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 선생님의 가르침 - 성인들의 심법

홍익학당 아카이브
봉우 선생님의 가르침
홍익학당의 공부와 봉우 선생님 진면목
가르침들 연정 16법 원상문과 원상법
원상법 12관절 원상혹문장 호흡법 소서
구계법론 삼극주 오수주 대학 3강령
세상 속으로 뛰어든 신선 양심으로 극락세계
도와 덕을 온전히 통합적으로 성인들의 심법
봉우 선생님의 견성론 양심 개벽 개벽팀


강의일자 2016. 10. 20. 木.
게시일자 2016. 10. 30.
동영상 길이 32:30
강의 중 인용 도서 봉우일기 1권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nsasgKOvmf4


00:06

유교의 영성, 기독교의 영성 모두 우리의 영혼, (영혼은) 혼·백(靈·魂)으로 치면 魂이죠. 魂 안에 靈이 있습니다. 영이 여러분의 참나예요. 이 영이 그대로 하나님과 통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성부(聖父), 이 영은 성령(聖靈) 그러는 겁니다. 우리의 영이지만 우리 영이 아니에요. 여러분 마음 여러분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다 하느님의 피조물입니다. 여러분 것처럼 우기고 다니세요.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의 영도 하나님의 영 그대로예요. 여러분 영이라고 해서 뭐 따로 돼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성령에 분리돼서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성부의 영이 여러분 혼에 임하면 성령이 돼요. 이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끝없이 양심을 외치는 겁니다. 양심 하라고. 사랑 정의 예절 성실 몰입 지혜. 진리 안에 居하라. 지혜죠. 예. 몰입, 늘 깨어 있어라. 마음에 도적이 침투하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 늘 깨어 있어라. 도적이 불시에 들어온다. 즉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깊은 삼매에 들으라는 게 아니에요. 욕심으로부터 깨어 있으라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욕심으로부터 깨어 계십니까? 편견으로부터 깨어 계세요? 진짜 깨어 있는 분은요 한 생각을 일으키더라도 자기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 보면 알아차려요 “내가 편견을, 고집을 부리고 있네.” 아집 “나 위주로 지금 생각하고 있네.” 바로 알아차려요. 그거 알아차리셔야 깨어 있는 거예요. 그게 6바라밀에서 선정의 필요성이에요. 6바라밀 잘 하는 데 선정이 꼭 필요하니까 선정을 넣어 놓은 겁니다. 혼자 깊은 삼매에 뿅 가서 계시라는 게 아니라, 깨어서 자기 생각 감정 오감이요 욕심 부리나 안 부리나 알아차리고 있으라는 거예요. 6바라밀을 어기나 안 어기나 알아차려야 되니까, 선정은요 모든 다른 바라밀의 기본입니다.

02:01

깨어 있지 못하면 다른 바라밀이 안 이뤄지거든요. 보시도요, 남한테 베풀고 싶어도 욕심으로 하는지 편견으로 하는지 선정 바라밀이 깨어서 봐 줘야 알아차려요. 욕심에 안 빠지고 편견에 안 빠지고 양심대로 보시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선정공부를 제일 먼저 하는 거예요. 절에 가서 선정공부 제일 먼저 하죠. 이게 6바라밀의 뿌리이기 때문에 하는 건데 여기서 멈춰 버리면 6바라밀도 안 나오고 혼자 뿅 가는 걸 즐기는. 체내 마약을, 엔돌핀이 체내 마약이죠. 끝없이 체내 마약을 즐기는 사람이 돼요. “세상이야 망하건 말건 나는 황홀하다.” 하는. 성인들은요 깨어 있어라 할 때에도 항상 “도적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깨어 있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성실 “정진하라. 작은 일에도 성실하라.”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거 다 예수님 말씀이에요. 인욕 “인내하라. 감내하라. 겸손하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자신의 겸손을 늘 말씀하셨어요. 나처럼 하란 얘기예요. 또 온유하다는 건 사랑이구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은 남한테 안 하고, 내가 받고 싶은 걸 남한테 해 주는 그런 사랑. 정의 “두 팔 들고 지옥 가는 것보다 죄 지은 팔 잘라내고 천국 가는 게 낫다. 뿌린 대로 거둘 거다. 속에 나쁜 게 있으면 밖으로 반드시 나쁜 게 나오고, 속에 좋은 게 있으면 좋은 열매가 나온다.” “뿌린 대로 거둔다.” 하는 게 예수님 철칙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는 걸 또 거듭 밝혔고요. 양심의 이 은총이, 사도 바울은 이거를 성령의 열매라고 했죠.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서 끝없이, 이 성령의 열매가 우리 혼에 계속 주어져요. 그런데 우리가 이거를 못 감당하니까 밖으로 이게 나오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남을 나처럼 사랑하고 싶은데 막아버려요. 이건 죄니까 이거는 내 팔을 잘라내더라도 이런 죄는 지으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이 안에서 올라오는데 용서하고 지어요. 그런 죄를. 나한테 당장 이득이 되니까.

