었고, 여기저기서.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되냐면, “생각은 무상합니까, ‘O’, ‘X’?” “무상하죠.” 자명함을 따져보지 않고 그냥, 그건 당연히 무상한 것처럼 뇌에서 빨리 지금 처리해 버린다고요. 그럼 여러분 자명하다는 느낌을 못 받습니다, 나중에. 그러니까 자명한지 어떻게 해야 돼요? 깨어서, 생각이란 놈을 관찰하면서 진짜로 일어나고 사라지는게 보여야 돼요. 실제로 깨어 계시면서… 제가 예전에 깨어있을 때 보면 생각이란 게 이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게 이미지처럼 보여요. 깨어있기만 해도 보여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민감해지면. 내 우주에 뭔가 일어나고 사라지면 다 관찰돼요. 알아차려져요. 이런 체험들을 해보고 무상하다는 말을 하면 그거 자명하겠죠? 깨어서 체험을 해 보시면서, 오감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거 하나씩. 오감도 다섯개가 있죠? 하나씩 하나씩 느껴 보시면서 자명하다는 말을 남한테 할 수 있을 정도인지 스스로한테 물어 보시면 실험이 잘 될 겁니다.
(07:22) 자, 세번째. 생각은, 무상… ‘고’에 해당하는 겁니다. 우리말로 어떻게 풀었나요? 생각은 만족이 없는가? 생각은 만족이 없는가. 자, 생각이라는 것에서 이제 아주 영원한 만족이 올 수 있는 물건인지에 대해서, 생각이… 감정은, 만족스러운지? 늘 만족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오감은 늘 만족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뜻대로 다, 오감이란 게 뜻대로 굴러가는 물건인지, 하나씩 하나씩 점검해 보시면… 이거 점검해 보고 난 뒤에 ‘일체개고’를 말해야지, 그냥 ‘일체개고’ 말하는 거는 그냥 에고의 한탄 밖에 안돼요. “일체가 괴롭구나…” 하고 그냥. 그 다음에 돌아서서 다시 또 막 ‘고’에 뛰어든단 말이에요, 불나방 같은. “아, 저긴 정말 아닌 것 같아…” 하면서도 그냥 뛰어가고 있는. 그런데, 자명하게 체험을 통해서 “‘고’다” 라고 하고 나면 그 다음에 판단이 다 달라집니다. 일체는 만족을 다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잖아요. 내 뜻대로 되는게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만족 상태에 대해서 수용이 일어나요. 적당히 불만족스러운 게 오히려 맞는 거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생의 삶이란 그런 거야. 이걸 수용하는 분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분이 있죠? “그런 게 어디 있어? 끝까지 완벽한 만족을 향해 나는 달려갈 거야.” 이러면 불나방 같은 삶이 됩니다. 불에 뛰어드는 삶이 돼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이건 자명한 진리입니다. 일체에 대해서 우리가 그게, 만족이라는 게 가능한 물건들인가에 대해서. 생각의 영원한 만족이라는 게 가능한가. 감정의 만족이 가능한가. 하나씩 점검해 보시고… 이게 ‘일체개고’에 대해서 실험해 보시라는 겁니다, 오감에 대해서.
(09:15) 그런데 이 자체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물건이라 벌써 그게 만족스럽지 않지 않나요? 좋은 생각도 사라져요. 내가 사라지라고 한 게 아니라 사라져요. 감정도 일어났다 사라지고. 어디 가고 없습니다. 뭉칠 때는요, 감정이요 무서운 비구름 같아요, 벼락치는. 시커멓게 무섭게 몰아치다가 딱 사라지고 나면요 있었다는 게 안 믿어질 정도로 사라지면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감정이란 게 그런 자연의 원리만 관찰해봐도 한 번 모일 때는 그렇게 벼락치고 무섭더니, 천지를 다 위협하더니 사라지고 나면 흔적도 없어요. 먹구름 일부가 남아서 떠다니거나 하지도 않고 깨끗이 사라져버리고 나면 진짜 아무것도 없어지거든요. 우리 감정도 그래요. 어떤 조건, 카르마 때문에, 조건이 갖춰질 땐 모여서 우리를 죽을 것처럼 몰아세우더니 갑자기 사라지고 나면 아무 흔적이 없어져요. 이런 원리가, 일체가 무상하다는 거랑 거기서 우리가 만족을 추구하는 행위가 진짜 옳은가. 거기서 영원한 만족이란 게 올 수 있나 한 번… 늘 내 뜻대로 만족만 계속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시면 자명한 결과가 나오시겠죠.
