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38강
| 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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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일자 | 2018. 05. 26. 土. |
| 게시일자 | 2020. 09. 04. |
| 동영상 길이 | 56:04 |
| 강의 중 인용 도서 | 대승기신론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TdZuwlxaymU |
0:11
보살을요 불교로 한정짓지 마세요. 유교에 있는 보살들이, 어마어마한 보살들이 있어요. 인의예지의 달인들이에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육바라밀에 달인들이죠. 자 보시가 아까 뭐였죠? 보시가 제가 사랑이라 그랬는데 이게 이제 불교는 보시고 정의가 유교에서는 인의에서 의죠. 인이고 의고 여기는 지계바라밀. 예절이 유교에서 예절인데 불교에서 인욕입니다. 남을 참아주고 수용해 주는 거. 그리고 정진, 정진이 유교에서는 성실. 그리고 선정이 유교에서는 경, 지혜가 유교에서 인의예지에서 지혜죠. 이것만 해도 놀라운 거예요.
1:04 동아시아의 양심의 원리 인의예지신경과 인도에서 나온 보살도의 진여법의 핵심 항목이 똑같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이 정도면 웬만하면 진리란 얘기입니다. 믿고 하셔도 돼요. 여러분이 이걸 믿고 실험해 보시라구요. 바로 그대로 믿으시라는 게 아니라 실험을 해보시라는 거예요. 진짜 그런가. 진짜 내 양심이 인의예지를 좋아하는가 이걸 실험 해보셔야 돼요. 특히 1주 보살 이후에는 그 시험만 하셔야 돼요. 참나가 늘 흐르잖아요. 그 양반이 이제 뭐 하겠어요? 밤낮으로 1주 보살은 그것만 실험해야 돼요. 이게 참나의 뜻이 맞나? 이게 참나의 뜻인가? 나는 참나의 뜻을 어겼나 안 어겼나를요 귀신같이 알아내는 연습만 해야 돼요. 자 기독교로 얘기해 볼게요. 성령 안에 살게 됐어요. 그럼 그 다음에 성화의 과정은 뭘까요? 아버지의 뜻대로 내가 날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를 점검해야 됩니다. 그게 성화예요.
2:02 예수님도 분명히 얘기하세요. 예수님도 성령의 세례를 먼저 받으라고 한 다음에 자기 제자들한테 이렇게 얘기해요. “너희는 이제 하느님의 말씀, 진리 안에서 거룩해져라.” 이게 성화입니다. 즉 신성취발심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이면 성화는 하느님의 진정한 효자가 되는 과정이죠. 그냥 단순한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진짜 이해하는 효자. 그게 기독교에서는 거룩함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칭의는요 저는 이렇게 구분해요. 칭의, 의로운 자녀. 성화, 거룩한 자녀. 거룩한 자녀가 요게 더 레벨이 높습니다. 사실 의로운 자녀는 여러분들이 뭘 잘해서 된 건 아니거든요. 명상만 잘했는데 됐어요. 기도만 잘했는데 됐어요. 의로운 자녀는 될 수 있어요. 거룩한 자녀는 못 됩니다. 거룩한 자녀는 결국 육바라밀 해야 됩니다. 이웃사랑 해야 돼요. 별 수 없어요. 하느님 안에서 깨어서 이웃사랑 해야
3:02 됩니다. 선악을 따져서 실제로 악은 안 해야 됩니다. 이런 끝없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열매가 성화의 열매입니다. 칭의의 열매는 훨씬 쉬워요. 기도만 잘해도 터져요. “아버지 아버지” 하다가 터져요. 아버지 아버지 하다가 성령이 강림해서 “아, 내가 아버지 자녀였구나. 나는 의로운 존재였구나.” 이게 칭의의 열매입니다. 이거는 수월해요. 이게 어려워요. 한국교회는 이것(칭의)도 안 해요. 이건(성화) 더 안 해요. 이것(칭의)도 안 해요. 이것도 안 하고 모여서 그냥 돈으로 되는 건 돈으로 하자 하고 십일조 내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의 철칙입니다. 돈으로 되는 건 돈으로 하는 게 제일 좋죠. 이러다 가면 끝물이, 예전에 개신교가 왜 나왔나요? 가톨릭에서 천국을 돈 주고 팔았잖아요. 돈 주고 천국 분양권을 팔았어요. 거기서 박살난 겁니다. 루터가 일어났잖아요. 지금도 똑같은 개념이에요 비슷해요. 지금 벌써 돈 내면 천국에서도 좀 더 VIP
4:03 석에 앉힐 것 같잖아요. 당장 교회 가서 돈 많이 내시면 대접하잖아요. 학당에도 돈 많이 내시면 대접합니다. 많이 받으면 사람이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절에도 그래요 예전에 제가 철웅스님 강의 듣는데 아 절에 와서 돈을 많이 내고 가면 목탁 두드릴 때 땀난대요.“와 진짜 진짜 잘 돼야 되는데.” 돈을 많이 받았는데 변소에서 혼자 세다가 떨어뜨린 적도 있다고 그래요. 솔직하신 분이라 철웅스님도 얘기해요. 세다가 떨어지고. 막 식은땀 나고. 도를 아무리 닦아도 돈 쥐면 손 떨리거든요. 거룩해진다는 건요 이게 참나 안주로만 안 된다는 거. 돈 받아 잘 쓸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성화입니다.
5:00 이게 이제 해행이에요. 육바라밀 전문가 되기 전에는 그 힘이 안 생겨요. 그러니까 힘들면 참나로 그냥 도피하는 거지 능숙하게 처리하지는 못 해요. 제가 예전에 거친 예를 들었죠. 쓰던 컴퓨터가 고장 났어요. 자 1주 보살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이 컴퓨터도 본래 공할 뿐” 하고 참나로 들어갑니다. 컴퓨터 때문에 내 마음 흔들리는 거 허락이 않으면 1주 보살이에요. 1주 보살 정도 돼요. 1지 보살은요? 육바라밀 써서 고치든가 전문가 부르든가 능숙한 대처를 하는 게 육바라밀 전문가예요.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가 총출동한다는 건요 나를 어떤 상황에 갖다 놓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서 해결해버려요. 그런데 참나 전문가는 참나로만 들어갈 줄 알지 현상계를 당장 어떻게 할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도인들이 나와도요 1주 정도의 도인들만 많이 나오면 그분들은 현상계는 험한데 미소 짓고 있어요. 본인은 참나 상태거든요. 현상계가 힘듭니다. “니가 사는 세계가 힘들겠지. 내 법계는 안 힘들어.” 내 법계는 내 마음이니까
6:06 내 마음에서는 지금 참나가 이기고 있거든요. 이런 말밖에 못 해줘요. 근데 진짜 보살은 안 그래요. 우주의 모든 법계가 다 내 법계라고 생각하고 내 우주는 편해도 다른 사람 마음이 힘들면 저 사람 내 마음이랑 둘이 아니니까 저 사람 마음 편하게 해놓아야 돼요. 원래 하나니까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해지는 거예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이 아예 이렇게 있다고요. 1주 보살까지는 누구나 쉽게 옵니다만 1주에서 1지 가는 과정은 요 공부하시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걸 도와 드리려고 양심 노트를요 1주 돼서 하시라는 게 아니라 9급부터 무조건 쓰시라는 거예요. 제가 대선 나갔을 때도 공약했습니다. 양심 노트를 무상 보급해서 모든 학교에서 어려서부터 공부하게 돕고 싶다. 아이들 때부터 써 버릇하면요
7:01 나중에 이 친구가 명상했을 때 그게 선근이 돼서 그대로 보살이 돼버려요. 아주 좋은 거예요. 그 그림 보시면 어때요? 그림 한 장에 제가 다 그려놨습니다. 보시라고 안 쓰고 무욕이라고 써 놨죠. 그게 뭐냐면 우리 이 텅 빈 공성 안에 뭐가 들어 있나를 이해하기 쉽게 도와드리려고 이렇게 쓴 건데 이게 지금 써 놓은 게 대승기신론식으로 써 놓은 거예요. 자 보세요. 대승기신론에서 뭐라고 하는지 그림 한 번 보시고 일단 대승기신론의 설명을 듣고 그림 보시면 이해가 잘 될 겁니다. 설명 읽어 볼게요. 13. 해행발심(법신의 이해와 실천을 토대로 나오는 발심). ① ‘법성’(진여법의 본성)은. 이 말은 뭘까요? 진여법의 본성은 우리 안에 텅 빈 것 같은 이 참나 자리에, 진여 자리에 만법이 다 갖춰져 있는데 탐욕이 없음을 본체로 삼음을 이해하였기에. 진여법에 있는 본성은 애초에 탐욕이 없어. 참나가 뭔 탐욕을 부리
8:07 겠어요. 참나는 탐욕이 없어. 그러니 진여법을 이해하시라는 거예요. 지금 진여법에 대한 이해입니다. 진여법은 본래 탐욕이 없어. 왜? 거기는 에고가 없는 자리니까요. 나와 남의 구분이 없는 자리니까 본래 탐욕이 없으니 그것을 본체로 삼고 있다 하는 걸 이해했기 때문에. 1주 보살은 참나랑 함께 살아가는 참나 전문가죠. 참나 전문가가 참나랑 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닦다 보니까 참나 자리에서는요 어떤 진리가 있느냐? 탐욕이 없다 하는 진리가 있더라는 겁니다. 탐욕부리지 말라 하는 진리가 거기 참나 안에 숨어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진리를 이해해버려 가지고 법성에 순응하고. 순응한다는 것은 그 진리 그 내비게이션을 따르겠다고 순응해서 뭐를 해요? 뭐를 실천해요? 따라서 ‘보시바라밀’(단바라밀)을 닦으며. 보시바라밀을 닦아 버린다. 이 얘기는 뭐죠?
