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 선생님의 대학 3강령 해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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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말씀드린 건데, 제가 그래도 공부를 아주 그 허투루 안 하게 된 거는 봉우 선생님을 잘 만나서, 선생님을 잘 만나서 열일곱 살 때 그 선생님 책을 보고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열일곱 살 때 고2 땐가 그래요. 고2 그 당시 봄방학 이런 게 있잖아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봄방학 때 제가 우연히 빌려 본 책이 『백두산족에게 告함』, 소설 『丹』 이런 걸 빌려 본. 『백두산족에게 告함』을 보고는 밋밋했어요 “음 뭐 착하게, 올바르게 살자.” 그 당시 그렇게 철학적으로 제가 공부한 적도 없고. 좋은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제가 찾던 거는 조금 더 자극적인 거였어요. 근데 소설 『丹』이 그걸 딱 채워 주더라고요. 보고 났더니 딱 각을 잡고 제가 앉아 있는 “뭔가 해야겠다.” 그동안 무협지로 제가 단련돼 있었고, 중학교 내내 무협지만으로 살아 왔는데, 수업시간에 이렇게 밑에 무협지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자괴감이 들죠. ㅎ 그래서 “참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이 손에서 이걸 뗄 수가 없는 거 같아요. 강력한. 지금 뭐 만화책이나 판타지 다 그렇게 보시겠죠. 그래서 아무튼 이게 안 말리면 끝이 없을 거 같은, 막 그런 세계에 대한 탐닉이 소설 『丹』을 통해 현실에 가능하대요. 이건 충격적인 얘기죠. 이게 가능하대요. 호흡을 뭐 몇 분 호흡, 1분 2분 호흡만 하면 가능하다. 그런 데에 매료돼서 시작했죠. 수행 시작하면서, 그런데 저는 단순히 수행만 즐긴 게 아니라, 해 보니까 丹學은 힘들어요. 호흡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수련의 이 힘든 걸 잊게 해 주는 게, 선생님의 철학이 儒佛仙을 회통한 철학이라, 집에 있던 공자 노자 책을 꺼내서 같이 비교하면서 보게 되고, 저를 이런 고전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 주셨어요. 그게 제일 큰 저기 선생님 덕인데,
낮에도 말씀드린 건데, 제가 그래도 공부를 아주 그 허투루 안 하게 된 거는 봉우 선생님을 잘 만나서, 선생님을 잘 만나서 열일곱 살 때 그 선생님 책을 보고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열일곱 살 때 고2 땐가 그래요. 고2 그 당시 봄방학 이런 게 있잖아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봄방학 때 제가 우연히 빌려 본 책이 『백두산족에게 告함』, 소설 『丹』 이런 걸 빌려 본. 『백두산족에게 告함』을 보고는 밋밋했어요 “음 뭐 착하게, 올바르게 살자.” 그 당시 그렇게 철학적으로 제가 공부한 적도 없고. 좋은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제가 찾던 거는 조금 더 자극적인 거였어요. 근데 소설 『丹』이 그걸 딱 채워 주더라고요. 보고 났더니 딱 각을 잡고 제가 앉아 있는 “뭔가 해야겠다.” 그동안 무협지로 제가 단련돼 있었고, 중학교 내내 무협지만으로 살아 왔는데, 수업시간에 이렇게 밑에 무협지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자괴감이 들죠. ㅎ 그래서 “참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이 손에서 이걸 뗄 수가 없는 거 같아요. 