(10:29) 네번째, 생각, 감정, 오감은… 각각 하나씩 따로 연구해보세요. 불변하는 독자적 실체가 없다. 그 친구들을, ‘딱 이게 생각이다’ 라고 고정된 모습이 있는가 하는 거죠. 그러니까 무상하다는 것만 알면 다 걸려있지 않나요? 무상하다는 것 안에 사실은 다 있는 말입니다. 무상하다는 것 안에 이미 내 뜻대로 안된다는 게 전제되어 있구요. 즉, 만족이 없다는 게 전제되어 있고, 더 내려가면 독자적 실체가 없다는 것도 이미 전제되어 있죠? 무상하다는 걸 통렬하게, 자명하게 실험을 통해 알아내시고 나면 나머지는 인가하기가 쉬우실 거예요. 하나만 딱 정확히 파셔도. 이런 식으로 파시고 나면 누가 아무리 이제 여러분한테 뭐라고 해도요, 생각, 감정, 오감은 무상한 거라는 걸 이제 더 이상 의심 안하고 알 정도로 자명한 확신이 생기겠죠? 그것들에 대해, 이 진리들에 대해. 자, 이런 게 지금 아공이라고 바로 말 할 수 없지만, 아공의 되게 기초가 되는 것들 아닙니까? 부품들이 모이면 아공이 성립되죠? 아까 아공이 뭔지는 제가 얘기 드렸잖아요? 그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런 어떤 보편적 진리를 얘기하기 위해서 그 보편적 진리의 하부적인 보편적 진리, 법칙들을 지금 하나씩 캐 보자는 겁니다. 아공의 기초가 되는 보편법칙. 이름을 그렇게 붙인 거예요, 그래서.
(11:45) 자, 에고는 요 정도로 한 번 파보고, 참나를 파볼까요? 참나는 무상하지 않다. 참나에 대해서 무상하지 않은지, 참나 상태에서 관찰해봐야 알죠? 참나로만 존재도 해보고요, 참나를 51% 정도, 51% 이상 느끼면서, 에고도 살아있으면서, 관찰하면서, 에고가 뭐라고 지금... 참나를 직접 느끼면서 에고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실험을 해보다 보면 참 이게 자명하다 하는 느낌이, 이 말과 내 느낌이, 체험이 정확히 일치한다 하는게 있어요. 자명한지 이 말들이,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참나는 괴로움이 없다. ‘저기엔 괴로움이 없구나. 존재만으로 만족하는구나’ 하는. 존재 자체로 만족이 오는 자리라는 거 한 번 확인해 보시고. ‘참나는’ 그러니까, ‘순수한 나, 순수한 존재 자체, 타자가 없는 나다’ 요게 과연 성립 가능한지. 참나 상태에서 이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시면, 요것들을 지금 점검해 보시면… 매일 이걸 곱씹어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거 곱씹다가 “진짜로 이렇다” 하면 여러분 되신 거예요. ‘진짜로 이렇구나, 그래서 참나는 이런 거구나.’ 그래서 나중에 삶에 어떤 문제가 생기건 참나가 순수한 존재이고, 참나는 걱정이 없고, 참나는 무상함이 없다. 그리고 에고는 무상함이 있는게 맞고, 만족이 원래 안 오는게 맞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거다. ‘참나의 작용이다’ 그러면 법공이 등장하니까 일부로 여기까지만 얘기할 게요. 예… 무상한거다, 실체가 없다. 고정불변 된 모습이 없지 않나, 요렇게 얘기하시면… 왜 제가 아공에서, 아공과 법공에 조금 차이를 두고 설명하는지는 아시겠죠? 일단 아공이 먼저 와요. 그런데 아공 차원에서 아직 참나랑 에고를 연결 지을 필요는 없거든요. 일단 참나와 에고의 차이점만 분명히 하자, 하는 정도로 제가 말씀드린 겁니다. 그러니까 자아의 불변하는 독자적 실체가 없다는 요 말의 느낌은 고정된 물건이 없다 정도로 아공에선 이해하셔도 돼요. 왜냐? 법공 가면 다 이제 그게 참나의 작용이니까 독자적 실체가 아니다 이렇게 다 재정립 될 겁니다. 일단 아공에서는 그 정도만 이해하자는 거죠. ‘무상하니까 독자적 실체가 없다’ 이렇게 이 정도만.