04:08

이득이 되기만 하면 인내고 뭐고 다 버려두고 겸손하지 않은 삶을 살고. 양심에 있어서 성실하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하고.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니까 자유가 없죠.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그게 원래요 원 말은 “진리 안에 안주하면 자유를 얻으리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안주한다는 건, 진리 안에 살아야 돼요. 진리를 따르면서 그 안에 들어앉아 살면 자유가 올 거다. 그때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믿으면 벗어난다고 안 하셨다고요. 나만 믿으면 벗어난다. 이렇게 얘기 안 하셨. 왜, 본인이 성령의 뜻대로 삶으로써 자유로워졌는데, 왜 다른 제자들한텐 “나처럼 살으라.”고 말을 못하고 “나만 믿으면 산다.”라고 하셨겠어요. 사도 바울이 그렇게 몰고 간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그렇게 전파해야 이 유치원생들도 잘 빨리 알아들으니까 그렇게 가르친 거. 그런데 사도 바울마저도 “우리도 성숙한 이는 지혜로 들어갑니다.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지혜로 들어갑니다.”라고 사도 바울이 또 고백해 놓은 게 있어요. 써 놓은 게 있다고요. 교인들한테, 그 당시 다른 교회들한테 그걸 알리고 싶은 거예요. 결국 지혜를 얻어야 끝난다. 성령의 눈을 가리고 있는 덮개를 치워야 우리도 밝아지고,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합니다. 성령은 하느님하고 하나죠.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인해 하느님이 아는 걸 우리도 다 알 수 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얘기했어요. 그러면 지금 하느님이 아실 만한 걸 우리도 알아야 되고, 즉, 뭐가 옳은지 그른지 하느님 안목으로 알아야 되고. 뭐가 양심인지 비양심인지 알아야 되고.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그른지. 이 땅을 천국 만들려면 뭘 해야 되는지 다 알고 계셔야 돼요. 알고 하고 계셔야 돼요. 성령의 인도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이런 게 하나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나만 천국 간다.”라고 망상을 품으실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는 겁니다.

06:02

非성경적입니다. 聖經工夫를 좀 하세요. 목사님이 읽어주시는 달콤한 구절만 듣지 마시고 예수님의 쓰디쓴 말들을 좀 들으셔서 진짜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길 바래요. 이게 지금 유교로 말하면 우리 안의 양심에서, 이게 양심이죠. 내 안의 양심이요, 양심에서 끝없이 사랑 정의, 인의예지(仁義禮智)信의 덕목이 나오는데 우리 에고가, 욕심을 부린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 이 양심이, 여기는 양심 그 자첸데, 양심의 소리가 밖으로 나왔죠. 그러면 이 때부터 이 양심의 싹들하고 욕심 간에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이 양심의 싹이 우리가 四端이라고 하는 인의예지신의 마음인데 이 친구들이 50% 이상이 되면, 욕심을 누르면 이 사람 마음에선 천국이 이루어지고. 50% 이하가 되면 욕심이 지배하면 이 마음은 이제 지옥으로 변하는 겁니다. 간단해요. 유교건 기독교건 이게 다예요. 이 땅에서 아버지 뜻대로 구현해 보겠다고 예수님이 하신 게 별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서 황금률을 통해서, 성령의 뜻대로 사는 삶을 통해서 마음에서부터 천국을 만드시겠다는. 지금 마음이 천국에 안 사시는 분들이 천국에 살 거라고 생각하신다는 거는 妄發이고 망상이에요. 예수님을 우습게 보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생을 걸고 와서 인간의 삶 속에서 온갖 그 역경 속에서, 이런 성령의 뜻을 구현하는 이 삶을요 정말 값 없게 만드는 일이에요. “나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가.” 이 말은.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 자기 내면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안 하시고 계신다면. 그래서 이런 말도 좀 들으시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혹시 저 사람 말이 맞으면 어쩌나.” 하는 이런 걱정을 한 번 해 보시기 바랍 ㅎ. 난 천국 분양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저 친구 말 들으니 분양사기일 수도 있단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제가. 그거 분양 사기일 수 있습니다.

