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40강

홍익학당 아카이브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윤홍식의 대승보살의 길을 밝히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강의일자 2018. 06. 23. 土.
게시일자 2020. 09. 13.
동영상 길이 56:43
강의 중 인용 도서 대승기신론, 신약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SWgSObopCmc



0:11 저도 좀 정상은 아닌 게 각 종교 경전만 이렇게 하기도 벅찰 텐데 저는 제가 이론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부분이 꽤 있어요. 왜냐하면 다른 종교는 제가 풀어드리는 차원에서 정리해 드리는데 대승불교는요 왜 제가 손을 대냐면요 경전마다 또 다 달라요. 이걸 정리를 한 번 안 하면요 답이 안 나오게 돼 있어요. 그게 또 뭐가 문제냐? 석가모니 초기 육성을 최대한 살려가면서 이론을 전개하려다 보니까 대승을 제대로 정리를 못 해요. 제가 또 임의로 하는 게 아니라 저는 관점이 그거예요. 대승불교의 논리만 충실하게 쓸 때는 이런 식으로 이론이 전개돼야 된다는 것을 지금 보여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 대승경전들 가보면요 섞여 있어요. 화엄경마저도 소승적인 내용하고 섞여 있어요.

1:06 그러니까 당시 이런 초기불교의 영향 소승불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 한 상태에서 대승불교 논리들이 경전화되어 버린 거예요. 지금 우리는 경전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그 안에서 계속 모순이 일어나고 충돌이 일어나는데도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걸 못 보겠어서 정리를 좀 해 드리는 거예요. 대표적인 게 이것입니다. 불교의 모든 공부를 제가 육바라밀만으로 전개해 드리잖아요. 이렇게 얘기를 안 하세요. 단절돼 있어요. 육바라밀 얘기 나오다가 끊겼다가 또 육바라밀 얘기 나오다가. 유식학 책도 보시면요 자량위에서는 육바라밀을 위주로 닦아라 돼 있어요. 그럼 이제 공부, 도 닦을 때는요? 다 이런 현란한 명상법만 나옵니다. 육바라밀 얘기가 제대로 안 나와요. 그러다 갑자기 1지 보살이 나와요. 또 1지 보살될 땐 또 맞게 쓰여 있어요. 육바라밀 잘해야 1지 된다. 그럼 이게 어떻게 잘하라는 거냐가 중간에가 없습니다. 실제로 유식학 이론이나 대승불교 이론들 봐보세요.

2:01 대승기신론이 제일 나아서 제가 대승기신론 강의해 드리는 게 육바라밀 닦으라는 내용이 있어서, 1주 이후에 닦아야 된다는 게 있어서 제가 대승기신론 제일 강조하는 거고요. 나머지 경전들은요 그냥 명상 이런 현학적인 분석과 명상만 나오지 육바라밀에 대한 종합적인 어떤 수행법으로써의 제시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이 가행위 단계에서 유식학에서는요 이름은 같습니다. 보세요.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하품심사. 심사라는 건요 어떤 분석입니다 분석. 찾을 심(尋)자 연구할 사(思)자요. 뭔가 하나하나 쫓아하면서 분석하는 거예요. 하품심사가 있고 여전히 이 두 단계(1단계 하품심사+2단계 상품심사)는 심사의 단계입니다. 그 다음(3단계)에 하여실지, 아래 단계인데 여실지가 뭡니까? 여실하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즉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았다.

3:00 상여실지(4단계). 벌써 분석이 정확히 되죠. 이거(하품심사)는요 체험이 없는 건 아니에요. 명상에 기반해서, 명상의 체험을 기반에 두고 연구하라는 겁니다. 체험적 이해 가능. 체험은 있는 거예요. 선정 체험에 기반을 두고 이해를 심화시켜가는 겁니다. 상품심사는 체험에 기반했는데 이해가 심화된 거고요. 여실하게 알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여실지는 자명지에요. 자명한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거고. 여기(상여실지)는 자명한 이해가 심화됐다는 거. 우리말로 풀어 놓고 보자구요. 제가 왜 풀어 놨냐면 이게 기본적으로 초기불교 이래로 모든 불교는 단계를 4단계로 나누는데 다 이렇게 나눕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나눌 때도 이래요. 다 이 4단계예요. 그래서 수다원과, 열반을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다함과, 열반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심화됐다. 아나함과, 열반에 대한 자명한 인가가 가능해졌다. 아라한과,

4:04 이제 열반과 하나가 됐다. 이것도 다 제가 알아낸 거예요. 딴 데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다 이 4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4단계를 또 3단계로 얘기하는 게 있는데 이거(1단계 하품심사)는 믿음의 인가(신인). 이거(2단계 상품심사)는요? 순종의 인가(순인). 자 이건(신인) 진리에 대해서 이제 확신이 생긴 단계라는 거예요. 이건(순인) 확신만 생긴 게 아니라 실천까지 따라가는 단계의 인이 순종하는 인가. 나머지(3단계 4단계)는요? 법인, 진리 그대로의 여실한 인가. 그런데 인가가 가능한 단계(3단계), 심화 단계(4단계) 구별이 있을 뿐입니다. 이게 화엄경에도 그대로 등장해요. 이번에 제가 화엄경 교재 낼 때 저 단계로 1지부터 10지도 다 분석해서 거기 도표 만들어서 넣어놨어요. 보시면 기존의 화엄경 강의 때 했던 것을 더 도표화 해가지고 제가 넣어놨습니다. 모든 불교는요 저기 바둑으로 치면 9급부터 9단까지. 불교로 치면 아주 그 공부 시작해서 10지 보살 되는 데까지 다 이 4단계 분석으로 가능합니다.

5:07 이게 제 주장이고 제가 입증해서 강의 때 다 해서 올렸고 책에도 넣어놨어요. 제가 주장한 거니까 안 맞으면 제가 책임져야죠. 지금 대승 보살의 길을 밝히다 이 강의에서도 이 4단계로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1주 보살이 됐어요. 1주 보살은 이미 참나 안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뭘 체험적으로 이해하죠? 뭘 더 분석하죠? 뭘 더 자명하게 알죠? 이게 유식학에선 정확히 안 나와요. 이미 견성한 사람인데, 이미 견성했는데 뭘 더 이렇게 알아내느냐? 그러니까 또 아공 법공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공 법공을 알아내서 확실히 알고 나면 1지가 된다. 제가 거기에 대해서 반박하고 그렇게 모호하게 얘기하지 마라. 거기서는 아공 법공을 구공이라고 합니다. 자 보세요. 이게(구) 함께 구(俱)자잖아요. 아공

6:02 플러스 법공을 구공이라고 합니다. 유식학은 이렇게 설명해요. 아공이랑 법공이 합쳐진 게 구공이야. 구공을 알면 1지야. 아공 법공은 이미 1주도 알아요.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뭘 더 알아서 1지가 되는지에 대해서 한 줄로 지나가요. “육바라밀을 닦아서 1지가 된다.” 그러면 수행법을 얘기해 봐라. 아공 법공을 알아서 1지가 된다. 수행법이 뭐냐? “아공 법공에 대해서 상품심사, 하품심사, 하여실지, 상여실지를 통해서 더 증득하고 나면 1지가 된다.” 유식학 경전에. 설명서에 이런 내용만 가득합니다. 저는 과감하게 그런 거 아니다. 아공 법공을 합쳐서 구공이란 본래 의미는 구일체묘상공, 참나 안에 육바라밀이 다 들어있다는 의미에서 구공이다. 요 내용들이 단편적으로 있다니까요. 연결돼서 안 나온다는 거예요. 구공은 제가 만든 표현입니다. 근데 구일체묘상공은 원래 있는 표현이에요.

