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37강

홍익학당 아카이브
보급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10일 (일) 19:28 판 (https://cafe.naver.com/bohd/75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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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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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8. 05. 26. 土.
게시일자 2020. 07. 19.
동영상 길이 53:09
강의 중 인용 도서 -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sFwqG-1jk-w



0:11 한 명이라도 더 보시라고. 로고(⊚) 기억하세요. 이게 원만해야 됩니다. 제가 그림을 잘못 그렸지만. 항상 이 신성을 나는, 내 개체죠, 개체 속에서도 원만하게 표현되고 또 한 개체들이 모여도 다들 원만해지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나의 뿌리가 신성이기 때문에 요 한 점이 신성과 연결돼 있어요. 모든 인류의 성현들은 이 얘기밖에 안 해요. 유교. 항상 희로애락이 없는 절대계의 중심을 잘 잡고 현상계에서도 중심을 잘 잡아라. 이게 조화다. 중화를 이루면 천지도 바로 잡히고 만물도 다 잘 자라게 할 수 있다.

1:00 중용에 우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쓰여 있어요. 천지를 제자리 찾게 해줄 수 있대요. 나로 인해 천지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엉뚱한 마음을 먹어버리면 나의 우주가요 깨져요. 그런데 내가 정신 차리고 깨어서 하느님과 연결된 그 마음으로, 하느님을 내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내 희로애락을 잘 조화롭게 경영해서 남과 양심적으로 잘 어우러져 살아가면 그게 인류가 할 일이다. 예수님은요? 계명을 둘로 줄일 수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라. 동학은요? 한울님을 모시고 한울님의 조화에 참가하라. 시천주 조화정. 그쵸. 또 뭐 있죠? 또 우리 민족 철학은 본성을 통하고 현상계에서 홍익인간의 공덕을 완수하라(성통공완). 다 이 얘기. 요거 잘하라는 얘기. 그리스철학도요 소크라테스만 해도요 제우스 신한테 몰입해요. 신성을 진선미로

2:07 구현하라.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결국 자기가 얻은 정보 아고라 광장에서 알리다가 죽었잖아요. 4대 성인들은 정보 공유를 생명으로 아신 분들입니다. 정보를 공유하라. 선지자들이죠. 정보를 공유하라.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잡혀가서 “너 정보 공유 한 번만 더 하면 죽인다.” 대신에 또 다른 제안했어요. “여기 아테네에서 더 하면 죽이겠다. 단 추방은 가능하다.” 즉 너 다른 나라 가서 정보 공유하는 것은 허용하겠다 그랬어요. 근데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공유 못하면 날 죽여라” 그랬어요. 딴 데 가도 형편은 비슷할 거다. 그러니까 아테네에서 실패하면 내가 어디 가서 성공하겠느냐. 여기서 알리게 해 달라. 결국 사형 당했죠. 추방 거부하고 아테네에서 정보를 공유하겠다 그러니까 사형 떨어졌죠. 그쵸. 예수님도 천국에 대한 정보를 계속 공유하시다가

3:04 잡혀서 돌아가시는 거예요. 다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지금 결론이 정보를 공유하면 죽는다가 아니라 죽음보다도 정보 공유를 더 열심히 했던 분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그림이 있었을까 이거죠. 우주에 대한 공통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걸 잘했다. 또 불교에서 뭐죠? 상구보리, 위로는 지혜를 구하고 하화중생, 아래로는 현상계에서는 항상 주변 중생들을 도와라. 이게 다예요. 이거 어긋난 게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주가 아주 아름답겠죠. 이게 인간이 이렇게 꼭 돼서가 아니라 이걸 추구하게 돼 있어요. 제가 말씀드린 건 오늘 이 얘기 듣고요. 아! 저렇게 살아야지 하실 거예요. 즉 그렇게 우리가 꼭 당장에 이런 완벽한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게 아니라 여러분부터 이런 세계를 지향하면서 가야 여러분부터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니까요 별수가 없습니다.

4:04 지금 잘 사시는 게 중요하니까. 이런 그림을 품고 가셔야 잘 가지 치우친 그림을 품고 가시면 가다가 계속 실족하고 어디서 문제인지도 모르는 문제를 계속 만나게 돼요. 자기가 진리가 아닌 걸 붙잡아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가 아니고는 그걸 어떻게 해결하겠어요? 제가 그려 드린 그림을 품고 한 번 가보시라. 가면서 또 여러분의 살아있는 체험을 가지고 이 진리들을 잘 소화하시면서 또 자명한 건 취하시고 찜찜한 건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진도를 좀 나가겠는데요. 2페이지 맨 밑에 해행발심이 있죠. 거기부터 좀 읽어볼까요. 12. 해행발심(법신을 이해하고 실천한 발심, 돈오 이후의 점수). 제목이 해행발심인데 무슨 발심이냐? 요 그림 예전에 초창기기 한 번 그려 드렸는데.

5:10 대승기신론에서 나온 얘기거든요. 대승기신론에서 이 얘기를 왜 하느냐? 중요한 영적 정보들이니까 제가 공유하는 겁니다. 한 불자가 공부를 시작해서 만겁 정도를 닦으면요 1주 보살이 돼요. 1주는 참나 안주. 언제 어디서나 참나랑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경지가 돼요. 대단하죠. 여기서 이 참나는요 공적영지를 말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공적하고 한편으로는 영이지 작용을 일으키게 되니까 항상 선정에 들어 있고 항상 지혜롭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1주 경지가 이거란 거 다 얘기했죠. 1주가 되는 데까지 뭐 하셨죠? 선정 공부는 어떤 선정 공부했죠? 참나가 끊어지지 않는 경지. 지혜는요?

6:02 아공 법공의 지혜. 말이 어려운 것 같지만 아공은 내 에고가 무상하고 고고 무아고 참나는 상락아정하더라. 영원하고 지복이고 거기는 더러운 거 없더라. 그거 아는 게 아공. 이거를요 뼛속까지 자명하게 인가하실 수 있는가 이겁니다. 1주 정도 되려면요 이게 자명해져야 돼요. 자명하다는 건요 여러분이 중력의 법칙을 알듯이 아는 거예요. 여러분이 늘 중력의 법칙을 곱씹지 않지만 알아요. 우리 준우만 해도 알아요. 요즘 계단 잘 내려갑니다. 조심조심. 모를 때는 몇 번 막 도전해보죠. 몇 번 자빠지고 나면 알죠. 우리가 이렇게 물리법칙도 이런 식으로 체험적으로 알아요. 체험과 개념이 딱 정리됩니다. “아 저기 가면 떨어진다” 딱 알아요. 그거 알고 있죠. 몸속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웬만하면요 술 취해서 필름 끊기셔도 잘 돌아다니세요.