(14:04) 요 정도 지금 자명하게 아시면 여러분 아라한 돼요, 아라한. 이걸 자명하게 알아버린 사람이 아라한이에요. 뼛속까지, 여기까지만. 더는 아니고, 여기까지만 자명하게 알아버렸으니까 어떻게 돼요? 생각, 감정, 오감이란 거, 무상, 고를 겪고 싶지 않은 거죠, 아라한들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살면 될까요? 에고를 최대한 멀리하는 삶을 살면 돼요. 늘 명상에 들고, 명상 상태, 즉, 참나, 아라한들은 참나를 열반이라고 부르죠? 고요하고 순수한 상태인 열반으로만 계속 존재하면서 에고가 나를 무서운 먹구름처럼 위협해 올 때 “너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고, 만족이 없는 것이다, 물건이다” 하고 선언함으로써 물리치고 다시 참나로, 열반으로 돌아와서 안주할 수 있으면 돼요. 이 능력만 갖추면 아라한이 됩니다. 이해되세요? 이게 뼛속까지 자명하면 아라한이 돼요. 그 분은 그냥 아라한으로 살 수 있어요. 이게 좀 달라요. 아라한하고 힌두교 성자들하고 좀 차이 나는데, 제가 볼 땐 대동소이 합니다, 아라한 레벨에서는. 근데 아라한은 꼭 출가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석가모니 교단은 출가해서 청정한 삶을 사는 걸 중시했기 때문에 아라한 정도가요, 아라한 정도가 되어도 이걸 아신 거예요. 아라한 정도가 되어도 세속에 들어가 살면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신 거예요. 세속에서 자유자재로 팔정도를 펼 정도의 지혜는 아니거든요. 딱 그렇죠, 얻은 내용이? 그러니까 출가를 시켜서 청정한 삶을 숲 속에서 살게 한 거예요. 힌두교는? 그런 부분에서 또 자유로워요. 어디든 막 살아도 참나만 알고, 지금 이 원리만 알았으면 성자라고 불러줍니다. 힌두교가 좀 더 자유롭고 석가모니 교단이 엄격한 차이는 있고, 그러면서 또 보면 이 쪽(석가모니 교단)이 좀 더 도덕적이고, 이 쪽(힌두교)은 좀 덜 도덕적인 면이 있고. 이러면서도 좀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원리 아시겠어요? 깨달음에 대한 기준은 대동소이 하다구요. 우파니샤드나 석가모니 가르침이나 대동소이 합니다. 참나라고 부를 거냐 열반이라고 부를 거냐 정도의 차이예요. 글로 배운 분들은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난리 납니다. 사성제, 12연기가 있고, 힌두교에는 사성제, 12연기가 없고… 그런 얘기는 저한테 하지 마시고, 뭐 아무튼 대동소이해요, 해보면. 해보면 대동소이한 얘기예요. 우파니샤드에도 비슷한 얘기 다 있어요.