7:02 일체의 묘상을 갖추고 있는 공. 발음은 같지만, 단계도 같지만 이 구공은 아공 법공을 하나로 한 공이란 의미는 육바라밀의 공을 말하는 거예요. 육바라밀의 공 안에 이미 아공 법공이 다 녹아져 있으니까. 근데 아공 법공만 얘기하고 두 개를 합친 게 구공이다고 하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질 않잖아요. “어, 아공 법공 다했는데 뭘 더 하라는 거지?” “그게 합쳐진 게 구공이야.” 이러려면 저는 분명히 육바라밀을 갖춘 공이란 얘기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 경전에 부분 부분은 나와 있어요. 제가 임의로 한 게 아니라 부분 부분에 있는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논리 체계로 정리해 가지고 유식학에서 쓰는 이 용어, 수련의 용어들까지 그대로 써서 내용만 바꾼 겁니다. 자 뭘 체험적으로 이해해요? 구공이요. 그 구공이 뭐냐면 아공 법공을 합친 거.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내 안의 공성 안에 육바라밀이 들어있다는 걸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거.

8:05 이거 실제로 늘 참나 상태로 살아보면, 1주면 이미 육바라밀이 나온다는 걸 체험적으로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몰라와 자명만 취하면 이상하게 남을 돕고 싶어지고, 사랑하게 되고, 남한테 부당한 피해를 주면 너무 찜찜해지고, 상황을 수용하게 되고, 에고가 작동을 덜하고 참나가 더 작동하니까 상황을 수용하게 되고, 나태해지려는 에고보다 자명한 참나가 더 힘을 얻으니까 정진력이 나오더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선정의 측면에서 참나는 더 깨어 있게 되고 지혜의 측면에서는 “내 안에 육바라밀이 있구나” 하는 구공의 지혜가 가능해져요. 그게 체험적 이해 가능입니다. 이게 하품심사예요. 그런데 실제로 유식학에선 하품심사면 계속 기본적인 명상만 하고 있어요. 선정에 기반한 아공 법공

9:00 분석만 계속 시켜요. 그거 하다가 갑자기 질변이 돼가지고 1지가 된다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 부분은 빠진 부분이 있다. 빠진 부분은 뭐냐? 노골적으로 육바라밀 연구하라고 얘기해줘야 돼요. 그래야 시작도 육바라밀, 중간도 육바라밀, 끝도 육바라밀이에요. 우리가 그냥 살아도 선근을 닦으려면 육바라밀을 해야 되고, 자량위도 육바라밀이고, 가행위에서도 육바라밀을 공부하고, 이제 본격적인 1지부터 10지 단계에 들어가도 역시 육바라밀 공부만 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이걸 하나로 꿴 거예요. 원래 그런 줄 아시지 마시고 이걸 좀 알아주시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억지로 꿴 것같이 해 놓은 거예요. 그런데 억지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남들이 보면 “저거 육바라밀 성애자 아냐?” 뭐 이렇게 절 오해할 수 있는데, 원래 하나인데 이상하게 그렇게 정리가 되는데, 원인이 제가 추적해보니까 이런 용어를 초기불교부터 쓴단 말이에요. 특히 소승불교에선 부파불교 단계에 와가시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10:00 써 버려요. 제가 지금 소승불교 그런 거는 주로 부파불교를 말합니다. 그런데 거기(소승불교)서 써 버리다 보니까 이게 대승불교에도 그대로 들어와 버리긴 하는데 섞여 있단 말이에요. 초기랑 소승이랑 대승이 섞여 있어요. 저는 분명히 대승으로만 정리해드립니다. 제 강의 들으신 분들은 그냥 이렇게 아세요. ① 구공의 체험적 이해 가능, ② 구공의 체험적 이해 심화. ③ 구공의 자명한 이해 가능. ④ 구공의 자명한 이해 심화. 이렇게 하면 이제 이해되시죠. 그럼 구공이 뭐냐? * 구공의 보편법칙과 근본원리 연구. 구공의 보편법칙과 근본원리를 연구하는 방법은 뭐냐? 구공: 참나에는 6바라밀의 본성이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 자 구공이 뭐냐? 첫째 참나 안에는 육바라밀의 본성이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 말 하나 하려면 여러분 육바라밀을 겁나게 하셔야 돼요. “참나는 본래 고요해.” 그 말 하려면 명상을 겁나게 하셔야 돼요. “참나 안에 원래 아공 법공의 지혜가 있어.” 그럼 겁나게 분석하여야 돼요.

11:06 마찬가지로 “참나 안에는 본래 사랑이 있어.” 그러면 사랑을 엄청 하고 다니셔야 돼요. 문제는 사랑을 안 하면서 “참나에는 있어. 근데 나한텐 아직 안 나와.” 이런 단계에서 머무르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정 열심히 했던 것만큼 나도 같이 사랑도 하고 다녀야 되고 정의도 구현하고 다녀야 된다는 거예요. 요 간단한 것만 받아들이시면 돼요. 그러다 보면 점점 이해가 심화되어 가는 겁니다. 아공 법공도 그대로 이렇게 설명 드렸었죠. 기억하시죠. 각각 3단계로 제가 설명 드렸어요. 먼저 1단계, ① 구체적으로 체험하며 관찰하기(경험). 자 항상 순서는 이것입니다. 경험에서 개념으로, 개념에서 직관으로. 자 경험은 우리가 체험하는 것을 바탕으로 관찰하는 거고요. 개념은 뭡니까? 그 관찰한 것을 말로 정리하는 게 개념인데 요거는 보편법칙을

12:00 설명하는 게 개념이다. 보편법칙을 이렇게 말로 정리합니다. 사람이 이럴 땐 이래야 돼. 제행은 무상해. 열반은 적정해. 이게 다 개념이죠. 이거는 보편법칙입니다. 보편법칙이라는 건요? 현상계 안에 작용으로 구현되는 진리들이에요. 현상계 안에서 구현되는 진리들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말로 해 볼 수 있습니다. 단 이런 거 있죠. “참나 안에 육바라밀 들어 있어.” 이건 현상계의 이전의 얘기잖아요. “참나 안에 육바라밀의 근본원리가 원래 들어 있어.” 여러분 이렇게 말하셔도 그게 보편법칙이 돼요. 왜냐하면 현상계 안에서 말한 거기 때문에. 그러니까 언어 이전의 세계도 언어화 해버리면 보편법칙이 됩니다. 현상계 안에서 정리된 법칙들은 다 보편법칙이라 그래요. 이거를 제가 연구해내고, 내 생각은 이런데 진짜 이럴까? 예전 어른들은 뭐라고 했을까? 궁금했는데 불경을 뒤지다 보니까 실제로 예전 어른들도 언어화 안 된 거를

13:00 언어화하면 형이하의 법칙으로 분류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놀라서. 제가 예전에 그 강의 다 해 드렸어요. “대승 보살의 길을 밝히다” 초창기기 해드렸어요. 그것을 안립제라 그래요. 안립제. 언어화 돼버린 진리는요 안립제, 정립된 어떤 진리다. 정립된 진리. 언어로 정립된 진리. 비안립제가요 언어 이전의 진리 그 자체입니다. 이게 근본원리는요 언어 이전의 진리 자체를 말해요. 보편법칙은 언어화 된 거. 현상계 안에서 정리된 것은 다 보편법칙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공부를 3단계로 하는 게, 현상계 안에서 먼저 우리는 경험을 해요. 경험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정리를 해요. 자 이걸 경험하시죠? 우리 눈에는 이거 떨어지는 것만 보여요. 경험 밖에 없어요. 이거를 정리합니다. 만유인력법칙. 그런 게 보편법칙입니다.

