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의 천부경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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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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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6. 03. 12. 土.
게시일자 2016. 03. 17.
동영상 길이 40:55
강의 중 인용 도서 삼일신고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nR6cyRnRyOc


참조: 탄허(呑虛) 스님의 단군(檀君)사상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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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탄허대종사연보(呑虛大宗師年譜)라고 탄허스님이 여기저기 쓰신 글이나 인터뷰 한 글을 다 모아서, 책이 두꺼워서 못 가져왔어요. 에 한 이정도 두께 되는 책이 어 있는데 교림출판산가 거기 탄허스님 책 내는 데서 나왔는데 제가 예전에 견성콘서트 하고 한 몇 해 됐을 때 금강선원인가 탄허 기념관 거기 있잖아요. 거기 놀러갔다가 거기 이제 담당자분이 제가 이제 이런 강의를 한다고 하니까 주셨어요. 이 탄허스님에 대해서도 강의 해주시면… 하면서. 예. 그래서 한 번 살펴보시고 그 아주 탄허스님 대단한 스님이시니까 좀 해달라고 해서 저도 이제 어려서부터 늘 탄허스님 글을 많이 봤기 때문에. 예, 알았다고 이렇게 하고 지났는데 이제 몇 해 지났는데 그래도 할 얘기 하나 생겼어요. 그래서 천부경에 대해서 풀어놓으신 게 있는데 불교적 관점에서 풀어놓으신 거면서 또 천부경의 의미를 잘 얘기해주신 부분이라 제가 뽑았습니다. 이 때 대단하신 작업을 많이 한 게 속가 재가 뭐 출가 안 가리고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다 불러다 경전 가르치고. 이 분은요 그러니까, ‘알아야 된다.’ 그래서 특히 화엄경 강의 만이 아니라 뭐 화엄경 뭐 불교의 모든 經을 그냥 어렵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요점정리를 해가지고 그런 노트를 가지고 요점정리한 내용으로 강의를 하고 해서 일반인도 누구나 불교나 유불선의 핵심을 이해하게 할려구요 사서삼경 강의도 다 사서삼경의 핵심, 이 분은 어려서 사서삼경을 다 외우고 아주 통달했는데 어려서, 근본문제가 안 풀리니까 方漢岩스님 있죠. 鏡虛스님 제자. 방한암스님이랑 오대산 쪽에 계시던. 편지 주고 받다가, 본인 말로 연애를 했대요. 편지를 주고받다가 거기 가가지고 반해서 가가지고 출가를 해가지고 아주 이렇게 유교 선비로 해도 이렇게 그 당시 좀 이제 신동 났다 했던 분인데 출가해가지고 그렇게. 글을 너무 좋아하니까 가서 이제 본인도 글을 끊고, 道를 알고 싶어서 간 거니까 글을 일부러 안 보고 참선만 계속 했는데 방한암스님이 그, 너는 경전공부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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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가지고 부러 공부를 시켜가지고 하라고 허용을 해 주니까 이 분은 이제 보면 외워버리는 타입이라 그래서 이 분은 강의할 때 경전을 들고 강의를 안 해요. 화엄경이건 뭐건 뭐 어떤 유불선 강의를 하건 경전 없이 혼자 칠판에 계속 써 가면서 하신. 그러니까 머리 속에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저 대학 때 저희 동양학 교수님이 직접 이제, 저는 못 뵌 분이죠. 탄허스님. 그 직접 강의 듣는데 대승기신론 강의를 듣는데 계속 들어오자 마자 칠판에 원문을 다 쓰면서 강의를 하시니까 다 찾아봤었데요. 글자 틀린 거 찾아내려고. 그러고 하나를 찾았는데 이제 그 뜻은 통하고 이제 원문 글자는 아니었던 그러니까 뜻은 통하는 뭐 아무튼 고 정도로. 그런데 그것만 그런 게 아니라 강의할 때 보면요 이 분이 뭐 장자의 시를 읊건 뭐 누구 선비들의 뭘 읊건 다 원문을 외웁니다. 원문을 다 적고 그러고. 저는 그렇게 안 했기 때문에 전 머리에 그렇게 박히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박히진 않고 의미가 박히는데 그 분은 아주 그 사진 찍듯이 박히는. 그래서 대단한 분이시고 뭐 그것만 대단하다 하면 그건 하나의 기술인데 그런 걸 가지고 명상하면서 계속해서 참선을 통해서 공부하셨는데 화엄경 번역을 제일, 자기가 이 땅에 온 사명이 화엄경 번역이다. 할 정도로 사명감 가지고 하시면서도 하루에요 아주 무섭게 참선과 번역, 참선 번역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하루를 사시는데 그러면서도 이제 인터뷰 한 거 학당에도 제가 올려놓은 적 있는데, 뭔 공부가 이제 참, 경전 번역 안 할 때 뭔 공부하십니까? 그러면. 생각 없는 공부 하지. 하며는, 생각 없는 공부가 제일이지. 몰라 하고 계신다는 거죠. 생각 내려놓고 들어가 있다가 충전해가지고 그 힘으로 경전을 보면서, 경전 보는 게 6바라밀입니다. 왜냐면 경전엔 저자의 의중을 정확히 읽어내서 정확하게 자명하게, 이건 이 뜻이야. 라고 확정을 지어야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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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아주 자명함이 부족하면요 막히게 돼 있는 건데 그거를 아무튼 유불선이나 모든 거에 대해서 뭐 周易이건 다. 강의를 해가지고, 노자 도덕경이건 다 책으로 내놓으셨죠. 