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4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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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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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8. 08. 25. 土.
게시일자 2020. 09. 20.
동영상 길이 49:25
강의 중 인용 도서 -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dm0XBWc5KoM



0:12 옛날 복희씨가 중국 고대의 왕이라고 그냥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되고. 복희씨 이러면 저희 봉우 선생님은 항상 복희씨가 단군이다 늘 주장하셨는데. 복희씨 그러면 우리 옛날 동이족의 군장이거든요. 중국에서도 지금 홍산문화랑 연결을 지어서 설명하죠. 복희씨 그러면 중국에서도 엄청 귀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팔괘를 처음 그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복희씨가 팔괘를 그었다는 증거는 없어요. 물증도 없고 다만 저는 그렇게 풀어요. 팔괘의 어떤 철학적 원리를 가르쳐준 양반 정도로 아시면 좋아요. 실제 팔괘가 복희씨 때부터 그어졌다는 물증은 없거든요. 괘는 후대에 그었더라도 이런 팔괘를 그을 수 있는 어떤 철학적 원리를 가르쳐 준

1:07 그런 위대한 임금입니다. 왜 복희씨가 중요하냐? 주역을 쓰신 분들은 공자님부터 동이족이었단 말이에요. 공자님이 은나라 황족이에요. 주나라 때 살면서 고대문화를 찾아 다녀요. 주나라 문화를 찾아다닌 건 아니죠. 고대문화를 자기는 좋아한다고 밝혀요. 그러면서 논어에 보면 내가 한 것은 창작한 건 하나도 없고 술이부작, 난 다 진술만 했지 창작한 건 없어. 그러면서 이 얘기를 해요. 나는 독실히 옛날 걸 좋아했을 뿐이야. 고대문화를 좋아했을 뿐이야. 은근히 내 작업을 내 선생님인 우리 노자한테 견주어 봐. 이런 게 구절에 나옵니다. 이걸 노자로 잘 안 풀어요. 노팽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앞에 나 아자가 붙어있어요. 우리 노팽한테 견주어 봐. 근데 주자나 다

2:04 그 주를 낸 양반들은 그 노팽을 은나라 때 어떤 유명한 현인으로 풀려고 해요. 그런데 주자문집을 보면요 주자도 노자라고 풉니다. 사서집주 낼 때는 딱 노자라고는 안 하게 두루뭉술하게 푸는데 자기 문집에서 자기 도반들하고 편지 글 주고받을 때는 그 양반을 노자일 거라고 노자라고 풀어요. 주자는 유교가 불교나 도교보다 최고다라는 걸 밀어야 되는 당시 시대적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 윤회론도 못 받아들이고 혹시 노자를 또 공자님의 스승이라고 해버리면 어떻게 돼요? 도교가 더 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되게 경계하신 거죠. 그런데 자기들이 편하게 개인적으로 편지 보낼 때는 노자라고 풉니다. 이 아이디어도 주자한테 얻은 거예요. “어 이게 노자일 수 있구나.” 실제로 확인해 보면 공자님은 예기에서도 한 4번 정도 “나의 스승 노자”

3:02 라고 합니다. 노자라고 보는 게 맞아요. 노자를 왜 찾아갔냐? 노자가 주나라 왕립도서관 담당자였단 말이에요. 노자한테는 고대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시 도서관 담당자라고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많은 글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공자는 노자한테 찾아가서 배운 겁니다. 자기가 증언하잖아요. 난 옛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 옛날이 언제냐? 은나라 황족이란 말이에요. 은나라 때의 문화를 좋아했다. 은나라 때 통치철학에 대해서 공자는 좋아했고. 그 은나라 때 통치철학은 어디서 온지 아세요? 은나라에서 제일 숭배한 도인 군주가 순 임금입니다. 요순. 그러니까 요순 은나라 문화를 공자님이 일단 고대문화로 보고 연구하셨어요. 근데 요순 은나라의 문화라는 것은 결국 양심철학이죠. 은나라도 양심 어겼다 망했죠. 그래서 공자님이 우시면서 은나라 망한 것에 대해서 늘 슬퍼하시면서

4:05 민심이 떠나면 그렇게 망하는 건데 정치를 잘못 해서 그렇게 됐다면서 늘 슬퍼하셨어요. 은나라 사람들을 만나면, 은나라 사람들 소식을 들으면 공자님이 슬퍼합니다. 이건 본인이 황족이라. 그런 공자님의 제자들이 주역에서 복희씨를 맨 앞에다가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동이족 전통으로 보셔야 돼요. 왜냐? 사마천 사기부터 중국에서 딱 자기들의 혈통 줄을 잡을 때 역사적 원류를 어디다 잡냐 하면 황제한테 잡아요. 복희씨는 황제 이전의 임금입니다. 근데 주역에서는 복희씨부터 시작해요. 황제가 더 나중에 등장해요. 문화를 만든 존재로써 지금 중원에서 누리는 문화는 공자님과 공자님 제자들은 복희가 만들었다고 본 거예요. 이 주역 계사전이 공자 학파에서 만든 거거든요. 공자 본인이 다 쓴 게 아니라 공자와 공자학당에서 만든 거예요.

5:02 계사전에서 복희씨부터 시작하는 건 되게 의미가 있습니다. 사마천은 역사의 시작을 황제부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보세요. 유교문화는 요순 문화를 제일 정통으로 보기 때문에 황제도 더 아래로 봐요. 그래서 주역에서 복희씨부터 이야기 시작하죠. 서경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요순부터 시작해요. 황제를 그렇게 우선시하지 않아요. 황제를 거론할 바에는 복희를 거론해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은나라 문화의 시조인 요순부터 서경을 시작합니다. 이걸 보시면 주역과 예기, 서경 이런 걸 다 관통해서 보시면 유가의 고대문화, 유가에서 추구했던 고대문화가 뭔지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희씨가 실제로 이렇게 했다는 증거는 없는데 여기서 우리가 읽어내야 되는 건 유가의 선비들은 자기들의 문화의 원류를 어디다 대고 있다구요? 복희한테 대고 있다.