(16:32) 자, 그러니까 핵심은 뭐냐? 힌두교랑 오히려 석가모니 교단의 차이는 제가 체험적으로 느껴본 차이는 늘 참나를 보고 있으면 에고는 원래 무상, 고, 무아이니까 에고 차원에서는 험한 모습이 보여지더라도 어쩔 수 없고, 난 참나를 찾았으니까 죽을 때 참나의 세계로 돌아간다, 하는 게 힌두교 교리이고, 석가모니는 살아있는 동안도 막 살면 안되고, 출가해서라도 청정한 삶을 계속 유지하다가 죽어라, 이거죠. 그럼 열반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더 도덕적이란 면에서, 윤리적이란 면에서 석가모니 교단이 더 뛰어나고 그런데 어떤 면에선 더 엄격해가지고 자유롭지 못한 부분은 있어요. 속세에서는 그럼 아라한이 불가능한, 뭔가 단절된 느낌이 있어요. 요걸 이제 대승에 오면 다 극복해 버리는… 힌두교, 불교 다 그냥 통합시켜서 자유자재하게 그 현상계에서 아예 도를 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이론은 대승 가서나 나옵니다. 법공을 알아야 나와요. 이제 그러니까 법공이 중요한 거예요. 법공 이론을 알고 나면은 현상계가 그대로 참나의 세계고, 열반인데, 가르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죠? 그러니까 지혜가 더 커져서 그래요. 아라한 정도의 지혜로는 현상계 나가면 깨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현상계를 자유자재로 경영할 수 있는 더 큰 철학이 필요한 겁니다. 현상계 자체도 영원불멸하다, 이런 말 할 수 있어야 되는데, 못 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게 대승에서는 가능하니까, 그 근거가 뭐냐? 법공을 공부시켰기 때문이에요. 법공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
(18:08) 그래서 법공까지 이제 확인해 볼 게요. 법공을 공부하면 이제 뭔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보실래요? 법공의 기초가 되는 보편법칙. 자, 요것들에 대해서 여러분 자명하게 ‘O’ 누르실 수 있나요? 저 내면에 조금이라도 찜찜함이 감지되면 쫙 전기가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살 타는 냄새가 막 나고… 어떤가요? 재수 없나요? 자, 한 번 해볼 게요. 첫번째, 우리가 체험하는 현상은 생각, 감정, 오감으로 이루어진다. “아, 애매한데…” 이러시면… 꼭 이렇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이게 다시 의심하지 말자는 게 아니구요,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자명한 근거가 있다는 거를 체험해 보시라는 겁니다. 100%가 어디 있어요? 100%는 어디 있어요? 100%는 없어도, 너무 자명해서 할 말이 없어졌느냐, 이것만 일단 가지고 보시죠. 인간한테 100% 라는 거, 저는, 말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두번째, 생각은 알아차리는 참나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게요, 생각을 알아차리는 참나가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자, 이런 질문들 다 받아보면, 여러분, 법공을 아실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세번째, 감정은 알아차리는 참나가 없이 존재할 수가 있을까요? 없죠? 오감을 알아차리는 참나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오감이라는 게 객관적인 오감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이라는 게. 이미 여러분의 생각이에요. 여러분의 오감이고.