08:07

막상 아파트 지어지고 가 보면 여러분 자리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더 확인해 보시는 게 좋아요. 그 중간 브로커들이요 사기꾼일 수가 있어요. 중간 브로커들 믿지 마시고. 그 양반들도 천국을 몰라요. 천국 아는 양반 말씀을 들으세요. 누가 천국 아는 양반일까요? 예수님 닮은 양반. 예수님처럼. 자,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누가. 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 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겠어요. 靈대로 살고 계셨죠. 자, 예수님은요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통해서 이 성령을 그대로 구현하고 계셨죠. 예수님 입장에선 뭐라고 하시겠어요. 이 보이지 않는 영을,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제자가 요구할 때 예수님이 “너 나랑 같이 안 지냈니.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 안 봤니.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나한테 말할 수가 있냐. 넌 이미 아버지를 끝없이 보고 있었는데. 내가 아버지 뜻대로만 말하고 행동했는데 아버지를 모른다니 말이 되냐. 내 행동을, 언행을 다 보고 있던 니가.” 이 정도 말 하실 수 있는 역량을 갖추셔야 돼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양심 뜻대로, 성령의 뜻대로 사는 삶을 먼저 만들어 놓으셔야 돼요. 그러면 남들이 여러분을 보고, 여러분을 통해서 누굴 봐요? 여러분이 양심의 분신이 되고 성령의 분신이 됐기 때문에 남들은 여러분을 통해서 성령을 봅니다. 그게 올바른 전도예요. 안 그런 전도는 교회의 교인 숫자 불리는 거지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분양사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갔다고 해서 여러분이 구원받진 않아요. 악업이 되면 됐지 선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잘 파악하셔야 돼요. 이게, 지금 이 판이 진짜 예수님 닮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판인지를 보시지 않으면, 함부로 덤비시면 큰일 납니다. 이거는 우주에서 냉정한 거예요.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우주 철칙에 의거해서, 욕심을 뿌린 사람은 반드시 욕심의 대가를 치르게 돼 있기 때문에. 무지의 씨를 뿌렸으면 무지의 대가를 치르셔야 돼요.

10:11

“나 몰랐어요.”라고 해서 면제되는 게 아니라고요. 그래서 이거 알아보시라는. 예수님이 말씀한 그대로 살았는지, 자기부터. 또 저 리더는, 저 목자는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인지. 이거, 이 분석을 게을리 해 놓고 나중에 그 목자한테 사기당했다. 라고 하는 건요 정말 브로커가 사기꾼 같은데도 안 알아보고, 자기가 투자했다 나중에 “나 억울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안 일어날 일이 이미 일어났잖아요. 이미 일어나서 사기당했다는 게 가슴 아픈 일 아닙니까. 그 따지고 뭐 한들. 안 일어날 일을 자기가 일어나게, 자기도 도와서 만들었다는 데에 있어서는 책임이 있으니까, 누가 더 책임이 있냐 따지기 전에 이미, 안 일어나도 될 일을 내가 도와서 만들어냈다. 하는 것에서 충분히 반성하셔야 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느님은 돌아온 탕자 더 이뻐해 주신다고 했잖아요. 탕자가 돌아오면 더 이쁘죠. 쟤는 진짜 양심 앞으로 못 할 거 같단 친구가 갑자기 인의예지를 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이 더 기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양심의 뜻을 따르는 게 예수님을 이 땅에 다시 살려내는 길이에요. 예수님 부활하길 바라지 마시고 여러분 양심 좀 부활시키세요. 죽어가서, 죽어 지금 사라져가고 있으니까. 이러면서 무슨 이 땅에 천국, 구경도 못 하고 있는데 자꾸 자기 보이지 않는 세계에 “천국 나는 사 놔서 괜찮다”고 사기당하신 거 같은 말씀 계속하시면 상황이 더 어지러워집니다. 이거 아시겠죠. 욕심의 화신, 욕심의 분신을 보면 그 사람을 통해 욕심의 실체가 느껴지죠.