아무튼 이런 분들 제가 보면 우리나라에 이런 인재들이 많이 나오셔야죠. 근데 그 분이 천부경까지도 강의를 하신 게 있어서 글을 쓰신 거 같애요. 보며는 얼마 안 긴 글입니다만. 1978년 五臺山 月精寺 조실로 계실 때 쓰셨나 봅니다. 보세요. 한 물건이 여기 있으니. 一物, 절에서 일물 그러면 그러면 뭡니까. 참나 자리에요. 한 물건 그러면 우주가 나온 한 물건이죠. 예, 학당에서 늘 말 하는 지금 도너츠 있죠. 여기 핵심되는 여기 참나자리. 요게 一物이죠. 한 물건. 요 한 물건에서 온 우주가 나오죠. 생각 감정 오감이 거기서 일어나죠. 한 물건이 여기 있으니, 한 물건은 現存一念이다. 지금 이 참나를 뭐라고 설명하시는 겁니까? 이것도 재미. 現存 (一念) 순수한 알아차림, 空寂靈知를 말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현재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一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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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리는 그 마음을 현존일념 그래요. 이게 스승인, 이 용어가 스승인 방한암선사가 쓰시던 용어예요. 참나를 부를 때. 현존일념. 현존일념자리. 자 뭔 얘기냐면 여러분 천부경 공부하실 때 一始無始一. 학당식 풀이로는 “텅 빈 데서 하나가 나왔다.” 이렇게 푸는데 탄허스님은 이렇게 푸세요. 一始無, 一始無始, 아, 一. 또 하면요 一終無終一. 자, 하나는 하난데 시작, 뭐죠, 始無始一. 하난데 시작하되(始) 시작이 없는(無始) 하나다. 하난데 끝내되(終) 끝냄이 없는(無終) 하나다. 그러니까 끝마침이 없는 하나, 시작이 없는 하나란 식으로 풀어요. 그러니까 탄허스님식 풀이에서는 無는 중요한 게 아니죠. 이 하나가 이미 참나인 거예요. 하나가 참나고 그 하나가 시작도 끝도 없다. 하는 식으로 이제 천부경을 푸십니다. 요 말도 맞는 말이니까. 그쵸. 천부경의 원 의도는 이제 제가 볼 때는 뭐 제가 푸는 풀이가 옳다고 하겠지만 저 말씀도 맞는 말씀이잖아요. 그쵸. 그래서 이런 느낌으로 이제 보세요. 그러니까 이 하나자리. 그런데 보세요. 천지인이 나온 그 하나를 얘기하는데 천지인이 나온 하나를 얘기하는데 그 하나가 먼 데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의 현존일념. 지금 이 순간 알아차리는 그 자리가 그 자리라는 거예요. 벌써 시작부터 지금 내 문제로 가져옵니다. 우주의 근원의 문제를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의 근원의 문제로 가져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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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것도. 이런 걸 저자가 의도하고 써논 건데 읽으면서, 현존일념이구나. 하고 넘어가시면 안 된단 말이에요.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자리를 알아차리시면서 요 글을 읽어주셔야 돼요. 그 자리에는 名相, 이름이나 형상이 끊어져 있되 古今을 관통하고. 거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금을 관통. 자, 고금관통이요 갑자기 여러분이 조선시대로 갈 수는 없잖아요. 지금 여러분이 체험한 것 중에 고금은 뭡니까. 지금하고 여러분 어렸을 때랑 비교하면 그 자린 똑같단 말이에요. 그래서 고금을 관통한다는. 現存一念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순수한 알아차리는 자리가 고금이 없다. 시간성을 초월한다. 내가 어려서 지금까지를 관통했으면 과거 천만년 돼도 관통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시간성을 초월하는 자리라는 결론만 나면, 그 자리가. 一塵에 처하되. 하나의 티끌에 처하되. 六合을 포위하였다. 한 티끌에, 내 몸뚱이에 있는 거 같지만 온 우주, 육합을 다 감싸고 있는 자리다. 공간을 초월한 자리다. 어느 한 국한돼 있는 거 같지만 사실은 공간을 초월한 자리다. 이 느낌 아시겠어요? 꼭 여러분 몸뚱이 안에 있는 거 같죠. 그런데 그 자리는 우주를 초월한 자리. 안으로는 衆妙를 含하고. 안으로는 온갖 妙한 거를, 뭐죠? 6바라밀의 공덕이 온갖 묘한 거죠. 온갖 신통. 온 우주를 낳는 근본 법칙을, 예, 근본 다르마를 다 가지고 있잖아요. 만법을. 요걸 이제 만법 이렇게 번역하죠. 萬 붙여서. 다르마를 여러분 안에 가지고 있는데 그 다르마가 한 두 개가 아니란 말이에요. 온 우주를 펼칠 수 있는 다르마예요. 자. 여러분 이런 거 보면서, 와~ 좋겠다. 참나는. 그러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 마음에, 마음에 들어와 있는 게 만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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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죠. 지금 여러분 보고 계신 거 정신없죠. 저만 정신없는 지, 여러분 절 보고 계신데 저는 여러분을 보니까 정신없어요. 이 만법이 지금 내 마음 안에 누가 만들어놨을까요. 제 마음이 창조주가 돼서 이걸 내 마음에 펼쳐놓고 지금 보고 있는 겁니다. 펼쳐놓고 보는 능력도 거기서 나와요. 보고 음미하는 것도 나와요. 다 거기서. 대상도 거기서 만드는 거고. 이해되세요? 이러니까 막 이 신묘한 자리죠. 여러분 마음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불교 글은 이래서 재밌어요. 유교는 이런 식으로 설명을 이렇게 가끔씩 합니다만 이렇게 세게 계속 안 지르는데 불교는 계속 세게 질러요. 정신을 잃어버리게. 웬만하면 내 글 읽지 마라. 