(19:42) 여러분의 생각이고 감정이고 오감인 이상은 여러분 내면에 그 근거가 있어야 돼요, 존재의 근거가. 그 자리가 참나입니다. 남의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 것이지. 많은 분들이 생각, 감정, 오감을 다루다가 객관적으로, 나로부터 분리된 생각이 있는 것처럼 얘기해요. 근데 모든 생각, 감정, 오감의 주어는 ‘나’입니다, 이미. 그 ‘나’는 에고의 ‘나’이고. 그럼 에고가 존재하려면 참나가 또 있어야 되고. 이런 식으로… 자, 이거를 말로, 개념적 자명함이고요, 체험적 자명함은요 여러분이 그걸 체험적으로 실험해봐도 그렇더라 하는 거죠. 개념적 자명함도 중요합니다. 일단, 개념이 말이 되어야 돼요. 개념이 일관성이 있고 무슨 말이 돼야죠. 그런데 체험적 자명함은 아직 아니기 때문에 개념이 아무리 자명해도 해봐서 안되면 안되는 거 거든요. 그쵸? 팩트(fact)가 중요하죠? 그러니까 체험적 자명함이 개념적 자명함 보다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체험적 자명함은 체험해 봤다는 거지, 그게 완전히 뿌리내렸다는 건 아니죠? 그래서 뿌리내렸다는 걸 제가 구분해서 그냥 자명함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체험적 이해의 자명, 개념적 이해의 자명, 그리고 마지막에 자명한 이해. 이렇게 제가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냥 자명하다라고 할 때는 이 모든 게 다 통합되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21:11) 자, 자명함을 목표로 해서 근데 체험적이라는 게 이미 자명하단 얘기예요. 체험이 있다는 얘기이죠? 근데 원만한 자명함이 아니라는 얘기이지, 체험적이라는 건 이미 개념이 체험으로 입증되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체험적이다’ 까지만 가셔도 돼요, 일단. 일단 그러면 가능한 거예요. ‘참나를 체험했다’ 이미 참나랑 만났다는 얘기 잖아요? 자명함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나랑 아주 함께 지내지는 못한다는 거지, 아주 자명하지는 못하다는 거지, 이미 자명함이 싹이 났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제가 체험적이라는 말씀에 이미 자명함이 자라고 있다는 얘기예요. 개념과 체험이 일치되고 있다는. 그 전에는요? 개념만 있었잖아요. 개념이 아무리 갈고 닦아서 자명해지면 뭐합니까? 체험이 없는데. 그래서 개념만 갈고 닦은 분들은요 개념의 자명함이라고 하는 그런 말이 이제 가능하다면, 개념의 자명함만 갖고 있는 걸로는요 정말 똑똑한 것 같은데 해 본적은 없어요. 이 말은 너무 맞는 것 같은데. 해본 적은 없는 그런 이해 수준인 거죠. 그런데 이제 조금이라도 그걸 가지고 체험을 해 본 뒤에는 이제 뭔가 피드백이 이루어지겠죠? 그 뒤에 어느 정도 자명함을 갖춘 이해는 개념적 이해보다는 수준이 높습니다. 근데 그 체험이 원만하게 실험이 되어 가지고, 이제 아주 내가 알고자 하는 것에서 의혹이 사라진 상태, 100%는 아니더라도 뭐 내면에서 거의 의혹이 사라졌다, 그 정도 되면 우리가 ‘자명하다’ 라고 말할 수 있죠.
(22:42) 자, 아까 어디까지 갔죠? 생각, 감정, 오감, 그 다음은요, 여러분, 시간성은 알아차리는 참나가 없이 여러분 우주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오직 지금’ 하고 집중하시는 순간에, 여러분, 시간을 초월해 버려요. 참나랑 현상계를 자꾸 이렇게 왔다 갔다 하시면서 연구를 해보십시오. 공간성은 알아차리는 참나가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없다. 앞뒤좌우라는 그 느낌이 우리 내면에서 참나 없이 존재할 수 있냐는 거죠.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말로 해 놓으면 거창하죠? ‘공간이 나로부터 나왔구나.’ 내 마음 안에 공간성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우주를 공간으로 인지하고 있구나. 간단합니다. 여러분, 꿈 꾸실 때, 주무실 때, 시간, 공간, 여러분 의식에 다 펼쳐 놓고 잘 노세요. 그쵸? 여러분이 우주를 만들어서 노세요. 결국 여러분 정신작용 아니었나요, 깨고나서 보면? 객관적으로 그런 게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의식에만 존재했죠. 매일 여러분 일체유심조를 하고 사시면서도 “일체가 여러분이 만든 겁니다” 하면 깜짝 놀래고 못 받아들인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다.” “남을 제가 만들었다구요?” 꿈 속의 등장인물 다 여러분이 만든 거예요. 그 분들 말도 참… 그 분들 나름의 특징에 맞게 말하지 않나요? 여러분 그렇게 관찰력이 좋지 않은데요. 신기하죠? 여러분 내면에 그런 힘이 다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거 다 만들어내고 할 수 있습니다.