6:04 황제한테 대는 게 아니라 복희한테 대고 있다. 지금은 모든 걸 황제가 만든 걸로 다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 사서에 다 황제가 모든 걸 한 걸로 회통이 됐거든요. 황제가 우리 시조다 이거죠. 그런데 홍산문화가 발견돼 버리니까 어떻게 돼요? 황제보다 이전에 황제문화의 원형이 중국에서 발견돼 버린 거예요. 사실은 지리적으로는 고조선 문명에 가까운데 중국에서는 자기들 문명의 시작으로 봐야 되니까 고조선도 거기서 나갔다. 홍산문화에서요. 그리고 홍산 이전에 만년까지 올라가는 문화가 또 있어요. 그 문화에서 고조선도 나갔고 황제도 거기서 나왔다 이렇게 설명합니다. 즉 중국 동북공정 이후 다양한 공정에서는 황제 이전의 문화를 설정해요. 그러면 이 얘기에 가까워진 거죠. 오히려 황제 이전에 복희가 있었다는 주역에 가까워진 거죠. 이게 결국 홍산문화의 리더들이고. 우리 (봉우) 선생님은 예전부터 “복희는 단군이야” 하고 자꾸 “우리 동이족의 군장

7:04 이야.“ 단군이라고 말하면 여러분 재미없어요. 한국에서 단군이라고 불렀을 때는 임금 군(君)자가 돼 버렸잖아요. 그러면 황제보다 아래거든요. 원래 그런 뜻이 아닌데 서열이 그렇게 잡혀버렸잖아요. 단군이 제가 볼 때 좀 재미없는 게 단군에서 이 군은 원래 칸에서 온 건데. 동이족은 모두 임금을 칸이라고 했어요. 징기스칸, 무슨 칸. 저 카자흐까지 다 칸이라고 합니다. 이 일대가 다. 흉노족 돌궐족 다 칸이라 그래요. 칸. 칸영화제가 있나요? 아무튼 멋있잖아요. 칸. 군. 이건 좀 마음에 안 들죠. 그러니까 단제라고 부르자는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왜냐하면 지금 서열에서 군을 이해할까봐. 그래서 제는 의역을 하는 거죠. 사실은 군을 또 버릴 수 없는 게 저

8:07 군에는 음가가 들어있어요. 칸을 한문화한 겁니다. 칸. ‘텡그리 칸’이라고 제가 보는 거죠. 단이 하면 텡그리 칸. 텡그리가 하늘이거든요. 하느님. 지금 흉노나 몽골 가도 용어가 다 똑같아요. 이 몽골족들이 옛날 동이족하고 한 라인. 동이북적까지 다 사실은 한 계통입니다. 텡그리, 하느님이라고 그래요. 용어가 같아요. 칸은 왕이고. 그러니까 삼국유사에 보면 환웅천왕이라는 말이 나와요. 환웅천왕. 환웅이 사실은 벌써 단군의 시조인 거예요. 환웅부터 텡그리 칸이었던 거예요. 삼국유사에 환웅천왕이라고 불렸다고 나옵니다. 그 천왕을 저쪽 지금 북방계 가가지고 천왕이 뭐냐? 하느님 왕이 뭐냐? 그러면 텡그리 칸이에요. 저도 거기서 단군이 왔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게 보시면 재미있습니다.

9:04 앞으로 우리나라도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안 되고 칸 이렇게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라 단군이 좋은데. 그때 임금 군자가 가지고 있는 후대의 서열화 되어 있는 그런 의식은 좀 버리고. 칸. 우리 신라에도 거서간이라고 하죠? 간이라고 간. 다 거기서 온 겁니다. 임금이라고도 불렀고 칸이라고도 부르던 여러 호칭들이 지금까지 전해 오는 건데요. 대통령 이런 거는 청나라 때 통령 이런 제도에서 온 거거든요. 통령들 중에 제일 우두머리를 총통이라고도 하고 대통령이라고도 한 거예요.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별로 의미 있는 말은 아니에요. 서양 말을 번역하려다가 보니까 그렇게 번역한 거예요. 우리 동이족 전통에서 맞는 말은 칸이에요 칸.

10:02 우리도 칸을 써 버리면 몽골이나 저쪽 위쪽 나라들과 되게 문화적으로 서로 동질성을 확 느낄 겁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대통령을 칸이라고 부르기로 했대. 제가 그냥 막 떠드는 거니까 깊이 듣지는 마시고. 재밌잖아요. 칸. 제가 복희씨에서 넘어가질 못 하네요. * 주역의 상과 법. 옛날 복희씨가 천하에 왕 노릇 할 때. 이게 칸일 때죠. 천하에서 칸 노릇을 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며. 칸 하면 뭔가 만주 벌판이 한 번 떠오르지 않으세요? 칸 하면 말 타고 달리고. 예전에 그런 기상들이 있었어요. 이런 동이족의 기상도 좀 느껴보시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형상’(상, 형이상의 근본원리)을 관찰하고요 땅을 굽어보면서 ‘법칙’(법, 형이하의 보편법칙)을 관찰했대요. 이 말이 유교의 아주 강령입니다. 이게 유학의 강령. 공자님도 이거 가지고

11:04 다 연구한 거예요. 공자님도 이런 고대문화의 흔적을 찾아내 가지고 주나라 때 당시 복원하신 군자고 보살이에요. 뭔 얘깁니까? 상은 형이상학적인 거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는 땅에서 관찰되는 건 법칙이고. 우리 지상에서 관찰된 어떤 결들은 법칙(법)이고, 하늘의 별들이 있죠. 이렇게 별들이 보이는 건 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천상열차분야지도 있죠. 우리 지금 그 만 원짜리 뒤에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죠. 하늘에서는 상, 땅에서는 법. 그런데 이것도 있죠. 땅에 있는 건 형체 아닌가 하는 거죠. 형. 하늘에선 상, 땅에서는 형도 있습니다. 주역에는 이 말도 나오고 이렇게(상-형) 짝도 되고 이렇게(상-법) 짝도 돼요. 뭐겠어요? 형이라는 것은 사물이에요. 개별사물. 법칙은요? 보편

12:02 법칙. 여기까지는 과학의 영역 아닙니까. 과학 영역.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물의 개별적인 현상 안에서.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이 펜은 개별 사물입니다. 형체예요. 법칙이 보이지는 않으시죠? 그런데 이 사물을 경험하신 대로 법칙이 생겨요. 뚜껑을 어떻게 닫아야 잘 닫히더라 이런 법칙이 생겨요. 이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더라. 사용의 법칙, 이건 제조의 법칙. 법칙들이 나오죠. 그게 다 보편법칙입니다. 그래서 형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어요. 사물이 있으면 원리가 있어요. 그런데 하늘에 있는 상이 상징하는 건 시공을 초월한 형상, 그래서 근본원리를 상징합니다. 하늘의 별자리도 상징하지만 고대의 하늘의 별자리가 상징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진리였어요. 지상에서는 만져볼 수 없는, 이 현상계를 초월해 있는 그리고 이