하는. 그 그런 俗見 가지고 내 글을 읽을 시도도 하지 마라. 그러니까. 이해되세요? 깨어나서 읽을 거 아니면 읽지 마라. 할 정도로 친절하지 않죠. 막 날려버리죠. 衆妙를 含하고. 含은 머금을함자입니다. 온갖 신묘한 걸 다 머금고 있다는 거예요. 고 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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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는 온갖 기틀을, 무리군자에 기틀기자니까, 기틀이라는 건 어떤 메카니즘이죠. 기계예요. 기계기자. 뭔가 작동하는 건 다 기틀입니다. 여러분 마음도 어떤 메카니즘을 가지고 작동하죠. 기틀이에요. 세상도 그렇고. 기계도 그렇고. 온갖 기틀에 대응한다는 겁니다. 이 신묘한 자리가 온갖 기틀에 대응을 한다. 그런데 지금요, 衆妙 含衆妙 應群機죠. 아이고 저는 뭐 하나 시작하면, 가볍게 읽고 끝낼려고 시작한 얘기였는데 이런 게 자꾸 눈에 보이네요. 지금 含衆妙 온갖 묘한 걸 머금고 있고. 한문으로 하면 이렇게 써야 됩니다. 含衆妙 또 뭐죠 應, 대응한다. 群, 무리군자. 기틀기자. 자, 대응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누가 쓴지 아세요? 朱子가 만든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유교도 이미 들어와 있는 거예요. 하나로. 유교에서는 뭐라고 하죠? 이 참나자리를 明德, 우리 안에 광명한 덕이 들어있고 그 광명한 德 자리는 具衆理 온갖 원리를 다 갖추고 있고, 應, 대응한다. 萬事에. 이게 대학 집주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옛날 조선 선비들이 맨 먼저 배우는 게 大學이죠. 거기서 저걸 먼저 배워요. 그러니까 유교선비나 불교 보살이나 닦는 게 똑같애요. 불교는 센 얘기를 계속 날리는 스타일이고 유교는 현실문제로 와가지고, 너 부모한테 잘했니? 하고 일상의 문제를 물어보는 스타일이고. 다 좋은데 너 오늘 와이프랑 안 싸웠니? 하고 물어보는 스타일이고 불교는 와이프를 초월해서 우주로 우주로 이렇게 나가는, 세계를 초월해서 가정을 초월해서 그러니까 이 양 쪽 공부가 다 재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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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정반합이라고 두 개가 다른 거 같은데 딱 때리면 하나의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게 여러분의 딱 보살도이자 군자도예요. 그래서 지금 주자의 얘기도 다 이미 지금 탄허스님은 다 외우고 있죠. 그걸 불교식으로 또 굴려서 쓰긴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含, 뭇 묘함을 含하고, 머금고 있고. 온갖 기틀에 대응한다. 그런데 또 주자가 또 불교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거죠. 누구 꺼다. 이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三才의 主가 되고. 天地人이 삼재죠. 천지인의 주인이 되고. 萬法의 王이 되니. 온갖 법을 경영하는 자니까 萬法의 왕이죠. 蕩蕩하여. 거칠 것이 없다는 겁니다. 탕탕하여 비할 데가 없고. 巍巍하여. 아주 높아서 짝이 없다. 자, 神奇롭다 하지 않겠는가. 참 신기하지 않은가. 俯仰하는 사이에 昭昭하고. 자, 부앙. 구부릴부잡니다. 여러분 몸을 구부려서 밑을 땅을 살펴보나, 우러를앙자 우러러서 하늘을 보나 여러분이 어떻게 움직이건, 動靜間에, 이거예요. 다 같은 얘기예요. 지금. 몸을 구부리건 하늘을 쳐다보건 여러분 안에서 이 자리가 어때요? 지금 여러분, 여러분 몸과 마음이 구부리건 펴건 상관이 없이 이 자리는 항상 昭昭 밝을소자 밝을소자 광명하고 광명하고. 소소. 이 삼일신고에도 나옵니다. 昭昭靈靈이라고 나와요. 이 신은 우리 안에서 밝고 밝고 신령하고 신령하다. 해서 소소영영 하는데 이 소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 昭라는 글자는 참나를 설명할 때 정말 잘 쓰이는 글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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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昭昭. 靈. 자, 하늘에서 이, 하늘을 가득 채우면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雨) 하늘에서 비 내리는 형상이죠. 그런데 이거(𠱠)는 이제 입이 세 개죠. 시끄럽다는 얘기예요. 뭐라고 떠든다는 겁니다. 이쪽은 여기가 하늘이고 여기가 땅인데 사람이 중간에서 이어준다는 거예요. (巫) 채널 역할을 해 준다는. 무속무자. 자, 무속인이 비 오라고 뭔가, 아니, 기도를 하고 주문을 하는 중에,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이렇게 비가 내리듯이 영감이 내려오는 겁니다. 이렇게. 이 신령령자는 꼭 이게 꼭 우리 참나를 말 하는 게 아니고, 신령하다. 하늘의 감응을 지금 글자 하나에 다 그려놓은 거예요. 땅에서 인간이 최선을 다해 하늘에 빌었을 때 하늘이 반드시 거기에 감응하는 그 신령한 현상을 그려놓은 글잔데 저걸 이제 우리가 신령하다는 부분만 추출해서 靈 그러면 이제 그 뒤로는 참나급의 어떤 신령함, 하느님의 신령함을 말할 때 씁니다. 원 글자의 의미 그대로 쓰는 게 아니고 거기서 이제 어느 부분에 더 특징을 두는, 특징적인 거를 우리가 추출해서 쓰느냐 이거는 이제 역사적으로 봐야죠. 아무튼 그렇게 내려온 글잔데 昭昭靈靈 그러면 이제 하느님이나 참나 얘기를 할 때 쓰는 거죠. 뒤에. 밝고 밝고 태양처럼 밝고 태양처럼 밝고 하느님처럼 신령하고 하느님처럼 신령하고. 아무튼 昭昭하고, 보세요. 視聽하는 즈음에. 