14:00 그런데 만유인력법칙은 현상계 안에서 구현된 법칙을 말하는 거구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이 법칙, 언어화된 법칙. 그 이전에 참나 안에 있을 때의 원형의 정보 그 자체는 근본원리라고 부르자는 겁니다. 이전에 드린 설명인데 혹시 잊어버리셨거나 생소하실까봐 다시 드렸어요. 그럼 공부를 어떻게 분석해 가느냐? 무조건 깨어 있으셔야 돼요. :몰입4단계의 상태에서, 각각의 개별적 경우에 있어 6바라밀(양심)의 자명함ㆍ찜찜함의 신호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며 관찰하기(①주편심사). 몰입의 4단계 상태에서, 참나 각성 상태에서 각각의 개별적인 경우에 있어서 육바라밀의 자명함 찜찜함의 신호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며 관찰하기. 이게 불교 용어로 주편심사. 학자들이 주변심사라고도 번역하고요 주편심사라고도 번역하더라고요. 자 아시겠어요? 자 참나 각성 상태에서 양심이 찜찜하다고 할 때가 있고 자명하다고 할 때가 있는 것을 그냥 체험해 보시라고요. 내 안에 구공이 있다는 걸 체험하시려면 내 안에서 양심이 작동하는 것을

15:00 먼저 체험해보세요. 자명의 신호 찜찜의 신호를 일단 있는 그대로 체험해 보시고. 자 두 번째, ② 보편법칙(법의 작용)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기(개념). 이제 법칙을 찾아볼까요. 그 체험이 왜 언제는 찜찜하다고 하고 언제는 자명하다고 하는지 법칙을 한 번 찾아볼까요. : 몰입(정)과 몰입사고(혜)로 각 개별상황에서 느낀 에고의 체험을 분석하여(②주편사찰). 자 몰입과 몰입사고로. 일단 1주 보살은 되셨거나 1주 보살이 안 되셨더라도 이건 공부 가능합니다. 1주 보살 아니어도 이 공부는 미리 시작하는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지금 제가 공부법 말씀드린 건 1주 이후에 하라는 게 아니고 지금부터 하셔야 돼요. 지금부터 하시되 1주 이후가 되면 저렇게 단계적으로 공부가 체계화 된다는 걸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은 공부법입니다. 이건 1주 이전부터 하셔야 돼요. 양심분석 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이거 다 공부하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1주는 늘 깨어 있으니까 늘 연구가 가능하지만 1주 이전은 가끔 깨어 있잖아요. 근데 가끔 깨어 있는 동안은 이걸 연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끔가다 깨어 있는 동안은 연구해 보세요. 몰입과 몰입사고로 각 개별 상황에서 느낀 에고의 체험을 분석하여. 보세요. 이게 주변사찰, 주편사찰 이렇게 번역하는 건데

16:06 아까 주편심사는 체험을 연구해 보는 거예요. 내가 체험한 걸 정확하게 관찰하는 거고요. 지금 보편법칙을 정리하는 건요 언어화 하는 겁니다. 언어화 해보세요. 개념으로 딱 정립해보세요. 자 예를 들어 드리는 거예요. “참나 각성 상태에서는 남의 이익까지 배려하게 되더라.”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더라” 라고 여러분 정리하실 수 있냐구요? 이 말을 100% 자명하진 않더라도 당당하게 자명하게 하실 수 있어야 돼요. 자명은요 체험과 개념이 만나면 자명인데 체험이 좀 약한 경우예요. 그래도 체험은 있는 거예요. 체험이 분명 있으실 거잖아요. 아주 자명하진 않더라도 체험이라는 건 부분적 자명이죠. 체험했다는 것은 자명한 부분은 있습니다. 그게 원만하진 않은 거예요. 근데 내가 분명히 말할 어떤 근거는

17:07 있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할 근거는 있는 거예요. “확실히 내가 참나 상태에서 보면 사랑의 마음이 들더라.” 이런 걸 평소 관찰을 많이 해보시는 거죠. 평소 깨어서 내 에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보다가 이 말 하실 수 있는지 보시라는 거예요. 이거에 대한 체험적인 어떤 이해가 가능해야 됩니다. 이 말은 지금 당장 체험하실 수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이 깨어서 살아가시면 이 말 할 수 있잖아요. 요 한 부분은, 부분 부분은요 지금부터 공부하셔야 돼요. 이게 뭐라고 제가 얘기합니까? 보편법칙들인데 요거는 구공의 보편법칙이라고는 안 하고요 구공의 보편법칙들의 기초가 되는 보편법칙이에요. 요 하나하나는요. 요 하나하나 먼저 각개격파 해보자구요. “참나 상태에 있으면 이상하게 남의 마음까지 내가 자꾸 헤아리게 돼.” 안 그러면 되게 찜찜해. 그렇게 하면 자명해. 요거 분석되시는지 한 번 보세요.

18:05 두 번째 볼까요? “참나 각성 상태에서는 남한테 피해 주는 게 더 찜찜해져.” 요 느낌 오시는지? 에고 상태일 때랑 참나 상태일 때랑 분명히 느낌이 달라요. 요 체험과 그리고 확실히 참나 상태에서는 이렇게 된다라고 말하실 수 있는지, 개념적으로 정리하실 수 있는지 요거 지금 심혈을 기울여서 보세요. 세 번째 “참나 각성 상태에서는 진리와 진실을 흔쾌히 수용하게 돼.” 에고는 끙끙 앓으면서 체면 때문에 뭐 때문에 수용을 못했는데, 몰라 하고 깨어 있으면 오케이 하는 힘이 커져. 요 정도 체험만 하셔도 돼요. 요 하나하나 체험은 지금 깨어 계신 분들은 다 하실 수 있어요. 실제로 학당에 오시면 9급부터 벌써 이렇게 하라고 이거 권합니다. 깨어 있을 수만 있으면 이렇게 해보시라고 권합니다. 그 공부가 쌓였다가 이제 불교에서 말하는 1주 보살 이후에는 이 공부가 아주 본격화 되는 것뿐이에요. 그전부터 이미 충분히 이런 공부에 익숙해지셔야 돼요.

19:09 “참나 각성 상태에서는 이상하게 양심의 인도에 최선을 다하게 돼.” 나만 생각하려는 이기적인 마음 쏟는 게 왠지 찝찝해줘 가지고 더 힘을 내게 돼. 힘이 나. 힘이 안 나다가도 몰라 하면 화악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생겨 이것입니다. “참나 각성 상태에서는 이상하게 초연해져. 초연하게 깨어 있게 돼.” 이건 뭐 너무 잘 아실 겁니다. 1주 보살까지 가신 분들은 이건 너무 당연할 거고. 다음요 “참나 각성 상태에서는 선과 악이 자명하게 판별이 돼.” 확실히 이쪽은 자명하고 확실히 이쪽은 찜찜해. 찜찜이 아주 커져. 요거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보편법칙들에 대해 체험적으로 이해하기(③정사택). 하나하나에 대해서 각각의 보편법칙들에 대해서 체험적으로 이해하기. 이게 불교 용어로 정사택입니다.

20:00 올바른 결정, 올바른 사고를 통한 결정이 이어져야 돼요. 이게 왜 중요하냐? 여러분 업장을 턴 다는 게 뭐냐면요? 명상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업장을 터는 겁니다만, 진짜 어려운 게 뭐냐면요? 명상보다 더 난이도가 있는 게 생각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생각을 바꾸는 거. 즉 이게 생각을 바꾸시라는 거예요. 이거 하나 하시면서요 그동안 이런 생각 안 하셨더라도 “이상하게 내가 깨어 있게 되면 내 안에서 사랑이 나와.” “이상하게 깨어 있으면 정의로워져.” 요거 하나하나를요 정확히 체험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확신에 차서 말하실 수 있는지 점검을 해보시라고요. 구공은 별거 아닙니다. 이게 각각이었잖아요? 이게 쌓여 가다가 이게 통합적으로 “참나 안에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이게 다 들어 있어.” 이렇게 돼버리면 구공의