13:00 지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근원이 되는, 또 별이 빛이죠. 빛으로써의 어떤 그림. 이런 게 영적인 진리로서 존재한다고 본 거예요. 태양이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었듯이 별은 눈에 보이는 진리였던 거죠. 그래서 상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철학적으로는 저 상이 의미하는 건 뭘까요? 별자리도 어차피 물질이잖아요. 물질이거나 형이하학적 존재물이잖아요. 저 상이 상징하는 건 그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근본원리입니다. 요렇게 설명 드리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복희씨가 결국 팔괘를 그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복희씨가 단군으로서 인민들한테 민중들한테 이 철학을 가르쳐 준 거예요. 형체는 산이죠. 그럼 산의 어떤 법칙이 있겠죠. 그 법칙의 정보가 이미 하늘에 있잖아요. 산을 만들어낸 근본원리가 있고 보편법칙이 있겠죠. 그럼 이 보편법칙에 대해 산은 어떤 존재니라 하는 것도 가르쳐 주되 산에서는 어떤 짓을 해라. 어떤 짓을 하지

14:07 말아라. 이 상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괘를 이렇게(☶) 그려준 거예요. 이게(☶) 지금 산을 상징합니다. 기호로 그려준 거예요. 여러분 이건 거의 외계인 문자 아닌가요? 괘로 막 그려가지고 우주선에 이거 달고 다니면요 외계인들 문자가 같죠. 원래 상은 시공 없는 세계라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거를 표현해 준 게 이거(☶)예요. 상을 우리가 알아먹을 수 있게, 즉 별자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대변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산의 진리를 이렇게 괘(☶)로 그려 놓은 거예요. 이 괘가 법칙화 돼서 현실 안에서 형체로, 산이라는 구체적인 형체로 구현되는 거예요. 복희씨가 이런 철학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팔괘의 창시자로 지금까지 칭송받는 겁니다. 실제 팔괘는요 역사적으로 은나라 말기나

15:03 주나라 초에 와서나 괘가 꼴이 나와요. 그러니까 주역이 나온 시초쯤에 주역점을 본격적으로 치고. 은나라 말 주나라 초기만 해도 점을 쳐서, 음은 이렇게(∧) 하고 양은 이렇게(–) 그려가지고. 그때만 해도 점이 뚝뚝 끊어지지 않았고. 은나라 말 주나라 초만 해도 이렇게(∧-) 그렸습니다. 이게(∧) 음 이게(-) 양. 양음 양음. 복희씨가 우리가 아는 팔괘를 다 정확하게 기호로 다 그렸다라고 보시면 그건 아직 물증이 없습니다. 증거가 더 나와 봐야 아니까 저도 확답을 할 수 없습니다만 현재까지 나온 역사적인 유물을 가지고 얘기하면 저런 전법이 유행한 건 은나라말 주초인데 이런 철학적 원리를 복희씨가 가르쳐줘서 됐다라고 전해 왔던 것 같아요. 우리 같으면 “환웅이 천부경을 가르쳐 줬어.”

16:00 이렇게 전해 오듯이 “복희씨가 주역 팔괘를 가르쳐줬어.” 그런데 이 팔괘가 대단한 게요. 보세요. 근본원리는 시공을 초월한 원리인데 이게 이렇게(󰁋) 하면 지금 우리나라 태극기가 근본원리를 그려 놓은 거예요. 태극이잖아요. 태극은 우주가 나온 클 태(太)자 꼭지점 극(極)자이기 때문에 이거 엄청난 얘기예요. 태극은 온 우주가 나온 그 꼭지점을 그려 놓은 거예요. 여기서 우주가 다 나온 거예요. 빅뱅이론 아무리 까불어 봤자, 우리 태극기는 저 태극이 빵 터져서 우주가 나왔다는 거예요. 터질 때 그 안에 어떤 팔괘를 갖추고 있었느냐? 이게 이제 건곤이감(☰☷☲☵). 이게 이제 팔괘 중에 대표적인 정방위 4개만 해놓은 거예요. 이제 나머지 괘들이 있죠. 나누면 양과 음이고, 쪼개면 오행, 여기 여기 쪼개면 오행이고 한 번 더 쪼개면 팔괘가 되는 거예요. 이걸 더 쪼개면 64괘도 되는 거예요.

17:04 그런데 딱 줄여서 하나로 말하면 태극. 쪼개면 음양. 1과 0. 1과 0이 쪼개지면 끝도 없죠. 어마어마한 조합이 가능하죠. 그래서 헤아릴 수 없는 조합이 이 텅 빈 공 안에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주자도 이걸 주장하는 거예요. 텅 빈 혼연일체, 나눌 수 없는 이 태초의 에너지 안에 우주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우리나라는 그걸 딱 태극기로, 나라 국기로 만든 거예요. 이것도 지금 전 세계에서 골 때리는 겁니다. 우주는 이렇게 창조됐다 하는 것을 딱 박아놨어요. 창조만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결국 이게 인의예지예요. 인의예지 잘 따라야 된다. 이게(☲감) 인이고 이게(☰건) 예고 여기(☵리)는 의고 이건(☷곤) 지죠. 인의예지. 건곤감리가 인의예지 잘 따르자 하는 겁니다. 우주가 이렇게 나왔으니 인간도 그렇게 살자. 그래서 복희씨는 이런 철학을 얘기했을 거라는 겁니다. 이게 왜

18:00 전법이 됐느냐? 보세요. 여러분 현재 처한 처지가 형체죠. 그럼 왜 나는 지금 이런 처지에 처해 있는가와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지 법칙을 알고 싶단 말이에요. 움직이는 게 옳은지? 가만히 있는 게 옳은지? 그런데 내가 지금 처한 처지의 법칙은 어디서 왔어요? 상에서요. 그래서 점을 쳐서 괘를 뽑아내면 상과 법이 나와요. 점을 쳤더니 건괘 초효가 정(☰☰) 했다고 나와요. 자 그러면 나를 지배하는 상이 건괘의 상(☰☰)에서 이쪽 상(☰☴)으로 정보가 바뀐다는 거랑 여기서 초효 양이 음으로 바뀌었죠. 법칙은요 음양이 계속 변화하면서 일어나요. 자 불변의 이 상(☰☰)이 내 인생을 지배하다가 이쪽 상(☰☴)이 앞으로 내 인생을 지배하는데, 이게(☰) 바뀌어서 이렇게(☴) 상황이 바뀐 것이기 때문에 이 항목(☰➜☴)을 읽어보면 법칙이 나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움직여라” 하는 법칙이 나옵니다. 주역점이 놀라운 게 상과 이 우주 창조원리에 맞춰서 점을 치는 거예요. 우주

