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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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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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5. 09. 05. 土.
게시일자 2015. 12. 17.
동영상 길이 46:01
강의 중 인용 도서 천부경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nj9BTa3I-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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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천부경 처음부터 한 번 읽으면서 할게요. 한글 천부경을 보세요. 원문 보지 마시고요. 들어가서 제가 원문 풀이 해 드리고 거기에 해당되는 저의 풀이 읽어드리고 할 게요. 제가 이 한글 천부경까지 만든 이유가 뭐냐면요 한문으로 이해하시려면 어려워요. 그래서 한글로 풀이해 놓은 건데 한글은 우리말인데도 어려우실 거예요. 그런데 아까 그럴 때는 수리철학을 음미해 보시면 또 풀이가 되실 겁니다. 그래서 한글 천부경까지 제가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이거 다 알았으면 해서요.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지금 상식으로 숙지해 주시면 좋겠다. 싶어서 이렇게 써 봤습니다. 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 이 천부경은 끊어 읽기가 그 지랄같죠. 이게 어떻게 끊냐에 따라서 풀이가 너무 달라지니까 그런데 저는, 제가 끊는 방식은 제 선생님인 봉우 선생님께서 끊으신 천부경을 어려서 봤어요. 제가 열일곱살때부터 선생님 책을 봤기 때문에 보고는 그 천부경 풀이를 가지고 많이 연구를 하다 보니까 선생님이 설명한 거랑 다른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궤도 안에서 풀이가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 이게 제일 자명한 거 같다 싶어서 취하게 된 겁니다. 다른 풀이들도 제가 끝없이 나오는 대로 봤어요. 탄허스님 풀이도 있고 천부경에 대한, 어떤 유명 철학자들은 다 뭔가 하나씩 풀이를 해 놨어요. 그래서 봤는데 아까 말씀드린 수리철학 있죠? 이 수리철학의 흐름에 제일 적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명한 수리철학에 제일 적합하게 풀어보니까 봉우 선생님 풀이랑 거의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봉우 선생님꺼 풀이를 제가 충분히 의심 해보고 그래도 제일 타당하다 해서 제가 취한 겁니다. 그래서 거의 유사할 건데요 조금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만 좀 더 이렇게 설명하면 좋겠다 싶은 부분도 있어서 제가 개량한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일단 풀이가 一始無입니다. 하나가, 시작할 시자, 없을 무자. 一始無始一. 이 析三極에서 이 極은 아무튼 꼭대기죠. 꼭대기. 극이라는 건 꼭대기예요. 북극 남극 생각하시면 돼요. 맨 꼭대기인데 요게 이제 제가 무극 태극 황극 얘기 많이 하죠. 삼극은 기본적으로 무극 태극 황극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 전체 스토리가 무극 태극 황극이고요 여기서 말한 三極은 천지인이에요. 예. 고것도. 삼극. 석삼극 까진데 無盡本. 예 無. 여기서 제가 끊기를, 일반적으로 이제 다양하게 끊어요. 하나가 無에서 시작됐. 하나가 무에서 시작됐고, 저는 지금 이렇게 끊는겁니다. 시작된 하나는 셋으로, 삼극으로 쪼개지는데 결국은 無가 모든 것(盡)의 근본이다. 하나가 무에서 시작했고 그럼 하나와 무가 나오죠. 그 시작된 하나(始一)는 셋으로, 一이 결국은 3으로 쪼개지게 되더라. 그런데 셋으로 쪼개져서 天地人이 거기서 나와도 결국은 無가 근본이다. 다 無의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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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無를 되게 강조합니다. 이게 불교로 치면 空이죠. 이 無라는 거는 원래 이제 사람이 이렇게 뭐죠 이렇게 뭐 이런 것들을 팔에다 치렁치렁 해가지고 춤추는 모습이에요. 춤 추다가 무아지경에 들어가는 모습이죠.

空은 아까 이게 이제 구멍이죠 예전에 구멍을 이렇게 그렸어요. 입구라고 해서.

이게 지금 이렇게(穴) 됐는데 이쪽이랑 이 구멍이 이쪽이랑 통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그린 거예요. 저기랑 여기랑 통한다.