9:01 자 요거 하나면 다입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내 참나가 이기적인 욕심 부리지 말고 남을 나처럼 사랑하라라고 명령을 하니 법성의 뜻이 원래 그렇다는 걸 내가 이해해 가지고, 진여법의 본성을 이해해서 따름으로써 밖으로 뭐가 펼쳐진다고요? 밖으로 어떤 실천이 나와요? 보시바라밀이라는 게 나와요. 남의 이익도 내 이익처럼 생각하고 남을 도와주는 실천행이 나와 버려요. 그런데 바라밀이라고 한 게 뭐냐면 이게 닦음 없는 닦음입니다. 여러분은 보시바라밀을 에고가 했다고 생각하겠죠. 에고는 스스로 보시를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근원에 들어가 보면 에고는 거들고 참나가 한 거예요. 그러니까 에고는 열심히 보시를 한 거 같은데 들어가 보면 참나가 시켜서, 참나가 준 정보로, 참나가 준 힘으로 한 거거든요. 따라서 이거는 뭡니까? 참나를 드러나게 에고가 도와준 것뿐이에요. 따라서 이게 바라밀이 돼요. 에고가 보시를 한 거 같지만, 닦은 것 같지만
10:02 사실은 닦은 게 없구요. 우주에 원래 충만하던 사랑이 에고가 거들어서 드러난 것뿐이에요. 그래서 이걸 닦음 없는 닦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밖에 태양이 떠있는데 커튼 쳐져 있죠. 에고가 할 일은요 커튼을 걷는 일은 에고가 할 수 있어요. 태양 빛은 에고가 못 만들어내요. 태양의 빛과 열기는 에고가 못 만들어내요. 그런데 에고가 커튼을 걷어 가지고 이 방에 빛이 들어오게 했어요. 그럼 에고가 이 방을 환하게 한 거 같잖아요. “내가 고생해서 이 방을 환하게 했다.” 이 말도 맞아요. 이건 분명히 닦은 거죠. 내가 닦아서 노력해서 이 방을 환하게 했다. 실상을 들여다보니까 에고가 태양을 만든 적은 없거든요. 에고가 한 일은 뭐죠? 거든 거예요. 태양이 이 방 안에 들어오는 걸 도와준 것뿐이에요. 그래서 ‘닦음 없는 닦음’입니다. 여러분 육바라밀 닦는다 할 때 진짜 여러분이 닦아버리면 안 돼요. 여러분이 쌩으로 닦으시면요 힘들어 죽겠는데 보시하고, 체면 때문에 뭣 때문에 보시하고, 말은 해 놨기
11:03 때문에 주긴 줘야 돼서 보시하고. 정의도 억지로 지키고. 남이 안 봤으면 안 했을 텐데. 법만 없었으면 내가 안 했을 텐데 법이 있어서 하고 있어요. 그렇죠.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진짜로 에고가 닦고 있는 거예요. 에고가 쌩으로 고생해서 한 거예요.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그런데 참나의 빛이 드러났다, 참나의 사랑이 드러났다고 말하기엔 부족하죠. 아주 아닌 건 아니에요. 왜냐? 에고도 참나의 작용이라 에고가 쌩으로 해도 미세하게라도 그 안에 분명히 양심도 있고 참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바라밀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거예요. 바라밀은 그게 주가 되어야 돼요. 그거만 이해하시면 돼요. 이렇게 이해하시는 게 좋아요. 참나 자리는 사랑 덩어리고 정의 덩어리고 인욕 덩어리고 정진 덩어리고 선정 덩어리고 지혜 덩어리예요. 참나 자리에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요. 에고는요 부족해요.
12:00 에고는 무지와 아집으로 덮여 있어요. 에고의 무지와 아집의 그 어둠을 뚫고 참나의 빛과 열이 밖으로 드러나야 돼요. 밖으로 드러내게 도와주려면 여러분 에고를 닦아야 돼요. 에고를 깨어서 닦아야 돼요. 그러니까 참나 안주만으로는 안 돼요. 참나 안주한 뒤에 열심히 에고의 업장을 털어주면 업장 털린다고 해서 보시가 이루어지는 건 아닌데 참나가 원래 보시 덩어리라 내가 내 업만, 이기심만 조금 털면 참나가 나를 통해 엄청난 사랑을 현상계에서 펼쳐 버려요. 이게 닦음 없는 닦음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라는 건 어떤 경지죠? 부처도 자기가 잘난 게 아녜요. 에고를 열심히 닦은 건 맞는데 지혜와 자비는 원래 온전했던 거예요. 그게 온전했던 게 밖으로 드러나게 한 것뿐이에요. 드러나는 걸 우리는 열심히 지금 막고 있는 겁니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나를 통해 사랑과 지혜가 드러날까 봐 지금 막고 계세요.