강력한. 지금 뭐 만화책이나 판타지 다 그렇게 보시겠죠. 그래서 아무튼 이게 안 말리면 끝이 없을 거 같은, 막 그런 세계에 대한 탐닉이 소설 『丹』을 통해 현실에 가능하대요. 이건 충격적인 얘기죠. 이게 가능하대요. 호흡을 뭐 몇 분 호흡, 1분 2분 호흡만 하면 가능하다. 그런 데에 매료돼서 시작했죠. 수행 시작하면서, 그런데 저는 단순히 수행만 즐긴 게 아니라, 해 보니까 丹學은 힘들어요. 호흡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수련의 이 힘든 걸 잊게 해 주는 게, 선생님의 철학이 儒佛仙을 회통한 철학이라, 집에 있던 공자 노자 책을 꺼내서 같이 비교하면서 보게 되고, 저를 이런 고전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 주셨어요. 그게 제일 큰 선생님 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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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이 너무 좋아서. 원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뜻은, 이게 形而上 形而下를 얘기하는 데에도 아주 좋았고. 이거(在明明德 在新民)는 修己治人을 얘기했지 지금 형이상 형이하를 얘기한 건 아니잖아요. “내 거 밝히고 남의 것도 밝혀주자.”지. 근데 형이상 형이하로 얘기 하려면 여기에서 끊어 읽으면 돼요(…明明 ˇ 德…). “道는 광명한(明) 본성을 다시 밝히는(明) 데에 있고. 德은 새로워지는 데에 있고.” 그러면 “사람은” 이 道와 德을 “최선을 다해서 구현하는 게 사람이다.” 天地人이 딱 나옵니다. 形而上, 形而下, 그 중간에 있는 사람. 요 문장이 너무, 이렇게 끊어 읽으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선생님이 이걸 강조하신 거. 이게 철학적으로 아주 훌륭한 문장이에요. 제가 이번에 낸 大學은 원 저자의 의도를 그래도 저는 중시하고 싶어서 원 저자 의도대로, 전체 글을 설명하려면 원 저자 의도를 알아야 설명이 좋죠. 다만 이 한 구절을 가지고 이렇게 형이상 형이하를 나누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 선명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형이상학은 어디나, 원래 완벽한 無極 太極의 참나를 다시 복원하는 겁니다. 찾는 거예요. 德은요. 현실에서 이렇게 皇極을 구현하는 거예요. 현실에. 양심을 실천하는. 양심을 각성하는 게, 원래 밝았던 양심을 다시 밝혀내는 거고. 德은요 날마다 새로워지는 거예요. 날마다 새롭게 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양심을 구현해야 돼요. 보세요. 仁義禮智의 양심은 안 바뀌죠. 절대 안 바뀝니다. 우주 영원히 仁義禮智예요. 양심은. 양심의 명령은 인의예집니다. 양심의 길은 인의예진데 德은 날마다 바뀌어요. 오늘 여기서 해야 될 양심이 있고요. 仁義禮智의 구현이 있고. 집에 가서 또 하셔야 되고. 내일 아침에 또 직장에서. 계속.
그 뜻이 너무 좋아서. 원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뜻은, 이게 形而上 形而下를 얘기하는 데에도 아주 좋았고. 이거(在明明德 在新民)는 修己治人을 얘기했지 지금 형이상 형이하를 얘기한 건 아니잖아요. “내 거 밝히고 남의 것도 밝혀주자.”지. 근데 형이상 형이하로 얘기 하려면 여기에서 끊어 읽으면 돼요(…明明 ˇ 德…). “道는 광명한(明) 본성을 다시 밝히는(明) 데에 있고. 德은 새로워지는 데에 있고.” 그러면 “사람은” 이 道와 德을 “최선을 다해서 구현하는 게 사람이다.” 天地人이 딱 나옵니다. 形而上, 形而下, 그 중간에 있는 사람. 요 문장이 너무, 이렇게 끊어 읽으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선생님이 이걸 강조하신 거. 