즉 구멍이, 양 쪽으로 구멍이 뚫린 터널을 말해요. 터널 중간이 비었다 해서 공이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이해되시죠. 여러분 차 타고 가다 터널 지나죠. 그 터널이란 공간이 원래 산이 있어야 되는데 비어있죠. 비었다 해서 空. 여기랑 저기랑 통한다(工). 여기랑 저기랑 통한단 뜻이에요. 요놈은(工). 앞에다 삼수하면요(江). 다리 놓을 수 있는 그 물을 예전에 강 그랬습니다. 기술이 좋아지면 다리를 바다도 건너고 하니까 이걸로는 설명이 다 안 되겠지만 예전에는 다리를 놓을 만한 그 강을, 하천을 강 그랬죠. 그래서 空과 無가 결국은 비었다. 라는 뜻인데, 보세요. 천지만물의 씨알이 되는 하나. 이걸 그림으로 그려 볼게요. 하나라는 거는 우주의 근원이라는 뜻이고 요 그림을 그려보면(☉). 無는 텅 비었다는 뜻입니다(○). 원불교 일원상이 이거죠. 무극. 텅 비었다. 거기서 하나가 나왔고 그 시작된 하나(☉)가 셋으로 쪼개졌다. 무슨 말인지 아세요? 요거(☉의 중심점)를 확대해 보면 요 안에가 삼태극으로 돼있더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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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하나기 땜에 여전히 이 삼극이라는 말이요, 天地人도 셋이지만 이 셋의 꼭대기라는 건 장차 하늘 땅 사람을 낳을 수 있는 각각의 그 꼭대기가 되는 고 알들이라는 겁니다. 이게. 그래서 하늘의 알 땅의 알 사람의 알을 말해요. 하나의 알에, 보세요 태극 안에 맑은 기, 輕淸氣는 장차 하늘을 이루고. 重濁氣는 장차 땅을 이루고. 중간기는 장차 사람을 이룬다구요. 지금 우리 태극은 陰陽 태극이죠. 우리 태극기 생각하시면 안 되고 하나가 셋으로 쪼개니까 陰陽中까지 계산한 태극. +와 -와 그 중간까지 계산한 삼태극을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다. 천부경 철학은. 이 하나의 씨알 안에 장차 우주의 모든 존재가 나올 수 있는 그 정보와 에너지가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이 씨알 안에. 그러니까 天地萬物이 나올 씨앗으로 설명할 때 하나가 無에서 시작되는데 원래 텅 빈 놈이, 요놈이 그러면 둘이(○, ☉)가 다르냐. 그게 아니에요. 무극의 작용이 태극입니다. 무극이 만물을 낳을 때 태극이라고 그러죠. 즉 원래 하나예요. 그러니까 이게 텅 비어있으면서 이 우주의 씨알이 된다. 이런 느낌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태극의 존재. 태극과 무극은 본래 하나다. 자 이걸 한 번 풀어드릴게요. 천지만물의 씨알이 되는 하나는 텅 빔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하나와 텅 빔이 본래 둘인 것은 아니다. 이게 둘이면 이미 우주의 근원부터 찢어져 있는 거죠. 그게 아닙니다. 본래 한 자리이나 그 역할에 따라 두 가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물의 뿌리가 되는 측면에서 보면 텅 빔은 하나라고 불리게 되며 만물을 낳되 만물에 물들지 않는 하나의 측면에서는 텅 빔이라고 불린다. 이해되시죠. 텅 빈. 만약에 우리가요. 참나를 空寂靈知 그러죠. 텅 빈 각성 그러면 텅 빔과 각성이 꼭 둘인 거 같죠. 텅 비어있는 거랑 각성이. 알아차림이. 텅 비어있되 분명히 알아차리고 있는. 이런 느낌으로서 이 하나 안에도 둘이 들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둘을 둘로 보지 마시고 무극 안에 태극이 들어있고 또 태극의 본질은 무극. 텅 비어있으니까 우주를 창조하고. 이해되시죠. 또 우주를 창조하는 자는 본래 텅 비어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 보시면, 一始無라는 걸 가지고 둘을 너무 쪼개서 보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0에서 1이 나오는데 수리로 말 하면 지금 숫자가 0에서 1이 나왔는데 1에서 3이란 숫자가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해되시죠. 이제. 