13:00 계속 망상을 막 떠올리고 곱씹고 틈나면 인터넷하고 빨리 다른 걸 뭘 봐줘야 돼요. 잠시 방심하면 혹시 나를 통해 사랑이 드러날 수도 있잖아요. 이게 마귀의 종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법입니다. 혹시나 하느님이 나를 통해 좋은 일을 할까 봐 계속 막고 있어요. 뭐 갑자기 나라 생각할까봐 나의 고민 나의 불만을 계속 떠올리면서 생각이 커지는 것도 막고 마음이 커지는 것도 막고 있는 쉽게 말하면 그런 셈이에요. 그래서 기독교적으로 볼 때 “회개하라” 이게 다른 게 아니라, “마귀의 종으로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욕심의 노예가 돼서 살 거야? 양심만 따르면 돼. 그러니까 돌아서기만 하면 돼” 이거예요. 돌아서기만 하면 돼. 우리가 태양에 등 돌리고 있다는 거예요. “돌아서기만 하면 돼. 원래 온전하니까. 마귀의 종노릇하던 마음 또한 하느님 안에 원래 있던 거니까, 하느님을 향해 주기만 하면 그 빛과 열이 너를 그냥 비춰줄 거야.” 불교에서 흔히 하는 말로 “태양은 떴는데 중생들이 눈감고
14:03 있다” 그래요. “눈 떠!” 이거예요. “눈만 떠. 빛을 너더러 만들라는 게 아니야 눈만 떠. 빚만 들어오게 해.”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느낌을 아시면 이게 육바라밀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높아질 겁니다. 안 그러면요 당장 지금 절에 가면 고승 분들도 이런 말한다니까 “육바라밀은 하근기나 하는 거고 상근이기 화두 한다” 이래요. 그분들의 육바라밀 이해라는 건요 아주 천박한 이해거든요. 에고가 억지로 닦는 정도 수준의 육바라밀 이해만 있어요. 자기들은 상근기라 앉아서 화두만 하면 되고 절에 찾아온 보살들은 하근기라 보시, 자꾸 뭘 쏴야 되고, 지계, 룰을 지켜야 되고. 자기들은 룰 안 지켜요. 우리는 화두 하는 사람들이라 파계를 해도 되고 너희들은 계율 지키고, 보시 지계. 인욕, 화나도 내가 모욕을 줘도 넌 참아야 돼. 난 참건 말건 내 마음이고. 이런 식의 잘못된 논리로 남들을 착취하는 데 육바라밀을 쓰고 있습니다.
15:05 “보시했어?” 돈 냈냐는 거죠. 돈 내야죠. “너희는 보시나 해. 나는 견성해서 부처될 테니까.” 제가 볼 때는 이 마인드가 확고하게 있어요. 여기서 자유로운 분이 있다면 그분 이미 견성한 양반이에요. 이런 상에 안 잡히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견성한 양반이에요. 근데 보통 이런 상에 꽉 잡혀 있어요. 절에 가서 웃기지 않으세요. 스님보다 보살이 더 높은 지위예요. 근데 절에 오신 아주머니들한테 보살이라고 하고 자기들은 스님을 차지하고. 절에 있는 스님들이 왜 그런 겸손을 부리시는지 모르겠어요. 자기를 왜 이렇게 비하하시는지. “저는 일개 승입니다. 보살님 오셨습니까” 원래 이렇게 돼야 된다구요. 보살이 더 높아요. 승은 그냥 공부하면 승이죠. 원래는 어떤지 아세요? 원래는요 보살이라야 승이에요.
16:00 요즘 이게 뭔가 분리됐어요. 보살도 개념을 잃었고 다 개념을 잃어버렸어요. 원래 대승에서는 1지 보살부터 승이라고 합니다. 불법승에서 1지부터 승이고요 초기불교에서는 수다원과부터 승이에요. 열반 체득해야 승이에요. 지금은 그냥 절에 출가하면 승이죠. 그것도 안 맞는 말입니다. 스님들하고 싸우자고 한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불교를 사랑하는지 아시죠. 호법부 이런 데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예전에 호법부에서 승려 끌고 가는 거 보니 무섭더라고요. 전 어차피 불자가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그거 종교가 못 할 짓이죠. 지난번 MBC PD 수첩에서 룸싸롱인가요? 주인 분의 그 말씀 참 가슴에 와 닿았어요. 부인 분이 해인사에다가 시주를 하는데
17:04 부인 분한테 “왜 절에다 돈을 내느냐? 그 돈이 나한테 다시 오는데.” 그 사모님이 스님한테 시주를 하면, 스님은 다시 이쪽 사장님한테 그 돈을 다시 갖고 와서 뿌린다는 거죠. 기가 막히죠. 그분들 진짜 보살이거나 진짜 원효스님 이상의 큰 보살들이시거나. 거기 가고 싶으면 가시는 거죠. 그런데 그분들 마음을 사기를 쳐야 되잖아요. 그걸 신자들한테 속여야 되고. 얼마나 안 좋은 상태일까요? 서로 떳떳이 하시든가? 왜 육바라밀에 근거해서 나는 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 번 설명을 해보시든가? 나는 그런 자리가 좀 마련돼야 된다고 봐요. 서로 다 보살되자는 거니까. 아니 남을 족치겠다는 게 아니라 이런 경험을 통해 성숙하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모두 이로워지는
18:01 방향으로 가는데 일조하겠다고 해서 사람들한테 존경과 그런 어떤 지원을 받은 사람이 그걸 납득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 자체가 심각한 악업이다. 요 정도의 인식은요 신자들까지도 다 공유해야 됩니다. 신자들이 모르니까 또 막 그렇게 하는 거예요. “보살님 보살님” 하면서 싹 벗겨 먹는 거죠. 근데 학당에 오면 보살되기 어렵다는 거 아시잖아요. 절에는 가면 바로 보살이었는데 학당 오면 보살 되시려면 벌써 몇 겁을 닦아야 돼요. 그렇다고 절을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가세요. 보살되는 법이 지금 정수가 나옵니다. 대승기신론 이 구절이 정말 설명 잘해 주고 있는 거예요. 이런 경이 없어요. 육바라밀 닦는 데 최고로 설명 잘해 놓는 경이고 요 내용이 그대로 유교 조선 성리학하고 그대로 통합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이 부분이 제가 늘 모든 책에 인용하는 구절이고. 왜 보시를 해야 돼요? 스님이 보시하라고 했잖아요. 이런 게 아니에요.
19:07 절에 가면 하라고 해서요. 아닙니다. 내 본성이 그렇게 생겨 먹어서 안 할 수 없어서 부득이 하는 겁니다. 부득이 하는 게 해행발심이에요. 부득이 부득이. 아니 내 본성이 욕심 부리지 말라고 하니까, 현상계 절대계에서 욕심내지 마라고 하니까 현상계에도 욕심을 안 부린 것뿐이에요. 그랬더니 보시바라밀 이루어졌어요. 그럼 내가 한 건가요? 참나가 한 거죠. ② ‘법성’은 오염되지 않아 5욕의 허물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이해하였기에. 법성이 절대 더러워지지 않아요. 오염이 되지 않고 청정해요. 법성이 진여가 오욕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럼 진여에는 어떤 본성이 있다는 거죠? 청정이라는 본성이 있어요. 그러면 내 삶도 뭐가 지배해야 되나요? 청정이요. 법성에 순응하고 따라서 ‘지계바라밀’(시바라밀)을 닦으며. 그러다보니 지계바라밀을 지키게 된다는 거죠. 이게요 하나의 원상들이에요. 우리 본성이 어떤 원상이 있냐면요. 이기심 부리지 마라는 원상이 있어요. 그걸 밖에 표현해 주면 보시바라밀입니다. 사랑이고.
20:04 내게 어떤 원상이 있냐면? 우리 본성 안에요 원형의 어떤 형상이 있냐면? 텅 빈 것 같은데 그 안에 이 정보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고요. 그걸 밖으로 표현한다면 “정의로워라”가 새겨져 있어요. 더럽게 하지 마라. 양심을 어기지 마라가 있다구요. 그 다음에 ③ ‘법성’에 고뇌가 없어서 성냄과 번뇌를 벗어나 있음을 이해하였기에. 이기적인 성냄과 번뇌에서 벗어나 있는 그 자리, 성내지 않는, 이게 공정한 화를 내지 마라는 건 아닙니다. 참나 안에는 이기적인 분노가 없다는 걸 알아요. 따라서 법성에 순응하고 따라서 ‘인욕바라밀’(찬제바라밀)을 닦는다. 즉 이 얘기는 다른 말로 늘 조화롭다는 걸 알아요. 우리 본성에는 조화로움의 형상이 있다는 걸 알아서 밖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 있건 현실을 수용하고 그 현실과 조화를 이뤄버리면 인욕바라밀입니다. 에고들은 내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는 데 시간을 꽤 보내죠. 아닐 거야, 그러면 안 돼, 왜 내가 이런 처지에 있어 하다가 수긍할 때 뭔가 또 긍정의 싹이 자라잖아요.