19:04 창조와 운행의 원리에 맞춰서 점을 쳐서 나를 지배하는 로고스 차원의, 근본원리 차원에서의 정보와 구체적 현실적인 팁을 얻는 거예요. 내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 지까지 알아내는 거예요. 지금은 침체의 상이었는데 앞으로는 잘 나가는 상이다.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저 괘처럼 건괘 초효면 “잠룡은 물용이다. 쓰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대가리 처박고 가만있어라.” 이런 소리죠. 지금 상이 안 좋아진다. 움직이지 마라. 그럼 나를 지배하는 로고스가 바뀌는 겁니다. 나를 통해 드러난 로고스가 바뀌는 거죠. 그러면 구체적 법칙도 따라서 바뀌죠. 그럼 현상도 바뀌겠죠. 내 삶이, 현상이 그렇게 바뀌겠죠. 이렇게 읽어내는 게 주역점 치는 거예요. 근데 사실은 저런 점을 칠 필요도 없다. 양심한테 물어보면 내가 매순간 어떻게 보편법칙의 따라 움직여야 될지 양심이, 우주의 하느님이 이미 내 마음 안에 들어와서 가르쳐 주는데.

20:03 주역점은 보조로 쓰는 거지 진짜는 내 마음 안에서 갈까요? 말까요? 갈까요? 찜찜. 가지 말까요? 자명. 그럼 움직이면 저 괘대로 점 쳐서 움직이는 거랑 실제로 똑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저 점을 쳤을 때 정보가 정확히 뜨리라고 또 아무도 장담을 못 해요. 점을 치기만 하면 정확한 점괘가 나와 줘야 그걸 믿고 가는데 그것도 장담을 못 하기 때문에 제일 자명한 건 자기 마음 안에서 바로 오는 도심의 소리, 양심의 소리에요. 그래서 그 예전에 정약용 선생이 주역 책을 쓰실 때 이런 얘기를 해요. “하늘이 우리한테 이 상을, 정보를 주실 때 안으로는 양심으로 주고 밖으로는 이 괘로 보여주신다. 이 두 개를 잘 맞춰서 헤아려서 가야 군자다.” 이게 제일 정확한 주역 이해입니다. 자기 양심의 소리는 안 듣고 괘에만 집착하시면 이 본질을 잃어 버려요.

21:00 이게 올바른 점괘인지도 모르고 내가 올바로 해석했는지도 모르는데 거기 끌려가시면 큰일 납니다. 또 밖으로 좋은 말로 노련한 점쟁이 아주 달인이 되시더라도 양심의 소리를 못 읽어내면 실수를 하게 돼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근본원리를 읽어내겠다는 거기 때문에. 이게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뜻을 읽어내겠다는 건데 밖에서 나온 점괘만 집착하고 내면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양심의 소리를 무시한다는 게 일단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걸 같이 이해해야 맞습니다. 복희씨가 가르쳐 준 게 이거다. 주자가 이걸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는데 이 상과 법을요 이렇게 풀어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오늘 불교 공부하시는 것 같으세요? 유교 공부하는 것 같으세요? 모르시겠죠. 구공을 공부하시는 겁니다. 제가 이제 구공 강의할 때 유교

22:03 것도 많이 갖다가 읽어드릴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유교는 구공에서 탁월한 성과물을 갖고 있어요. 왜냐? 불교가 대단해 보여도 일체유심조만 자꾸 얘기해요. 그러면 법공까지 얘기만, 아공 법공 얘기만 많이 하거든요. “이생이 무상하다. 열반에 들어야 된다. 일체는 마음이 만들었다.” 이 얘기만 계속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이야기가 거기에 허비됩니다. 그래서 어떤 원리로 우주 만법을 만드셨는데요? 이 얘기는 잘 안 나옵니다. 그거는 사실은 주역 보셔야 답이 나와요. 그러면 보살이 현상계에 뛰어들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육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건데요? 여러분 실제로 원하는 건 육바라밀 실전 팁이잖아요. 유교에 들어있어요. 불경에는 별로 없어요. 왜냐? 불경의 얘기들은 대부분 판타지하게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육바라밀 실천 팁을 얻으실 수가 없어요. 보살들이 하늘나라에서 제석천 만나서 이렇게 했다. 이거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하실 거예요. 유교를 봐야 공자님도 욕먹고 이런 게 나옵니다.

23:05 그래야 “아 이게 직장에서는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여러분 논어가 고전 중에 지금까지도 부동의 1위입니다. 지금도 진짜 많이 팔려요. 저더러 왜 논어 안 쓰냐고 다들 그래요. 저는 아주 얇은 논어만 냈잖아요. 논어를 왜 이렇게 보실까요? 인간관계 꼬이면 보편법칙을 찾으려고 논어를 뒤지고 계신다니까요. 제가 아는 분도 그래요. 공자님 논어 이런 거 무시하시던 제가 아는 분 와이프 분이 본인이 딱 팀장이 돼서 회사에서 팀을 맡으니까 논어를 딱 꺼냈어요. 어디서 귀신같이 또 논어를 구해서 읽고 계시더라고요. 이제 이해를 해야 되거든요. 이제 다른 사람 마음도 이해를 해야 되고 이제 팀원을 끌고 가야 되고. 사실은 본격적인 육바라밀 공부가 시작되는 거예요. 이분이 올바른 해법이죠. 그럴 때 남 뒤통수치는 책을 보시는

24:05 게 아니라 논어를 꺼내 보셨다는 것은 상생의 해법을 찾아보시려는 거니까 일단 양심적인 거 아닙니까. 사람들 안에 양심이 있으니까 그래서 다 논어 보는 거예요. 그걸 단순하게 “협상의 귀재가 되는 법” 이런 식으로만 해가지고 꼼수로 해결하려고 덤빌 수도 있어요.“ 인간관계의 귀재가 되는 법.” 대부분 보면 욕심 가지고 서로 밀당하고 이런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논어를 찾으셨다는 건요 사람 안에 이왕이면 나도 좋고 남도 좋게 문제를 풀고 싶은 양심이 작동하시는 거예요. 그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고전들이 있으면 좋겠죠. 불경보다는 사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유교가 강하다는 겁니다. 서양철학이나 유교가 강합니다. 왜냐? 실전 속에서 선악을 따지는 데서는 그 쪽이 더 잘해요. 왜냐? 불교는 실전에서 선악을 따지려고 하면 뭐라고 하냐면 “무상하다.” “고해로다.” 이래버리면 따지다가 내려놓고 열반에 들어요.