이게 철학적으로 아주 훌륭한 문장이에요. 제가 이번에 낸 大學은 원 저자의 의도를 그래도 저는 중시하고 싶어서 원 저자 의도대로, 전체 글을 설명하려면 원 저자 의도를 알아야 설명이 좋죠. 다만 이 한 구절을 가지고 이렇게 형이상 형이하를 나누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 선명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형이상학은 어디나, 원래 완벽한 無極 太極의 참나를 다시 복원하는 겁니다. 찾는 거예요. 德은요. 현실에서 이렇게 皇極을 구현하는 거예요. 현실에. 양심을 실천하는. 양심을 각성하는 게, 원래 밝았던 양심을 다시 밝혀내는 거고. 德은요 날마다 새로워지는 거예요. 날마다 새롭게 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양심을 구현해야 돼요. 보세요. 仁義禮智의 양심은 안 바뀌죠. 절대 안 바뀝니다. 우주 영원히 仁義禮智예요. 양심은. 양심의 명령은 인의예집니다. 양심의 길은 인의예진데 德은 날마다 바뀌어요. 오늘 여기서 해야 될 양심이 있고요, 仁義禮智의 구현이 있고, 집에 가서 또 하셔야 되고, 내일 아침에 또 직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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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여러분 감동 받을 때 늘 있던 풀 한 포긴데 괜히 지나가다가 뭉클 해서 들여다 보곤 “야. 신기하다.” 늘 있었는데요, 처음 본 것처럼. 여러분 호흡 수련도 제가 그래서 그렇게 얘기해 드리는 거예요. 이 호흡 수련을요 “나 몇 초야. 몇 초 만들어야 돼.” 하고 재미 없게 하시면요 정말 재미 없습니다. 근데 숨 쉴 때마다 몰라로 자꾸 리셋 하면서 처음 숨 쉬는 것처럼 신선하게 만나야 이게 재밌습니다. 이 재미 없는 것도 새롭게 만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제가 예를 들잖아요. 설거지 할 때 몰라 하면 이게 또 재밌어진다고요. 재밌어지는 이유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지 않구요 깨어서 하면 다 새로워요. 매 순간 매 순간이 새롭게 다가와요. 깨어서 상황을 대하니까. 근데 의식이요 반쯤 졸면서 대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거는 이제 그 일이 지겨워서 반쯤.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는 거죠.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거고. 근데 딱 정신 차리고 보면 뭐든지 놀라워요. 뭐든지 새로워요. 늘 새로운 마음으로 살지 않고 보살이 어떻게 보살도를 하겠어요. 지겨워서. “아. 이거 몇 놈을 구해도 다, 역시 검은머리 짐승은 돕는 게 아니여.” 하고 ㅎ “열반에나 들 걸.” 하고 “오판했다.”라고 하실 수도 있겠죠. 보살이 가다가 지겨워지면. 근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양심에서 힘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보살은. 몰라 괜찮아 하고 양심에 모든 걸 맡기고 양심에서 올라오는 그 신선한 힘을 가지고 거기에서 나오는 영감, 거기에서 나오는 자비의 힘을 가지고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또 새로운 거예요. 늘 만나던 상황, 또 어려운 역경도요 새롭게 다가오고, 새롭게 다가온 역경에 대한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번엔 이렇게 처리해볼까? 오늘은 왠지 또 다른 방식으로, 더 나은 방식으로 이 상황을 처리해 보고 싶다.”