12:01

“야. 욕심이라는 게 무섭구나.” 양심의 분신을 보면 어떨까요. “양심이 실존하는 거구나.” 양심의 분신이 되는 것을 使徒 그럽니다. 하나님의 사도라는 거는 하나님이 지상에 사람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이렇게 생겼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도예요.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천국 간다는 게요 “하느님의 사도들이라야 천국 간다.” 이 얘기예요. 하느님, 그 사람한테서 하느님이 전혀 안 보이는데 무슨, 주여 주여 했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니라고 다 얘기해 놓으셨는데. 예수님 말씀을 왜 이렇게 무시하시는지 전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런 얘길 들어도 또 뭐, 우리 목사님이 뭐라고 했다 하면 바로 넘어가시겠지만 그래도 또 계속 할 거예요. 그 분 말이 더 힘이 있는지 제 말이 더 힘이 있는지, 뭐 저도 이제 시작이니까 죽을 때까지 할 거니까. 누가 더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릴지 한 번 저는 해 보자는 거. 죽을 때까지 할 거기 때문에. 또 죽은 뒤에 더 힘을 얻을 수도 있거든요. 제가 어떻게 살고 갔냐에 따라서. 그래서 제가 모든 삶의 경영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주장하고 살고, 하고 가야, 생각 말 행동으로 계속 양심을 代辯하고 가면 그게 힘을 얻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 사람들은 훨씬 쉽게 양심을 접할 거예요. 예수님도 이러리라고 하신 거였거든요. 2000년 만에, 통탄할 상황이 됐죠. 그러니까 이게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계속 이 양심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돼요. 제가 살아있을 때 많이 뽑아내야 돼요. 그래야 그게 빨리 안 사라지지, 하는 사람이 없으면 금방 사라져요. 제 말만 남아서는 금방 사라지. 그런데 그 양심을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이 땅에서 안 사라지고 양심 얘기가 계속 회자되면서 예전 聖人들이 다녀가신 보람이 나겠죠. 제가 원하는 건 그거예요. 예전에 生을 바쳐서 이 땅에 양심을 가르쳐 주신 분들의 삶이 이렇게 가치 없게 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저는 그, 다 제 선생님들이신데. 교회에서 예수님 믿는 것보다 제가 더 믿는다고 저는 장담합니다.

14:17

전 그 분이 어떤 분인지도 선명하게 느끼고,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생을 걸고 양심의 분신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서 예수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저도 성령의 분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하나라도 성령의 뜻에 안 맞게 하고 싶지 않아서 노트까지 만들어서 쓰고 있는 거 아닙니까. “혹시 지금 제 생각에 성령의 뜻이 아니고 욕심의 뜻이 개입돼 있나요?” 하고 따져 보고 분석해서 있으면, 찜찜하면 도려내고 하자는 거거든요. 이렇게 제가 지금 노력하고 있고 여러분들도 공감해 주시니까 학당 팬들이 늘고 계시고. 학당에서 공부하시는 분이 늘고 계셔서 너무 기쁩니다. 다만 앞으로 우리가 이렇게 이런 얘길 하다 보면 必히 지금 교회 다니시는 분이나 각자 신앙을 갖고 계신 분들하고 충돌이 나겠기에 미리 제가 말씀을 드려 본 거예요. 여러분도 이런 자세로 공부하시면 그런 분들한테도 양심을 보여주실 수 있어야 돼요. 나 예수님 믿는다고 따지는 분들한테 성령을 직접 보여 주세요 “이게 성령이야. 지금 거, 그런 데 성령이 있지 않아.” 남의 말 속아서 믿고 있는 거기에 성령이 있는 게 아니고요, 지금, 이 순간 내 양심의 그 신호에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게 성령을 따르는 거고, 진짜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이분은 이미 구원 받았어요. 천국을 얘기 안 해요. 그런 분들은.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에. 자기 안에 성령이 살아 숨 쉬는 게 느껴지고 내 삶이 그 성령을 따르고 있으면 된 거죠. 무슨 구원이 필요해요. 여기가 이미 천국이지. 천국이 뭔데요? 천국이 뭔지도 몰라요.