여러분이 보고 듣고 하는 일상사에서 隱隱하며, 늘 숨겨져 있으면서도 玄妙하다. 현묘하게 그 자리는 항상 알아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은근히 알아차리고 있고 현묘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티 내지 않으면서도 신묘한 작용을 다 하고 있다는 거죠. 자, 天地보다 먼저 하되 시작이 없고. 천지보다 분명히 이 자리가 먼전데. 천지보다 이 자리가 먼저죠. 이 자리가 천지를 낳았으니까. 그래서 노자에서 뭐라고 그러죠? 天地之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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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시. 이 자리를요 天地의 시작점. 이렇게 老子 1章에서 말 합니다. 천지의 시작. 그러면서 또 노자에서 뭐라고 하냐면 天下母, 천하를 길러준 엄마. 예, 道적인 측면에서는 우주를 시작시키고 德적인 측면에서는 우주한테 은혜를 베풀어서 우주를 경영하는 자. 이 부분은 無極이나, 제 강의 들으신 분들은 이해하시기 쉬우라고, 이 부분은 皇極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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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 입장. 우주를 창조한 입장에서는 시작점이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황극이라고 하죠. 경영을 잘하는. 우주를 잘 보고(?) 있습. 그래서 여러분 하느님 아버지만 하시면 안 돼요. 하느님 어머니도 하셔야 돼요. 경영자 입장의 양육자 입장의 하느님 어머니라고 하는 그 맛도 있어요. 뭐 아버지도 경영하시겠지만. 예, 이 노자에서는 그런 느낌으로 접근해요. 양육해 주는, 실질적으로 길러준다는 측면에서는 어머니라고 하고. 이, 우주를 시작시켰다는, 이 원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그런 에너지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아버지라고 하고. 이걸 동양에선 합쳐서 天地神明 그럽니다. 천지신명. 너무 막 정보를 너무 드리지 않아야 될 텐데 아무튼 짐 여기 하나에서 지금 너무 많이 나갔는데요 아무튼 이 자리가 천지의 시작이라는 자리고 시작만 시켜주는 게 아니라 시작은 창조주적인 역할이고 이쪽은 경영자 역할. 경영도 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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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니까 천지보다 먼저 했은데 천지의 시작점인데 시작이 없고. 그 자체는 시작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천지보다 뒤에 했는데 끝이 없으니. 空한 것이냐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있는 것이냐. 이 자리가. 인제 천부경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을 나름 미리 얘기해주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풀어서.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이다. 所以 그러면 까닭입니다. 까닭을 알 수 없다. 어 이렇게 교재가 지금 하나씩 이 단어 하나 풀어가면서 하니까 지금 대학원 수업같에요. 여러분. 대학원 다니시는 기분 한 번 느껴 보심. 이러면서 이제 교수님이요 이렇게 어려운 얘기 하면서 한 번씩 딱 둘러보면 눈을 안 마주치죠. 다들. 막 적고 있고. ㅎㅎ 예. 그런데 여기서 所以란 뭘까요 하면 이제 눈이 삭 아래로 향하시고. 왜 그럴까요. 이것이 불교의 전체를 축소한 말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天符經 얘기 하는데 지금 불교를 축소시켰다는 건 불교를 불교의 핵심을 내가 딱 설명해 주마. 이거다. 같다는 얘기예요. 천부경에 이 불교의 핵심이 다 들어있다. 요 얘기 하고 싶어서, 지금 불교의 핵심을 천부경의 원리랑 연결시켜서 얘기해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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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양반들이 우리나라에 계셨단 말이에요. 지금은 제가 못 봤어요. 요즘은 안 계시는 거 같애요. 아무튼. 우리 국토의 고유한 사상은 國祖를 여의고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 국토의 고유한 사상은 檀君 빼고 우리가 찾으면 되겠냐. 이거죠. 지금 이 국조가 이제 제목이 檀帝였으니까 단제겠죠. 단제. 어 단군은 君은 더 낮은 의미니까 帝라고 부르고 싶으셨던 거죠. 단제. 그 三一神誥도 시작이요 황제가, 帝曰 이러고 시작해요. 그러니까 단제라고 부르는 것도 맞는데 그래도 제가 이제 저는 단군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요 군이라는 의미가 이 몽골족에서는 왕을 칸이라고 불렀어요. 칸하고 연관성이 의심돼요. 그러니까 帝라는 건 의미는 좋은데 그건 뒤의 표현이고 예전에는 칸으로 불렀을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단군이라는 음을 씁니다. 나중에 君을 격하시켜서 帝보다 아래로 썼지만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선 의미상은 帝라고 써야 맞는데 단군이라는 그 음을 잃어버리면 안 될 거 같에서 저도 단군이라고 씁니다만 여기서는 단제라고 불러주신 거죠.