21:00 보편법칙을 여러분이 인가해버리시는 거예요. 보편법칙을 정확히 인가하셨다 그러면 사실 여러분 1지 보살 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보편법칙을 인가하는 그 힘이 여러분 안에 있는 근본원리거든요. 근본원리에 대한 직관이 없다면요 이렇게 보편법칙을 옳다라고 인정을 못 하세요. 이게 사실은 한 사건이에요. 보편법칙만 정확히 인가하셔도 여러분은 근본원리를 아시는 거예요. 즉 직관 없이 그렇게 개념이 자명할 수가 없거든요. 어떤 개념이 “자명해”라고 말할 때는 여러분 내면에 이미 직관이 있으신 거예요. “그게 맞아”라는 언어 이전의 직관적인 느낌이 있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언어화하면 그게 보편법칙이 돼버리는 거예요. 언어 이전에 이미 알고 계세요. 여러분 그렇죠? 어떤 느낌이 있죠? 그게 말로 하니까 이럽니다. 우리가 뭔가 깨달았을 때, “아!” 할 때 느낌으로 알아요. “아! 사람은 이렇게 살면 안 돼.” 보세요. “아!” 하는 거는 직관이고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아닌 거 같애"

22:01 요건 개념이잖아요. 같은 내용도 아! 할 때 아시는 게 근본원리고 말로 풀어 놓으면 보편법칙이 돼버려요. 여러분이 보편법칙을 정확히 인가하신다 그러면 근본원리를 아시는 거예요. 왜냐? 안 그러면요 그렇게 자명하지가 않아요. “참나에서 사랑이 나온다고?” 자 이게 일반적입니다. 참나 상태에서 사랑이 나와요. 나와도요 “참나 안에 사랑의 원리가 들어있다고?”이게 또 안 와 닿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자명해질 때는요 이미 내면에 직관력이 생긴 거예요. 그게 명상과 실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버린 거예요. 그 근본원리에 대한 직관이 있기 때문에, 원형의 정보에 대한 직관이 있으니까 밖으로 “자명해”라는 말이 나가는 거예요. 그냥 나오지 않아요. 내면에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어요. 기독교에서 이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뭔가 알 수 없는 믿음이 확고해져요. 그 때 여러분이 말로 확신이 나가는 거지. 확고한 믿음이 없죠. 그러면 밖으로는요 자명한 말이 못 나가요.

23:02 그 확고한 믿음이 그게 사실은 체험에 기반한 거고, 더 나아가서 자명에 기반한 겁니다. 그게 없는 믿음은요 여러분 성경에 나오죠.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죠. 근데 현실은 안 그렇잖아요.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호구로다”예요. 호구입니다. 중고나라에 최고 호구가 보지 않고 믿는 자죠.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뭐. 아시겠죠. 그 호구예요. 근데 그러면 기독교에서 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리라고 했을까요? 보지 않았는데 내면에 직관이 확고한 거예요. 그럼 그게 영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영성을 믿음으로 얘기해요. 지금 불교에서 선근이라고 하는 게 기독교에서 믿음이에요. 믿음이 강한 자 그러면요 내면에 하느님하고 깊이 소통을 해서 확고한 확신, 참나 체험이 있는 거예요. 불교에서 말하는 참나 각성 상태가 믿음의 상태예요. 하느님하고 의심 없이 소통하고 있는 상태,

24:07 그러니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도 옮긴다는 게 하느님하고 하나가 되어 있는데 뭔들 못 하겠냐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불교적 공부도요, 이런 육바라밀의 공부도 끝없이 참나 각성 상태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게 아버지를 믿고 있는, 아버지와 어떤 믿음의 상태에 있는 거예요. 보지 않고도 믿음이 꽉 차 있다는 건요 엄청난 축복이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보지 않고 믿는다고 할 때 믿음은 의심이 가득한데 한 번 믿어 볼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믿음은 여지없이 배신당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확신도 없구요. 아시겠죠. 그 믿음은 이미 성령 안에서 참나 안에서 확신이 꽉 차 있습니다. 그 믿음이 점점 커져가는 얘기예요. 보세요. 지금 ①구공의 체험적 이해 가능, ②체험적 이해 심화, ③자명한 이해 가능, ④자명한 이해 심화를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믿음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25:05 확신이 점점 커져서 하느님하고 하나가 돼버리잖아요. 아시겠어요 믿음. 그래서 지금 믿음을 키워가는 방식이에요. 먼저 성령과 하나가 돼서, 참나와 하나가 돼서 살아보세요. 뭐가 걸리고 뭐 가 자명하던가 느껴보세요. 체험을 해보세요. 그 다음에 분석을 해보세요. 이 참나 상태를 성령 상태로 바꿔 볼게요. “성령 상태에서는 성령과 하나 돼 있을 때는 남까지 사랑하게 되더라.” “성령과 하나가 됐을 때는 정의로워지더라.” “유혹을 뿌리치는 힘이 커지더라.” “유혹에 늘 당했는데 성령과 하나 된 상태에서는 그 좋아하던 술도 절제할 수 있게 되더라.” 요거 매일매일 체험하시는 것을 법칙으로 하나하나 받아들이셔야 돼요. 안 그러면 경험만 있지 이런 경험만 하지 법칙으로 정립을 안 하면요 체험만 있고 이해가 없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런 분은 계속 당해요. 이게 진짜 중요하다고요. 생각을 하나 바꾼다는 게 진짜 중요합니다.

26:06 생각을 안 바꾸면요, 진리의 말씀을 내가 수용해주지 않으면요 계속 당해요. 당하면서 느끼는 데도 어떻게 못 해요. 사기 계속 당해요. “이상하게 나는 계속 사기를 당하네. 내가 운이 없나 보다” 그래요. 분석을 해보면 계속 한 번만 제대로 분석했으면 다음에 안 당했을 텐데 분석을 한 번도 제대로 안 하니까 또 당하고 또 당하고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참나를 만날 때마다 지금 진리의 말씀이 지금 현현하는데. 보세요. 진리의 말씀이 지금 현현한 거예요. 성령은 사랑이니라. 지금 이렇게 메시지가 전해 오는 데도 “이상하게 깨어 있으면 남까지 생각하게 돼. 참 신기한 일이야” 하고 넘어가 버린다구요. 그렇게 아무 변화도 못 일으켜요. 또 그러다 또 깨어 있으면 “오 신기하게 또 남까지 사랑하게 되네. 신기하네. 또 그러다 사라지더라고.” 또 끝나요. 예리한 사람, 믿음이 큰 사람, 선근이 두터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한 번 체험하고 알아버려요. 한 번 성령 상태 딱 체험하고 “하느님이 사랑이시네.”

27:08 고린도전서가 입에서 쫙 나와요.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고 그러는 거구나.” 이 사람이 상근기입니다. 한 번에, 처음에 많은 걸 알아내버린 분이 상근기예요. 근데 뭐 어때요. 상근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여러 번 체험했더라도 알아내면 똑같은 거예요. 근데 문제는 체험만 계속하고 못 알아낸다는 게 제일 안 된 경우입니다. 아시겠죠? “난 선정을 뭐 몇 십 년을 했어요.” “견성하셨나요?” “견성은 아직.” 이게 그분이 체험이 없는 게 아니에요. 이론 정립을 못한 거예요. 이론 정립이 별거 아닌 거 같죠? 이론 정립해야 게임이 끝나요. 논문 써야 끝나요. 다음 레벨로 가려면 첫 레벨에서 결과물에 대해서 논문 보고서 나와야 돼요. “내가 실험해보니 이렇더라.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이 말 안 나오면 계속 구르게 되어 있는 게 자연원리입니다. 자 보세요. 기독교적으로 성령 안에 살아가게 되면 사도 바울이 칭의라고

28:06 했습니다. 의로운 존재는 돼요. 내 안에 하느님이 살아있으니까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니까 의로운 존재된 거예요. 그럼 이제 뭐냐? 칭의가 1주 보살까지에요. 성화는요 본격적으로 하는 이게 성화예요. 성화에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칭의에서 포인트는 내 안에 성령이 강림하느냐구요. 성화에서 포인트는 성령에 내재된 진리의 말씀대로 내가 사느냐 예요. 지금 구공 단계는요 육바라밀의 진리대로 사느냐가 포인트예요. 근데 이게 귀찮으니까 그냥 성령과 하나 되면 편하니까. 그럼 그분의 입에서는 뭐 밖에 안 나오느냐? “성령 안에 있으면 평안하더라.” 견성 하신 분들은? “참나 안에 있으면 늘 고요하고 또랑또랑 깨어 있더라.” 그럼 1주 보살 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분 입에서 이런 연구를 통해서, 제가 제시한 연구를 통해서 “성령은 사랑이더라” 이렇게 나와야 돼요. “사랑이더라.”