7:01 안 넘어지고 집에 와 있고. 중력의 법칙을 잊지 않고 조심조심 신기한 일이죠. 너무 하면 또 안 되겠지만 그게 어느 선까지 지켜진다는 게 대단하지 않으세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나 안주를 해버렸다는 것은 인생의 역경 순경 별일을 다 겪는데도 내 입장에서 볼 때 참나와의 접속이 끊어지지 않고요 참나랑 단단히 접속되어 있어요. 그리고 지혜는 참나 관점에서 이 우주를 이해하는 아공 법공의 지혜들을요 뼛속까지 알고 있다는 거예요. 이 두 개가 함께 가는 이야기입니다. 늘 참나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참나 관점에서 자명한 얘기들을, 에고 관점에선 자명하지 않아요, 참나 관점에서 자명한 얘기들을 내가 자명하게 알고 있다니까요. 에고 관점에서 자명하게 알고 있는 것들만큼 참나 관점에서 자명한 걸 내가 자명한 줄 안다는 것은 이게 신통한 일입니다. 다 참나 관점이에요. 에고는 무상한데 참나는 영원하다. 이거를 참나 관점이 아니면 어떻게 아시겠어요?

8:03 일반인이 참나가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건 참나 관점이고. 법공. 자 아공은 에고 차원에서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지혜입니다. “에고가 실체가 아니라 참나가 실체더라.” 근데 참나에서 다시 에고를 제대로 보시면, 여기(에고→참나)도 물론 참나 관점이 들어가 있지만 이건(참나→에고) 제대로 참나 관점이에요. 참나 관점에서 볼 때 “에고는 참나의 작용이더라.” 에고를 무상하다고 버릴 게 아니라 차원이 다른 거지 전체 우주의 모든 차원들은 참나 차원에서 일어난 작용들이다. 바다에서 일어난 물거품이다. 이렇게 아실 정도로 법공까지 아신다면, 이게 한 세트(선정, 지혜, 아공, 법공)로 함께 간다는 걸 우리가 1주 보살 그럽니다. 저 정도만 얻으면요 사실 게임이 끝나요. 그러니까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은 자가 이 정도예요. 선불교의 확철대오, 인도 마하리시니 라즈니시니 하는 이런 분들이 얻은 경지라는 것도 저거예요.

9:01 늘 참나랑 함께 가고 늘 참나의 지혜가 안에 흘러요. 고민을 안 해도 알고 있어요. 무슨 문제를 맞닥뜨리건 그 관점에서 풀어갑니다. 아시겠죠. 이게 되게 중요해요. 이 정도인데 기독교 가도 이 정도예요. 천국 간다는 게 이 정도예요. 사도 바울이 이렇게 얘기해요.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고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성령이 소멸하지 않아야 된다. 24시간 성령 불과 함께 하라. 이게 이 경지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이 말을 해요. 선을 선으로 알고 악을 악으로 알아서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살전 5:15-22 참조). 지혜까지 작동해줘야 된다. 이 아공 법공의 지혜를 가지고 처음에는 선악을 따지죠. 이게 옳은 거 이게 그른 거, 이건 진리의 맞는 거 이건 진리에 맞지 않는 거. 이걸 따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거예요. 자 보세요. 그런데 여기까지가 1주인데, 만겁 해서 1주가 됐는데 1지는 또 달라요. 1지는요 육바라밀,

10:00 법신 안주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참나 안주랑 좀 차원이 달라요. 법신 안주라고 하는 건요 이 진리(법)에 대해서 더 소상히 알아냈다는 겁니다. 육바라밀이란 건 참나 안에 있는 진리고. 그러니까 이게 지금 육바라밀이 법신이란 얘기가 아니고 육바라밀의 진리를 갖추고 있는 참나를 법신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냥 참나는 공적영지였죠. 텅 비고 알아차린다. 텅 비어 있는데 알아차리는 자리까지는 1주 보살이 정확히 알아내는데 1지 보살이 된다는 건요 참나 안에 자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성실 몰입이라는 6가지 진리로 우주 전체를 경영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절대계의 무형의 참나 안에 6개의 진리가 갖춰져 있다는 거 알아내요. 저 진리가 조합됨으로써 우주 만법이 저기서 다 나온다.

11:01 요거 알아내는 건 좀 다른 차원이죠. 요거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여러분 학당에 오시면 바로 참나 체험 가능하죠. 그게 9급에 가능합니다. 9급. 요거는요 만겁 중에 처음에 가능해요. 한 생에도 가능해요. 처음 믿고 그 생에도 가능해요. 아주 쉬워요. 여기까지는 하셔야 돼요. 9급. 더 나아가서 한 8급 7급 정도 가는 이 정도 체험은요 한 생에 가능합니다. 이게 뭘까요? 몰라 하다가 참나를 체험합니다. 참나를 체험하고 참나 관점에서 아공 법공을 이해하는 정도는, 찰나라도 체험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만겁까지 안 가요. 그냥 체험 가능해요. “아, 이게 참나구나”랑 잠깐이라도 참나랑 함께 있어봤더니 참나 관점에서 우주를 보게 돼요. “에고는 무상한 거구나.”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구나.” “온 우주가 참나의 작용이구나.” 이런 거를요 벼락처럼 깨닫고 나오는 이 정도는 가능하다는 거죠. 이게 불교 이론으로 치면

12:07 1주 보살 전까지를 10가지 믿음의 단계라고 하거든요. 10신. 10신의 맨 처음 단계에서, 굳이 말하면 1신이죠. 이론상 거기서 가능해요. 1신. 좀 이상한 얘기지만. 10신. 이것도 이상하죠. 암튼 저희 학당에서 그래서 그 참나 체험하신 분들한테 신사 자격증을 드립니다. 신사. 믿음의 단계에서 뭔가 성취를 하셨다고. 일단 참나를 알았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합니까. 참나를 만나고. 자 근데 9급 8급 7급과 차이가 뭐냐면 9급은요 참나를 그냥 체험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8급 7급은요 참나 관점에서 아공 법공까지 알아낸 거예요. 아 참나 관점에서 보니까 이게 진리인 것 같아요. 어떤 확신까지 한 번 가지신 거예요. 개념적으로만 아신 게 아니라 체험적 이해를 하신 거예요. 이때(9급)는 참나는 체험하셨는데 “아공 법공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13:01 해봤는데요. 참나 만나서 너무 좋았단 체험만 했는데요.” 그러면 제가 9급을 드리고요. “참나 만났는데 아공 법공까지 이해가 됐다. 그 관점이 어떤 체험적 근거에서 나온 말인지 알았다” 하면요 제가 8급 7급 드려요. 그런데 1급은 언제 오느냐? 1급은, 1주 보살은 이게 안착이 되어 버렸어요. 그 사람 삶에 안착이 됐을 때. 자 여기까지만 하면요 모든 종교에서 구원자들이 다 1주 보살입니다. 실제로 제가 강의 다 드렸는데 아미타경 이런 데 다 뒤져보면요 극락 가는 것도 1주 보살이라야 극락에서 제일 최고 상상의 그 경지에 가요. 1주 보살의 경지가 처음에 극락 입성할 때 최고 레벨입니다. 1주 보살 정도 돼서, 공부를 해서 극락을 가야 바로 연꽃도 열리고, 바로 부처님 만나서 바로 깨닫게 되죠. 1주 보살 아래 단계들은요 극락 가도요 연꽃에서 엄청 대기 타야 돼요.