21:21

국조 단제를 여의고 찾아볼 수 없으며 국조의 사상은 천부경을 여의고. 옛날 표현입니다. 천부경 빼고 어디서 보겠냐. 이런 거죠. 이 천부경은 천지인 삼재를 主로 해서. 天地人. 三으로 풀어가죠. 周易은 陰陽으로, 둘로 풀어 가는데 천부경은 3으로 풀어간다는 게 또 맛이구요 그래서 삼삼은 구. 삼을 세 번 곱해서, 천지인에 또 천지인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아홉이 되죠. 그래서 또 아홉을 아홉으로 곱해서 81字로 해서 천부경이 총 해서 81자라는 거는 3이란 숫자를 강조하고 있는 거죠. 시작부터 끝까지. 그래서 이 81자가 된 것이다. 비록 이 적은 문자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周易 14卷의 축소판이라 하여도 過히 虛言은 아닐 것이다. 또 천부경은 주역의 축소판이다. 좀 전에 불교의 축소판을 얘기했고 이제 고게 하나죠. 서로. 자, 왜냐하면 天地父母를 宇라고 하고, 往古來今을 宙라고 한다면. 요거는 이제 莊子에 나온 표현인데요, 동양에서 宇宙라는 게 이런 겁니다. 보세요. 천지부모. 울리는 거 아니. 천지부모, 예. 천지부모라는 거는 집우 집주니까 둘 다 집이죠. 둘 다 의미는 집인 거 같지만 이 우주를 이제 우주를 말 할 때 쓸 때는 이때는 宇는 공간이고 宙는 지금 예 시간을 의미한다. 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往古來今이 뭘까요. 지나간 과거, 예, 그리고 미래, 그리고 예, 그 뭐죠 현재. 이제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얘기하는 거예요. 예, 그리고 천지부모는 하늘과 땅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간은 宇고 시간은 宙다. 그래서 우리가 우주 그러면 시공간이라는 거예요. 시공간. 요즘 물리학에서도 아무튼 그 상대성 이론 나오면서 시공간에 대한 해석이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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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시공간이 아니라 운, 이 움직이는 요동하는 시공간관을 확립했죠. 아무튼 이 고대에도 이 시공간이 그대로 우주라고 보는 입장이 장자 때부터 이미 있었어요.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이미 있었다. 그래서 시공을 여의고는 만유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우주라는 거는 그대로 시공인데 시공 없는 만유가 만물이 있을 수 있느냐. 이 시공이 일어나기 전에. 그런데 이 시공이 일어나기 전에 그 자리가 있다. 이거죠. 시공이 일어나기 전은 現存一念자리. 그러니까 여기서 現이라는 건 과거 현재 미래의 현재가 아니죠. 지금 이 순간 그 찰나의 현재를 말하는 겁니다. 이 시공아 시공이 일어나기 전 자리를 유교에서 뭐라고 불렀게요. 자 오 이 눈은 똑바로 뜨고 보시는데 대답은 아무도 안 하신. ㅎ 또 색다른 현상이네요. ㅎㅎ 다 이제 재밌죠. 대학원 수업 하는데 질문 했는데 다 노려보고 아무도 말을 안 하는. 統體一太極. 당당하십니다. 그래서 통체일태극이란 말이 재밌어요. 아 이게 거의 진짜 동양철학 거의 무슨 개론 시간이 됐는데 글 하나를 잘 써놓으시니까 설명하기가 좋네요. 글 하나 가지고 동양철학 이해해 보세요(?). 저 참나 자리를 동양에선 뭐라고 하나요. 太極이라고 그래요. 태극. 무극 태극 황극 할 때 이 태극. 태극이 동양에서는 특히 성리학에서는 무극 태극 황극을 다 태극이라고 봤어요. 즉 무극도 결국은 태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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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태극이 결국은 황극이다. 자, 경영 누가 합니까. 사실 황극이에요. 황극이 경영할 때, 아 이 태극이 경영할 때 황극이라고 하는 거예요. 같은 자리지 극이 여러개겠습니까. 태극이 온 우주를 낳았을 땐 태극이라고 하는데 그 태극 자체는 무극이라고 그래요. 태극 자체의 입장에서는. 우주를 낳았다는 게 없는 그 스스로의 입장 제가 늘 말씀드리죠. 제가 저 혼자 놀 때는 무극이고 집에 가서 누가 아빠 하고 뛰어오면 태극이 되고 용돈 주면 황극이 돼요. 경영이 시작되면 황극. 예, 이해되세요? 거칠게 나누면. 그래서 유교는 태극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무극이 원래 태극이다. 그래서 성리학 입장에서는 태극을 강조했기 때문에 여기에 統體라고 붙는 건요 예, 통합했다는 얘기죠. 자, 통합한 태극하고 통합 통체일태극. 반대의 말이 뭘까요. 이거 하나 적어두세요. 各具一太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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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건 성리학자들이 다 알고 쓰던 겁니다, 예전 어른들이.