21:01 그게 인욕바라밀입니다. 나한테는 너무 치욕적인데 인욕을 수용을 했을 때 하느님 뜻이, 불성의 뜻이 또 구현되는 게 있어요. 고거를 잘 이해하고 가는 거예요. 하늘은 이런 상황에서 나한테 조화롭게 수용하라고 얘기하신다 하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이게 다 하느님의 말씀이에요. 하느님 형상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형상은 육바라밀로 생겼어요. 하느님을 제일 정확히 본 양반은요 “하느님 어떻게 생겼더냐?” 할 때 “육바라밀로 생겼다”고 얘기해야 돼요. “사랑과 정의와 겸손과 성실과 깨어있음과 지혜로 생겼더라” 이 말이 나와야 돼요. 하느님 형상대로 산다는 건 뭐냐? 저걸 실천하는 거. 진리의 형상이 어떻게 생겼다구요? 무욕이요. 그리고 청정이요. 조화요. 그 다음에 성실이요. ④ ‘법성’에 몸과 마음의 형상이 없어서 나태함을 벗어나 있음을 이해하였기에, 법성에 순응하고 따라서 ‘정진바라밀’(비리야바라밀)을 닦으며. 그래서 어떤 나태함도 참나 자리에는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밖으로 정진바라밀을 행해야 되며. ⑤ ‘법성’이 항상 안정되어 있어서 어지럽지 않음을 본체로 삼음을 이해하였기에, 법성에 순응하고 따라서 ‘선정바라밀’(선나바라밀)을 닦으며. 참나 자리는요 본래 전혀 어지러움이 있을 수 없다는 거,
22:03 산란한 요동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현상계에서 선정바라밀.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선정바라밀을 닦으며, ⑥ ‘법성’이 광명함을 본체로 삼아 어두움을 벗어나 있음을 이해하였기에, 법성에 순응하고 따라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참나 자리엔 어떤 무명, 어두움도 없어요. 무지도 없어요. 참나 자리에는 어떤 무지도 없다는 걸 알고 밖으로 그걸 펼치는 게 지혜바라밀, 반야바라밀입니다. 자 육바라밀을 왜 해야 돼요? 본성이 그렇게 생겨먹어서요. 유교식으로 인의예지를 왜 해야 돼요?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생겨먹어서요. 오행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걸 어떻게 해요. 오행의 프로그램대로 우주가 다 만들어져 있는데 인간도 오행의 프로그램대로 인의예지 하라고 만들어져 있어서 하는 거예요. 서양철학에서요 최고의 철학자의 경지가 뭔지 아세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살려 쓰는 거예요. 본성 그대로 사는 게 철학의 목표입니다. 그 본성이 서양에서는 로고스예요. 로고스 그대로 살아가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고 인간 최고의 목표입니다.
23:02 로고스 그대로 살아가요. 우주 만물이 다 자기 로고스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는데 인간만 자기 본성대로 못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근데 인간이 볼 때는요 ‘나는 내 본성대로 사는 것 같은데요’ 하는데 그것은 동물적 에고의 본성을 말하고 참나의 본성은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은 두 차원의 본성이 있다는 거예요. 고등침팬지로서의 본성이 있고요 하느님으로서의 본성이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사실 선택이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 오셨다는 건 그래도 고등침팬지로선 안 살아보겠다고 오신 거잖아요. 털 없는 원숭이로서 안 살겠다. 좀 더 높은 신의 자녀로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이거는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즉 자기가 고를 수 있어요. 내 삶의 프로그램을 내가 고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공부를 해야 되고 도를 닦아야 되는 이유가요 인간은 고를 수 있어서 그래요. 자 동물들은요 스마트폰으로 치면요 어플 딱 정해진 어플만 깔려서 나온 스마트폰이고 인간은요 안 깔려서 나와요. 그러니까 원래 인간으로 산다는 게 지랄 같아요.
24:05 왜냐? 좀 깔아서 나오면 편할 텐데 깔아야 돼요. 옆 사람 뭐 까는지도 봐야 되고 막 어디 가서 고수한테 찾아가서 배우기도 해야 되고. 인간은 한 30년을 깔아야 좀 뭐가 깔려요. 다른 동물들은요 깔려서 나오니까 어려서 깔려서 나온 거 적응만 하면 바로 자기 할 일 다 해요. 날아다니는 놈은 날아다니고, 수영하는 너무 수영하고. 인간애들은요 그렇게 뭘 못 해요. 한참을 아무것도 못 움직이고 있잖아요. 동물들은 그러고 있으면 죽어요. 바로 막 나면요 빨리 젖을 향해 뛰어가고 다 해야 돼요. 자기 할 거 다 해야 돼요. 인간도 최소한은 하는데 왜 이렇게 더디게 해놨냐는 거죠. 한참을 깔아야 돼요. 한참을 배워야 돼요. 그리고 배워서도요 인간은 선택할 수 있어요. 금수의 길로 계속 갈 건지? 고등 금수의 길을 갈 건지? 군자와 보살의 길을 갈 건지? 그걸 결정해야 돼요.
25:02 이거 결정하는 걸 돕는 문명이 들어서야지 인류가 다 같이 살고요. 이게 아니면요 금수로서의 어떤 삶만 계속 구현됩니다. 지금 당장 서점 가서 세계 역사책 사다가 읽어보시면 금수의 역사가 나와요. 쭉. 강자가 끝없이 약자를 착취해가는 약육강식의 세계사가 지금 대부분입니다. 근데 그 중에 간간히 그래도 인간이라고 간간히 사랑이 구현되던 역사들이 있어요. 성인들이 등장해요. 이게 인간으로서 되게 이채로운 거고요. 그게 사실은 또 다른 인간의 본성을 구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그게 우리가 추구하는 이화세계라는 거예요. 홍익인간, 다들 보살이 돼서 남까지도 이롭게 할 줄 아는, 즉 이 육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살아가는 세계, 그 공동체가 진리가 다 구현된 이화세계다 하는 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양심적인 군자들이 사는 세계, 이화세계 그거 구현해 보자는
26:04 건데 이거 모르면 끝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요. 요거 구동만 하면 돼요. 그런데 금수적인 본성은 에고의 본성, 탐진치의 본성은 여러분이 노력 안 해도 잘 구동이 되는데 요거는 노력을 해야 구동이 돼요. 그 노력이 뭐냐? 최소한 선정과 반야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한 소식을 해야 이게 구동이 돼요. 그래서 1주 보살이 중한 건데 보통 1주까지 키워 놓으면 날라요. 보살학교에서 1주까지 키워놓으면 “아무래도 저는 도통한 것 같습니다” 하고 가버린다구요. 즉 사람들이 육바라밀까지는 잘 안 배워요. 빡세거든요. 저거는 해야 되거든요. 연구하고 실천해야 돼요. 요 과정을 밟는 데가 잘 없습니다. 근데 간단하게요 4대 성인들의 가르침에는 이게 필수로 있습니다. 열반에 들어도 팔정도 잘해야 돼요. 그쵸. 하느님 자녀가 돼도 거룩해져야 돼요.