14:02 49일, 어떤 경우는 몇 백겁도 기다려야 돼요. 구백겁 넘게 기다려야 돼요. 죄 많이 지은 사람이 극락 가잖아요 구백겁 넘게 거기서 기다려야 돼요. 그것도 방편인데 이런 얘기들이 뭘 얘기하겠어요?. 어디든지 종교는요 불성 안에 안주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요. 참나 안주를 하거나 기독교식으로 성령 안주를 하거나 다 똑같아요. 다 레벨이 같습니다. 신기해요. 인간의 영혼이 똑같아서 그래요. 인간 영혼이요 개체적 자아가 전부인 줄 알다가 초월적 자아가 있다는 걸 알고 초월적 자아, 하느님이라고 하건 성령이라고 하건 뭐라고 부르건 간에 불성이라고 하건 초월적 자아, 아트만이라고 하건 그 자아와 합일된 정도까지가 이 정도예요. 1주 보살이에요. 이분들은 특징이 그전의 수행부터 육바라밀 귀한 줄 알고 수행해오면 양심에 선근이 많고요 육바라밀 귀한 줄 모르고 그냥 선정과 지혜만 계발해온 분들은 이

15:05 단계까지 왔을 때 저 정도까지 닦아도 사실 비양심적인 경우도 많아요. 윤리 이런 거 다 에고 놀음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 단계는 사실은 더 진보가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소승이라는 비판을 받는 거예요. 이분들은 지금 참나와의 합일감만 있고 늘 깨어있고 참나 관점에서 우주를 굽어보는 걸로 만족해버려요. 우주 전체를 환상으로 보고. 환상으로 봐도 사실 별 차이 없거든요. 참나 관점에서 우주를 계속 보고 있다 보니까 우주가 부질없는 거예요. 그런 분들은 대게 힌두교나 이런 분들은 우주는 다 정해져 있고 완전한 운명론을 신봉해요.. 즉 “내가 뭐 간여할 게 없다”라는 사상을 좋아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깨어서 참나 안에 있는 거 밖에 없다.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라고 서로 지도합니다. 전승해 와요. 또 그 문화권의 들어가 계시면, 여러분도 지금 여기 계시니까 대승 대승 그러지 거기 가 계시면, “아 맞네” 하고 거기에 또. 일단 참나

16:05 맛보면 뿅 가거든요. 그러니까 참나 맛보고 거기 있다 보면 문제의식을 잘 못 느껴요. 그런데 왜 불교에서 선근을 강조하는지 아세요? 이전에, 이 수행 전에라도 차라리 여기(전생)도 다 포함해서 말해요. 선한 근기를 많이 쌓는다는 것은 육바라밀을 해본 경험을 많이 갖고 있어야 돼요. 보세요. 보시, 남하고 나눠도 보고. 지계, 유혹을 이겨내도 보고. 인욕, 억울하지만 진실을 수용도 해보고. 정진, 게으르고 싶지만 나밖에 양심 할 사람이 없으면 또 내가 나서서 하기도 해보고. 이렇게 다양한 육바라밀 경험들을 많이 쌓아서 나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보살의 어떤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본 분들은요 수행을 안 했더라도 그런 세월을 오래 사신 분들은 선근이 두텁다고 합니다. 이분들은요 견성했을 때 바로 육바라밀을 향해 가요. 즉, 참나 안주도 되자마자 곧장

17:03 1지 보살을 향해 갑니다. 선근이 좀 박하면 어때요? 여기서(1주→1지) 남들보다 시간을 또 더 잡아먹게 돼요. 1아승기겁에 여기(1지)까지 온다고 그랬는데 결국 똑같은 시간 걸리는 거 아닙니까. 수행에 걸리는 시간이 같단 얘기랑 여러분이 똑같은 시간이 실제로 걸리냐는 서로 다른 얘기입니다. 뭐냐면 “이 일을 하려면 한 만 시간 걸립니다” 그러면 누구는 놀면서 일을 하고 누구는 하루에 10시간씩 일을 해버리면 기간이 다르겠죠.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요 정도 공부량이라는 거예요. 닦음의 양. 닦음의 양을 얘기한 거지 실제 꼭 이렇게 걸린다는 게 아닙니다. 실제는 더 걸릴 수도 있고 덜 걸릴 수도 있어요. 내가 그만큼의 닦음을 한 생에서도 많이 닦아버리면 남들보다 더 빨리 진보하는 거죠. 안 그러면 놀아도 만겁이요 열심히 해도 만겁이면 말이 좀 이상하죠. 만겁 정도 걸릴 공부량이라는 거예요. 그걸 한 생에 엄청 약 빤다는 게 호흡해가면서, 약 빨면서 하면 빨리 할 수도

18:06 있죠. 진짜 공부하는 게 싫은 친구도 있잖아요. 하루에 1시간 하라고 하면 진짜 1시간 해요. 근데 그 앞뒤도 또 이제 시계 보느라고 시간 꽤 써요. 또 “나는 이제 이걸 끝내면 뭐 하고 놀 것인가”에 또 시간을 써요. 근데 진짜 하루에 미쳐서 10시간 하는 사람 어떻게 당해요 재능이 똑같다고 봤을 때. 재능이라는 게 선근이에요. 보살도의 선근이라는 건 보살도의 재능을 갖고 있는 건데 그 재능은 육바라밀 잘하는 거거든요. 보살도에 재능이 없는 분들은 소승 성자쯤 되면 거기서 대게 만족합니다. 자기는 다 얻었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보살도를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나 안주 정도 얻으면 그거는 뭐 거의 하느님 된 거거든요. 그런데 보살도를 지향한 분들은 거기서 안 멈춰요. 또 계속 갑니다. 오늘 다루려는 부분이 이거예요. 만겁 지나서 1무량겁이라는, 아승기겁, 무량겁 그러는데 이 무량겁을

19:06 채우면 1지가 되거든요. 1주부터 1지 가는 과정에 대해서 지금 저희가 얘기하는 거예요. 1주까지는 지금 다 얘기했어요. 혹시 앞에 못 들으셨더라도 이거(선정, 지혜, 아공, 법공) 되면 1주라는 것 지금 얘기 드렸어요. 선정과 반야바라밀 잘하면 1주인데 1지는 육바라밀을 총체적으로 잘해야 된다. 한 마디로 제가 비교해 드릴게요. 이 경지(1주)는 노력하지 않아도 늘 깨어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명한 지혜로 늘 알아차리는 경지예요. 아공 법공의 지혜죠. 아 여기(1지)는 이제 아공 법공이 아니고 갖출 구자, 공성 안에 진리가 어떻게 갖춰져 있는지를 알아내는 지혜라 구공의 지혜라고 제가 분류합니다. 원래 하나인데 제가 쪼개 본 거예요. 그래서 자 보세요. 노력하지 않아도 깨어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아공 법공을 자명하게 알고 있으면 1주 보살이에요. 똑같은 원리로 노력하지 않아도 육바라밀이 저절로 흐르면 1지 보살이에요. 달라요. 그러면 자 답도 나오지 않으세요. 1지 보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 1주까지 가면 자동으로 깨어있고