29:02 “성령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거더라.” “성령은 남을 사랑하는 거더라.” “성령은 남한테 불의를 행하지 않는 거더라.” “성령은 참는 거더라. 인욕하는 거더라.” “성령은 부지런하더라.” “성령은 깨어 있더라.” “성령은 지혜롭더라.” 요 6가지 진리의 말씀이 선명하게 실천을 통해서 입증이 돼서 나갈 수 있으면 여러분이 불교에서 말하는 1지 보살 되는 거예요. 이 안에 성령의 불이 제대로 들어온 거예요. 그때부터 시행착오는 많아도 열심히 살다보면 나중에 예수님처럼 “난 아버지 뜻대로만 말하고 행동했다”까지 가요. 이게 기본입니다. 모든 도의 기본이에요. 불교의 보살도도 똑같아요. 그래서 이 구공 단계를 아무도 자세히 얘기를 안 해주니까 대부분 견성에서 멈춰있는 거예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칭의에서 멈춰 있고 성화, 거룩해지는 단계를 안 나가요. 거룩의 핵심은요 성경 어디를 분석해도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겁니다.

30:02 진리의 말씀을 벌써 듣지도 못 하는데 어떻게 따라요. 듣고 따르는 연습이 1주 보살이 하는 본격적인 연습이에요. 왜? 이미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는 단계거든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그 다음에 “분별력을 가지고 선악을 분석하라.” 분명히 말씀 나오는 거죠. 이게 선입니다. 참나의 뜻이 뭐라고요? 이런 분석을 통해 뭘 알 수 있나요? 참나의 성질이 뭐라고요? 참나의 속성이 뭐라고요? “참나의 속성은 사랑하라.” “참나의 속성은 정의로워라.” “참나의 속성은 인욕하라.” “참나의 속성은 최선을 다하라.” “참나의 속성은 깨어 있으라.” “참나의 속성은 자명하게 판단하라.” 각각의 보편법칙들에 대해 체험적으로 이해하기(③ 정사택). 이게 정사택입니다. 여기까지 결론내실 수 있으면, 이 결론만 잘 나면 이미 사실은 게임 끝난 거예요. 요 하나하나를 분석해 보라고 제가 찢어놨어요. 이런 경우 있잖아요. 참나가 진실을 수용하게 된다고? 참나

31:00 상태에서 수용하라고 한다고?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러면 체험이 아직 부족하네. “그런데 남의 이익까지 배려하는 건 확실해.” 그럼 그거 하나라도 챙기시라고요. 이렇게 하나씩 챙겨가다가 6개가 무르익다보면 여러분 자동으로 이게 꿰어지면서 터집니다. 그게 3번인데, 3번 가기 전에 이렇게도 분석해 보시라고요. 저희 학당에서 좀 급수가 낮으신 분들은 방금 제가 얘기한 정도로만 분석해 보시라고 하고요. 이제 급수가 좀 올라가면 같은 내용인데 이렇게 분석해 보라고 제가 권합니다. “참나에는 보시의 근본원리가 있더라.” 요렇게 한 번 분석해보세요. 같은 말인데 이렇게 분석해 보라는 거예요. “참나에는 지계의 근본원리가 들어 있더라.” “참나에는 나와 남을 따지지 않는 무욕의 마음이 있더라.” 이렇게 그 원리가 있더라고 분석해보시라는 거예요. “참나에는 지계, 죄짓지 않는 마음, 청정함이 있더라.”

32:00 “참나에는 인욕의 근본원리가 갖춰져 있더라.” “참나에는 조화로움의 근본원리가 있더라.” “참나에는 정진 즉 성실함의 근본원리가 있더라.” 또 그런 마음이 있더라 이것입니다. “참나에는 선정의 근본원리가 있더라.” “참나에는 반야의, 즉 자명함의 근본원리가 있더라.” 이렇게도 한 번 분석해 보세요. 각각의 보편법칙들을 보다 자명하게 정립한다(④최극사택). (4급 이상 수사부터 위의 질문을 적용함). 자 이거는 좀 달라요. 제가 이것은 최극사택이라고 써놨죠. 왜 그러냐면 정사택은 이것입니다.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걸 법칙화하는 건 정사택이에요. 보편법칙을 찾아내는 것, 즉 “내가 참나 상태일 때는 이상하게 남을 사랑하게 되더라” 이건 에고의 변화잖아요. 그런데 같은 말인데 관점을 바꿔서 “그러고 보니 참나 안에 사랑하라는 명령어가 있는 것 같아.” 그러면 참나의 입장이죠. 그러면 최극사택이 돼요. 형이상학적인 보편법칙의 정립은 최극사택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용어 잠깐만 썼어요. 모르셔도 됩니다만 형이상학적인 보편법칙,

33:02 형이하학적인 보편법칙입니다. 원래는 형이상학적인 보편법칙 근본원리라고 불러야 맞는데 우리가 지금 언어화 했잖아요. 형이하의 세계에서 언어화 했으니까 보편법칙 항목에서 분석을 해 드린 거예요. 자 이거를 가지고 근본원리를 직관하기 한 번 가볼까요? ③ 근본원리(법法의 본체)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기(직관) “근본원리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기” 이게 직관하기거든요. 체험적 이해가 쌓이면 자명해지는 거죠. 근본원리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체험적으로 이해할까요? 몰입(정)과 몰입사고(혜)를 바탕으로 각각의 보편법칙을 하나로 회통하여 분석하는 중에. “참나에는 6바라밀의 근본원리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라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구공의 보편법칙을 개념으로 자명하게 정립하고(④ 最極思擇). 보편법칙에 대해서 앞에 6가지 분석은 했었죠. 이걸 하나로 꿰어보자고요. “그럼 참나 안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가 다 들어 있는 거 아냐. 그 근본원리가 있는 거 아냐”라고 이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분석을 해보시라는 거예요. 아까는 구공의 기초가 되는 보편법칙이었으면

34:03 구공의 보편법칙은 뭡니까? “참나 안에는 육바라밀의 근본원리가 원만하게 갖춰져 있다.” 이 말이 딱 떨어지는지 부분부분 들어갔다가 이제 자명하게 전체적으로 자명한 결론을 내려 보는 거예요. 요것도 여전히 최극사택에 해당되고요. 이제 직관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이를 자명하게 인가하는 내면의 느낌에 몰입하여 언어 이전의 구공의 근본원리를 침묵 속에서 직관하고(묵이식지, 무분별지) 이를 다시 개념으로 정립하여 찜찜한 부분이 없나 점검하여 법공의 근본원리를 자명하게 직관하기(무분별후득지). (자타일여, 홍익중생). 이때 이런 보편법칙을 인가하는 내면의 힘에 대해서 한 번 집중해 보자는 거예요. 침묵 속에서 우리가 직관하고 있는 이 선명한 느낌이 있잖아요. 보편법칙을 옳다고 하는 그 선명한 느낌! 그놈이 근본원리라는 거예요. 이게 엄밀히 말하면 근본원리에 대한 직관이다 이것입니다. 또 내 안에 근본원리가 있으니까 그렇게 자명하게 옳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개념적으로 찜찜한 부분 없나 또 보편법칙으로 정립해 보세요. 그러면 이제 무분별후득지라고 해서요. 자 이런 얘기 누가 안 해 줍니다.