그래서 하나 안에는, 하나가 있다면 음양이 나눠지고 음양의 중간까지 해서 지금 天地人이 생겨나는데 결국 셋으로 쪼개지지만, 보세요. 하나가 이렇게 셋으로 쪼개져 있지만 결국 그 하나는 無다. 텅 빔이 근본이다. 이해되시죠. 천지인 모두 텅 빔에서 나왔다. 지금 漢字 몇 자입니까? 일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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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열 한자 해서 지금 거의 우주 창조신화 같은 게 나오죠. 예. 이런 게 이제 묘밉니다. 경전의 묘민데 보세요. 제가 이제 풀이를 좀 했어요. 요 풀이본까지 읽어드릴게요. 텅 빔에서 하나가 나왔다는 것은 텅 빔의 허공이 없이는 만물의 뿌리인 태극의 하나가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없이는 존재의 작용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자. 이렇게 또 구분해 봤습니다. 여기를 제가요 존재라고 부를게요. 그냥 순수 존재. 그 존재의 작용.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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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존재 자체가 없이는 작용이 없는 거 아니냐. 이겁니다. 태극과 황극이 작용하고 불어나도 무극은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다. 보세요. 태극과 황극으로, 황극이 작용하고 우주를 만들고 별 짓을 다 해도 무극은 늘 텅 비어있다. 즉 우리가요 보세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울고 웃고 떠들고 얼마나 마음을 써서 별 짓 다 했습니까. 마음과 몸을 써서. 그래도 우리의 존재의 중심은요 이 무극 자리는 지금도 텅 비어있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모른다만 하시면 그 자리가 선명히 드러나요. 텅 빔이. 여긴 나이도 뭐도 없어요. 그 텅 빔이 내 생각 감정 오감의 초점이라는 작용을 할 때는 태극이라고 하는 겁니다. 같은 자린데 태극으로 불리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생각 감정 오감이 나왔다. 그러면 태극이고. 그런데 본래 텅 비어있다. 무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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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자리가 내 생각 내 감정 오감을 경영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양심적으로. 그럼 황극이 됩니다. 쉽죠. 그래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찾으셔야 돼요. 요게 지금 우주의 스토리라고만 아시면 안 돼요. 여러분도 소우주기 땜에 이대로 굴러갑니다. 여러분 마음의 본질이 결국은 텅 빈 데서 나왔다. 空寂한 데서 여러분 마음의 중심이 나왔고 여러분 마음의 중심. 요놈이 양심이죠. 양심의 본은 텅 비어 있는데 그 놈이 이제 양심으로 또렷이 기능할 때 거기서, (태극 그림에서 중심점이 삼태극으로 확대되는 그림)天地人 대신에 뭐가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늘이 생각이고 인간이 감정이고 땅이 오감이에요. 생각 감정 오감의 씨알이 그 안에 다 들어있더라. 그래서 밖으로 펼쳐져서 여러분 마음이 一切唯心造가 돼서 여러분 마음이 돌아가는데 결국은 텅 빈 空이 근본이더라. 요렇게 풀어도 되겠죠. 여러분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이걸 읽어내면요. 그럼 이게요 모든 불경의 핵심 아닙니까. 지금 방금 말씀드린 이 한 구절이. 반야심경보다 훨씬 지금 설명이 더 잘 들어간 거예요. 종합적으로. 이해되세요? 空에서, 色卽是空 이렇게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空에서 하나가 나왔는데 그 하나가 셋으로 쪼개져서 三界를 굴리는데, 이게 삼계라고 해도 되겠죠. 