16:00

천국을 왜 그렇게 가시려고 하는데요? 거기 가면 뭔가 집이 더 좋을 거 같죠. 瑕疵도 없을 거 같고 층간소음도 없을 거 같고 거기 가면 이웃도 다 그냥 내 맘에 드는 사람들만 있을 거 같고. 그게 아니에요.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세계가 천국이에요. 즉 양심이 구현되고 있는 세계가 천국이에요. 여러분 천국 가시면 안 돼요. 천국 망쳐요. 거기 집값이 떨어집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대거 들어가시면 천국 집값이 떨어져요. 아마 천국 주민들이 반대할 겁니다. 여러분 들어오는 걸. 여기가 무슨 뭐 폐기물 처리하는 데냐. 하고. 걱정하지 마시고. 절대, 여러분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니까. 지금 제 말씀 듣고 성경을 다시 읽어보세요. 예수님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그 얘기밖에 안 했어요. 제가 예전에 성경을 사서, 킹 제임스 譯인가 큰 맘 먹고 사 가지고, 나중에 강의 할 때를 대비해서 밑줄을 치면서 읽는데요. 신약성서를. 한 페이지에 밑줄을 계속 치고 있어서 하다 멈춘 적이 있어요. 이렇게 밑줄 쳤다가는 책 전체를 다 치게 생겨서 제가 멈춘 적이 있어요. 그렇게 거기 있는 말씀들이 좋아요. 그래서 제가, 논어 맹자같이 좋은 글인데 그게 못 읽히는 게 안타까워서, 성경 강의를 한 번씩 하는 거예요. 제가 실제 밑줄, 저는 밑줄을 아주 뭐 수험서보다 더 칩니다. 고전에. 근데 이 신약성서 치다 보니까 다 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멈춘 적이 있다니, 이렇게 치다간 어차피 다 칠 거 같으니까 더 추려보자 하고. 그래서 제가 제일 더 좋아하는 구절만 뽑아서 강의에 이미 다 올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시고. 오늘 이 얘기(봉우일기 내용) 한다고 꺼냈다가 이 얘기는 하지도 않고. 여기에 봉우 선생님 얘기 잠깐만 곁들이고 마무리 지을게요. 봉우 선생님은 유학을 좋아하십니다. 儒學, 우리 단군 이전에 환웅의 弘益人間 理念과, 유교, 공자님의 대동정치 이론. 요 두 개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하고 여기 이 안에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이 다 있다고 좋아하셨고.

18:10

弘益人間理念의 心法이 중국에 전해져서, 중국의 堯·舜임금한테 전해져서, 요 순이 가르쳐 준 심법이 이거거든요. 이게 지금 순임금의 가르침입니다. 요 순 중에. 욕심은 위태위태하고 양심의 싹은 미약하니, 항상 양심의 싹을 잘 돌보고 키우면, 마음이 50% 넘으면 마음이 중심을 잡으리라. 이게 다예요. 이게 순임금이 가르쳐 준 겁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그게 다예요. 공부의 다는 그거예요. 四書三經을 다 외우는 것보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분이 哲學者고 道學者죠. “孔子 가르침의 심법이 大學·中庸 두 책에 전해졌다 하나”[1] 예. 대학 중용이 禮記란 책에 들어 있었어요. 朱子가 그걸 따로 빼서 단행본으로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그 심법이 제대로 浮刻되지 않은 채로 한 1000년 지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면서 “약 2000년 동안 대학의 심법이 잊혀졌었단 얘기가 된다. 朱子가 그걸 다시 복원할 때까지” 한 1500년 이상 그게 잊혀졌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 안타깝지 않냐. “내가 보기에 논어 맹자 두 책은 공자 맹자의 道學의 절차를 다룬 책이 아니다.” 공부 하려면 이렇게 하라고 딱 엑기스만, 뼈대를 세워 놓은 책이 아니고, 뽑아 놓은 책이 아니고 공자님이나 맹자님이 평소에 해 놓은 얘기들, 방만하게 있는 거 모아놓은 거잖아요. 그러면 제가 평소에 누구 누구 사람도 다 다르고 그때 그 때 해 놓은 얘기를 모아 놓으면,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공부의 뼈대가 잘 안 드러날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대학 중용이 중요한 거예요. 대학 중용은요 딱 엑기스만 뽑아놓은 거예요. 그래서 論語 孟子 두 책도 좋은데 “제자들이 제각기 주워 모은 단편적인 語句를 모아놓은 언행록이니 두 聖人들의 본뜻을 다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제 내가 감히 뭔가 유교의 심법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하는데” 결국 대학 중용의 심법이죠.