25:03 깨어나게 하는 데는 되게 도움이 돼요. 그러니까 저희 홍익학당에서는 합쳐서 가르칩니다. 앞부분에서 불교가 사람을 깨어나게 하면 뒷부분에서는 유교가 인의예지, 양심 실천, 양심분석에 의해서 실전 팁들을 제시해 주면서 이게 하나가 되는 거예요. 불교는 그런 고수의 가르침이 없었나요? 아니오. 화엄경 10지품 안에 10지가 되는 과정이 다 소개되어있는 건 또 불교잖아요? 이게 서로 어우러져야 된다는 거예요. 불교에 없다는 게 아니라 10지경이 뼈대만 세워놨지 그 10지까지 가려면 5지는 어떻게 양심분석하고 4지는 어떻게 분석하고 이런 분석의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는 거예요. 왜냐? 다 출가해 가지고 그냥 설법만 하고 다니신 내용만 있어요. 설법했더니 감화됐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 설법만 하고 다닐 순 없잖아요. 실전에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럼 화엄경에서 벌써 나와요. 중생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보살들이 나와요. 왕도 나오고 장사꾼도 나오고 다양하게 나오죠.

26:02 유마거사는 그러면 장사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런 실전적 내용들이 분명히 대승불교에서도 제시는 되는데 구체적인 팁은 안 나온다는 거죠. 왜냐? 그 경전이 너무 현실성 없는 내용들이 많거든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판타지한 방식으로 펼쳐져요. 여러분 장사 잘해야지 하면서 유마경을 계속 읽으시면 거기서 당장 실전 팁이 안 나옵니다. 지금 그렇죠. 유마경은 벌써 도인으로서 행동을 하시지 이미 그 캐릭터 자체가 현실에서는 약간 만나기 힘든 사람이에요. 그런 부분들에서 논어 맹자를 보시는 게 좋다 하는 거죠. 제가 예전부터 권해드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논어 맹자를 그냥 보시면 잘못하면 또 꼰대 하나가 출현하고 맙니다. 보살이 나와야 되는데 또 극강의 꼰대가 하나 나오고 끝납니다. 맹자왈 이래 버리면 남 지적만 하고 다니는 분이 나오니까 논어 맹자를 읽을 때 어떻게 읽어낼 거냐? 그 부분을 지금 말씀드립니다.

27:04 구공연구기로 읽으셔야 된다. 논어 맹자를 구공 실전 연구기로 읽으셔야 된다. 그러면 유교도 거듭나는 거예요. “조선시대부터 유교 공부를 우리가 얼마나 했는데 유교를 지금 또 공부하라는 말이냐?” 불교는 몇 천 년 했는데 왜 제가 또 다시 하라고 하겠어요? 새로운 안목으로 접근하시면 새로운 진리가 보입니다. 구공의 연구기예요. 공자나 맹자나 이 많은 철인들은, 성인들은 사사로운 뜻으로, 이런 꼼수와 아집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보신 분들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 자기 양심의 소리대로 한 번 문제를 부딪쳐서 풀어보신 분들이에요. 그 경험치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실천 팁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좀 기본으로 아셔야 될 게 아까 대본과 달도 얘기했죠. 요 대본을 근본원리, 달도를 보편법칙 그랬단 말이에요. 이거를 주자가 명쾌하게 잘 정리를 해줍니다. 소이연.

28:05 소이는 만물의 까닭, 근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소당연. 당연이란 말은 지금도 우리가 쓰니까 요건 좀 이해가 쉬우시죠. 소이가 뭐냐? 까닭이 뭐냐? 이건 뜻이고요. 소당연. 그 합당한바, 마땅히 그러한 거, 마땅히 그러한 바는 뭐냐? 말이 좀 안 와 닿을 수 있지만 그걸 제가 풀어드립니다. 보편법칙. 또 어떨 때는 실천법칙. 두 가지 뜻을 다 알아두시면 좋아요. 왜냐하면 존재의 문제나 당위의 문제가 다 보편법칙의 문제예요. 즉 존재는 어떻게 생겨 먹었냐? 자 물리세계에서는 존재의 문제가 크죠. 즉 “어떻게 굴러가고 있냐?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느냐?” 그게 보편법칙이고요. 당위는 뭐냐면 인간의 문제의 오면요 인간의 문제는 또 당위의 문제 이게 많아요.

29:00 즉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해되시죠? 어떻게 해야 되나? 내 몸뚱이는 어떻게 생겨 먹었냐? 그럼 나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존재와 당위의 문제가 다 있죠. 다 보편법칙이에요. 형이하의 세계에서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게 옳다 하는 건 다 보편법칙입니다. 소당연의 보편법칙.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 형이하의 세계에선 마땅히 그렇게 해야 자명한 것들이 있어요. 마땅히 그렇게 해줘야 돼요. 주자가 어떤 예를 드느냐 하면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타오른다. 그건 물리법칙이죠. 소당연에서 그래요. 소이연의 세계는요? 요거는 형이상학적인 근본원리입니다. 근본원리. 이것(근본원리)은 시공 안에 자취가 없어요. 이거(보편법칙)는 시공 안에 반드시 형상화된다. 자 보세요. 보편법칙은 반드시 형상화된다 그랬죠. 이 소당연의 세계는 형체화 됩니다. 현상으로 나타나요. 자 마무리. 동양식 창조론을 전개해 볼까요. 주역의 창조론 아까 말씀

30:04 드렸어요. 태극 안에 이런 진리(소이연)가 들어 있다가 이 진리가 법칙(소당연)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런 현상, 사물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창조가 돼요. 태극은 동양에서 하느님이죠. 하느님 마음 안에 진리가 들어 있다가, 근본원리가 들어 있다가, 이게 우리가 아는 음양 오행 팔괘, 이런 진리가 들어 있다가 그 진리가 시공 안에서 일정한 법칙을 형성하면서 만물을 만들어내는 거죠. 됐죠? 우리는 이 원리에 따라 살아가야 되는 거죠. 그래서 중용에서 말하는 희로애락이 없는 세계, 즉 시공을 초월한 세계, 어떤 육근의 작용, 몸과 마음의 어떤 작용도 없는 세계에 들어가면 천하의 만물의 큰 뿌리가 되는 진리가, 음양 오행 팔괘가 들어있다 하는 겁니다. 그 대본이 근본원리 소이연이고, 희로애락을 실제로 굴리면서 양심껏 잘