그니까 여러분 감동 받을 때 늘 있던 풀 한 포긴데 괜히 지나가다가 뭉클 해서 들여다 보곤 “야. 신기하다.” 늘 있었는데요, 처음 본 것처럼. 여러분 호흡 수련도 제가 그래서 그렇게 얘기해 드리는 거예요. 이 호흡 수련을요 “나 몇 초야. 몇 초 만들어야 돼.” 하고 재미 없게 하시면요 정말 재미 없습니다. 근데 숨 쉴 때마다 몰라로 자꾸 리셋 하면서 처음 숨 쉬는 것처럼 신선하게 만나야 이게 재밌습니다. 이 재미 없는 것도 새롭게 만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제가 예를 들잖아요. 설거지 할 때 몰라 하면 이게 또 재밌어진다고요. 재밌어지는 이유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지 않구요 깨어서 하면 다 새로워요. 매 순간 매 순간이 새롭게 다가와요. 깨어서 상황을 대하니까. 근데 의식이요 반쯤 졸면서 대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거는 이제 그 일이 지겨워서 반쯤.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는 거죠.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거고. 근데 딱 정신 차리고 보면 뭐든지 놀라워요. 뭐든지 새로워요. 늘 새로운 마음으로 살지 않고 보살이 어떻게 보살도를 하겠어요. 지겨워서. “아. 이거 몇 놈을 구해도 다, 역시 검은머리 짐승은 돕는 게 아니여.” 하고 ㅎ “열반에나 들 걸.” 하고 “오판했다.”라고 하실 수도 있겠죠. 보살이 가다가 지겨워지면. 근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양심에서 힘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보살은. 몰라 괜찮아 하고 양심에 모든 걸 맡기고 양심에서 올라오는 그 신선한 힘을 가지고 거기에서 나오는 영감, 거기에서 나오는 자비의 힘을 가지고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또 새로운 거예요. 늘 만나던 상황, 또 어려운 역경도요 새롭게 다가오고, 새롭게 다가온 역경에 대한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번엔 이렇게 처리해 볼까? 오늘은 왠지 또 다른 방식으로, 더 나은 방식으로 이 상황을 처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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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욕구가 계속 올라옵니다. 샘솟듯이. 그러니까 무한한 영감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요. 남들한테는 보살이. 본인은 별 게 아니에요. 날마다 새로워지겠다고 막 노래하고 막 다지고 막 으쌰으쌰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몰라 괜찮아. 그러면 모든 선입견을 날려 버리죠. 어제까지 지겹게 그 일을 해 왔다는 생각을 날려버린 거예요. 몰라 괜찮아 하고 그 일을 탁 보니까 새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뇌도 더 활성화 돼 있죠. 몰입이 돼 있으니까. 그러면 더 창의적인 답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분이 창조적이 되는 거예요. 이게 우주가 원래 창조적이라서 여러분이요 마음 리셋하고 우주의 흐름만 따라가면 창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 보시면 “원래 우주가 이렇구나.”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어요. 창조적이고자 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이 순간 아버지 뜻을 따를게요.”라는. 매 순간 아버지 뜻을 따를게요. 이 순간에 아버지 뜻은 어딨는가를 어제의 기억으로 찾으면 안 되잖아요. “어제 아버지 뜻이 어딨었으니까 오늘 또 어딨겠지.”가 아니잖아요. “지금, 이 순간 아버지 뜻은 어딨지?” 하고, 몰라 괜찮아 하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서 성찰을 진행하다 보면요. 지금, 이 순간에 제일 자명한, 어제랑 달라진 나의 역량, 어제랑 달라진 이 상황 속에서 최선책이 또 나와요. 매일 매일 이렇게 창조성을 쓰는 분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걸 창조바라밀이라고 불러요. 6바라밀을요 잘 쓰면 창조바라밀이 돼요. 6바라밀이 다 함께 굴러가면서 창조를 해 내요. 우주는 이렇게 6바라밀을 가지고 우주를 매 순간 매 순간 새롭게 창조해 갑니다. 인간이 거기에 따라갈 수 있어야 되고. 그 힘이 있어요. 우리 안에는.