20:06 자동으로 알아차려요. 이게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이 컴퓨터 켜면 늘 돌아가고 있죠. 그런 것처럼 여러분이 눈 뜨고 살아가는 중에 계속 깨어있음과 자명함이 흐르고 있어야 1주 보살이에요. 실제로 이 정도면 막 도통한 줄 알아요. 이 정도가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간 분들이 이 정도 가지고 전 세계에서 장사하고 계세요. 이 정도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입니다. 원래는 이게 세계적인 급이 아니에요. 1주는 원래 명함도 못 내밀어야 되는데 인류 영성계가 지금 아주 파탄난 게 이 정도면 지금 세계적인 지도자 대접을 받습니다. 물질문명은 발전했는데 정신문명이 퇴보했다는 게요 원래 1주는요 저희 봉우 선생님이 얘기하신 바에 근거에서 얘기해 드리는 거예요. 1“지 2지 정도는 국내인이다. 국내에서나 조금 힘쓰는 사람. 3지 넘어가야 그래도

21:00 세계에 나가서 겨뤄볼 수 있는 영성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지금은요 1주면 세계적이에요. 지금 1지도 아닌데. 전 세계에서 1지의 경지를 정확히 얘기하는 분이 없어요. 참나 안에서 육바라밀 다 찾아내 가지고 이걸 자동으로 흐르게 하는 분이 지금 세계 영성계에 제가 아는 바로는 거의 없다고요. 신기하죠. 계시기는 해요. 근데 거의 극소수고. 세상에 드러난 사람들은 보통 이 1주 정도가 많습니다. 이거는 뭐 숨길 수가 없어요. 그분의 모든 언행에서 다 나오니까 표현들이. 재밌죠. 이런 분들은 제가 볼 때 좀 보여요. 본인은 한 1지쯤 되는데 설명하는 건 1주 정도 설명하시는 분. 뭐냐면 제가 볼 때 본인은 선근이 두터워서 육바라밀을 꽤 해요. 그런데 말할 때는 “넌 열반에 들어야 된다.” 이렇게 1지 정도 얘기 밖에 못 하시는 분도 있으니까. 이분은 아직 체험은 있는데 개념만 안 된 경우예요. 삶은 대개 1지 정도 수준의 영성을 누리고 사시는데 이론적으로 정리된 것은 1주 정도만 확연히 정리된 거예요. 이게 대개

22:07 보면 다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진짜 그런가 여러분들이 만났던 또 스승님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분석해 보세요. 그러면 사실은 못 숨겨요. 다 털리게 돼 있어요. 제가 만든 이론이 아니에요. 있는 거지. 대승기신론에서 지금 자 1주 보살이 갖는 발심을 뭐라고 했죠? 믿음이, 그 전에 믿음의 단계였는데 1주 보살에 믿음이 성취된 발심을 해요. 믿음이 성취 돼버려요. 그러니까 기독교나 어디나 “믿음을 이루었네” 하면 1주 보살이에요. 성령을 믿었는데 성령과 하나가 됐잖아요. 그러면 믿음이 성취된 거예요. 불성을 그냥 밖에서 믿었는데 불성과 하나 돼버렸어요. 그러니까 믿음이 성취됐어요.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믿음이 성취된, 기독교로 치면 믿음이 성취됐다 그러면 이제 구원받았다. 구원이 끝인가요? 아니에요. 이 뒤에 성화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23:06 자기 삶 자체를 성스럽게 하는, 즉 내 안에 성령이 항상 들어와 살아도 내 에고가 성스러워 지지 않으면 꽝인 거예요. 성화의 은총을 받아 가지고 스스로 성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성화의 은총 이게 뭐냐면요? “불성이 육바라밀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게 성화의 은총이에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내가요 불쌍한 사람 무시하고 싶어도“사랑해라”라고 내 안에서 은총이, 지혜와 능력이 나옵니다. 즉 사랑할 방법도 나오고요 사랑할 마음도 만들어줘요. 그런데 우리는 또 무시해요. “아버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다 막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편인 줄 알고 지혜와 능력을, 정보랑 능력을 줬는데 사실 마귀 소속이었던 거죠. 아버지 하고 이렇게 저도 살아야죠. 이렇게 딱 막아 버린다고요. 정의의 은총을 내려주고, 겸손의 은총, 정진의 은총, 선정의 은총,

24:03 지혜의 은총을 끝없이 내려주는데 우리가 감당을 못 하죠. 그러니까 지금도 사실은요,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말이 맞는 게, 지금도 여러분 안에 이 은총이 넘쳐요. 안 듣고 계셔서 그렇지. 왜냐? 아버지 일보다 지금 내 일이 바쁘거든요. 사랑하라. 정의로워라. 아버지가 얘기할 때 아 인터넷 웹서핑을 해볼까? 뭘 해볼까? 바빠요. 오늘 할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아버지 얘기 들을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그런데 믿음을 성취해서 불성과 성령에 안주한 사람은 이제 들려요. 요 정도예요. 들리는 정도가 1주 보살이에요 들리는 정도. 잘한다가 아니에요. 즉 기독교식으로 믿음이 성취됐다는 건 칭의 그럽니다. 의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다음에는요 진짜 의롭게 살아야 되거든요. 의롭게 사는 영역이 성화예요. 실제로 하느님 뜻대로 사는 거예요.

25:01 사는 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또 이어진 문제예요.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지금 1주 보살이 되어서 참나에 안주했더라도 육바라밀의 명령을, 정확히 하느님의 명령이 육바라밀이란 걸 이해하고 내가 실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 그래서 이 이후(1주→1지) 닦음은 뭐겠어요? 하느님의 이런 명령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주력합니다. 그러다 보면요 이 만겁이 거의 다 왔을 때쯤에는 이해와 실천에서 이 실천의 마음이 내 안에 딱 굳어지겠죠. 자리를 잡겠죠. 이제 어떻게 되겠어요? 만법이 거의 다 차 갈 즈음에는? 하느님의 명령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실천하는 데 능숙해지겠죠. 그걸 뭐라고 하냐면 이해할 해(解)자 쓰고요 실천할 행(行)자 써서 해행발심이라 그래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탁월해진 거예요. 그 경지를 해행발심의 경지라고 하는 겁니다.

26:02 어렵지 않죠? 자 처음에 뭐든지 믿고 시작하잖아요. 믿음이 성취된 것이 먼저고. 믿음. 다음에, 신해행증 그러잖아요. 원래 공부의 바른 순서가 믿고, 그 믿음이 성취됐고 이미 신성취발심에서 성취됐고, 이제 해행발심이 이루어지면, 신해행증이죠. 그다음 뭐만 남았죠? 증득. 증득 발심이 언제냐? 여기 1지 보살부터는 증득이에요. 1지가 되면요 이제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안 해도 어떻게 돼요? 자동으로 육바라밀이 흘러요. 그러니까 신해행증 구분하시겠죠? 처음에 뭐든지 믿고 시작하죠. 믿음이라는 건요 아직 내 것이 덜 됐다는 거죠. 육바라밀이 내 것이 덜 됐어요. 육바라밀을 믿을 수는 있는 경지예요. 참나를 만났고 참나 안에 안주하니까 육바라밀을 믿을 수는 있는 경지가 신성취발심이고요. 해행발심은 육바라밀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됐어요. 증발심은 육바라밀 증득했어요. 이 논리에서 뭐 아실 수 있는 거 있지 않아요?