(24:20) 명상하다가, 명상을 하다가 뭔가 보인다는 거는 잠 자서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의식 상태에서 꿈을 꾸는 거예요. 명상 중에 보는 게요 막 선명하고 홀로그램이 되기도 하고, 평면으로 보기도 하고 2D, 3D, 4D 다 체험 가능합니다, 명상 중에. 4D는 그 안에 들어가서… 그래서 의식이요 평면으로 보이다가 의식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홀로그램으로 변해요. 그 안에서 이제 만져보고 다 합니다. 땅 만져보고 하세요. 흙이랑 똑같아요. 저도 늘 그러고 많이 돌아다녀요. 쳐보고 물 만져보고 진짜 이 촉감이 드는지. 똑같아요. 그러고 막 경험해 보는데, 깨고나서 보면 다 내 마음 작용이었죠. 재밌죠? 이런 것 까지도 활용해서, 제가 그냥 예를 들어드린 거지, 여러분 명상할 때 “이거 자명합니까?” 할 때 방금 이런 식으로 막 “꿈이 어떻고…” 이러시면 안되고, 여러분이 “이런 체험을 다 바탕으로 둬서 그게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는, “이 공식이 자명합니다” 하는 그 말씀이 나오셔야 돼요. 제가 예로 드는 이런 것들도 한 번 체험해 보시고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이것만 근거로 대진 마시고, 몰입 4단계에서 몰입해서 참나와 에고의 관계를 계속 연구하는 중에 생각, 감정, 오감과 참나의 관계를 연구하는 중에 이런 진리도 분명히 우리는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25:47) 주객의 이원성. 꿈 속에서 남이 등장하듯이 우리 마음 속에 지금 등장한 남도 꿈에 등장한 남이랑 같다는 거예요. 똑같다는 게 아니라 지금 그 원리는 같다는 거예요. 지금 제 마음의 우주에 여러분이 등장해 계시잖아요. 차이는 뭐죠? 꿈에 등장한 사람들은 객관적 실체가 없었고, 여러분은 지금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거지, 지금 제 마음 안에 등장한 건 똑같아요. 여기 한 분이 더 계시는데 제 마음 안에 등장 안했다고 하면 저는 모르는 거예요. 안 계시는데 등장했다, 귀신 보는 경우죠? 안 계신데 등장하시는 분도 있어요. 옆 사람한테 물어봐야 돼요. 저기 있는 거 맞냐고. ‘뷰티플 마인드(Beautiful Mind)’ 영화 보면 자기를 못 믿잖아요. 꼭 물어보잖아요, 저기 있는게 맞냐고. 나한텐 보이니까요. 똑같아요. 꿈 세계랑 지금이랑 똑같아요. 일체유심조입니다, 둘 다. 그래서 장자가 호접몽이란 얘기를 한 거예요. 참나 차원에서 보면 꿈에서 펼쳐진 일체유심조의 세계나 현상계에서 내가 펼쳐서 살아가고 있는 일체유심조의 세계나 동등하다는 거예요, 어떤 측면에서는. 참나의 작용이라는 측면에선. 한 쪽은 객관성이 있고, 한 쪽은 객관성이 없다, 이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그게 같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하셔야… 영화 ‘메트릭스(Metrix)’ 보시면 주인공이 메트릭스 세계 안에서 신통을 부리는 건 이해가 되죠? ‘0’과 ‘1’로 이루어진 메트릭스 세계의 실체를 꿰뚫었기 때문에. 나중에 메트릭스 세계에서 나와서 진짜 현실계에 나와서도 똑같은 초능력을 부립니다. 현실계도 메트릭스라는 얘기이죠, 하나의. 똑같아요, 그거랑. 여러분, 그 꿈 속에서만 여러분이 만든 이 일체 세계를, 시간, 공간, 나와 남을 다 만들어서 즐기시는 게 아니라 깨어난 뒤에도 지금, 여러분, 객관적 자료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서 구성할 뿐이지, 똑같이 지금 여러분 의식이 구성해서 지금 보고 듣고 하시는 겁니다. 이런거 아셔야 일체유심조를 체험적으로 알았다고 하는 겁니다.