35:07 불교사전에나 나오는 말들을 제가 풀어서 여러분들이 할 수 있게 해 드린 거예요. 정사택 최극사택 주편심사 주편사찰 이런 거 불교사전에나 나오는, 불교 경전 사시면 각주에나 나오는 내용이에요. 난 뭔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내 얘기도 아니구나 하고 이렇게 들으실 그런 내용을, 여러분 얘기로 제가 최대한 설명해 드린 거예요. 경험하는 게 주편심사입니다. “두루 경험하면서 알아차려 보기”가 주편심사입니다. 그다음에 주편사찰은요 “이 경험 안에 어떤 법칙이 있지?” 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게 사찰입니다. 그 법칙을 고민하는 게 사찰입니다. 그러다가 고민하다가 결론이 나요. “이건 이거군” 이게 정사택입니다. “음 참나 상태에서는 사랑이 나오는군.”

36:04 자 이걸 이제 최극사택으로 바꿔 보는 거예요. 최고로 뛰어난 사택. “그러면 참나 안에 사랑의 원리가 있군.” 여기까지 가보는 거예요. 형이하에서 형이상으로 한 번 뛰어 봤어요. 그런데 형이상, 형이하를 아우르는 이런 각각의 보편법칙들을 종합해서 “참나 안에는 육바라밀이 들어있군” 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것도 여전히 지금 보편법칙 차원이죠. 그 최극사택이긴 하지만, 형이상학적인 어떤 보편법칙인 하지만 여전히 지금 말로 하고 있죠. “내가 이 말을 어떻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을까?” 하고 그 내면의 확신에 집중해 보면 “그 확신 안에 근본원리가 이미 들어있더라” 하는 거예요. 명상에 들어가시면 돼요. 보편법칙을 자명하게 인가한 다음에 그 자명한 느낌에 몰입하면서 명상해보시면 자명한 느낌이 더 커져서 여러분 안에서 그런 말할 수 없는 어떤 진리가 내 안에서 드러났다는 걸 알 수

37:04 있어요. 보세요 놀라운 거예요. 원래 참나 안에는 이미 육바라밀이 들어 있었는데 내 내면에서 드러나지 않다가 이게 내가 생각을 통해 업장을 터는 거예요. 에고는 무지와 아집의 업장이 그득해서 여러분 안에 육바라밀 종자가 있다는 걸 모르게 만들어 놨어요. 이걸 알려고 명상을 통해서 분석을 해보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면서 분석을 해보다 보니까 어느 날 자명하게 “내 안에 육바라밀이 있군”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업장이 꽤 털린 겁니다. 마지막 업장 턴 게 이거예요. “내 안에 육바라밀이 있더라”는 생각까지 딱 등장하면 아집이 털리다가 무지까지 딱 털린 거예요. 지적으로 털린 거예요. 그렇게 무지와 아집이 털리고 나면, 보편법칙을 인가하실 수 있게 되면 사실은 내면에서 직관의 힘이 강해져서 털린 거잖아요. 털 수 있었던 거잖아요.

38:01 내면의 직관력이라는 건 결국 내면에 있는 육바라밀의 근본원리가 내 안에서 확고하게 드러난 거라니까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령이 내 안에서 더 강력하게 드러난 거라니까요. 진리의 말씀을 통해 드러난 거예요. 내 안에서 힘을 얻은 거예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이게 업장이 제대로 털린 거예요.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털리면요 직관이 확고하고 밖으로도 정확한 개념을 정립할 수 있게 되고, 그 개념에 따라 실천할 수 있게 돼요. 확고한 믿음. 내 생각과 입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이 나가게 되고 그 진리의 말씀이 나를 통해서 실현되어 버려요. 그러면 끝난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죄를 벗은 거예요. 업장을 턴 거예요. 이렇게 하나씩 털어 가셔야 된다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어렵게 써놓은 것은 불교 이론을 어떻게든 살려 쓰려고 불교 이론에 최대한 맞춰서 설명하려다 보니까 말이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근본 메시지는 체험과 개념이 만나면 다 털 수 있다는 거예요.

39:00 체험과 개념만 만나면 다 턴다. 참나 상태에서 깨어서 살다보면, 자명 찜찜의 신호를 늘 들으면 살다보면, 자명한 건 옳다 그러고 찜찜한 건 아니라고 하면서 사시다 보면, 자명한 거만 모여서 “이건 이렇구나” 하고 딱 말할 수 있게 될 때 내 안에서 근본원리도 드러나고 밖으로 보편법칙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게 하나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거 아셔야 돼요. 형이상학적인 무형의 세계는 곧장 알 수가 없습니다. 형이하의 세계를 닦아서 형이상을 끌어내는 수밖에 없어요. 견성을 하고 싶으세요? 형이상학적인 성령을 만나고 싶으세요? 형이하학적인 여러분의 에고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셔야 돼요. 기도를 하셔야 되고 참선하셔야 돼요.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거기에 형이상학적인 성령과 참나가 응해서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실천하세요. 정의를 구현하세요. 인욕을 실천하세요. 성실하세요. 늘 깨어 계세요. 명상하세요. 묵상하세요. 기도하세요. 늘 올바른 판단만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 안에 성령이 온전히 드러나

40:02 버려요. 아시겠죠? 우리가 보통 공부할 때 쉬운 것만 한다니까요. 제일 좋은 거 편한 거. 명상. 그것도 누워서. 더 쉬운 거 없나 했더니 누워서 한대요. 누워서 그러다 꿈나라 가고. “어, 요즘 명상 잘 안 되네.” 그럼 누워서 하고 있습니다. 쉬운 것만 죽어라 합니다. 그래서는 고시를 합격할 수 없습니다. 잘하는 것만 계속해서는 합격이 안 됩니다. 못 하는 다른 과목도 과락은 넘겨야 됩니다. 이게 육바라밀 공부법. 나는 선정이 참 좋아. 나는 경전 공부가 좋아. 그걸로만 안 돼요. 다 하셔야지 넘어갑니다. 그래야 여러분 안에서 참나가 원만히 드러나요. 성령이 온전히 여러분 안에서 드러나요. 그럴 때 여러분이 성화됐다고 하는 거예요. 에고 입장에선 성화고 성령의 입장에서는 드러난 거예요. 에고 입장에서는 원래 안 그랬는데 내가 갑자기 거룩해졌죠.

41:01 성령 입장에서는 드러난 거예요. 진리의 말씀이 힘 있게 드러난 거예요. 성령법이 에고 차원에서 구현된 거예요. 그걸 에고는 성화 됐다고 거룩해졌다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자들한테 그래요. “너희는 이제 진리의 말씀을 따르면서 거룩해지라”고. 말씀 안 따르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성령을 아무리 품고 있어도 그 말이 막 싸가지 없게 나가는 거기에다 거룩이란 말을 못 붙여요. “저분은 참 기도는 잘하시는데 입이 걸어. 입 열면 쓰레기야. 쓰레기 같은 말만 하셔.” 그러면 난감해요. 이게 거룩한 게 아니라서 그래요. 거룩하다는 건 건들어도 거룩한 게 나와야 돼요. 이게 다를 것 같으세요? 기독교인 마음 다르고 불교인 마음 다르고 안 그렇습니다. 다 똑같이 같은 정신병원 다니셔야 돼요. 정신 구조가 똑같아요. 심리학이 뭐 다 다르나요? 다 한 인간 한 마음이에요. 종교도 똑같아요. 사실은 한 형제예요.

42:05 스승들이 다른 거죠. 여러분 의사 선생님들이 서로 조금씩 치료법 다르다고 다를 수 있나요? 결국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몸을 다루고 있는 거죠. 스승이 다르다고 문파 찢어가지고 다른 문파들의 수련법 공격하고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쪽은 저쪽의 장점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장점이 있구나 하는 거만 알고, 결국은 한마음이다 하는 거 알고 접근하시면 이런 식으로 연구하시면 엄청난 이득이 있으실 거예요. 요즘 개이득이라고 하죠. 개이득. 제 강의 들으시면 개이득입니다. 어떤 분이 최근에 덧글 달아주셨는데 제 마음을 흡족하게 했어요. “꿀잼” 이렇게 달았어요. 이게 그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게 저는 이제 훈훈하더라고요. “개꿀잼” 그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꿀잼이네요” 이렇게 다셨어요. 그래가지고 재미있으시니 다행입니다.

