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 선생님의 가르침들

홍익학당 아카이브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봉우 선생님의 가르침
홍익학당의 공부와 봉우 선생님 진면목
가르침들 연정 16법 원상문과 원상법
원상법 12관절 원상혹문장 호흡법 소서
구계법론 삼극주 오수주 대학 3강령
세상 속으로 뛰어든 신선 양심으로 극락세계
도와 덕을 온전히 통합적으로 성인들의 심법
봉우 선생님의 견성론 양심 개벽 개벽팀


강의일자 2014. 12. 04. 木.
게시일자 2015. 01. 07.
동영상 길이 41:03
강의 중 인용 도서 백두산족에게 고함, 봉우일기 1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uAUJZ81WHyQ


00:06

다 이게 봉우일기 1·2권하고 『백두산족에게 告함』. 이게 지난번 영원의 철학 때 오셨던 송순현, 정신세계사 전 사장님이시죠. 송순현씨가 발행하시고 예, 봉우 선생님 제자 중에 鄭在乘 씨라고. 할아버님 글이 읽기 쉬운 글이 아니에요. 이게(친필 원고 한 페이지) 책 앞에 있는데 저도 이걸로 원고를 한 뭉치 어떻게 가지고, 할아버님 댁에서 복사한 게 있어서 가지고 있는데, 제가 저 대로, 그래서 책으로 나오지 않은 내용도 많이 봤는데, 이게 略字로 많이 쓰여 있어서 어려운데 요걸 다 글로 작업해주시고. 류시화 씨가 좀 다듬어 주셨다고 돼 있더라고요. 앞에. 그래서 이게 예전에 나온 책인데. 할아버님 일기죠. 일기 중에 일부를 한 89년에 아마 처음 내신 글인데요, 요 안에만 해도, 89년부터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고2 때 이 책 보고 사실은, 이 책을 제일 처음 봤어요. 소설 『丹』보다 먼저 보고. 아 뭐 말씀은 참 좋은데 확 와닿진 않아서. 소설 『丹』을 보고 이제 감응해서 저도 했다가 다시 이걸 돌아보니까 하도 깊어서, 뜻이, 그 뒤로 이제 이거를 열심히 읽었었는데. 함 보시면, 몇 군데 이제 재밌는 내용만 한 번 읽어드릴게요. 대자연의 삶[1]이라는 글인데요 “인간으로 탄생한 것을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가장 무의미한 우연의 산물인 듯 여겨지고 탄생 후의 주위 환경과 교육 여하에 따라 그 삶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기 때문에 흔히들 浮生이니, 인생을 뜬 구름처럼 떠도는 삶이라고 말하는데.

02:02

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 누리다 가는 사람은 극소수고, 반대로 가난과 병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 대다수니 이 인간살이를 苦海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인간으로 탄생한 것이 맹목적인 우연에 있는 것도 아니며 삶 자체가 浮生, 이 뜬구름 같은 생도 아니고 고해는 더 더욱이 아니다. 단지 이 우주 대자연의 크나큰 수레바퀴 속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따라 돌고 도는 가운데” 각자의 카르마대로 돌아간다는 거죠. “각자가 무의미한 우연에 의해서 이 지상에 나온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서 남과, 또 사물과 맺어지는 인연이라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판단과 결정으로” 카르마를 선택하는 거죠.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무 관계도 없는 우연으로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삶은 반드시 그 뜻이 있는 것이지 뜬구름 같은 부생이 아니다. 또한 무수한 세월을 두고 전전하던 잘못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어 나온 것이니, 善을 행할 수도 있고 惡을 행할 수도 있는 이 자리가 어찌 고해라고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즉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왔다는 거예요. 그걸 얻어서 태어났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 엄청난 티켓을 아마 우리가 얻어서 태어났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서 지금 얼마든지 善도 할 수 있고 惡도 할 수 있는, 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왔다는 거죠. 여기서 악을 하면 안 좋은 카르마가 더욱 깊어질 거고. 여기서 잘못된 카르마를 바로잡아서 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왔는데 어떻게 이걸 고해라고만 단정 지을 것인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천지 대자연은 변함이 없으나 인간의 행위는 여러모로 그 대자연을 위반하고 대자연에 역행하는 방향으로만 달려간다.

04:06

하늘은 어느 때고 輪廻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끊임없는 輪廻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서 윤회를 벗어난다는 게 열반에 드는 게 아니고요, 윤회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걸 말합니다. 그 전엔 윤회에 끌려 다니구요. 被動的 윤회와 主體的 윤회를 구분하고. 주체적인 윤회는 보살들이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늘 그, 이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대해 “윤회를 왜 무서워하지? 善을 더 많이 해서 더 좋은 데에 태어나면 되지.” 이렇게 얘기하신 건 보살의 입장에서 얘기하신 겁니다. “우주가 시작한 이래 이것을 자각하신 성자들이”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 다들 내던져졌지만 몇 명은 자각한단 말이에요.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들은요 이 카르마, 선과 악의 카르마의 결대로 흘러가는 피동적인 윤회의 길과 능동적인 윤회의 길이 있다는 걸 자각하구요, 피동적인 윤회에서 벗어나는 삶을 택해서 걸어오신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무수한 세월을 통해서. 그래서 그런 분들은 “자각하신 성자들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윤회의 고통을 스스로 택하지 말고 그 사슬에서 벗어나서 극락을 얻으라고 수없이 일깨워 왔다. 그러나 인간들은 여전히 술 취한 듯 꿈 꾸는 듯 수레바퀴를 못 벗어난다.” 예. 이게 이제 “非但 현 인류만 아니라 태초 이래 인류가 시작된 뒤부터 계속되어온 문제다. 그리하여 이처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잘못을 되풀이하여 윤회하는 삶이 마치 정상적인 대자연의 삶인 양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으라. 피와 살과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이 몸 안에 불멸의 大 생명력이 무한히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자각하라. 이 몸이 가장 뜻깊은 몸이요” 극락을 얻으라고 하니까 우리가 다른 데 어디 “여기서 빨리 벗어나서 다른 극락 가야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06:09