(27:52) 명상을 하면 아세요, 별거 아니고. 이 모든 게 참나랑 만남이 깊어지면 자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참나랑 만나고 있다고 바로 아는 건 아닌데 참나랑 만남만 깊어지면 분명히 이런 생각이 가능하고, 하면 자명함이 와요. 참나와의 진한 만남이 이런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해줘요. 체험을 줘요. 이해되시죠? 참나와 에고의 협업입니다. 그 협업 가운데서 이런 진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알아집니다. 이거 아시는 게 중요해요. 지금 불경을 외우고 하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진리가 자명한지 아시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 반야심경 대부분 뜻 모르고 외우시죠? 천수경은 더 알 수가 없죠? 범어인데. 근데 너무 충격적인 사실은요 그것만 해도 좋죠? 그런데, 티벳 린포체들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뜻을 모르고 외는 주문은 효과가 떨어진다. 근데 안타깝죠? 그분들은 뜻을 알아요. 자기들 쓰는 말이니까. 우리는요? 몰라요. 그래서 쓰던 한문도 뜻 모르고 지금 왼단 말이에요. 근데 그 나라에서는 뜻 모르고 외면 효과 떨어진다고 뜻을 새기면서 외라고, 염불하라고 그래요, 티벳 고승들은. 그분들 강의 들으면. 그거 벌써 우리 손해보는 거 아닙니까, 뭔가? 뭔가 막 끓어오르지 않으세요, 손해보고 있다는 게? 그래서 이런 것을 정확히 알고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시간 낭비를 막고… 여러분 다 합격하셔야죠? 이건 절대평가니까 온 우주 중생이 다 합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합격하셔서 남을 도와주고 또 남을 돕다가 합격하고 이렇게 서로 끌어서 ‘다 이 정도는 알고 살자’ 하는 거예요. 아공, 법공, 구공, 이 정도는 알고 살자.
(29:44) 구공은 오히려 제가 얘기 많이 하죠, 항상? “우리 안에 양심이 있습니다” 하는 거. 그 지당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아공, 법공을 한 거예요. 결국 구공이라는 꽃을 피우려고. “우리 안에 양심 있습니다” 이 얘기 한 마디가 그렇게 쉬운 얘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참나의 작용이고, 일체가. 그래서 따라서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면 일체를 경영하는 법을 밖에서 찾으실 필요가 없죠. 아니, 만든 자리에서 답을 찾아야죠. 만든 자리에다가 물어봐야죠. “어떻게 경영하면 돼?” “우주를 어떻게 만들었어? 어떻게 경영하면 돼?” 답이 어디에 있을까요? 참나 안에요. 그래서 참나와 함께 살아가다 보니까 참나가 인과응보를 어떻게 펼쳐내는지, 뭘 선이라고 생각하는지, 참나가. 뭘 악이라고 생각하는지. 이것만 알아내면 돼요. 뭘 자명하다고 하는지, 뭘 찜찜하다고 하는지 연구해보시면, 6바라밀 가지고 연구하시면 칼 같습니다. 6바라밀 어기면 칼 같이 찜찜하다고 하고 6바라밀 지키면 자명하다 그래요. 이거 해 보세요. 엄청 쉬운 겁니다. 갑자기 여러분한테, 허공에다가 여러분을 내몰고 “우주의 진리 6가지를 찾아오시오” 하면 힘들죠? 뭐 죽으라는 얘기죠. 그런데 “6가지 진리가 있는데 이걸 확인해 보시고 진짜 이것만 지키면 자명한지 이 중에 하나라도 어기면 찜찜함이 진짜로 일어나는지, 이것만 지키면 좋은 과보가 일어나는지 확인하시오” 하면 쉬워져요. 6개만 실험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거 정말 공부할 만하지 않습니까?