27:04 인의예지 전문가가 되어야 돼요. 유교 대승불교 기독교 어딜 가도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해야 돼요. 이걸 강조합니다. 뭔 얘기냐 하면 인류가 성인이다, 거룩한 존재다라고 말하는 분들은 이 얘기를 하고요. 우리가 흔히 아는, 도인이네 도통했네 하는 그분도 성자라고 하죠. 그런 분들은요 “참나로 돌아가라”는 얘기 밖에 안 합니다. 요 두개는 분명히 구분하셔야 돼요. 제가 예전에 공부하다가 저도요 그 갈림길에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인도 도인들 얘기도 매력적이에요. 또 이런 4대 성인들 얘기도 매력적인데 제 두 얘기가 충돌이 나는 지점이 있어요. “이 중에 난 어떤 걸 택할 거냐?” 근데 함께 지내던 소승 도를 닦던 도반은 인도 게 맞다는 거예요. 다 에고라는 거예요. 에고 놀음이라는 거예요. 에고인가? 한데 제 안에서, 도저히 제 안의 양심을 제가 부정 못 하겠더라고요. 제 양심이 제 에고라고 저는 인정을 못 하겠더라고요. 제 안에 있는 양심의
28:07 소리가. 그래서 저는 이쪽을 택했고 이제 갈라졌습니다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고 있지만 제가 선택한 길에서 십년 넘게, 지금 학당 연 지가 14, 15년 되니까 그 정도 시간을 또 제가 고민하면서 걸어본 길이에요. 가면 갈수록 더 자명해지니까 지금 권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혹시 찜찜해지면 제가 사과 유튜브 방송 올릴게요. “죄송합니다. 알고 보니까 이게 육바라밀이 구라였던 것 같습니다. 안 해도 될 거 같습니다.” 이거 제가 꼭 올려드릴게요. 현재까지 제가 파면 팔수록 더 자명해져서 어쩔 수 없이 저도 부득이하게 이렇게 살고 있어요. 저도 막 베풀기 싫은데 베풀고 있고. 베풀기 싫은데 억지로 베풀면 그건 병 나고요. 에고가 베풀기 싫은 건 맞아요. 그럴 때 “몰라”를 통해서 마음을 확장해서 베푸는 겁니다. 그러면 바라밀이 되거든요. 여러분 “나는 글렀다” 이러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베풀기 싫다는 마음만
29:07 “몰라” 하시면 베푸는 힘이 또 나와요. 그거 가지고 하시면 돼요. 그래서 육바라밀 공부는 이렇게 하시면 된다. 그러니까 이 그림 이해되시죠. 안에, 진여 법신 안에 무욕이 들어있고요. 청정이 조화가 성실이 고요가 자명이 들어있어요. 그걸 밖으로 표현만 하시면 바라밀이 됩니다. 요 정도까지 가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1지 보살까지 못 가도 1주 보살만 돼도 지금 본인이 얻은 참나에 대한 안주의 힘으로 이거 가능하다니까요. 참나 그 단계가 있어요. 단계별로 1주 보살 안에서도 1주 약, 1주 중, 1주 강이 또 나눠져요. 그 안에서 이 힘이 달라집니다. 육바라밀의 실천 능력, 이해 능력이 달라요. 그러다가 그 공부가 극치에 이르면 1지 보살로 가는 겁니다. 안타깝죠. 이제 겨우 1지예요. 화엄경 첫 시작 첫 장이 돼요.
30:03 그래서 제 “대승 보살의 길을 밝히다”의 강의가 끝나면 화엄경이 이어집니다. 화엄경 강의는 이미 있으니까 제 이 강의 들으시고 또 화엄경 강의도 들으시면 이게 다 이어져 있어요. 저 이번에 화엄경 책 내요. 책 광고가 아니고. 내니까 화엄경 거기가 1지부터 시작이에요. 근데 지금 제 강의는 1지까지 가는 과정을 지금 강의하고 있는 거예요. 활용하실 때 그렇게 활용하시라고요. 그리고 제가 이번에 수심결 강의를 다시 잘 개정해서 또 낼 거예요. 지금 책이 다 절판되어있는데 다시 낼 거예요. 수심결하고 화엄경 책은요 그대로 이어집니다. 수심결이 1주 보살 되는 데까지 집중하고 있는 책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 책을 좀 보강해서 1주 된 뒤에 1지 되는 법까지도 넣어놨어요. 그 책(수심결) 보시고 화엄경 보시면 또 그게 이어지게 제가 해놨어요. 저는 몇 중으로 작업을 해놔요. 어디든 걸려라 하고 아무데나 걸려라 해서.
31:01 어디라도 꼭 걸려서 마음이 좀 나셔서 거기서 보살도를 닦으시기 바래요. 그런데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1주, 1지 이런 말에 현혹되지 마세요. 제가 꼭 이 말씀드립니다. 지금이 중요하거든요, 지금 나는 1주도 아니고 1지도 아니니까 보살도 못 하네 하실까봐.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본성에는요 1주건 1지건 모든 범부 중생들은 다 안에 육바라밀이 새겨져 있어요. 지금 여러분이 “몰라” 하고 참나 접속만 하시면 이 순간 육바라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양반들은 안정돼 있다는 걸 말하는 거지 안정 안 되어있으면 어때요. 그 순간순간 끌어다 쓰면 그만이지. 순간순간 참나 접속해 가지고 안에서 육바라밀 분석만 하시면 몰라랑, 꺼내 쓰실 수 있어요 바로 바로. 하루 종일 눈 풀려 있다가도, 여러분 괜찮잖아요. 눈 풀려있다고 누가 뭐라고 하나요? 하루 종일 별일 없을 때 눈 풀려 있다가 중요한 결정할 때만 딱 눈이 빛나면 된다고요. 그때 육바라밀에 맞게 하면 됩니다. 하루 종일 눈 풀려 있다가 “난 짬뽕 나는 치킨” 이럴 때만 눈이 빛나시잖아요.
32:05 그러면 안 되고 하루 종일 눈 풀려있다가도 가족이나 뭔가 내가 하는 일에 중요한 육바라밀의 결정할 때만 딱 깨어서 해버려도요 여러분 인생이 카르마가 바뀌어요. 어차피 과보가 약한 거는 뭘 해도 돼요. 여러분이 가서 짬뽕 시켰다고 짜장 시켰다고 해서 과보가 뭐 엄청나게 달라집니까? 분명히 거기도 다 인과가 있지만, 여러분 삶의 순간순간에 인과가 다 있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의 인과들이 대부분이에요. 근데 중요한 것은 남하고 트러블이 나게 두고두고 내 마음을 괴롭힐 그런 자리에 가서는 딱 “몰라” 하고 정색하고 육바라밀대로 해버리고 육바라밀에 내가 만족하게 했으면 결과 기대하지 말고 우주가 좋아할 일 했으니까 만족하고 딱 털어버리시라고요. 하느님한테 돌려버리고 부처님한테 돌려버리고 다시 “몰라” 하고 계시라고요. “또 기회만 오면 양심해야지” 하고 살아가시면 그 정도면 9급입니다.
33:03 사실 급수는 9급인데 제가 볼 때는 부처님처럼 살고 계신 분이에요. 저는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시길 바랍니다. 찰나 보살, 찰나 부처, 찰나에 부처 보살로서 화현할 수 있는 분들은 여러분 평상시에는 중생으로 살다가 잠깐씩 예수님이 빙의되고 부처님이 빙의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중요한 순간만. 그쵸. 여자 친구가 곤혹스러운 질문한다. 그 순간만이라도 예수님 부처님이 빙의되어서 곤경을 모면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즐길 때 또 즐기고 사시다가도 난처한 지경, 관계가 잘못될 수도 있고 여러 사람한테 영향 줄 수 있는 자리에서는 필히 “몰라” 하고 양심분석 하시면요 무너질 가정도 살릴 수 있고요 별짓도 가능해요. 그 찰나의 힘 끌어다 쓰는 그걸 강조하면서 그 정도 되신 분들한테 저희가 신사 자격증을 드려요. 구원받으셨습니다. 찰나찰나 구원이 가능하신 분. 찰나라도 부처님하고 접속 가능하면 된 거죠.