27:03 보통 우리는 참나 안주를 증득했다 그래요. 이거 다 가능해요. 뭘 증득할 거냐 가지고 나눠서 보는 거죠. 자 여러분이 9급 8급 7급에서 오히려 이때가 해오라 그래요. 이해한 깨달음. 1주 보살은 증득한 깨달음 그래서 증오 그래요. 증득한 깨달음. 이해한 깨달음. 여기는 참나를 이해했냐 증득했냐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큰 그림에서 지금 이 1주 보살을 신성취라고 밖에 안 부르는 건 뭐냐면 큰 그림에서는요 육바라밀을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아직 1주 보살 정도는요 선불교에서 “확철대오 했네” 초기불교에서 “아라한 됐네” 하는 경지인데 열반 안주, 참나 안주, 성령 안주 다 해도 큰 그림에서는요 “이제 좀 사람 노릇할 기본이 갖춰졌네” 정도예요. “믿음이 성취됐네. 이제야 하느님 뜻을 믿을 정도는 됐네. 근데 이해할 정도는 아직 못 됐네.”

28:07 그 다음 단계가 뭐라고요? 이해하고 하느님의 뜻을 열심히 실천하는 단계가 있어요. 불성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단계로 가 줘야 돼요. 그 다음에 불성의 뜻과 하나가 되는 증득의 단계가 있어요. 여기서는요 주제가 육바라밀입니다. 육바라밀 안주가 진짜예요. 그래서 제가 구분했죠. 1주 보살은 참나덕후. 1지 보살은 양심덕후. 양심덕후와 참나덕후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참나덕후는 참나로 들어가 버려요. “일체는 본래 공일 뿐” 하고. 양심덕후는요? 무슨 일만 생기면 육바라밀 들고 와서 해보겠다고 덤벼요. 새로 샀다고 다 육바라밀로 해보려고 덤벼요. 좀 다르죠? 어떤 문제가 생겼다. 육바라밀 중에 일부입니다. 다른 건 아니에요. 근데 육바라밀 중에 일부만 쓴다고요. 참나덕후는 육바라밀 중에 선정과 지혜만 중시해서 들어가 버립니다.

29:00 양심덕후는요? 베풀 것 베풀어 버리고, 할 거 해버리고, 유혹을 끊을 거 끊어버리고, 자유자재로 육바라밀을 써요. 요 차이가 있어요. 이 영성의 차이를 가지고 1주와 1지를 나누는 겁니다. 해행발심 얘기 하나가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요. 그러니까 해행발심은 법신을 이해하고 실천한 발심입니다. 이거는 돈오 이후에 점수 단계에서 되게 중요한 경지예요. 대승기신론식으로 읽어 볼게요. 이 보살(해행발심)은, 해행발심의 보살은 처음 바르게 믿은 이래(신성취발심). 처음 바르게 믿은 게 언제일까요? 여러분 시험 봐야 돼요 제가. 밑줄 처음 바르게 믿은 이래란? 처음 바르게 믿은 경지는 어느 단계인가? ① 8급 7급 ② 9급 ③ 1급 ④ 1지. 벌써 헷갈리시죠? 1급이에요 1급. 그냥 믿은 거는 9급인데

30:02 ‘바르게 믿은’이란 말이요 이게 포인트입니다. 제가 학원강사된 것 같은데. ‘바르게’가 붙으면 뭐예요? 그건 1급이에요. 왜냐? 그전의 믿음은 바른 믿음은 아니에요. 나 밖에 불성이 있는 줄 알고 믿다가 불성을 처음 만난 것도 감동인데, 해오만 얻어도 감동인데, 대승에서는 불성 안에 완전히 들어 사는 게 이게 신성취라니까요. 이게 믿음이 성취되었다 예요. 믿음이 성취된 것을 바른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 바르게 믿은 이래에. 아까 제가 그림 그려 놓은 거예요. 보세요. 그러니까 지금 해행발심은 1주 이후에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1주 전은 왜 얘기를 안 하느냐? 이때는 참나랑 함께 살지는 않았잖아요. 1주부터는 이제 참나랑 함께 살아요. 그러니까 늘 깨어서 살 때 이제 그때 본격적으로 뭔 공부가 시작돼요? 육바라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탐구가 되는데

31:06 처음 바르게 믿은 이래에 첫 번째 아승기겁(무수겁)이 꽉 차려고 할 때, 요 정도 여기서 여기(1주→1지) 닦아갈 때 얘기하는 거예요. 왜냐? 그전에는 육바라밀을 제대로 탐구할 여건이 안 돼 있었어요. 재미있는 게 육바라밀 탐구, 여기 요 과정은요 해행발심은 박사과정이에요 박사과정. 석사과정은요? 1주 이전이 석사과정. 1주 보살이면 석사예요. 석사는 이제 어떤 존재죠? 박사 논문을 쓸 수 있는 존재죠. 왜 바른 믿음을 얘기하냐면 석사 이후를 얘기하는 거예요. 석사 이후 본격적인 박사과정을 밟은 과정에서 해행발심이 중요하고 논문을 쓰고 합격하면 증발심으로 넘어가요. 이제 당신은 박사입니다 하고. 1지부터는 육바라밀 박사죠. 그러니까 1주 보살은 육바라밀 석사에요. 참나덕후는 육바라밀 석사예요.

32:02 육바라밀을 알긴 알아요.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연구하기에는 아직 실천이 부족하다라고 보는 겁니다. 명상과 이런 거(지혜+아공+법공) 분석은 되게 잘하는데 육바라밀의 실천이 부족하다. 왜냐하면요 자동으로 육바라밀 나오려면 뭐가 있어야 되는지 아세요? 자동으로 선정이 흐르려면요 틈날 때마다 선정을 한 사람이 자동으로 선정이 나옵니다. 즉 선정이 습관화되어 있는 거예요. 분석이 습관화되어 있어야 돼요. 1주 보살까지 오려면 선정과 분석은 습관화 돼 있어요. 근데 뭐가 습관화 안 되어 있다는 거죠? 육바라밀의 총체적인 적용은 습관화가 안 돼 계세요. 그러니까 이렇게 시간을 넉넉히 주는 거예요. 무량겁에서 만겁 뺀 거만큼 더 닦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육바라밀을 별의별 상황에서 육바라밀을 다 해보게 돼요. 육바라밀을 순경에서만 하면 안 돼요. 여러분 살 만하고 여유로울 때 육바라밀하라 그러면 더 쉽죠. 하기는 쉬운데 또 마음이 안 나서 안 하시겠지만 하기는 더

33:01 쉽죠. 그런데 또 반대로 역경이 오면요 하기는 힘든데 또 하고 싶어져요. 왜? 삶이 힘드니까. 삶이 힘들 때 자기를 점검하죠. 편할 때 점검 잘 안 하죠. 이 두 개가 다 안 돼요. 힘들 땐 해보려고 하는데 상황이 너무 안 좋고. 상황 조금만 편해지면 잘해야지 그러지만 상황 편해지면요? 안 해요. 육바라밀 안 해도 행복하거든요. 이래서 계속 우리가 안 하게 돼요. 이 공부를 미루게 되는데. 보살들은요 1주 보살 정도가 되면, 석사급이 되면 육바라밀에 이제 논문 주제도 잡혔고 이제 열심히 연구합니다. 문제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에 그리고 탐구할 만한 아이템을 얻었어요. 뭐냐면 늘 깨어 있기랑 자명한 분석 잘하기. 이게 아이템이 생겼기 때문에, 요 두 개만 얻으면 사실 육바라밀 잘할 수 있어요. 아니 늘 깨어있고 자명한 분석 해버리면 끝나죠. 그러니까 이제 저 두 마음을 가지고 무량겁에서 만겁 뺀 시간만큼을 여러분 수많은 생을