31:05 자명하게 굴리는 건 조화고. 그게 모든 인류가 걸어야 할 공통된 길이다. 이게 뭐냐면 마땅히 그래야 할 당위법칙(소당연)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마땅히 희로애락을 잘 경영해서 살아야 된다. 이게 공부 다 예요. 왜 동양에서 이걸 주역이라고 했냐? 소이연은 불변의 태양입니다. 소당연의 세계는 변화하는 달이에요. 합치니까 뭐죠? 역. 음양. 동양인들은 우주를 볼 때 여러분이 보는 저는 변화하는 저죠. 달의 저예요. 달이 상징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계속 변화해요. 커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태양은요? 변치 않아요. 동그랗게 그려놨죠. 지금 우리 학당 로고가 저기 갑골문에서 태양이에요. 동그란데 점 하나 딱 찍어놓은 거. 재밌는 게 원래 달은 이렇게 그렸어요. 달은

32:04 갑골문에 이렇게(☽) 그렸어요. 태양은 이렇게(⊙) 그리고, 달은 이렇게. 근데 지금 달은 선 두 개를 그어놨어요(月). 그래서 뒷사람들이, 사람들이 양은 홀수니까 태양에는 점 하나. 짝수가 음이거든요. 음이니까 이렇게 짝수를 그었다. 아주 여러 가지로 이 해와 달 안에서 찾아냅니다. 해와 달 해가지고 음양. 이게 우리 존재를 다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달의 세계예요. 현상계. 눈에 안 보이는 세계는요? 태양의 세계. 절대계가 있어요. 여러분 내면의 절대계. 지금 우리가 서로를 보고 있는 것은요 눈에 보이는 세계만 보고 있는 거예요. 형체와 그 형체를 굴리고 있는 법칙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과학의 영역에서 연구하는 건 형체와 법칙만 연구해요. 철학의 영역은요? 상을 연구해요. 애초에 시공을 초월한 진리의 세계에 어떤 영적 정보가 있었길래

33:05 우주 만물이 꼭 이 꼴로 나올까? 이게 음양 오행 팔괘입니다. 나아가서 64괘. 그걸 가지고 연구한다고요. 이게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예요. 로고스를 바로 연구하면 우주가 어떤 원리에서 만들어졌고 굴러가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자 존재,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도 알 수 있고, 당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다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참나를 정확히 읽어내면 존재론적인 문제도 풀리고 이런 실천론적인 문제도 다 풀립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명상을 해서 견성을 해도 참나를 자각하기만 해서는 하나도 안 풀려요. 그런 분들은 어떻게 우주가 탄생됐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도 명상의 달인이 한 말이에요. 자기가 “60년째 참나 상태에 머물러도 아직 모르겠는 게 왜 이 우주를

34:00 참나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아는 거예요. 참나에서 현상계가 나왔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왜 다시 돌아가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분이죠. 사실은 오직 그냥 참나로 있을 뿐인 거예요. 솔직하게 얘기를 안 해줘서 그렇지 사실은 거기는 다 몰라요. 그분들이 아는 건 이거예요. 이렇게 하면 에고의 세계로 나오고 이렇게 하면 참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거만 알아요. 이왕이면 참나의 세계에 살자 하고 사시는 것뿐이지 그 정도 공부, 아공 법공 단계에서는요 왜 창조됐는지 왜 우리는 이렇게 수행을 해야 되는지 다 모릅니다. 그런데 구공까지 가면 왜 그래야 되는지 보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가 나와요. 이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거기서 의문이 일정 부분 풀리는 거죠. 왜 이렇게 존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런 게 나옵니다. 신의 의도를 우리가 분명히 말로 풀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왜 그래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제 우리가 이해를 해가려면 구공의 단계로 일단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

35:03 그것도 제가 바로 모든 걸 알 수 있다고는 안 하는 게 구공이 깊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신의 뜻이 자기의 뜻으로 와 닿게 되는 거죠. 왜냐? 자기가 본래 신이니까 자기가 본래 참나니까 자기 내면에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거예요. “나는 왜 이렇게 살기를 지향하지?” 이런 거를 한 번에 다 풀린다기보다 이제 진짜로 이렇게 살면서 조금씩 알아가지 일차적으로 뭘 알아요?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런 걸 풀어갑니다. 그러다 보면 “왜 우주는 이런 식으로 굴러갈까?” 하는 것까지도 자신이 하나씩 알아냅니다. 어떠세요? 별 얘기 아닌 것 같지만 이 얘기 안에 인류의 지혜의 어떤 핵심이, 결정체가 여기 다 들어있어요. 요거만 아시면 돼요. 형이상의 세계, 형이하의 세계. 그래서 제가 구공을 강조하는 게 보살도는, 대승불교는 여기까지 온 거예요. 초기불교와 소승불교는요 요 내용들이 약해요.

36:07 아공에서, 열반에서 끝내자는 얘기, 만물의 실체를 꿰뚫어볼 때 어디까지만 꿰뚫어보는지 아세요? 이 보편법칙과 근본원리를 일부분 꿰뚫어 보는 건 있어요. 어디까지만 꿰뚫어 보느냐? 만물의 실체, 만물의 보편법칙 중에 무상 고 무아만 읽어냅니다. 형이하의 형체들을 체험해요. 아공의 전문가들 즉 아라한들은 이걸 꿰뚫어 봐요. 여기서 존재의 실체를 존재의 보편법칙을 알아내요. 그게 뭡니까? “존재들은 모두 무상하더라. 내 것이라 할 게 없더라. 따라서 내 것이 아니다.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니다.” 이걸 읽어내고 당위, 실천 속에서 무상․고․무아의 원칙을 따르는 삶을 삽니다. 무상하니까 욕심내지 말아야죠. 어차피 괴로운 거니까 현상계에 너무 뛰어들지 말아야죠. 출가하는 게 옳죠. 내 것이랄 게 없으니까 뭐 가족을 꼭 구성하거나 사회