34:07 여러분 하느님하고요 연결이 됐어요. 접속이 됐어요. 근데 하루에 통화를 1분밖에 못 해요. 그래도 된 거죠. 하느님한테 내가 1분간 내가 하소연할 수 있고 하느님의 지혜를 빌릴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요. 나머지 23시간 넘게 하느님하고 떨어져 있더라도 1분 통화만 할 수 있으면 우리 삶은 바뀌어요. 그런 느낌으로 좀 귀하게 여겨 주시기 바래요. 몰라 해서 참나 만나는 거 엄청 귀하게 여기고, 깨어서 육바라밀 분석하신다는 게 엄청 귀한 겁니다. 그게 쌓이면 엄청난 선근이 생겨요. 급수는 낮아도요 선근이 두터워서 나중에 터지면 진짜 무섭게 터지고 그런 분들은요 인도 성자들이랑 같이 1주에 들어가도요 여러분은 더 힘이 넘칩니다. 1지까지 금방 가요. 다른 분들은 1주까지 갈 힘만 닦은 분들은요, 선근
35:02 만 닦은 분들은 1주 가면 자기가 닦은 선근 다 써버려서 그 뒤에 보살도 엄청 해야 나중에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실제로요 소승 성자들도 남 도와주는 데 열심인 거예요. 사실은 본인도 또 다른 카르마를 닦고 계세요. 본인들은 이번 생이 끝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요 그분들 또 다음 밑천 마련하고 있는 거예요. 다음 여행에 밑천 마련. 그런데 그 엄청난 밑천을 마련하는 비법은 육바라밀을 계속 품고 사시는 게 최고입니다. 여기까지 말씀 드리고. 자 그러니까 세 가지 발심의 구분 이제 이해되시죠. 대승기신론에 이렇게 나왔었죠. *3가지 발심의 구분(대승기신론) ① 신성취발심: 법신(구공)의 믿음(신인, 1급) ② 해행발심: 법신(구공)의 이해와 실천(순인) ③ 증발심: 법신(구공)의 증득(법인, 1단): 구공의 진리에 노력 없이 안주해야 증발심이며, 그 전의 발심에서는 구공의 진리를 옳다고 여겨서 따르는 단계이다. 먼저 신성취발심, 요거는 이제 1급에서 얻는 발심이었죠. 법신에 대한 믿음. 아니 1급인데 이제 믿음을 성취했다고? 1급이면 분명히 아까도 얘기했지만 참나에 있어서는 공적영지는 확실히 증득한 사람이거든요. 공적영지에서는 신해행증득의 단계라고요. 그런데 왜 이 사람이 1급이, 1주 보살이 믿음의 단계냐는 거죠.
36:07 육바라밀에 있어서는 1급이라는 거예요. 그 믿음의 단계라는 거죠. 지금 대승기신론에서 보는 이런 관점들, 대승불교에서 보는 이런 관점들이 다 보살도는요 육바라밀에 집중하고 있어요. 육바라밀이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신성취발심은 육바라밀의 진리를 갖추고 있는 참나 즉 법신에 대한 믿음의 단계구요. 1급. 자 공부의 단계는 이 3단계로 진보하죠. 제 강의 많이 들으셨죠. 신인, 믿음의 인가. 요거는 우리말로 풀게요. 체험적 이해를 하고 있는 단계. 체험은 분명히 있어요. 근데 이해가 체험을 앞서요. 참나에 대한 체험은 약하고 참나에 대한 정보는 많아요. 이게 믿음의 단계입니다. 지금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꽤 믿고 있어요. 믿음으로 가고 있지 체험을 다 해본 건 아니라는 거예요. 참나와의 만남이 짧아요. 신인. 그 다음에
37:05 순인. 참나와의 만남 이제 길어요. 이 단계도 아직 체험의 단계인데 이 단계에 오면요 여전히 이해가 더 크긴 하지만 체험이 꽤 성장했어요. 그래서 꽤 실천을 하고 있어요. 이해한 거를 다는 실천 못 하지만 이해한 걸요 꽤 실천하면서 닦고 있어요. 이게 방금 말한 해행발심의 단계가 순인의 단계입니다. 마지막은요. 법인은 뭐죠? 진리를요 그대로 인가해서 그대로 이해하고 그대로 그냥 실천해요. 편하게 이해하고 실천해요. 이게 법인의 단계예요. 요거는 구공을 증득한 1단, 1지 보살의 단계입니다. 자 이 말씀 중요합니다. 구공의 진리에 노력이 없이 안주해야 증발심이다. 애쓰지 않아도 내 안에서 육바라밀이 활성화되어 있어야
38:01 1지 보살이에요. 애쓰지 않아도 여러분 안에서요 깨어있음과 알아차림이 활성화돼 있어야 1주 보살이에요. 애쓰지 않아도 육바라밀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1지 보살이에요. 그 전의 발심에서는 구공의 진리를 옳다고 여겨서 따른 단계다. 자 보세요. 여기까지는 체험적 이해의 단계인데 이 단계(법인)는 우리말로 하면 자명한 이해입니다. 너무 자명해서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따르고 있는 거예요. 이 단계(신인, 순인)는요? 체험보다 이해가 앞섰다는 건요 이게 옳으니까 하고 있는 거예요. 옳으니까 하고 있는 단계. 옳아서 해요. 그러니까 이게 맞는 거 같아서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근데 맞아서 하긴 하는데 나랑 갭이 있다구요. 바로 되지는 않아요. 그래도 안 할 수 없어서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맞는 거 같아서. 그런데 1단이 되면 맞는다는 판단과 한다는 실천이 이제 함께 가는 거죠. 그냥 하고 있어요. 그냥 애쓰지 않아도 그게 맞다는 거 알겠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39:01 하고 있어요.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설명 드릴게요. *해행발심과 증발심의 구분. 해행발심은 해오의 단계고 증발심은 증오의 단계인데, 요거는 이제 참나에 대한 해오, 증오가 아니라 육바라밀에 대한 해오 증오입니다. 그래서 ① ‘해행발심’(해오의 단계)의 단계는 법성이 육바라밀의 형상을 하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분명히 육바라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요 체험적으로 알아요. 육바라밀을 어기면 찜찜하고요 하면 자명한 줄은 알아요.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단 이 실천은 법성의 구현이니 닦아도 닦음이 없다. 억지로 닦는 게 아니고 참나를 드러내는 닦음을 꾸준히 해요. 자 그런데 왜 아직 해행발심이냐? 자연스럽게 애쓰지 않아도 나오는 건 아니고 옳다는 걸 알아버려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근데 두 번째 ② ‘증발심’(증오의 단계)의 단계는 양심의 명령을 자명하게 이해해 버렸기 때문에 육바라밀에 안주하여 양심의 명령에 따라 자연스럽게 육바라밀을 추구하게 됩니다.
40:04 이제 증발심, 1지 보살이 되면 육바라밀 안 하면요 찜찜해서 못 견뎌서 그냥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해행발심, 1주 보살의 단계는 그게 너무 옳은 것 같고 또 찜찜해서 해요. 찜찜해서 하는 건 비슷한데 양상이 좀 다릅니다. 지금 다 실천이 안 되는데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아서 가고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그냥 무의식중에도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과의 차이. 무의식중에도 육바라밀이 옳은 줄 알아서 가고 있는 사람과 이성적 판단을 해야 가는 사람의 차이. 옳은 줄은 그래도 알아요. 옳은 줄 판단할 힘을 생겼어요. 언제 생겼냐? 선정과 지혜를 얻었을 때 생겼어요. 이제 옳고 그름은 판단할 줄 알게 됐단 말이에요. 옳은 줄 아니까 가는데 육바라밀이 영 낯설어요. 영 낯선데 옳은 줄은 알아서 가고 있는 사람과 무의식중에 가고 있는 사람. 이제 가는데 너무 습관화되어서 편해요. 육바라밀이 편해서 그냥 무심중에 육바라밀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41:06 그래서 안 가면 찜찜함의 정도가 증발심이 훨씬 세겠죠. 안 하고 있으면 너무 찜찜해서 그냥 해야 돼요. 그런데 해행발심은 안에서 찜찜하다는 것도 판단을 또 한참 해야 “안 할 수 없다 하자.” 이렇게 되는 거고. 찜찜이 자동으로 빨리 이렇게 실천으로 이어지는 게 1지 보살 경지구요. 여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중용에 나옵니다. 중용에 이런 말이 나와요. 이게 꼭 1주와 1지만을 얘기한 게 아니에요. 모든 공부의 단계에 다 해당됩니다. 중용에 공부에는 두 단계가 있는데, 보세요. *증오와 해오의 차이. 혹은 안락하게 실행하고(증오), 혹은 이롭게 여겨 실행한다(해오). 혹은 안이행지. 두 단계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혹은 너무나 그 진리가 편안해서 실천하는 경지가 있고, 그러니까 안락해서 실천해요. 안 하면 너무 찜찜하고 불편해서 이게 너무 편해서 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두 번째는요? 없나요?