34:00 살면서 닦습니다. 어떻게 닦느냐? 힘든 일을 겪어요. 좋은 일을 겪어요. 늘 몰라 하고 깨어난 다음에 어떻게 해요? “자명한가?” 하고 분석해요. 육바라밀 분석을 계속해요. 하다보면요 점점 노련해지고 별의별 일을 다 당해요. 몰라 하기 힘든 일들을 계속 당해요. 또 몰라 해요. 분석해요. 몰라 해요. 분석해요. 하다보면요 육바라밀을 엄청 하게 돼요. 남이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에고의 마음은 돕기 싫어요. 몰라 하고 분석했더니 도와야 맞는 거 같아요. 도와요. 그럼 지금 보시바라밀 닦은 겁니다. 몰라와 자명만 붙잡고 가시면요. 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서 죄를 같이 짓자고 해요. 당장 나한테 이득이 될 것 같아요. 나는 힘들어요. 그 돈이 필요해요. 근데 몰라 하고 자명을 했더니 어떻게 돼요? 선정과 반야를 썼더니 부당하대요. 안 했어요. 정의바라밀, 지계바라밀을 지킨 겁니다. 자 이번 생은 좀 놀다 가고 싶어요. 우주에다가 “저 이번 생은 저 방황을 좀 하겠습니다.

35:02 찾지 말아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몰라 하고 자명을 했더니 또 해야 될 일이 보여요. 그럼 정진. 이게 나는 부지런하고 싶지 않은데 부지런해지게 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불성의 은총으로 우리는요 불성과 소통해서만 가면 몰라와 자명이라는 이게 딱 이쪽에 안착되어 버리는 순간 여러분은요 성령과 함께 계속 불성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놀다가도 또 가고 쉬었다가도 또 가고 계속 어디 길을 가요? 육바라밀의 길을 계속 가요. 이런 식으로 무량하게 닦아가는 중에 그 닦음이 익어가다 보면요 마지막 해행발심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냥 육바라밀이 이해가 되고요. “육바라밀이니까 해야지” 하고. 하기 싫어도요 몰라 자명이 자동으로 돌아가는데 이제 육바라밀이 자명하다는 것까지 확연히 알아 버리고 나니 자동으로 돌아가는데 이제 자명함의 기준이 단순히 일체유심조니 아공 법공이니가 아니라

36:02 이제 육바라밀이 자명의 기준이 돼버린 순간 이 양반은 1지 보살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 입장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1지 보살이 됩니다. 그 경지를 지금 묘사해 놓은 거예요. 첫 번째 아승지겁(무수겁)이 장차 가득 차려고 할 때. 장차 첫 번째 아승기겁, 1지 보살이 된 아승기겁이 꽉 차려고 할 때 ‘진여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현전(10주․10해)하며. 참나의 진리가 현전해요. 즉 육바라밀을 정확히 이해하며, 이게 이제 레벨로 얘기하면 대승불교 레벨 체계로 말하면 10주 10해에 해당돼요. 즉 같은 말입니다. 10주를 다른 이름으로 10해라고도 해요. 그러니까 10가지, 1주니까 1주부터, 10신 다음 단계인 10주의 경지를 닦는다 이렇게 상징하는 겁니다. 사실은요 이렇게 단계가 체계적으로 있는 게 아니고 육바라밀을 이해하는 단계일 뿐이에요. 10주 다 겪고 10행 가는 게 아니고요 한편으로는 육바라밀을 이해할수록 그런 10가지

37:06 이해의 단계가 깊어져가고 또 이해한 만큼 실천하는 중에 10가지 실천의 단계가 깊어져가요. 10주 10행이 꼭 이렇게 10주 다음에 10행 있는 것처럼 경전에는 설명되지만 저는 그렇게 안 봐요. 10주와 10행이 함께 닦여요. 닦는 바(10행)가 형상을 떠나 있다(10회향). 안 만큼 실천하고 안 만큼 실천하고 하는 중에 닦여가다가 점차 형상을 떠나게 된다. 자 해행발심은요 이제 1지 직전이에요. “내 참나는 육바라밀로 생겼어.” 기독교인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돼요. “하느님은 육바라밀로 생겼습니다. 나는 늘 하느님 안에서 애쓰지 않고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1지 보살이에요. 엄청난 경지입니다. 이분은 이미 거룩한 자녀가 되신 분이에요. 하느님을 내 안에 품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초석이 닦인 양반이에요. 이것은 놀라운 겁니다. 하느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38:02 구현할 수 있는 데 있어서 전문가가 된 거예요. 그 전에는 “내 안에 하느님 계십니다의 전문가”인데 이제는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단계가 엄청 귀하고. 이걸 이제 마지막에 가서 형상을 떠난다는 건 뭐냐면요? 보세요. 내가 육바라밀을 이해했죠. 육바라밀 실천했죠. 그 다음에 이걸 내가 했다고 생각 안 하고 “나는 하느님의 뜻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해서, 형상이 없다는 건 “내가 닦은 것마저도 하느님한테 회향해버린다”는 겁니다. “이건 하느님 덕입니다. 부처님 덕입니다” 하고 돌려버려요. “내가 잘나서 한 게 아니고 내 안에서 신성이 한 겁니다”라고 돌려버리는 것을 닦은 바가 없다, 형상을 떠났다라고 하는 겁니다. 이 한 줄에 공부가 다 나와요. 1주 보살이 1지 될 때는 어떻게 닦나요? 일반적으로 경전에는요 “10주 10행 10회향을 닦아야 된다”라고 한 것을 이

39:00 대승기신론은 놀라운 게 한 줄로 설명해버리는 거예요. 실전 팁입니다. 육바라밀을 이해하고 실천한 뒤에 털어버리면 된다는 거예요. 육바라밀을 이해하고 실천한 다음에 “이건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불성이 한 겁니다” 하고 돌려버리면 즉 이것은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불성이 한 겁니다. 내가 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거들었을 뿐 하느님이 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한 육바라밀의 모든 작품은 나와 남 모두를 위한 거고 나 개인만 위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한테 돌리는 맛 하나가 있고 이 모든 것은 부처님 덕입니다 하느님 덕입니다 하고 절대계에다 돌려버리는 맛이 있어요. 이게 보살도입니다. 보살도 닦는 기본이에요. 요즘 화두선 터져가지고 견성해서 저 암자에서 하루 종일 참나 안에 살면서 “밥을 먹어도 참나요 물을 먹어도 참나요 이 모두가 참나 작용이구나 이게 보살도구나” 하고 사는 분들이 있어요. 착각이십니다. 그거는 1주 보살의 경지예요. 1지는요 나를 만나는 중생이 이 우주랑 둘이 아니라는 걸 아는