43:05 조금만 하고 또 5분 쉬죠. 이미 자신이 파악한. 그림 보세요. 우리 공 안에 이렇게 진리가 갖춰져 있습니다. 이게 구일체묘상공이에요. 불경에서 말하는 구일체묘상공. 요거 알아내시면 1지 보살입니다. *이미 자신이 파악한 ‘근본원리’라 할지라도 수시로 마음을 챙겨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정신능력이 고양되는 만큼 사물의 ‘원상ㆍ본질’을 읽어내는 능력도 성장한다. 따라서 이미 파악한 사물의 ‘원상ㆍ본질’에 대한 이해도도 날로 성장할 것이다. 이것을 수시로 체크해보아야 한다. 진리란 자꾸 닦을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광명해진다. 이미 자신이 파악한 근본원리라 할지라도 아직 완성된 게 아니잖아요. 수시로 다시 마음을 챙겨 점검해 보면서 여러분 정신 능력이 고양된 만큼 사물의 원상, 본질, 이런 진리의 형상을 읽어낼 능력도 성장한다는 걸 잘 아셔야 됩니다. 따라서 이미 파악한 사물의 어떤 본질, 원상, 형상도 자꾸 더더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겁니다. 이해도가 성장하게 돼요. 이걸 수시로 체크해서 닦아 가셔야 됩니다. 진리란 자꾸 닦을수록

44:00 더욱 선명해지고 광명해지는 겁니다.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마세요. 사도 바울도 기독교에서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경지까지 나아가자.” 또 어떨 때는요 “하느님의 경지까지 나아가자”고 그래요. 히브리서에 보면 “하느님의 충만한 경지까지 나아가자.” 그러면 이 공부는 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사도면서 성령을 다 체험하고 성화의 길을 가고 있는 본인이 스스로 계속 힘들다고, 아직 내 안에 죄를 지으려는 마음이 남아있다고 고백하시는 거예요. 그거 되게 귀한 고백들이에요. 그래야 우리도 방향을 잡아요. “아, 누구나 예수님처럼 되는 게 아니구나. 하지만 저렇게 닦아 가다 보면 되겠구나.” 이게 선명해지고 나면 종교 간에 싸울 일 없습니다. 다 똑같거든요. 제가 장담하건대 성화의 단계를 닦고 있는 사도가 1주 보살 이상이 돼서 지금 육바라밀 열심히 하고 있는 보살과 만나면요 밤새 신나서 얘기하게 돼 있어요. 처지가 똑같거든요. “아, 그거 안 되대요. 깨어 있어도 막 성령과 함께 있는데도

45:05 내가 이상해지더라고요.” 사도바울 얘기가 그거예요. 성령 상태인데도 죄를 짓고 싶다는 거예요. 죄 짓고 싶은 마음이 51% 되어버려요. 난감합니다. 그래도 또 선명할 때 맡기고 가는 거죠. 그러면 또 보살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도 육바라밀 다 아는데도 또 하려고 그러면 또 흔들려요.” 무명 따라 가더라. 이쪽은 마귀 따라가더라. 이런 얘기만 다르지 들어가 보면 똑같은 고민 상태예요. 왜? 제가 해봤는데 똑같아요. 제 체험을 이 경전 놓고 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고, 다른 경전 놓고 보면 또 그렇게 설명할 수 있어요. 제가 지금 그걸 입증해 드린 거 있잖아요. 불교 강의 잡으면 불교로 얘기합니다. 제가 여러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치게 경전 외우고 다니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이해하는 사람이지 저는 암기하고 다니는 사람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 보면요 잘 생각이 안 나요. 딱 보면 제 경험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건 이렇게 되고 이건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됩니다.

46:05 성경 갖다 놓으면은 기독교식으로 용어를 어떻게 쓰는지만 아는 거예요. 제가 입증한다니까요. 용어만 다르게 쓰지. 여기서는 견성을 뭐라 그래요? 뭐라고 해요. 제가 모르는 낯선 종교가 있다고 해도 거기 도가 제대로 전해지는 종교라면요 제가 가서 그 종교에서 그날 강의할 수 있어요. 제가 장담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렇게 다양한 종교 강의하고 다녔구요. 왜? 똑같거든요. 똑같아요. “용어만 이렇게 써주세요” 하면 저는 또 인문학 강사잖아요. 맞춰 드리죠. 요거 뭐라고 써 드릴까요? 요건 성령이라고 좀 해주세요. 그럼 성령으로 해드려요. 그건 일도 아니에요. 그래서 저한테는 종교 강의가 제일 쉬운 거예요. 왜? 어느 종교 경전을 갖다놔도 다 똑같기 때문에 저는 쉬운 거예요. 제가 모든 종교를 분석해서 꿰뚫어보고 있다 이런 게 아니고요. 똑같은 체험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기 때문에 제가 이해하는 거예요.

47:02 의사 선생님들이 모여서 결국 한 몸을 다루는데, 보세요, 치과 선생님들 다 모였다. 그럼 각자 자기 얘기하면 다 똑같은데 그게 다 바로바로 접수가 되죠. 내가 늘 하고 있는 그 치료에 관련된 정보들이니까 그냥 그냥 이해하시죠? 제가 다른 종교 듣는 게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은요 종교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도라고 생각하시니까 “어떻게 이거를 강의하다가 이걸 강의하세요?” 못 믿겠다는 분도 있어요. “교회 안 다니시는 것 같은데 왜 성령을 얘기하세요?” 그러게요. 저는 하느님이 안 만들었나 보죠. 전 성령이 없나 봐요. 교회 안 다녀서 성령 없으면. 이렇게 되어버려요. 그럴 리가 없다. 제가 그걸 입증합니다. 제가 닦아온 명상의 체험과 실천의 체험들을 보편법칙으로 계속 이론화 해봤더니 제가 체험적으로 정립한 이론을

48:02 가지고 다른 종교 다른 종교 부딪쳐봤더니 다 똑같은 소리 하더라는 거예요. 들어가면 제가 예상까지 할 수 있어요. “요 경전 어디쯤에서 이제 뭔 얘기 나오겠구나” 그러면 실제로 그 얘기 나와요. 왜? 다른 게 없거든요. 똑같아요. 아까 제가 얘기했지만 치과 치료하는 분이 다른 나라에서 치과 치료한다고 다른 얘기 하겠어요? 가면 또 임플란트 하라 그러고 그렇죠. 가보면 똑같아요. 그 얘기가 나와요. 완전히 다른 그런 게 있다 그러면 그거는 이미 학문도 아닌 거예요. 그건 그냥 진짜 밑도 끝도 없는 신앙이지 학문이 아닌 거예요. 진리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고등종교는 다 똑같은 소리 하게 돼 있습니다. 고등철학은 다 똑같은 소리 하게 돼있습니다. 그걸 제가 입증해드리려고 오만 경전을 다해 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많이 알아 하고 지식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요. 다 하나라는 것을 제 강의 들으시다 보면 납득해 버리시게 만들려고요. 제가 추구하는 게 그거잖아요. 자명하게 인가하시게 도와 드리는 건데 자명한 인가는 핵심이요 반박할 수도 없고 의심할 수도 없어서 그냥 어쩔 수

49:06 없어서 수용하는 상태가 되는 게 자명한 인가입니다. 도저히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는 거예요. 팩트 폭격에 “아! 졌다.” 그게 자명한 인가예요. 사람은요 아직도 피할 여지가 있으면 뭔가 이렇게 변호해보고 합리화해보고 도망갈 궁리를 찾아봐요. 그러다가 도저히 할 말이 없을 때 인가합니다. “맞는 것 같다.” 병 걸렸다고 해도 처음에 막 부정하고 하다가 아무리 봐도 맞는 것 같으면, 엑스레이 보여주면서 그렇다면 인가해야지 어떡해요. “인정.” 이게 자명한 인가입니다. 마음에는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서 인정하는 것. 그래서 육바라밀 중에 진리의 인가를 어느 바라밀이라고 할까요? 제 강의 들으면 아시죠. 불교에서 진리의 인가는 인욕바라밀이라고 부릅니다. 왜? 치욕인데 어쩔 수 없어서 인정할 수밖에 없고 수용할 수밖에 없을 때 쓰는 바라밀이 인욕바라밀이거든요. 치욕을 감내한다는 바라밀이에요.