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예전 어른들도요 이게 지금 대단하신 게 제가 이런 얘기 많이 하지 않나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이 성령이, 하느님을 성령이라고 하고, 우주적인 성령은요, 예, 우주 통합 성령을 성부라고 한다. 성부가 내 안에서 작동할 때는 성령이라고 한다. 요게 이 개념이에요. 各具一太極은 각자, 갖출구자죠, 각자 갖추고 있는 하나의 태극이요 각자 각자의 본성. 식물의 본성, 여러분의 참 본성. 즉 여러분의 참나 뭐 개의 참나 뭐 모든 만물에 참나가 있겠죠. 만물에 다 본질들. 신성한 영역들. 그걸 각구일태극이라고 하고 통체일태극은 우주 통합해서 하나의 태극을 말해요. 그러니까 이게 성부면 이게 성령입니다. 똑같은 개념이 다 있죠. 철학을 하다 보면요 똑같은 결론에 도달해요. 다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억지로 다르다. 그러면 제가 보면 그건 그 종교의 편견들이 들어가서 틀어놓은 경우지 편견 없이 얘기하라 그러면 다 똑같은 게 나, 그러니까 중세 신학의 아퀴나스 신학 뭐죠 그런 신학에 대한 글들 보면 신학대전 이런 거 보시면요 유교 선비가 쓴 거 같은 글이 죽 나와요. 다만 어디서 틀어지냐면 기독교 이론을 얘기할 때만 틀어져요. 그래서 서양 그리스 로마 철학이랑 중세 철학의 차이점이 뭐냐면요 그리스 로마 철학은 깔끔해요. 神은 우주의 부동의 동자로 우주를 경영하는 존재다. 하고 끝나는데 이 중세 신학과 철학에서는 그 철학에다가 뭘 집어넣어야 돼요? 삼위일체를 억지로 집어넣어야 돼요. 그러니까 복잡해져요. 성부 성자 성령이다. 라는 걸 집어넣을려니까 꼬여요. 그러니까 믿음의 문제가 발생해요. 믿어야 된다. 이거는 철학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왜냐면 자기들이 억지로 집어넣은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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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중세 철학이 뭔가 왜곡되는 부분이 잘, 예전 철학을 발전시켰으면서도 왜곡되는 이유가 이거예요. 어느 한 종교의 그 입장을 계속 강요하려다 보니까 전체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때 그런 거 빼고 보면요 그 철학자 양심의 소리 있죠. 그 철학자가 진짜 자명하다고 외치는 것들 모아놓으면요 다 똑같은 소리를 합니다. 그런 것도 보시고 그래서 유교도 똑같애요. 統體一太極 各具一太極. 그래서 月印千江 그러면 각 강에 뜬 달은 각구일태극이고 근원의 달 하나는 통체일태극이 되는 겁니다. 도교에서는 뭐라고 할까요? 천하의 엄마. 노자에 나온 말이구요, 엄밀히 말 하면 황극을 말 하죠. 천하를 젖 먹여 기르고 있는 道의 작용을 말해요. 天下母는. 기독교에서는 성부라고 하구요. 성부. 지금 탄허스님도 정확히 보신 거예요. 성부랑 통체일태극을 같다고 보신 거잖아요. 근데 도교에선 천하의 엄마를 배치한 거 보면 기독교랑 뭔가 또 재밌게 이렇게 대비되게 하고 있지 않아요? 이 쪽은 아빠 이 쪽은 엄마. 聖父랑 天下母랑. 같이 사실까요? 뭐 또. 한 자리죠. 그래서 天地神明이라고 해요. 한 자리다. 인간적 시각으로 또 이걸 그려 놓으면 막 성부랑 천하모랑 부부싸움하고 이런 장면을, 인간들은 만들어 내요. 그래서 시바 비슈누 막 이런 거 보면요 와이프랑 싸우고 막 이제 이런 스토리가 만들어져 버립니다. 제우스랑 헤라 여신이 막 싸우고. 그러니까 인간적인 얘기가 돼버리는 거죠. 신의 얘기가 아니라. 실제 신성에서는 그게 있을 수가 없죠. 자, 그리고 불교에서는 뭐라고 해요? 최초 한 구절. 이게 말 이전의 그 한 구절이에요. 그 참나자리를 말하는 겁니다. 最淸淨法界. 가장 청정법계. 우주 법신 자체. 거기가 비로자나불 자리가 거기 성부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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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탄허스님이 이 정도 밝혀놨으면 후학들이 이어받아서 이걸 더 날라 다녀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쵸. 참 이런 게 안타깝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本은. 그 本은 그 근본은 하나이다. 하나는 무엇인가? 하나는 시공을 만들어 낸 현존일념이다. 요런 얘기 하실 수 있어야 돼요. 그쵸. 그러므로 천부경엔 천부경은 한 점, 우리 학당에서 이걸 알이라고 하죠. 알을 지금, 알 철학이에요. 천부경은. 알에서 우주가 나왔다는 철학이에요. 이거를 탄허스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一點의 철학이라고 해요. 한 점의 철학. 천부경은 한 점에서 만물이 나왔다는 철학이다. 그래서 학당에서 한 점을 찍어놓은 겁니다. 그 점이 원주의 중심인 점. 원은 만물을 상징하고 만물의, 만물의 중심인 점. 그러니까 중심이니까 알 자리죠. 알. 그 알에서 우주가 나와, 알에는 중심과 주변이 있죠. 중심이 이렇다. 알 철학, 이 일점의 철학, 알 철학이 종횡으로 兩儀가 되고. 자, 보세요. 짐 이제 훈민정음으로 넘어갑니다. 탄허스님. ㅎㅎ 돌겠네요. 그래서. 가볍게 시작했다가 점점 멀어져가는데서(?) 