40:03 차원도 멈추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어떻게 함께 수작해야 되는 지까지 알아내요. 육바라밀로 수작할 때 좋은 과보가 지어진다는 거, 나와 남 모두가 놀라운 결과물을 얻게 된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이에요. 이 양반은요 이제 어디 한군데 매어 있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계속 육바라밀, 양심이 자명하다고 하는 데 가서 다 손을 거들어주고 동사섭이라고 함께 중생과 구르면서 모두 잘 되게 해 주는 일만 합니다. 자기도 포함해서 모두 잘 되게 해주는 일만 해요. 그게 제일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거 알아 버렸어요. 이런 분은 이제 1지를 향해 가고 계신 거예요. 아까 1주면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게 1주라고 했죠. 근데 실제로는요 조금 더 소승성이 강한 수행들은요 1주 중에서도 참나에 안주한 기쁨을 노래하는 걸 더 강조하고요 기독교나 유교나 이런 양심철학이 확고한 데는요 더 대승적인 데는요 1주 중에서도 지금 해행까지 온 1주, 아직 1지는 안 됐으니까 1주는 1주인데

41:04 해행발심까지 해야 인정받습니다. 실제로 기독교에서 천국 가는 요건은요 좀 달라요. 아미타 불교, 극락 가는 데는 1주 정도면 돼요. 아까 말한 1주 초입 정도면 되는데 기독교에서 천국 가는 요건은 해행발심 정도 해야 돼요. 1지는 아니더라도 1주 중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삶을 실제로 살아서, 이걸 해행발심을 기독교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거룩한 열매를 맺었다”라고 해요. 아까 신성취발심은요 기독교에서 뭐라고 하냐면? “칭의를 이루었다.” 즉 의로운 열매가 맺혔다. 그런데 다른 말로는요 아직 온전한 열매는 아니기 때문에 의롭다는 열매가 맺힌 건 맞는데요 익지 않은 열매예요. 기독교에서 이렇게 나와요. 칭의, 신성취의 열매에 대해서 칭의의 열매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익었다는 말을 쓰지 않고 “장차 거룩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다”라고 그래요. 그런데 성화를 통해서, 성화라는 것은 이해와 실천인데 하느님의

42:01 뜻의 이해와 실천을 통해서 맺어진 열매는요 “거룩한 열매”라고 해요 바로. 의로운 열매, 거룩한 열매 해서 단 익은 열매라는 거죠. 그때는 익어버린 열매다. 달라요. 익어 버려서. 여기서 증득은요 수확했다는 겁니다. 수확했다는 거. 기독교에서 증득은 천국 가는 건데 지금 이 대승기신론에서 증득은 1지 보살 되는 게 증득이에요. 보살은 끝없는 보살도를 해야 되니까 천국 가는 것도 목표가 아니에요. 더 노련한 보살이 되는 게 목표죠. *1주가 된 이후 6바라밀의 ‘닦음 없는 닦음’(①보시선, ②지계선, ③인욕선, ④정진선, ⑤반야선)을 성취하면, 그 안에 10주ㆍ10행ㆍ10회향이 갖추어짐. 자 1주가 된 뒤에 육바라밀의 닦음 없는 닦음을 성취해버리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반야를 제가 선이라고 표현해 봤어요. 왜 그러냐면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이해하시고 있어요. 반야바라밀 이런 말은 많이 써요. 그런데 이 바라밀이 뭔 의미인지 잘 모르세요. 그게 선(禪)이라는 거예요 선. 즉 보세요. 보시바라밀은요 자

43:00 내 양심이 남하고 나누라고 한다는 걸 이해하고요 양심의 명령을 이해한 다음에 나눠요. 실천한 다음에 어떻게 해요? “내가 한 거 아니야 하느님이 한 거야 부처님이 한 거야.” 몰라 하고 털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게 그대로 선이에요. 선에서 나오는 보시고 또 보시를 통해 선을 닦는 거예요. 두 가지 의미가 다 가능합니다. 선정에서 나오는 보시가 보시바라밀이고 보시를 통해 선을 닦고 있어야 보시바라밀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왜 이 얘기를 드리냐면 화두선만 최고인 줄 알아요. 화두선은 어느 한 가지예요. 저 말단의 하나예요. 더 중요한 선이요 보시선 지계선 인욕선 정진선 반야선입니다. 이 선을 바로 닦으시면 여러분 삶에서 바로 견성이에요. 자 남하고 나눌 때 평정심 갖고 남하고 나눌 수 있으면 보시선이에요. 상대방이 와서 나를 죄로 유혹하는데 죄를 딱 안 짓겠다고 하면서 마음이 평정심이 유지되면 지계선이에요. 그대로 깨어나요.

44:04 근데 “야 술 먹으러 가자.” “나 오늘 술 안 먹기로 했어 안 돼” 하고 보내고 나서 막 몸살 앓고 끙끙 앓고 이게 지계는 맞는데 지계선은 아니죠. 계율은 지켰어요. 억지로 지켰는데 선은 아닌 게 뒤끝이 엄청나다구요. “보시 좀 주면 안 돼요?” 줘요. 주고 나서 막 앓아눕고. 다시 달라고 해볼까 했다가 또 말았다가 이러고 있으면 이게 선이 아니고, 그냥 보시는 보시인데, 공식적으로는 보시로 기록이 되는데 우주 카르마에는 주긴 줬음, 우주에 이렇게 쓰인다고요. 주긴 줬음. 참기는 참았음. 그렇죠. 근데 이게 선은 아니라고요. 바라밀은 안 붙는다고요. 흔쾌하게 한 게 아니면 바라밀 아니에요. 바라밀은 깨어서 하고, 하고 뿌듯해야 바라밀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그대로 선이에요. 정진선, 여러분 집에 가서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한다. 그럼 정진은 맞아요,

45:00 하긴 했음. 근데 “오직 할 뿐” 하는 그 마음은 아니거든요. 할 뿐의 마음은요 할 때 마음이 평온해야 돼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안 되면요 선에서 정진이 나오게 하면 돼요. 정진이 선이 되게 하면 되고, 정진하되 몰라 해버려도 되고, 몰라 하고 있는 중에 나오는 정진력으로 빨리 가서 해버리면 정진선이 됩니다. 이걸 닦으시라는 거예요. 이후는요 이거를 본격적으로 닦는 과정이에요. 육바라밀을 이렇게 총체적으로 닦다보면요 나한테 뭘 원하는지 하느님의 속뜻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일 때가 와요. 우주는 뭘 원하는지? 뭘 해야 카르마가 바뀌는지? 우주는 선명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게 육바라밀이에요. 육바라밀 없는 종교는요 꽝인 게요. 육바라밀이란 말은 안 써도 어떤 식으로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근데 육바라밀이 좋은 게 육바라밀을 바로 아시면 뭐가 선인지 악인지 바로 알 수 있어요. 여러분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뭘 선으로 보시는지 악으로 보시는지 알 수 있어요. 내 뜻대로 보면 내 욕망이 채워지는 게 선이고 나를 좌절시키는 게 악이죠. 그런데 하느님 뜻이라면 뭘까요? 즉 뭐가

46:08 하느님의 욕망을 충족시킬까요? 뭐가 하느님을 좌절시킬까요? 이걸 알아내시면 그때 여러분은요 선업이 뭔지 악업이 뭔지 알 수 있어요. 그전에는요 종교에 가면 얘기해요. 선은 해라. 악은 하지 마라. 그런데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는요 못 가르쳐줘요. 여러분 어느 종교든 가서 “뭐가 선이고 뭐가 악입니까?” 그러면요 “경전을 많이 봐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하는 게 선이요 아니면 악이다” 이렇게만 얘기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지금 지구상에서 다 알아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게 그럼 결국 선악을요 엉망으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은 모른다는 거예요. 확률상 내가 믿는 선이 악일 확률도 꽤 높다는 겁니다. 여러분 겁나서 뭐 하시겠어요. 결국 이런 분들은 “음 다 됐고 참나로 도망가자” 해서 다시 참나로 들어가서 문 잠그고 안 나오십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선악도 판단 힘들고 모르겠다” 하고.