(31:13) 인류가 이거는요 앞으로 유치원에서부터 배워야 돼요. 가정에서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래서 초, 중, 고 거치면서 대부분 1지 보살은 되시면 좋겠습니다. 최소, “정말 얘는 안되겠다” (하면) 1급. 그래서 “좀 하네” 그러면 한 1-2지. 이렇게 해서 초, 중, 고, 대학을 나온 그런 인재들을 가지고 이 우주의 문제를 풀어보라 그러면, 인생 문제를 풀어보라 그러면, 답이 달라요. 이 진리들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답이 달라요. 남하고 싸우는 문제도 초연하게 본다구요. 남하고 싸우다가도요. “일체가 무상하지.” 이 싸움 또한 무상할 거고, 이 싸움으로 인한 나의 분노 또한 무상할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과거를 툴툴 털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 너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아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받아들입니다. ‘일체개고’이니까. 제법무아, 나다 남이다 너무 여기서 따지지 말자, 하는 마음이 있다구요. 일체에 실체가 있는 게 아닌데 나다 남이다 따지지 말자. 하지만 또 나와 남을 존중해 줍니다. 그러면서 또 ‘열반적정’. 지금 이 순간 내면에 있는 그 탐진치가 없는 열반자리를 또 음미할 줄도 알아요. 자, 이 정도를 지금 갖추고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으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앞차를 받았어요, 고속도로에서. 앞차 운전자가 이런 사람이길 빌고 싶지 않습니까? 앞차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이거 또한 무상한 거고 인생에 ‘고’라는 것은 늘 오는 거고. 나다 남이다… 저 사람 또한 또 다른 나의 ‘나’다” 하면서 열반의 마음을 갖고 차에서 내리면 여러분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상대방이 이미 막 목 잡고… ‘오늘의 유머’ 이런데 보면 요즘은 뭐 머리를 크락션에다 받으라나요? 빵- 소리가 나면 공포감이 배가 된대요. 그 때 내리면 이미 상황의 주도권은 나한테 있다. 뭐 이런 유머인지, 진짜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 이해되시죠?
(33:13) 자, 에고의 세계로 이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면요 나와 남이 이미 달라요. 그 세계에서는요. 내 것을 한없이 챙기고 싶고, 영원히 만족을 추구하고 싶고, 나와 남은 다른 존재이고. 그럼 남을 짓밟고 라도 내가 행복하면 그건 해 볼만한 일인 거예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어요, 에고의 세계는. 나와 남의 공통분모가 없어요. 그런데 열반을 알고 나면 벌써 거긴 나와 남이 없는 세계이거든요. 그럼 남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미 달라집니다. 남도 또 다른 나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아공만 얻어도 알아요. 아니, 무아 사상을 얻었으면 나와 남을 그렇게 안 가를 것 아닙니까. 그럼 열반의 자리 들어가보면 거긴 나와 남이 없거든요. 탐진치가 없거든요. 남 또한 내면에 그런 신성한 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와 남 그렇게 가를 필요가 없다는 걸 아신 분들이 내 고집 부릴 수가 없죠. 벌써 이런 전제들이요, 수많은 것을 잡아준다니까요. 범죄를 어떻게 일으킵니까? 안에서 잡아버리는데. 성폭행 한 번… 그 자기의 순간적인 욕망 한 번 채우자고 사람을 죽이잖아요. 진짜 몇 천원 뺏자고 사람 죽이는 강도들 있죠? 살인마들. 계산하면 말이 안되는데 왜 그 순간에는 그게 가능했을까요? 내 것만 너무 커 보였다는 거죠. 즉, 일체가 무상하다는 것, 일체가 꼭 내 뜻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것,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라는 것, 내면에 있는 열반을 늘 돌아보라는 것. 요게 빠졌기 때문에 결국 그런데 까지 간 것 아닙니까? 탐진치에 빠지다보니까.
(34:54) 그래서, “아공 그거 알았다고 인생에 도움이 되나요?” 하실지 모르지만요, 저게, 첫째, 진리이고, 자명한. 그러니까 당연히 아셔야 되고, 저걸 아시기만 해도 여러분 삶이 분명히 변합니다. 사회가 변합니다. 범죄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거기에 법공까지 가미되고, 양심까지 가미되면요 이 세상은 낙원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제 우리죠. 여러분부터 이거 받아들이시겠어요? 내가 받아들여야 남한테 권하죠. 이런 관점에서 공부를 해 나가시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5분 쉬었다가 다시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