그래서, 아, 제가 이 구절을 빠뜨려 읽었군요. “그리하여 옛날 사람들이 현상을 보다 못해” 수레바퀴를 못 벗어나니까 “현실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이 삶을 浮生이라고 하고 극락을 만들 수 있는 樂土를 고해라고 오해했다. 마음속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이곳을 지옥이라고 생각하여 죽어서 갈 천당만을 希求하였다. 이게 현재 상황이다.” 이렇게 한 번 현재 상황을 짚어준 게 있어요. 그리고 이거는 현 인류만의 문제가 아니라 태초 이래 반복되어온 문제다. 하지만 깨달으라. 지금 우리 육신 안에는 불멸의 생명력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은 다른 어디 극락이 아니라 현실을, 고해가 아니라 극락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이 참나의 힘만 끌어다 쓰면 여기도 극락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겁니다. “이 몸이 가장 뜻깊은 몸이요, 이 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요, 지금 이 세계가 바로 극락세계다. 이 세계 외에 또 다른 극락세계가 있지 않다. 이 삶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이 있지 않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부르짖는 인류로 태어나서 이 현실세계를 극락으로 생각하고 지상 극락 건설을 크게 외치면서 자기 자신과 남을 자각시키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윤회라는 피동적인 삶의 형태를 극복하는 사람의 자세다.” 그러니까 윤회 속에 살지 말고 극락 속에 살라는 얘기는요, 이런 윤회를 멈추라는 얘기도 아니고요, 윤회 속에 끌려가지 말라는 겁니다. 본인의 지혜와 본인의 자비력으로, 자신의 참나에서 나오는 이 힘으로 자신과 남을 정확히 이해하고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 이 자체가 윤회를 극복하는 삶의 자세라는 거고요. “또 다른 삶, 또 다른 세상을 꿈꾸지 말고 그대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천국을 느끼고 진리를 찾으라.

08:02

이것이 바로 옛 현자들의 깨우침이며 대자연계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소식이다.” 이 우주가 계속해서 얘기해 주는 게 “지금 너 있는 곳에서 6바라밀과 양심과 인의예지를 발휘해서 천국을 만들어라.” 우리 안에 있는 佛性이, 神性이 그렇게 외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에도 나오지만, 우리 몸뚱이가 이미 신전이라고 하죠. 신성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 여기가 신전입니다. 신성이 머물고 있는 곳이 극락이죠. 여기가 극락이고. 신성이 여기에 지금 머물러 있는데 여기서 극락을 못 만들면요 다른 극락에 갈 도리가 없죠. 그렇죠? 불성이 지금 여기 있는데 여기서 6바라밀을 끌어내서 이곳을 淨土로 못 만들면요 다른 정토를 찾아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슨 힘으로? 그럴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요. 지금 여기서 주변을 정토로 만들고 극락으로 만들 힘을 길러야만, 우리가 진정한 극락과 정토를 찾을 수도 있는 거죠. 아무튼 차별을 조금도 두지 마시고 내 신성이, 참나가 있는 곳에서 극락을 구현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다른 일화[2]에 예전에 본인이 어떤 분한테 질문 (받은 것). “너 하늘에서 오지 않았느냐. 하늘로 빨리, 니 자리로 가라.” 이렇게 뭐라고 하니까 “나 있는 곳이 내 자리지, 다른 내 원래 자리가 따로 있지 않다.” 이렇게 주장하셨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인데요. 그래서 그 얘기 들으면서도 “아, 항상 우리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끝에 詩 같이 써 놓으신 글이 있는데 한 번 읽어 볼게요. “내가 나를 안 즉 능히 남을 알 수 있고. 원래 밝은 그것” 우리 참나입니다. 불성, 신성. “원래 밝은 그것을 다시 밝히니 道가 이루어진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이제 반대로 남을 알고 또 그 남을 통해서 나를 알면 “모든 일을 알고 주변을 돌보게 되는데 그러면 德이 세워진다.”