47:04 그런데 그 경지가 1주 아래의 경지에서는 용납이 되는데 1주 이상은요 아주 모르지 않아요. 이미 하느님 뜻을 다 알 수 있어요. 선정과 지혜가 흐른다. 알 수 있어요. 충분히 알 수 있어요. “저 석사인데요.” “그럼 박사과정 들어와 너 할 수 있어.” “저 아직 안 될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어.” 전문가가 보면 “너 할 수 있어 예요.” 근데 할 수 있다는 거지 잘한다는 건 아니에요. 이해되시죠? 이 정도까지 이해하시면 감각이 선명해집니다. 지금 육바라밀선을 닦을 준비가 되셨는가? 그러려면 먼저 선정과 반야가 몸에 좀 체화되셔야 이게 좀 쉬워요. 수월해져요. 요거 기본 하고 오시라는 거예요. 하고 오시면 본격적으로 육바라밀 닦는데 다른 거 없습니다. 아까 대승기신론에서 얘기했죠? 육바라밀을 이해하고 즉 진여법을 이해한다고 그랬죠. 진여는 참나입니다. 자 이걸(구공) 왜 진여법이라고 하느냐? 이 공을 진여라고

48:03 해요. 보세요. 참 진(進)자, 거짓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거짓도 없고 똑같을 여(如)자, 늘 똑같아요. 벌써 현상계는 이런 게 없습니다. 참된데 늘 똑같다. 이건 절대계 얘기에요. 진여는 공성의 세계에만 있습니다. 텅 빈 공의 세계에서만 진여가 가능하고. 그런데 이 진여에 법이 있대요. 진리성이 있어요. 각종 진리들이 이 안에 들어있다는 거예요. 진여 안에 있는 진리성을 이해한다. 제가 구공이라고 한 게 같은 말이에요. 진여법은 진여 안에 갖춰져 있는 진리를 얘기하는 겁니다. 구공이라는 건 진리를 갖추고 있는 진여를 얘기하는 겁니다. 같은 말이죠. 이거를 아시냐는 거죠. 참나가 텅 비고 황홀하고 시공을 초월한 줄만 알지 거기에서 어떤 진리를 가지고 우주를 재단하고 있고 선악을 판단하고 있는지 모르시잖아요. 그러면 아무리 참나 안에 살아도 뭔 문제가 생기느냐? 선악을 모르고 판단하실 수 있다, 오판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49:07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나는 살았는데 깨어서만 살면 선이려니 하고 깨어서 살았더니 알고 보니 주변 사람들도 날 악이라고 하고 내가 지은 모든 카르마들이 사실 남들한테 고통을 주었고 따라서 우주로부터 악으로 판단을 받았다면 심각한 겁니다. 여러분 나는 깨어서 살았는데 딱 죽고 났더니 지옥 쪽에서 와서 날 데리고 간다 그러면 억울하죠. 저는 항상 참나 상태였는데요. “응. 지옥에서도 참 상태로 잘 지내게” 하고 데려간다고요. 뭔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이게 답이 안 나오는 게. 참나는 애초에 시공이 초월한 세계니까 여기는 천국 지옥이 없죠. 그런데 현상계에서는 지은 대로 받는단 말이에요. 이게 심각한 거예요. “저는 깨어서 늘 살았는데요.” “그러면 깨어서 벌을 닫게” 이 말밖에 못 나옵니다. 왜? “너가 깨어 있었다는 건 맞아. 그런데 너가 한 짓은 다 악이었어. 그래서 현상계

50:02 적으로는 지옥이라는 과보가 어쩔 수 없어. 너는 계속 깨어 있어 괜찮으니까.” 이 논리가 나오는 거예요. 이거를 나중에 못 받아들입니다. 황당해하세요. 왜냐하면 인도 경전들이 주로 깨어있는 사람은요 어떤 카르마도 안 짓는다고 경전에서 가르쳐 버려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게요. 왜 제가 얘기드리냐면 저는 그런 사람들하고 살아봤는데 심각해요. 소시오랑 사는 거예요. 소시오패스랑 사는데 일반 소시오패스보다 더 극강입니다. 참나 상태의 소시오패스는 죄의식 자체가 없어요. 일체를 참나의 작용으로만 보고요. 잘한 것은 다 자기 탓이고 또 잘못된 건 다 남 탓이면서 나는 늘 깨어서만 하고 있다는 것만 주목해요. 다른 걸 안 봐요. 그런데 옆 사람들은 바로바로 지금 상처를 입고 있어요. 즉 고통이 발생하면 우주에서는 악으로 봅니다. 그런데 본인은 “나는 깨어서 했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요.

51:01 황당한 게 되는 거예요, 이게 우주에서 통할까 이거죠. 안 통합니다. 보살들은요 우주법 전문가여야 돼요. 참나 각성한 사람이 우주법 전문가는 아니에요. 참나 상태에서 머물 수 있는 스킬 하나를 얻은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제가 얘기하는 보살이라는 건요 “우주법 전문가”예요. 그래서 우주 어디를 가도요 어느 별 어디를 가도 생명체 있는 곳에 가서는요 선악을 판단해 줄 수 있고 선으로 가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보살입니다. 이것은 지구상의 그런 좁은 선악관이 아니에요. 참나 차원 우주적 차원에서 선악의 감각을 갖고 계셔야 돼요. 어려운 거 아닙니다. 이렇게 하시면 돼요. 즉 참나 각성한 다음에, 선정과 지혜를 얻은 다음에 그냥 살아가시면 사실 알 수 있어요. 살다가 이렇게 마음을 써 봅니다. 그러면 안에서요 참나가 경고음이 울려요. “찜찜찜찜 찜찜” 그럼 이걸 조심하시면 돼요. 근데 오판하고 있는 견성자는 어떻게 오판해 버리냐 하면 “찜찜찜찜 찜찜”

52:02 “에고는 그렇게 계속 놀아라. 나는 깨어있을 뿐” 하면서 참나에서 오는 신호도 에고의 신호인 줄 알고 착각해요. 그래서 마음대로 계산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분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해자가 속출해요. 근데 자기는 아니래요. 자 그분의 의견을 제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요. 자 100% 인정하겠습니다. 그분이 “이 인생이 꿈인데 왜 선악을 따지고 있냐?”고 하는 말 제가 다 인정하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거예요. “이왕이면 좋은 꿈을 꾸라”는 거예요. “어차피 꿈이라 하더라도 이왕이면 남도 좋아지는 꿈을 꾸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분 꿈은 되게 악몽이냐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버리시면 본인만 좋고 주변은 다 악몽입니다. 이 정도만 말씀드릴게요. 자 본격적인 해행발심의 탐구를 들어가기에 앞서서 5분 쉬겠습니다. 5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