삼계를 만들어내는데 생각감정오감이 삼계의 본질입니다. 이게 세 가지 차원대의 우주가 펼쳐지면서 여러분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데 결국은 텅 빈 공이 근본이다. 이해되시죠. 자 여기까지는 동서양에서 철학 좀 했다 하면 다 도달해요. 여기까지. 그런데 여기서 많이 패가 갈려요. 어떻게 갈리느냐? 그러니까 빨리 다시 공으로 기어들어가자는 派가 있습니다. 해탈, 열반파. 이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생각 감정 오감을 경영하자는 파가 있어요. 대승파. 소승과 대승이 이거는 공유하는데 또 갈라져요. 이해되세요? 공유하면서도 기본 입장이 달라요. 왜 기어 나와 가지고 이 고생을 했을까 無에 있었으면 최곤데. 요게 힌두굡니다. 힌두교와 소승불교는 이 사상이에요. 여기서 이 지상에 떨어진 것부터가 잘못됐다. 그래서 이 떨어지게 한 존재를 힌두교는 마야라고 부르고 싫어하고 불교는 무명이라고 하면서 싫어합니다. 나를 이 세계로 내던진 그 힘. 그것만 내가 벗어나면 다시 요 세계에 들어가서 쉴 수 있다. 이게 소승 철학이에요. 대승 철학은 마야가 우리를 던진 게 아니라 참나의 작용으로 우리가 나타났다고 봅니다. 자 여기서 이 천부경의 논리대로 생각 감정 오감이나 天地人이 안 나타날 수가 있나요? 우주에. 없죠. 우주의 필연적인 그 수의 로고스. 우주가 갖고 있는 만물의 로고스가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모습입니다. 무명이 만든 게 아니에요. 마야가 만든 게 아니란 말이에요. 신이 만든 거고 우주의 순수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현상계 안에 시공간 안에 멋지게 드러낸 거죠. 이렇게 보면 전혀 다른 철학이 나와버려요. 기어 들어가는 게 이제 목적이 아니고 어떻게 멋지게 신의 공의 그 본질을 내가 현상계에서 표현할까가 문제가 돼요. 이해되시죠. 전혀 다른 철학입니다. 소승과 대승은 그냥 다른 종교예요. 완전히 다른 종교라고 아시면 돼요. 두 개가 만날 지점이, 그러니까 기본적인 토대는 비슷한데 그거는 모든 철학이 공유하는 토대고요 거기서 조금만 나가면 완전히 달라져요. 전혀 다른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래서 천부경을 대승철학입니다. 空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안 나와요. 그래서 지금 미리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 구절만 이해해도 재밌겠죠. 요 박스까지 이해하면 더 재밌습니다. 보세요. 텅 빔에서 하나가 나왔다는 거는, 텅 빔이 존재 자체고 하나는 존재의 작용이라는 거죠. 자 태극과 황극 즉 우주의 씨알과 우주의 경영자라는 것은요 존재의 작용이나 생명의 나타냄일 뿐이다. 본래 둘이 아니다. 무극이 존재의 바다라면. 자, 아까도 했던 얘긴데 보세요. 존재의 바다에서 바다의 미묘한 움직임이 태극이라면 황극은 바다의 파도다. 이제 황극까지 집어넣으면 황극이야말로 진정한 파도다. 존재의 작용은 파도의 어떤 기점이죠. 파도의 근원. 자 보세요. 황극은 이렇게 표현됩니다. 예. 이거 보시면 되게 웃기지 않으세요? 여러분 생각해보시면 되게 웃긴 겁니다. 보세요. 원불굔 이거(◯) 그려놓고 신앙하죠. 불교는요. 이걸(☉) 그리는 게 아니라 삼태극을 그리죠. 이거의 변형이에요(동그라미 안에 점 세 개). 삼태극이. 점 세 개 찍어놓고 불교는 신앙합니다. 그렇죠. 카톨릭은요 요거(⊕) 십자가 그려놓고. 거기 쓰는 로고죠. 또 불교는요 팔정도랑 오행을 섞은 버전이죠. 卍자 그려놓고 또. 한 종교도 아니고 뭐 이렇게. 학당은 이거(☉) 그려놓고 있죠. 웃기죠 서로. 서로 웃기지 않을까요. 알고 보면. 아 저기서 이거 썼네. 난 이거 써야지. 하고. 이미 이거죠. 서로 모순된 거 같지만 하나란 얘기 아니에요? 서로 하나니까 지금, 비슷비슷해요 다 그게 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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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시죠. 신기하게 왜 세계 모든 종교의 기본은 원형들이 그 다 비슷하냔 말이죠.