37:04 를 구성해야 될 이유도 없는 거죠. 여기까지 연구하면 이렇게 다 내려놓고 살아가는 전문가가 됩니다. 여기도 무상․고․무아도 다 근본원리에서 나온 거죠. 이 영역으로만 계속 보편법칙과 근본원리를 연구하니까 근본적으로 우주가 왜 굴러가는지? 왜 이렇게 이 모양으로 살아가야 되는지? 모르죠. 관심사가 아니거든요. 우주에는 왜 하늘이 존재하고 땅이 존재하는지가 무상․고․무아에서 나옵니까? 하나도 안 나오죠. 이제 견성까지 하신 분은 여기에 플러스 법공까지 연구해요.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다”까지 연구해요. 그러니까 그 보편법칙을 알아내서 실천법칙에 활용합니다.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다. 따라서 나는 일체를 거부하지 않고 참나의 작용으로 여기면서 살면 된다.” 여기까지 연구하시면 여러분 확철대오 하신 분이 돼요. 선불교에서 말한 견성자가 돼요. 그런데 이분도 사실 해결된 건 아니에요. 일체가 참나의 작용이라는 건 알지만

38:03 참나 안에 어떤 진리가 있어서 저게 나오는지는 설명할 수 없어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분들은 일체가 유전자에서 하는 거예요.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해요”라고 말하는 분하고 똑같다고요. “그런데 유전자 안에 어떤 정보가 있어서 저렇게 나오는 거예요?”까지는 모르십니다. 유전자 안에 있는 게놈지도를 만들어서 쫙 보여줄 정도 돼야 그게 주역이에요. 우리 영적인 세계 안에 이런 영적 유전자가 있습니다. 64괘를 쫘악 돌려서 보여줍니다. 거기서 일체가 나옵니다. 일체유심조를 얘기하시려면 이 펜은 지금 여러분의 어떤 마음에서 나온 건가요? 땅은 여러분의 어떤 마음에서 나온 건가요? 아공 법공의 전문가들은 이건 알아요. 명상에 들면 육근이 사라져요. 다시 현상계에 에고가 일어나면, 현상계에 들어오면 어떻게 돼요? 육근이 딱 나타나요. 이분은 이것만 알아요. 그러니까 현상계가, 육근이 무상․고․무아란

39:06 얘기만 해요. 육근의 실체를 여기까지 접근합니다. “육근은 무상․고․무아다.” 아공. 법공 전문가들은 어디까지 접근해요? “사실은 육근은 참나의 작용이다. 그게 실체다.” 실체에 꽤 접근했죠. 보살은 어떻게 접근해요? “육근은 우리 몸, 우리 참나 안에 있는 음양오행의 원리에서 나온 거다”까지 설명합니다. 그래야 육근이 어디에다 쓰는 물건이고 왜 육근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고요. 왜 창조를 하면 육근이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 보세요. 여러분 명상에 들었다 참나 상태에서 나올 때 좀 다른 게 나와도 되잖아요? 얄짤없이 육근이 나옵니다. 한 칠근이 나온다든가 오근이 나와도 되잖아요. 명상의 세계 들었다 나올 때는 딱 공식대로 육근이 등장합니다. 어떤 법칙이 있어요. 아공 법공만 연구해서는 거기까지 접근을 못 하는 거예요. 구공까지 연구해야 음양오행의 원리 때문에, 인도나 서양식으로 말하면 지수화풍의 원리 때문에 딱 그거 밖에 안 나와요. 지수화풍의 공식 때문에 펼쳐지면 육근이 나오는 거예요.

40:09 간단하게 이런 공식도 얘기될 수 있죠. 만물이 입체적으로 굴러가려면 6개가 필요합니다. 중심점 빼고요. 상하 전후좌우. 입체물이 되려면, 현상계 안에서 입체로 작용하려면 중심에서 여섯 점이 필요합니다. 저게 없으면 그냥 참나로만 있어요. 열반으로만 있는 게 여섯 점을 가져야 현상계 안에서 입체물로 작동을 해요. 이게 꼭 육근이 등장하는 거예요. 이런 공식들을 알아가는 게 구공이에요. 구공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면 이래요. 불교 분들이 서양철학 무시합니다. “일체를 버리지. 열반에 들어야지. 시시콜콜하게 이럴 때 뭐가 선이냐 뭐가 진리냐 왜 저 지랄하고 있지?”

41:01 그게 장자에 나오는 그거랑 똑같은 예죠. 참새나 이런 애들이 몇 만 리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나는 이 나무만 오르내려도 너무 만족하는데 쟤는 왜 몇 만 리를 날아갈까?” 이해가 전혀 안 돼요. 다른 차원의 얘기에요. 진짜 다른 차원의 얘기에요. 소크라테스가 위대하다는 것을 불자들이 이해하려면요 몇 번 임사체험을 해야 돼요. 몇 번 영적으로 모든 걸 비우고 죽었다 살아나고, 비우고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고 해야 돼요. 안 그러면요 이렇게 우주의 진리가, 다르마가 읽히는 경지로 못 가면요 절대 그렇게 못 살아요. 여러분 그렇게 못 살아요. 다르마가 선명히 안 읽히는데 감옥에서 여러분 돌아가실 수 있어요? 그분이 객기로 돌아가신 게 아니에요. 객기로는 죽을 수 있어요. 객기로 “여기서 나 멋지게 죽을 거야.” 일본에 그렇게 객기부리는 분들 많았어요. 할복이 유행일 때 “남들은 이렇게 그을 때 나는 이렇게 한 번 더 올릴

42:01 거야.” 늘 그거만 준비합니다. 시뮬레이션 엄청나게 해요. 막상 찔렀을 때 아플 수 있잖아요. 그걸 정신수양을 통해 이겨내고, 남들이 이렇게 할 때 “아 할복 잘했다” 할 때 한 번 더 하면 “야 이건 진짜 최고의 할복이다.” 그 당시 사무라이들은 멋지게 죽으려고 진짜 이렇게 연구했어요. 벚꽃이 막 떨어질 때 멋있게 죽는 게 로망일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사람이 객기로 죽을 수도 있어요. 소크라테스가 객기로 죽었다면 위대할 게 없습니다. 그 당시 더 멋있게 장렬하게 죽은 분들 많아요. 역사상 장렬하게 죽으신 분들 많아요. 지금도 티베트에서 매년 분신자살 합니다. 본인 몸에 불 붙여서 돌아가신다는 게 대단하신 분 아닌가요. 정신력은 엄청나죠. 근데 지금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소크라테스가 역사에 파문을 던진 거는 단순히 죽어서가 아니라 진리 때문에 죽었어요. 진리에 입각해 살다가 죽었어요. 그것 때문에 위대한 거예요. 소크라테스 구경도 못 합니다. 여러분이 견성을