50:05 여러분 진리도요 내 주장이 평소에 있었잖아요. 그런데 경전을 봤는데 이 말이 맞아요. 아무리 봐도 맞아요. 그럼 치욕이죠. 나는 그동안 내가 해놓은 말이 있고 내가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다 그 기준으로 살았는데 그 기준이 잘못 됐대요. 치욕이죠. 보고 맞아요. 그럼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사는 게 남는 장사 같아요. “그럼 인정!” 하면 그게 인욕입니다. 불교에서 인욕바라밀이에요. 그래서 불교에서 제일 중시한 인욕은요 누가 욕할 때 참고 그러는 게 아니구요. 운전할 때 참고 그런 게 아니고. 진리를 참아내는 것을 불교에서는 제일 중요한 인욕바라밀이라고 봅니다. 화엄경 보세요. 인욕바라밀 조에 계속 진리의 인가만 있습니다. 그거 제가 강의 많이 했으니까 아실 겁니다. 육바라밀을 한다는 것은 그냥 삶이에요. 육바라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산에서 이거 하고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명상이고요. 우리가 일상에서 닦기 좋은 건 육바라밀이에요. 사실은.

51:04 왜 사바세계에서 육바라밀 닦기가 좋냐? 끝없이 삶이 우리를 가만히 안 두거든요. 인욕 안 하면 못 버티게 계속 갈굽니다. 자꾸 보시하게 우리를 유도해요. 여러분 집에만 들어가도 보시하셔야 돼요. 가족들이 다 누워있다. 그러면 내가 일어나야 돼요. 울컥하시겠지만 또 나밖에 지금 해줄 사람이 없다. 그러면 일어나야 돼요. 보시해야 돼요. 또 보시해야 돼요. 또 내가 보시했다고 해도 또 남이 내 말 들어주냐? 안 들어줘요. 욱 하지만 또 인욕해야 돼요. 또 지계바라밀을 써야 돼요. 그래도 또 참으면서 상대방한테 피해 안 주려고 행동해야 됩니다. 우리 일상이 그냥 이게 삶이에요. 지금 가실 때 차 몰고 가시죠. 바로 다 이거예요. 보시, 여러분 끼어들 때 양보해야 돼요. 뭐 들이받으실 건 아니잖아요. 다 지계, 차선 지켜야 돼요. 또 그렇다고 내가 또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인욕, 또 참아야 돼요. 막혀도 참아야 되고. 또 그 상황 상황에 다

52:05 맞춰야 돼요. 또 빨리 가면 빨리 가줘야 돼요. 이게 인욕입니다. 난 천천히 가고 싶은데 결이 그렇다. 그러면 또 맞춰주는 거죠. 정진, 또 멈춰 있으면 안 돼요. 쉼 없이 정진해야죠. 선정, 운전자가 졸음운전 하면 안 됩니다. 요즘은 고속도로 나가면 멘트들이 살벌하대요. “눈떴다 깨면 다른 세계” 뭐 이런 식으로 졸면 죽으리라는 걸 뭐. 이왕이면 극락이래도 되는데. 눈감았다 뜨면 다른 극락세계 뭐 이런 거. 가고 싶어질까 봐 그랬는지. 겁주는 멘트들이 이게 깨어 있으라는 얘기거든요. 운전자 깨어 있어! 반야, 내비게이션 켜고 가야죠. 그냥 삶이라니까요. 우리가 지금 잠깐 움직여도 육바라밀 요소들이 다 있어야 됩니다. 이거를 이해하게 되면 보살은요 영적 차원이 완전히 상승해요.

53:00 이제 삶과 도를 분리해서 안 봅니다.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 진리를 구현하는 게 최고의 삶이라는 걸 그냥 수용하게 돼요. 이제 뭐 절에 가네 산에 가네 이런 말도 안 하게 되고 그냥 내가 처지상 산에 가 있어야 된다. 그러면 다 이게 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관념이 그게 아니라고요. 산에 있어야만 도를 닦는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가 있어야 할 곳에 가 있는다는 느낌으로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거예요. 나가 있어. 그러면 나가 있어요. 내가 형편에 따라 자연인으로 좀 있어야겠다. 그러면 자연인으로 있어요. 또 흔쾌히 털고 도시에 또 나와서 돌아다니고. 보살도가 이게 물 흐르듯이 할 수 있는 건요 하느님의 뜻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도 그러셨어요. 금식해라 그러면 금식해야 돼요. 저리 가라 그러면 또 저리 가고. 이리 가라 그러면 이리 가고. 마지막 죽어라 그러면 죽어야 돼요. 그런데 그게 하느님의 뜻과 온전히 하나는 되어 살아간다는 건 다른 차원의 삶이죠. 그게 보살도입니다. 보살도. 그래서 오늘 “대승 보살의 길을 밝히다”에서 구공에 대해서 연구하는

54:03 법을 제가 말씀드렸는데 좀 어려우실 거예요. 왜냐하면 어려운 불교용어랑 최대한 접목을 해서 제가 설명 드렸거든요. 왜냐하면 우리가 쉬운 얘기로만 하면 대승불교 경전 펴놓고는 또 헤매요. 피터 팬은 “그 윤홍식은 쉽게만 얘기하던데 불경은 어려운데. 우리가 주편사찰도 해야 되고 최극사택 정사택 이런 걸 해야 견성한다는데 그 사람 쉽게 얘기하네.” 다 같은 내용이라는 걸 모르시니까 그래요. 그래서 제가 풀어드린 거예요. 어려운 불교용어도 풀어드리면서 또 우리가 할 만하게 실천법을 말씀 드리려다 보니까 약간 어려운 감이 있는데 “구공의 핵심은 내 참나 안에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성실 몰입이 있더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도 바울 보세요. 난 종교가 다른데 하지 마시고 보시면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고” 그 안에 육바라밀 다 나옵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를 기뻐하고” 다 나와요.

55:06 “인내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요런 내용을 쭉 보면요 사도 바울이 알아낸 거예요. 그 양반이 예수님 본 적도 없는 양반이에요. 그런데 성령 안에 그런 게 있다는 거예요. 그걸 하나로 해서 “사랑”이라고 딱 표현하잖아요. 똑같아요. 불교는 이걸 하나로 해서 “자비”라고 표현합니다. 유교는 인의예지 하나로 다 해 가지고 “인”이라고 표현해요. 인. 사랑. 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 하나 됨. 우리 모두가 하나니까. 중생 전체 우주 전체를 하나로 보는 사람. 아까 말씀드렸죠? 이거 전체를 이 한 법계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도를 얻으신 겁니다. 내 마음 전체가 하나고 중생들의 마음과 내 마음도 하나고 그게 참나와 하나고 전체가 하나다. 하나의 진리가 나를 통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 진리의 말씀을 자꾸 가리고 있다.

56:03 아는 사람인 나는 그것을 드러내겠다. 요 정도 살아가시는 게 보살도라고 봅니다. 5분 쉬고 이제 요거 퇴계 선생의 심통성정도로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하필 좀 어려운 거 하는 날 오셨네요. 5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