10:06

도와 덕을 이렇게 구분해서 얘기해 주는데요, 우리 안에 원래 밝은 거를,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면 道고. 그걸 주변과 나누면 德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것이 生의 최고의 목표라” 도덕 세우겠다는 게 생의 최고의 목표여야 된다는 겁니다. “뜻을 세움이 낮으면 배움이 보통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니 반드시 이러한 최고의 것으로 뜻을 세워서 非常한 힘을 내어 쉬지 않고 나아가라. 그리하면 비록 타고난 재주와 성질이 크게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히 지혜로운 자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다. 모든 배우는 이들은 마땅히 힘쓰고 힘쓸지어다.” 이렇게 본인이 본인 일기에 써놓으신 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 말이 좋아서요, 지금 있는 곳이 최고의 세계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극락을 만드실 생각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도 뭐 좋은 글이 워낙 많은데 다 읽어드릴 수가 없고. 65세에 쓴 詩[3] 하나 읽어드리면요. 65년 5월에 쓰신 거네요. 1900年生이시라. “넓디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 문도 없고 담장도 없으니 오고 감에 형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중에” 이 정신계랑 이 물질계를 왔다 갔다 하는 중에, “옛부터 성인 진인 신인 철인들이 횡설수설하며 경전을 지었구나.” 했구요, “넓은 바닷물에 좁쌀알 같은 인생 100년을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 또한 어려우니 세월은 번개처럼 순식간이나 삶의 자취는 길이 남아있구나.” 우리가 짧게 짧게 지내고 말지만요, 고 살았던 행적은 길게 남아서 뒷사람들한테 비난받기도 하고 칭찬받기도 하잖아요.

12:05

“일생을 크게 평하면 功을 쌓음과 죄를 지음일진대” 결국 이제 善의 카르마를 쌓느냐 惡의 카르마를 쌓느냐 뿐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오로지 선과 악 두 글자로 나누어진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자에게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이치가 있으니, 마음을 집중하여 바르고 크게 나아가면, 正大하게 나아가면, 늘 만족을 얻을 것이요” 이건 양심을 따르는 삶이에요. “사사로운 욕심으로 잘못 들어가면” 욕심에 빠져들면 “늘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 이건 욕심을 따르는 삶입니다. 욕심을 따르다 보면 악으로 향하기가 쉽죠. 욕심 자체는 악이 아니지만, 욕심만 따르면서 양심의 소리를 안 듣다 보면 금방 악을 짓게 됩니다. “있음과 없음의 우주 역사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우주 역사 속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생의 문장을 수놓는다.” 여러분만의 생의 어떤 무늬, 삶의 무늬를 이 우주에 여러분이 다들 펼치시는 거죠. “가소롭구나. 풀잎에 달린 이슬 같은 인생이여. 어느덧 예순다섯의 나이를 맞이하니 앞으로 길면 30년” 정확히 30년 더 사셨 ㅎ “길면 30년 짧으면 20년밖에 남지 않았구나. 결국 눈빛이 땅에 떨어짐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옛날 어른들이, 이게 아마 풀이한 걸 텐데요, 眼光落地라 그럽니다. 안광이, 눈빛이 땅에 떨어졌다. 이게 죽었다는 걸 의미하는데요. 눈빛이 땅에 떨어짐을 어찌 면하(소리 안 나옴). “물이 흘러가고 구름 걷히니, 물 흐르고 구름이 삭 걷히니, 본래 면목이 저절로 드러나는데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함이 무슨 이로움이 있으랴.” 이런 건 불교에선 祖師禪에서 주로 하는 얘기죠. 여러분 본성은 본래 광명하기 때문에요, 제가 “몰라만 하고 계시면 그냥 참나.”란 이유가, 원래 참나 덩어리시거든요.

14:00

물 흘러가고 구름 걷히면 자연히 드러나요. 우리 참나는. 예. 여기 보면 나름 見性의 原理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냥 가만히 쉬시면 사실은 참나인데 애써 찾으려고 우리가 노력할수록 멀어지는 겁니다. 사실은. “여기 맑은 향 한 대 사르고, 차 한잔 마신 후 고요히 앉아 밝은 가운데 바라보니 푸른 산 흰 구름은 절로 한가롭고 밤낮을 흐르는 물만 공연히 분주하구나.” 이게 맑게 깨어서 바라보는, 제가 法空 그러죠. 萬法이 원래 空하다. 내 참나의 작용이다. 하고 바라보는 눈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 가만히 있으면 구름 걷히면 깨어나듯이 광명해진 채로 이 天地, 또 山川, 江의 이런 흐름을 쭉 함께 하나가 돼서 느끼고 계신 거죠. “이제 늙은이가 되어 마음 평온하고 기운을 품고 앉았으니” 호흡하시면서 이렇게 깨어 계시니까 “하늘과 땅이 태평하여 큰 바다와 같다.” 그래서 號가 如海인데요. ‘바다와 같다.’ 선생님이 항상 추구하는 게. 이게 우리 ‘海印三昧’에도 진리의 바다란 말을 쓰죠. 깨어서 보면 이게 요 소리예요. 지금 깨어서 우주 전체를 느끼면 하나거든요. 그럼 하난데 그 안에 온갖 게 다 있죠. 그게 바다 같다는 겁니다. 그 바다에는요 잘난 놈 못난 놈 뭐한 놈 다 해서 그냥 바다예요. 그래서 진리의 바다, 海印三昧라는 게 뭐냐면요, 잘난 놈 못난 놈 다 해서 우주가, 하나가, 진리의 바다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나상태로 우리가 있으면 우주가 바단줄 알아요. 이 구름도 나랑 둘이 아니고 다 둘이 아니, 왜냐, 둘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여러분이 자연이 돼서 느끼니까. 자연이, 신이 자연인데 사실은. 우주를 둘로 여기겠습니까? 통으로 나라고 여기지. 여러분이 신과 하나가 되고 여러분 안의 佛性, 참나랑 하나가 되면 통으로 우주가 하나로 여겨지는 고 상태.