이런 욕구가 계속 올라옵니다. 샘솟듯이. 그러니까 무한한 영감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요, 남들한테는 보살이. 본인은 별 게 아니에요. 날마다 새로워지겠다고 막 노래하고 막 다지고 막 으쌰으쌰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몰라." "괜찮아." 그러면 모든 선입견을 날려 버리죠. 어제까지 지겹게 그 일을 해 왔다는 생각을 날려 버린 거예요. 몰라 괜찮아 하고 그 일을 탁 보니까 새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뇌도 더 활성화되어 있죠. 몰입이 돼 있으니까. 그러면 더 창의적인 답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분이 창조적이 되는 거예요. 이게 우주가 원래 창조적이라서 여러분이요 마음 리셋하고 우주의 흐름만 따라가면 창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 보시면 “원래 우주가 이렇구나.”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어요. 창조적이고자 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이 순간 아버지 뜻을 따를게요.”라는. 매 순간 아버지 뜻을 따를게요. 이 순간에 아버지 뜻은 어딨는가를 어제의 기억으로 찾으면 안 되잖아요. “어제 아버지 뜻이 어딨었으니까 오늘 또 어딨겠지.”가 아니잖아요. “지금, 이 순간 아버지 뜻은 어딨지?” 하고, 몰라 괜찮아 하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서 성찰을 진행하다 보면요. 지금, 이 순간에 제일 자명한, 어제랑 달라진 나의 역량, 어제랑 달라진 이 상황 속에서 최선책이 또 나와요. 매일 매일 이렇게 창조성을 쓰는 분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걸 창조바라밀이라고 불러요. 6바라밀을요 잘 쓰면 창조바라밀이 돼요. 6바라밀이 다 함께 굴러가면서 창조를 해 내요. 우주는 이렇게 6바라밀을 가지고 우주를 매 순간 매 순간 새롭게 창조해 갑니다. 인간이 거기에 따라갈 수 있어야 되고. 그 힘이 있어요. 우리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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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렇게 “창조력은 어서 나옵니까?” “道德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정말 재미없어 하시겠죠. “도덕책을 보라고? 창조적이 되고 싶은데.” 보통 창조적이 될 사람들 도덕책을 찢거나 이래야 되지 않나요? “파괴하라.” 진짜 파괴할 뿐이에요. 진짜 우주 자체보다 창조적일 순 없습니다. 사람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로운데요. 여러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미생물들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이놈들이요 디자인이 장난이 아니에요. 털 달렸고 눈은 막 몇 겹으로. 다리는 막. 하나하나 개성 있게 생겼어요. 보이지도 않는 물건에까지 하늘은요 이렇게 디자인 하나 하나 신경 쓰시는 분. 이 창조력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우주 전체가, 불성이 창조 덩어리예요. 우주를 창조해 내는 힘이기 때문에. 그 힘 받아 쓰시면 그냥 창조적이 되는 거지. 막 창조적이 되려고 노력하신다는 게 사실 웃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선입견에 빠져서, 무지와 아집에 빠져서 사시니까 창조적일 수가 없는 겁니다. 몰라 하고 깨어서 양심 따라 가시다 보면 매 순간 더 자명한 답을 찾게 돼 있어요. 어제 아무리 그렇게 해결했더라도 오늘 찜찜하면 못 하는 거예요. 오늘 자명한 그걸 따르는 거지. 물 흐르듯이 더 자명한 것으로 옮겨 다니는 게 창조적인 겁니다. 그런 마음을 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창조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道德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정말 재미없어 하시겠죠. “도덕책을 보라고? 창조적이 되고 싶은데.” 보통 창조적이 될 사람들 도덕책을 찢거나 이래야 되지 않나요? “파괴하라.” 진짜 파괴할 뿐이에요. 진짜 우주 자체보다 창조적일 순 없습니다, 사람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로운데요. 여러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미생물들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이놈들이요 디자인이 장난이 아니에요. 털 달렸고 눈은 막 몇 겹으로. 다리는 막. 하나하나 개성 있게 생겼어요. 보이지도 않는 물건에까지 하늘은요 이렇게 디자인 하나 하나 신경 쓰시는 분. 이 창조력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우주 전체가, 불성이 창조 덩어리예요, 우주를 창조해 내는 힘이기 때문에. 그 힘 받아 쓰시면 그냥 창조적이 되는 거지. 막 창조적이 되려고 노력하신다는 게 사실 웃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선입견에 빠져서, 무지와 아집에 빠져서 사시니까 창조적일 수가 없는 겁니다. 몰라 하고 깨어서 양심 따라 가시다 보면 매 순간 더 자명한 답을 찾게 돼 있어요. 어제 아무리 그렇게 해결했더라도 오늘 찜찜하면 못 하는 거예요. 오늘 자명한 그걸 따르는 거지. 물 흐르듯이 더 자명한 것으로 옮겨 다니는 게 창조적인 겁니다. 그런 마음을 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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