이런 거 생각하면 재밌습니다. 이건 싸울 일이 아니고 우주의 로고스를 빨리 알아낼 일이에요. 이거 가지고 싸울 일이 아니고. 우리게 더 우위라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 하실 필요가 없고 우주의 진리가 어떻게 생겼길래 이렇게 다 비슷비슷하게 나올까 고민하셔야 돼요. 이거(⊕) 쓰려고 했더니 천주교가 써서 제가 못 쓴 거예요. 뱃지 저희도 십자가잖아요. 또 똑같이. 저희 뱃지도 지금 이렇게 돼 있죠. 하늘(◯), 우주의 근원인 무극이자 태극 알(‧) 거기서 땅을 만든다는 걸 표현했고() 거기서 십자가로(⧾) 오행을 표현했습니다만 오행만 표현한 게 아니라 아까 여기가(중심점) 알이니까 머리를 위로 한 게(⧊) 뭐죠? 사람.

머리를 밑으로 한 게 식물(▽). 동물들 곤충들(▷◁). 지금 우주 살아가는 천지만물도 그려져 있고 알을 중심으로 우리가 이 세계에서 무로 돌아갈 게 아니라 인의예지라는 오행을 잘 표현해야겠다. 그리고 여기까지(뾰족한 네모 모서리) 끝에(원주) 닿게 해서 八正道도 표현한 거예요. 팔방으로 잘 경영을 해야겠다. 이 제가 연구해서 만든 겁니다. 디자인은 또 멋진 디자인을 나중에 만들겠지만 기본 이런 그림을 가지고 우리가 우리 철학을 표현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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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시죠. 뭐 이제 다 들어있죠. 다 거기서 거기예요. 아무튼. 그래서 뭐 이거 가지고 독자성을 주장할 필요도 없고 할 마음도 없고 우주의 로고스를 여러 방식으로 각각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두시면 좋겠다. 하는 겁니다. 천부경을 공부하실 때 이 정도까지 다 알아야 돼요. 하나에서. 태극과 황극의 작용이란 결국 우주의 창조와 우주의 창조 경영입니다. 창조의 기점은 태극이지만 결국 실질적으로 창조한다는 것도 경영이죠. 창조하고 경영하고 모든 거는 황극이에요. 그래서 태극의 작용을 황극이라고 하는 거예요. 또 황극이 별도로 있는 게 아니에요. 태극이 우주를 경영할 때 태극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어차피 위대한 꼭지점인데 경영한다는 의미에서, 황제로서의 태극 이래서 황극 그러는 겁니다. 무극은 태극의 본질. 텅 빔을 무극 이렇게 따로 불러주는 거고요. 무극이 존재의 바다라면 태극은 미묘한 움직임이요 황극은 바다의 거친 파돕니다. 그래서 거기에선 생각 감정 오감이 다 나타나요. 이제 황극이 오면, 자 보세요. 아까 여기에서는 천지인이 씨알로 있었죠. 예 그래서 天一이라고 불러보죠. 地一 땅의 근원. 人一 사람의 근원. 사람의 씨알 하늘의 씨알 땅의 씨알이라는 뜻입니다. 요 일이 여기서는() 각각 다 부풀어지겠죠. 오행으로. 결국 다 표현된다는 얘기예요. 천지인이 다 드러난다. 생각 감정 오감이 오행에 맞게 다 드러난다. 생각도 오행이 있고 감정도 오행이 있고 우리 오감은 당연히 또 오행으로 굴러가겠죠. 이런 것들이 다 부풀어져서 나오는 자리가 황극입니다. 그러면서 로고스대로 경영되고 있는 자리. 그런데 경영이 잘 돼야 되는데 어디 오면 경영이 안 될까요. 이 황극이 안 먹히는 데가 있어요. 제대로 구현이 안 되는 데가 사람 마음이에요. 사람 마음 빼놓고는 우주에서 다 지금 황극대로 돌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뭐 개 붙잡고 공부하란 말 할 필요가 없잖아요. 사람이 문제죠.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자리(무극)가 지금 성부 자리잖아요. 이 성부 자리가, 아버지의 뜻대로(태극)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졌으면(황극) 좋겠다. 하는 게 그 땅이라는 게요. 지금 그럼 식물들이 갑자기 도 닦아서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는 게 아니고 만물이 다 따르고 있어요. 누구만 안 따르고 있어요? 사람이요. 사람 마음보, 심보를 지금 땅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사람 마음에서 즉 몸 까지 포함 하겠죠. 마음이 결국 경영하는 몸을 통해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지상 천국이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지상천국 만들려고 온 거지 지상에 있는 사람들 천국에 데려가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본질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 뜻이 이루어 지리이다. 