20:21

근데 그 심법이 뭐냐면 이게 다예요. 아까 그 순임금의 가르침. 그래서 大學 中庸도 결국은 요순의 이 가르침을 좀 더 부풀려 놓은 것일 뿐이라고 보신 거죠. “내가 감히 망령되이 말할 순 없으나 堯임금이 舜임금에게 전한 심법은 精一 두 글자뿐이었고, 舜임금이 禹임금한테 전할 때 여기에 道心惟微 人心惟危” 뭐냐면 도심은 미약하고 욕심은 위태하다 하는 “두 구절을 보태서” 요 순이 함께 만든 가르침이죠. 요임금이 먼저 가르쳐줬어요. 精一執中해라. 뭐든지 양심을 정밀하고 한결같이, 양심을 정밀하게 판다는 건요 이런 분석(양심 분석)을 통해서 혹시라도 여러분 마음에 욕심이나 편견이 껴서 양심을 망치지 않는지 정밀하게 욕심을 들어내는 걸 말해요. 그리고 精이라는 거는, 일관된다는 거는 오로지 일관되게 양심을 응원해주는 거죠. 양심으로 밀고 나가는 거죠. 했다 안 했다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양심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욕심이 양심을 가리는 걸 최대한 막아가면서 가다 보면 양심의 싹이, 미약했던 싹이 잘 자라서 내 내면에 뿌리를 확실히 내리면 내가 이제 자유가 오는 거죠. “진리 안에 살면 자유가 온다.” 예수님 말씀처럼 그게 공부의 다라는 거예요. “정밀하게 파고 한 결같이 파라.” 堯임금이 가르쳐줬고. 舜임금은 거기에다가 “뭘 팔 거냐? 양심을 파라.” 이렇게 가르쳐 줬다는 거예요. 이 두 분의 말씀이 이제 합쳐지니까 요임금은 “精一執中하라.” 이렇게만 가르쳤고 순임금은 왜 정일집중 해야 되는지 뭘 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준 거예요. “양심은 미약하고 욕심은 위태하니” 이 구절을 더 보탰다는 거예요.

22:07

그래서 실상이 드러났다. “성인들의 심법이 이게 다다. 그러니까 성인들의 심법이 五車書” 예전에 오거서 그러면 다섯 수레의 책이 들어있는. 그러니까 요즘 같으면 트럭 다섯 대에 책이 꽉 차 있어도 그걸 다 읽어야 심법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욕심 양심 알면 된다는 거예요. “오거서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道를 닦는 절차가 또한 번잡하지 않음도 분명하다. 그런데 세상이 말세가 되어” 요즘 목자들이, 성직자들이 문제다 하듯이 조선시대의 그 末을 사신 분 입장에서는 “말세가 되어 선비들이” 이제 선비들을 욕하시는. 그 때의 목자는 선비들이니까 “선비들이 한갓 겉모양만 익히고 문자에만 열중하니 도를 얻은 자 몇이나 되리오.” 조선 시대 때 그 당시 선비들 중에 몇이나 이 道를 얻었는가. 다 입만 열면 理氣論이 어떻고 四端七情論이 어떻고 하는데 자기 양심을 배양하는 사람 못 봤다는 거죠. 실제로 자기 양심 배양하는 사람 못 봤다. 그러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아요. 이 엉터리 성직자들이 문제예요. 이런 양반들이 또 얼마나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아는 체 하고 해서 백성들 괴롭혔겠습니까. 양반이네 해 가지고. 요즘 똑같죠. 요즘 제가 교회를 비판하더라도 교회만,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비판하는 게 아니고, 그 末弊들이 문젠 거예요. 교회의. 書院 교당 성당 다 똑같아요. 절. 그 말단들이 문젭니다. 진리도 모르면서 성직자인 척 하고 계시는 그 가짜 구루들이 문제죠. 가짜 멘토들이. “선비의 배움이 文章에는 많으나.” 문장은 다들 그냥 뛰어난데 “道學 방면으론” 도학이 진짜 철학입니다. 道를 진짜 따르겠다는 철학 방면으로는 “극히 적으니” 선비들이 다 공부한다고 그러면서 멋진 문장 지어서 과거시험 합격할 연구만 하지, 남한테 글 잘 쓴다고, 뛰어난 학문 있다고 인정받으려고 공부를 하지 진짜 양심공부한 사람 못 봤다는 거죠.