16:04

如海라고 이제 호를 하셨는데. 아무튼 예순다섯에 이런 느끼신 소감을 제가 한번 읽어 드리고 싶었어요. 여러분도 이런 마음으로 공부해 나가시기를 바라고요. 읽어드릴 게 쭉 더 있나. 예. 긴데. 제가 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렇게 뭔가 淸明하게 못 읽어드리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한 번 또. 선생님이 “뭔가 創作하라. 지어라.” 이런 게, 여러분이 올바른 道를 알았으면, 선생님 주장이 이렇습니다. 스승들이 道를 가르쳐 주겠죠. 그 가르침을 따라서 배워서 실천해라. 그리고 그다음에 作, 지어라. 그래서 순서가 이렇게, 쭉 써 놓으신 글이 있어요.[4] 道, 敎. 진리에 대해서(道), 진리에 대한 가르침들에 대해서(敎),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배운다는 거(學). 결국 배움은 두 가집니다. 哲學과 科學. 形而下學의 배움과 形而上學의 배움. 그리고 배운 걸 열심히 실천(行)해서, 날마다 그걸 가지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창작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 한 마디도 作이에요. 그렇죠? 양심에 맞는 생각도 창작이에요. 양심에 맞는 말도 창작이고 행위도 창작이에요. 뭔가 실천한다는 건 사실 道를 담아서 하면 다 그게 작품이에요. 작품을 끝없이 만들란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주장이 항상 作之不已. 그래서 作之, 끝없이 지어가서, ‘그칠이(已)’자입니다. 끝없이 지어서 절대로 멈추지 마라. 不得已 할 때 已字죠. 부득이는 그칠 수 없단 뜻이고 여기도 이게 같은 뜻이죠. 그칠 수 없다. 그치지 마라. “천지의 순환이 자연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구르고 있는 것은 다 아는 바인데 이 天理의 궤도라면”[5] 이게 우주의, 이게 하늘의 천리예요. 하늘의 이 흐름.

18:10

하늘의 결은요 “하늘로 덮이고 땅으로 이렇게 만물을 실어주고. 이렇게 해서 만물이 모두 이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처음과 끝을 맺는 것이니 자연을 어기지 말아야 옳을 것인즉 이것을 순리라고 한다.” 이치를 잘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옛 사람의 시조에” 河西 金麟厚 선생 시조인데, 고 시조가 재밌는데요. “산 절로 물 절로 山水간에 나도 절로. 저절로 나온 몸이 늙기조차 절로절로.” 산도 절로 흘러가고 물도 절로, 자연대로 흘러가니 나도 거기서 늙는 것까지도 다 절로절로 흘러간다. 요분은 아주 도인이라서 이런 말 하십. 이분은 天命대로 사시는 분이라서 이런 말 하실 수 있는. 그래서 대자연 속의 아주 큰 선비인데 이런 말이 “대자연 속에서” 우리가 “자연을 본 바와 같이 자연에서 나온 몸이 늙는 것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다. 누가 이 대자연을 어기고 부자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 대자연이라는 것도 그 궤도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결이 있다는 겁니다. 분명히. 그 결이 있어서 “우리 인류가 이 자연의 궤도에 오르자면 사람으로 사람 된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뭘까요. 이 궤도가. 仁義禮智예요. 예전 선비들은 딱 인의예지라고 박혀있습니다. 자연의 결대로, 자연에 春夏秋冬이 있듯이 우리는 인의예지를 해야 돼요. 봄처럼 사랑하고, 여름처럼 예절을 지키고, 가을처럼 정의롭고, 겨울처럼 지혜로워야 돼요. 그래서 이게 “사람 된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20:01

이럴 때 자연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게, 절로절로라니까 가만히 있으면 절로 가는 줄 알지만 아까 얘기했듯이 가만히 계시면 여러분, 욕망에 휩쓸려서 멀리, 나쁜 카르마를 짓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자연은 안 그런데 인간만이 조금만 방심하면 악으로 흘러가 버리니까 인간이 우주에서 지금 제일 골치인 겁니다. 인간 때문에 우주가 문젠 거고. 우주의 문제아가 인간이 됐단 말이에요. 인간은요 우주에서 제일 귀한 존잰데요. 왜냐면 다른 건 다 자동으로 돌아가는데 인간만은 본인이 판단하고 결정해서 자연을 지켜 줘야 되는 거라, 만약에 자연을 지켜주기만 하면 제일 귀한 존잰 거예요. 자동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善을 선택해서 가는 존재니까 제일 귀한 존재가 되는데 그걸 못 지켜주면 제일 문제아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고민을 해야 되는 겁니다. 동물들은 책 안 봐도 인간들은 책 봐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도리를 하는 것이 역시 자연의 궤도를 걷는 것이요.”