42:05 5페이지 맨 위에 있죠. 혹은 이로워서 행한다. 자 이로워서 행한다는 건 뭐죠? 즉 낯설어요. 편하지는 않아요 육바라밀 하는 게. 그런데 그게 옳은 것 같아요. 선정과 지혜의 바라밀을 얻어 버렸으니까 보세요. 몰라를 할 줄 알고 자명을 따질 줄 알았기 때문에 육바라밀이 낯설고 하기 싫은데 옳다는 판단은 서요. 그래서 하는 경지가 해행발심의 경지고요. 증오의 경지, 1지 보살의 경지는요? 그게 너무 편해서 안 하면 너무 불편해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하는 게 불편해서 하는 사람과 안 하는 게 너무 내가 찜찜해서… 말이 좀 비슷한데. 차이를 제가 못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43:03 습관화되어서 이제 안 하는 게 불편해서 하는 사람하고, 이쪽은 이제 하는 게 너무 옳다는 걸 알아서 하고 있는 사람. 하는 것도 불편한데 안 하면 이제 더 불편해지니까 이로운 줄 알아서 하는 경지. 아시겠죠. 신인이 그래요. 신인과 순인은요 이로워서 하고 있는 경지예요. 법인은요 편안하게 하고 있는 거예요. 애씀 없이 된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애씀 없이 되는 사람과 이쪽은 애를 써야 되는 사람. 애를 왜 쓰나요? 이로운 줄 아니까 애를 쓰는 거죠. 저게 좋은 줄은 아니까 노력을 해서 하려고 하고, 한쪽은 그 상태가 이미 편안해져서 노력을 안 해도 그걸 이미 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빨리 편안해지는 비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혹시 이 얘기 듣고 “나는 편안하게 했으면 좋겠다 하신다”면 먼저 이 단계를 거치셔야 돼요. 그게 옳다고 늘 곱씹으셔야 돼요. “옳다. 해야 된다.” 이건 습관
44:02 개조거든요. 어떤 습관이 편안하게 되길 원하신다면, 지금 그 습관이 여러분한테는 낯설어요. 육바라밀의 습관이 낯선 것처럼 낯설어요. 그러니까 “그게 옳다”라는 생각을 늘 해주셔 옳다는 걸 알아야야 그 습관을 싫어도 또 하고 또 하지 않을까요? 옳다는 걸 곱씹지 못 하고 옳다는 게 납득이 안 되면요 그 습관 개조는 실패입니다. 여러분 옳은 줄 모르는데 습관 개조가 되겠어요? 담배 끊어야지. 근데 왜 끊어야 하지? 그러면 안 돼요. 끊을 일이 없는 거죠. 왜 끊어야 하는지 매일 곱씹어야 그나마 두 번 필 거 한 번 피고, 뭔가 제재가 들어가겠죠. 즉 이게 신인, 순인의 단계예요. 그게 옳다는 걸 믿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순종하는 단계. 근데 완전히 그게 습관으로 박히지는 않아서 잠깐 방심하면, 다시 정신차리면 담배를 물고 있는 경지. “어 언제 물었지.” 의도적으로 노력하면 멀리할 수 있는데 잠깐 방심하면 그 상태가 더
45:00 편안하기 때문에, 육바라밀 안 하는 게 더 편안하기 때문에 잠깐 방심하면 안 하고 있는 경지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편안하게 하는 경지라는 것은 이쪽이 이제 더 편해져 버렸어요. 안 하는 게 너무 불편하고 하는 게 너무 편해졌어요. 이해되시죠? 이쪽은 안 하는 게 사실은 더 편해요. 하는 게 불편한데 안 하면 더 불편한 어떤 마음이 드니까. 왜냐? 옳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하는 거예요. 실상은 실제로는 안 하는 게 더 편한 거죠. 그쵸. 이 정도 구분을 좀 하시면 육바라밀에 안락해진다는 게 어떤 단계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제 강의 듣고 “구공을 여러분 인가하셔야 됩니다. 참나 안에 육바라밀 있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명상하다가 가장 마음 맑을 때 사랑도 있는 것 같고, 내 안에 정의도 있는 거 같고, 내가 지금 뭐 죄 짓는 건 아니니까. 정의도 있는 것 같고, 인욕도 뭐 이 정도면 조화로운 것 같고.
46:00 참나 안에서 편하게 있을 때 사랑 정의 예절 지혜가 인가가 돼요. 그때 “아, 내가 구공을 인가했다” 하시면 안 돼요. 왜냐? 구공이 밖에서 안 나오잖아요. 육바라밀의 구공의 인가라는 건 그런 식 인가도 인가는 맞습니다. 그런 인가는요 이제 체험적 이해가 가능한 것뿐이에요. 즉 참나를 체험함으로써 참나 안에 육바라밀이 있다는 감은 잡아요. 그런데 육바라밀을 진짜 현실에서 잘하기 전에는 구공을 인가했다고 안 합니다. 신인 순인 법인의 단계를 거치셔야 돼요. 즉 처음에는 참나 안에 육바라밀이 있다는 걸 체험적으로는 이해해요. 보세요. 희미하긴 해도 이미 체험이 있다니까요. 제가 아까 말한 “참나가 진짜 육바라밀 있는 것 같애. 육바라밀 어기면 찜찜해. 왠지 참나가 싫어하는 것 같애.” 이 정도가 지금 신인의 단계라니까요. 체험적 이해 가능. 체험적 이해 심화는 그래서 찜찜해서 안 그렇게 살려고 되게 열심히 노력해야 겨우 순인의 단계입니다. 육바라밀을 잘하려고 엄청 노력해야 돼요.
47:02 찜찜한 거 안 겪으려고 엄청 노력해야 돼요. 그러다 마지막에 어떻게 돼요? 그게 편안해질 때가 와요. 저때가 이제 구공이 인가됩니다. 이게 구공의 인가 단계 급수예요. 구공 인가해도 신인이 이게 또 8급 7급 돼요. 그다음에 또 순인 그러면 8, 7 다음에 6급 5급. 그 다음에 법인의 단계에 들어서요. 4급 3급부터는 이제 벌써 자명해져요. 그런데 더 닦아야 돼요. 2급 1급까지 가서 안착을 딱 하게 됩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여러분이 공부가 돼요. 육바라밀 인가하는 그 단계 제가 다음 시간에 소상히 얘기해 드릴 테니까. 여러분 이거 다 여러분이 하셔야 됩니다. 아시겠죠? 그거만 하나 읽고 끝날까요? 그 밑에 있는 단계가 방금 설명해드린 단계예요. 보이시죠. 신인 순인 법인 쓰여 있죠.