43:03 하고 열반에 들고 별짓을 다해도 다르마를 읽어낼 수 없으면 소크라테스 근처도 여러분 구경을 못 해요. 현상계가 어떤 다르마에 의해서 굴러가고 있고 그 다르마에 따르려면 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요 답을 “목숨을 걸고도 난 이게 진리다”라고 선언할 수 있으려면,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이게 하느님의 뜻인 것을 나는 너무나 명확히 알기 때문에 나는 순교를 각오하고라도 이 뜻을 따르겠다.” 이게 진짜 순교고요. 순교는 객기로도 할 수 있다니까요. 그런 차원이 아니라고요. 일반인 중에 그런 거 못 견디는 분, 그런 거 못 참고 난 진짜 죽을래 하는 분도 있는 거고. 맹자에서 이걸 이렇게 구분해요. 혈기의 용기와 의리의 용기로 구분해요. 의리의 용기는 그게 진리라서 거부할 수 없어서

44:00 따르는 거고 혈기의 용기는 본인의 에고에서 오는 어떤 자존심 센 사람들, “진짜 나 죽을 때 죽더라도 그거 못 참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거를 구분해서 보셔야 되는데 그게 진리를 읽어낸다는 게 가진 그 힘에서 옵니다. 그걸 좀 생각해 보시면 진리를 안다는 게 쉬운 얘기가 아니에요.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육바라밀인 이유가 뭐냐면요 단학도 좋고 견성도 좋고 다 좋아요. 왜 육바라밀을 제가 제일 강조하느냐? 그 진리를 읽어내시는 눈이 생겨야 진리의 눈이 열리세요. 그러면 그때부터 이 우주는 다른 차원이 됩니다. 어떤 힘든 일이 오고 뭐가 와도 난 육바라밀로만 상대하면 그만이에요. 우주의 모든 문제를 육바라밀로 해결하실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육바라밀이 진리라는 걸 읽어내실 수가 있어야 돼요. 그 눈을 갖추기 위해 에너지가 딸리면 단학을 하고, 정신이 깨어있지 못 하면 명상을 하고, 양심성찰도 하고, 온갖 염불도 해보고 다 해보는 거예요. 아미타불한테 예수님한테 그 능력을

45:03 빌고 싶으면 기도도 하고, 부처님한테 빌고 싶으면 관세음보살도 하고, 모든 걸 다해서 여러분 역량을 총동원해서 해야 될 게 우주의 다르마를 읽어내는 겁니다. 우주의 법만 알면 여러분은 자유를 얻으실 수 있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는 게 다르마를 알고 하느님 뜻을 알면 자유가 오지. 안 그러면 여러분이 아무리 신통을 갖고 있어도요 이 신통을 부리는 게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다니까요. 여러분이 초능력이 생겼어요. 이 초능력을 어디까지 써야 될지? 어디다 써야 할지? 그걸 또 어떻게 결정합니까? 결국은 육바라밀 못하면요 초능력 가진 게 그대로 본인한테 엄청난 짐이 돼버려요. 그거 가지고 괜히 안 할 짓까지 하게 됩니다. 돈이 안 생겼으면 행복하게 살 사람이 로또 당첨되는 바람에 가족 다 깨지고 박살나는 집이 많죠. 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많죠. 감당할 수 없는데 오는 것은요 이건 사실 거의 죽으라는 거예요.

46:03 돈 관리를 못 하는 사람한테 돈이 왕창 생긴다. 이건 큰일 나는 거예요. 본인이 안 할 짓까지 하고 다 망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진리를 아는 거다. 불교에서 부처님의 본모습을 뭐라고 합니까? 법신이라고 하죠. 진리의 몸. 기독교 안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부르시나요? 진리요. 진리의 화신. 진리가,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 예수님은 말씀이라고 하잖아요. “예수님은 그냥 진리 자체야.” 이 말이 뭘 의미할까요? 소크라테스처럼 다르마를, 진리를, 로고스를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대로 사시는 분. 예수님 본인도 “항상 난 하느님 아버지 말씀대로 말하고 행동해. 난 진리 그 자체야”라고 얘기하잖아요. “나는 길이요 진리야.” 본인도 자부하시잖아요. 모든 성인들은 다 진리를 어디만큼 알아냈느냐?

47:02 사실은 그 부분이 예수님과 이런 4대 성인들 그리고 견성이나 아라한 정도 가신 분들 간에 차이를 찾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 아라한들이 부처가 되는 걸 포기한 줄 아세요? 아라한들은 절대 부처를 욕심 안 냅니다. 아예 경전에 박아져 있어요. “아라한과 부처는 18가지 절대 공통으로 가질 수 없는 능력이 있다”라고 딱 박아져 있어요. 18가지 불공법, 부처님하고 겸상 못 하는 거, 공유 못 하는 법이 딱 있습니다. 그게 박혀있어요. 여러분 남방불교 가서 스님들한테 “성불하세요” 그러면 그건 욕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전혀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열반에 드세요”라고 해야 좋아해요. 아라한을 목표로 했다는 건 열반만을 목표로 했다는 거예요. 부처되는 거 안 바래요. 부처가 되려면, 그런 진리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갖추려면 어마어마한 세월을 윤회하면서 닦아야 되거든요. 그게 차이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지, 일체를 꿰뚫어보는 눈을, 그

48:05 지혜의 눈을 갖췄다”라는 거예요. 아라한들은 그게 딸리기 때문에 누가 찾아오거나 왕이 찾아오면 아라한들은 열반에 드는 법은 가르쳐줄 수 있어요. 부처님은 왕이 찾아오면 정치의 도리를 얘기해 줄 수가 있어요. “국정은 이렇게 운영하세요.” 이게 연륜의 차이입니다. 아라한은 그렇게 못 해요. 다양한 근기가 왔을 때 대접을 못 해요. 아라한들은 배운 게 이거예요. 어떤 근기가 오든지 “무상․고․무아, 열반” 이걸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부처님은 다양한 근기에 맞게 가르쳐 줄 수가 있어요. 왜? 진리를 입체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라한은 입체적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응용이 안 돼요. 이거는 불경에 쓰여 있는 겁니다. 현재 추가로 나간 진도는 한 단락입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신기하네요. 5분 쉬고 무섭게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4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