21:02

결국 우리가 노력해서 이 도리를 다 하는 것이요, 결국 그게 자연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해요. 막 사는 게 자연스러운 거 같고, 공부하는 건 不自然 같은데 이게 웃기죠. 사실은 공부해야 겨우 자연이 돼요. 이 느낌 아셔야 돼요. 그게 순리이다. “해와 달에 차고 기울음이 있으며 동에서 서로 행하는 것도 자연이며, 빛의 어둡고 밝음이 있는 것과, 낯 밤이 있는 것도 자연이고” 음양이 다 우주에 있죠. “별과 구름이 모두 그 자연의 도를 벗어나는 것이 없고, 바람과 비 서리와 눈이 다 그 궤도대로 되는 것도 역시 자연이다. 地道도, 땅이 걷는 길도 자연이고. 天道도 자연이고. 지도와 천도가 다, 生養收藏이 모두 이 궤도에서 자연적으로 된다.” 생양수장이라는 게요. 生, 태어나서. 길러지고(養). 수확이 된 다음에(收). 깊이 감춰집니다(藏). 이 뭔 의미냐. 봄에 태어나구요(生). 여름에 길러지고(養). 가을에 결실을 맺어서(收). 겨울에 씨앗(藏), 그 정보만 딱 유지됐다가 다시 또 그 정보대로 봄에 태어나고. 우주의 궤도는요 이거 밖에 없어요. 이게 태극이잖아요. 예. ‘’ ‘’가 변해 가는 중에 생겨나서 길러졌다가 쪼그라들면서 수확, 결실을 맺고 다시 완전히 쪼그라들면 정보만 남구요.

22:36

고게 다시 태어나고. 이게 다예요. 모르실 게 없어요. 이게 다예요. 우주의 天道·地道·人道 다 해서 이게 단데. 그래서 인간도 태어나고 길러졌다가 결국 몸이 쪼그라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겁니다. 몸은 그렇게 자연대로 되는데, 정신이 지금 자연을 못 본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喜怒哀樂으로, 인간이 희노애락을 가진 에고를 가지고 자연을 본받는다는 건 진짜 어려운 얘깁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우리가 판단하고 선택하고 살지. 이건 끝없이 연구해야 될 주제예요. 양심의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게 자연 성질이고, 불은 위로 치솟는 게 자연 성질이요. 나무는 구부러지는 게 자연성이고, 쇠붙이는 단단한 게 자연성이고” 예, 나머지도 다 자연스럽고, “동물도 生老病死 하는 게 다 자연인데, 사람도 이 천지의 자연 속에서 나서 다른 동물과 같이 생로병사로 지낸다면 다른 동물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자연에서 자연이 보이는 그런 생로병사의 흐름만 가지고, 우리가 그걸 따른 것만 가지고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五行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그러고 仁義禮智信을 다 구현할 수 있는 존재구요, “만물 속에 스스로 행동하며 小天地라고 하는 것이니” 만물은 다 뇌가 하늘이고 배가 땅인데 다 몸이 구부정한데, 인간만 허리 똑바로 세우고 다닌다는 겁니다.

24:00

그래서 소천지예요. 천지가 제대로 갖춰졌어요. 뇌도 제일 고급 뇌를 갖고 있고요. “그래서 자연 속에서 부자연함 없이 천지의 궤도 그대로 걷는 게 사람 된 도리”라는 겁니다. 우주에 인간이 왜 태어났냐. 남들은 다 피동적으로 그냥 자연을 따라가는데, 인간은, 주체적으로 자연을 선택해서 따라갈 수 있는 존재가, 우주는 꼭 그 존재를 갖고 싶은 거죠. 그 존재를 표현하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만들었더니 다 그냥 저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겁니다. 근데 그 중에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자꾸 자연의 궤도를 찾아서 걸어간 분들이 있어요. 다 같이 공부 못 하면 괜찮은데 누군가는 또 치고 나가기 시작한다는, 그래서 이 인간된 도리를 누군가는 구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연구를 같이 해서 그분들을 또 따라가야 되고, 그분들의 가르침을 또 배워서 그분들이 창작한 걸 나도 같이, 자연에 맞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면요 우리도 같이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만물이 생동하는 대자연의 궤도를 천지와 같이 가자면 무엇으로 되는 것인가. 태어난 그대로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으면 금수와 다를 바 없으니, 금수를 면하기 위해서는 천지의 궤도와 대자연을 본받아서 성인이 하신 말씀을 배우고 몸소 체험해서, 위로는 하늘의 형상을 살피고” 하늘의 결을 보고요, “아래로는 땅의 이치, 땅의 결에 통달하고. 가운데론 사람의 일을 살펴서 天地人의 당연한 도리를 하는 게, 이것이 사람으로 참된 의무고 책임이다.” 그런데 별게 아니라, 하늘은 어떻게 굴러갑니까? 生養收藏 春夏秋冬으로요. 땅은요, 金木水火土 五行으로, 마찬가지로 생양수장의 길을 걷습니다. 인간은요, 仁義禮智信. 같이 해 줘야 돼요. “그러므로 사람이 쉬지 않고 노력하면 바로 군자가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또한 짓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우리가 作之不已의 정신으로 날마다 뭘 만들어야 돼요. 생각 감정 오감으로요 날마다 창작을 해야 우리가 禽獸로부터 멀어지고 自然性, 그러니까 금수한테 금수의 도는 당연한 건데, 인간이 금수의 도를 따르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26:09