24:13

그 때도 못 봤으니 뭐 지금은 당연히 없겠죠. “극히 적으니 道學의 사라짐이 이미 오래더라.” 도학 공부하는 사람 다 사라졌다. 도학군자가 사라졌다 이거죠. 그래서 이런 얘기도 하시다가, 이제 그러다가 이분은 항상 이야기가 크게 나가시는데 “지금 세상은 世界一家요” 세계가 한 집안이 됐고. 세계화가 됐죠. 이 때가 52년에 쓰신 겁니다. 그 이 때도 이미 세계화가 됐다고 보신 거죠. 그럼 이게 6·25 때 아니에요? 그래서. 6·25 때 이런 글 쓰고 계세요. 지금 도학군자가 사라졌네 하며. “이제 세상은 세계 인류니” 하지만 항상 미래에 대해선 희망적이십니다. 이분은. 긍정 덩어리세요. “인류는 큰 평화를 바람이 마치 가문 하늘에 비를 바라듯이 하고 있으니, 장차 일단의 구름과 무지개로 때맞춰 비를 내려줄 계책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내 집안 내 나라 사람 아니라도 누가 환호하면서 좋아하지 않겠는가.” 인류한테 다시 양심 가르쳐 주는 그런 사람들 나오길 바라시는 거죠. “세상 사람들이 鶴首苦待한 지 이미 오래더라. 오늘날 도인은 절대로 묻혀 지낼 때가 아니니 바로 세상에 나와 움직일 수 있는 시기이다. 잘 되고 못 됨은 時運에 달려있다 하지 말라. 이 기회를 얻어 움직이지 않고 이 때를 만나 숨어드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 들어가서 도 닦는다 하고, 세상이, 때가 되면 알아서 되겠지 이런 소리 하지 말라는 거죠. 양심을 조금이라도 알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세상에서 양심 밝혀라. 이분은 아주 大乘보살의 화신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위 아래가 다 이익만 다투고” 예. 道가 땅에 떨어졌지만 “東西의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침이 멀지 않아 나타나, 한 번 나타나면 두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中和의 기운이 일어나리라.” 이 얘기가요 미·소가 그 당시 흉흉하게 붙고 있죠. 이 냉전 상황에서 서양의 양대 세력이 서로 이렇게 붙어서 힘을 상실하고, 중간에서 봄바람이 한국에서 일어나서 양심으로 전 세계를 지도할 거다. 이런 願을 품으시는 거예요.

26:24

장차. 이 中和의 기운이라는 거는 이 두 개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을 무마시킬 이런 양심주의가 나올 것이다. “이 두 기운이 빚어진 지 이미 오래도다. 때는 때로다. 때로구나. 다시 안 올 때로구나.” 이거는 崔水雲선생의 그 말씀 그대로 인용해 놓은 거예요. 최수운선생이 “5만 년, 앞으로 이제 태평시대가 올 때로다.” 이런 거 주장하셨는데. 그걸 전봉준선생이 지금이라고 해석해서 동학 농민운동을 일으켰거든요. 그러니까 그 예언이, 조선 말부터 지금 이제 개벽세상 온다는 예언이 계속 있었어요. 선생님은 이제 앞으로 올 거다.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침이 모두 그치면” 미·소의 그 강대국들 간의 힘겨루기가 그치면 “5만 년” 이 똑같죠. “5만 년 무극대도의 中和의 기운”이 모든 거를 품는 따뜻한 기운이, 봄기운이 “일어나리니” 앞으로 이제 좋은 시대가 올 거다. 근데 결국 이분도 뭐죠? 이런 양심공부한 사람들이 은거하지 말고, 산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알아서 세상이 인연대로 되겠지 하지 말고 뛰어들어서 적극적으로 바꿔라. 그래야 전 세계인을 살릴 방법이 나온다. 이런 얘기 하시는. 예. 오늘은 이거 정도 읽어드리면 될 거 같은데. 아무튼 이분 주장은 항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 보면요 항상 꿈이 크세요. 여기에도 이런 얘기가 있는데[2], 52년도, 이 때 6·25때라 아무튼 더 그런 얘기가 막 나오나 보네요.