요거 하나만 해도 재밌죠. 그래서. 왜 알이라고 딱 찍었을까요. 천부경의 알이 한글에서 아래아에서 지금 아- 이거다 이거예요. 이 얘기 합니다. 이 점이 종횡으로 이 점이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이제 이게 꼭 음양 나뉜 거 같죠. 양의라는 건 음양을 말해요. 음과 양이 나뉜다. 음양에서 원래 주역에서 음양이 나뉜 다음에 뭐가 나뉘어요? 四象이 나뉘거든요. 네 개로 또 쪼개지는데 그 네 개를 지금 뭐라고 하는 거죠? ㅗㅛㅜㅠ ㅏㅑㅓㅕ. 하나에서 둘로 둘이 넷으로 나뉘는 그런 모습. 또 이거는 그럼 八卦가 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죠. 이게 딱 맞는 얘긴 아니고 이렇게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로 나눠지지 않냐. 이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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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國文學의 字母音이. 그러면 그런데 실제론 뭐죠? 훈민정음에서 이건(•) 하늘로 돼있고 이건(ㅡ) 땅 서 있는 건(ㅣ) 사람이죠. 또 천지인의 의미도 있단 말이에요. 단순히 음양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三才의 의미도 있어요. 그리고 또 자음은 다 여기서(◯□△) 만들어지거든요. 요 세 개 가지고. 예. 요 세 개 가지고 만들어져요. 그래서 요 세 개 가지고 자, 보세요. 이응 미음 시옷, 여기서 이 부분(네모의 위와 오른쪽) 기역, 이 부분(네모의 왼쪽과 아래) 니은. 이제 여기에다가 이제 획을 추가해서 다 나옵니다. 예, 저 다섯 개가 훈민정음 해례에서. 결국 근원은 원방각이라는 거예요. 원방각(圓方角) 천지인(天地人)으로 나누어지는 것도, 결국 모음도 천지인 원방각, 자음도 천지인 원방각 아니냐 이거죠. 제 훈민정음 강의에 다 소개돼 있습니다. 이 탄허스님도 똑같이 본 거예요. 자,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다 천부경의 하나가 천지인 셋으로 쪼개졌네. 거기서 다 나왔다는 겁니다. 우리 한글도. 천백번 반복하여도. 번복하여도 우리의 현존일념은 변치 않는다. 이게, 아, 그 전에 빠졌죠. 우주의 一元度數, 우주가 한 번 이제 우주의 한 번 일년이 어떻게 돼요? 지구年으로 보면 129600년. 이게 소강절 선생이 계산한 거죠. 요게 이제 우주 한 회전인데 이게 천백번 번복해도, 그럼 불교로 말 하면 劫이 돌아가는 겁니다. 수많은 겁이 흘러도 우리의 현존일념은 변치 않고 있다. 자, 이런 분들의 증언이 왜 중요하냐면요 여러분도 참나체험 하지만 자신 없죠. 내 참나가 안 죽는다고? 진짜로? 이런 의문들에 대해서 예전 어른들 글도 보고 다른 사람 연구논문도 좀 보면서 연구 하셔야죠. 혼자 골방에 쳐 박혀서 끙끙 앓지 마시고 예전 어른들은 도대체 왜 이 자리가 시공을 초월했다고 했는가. 자료를 모아서 그 얘기 들으면서 실험을 해 보셔야 실험이 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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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뭐냐면요 시공이, 참나는 시공을 초월한 자리다. 요 얘기도 어디선가 들은 얘기실텐데 정확히 들어야 이 실험을 해 보지 막연하게 들은 걸로는 실험이 안 돼요. 왜 그렇게 불렀는지도 모르시면서. 자기 내면에서 정확한 실험이 됩니까? 그래서 예전 어른들은 왜 그랬다는 거냐? 하는 이런 얘기들을 많이 접해보는 게 여러분이 빨리 자명해지는 데 중요합니다. 여러분 에고가 납득해야 자명해진 거거든요. 자, 여기서도 이런 분도 이런 주장 하시잖아요. 확신을 가지고. 그러므로 천부경에서 뭐라그래요? 萬往萬來. 만 번 오고 만 번 가도. 用變不動本. 작용은 변하지만 본체는 절대 변하는 법이 없다. 태극 자리는 절대 변하는 법이 없다. 이 자리에서 보면 천 겁을 지나도 옛이 아니요. 이 자리는 시공을 초월한 자리니까 현상계에서 천 겁이 지났다고 해도 그 자리 입장에서는 그게 옛이 옛날이 아니고 만세에 달하되 길이 이제인 것이다. 그게 만세까지 또 이어져 가겠지만 늘 지금인 것이다. 이겁니다. 이제라는 건 늘 지금 지금인 것이다. 그 자리는 시공을 초월한 자리니까. 그러므로 주역에서 先天而天不違요 後天而奉天時다. 라고 하였으며 불교에서는 先天而無其始하고 後天而無其終이라. 저도 하면서 이제 한학 강의 하는 거 같습니다. 이런 느낌 좋죠. 라고 하였습니다. 자, 누가 이제 보통, 누가 한 번 풀어보실래요. ㅎ 다시 이제 확 이제. 근데 제가 볼 때 이 두 구절은 좀 다른 얘기예요. 비슷해서 뽑아놓으셨는데 엄밀한 의미로 주역에서 이, 이 주역 얘기는요 이거예요. 여러분이 진짜 도를 아는 대인, 하늘의 이법을 아는 대인이라면 즉 우리 학당식으로 말 하면 양심을 정확히 아는 분이라면 하늘보다 먼저 움직여도 하늘이 뒤에 똑같이 내가 움직인 방식대로 움직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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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앞서서 움직여도 하늘이 어기지 않구요. 