인간이 人間道를 하려면요 作之不已의 정신으로 끝없이 창작을 해야 되는데, 보십시오. 여기에서 등급이 나와요. “그 사람이 사람 된 도리를 성인이 가르친 대로 배워서 그 수를 면할 도리를 한 가지씩 作해서, 오늘 한 가지 짓고 내일 또 지어서, 끊임없이 지어나가면 마침내 군자를 이룬다. 라고 옛 어른들이 하신 말씀처럼 군자란 금수와 거리가 좀 있다.” 많이 있다. 는 아니에요. 좀 있다. 이 정도가 군잡니다. 그러니까 1·2단 되면 군자 그래요. 영성에서 君子, 레벨을요, 동양에서는 君子, 賢人, 聖人 그러면. 이 정도(군자)가 한 1·2단, (군자가) 저단이면 (현인이) 중단, 성인들은 한 7단 이상부턴 성인 그럽니다. 이게 딱 잘라져 있는 건 아니지만. 1단 이상들이 군자 소리 듣고. 한 5·6段들이 보통 현인, 3·4·5·6단들이 현인 소리 듣고. 7단 이상은 성인 소리 듣고 해요. 이렇게 크게 나누면. 그러면 군자가 어떤지 보실래요? 군자는 짓긴 짓는데 力作이에요. 힘을, 애를 많이 써야 금수랑 조금 거리가 난다는 거예요. 그럼 현인들은 어떻습니까. “군자란 천지자연의 궤도를 본받으려고 역작하는 사람의 명칭이요. 이 작이 역작을 하지 않더라도 順作이 되면 현인이요.” 뭔가 순하게 지을 수 있어요. 천명이 들리고 순하게 따라가는 경지 있죠. 예. 이제 천명을 잘 알겠고 잘 들리고 하는 데 편해요. 그걸, 인의예지를 하는데. 그다음에 이 성인은 어떻게 될까요.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지음이 되면” 자유자재가 되면, 從心所欲 不踰矩가 되면 그때부터 성인이라는 겁니다. “이 作이 대자연과 합치해서 그 궤도대로 행할 수 있는 성인이요 또한 사람 중의 사람이 되는 거다.”

28:06

그러니까 우주가 인간을 낼 때 성인 되라고 낸 거예요. 성인이 돼야만 우주에서 제일 편한 존재가 돼요. 여러분이 聖人이 되셔야 어디에 갖다 놔도 6바라밀과 양심으로 문제를 다 풀면서 자연을 그대로, 희노애락을 가진 에고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자연을 그대로 구현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 존재가 되라고 우주가 인간을 낳는데, 에고가 힘들다고 경영하길 버리고 우주에서 없어지겠다고 하는 거는요, 지금 금수도 자기대로 다 도를 펴고 있는데, 인간만이 지금 못 견디겠다고 하소연하는 것밖에 안 돼요. 요걸 좀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이 경지까지 가게 되는 것이 이 作이라는 글자의 힘이다. 이것을 저버리면 성공을 못 본다는 말이다. 성공을 못 본다는 말은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평가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 되자면 사람 된 도리를 알아야 되고, 이 道를 알자면 가르침이 있어야 되고” 道, 敎 “가르침을 받자면 배워야 되고” 學입니다. “배우자면 내가 실천해야 되고, 行하려면 作이 있어야 된다.” 뭔가를 여러분, 道를 구현하려면 작품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진정한 道의 실천이다. 이런 얘깁니다. “지음으로써, 作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금수와 거리가 생겨, 천지자연 그대로 걷게 되면 이것이 진인이요 성인이요 현인이요 군자요 대인이요 영웅호걸도 되는 것이며, 충효경열(忠孝敬烈)” 충신, 효자, 뭐 공경하는 선비, 열녀, 경사, 열녀가 되는 거고 “文章名筆, 才子佳人이 다 될 수 있는 거다. 우리가 천지의 대자연에 접근하자면 이 몸 이 마음에서 잠시도 이 作이라는 글자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습니까. 아, “또한 道敎學行作의 순서도 잊지 마라.” 이 우주에 道가 있고 거기에 대한 가르침이 있어서, 내가 그걸 배워서 실천하면서 끝없이 지어가다 보면 우리는 우주자연과 하나가 될 때가 온다.

30:04

인간은 이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아까 앞에서 말씀하신 거랑 이어서 보면 어떻게 됩니까. 이게 윤회에서 극복하는 삶이고 대자연에 순종하는 삶이요 그게 지상을 정토로 극락으로 만드는 삶입니다. 지금 이 몸과 마음, 몸뚱이, 이 마음 가지고 그대로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이거예요. 몸과 마음에서 그대로 천국을 만드실 수 있어야지 이게 진정한 수행자라는 거죠. 수도자라는 거죠. 예수님도 뭐라고 하셨습니까.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천국을 만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 땅이라는 게 우리 마음과 몸뚱이에요. 지금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땅에서 천국,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건요 내 몸과 마음이 대자연의 궤도에 합치하는 걸 말합니다. 같은 얘기라는 거 아시겠죠. 성인들은 다 같은 얘기만 해요. 그래서 이 선생님 말씀도 보면 다 그 얘기입니다. 이게 봉우일기라는 게, 여기서 일부만 뽑은 게 이 『백두산족에게 告함』이라는 책이에요. 이게(봉우일기) 더 많이 들어있는 글이구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게, 조금만 더 읽어드릴게요. 여기에 이게 나옵니다. 우주 대자연을 그대로 본받아서. 제목이 「우주 대자연을 그대로 본받아서」[6]라는 제목인데, 선생님은 끝없이 우주 대자연을 본받으란 얘깁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丹學을 하셨고, 단학도 자연 그대로 우주, 몸을 만드는 거거든요. 그러는 중에 原象法을 통해 투시나, 이게 불교에서는 天眼通 宿命通입니다. 투시능력을 많이 계발하셔서, 이분은요 전생이나, 여 이렇게 우주, 뭐 북극성부터, 영적인 북극성부터 이 우주를 꿰뚫어 보는 걸 아주 전공으로 하신 분이에요. 이분은.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저같이 호흡과 깨어 있음을 주로 해서 내 삶에 오는 것들, 재료들을 가지고 끝없이 양심 분석을 통해 제 안에 있는 로고스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연구한 저나, 밖으로 나가서 우주를 돌아다니신 선생님이나 내린 결론이 뭡니까?