28:08

“양 기운이 서로 相衝하여 전 세계가 흉흉한데 中和의 기운이 장차 봄을 告할 것이다.” 봄이 왔다. 하고. 당장 바로, 지금 춥지 아직 온전한 봄이 된 건 아니라서 조금 춥겠지만 훈훈한 봄바람은 불 것이다. 하는. 이 얘기 또 써 놓으신 데가 있네요. 그러니까 봄바람은요 결국 양심의 바람입니다. 長春世界는 양심이 늘, 전 세계에 퍼져서 늘 봄과 같이 온화한, 서로 부딪침이 있어도 따뜻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대거든요. 가을에 만나면 서로 춥잖아요. 서로 살벌하게 굽니다. 근데 봄에 만나면 서로 따뜻하고 여유롭단 말이에요. 그 봄기운이 사회를 지배해야 범죄도 줄고 전쟁도 줄고 서로 살만해지겠죠. 그게 양심에서 시작돼요. 이 싹이 작은 거 같지만 이 양심을 자꾸 배양하는 분들이 많아질 때 그 싹이 자라서 지구도 따뜻하게 만들고 온 우주도 밝힐 거다. 항상 선생님 주장입니다. 이분은 스케일이 커서, 그 어제 읽어드린 글에 있었어요. 이런 양심문명의 그 싹이 “현재는 터럭보다 작지만 장차 지구를 밝히고” 그다음, 꼭 지구에서 안 끝나요. “온 우주를 대광화로 밝힐 것이다.” 그러니까 광명한 빛으로 온 우주까지 밝힐 것이다. 이분은 스케일이 아주 그 시골에 계시면서 쓰셨을 텐데도 “내가 여기서 밝혀낸 이 광명한 마음이 온 우주까지 밝힐 거다.” 보살의 願입니다. 보살은 원래 그래요. 보살은 자기 양심에 최선을 다 함으로써 이 양심이 온 우주를 구원하기를 원해요. 이게 보살의 本願이에요. 이 本願力으로 보살도를 해야 이 땅에 淨土가 만들어져요. 불교신앙도 똑같아요. 나 죽은 (1초 정도 잘린 듯) 淨土 아미타부처님 만나러 가겠다고 淨土신앙 하고 계신 분 많죠. 기독교랑 똑같아요. 왜 이 땅을 자꾸 버리고, 穢土, 똥예잡니다. 더러운 땅이라고 그래요.

30:09

이 땅은 더러운 땅이라 나 淨土 가겠다고 수행을 한단 말이에요. 말이 됩니까? 대승 보살이, 그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대승 보살은 나 있는 곳을 淨土로 만들 연구를 먼저 하시는 게 첫쨉니다. 淨土 가고 하는 건 그다음 문제예요. 가지 마시라는 게 아니라. 여기서 뭐 좀 해 놓고 가시라고요. 근데 여기서 안 하고 여기서 도망갈, 몸 뺄 궁리만 한다고요. “여기 딱 보니까 이 땅이 아주 그냥 지옥이네.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장땡이네. 그래서 열심히 아미타불을 외면 아미타불이 나만 쏙 빼서 淨土에 입학시켜준다.”는 거. 기독교랑 똑같죠. 기독교 못된 거랑 저 불교 못된 거 똑같아요. 그런 건 귀신같이 서로 또 공유하면서 빨리 전파해서 합니다. 이 땅에 淨土 만들 답 없는 양반들은요 좀 그 빠지세요. 그 괜히 이런 잡설을 자꾸 내세워서 보살 되겠단 사람 망치는 게 싫어서 제가 이렇게 심하게 얘기합니다. 건전하게 견성하고 보살 되겠다는 사람을 망쳐요. 淨土신앙하는 분들이 가서 “살아서 견성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부처님한테 직접 배워야 돼. 아미타불의 원력이 없인 너의 힘으로는 견성도 못 하고 보살도 못 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안에는요 이미 불성이 있고 여러분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능력이 다 있어요. 부처로 사시라는 거예요. 6바라밀 하시면서. 淨土를 가도 그런 분이 갑니다. ㅎ 자기 마음에서 이미 淨土가 이루어진 분이 淨土를 가지. 어떻게 淨土 구경도 못 한 분이 죽어서 淨土 간다는 걸, 그 믿음만 갖고 버티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볼 땐 역시 이것도 중간 브로커한테 사기당하신 걸로밖에 안 보여요. 본전이라도 찾으시려면 지금부터 정신 차리시고 살아서 보살 될 연구만 하세요. 그 분이 제일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그 분이 계신 곳이 淨土예요. 그 분이 따로 어딜 안 가도요 그 분이 지구에 계시면 지구 거기가 淨土예요. 그 분이 계신 곳이. 그런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32:15

  1. 봉우일기 1권 「窮達有時」 pp. 221~227
  2. 봉우일기 1권 「우주 대자연을 그대로 본받아서」 pp. 383~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