그걸. 하늘보다 뒤따라서, 우주가 먼저 움직이고 뒤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내가 하늘의 천시를 잘 받는다는 건 하늘의 이법을 어기지 않아요. 그러니까 언제나 양심을 받드는 사람은 내가 먼저 양심을 따라 치고 나가도 우주가 맞춰주고, 우주도 양심대로 굴러가고. 우주가 양심대로 굴러가는 거를 내가 뒤에 따라갈 수도 있고. 그 얘긴 뭡니까. 천지의 원리는 한결같기 때문에 이 선후가 없다. 이제 고 정도 의미구요, 그러니까 여기 뽑아놓으신 건 알겠는데 뒷 구절하고 바로 연결은 안 됩니다. 말은 비슷한데. 불교의 先天而無其始는요 참나자리를 말하는 거예요. 참나자리가 하늘보다 앞서면서도 시작이 없고. 後天而無其終. 하늘보다 천지보다 뒷서면, 천지가 망해도 그 자린 있는데 그 자리는 끝나는 법이 없다. 천지가 여기서 나왔는데 이 자리는 시작된 적이 없고. 천지가 끝나도 도로 이 자린데 이 자리는 끝나는 법이 없다. 요런 얘기니까 좀 다른 얘기죠. 글자 비슷하다고 비슷하게 해석하시면 안 된다는, 그래서 다른 의미입니다. 아무튼 이 시공에, 시공을 초월해서 진리는 불변한다. 요 메시지는 두 개가 같습니다만 서로 좀 다른 얘기다. 하는 거구요. 천부경은 周易文字가 일어나지 않은, 주역 괘가 그려지고, 괘는 지금 伏羲때부터 그려졌다고 전해오니까 실제로는 그런 건 아닌 거 같습니다만 그 때 아이디어가 있었던 거지 실제로 괘가 그어진 건 현재에는 추정해 보면 周나라 초기나 殷나라 말기거든요. 아무튼 그 주역에 대한 구체적 해설이 붙여진 걸 지금 주역문자라고 부르는 거죠. 그걸 누가 붙였냐. 文王이 붙였거든요. 문왕이 감옥에 있으면서 주역 글을 달았다고 돼 있거든요. 그래서 문왕 이전의 학설로서. 주역에 있는 구체적인 주역 경전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천부경이 있었다. 이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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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처음은 처음에 一은. 처음에 말하는 1이라는 거는 始無始의 1이요. 시작하되 시작이 없는 그 하나에서 우주가 시작했고. 끝나되 끝맺음이 없는 그 하나에서 우주가 結尾하였다. 끝을 맺었다. 이렇게 보면 천지가 한 손가락이요. 장자에서 나온 말이네요. 천지도 한 손가락일 뿐이고 천지만물도 다 이원성 안에 있는 것들이고 여길 초월하는 참나자리가 이 우주의 근원이다. 이 얘기니까 그래서 그 근원자리에서 보면 천지도 한 손가락일 뿐이고 만물도 하나의 말일 뿐이다.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교 어떤 철학이 이 양 구절 속에 포함되지 않으랴. 그러면 이 천부경의 이 말에 어떤 종교 어떤 철학이 안 들어가겠냐. 이거죠. 예, 우주가 시작되는 그 하나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이 천부경에 대해서 지금 찬탄하신 거구요, 보세요. 이렇게 보면 우리 국조는 儒道釋. 유교 도교 불교. 삼교와 기독교가 오기 전에 벌써 학술적으로도 우리 疆土의 민족주체를 심어 주었다고 보겠다. 이미 유불선 기독교 들어오기 전에 우리는 정확히 道를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불교에서 보는 천부경의 一端. 하나의 어떤 단서다. 1978년 여름 五臺山 月精寺 祖室 탄허. 어떻습니까. 재밌죠. 그래서 요 글 하나가 또 여러분 그동안 공부하신 천부경을 또 새로운 각도에서 보면서 여러분 안에 또 천부경의 또 가르침을 선명하게 또 정리해줬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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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하는 방식이 달라도요 참나에 대한 얘긴 이견이 있을 수가 없어요. 이해되시죠. 천부경 자체의 원문 풀이는 이견이 있을 수 있어요. 저도 제 해석이 맞다고 끝까지 주장은 못해요. 왜냐. 옛날 몇 천년 전 글 아닙니까. 그 때 뭐라고 했는지 어떻게 우리가 정확히 얘기합니까. 다만 지금 제 시점에서 제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얘기할 뿐이죠. 제가 가진 정보로는 이게 제일 자명한 거 같습니다. 이 말밖에 못 드리지 예전 사람들이 반드시 이랬으리라는 거는 제가 타임머신 타고 가 보기 전에는 말 할 수가 없죠. 나중에 제 얘기도 그러지 않을까요? 백년 뒤 천년 뒤에 누가 제 얘기를, 이 말을 했을 것이다. 라고 하더라도 지금 제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는 거니까. 서로 자명하면, 어느 정도 자명하냐만 따져야지 뭐 더 따지면 안 되겠죠. 그래서 저도 이제 이런 글도 소개해 드리는 게 이런 식으로도 자꾸 보시면 자명한 글을 자꾸 접하시면 더 자명해지실 겁니다. 여러분한테 자명한 그림이 떠오르실 거. 자, 요거 잘 이해되시죠. 예, 5분 쉬고 다시 하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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