32:08

仁義禮智 하자는 것밖에 결론이 안 나요. 그렇죠? 밖으로 나가나 안으로 들어오나 그 로고스 밖에 없거든요. 우주에는. 그래서 제가 얻은 진리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된 겁니다. 선생님과 다른 방식으로 저는 연구를 해 봤기 때문에. 그런데 보세요. “대자연을 그대로 본받아서 인간은 仁義禮智로 교화하는 것이 대자연의 生長收藏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仁으로 春의 生함을 의미하며” 봄에 낳는 거는 사랑이요 “예절은 여름의 길러냄이며, 정의는 가을의 수확함이며, 지혜는 겨울의 深藏” 깊이 감춘 거다. “萬事萬物이 다 이 원리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혹 이 원리를 벗어나서 되는 일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이는 원리에 배치되는 것이라 長久할 수, 오래 갈 수 없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逆理도 있을 수 있으나 절대적으로 이 대자연을 벗어나서는 成敗存亡의 道가 없는 것이다.” 뭔 소리냐면 일시적으로 이걸 어길 순 있겠죠. 악을 지을 순 있겠지만 나쁜 카르마를 지었기 때문에 나쁜 과보를 받고 사라질 거라는 겁니다. 다만 이게 우리가 볼 때 바로 효과가 안 나니까 우리는 그게, 악을 지어도 괜찮을 거 같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이겁니다. 이 원리를 위배했기 때문에. 사랑 정의 예절 지혜를 위배하고. 보십시오, 여기에서 또 둘로 나누면 ‘’쪽인 生養은 길러주는 거죠. 쪼그라들어서 결실을 보게 하는 ‘’쪽은 쳐내는 힘입니다. 북돋아 주는 힘과 쳐내는 힘이 있어요. 이게 成, 이루어주는 힘이면 이건 뭐죠, 敗退시키는, 敗北시키는 힘이 있어요. 누르는 힘이. 그런데 보세요. 자연이 陽氣는, 좋은 기운은 북돋아 줄 거고. 陰氣는, 여기서 음기라고 하는 건, 어두운 기운은 누르겠죠. 쳐 내겠죠. 그러면 여러분, 仁義禮智를 만약에 지키면 우주가 살리는 쪽으로 가겠죠. 善의 카르마가.

34:04

인의예지를 어기면요, 내리찍는 힘이 작동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오래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의예지를 계속 어기게 되면요 반드시 우주가, 좀 더딜지언정 반드시 그걸 꺾어 내리는 힘이 작용해서 무너뜨리고 지옥 보낸다는 겁니다. 반드시. 요걸 어길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세요, 그래서 春生, 봄으로 살리고. 그래서 春生秋殺 해서 여기 수확한다는 걸 이제 죽인다. 죽여야 수확을 하거든요. 쭉정이는 쳐내요. 춘생추살 이걸로 많이 얘기합니다. 그래서 역사책에, 공자님이 쓴 춘추라는 건 춘생추살의 정신으로 쓴 거예요. 즉 충신들은 칭찬해주고, 살려주고. 간신들은요 쳐내는 거예요. 역사에서 심판한다는 게 춘추정신입니다. 즉 현실적으로 아직 과보를 안 받았어요. 惡을. 나쁜 짓 하고도 아직 벌 안 받은 사람들이 있지만 역사 속에서 秋霜같이 쳐 내버리는 겁니다. 誹謗을 통해서라도, 역사책에서 지적을 해서라도 그 사람을 깎아 내리는 겁니다. 이게 자연을 본받아서 역사를 記述하는 거죠. 반드시 또, 자연의 카르마도 그 사람을 벌하겠지만 인간이 또 거기에, 역사를 볼 때도 그렇게 춘생추살의 정신으로 쓰는 게 춘추예요. 역사책. 춘추정신이란 게 그건데.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이 대자연을 벗어날 순 없다. 그렇다면 이 우주 내에 예부터 지금까지 역대 인물들이 모두 무위로 다스려야 할 것인데 왜 成敗存亡이 있으며 聖賢下愚가 있는가? 의심할 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이란 말이다. 춘생추살하는 것도 자연이며 盛衰存亡하는 것도 자연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道를 아는 관계로 자신이 盛하는 대자연의 원리대로 하면” 살려주는 원리를 따르면 “盛할 것이요, 쇠퇴하는 원리를 만약에 따르면 衰하는 것이다.