48:01 여기까지만 읽고 끝낼게요. 어떤 식으로 구공을 연구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설명은 제가 다음 시간에 해드릴게요. *6가지 바라밀로 1지에 이르는 길(가행위). 육바라밀로 1지에 이르는 길, 이거를요 불교 용어로 가행위라고 합니다. 가행. 가행위라는 건요 용맹 정진을 더하라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좀 더 분발해서 실천해라 하는 거예요. 이제 1주 보살까지 됐잖아요. 1주 된 뒤에 좀 더 분발해서 실천을 해야 되는 경지에요. 1주 전은 뭐라고 불렀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자량위라고요. 밑천 닦는, 육바라밀의 선근을 쌓아가는 경지였다면 1주 이후는 이제 육바라밀을 본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지예요. 이게 경지가 나뉩니다. 보세요. 1주 이전은요 자본 할 때 자(資)자예요. 자본 자자랑 군량미 할 때 량(糧)자랑 써가지고 자량은요
49:03 밑천이 되는 분량을 쌓는 단계라는 건요? 먼 길 여행 떠나기 전에 밑천을. 두둑이 군량미, 식량을 쌓고 있는 단계요. 그러니까 이게 선근, 아까 제가 말한 선근 쌓아야 된다는 게 이때 육바라밀 공부 두둑이 해 놓으시고 나서 참나가 탁 터지면요 그 밑천을 써가지고 실제 이제 길을 떠나는 겁니다. 길 떠나는 건 1주 이후예요. 육바라밀의 여행은 1주 이후에 본격적으로 떠나게 돼요. 이제 모든 일에 육바라밀만 적용하면 돼요. 여러분 절에서요 확철대오 해서 견성하시면 1주 보살이거든요. 그 뒤에 뭘 하죠? 만행한다고 돌아다녀요. 그 만행이 룸 찾아다니는 게 만행이 아니고 그건 그냥 막행이라고 하죠. 그건 막행이고. 만행은요 1주 보살이 된 사람이 시장 구석도 가보고 오만 데 가보는 거예요.
50:03 내가 육바라밀이 나오는지를 점검하는 게 원래 만행이에요. 어디든지, 자 시장통 가서 뭐 치욕도 당해보고 그런 중에 “몰라 자명 육바라밀”이 되는지 계속 점검하는 게 원래 만행입니다. 그러면서 실력은 확 느는 거예요. 절에만 있으면 다 와서 스님이라고 받들어주고 하면 이게 육바라밀 못 닦아요. 그러니까 만행을 떠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술집도 가보고 해보는 거예요. 술집 가서 흔들리면 자기가 육바라밀 닦음이 부족하다는 거 아는데. 그런데 요즘은 만행하다고 가가지고 막 더 놀면 그건 만행이 아니라고요. 만행은 가서 몰라 자명을 계속 가동해야 그게 만행이에요. 어디를 가든 몰라와 자명을 계속 가동하면서 그 안에서 내 이 본성인 참나를 드러내는 도를 닦을 때 만행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요 뭔 짓을 해도 거기서 도가 쌓여요.
51:01 그 경험치가 자기 영성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실패도 하고 낙오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좌절도 겪으면서 그걸 또 몰라 자명으로 극복하면서 육바라밀 실력이 엄청 늘어요. 이렇게 사실은 다사다난하게 겪어야 되는데요. 이 말을 오해하시면 안 돼요. 그냥 다사다난한 일을 많이 겪으시면 보통 인성이 더 파괴돼요. “나는 많은 인생의 경험을 했으니까 너보다 더 성숙했을 것이다.” 이 말이 안 맞아요. 오히려 더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을 확률도 꽤 커요. 제가 얘기해 드리는 건 조건이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육바라밀이 는다.” 이것도 진리예요. 또 더 중요한 게 뭐죠? “①깨어서 경험을 해야 된다.” “②참나와 육바라밀을 붙잡고 경험을 해야 그게 승화된다”는 거. 이 두 가지를 지켜주시면 여러분 지금 살아가시는 게 다 만행이에요. 여러분 지금 이 수업 듣고 신촌으로 주말에 나가실 거 아니에요. 벌써 여기 엄청난 유혹들이 있습니다. 이게 만행이에요. 여기서 어떻게
52:02 이겨내실래요. 몰라와 자명을 쓰셔야 돼요. 그런데 여기서 듣고는 여기서는 “아! 몰라 자명” 막 하다가 신촌 나가서 눈 딱 풀리면 “와아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하면 몰라 자명이 바로 날아갔죠. 근데 중생들의 맛은 또 그런 눈 풀리는 맛이거든요. 그러니까 풀렸다가 또 몰라 자명으로 돌아오는 이런 수많은 경험들이 우리의 보살도의 밑천이 됩니다. 사실은 여기까지만 밑천 쌓는 게 아니라 계속 밑천 쌓는데 일차적으로 밑천을, 식량을 준비했다가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야 된다는 의미라는 거예요. 길을 떠나면서 사실은 또 엄청난 선근을 닦아요. 향후 세세생생 닦아갈 보살도의 엄청난 자량을 쌓습니다. 그래서 자량위는요 계속 자량위구요. 근데 자량만 주로 한다고 해서 여기를 자량위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길을 떠난다, 육바라밀의 길을
53:01 떠난다고 해서가 가행위라고 하는 겁니다. 가행위는 소개까지만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오늘 얘기 중에 다 있으니까 보시고 다음 대승 보살의 길을 밝히다 시간에 이 가행위를 본격적으로 설명해서. 오늘 설명은 다 대충 해드렸어요. 신인, 체험적 이해. 순인, 체험적 이해인데 체험이 더 강화됐다. 법인, 자명한 이해가 이제 이루어진다. 크게 3단계고 쪼개면 4단계인데 4단계는요 신인이 1단계, 순인이 2단계, 3단계는요 법인이 가능해진 단계가 있어요. 4단계에서 법인이 완성됩니다. 이건 제가 정한 게 아니고 불교가 항상 뭐든지 4단계로 나눠 보는 버릇이 있고 그렇게 진리를 설명해요. 그 설명이 모든 불교 진리에 다 통해요. 저는 그 4단계의 설명을 가지고 지금 9급에서 1급에 이르는 대승 보살의 길에도 적용할 거고 화엄경 책이 나오면 사 보시면요 거기에서도 1지부터 10지
54:01 까지 가는 길도 이 4단계로, 그 안에 또 이 4단계가 계속 있어요. 그것 도표로까지 제가 만들어서 다 이번에 책에 넣어 드렸어요. 그래서 그거 활용하시면 여러분 이런 영성의 길을 모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영성의 길을 부지런히 걸으셔서 여러분만 걷지 마시고, 여러분이 직접 걸으면서 얻은 그 생생한 정보를 주변과 항상 공유하신다면 제가 이렇게 강의한 보람이 있을 것 같고. 이게 다단계예요. 영적 다단계. 여러분이 꼭 도를 많이 이루시고 주변에 많이 알려주시면 저한테까지 영적 포인트가 떨어집니다. 저는 가만히 있어도 전 세계에서 제 강의를 듣고 보살도를 걸어 주시면 우주에서 “누구 강의 듣고 이렇게 된 거야?” 하면 이제 저한테 포인트가 오는 거죠. 저는 앉아서 혼자 배부를 수 있는. 그 포인트 받아서 제가 더 열심히 또 보살도 할 거니까 서로 이렇게 공생하면서 같이, 포인트라고 했지만 영적 과보예요. 좋은 과보를 서로 계속 나누고 돌리면서 함께, 제가 이 과보를 또
55:04 여러분을 위해 써버리면요 서로 계속 좋아지는 일만 있잖아요. 이게 운명을 바꾸는 최고요결인데 좁은 소견으로 자기 운명만 하나 바꾸려 하다가는요 전체를 망치게 하는 수가 있고 그 안에서 자기도 망해요. 이 넓은 소견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아간다면, 그런 군자들 보살들이 많이 나온다면 지구는 분명히 바뀝니다. 저는 그 인과를 믿기 때문에 오늘도 또 유튜브에 뿌리고, 지금 여러분 상대로만 한 강의가 아니에요. 이거 전 세계로 나갑니다. 유튜브에 올라가면 끝없이 뿌릴 겁니다. 여러분들 같이 이 길을 걸어 주시길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55: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