36:00

존망도 역시 이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春이 生하는 원리를 가졌다면 천지간의 화평이 그 영생을 의미함이요, 秋가, 가을이 죽이는 원리를 가졌다면 천지간의 肅殺之氣, 죽이는 그 쌀쌀한 기운이 그 패망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 말은 어려운 말 같지만 뭔 얘기냐면 우리가 만약에요 인의예지를 잘 지켜가지고 우주가 살려주고 싶은 짓만 계속 한다면 천하도 화평하게, 봄기운이 충만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長春世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사람들이 오해를 해 가지고요, 장춘세계 온다니까 “진짜 봄만 계속 와야 되나 보다.” 이렇게, 지축이 자꾸 서야 된다고 주장하시는데 지축만 서면 뭐 합니까. 그 얘기가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는 세계를 장춘세계라고 하는 거예요. 옛날에. 인간이요, 벌 받을 짓을 안 해버리는 시대를 장춘시대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이 肅殺氣로, 가을 기운으로 쳐 내야 되는데 죄를 안 지으니까 쳐낼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해 버리는 시대가 장춘시대라, 그게 극락입니다. 장춘시대가. 장춘세계의 원리를 따라버리면, 生의 원리를 따라버리면 살려주지 죽일 수가 없잖아요. 근데 만약 인간이 죄를 짓기 시작하면 우주에서 가을의 기운으로 쳐 내버리겠죠. 그렇게 죽이는 원리를 작동하지 않게 해 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이거죠. “그래서 옛 성인이” 맹자가 한 말입니다. “살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만이 천하를 하나로 통합할 것이다. 라고 하신 것도, 이 봄의 기르는 도를 가지면 능히 천하 인심을 얻을 것이라는 거를 의미하니 역시 대자연을 본받으라는 말씀이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천지간의 대자연은 循環無端” 끝없이 이 원리대로 돌고 도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아서 천지 대자연의 生長을 본받으면 언제든지 패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대자연이다.

38:02

그러니 이걸 본받아서 永久한 평화를 하여 자연을 본받자는 거다.” 지금 요 말은 뭐냐면요. 아, 그럼 인간 세상도 늘 이렇게 잘 됐다 못 됐다가 늘 있어야 맞겠네. 라고 하지 말고, 인간은요 요 원리를 활용하면요, 좀 인간은 다르다는 거예요. 인간은요 그렇지 않아서 천지는 그냥 이게 순환하고 마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아서 이거를 생장, 살리고 길러주는 쪽을 본받아서 열심히 善을 하면요, 영구하게 인간은 선한 카르마를 계속 쌓음으로써 하늘이 살려줄 수밖에 없게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재밌죠. 인간이 자연적이지 않다 보니까 이런 맛이 다른 거예요. 인간은. 이게 또 자연인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렇죠? 인간은요 자연의 원리를 활용할 수 있는 존재인 거예요. 이게 다릅니다. 만물은 자연을 따른다고 하지만 그걸 활용하진 못해요. 인간은요 에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냐가, 자유가 있죠. 인간이 계속해서 선택할 때 우주가 살려줄 수밖에 없는 선택을 계속해 버리면 인간은 안 망하게 된다는. 반대로, 죽일 수밖에 없는 카르마를 계속 지어버리면 인간은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해되십니까? 이건 우주의 로고스를 많이 연구해야 아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얼마나 연구하셨으니까 이런 얘길 하시겠어요. 연구해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왜 성인들이 나와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39:32

우리가 서로 사랑을 해야, 하늘이 살려주고 싶어서, 인간을 도와주게 돼 있어요. 인간이 서로 계속 죽이고 이렇게 인간이 서로 해칠 생각만 하고, 욕망만 따라가고 계속 자연을 어기게 되면요, 그 죄값을 물게 돼 가지고 결국은요 하늘의 肅殺氣가 작동해서 한 번씩 크게 쳐 내버리는 시기, 인간이 역사 속에서 늘 전쟁이 났던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면 그게 윤회에 끌려가는 삶이에요. 카르마의 법칙에 그냥 끌려가고 있는 상태지 그게, 주체적으로 카르마 법칙을 굴리고 있지 못하니까 피동적인 윤회의 삶이고. 주체적인 윤회의 삶은 뭐냐면요, 이 공식을 알아서 응용해 버리는 겁니다. 활용하는 겁니다. 우주가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善한 카르마만 계속 지어버리면 전쟁이 사라지게 된다는, 이 땅에서. 이해되세요? 인간의 道는 여기까지 가야 끝입니다. 이게 弘益人間의 道고, 보살도는 이거예요. “아니 그냥 우주는, 이게 다 生長收藏이라면, 善했다 惡했다 이렇게 그냥 사는 거지, 왜 그 보살들이, 그냥 빨리 열반이나 들어 사라지지, 우주가 원래 이렇게 생긴 걸 왜, 여기서 뭘 노력하려고 하는 겁니까. 뭘 중생구제 하겠다고 덤비는 겁니까.” 인간이 깨달아서 노력하면 우주를 극락으로 만들 수도 있어서 그래요. 간단하게 말하면. 요 원리를 아셔야 이게 진순데 전달이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예.

40:59

  1. 『백두산족에게 告함』, pp. 25-27
  2. 봉우일기 1권 「莘野一夢」, pp. 475-476
  3. 『백두산족에게 告함』 「예순 다섯에 쓴 시」, pp. 44-45
  4. 『백두산족에게 告함』 「구도자의 자세」(pp. 97-164) 차례: 道 → 敎 → 學 → 行 → 作 → 信·敬·誠 → …
  5. 『백두산족에게 告함』 「作」, pp. 116-118
  6. 봉우일기 1권 「우주 대자연을 그대로 본받아서」, pp. 383-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