요게 뭘까요. 그러니까 예수님 당대에 그걸 못했죠. 예수님이.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이 마지막에 그게 경전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예요. 땅에서 지상천국이 선포되는 스토리를 가상으로라도 만들어서 넣어야 이게 완결이 되는 거예요. 스토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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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세요? 성경의 마지막 결론은 뭐라구요? 지상에 예수님 내려와서 천국 만드는 거지 다 데리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구요. 이해되시죠. 이 스토리를 이해 못 하시면 예수님이 아니라 누가 왔다 가도 지구인들은 결국 딴 얘기를 하게 돼 있어요. 왜 우리 안 데리고 가나 원망하고 결국 이 성인들의 말은 당신들 마음 안에 이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말 하고 행동하면 거기가 천국이다 요 얘기인데 유마경도 다 그 얘긴데. 우리 마음 밖에 도량이 없어요. 우리 마음이 제일 황폐해져 있고 우리 마음이, 진리를 어기는 건 우리 마음이에요. 요것만 경영되면 끝나요. 우주가 화평해요. 中庸의 메시지도 다 喜怒哀樂만 경영해라. 그러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다 길러진다. 센 얘기 같지만 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서 생각 감정 오감을 경영하는 게 황극이다. 경영해 주는 게 황극. 이해되시죠. 생각의 오행 감정의 오행 그리고 우리 오감들을 잘 경영하는 게 지금 황극이다. 그래서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텅 빔과, 텅 빔은 부족한 게 하나도 없죠. 그리고 그 움직임인 하나, 하나로서 움직이는, 天一 地一 人一로 셋으로 쪼개지지만 그냥 하나죠. 다. 통합해서. 텅 비어 있으면서 하나로 움직이는 그것. 그거는 본래 하나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텅 빔 안에 존재하며 텅 빔은 모든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된다. 텅 빔은 언제나 하나로 작용하여 만물을 창조해 낸다.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제가 해놓고도 기가 막힌 거 같에요. 뭐 이런 말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의 제가 쓴 거라 지금의 저는 보면서 와 말 잘 갖다 붙인다. 하면서 보고 있습니다만. 그럴싸하죠? 그래서 창조는 텅 빔의 본성이라 창조가 멈추는 법은 없다. 그러니까 열반에 기어들어가려고 하지 마라는 겁니다. 다시 기어 나오리라. 하는.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텅 빔의 본질을 이해 못 하니까 자꾸 열반에 들어가서 안주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텅 빔의 본성이 창조라는 걸 알고 나면 기어들어 간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게 나오겠죠. 여러분이 아무리 명상에 들어가도 다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받아들이셔야 돼요. 명상에 들어가서 끝날 거 같은데 나오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소승 철학자들은 뭘 믿는지 아세요? 살아서는 못 들어간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죽을 때를 열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나 이번에 죽으면 다시 안 나올 거야. 라는 희망을 갖고 죽는 거예요. 실제로 안 나올까요? 텅 빔의 본성은 창존데. 그래서 그게 부당하다는 걸 알고 대승보살들이 열반을 거부한다는 말을 하는 건데 그것도 안 맞는 말이고 사실은 열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안 겁니다. 그래서 무주열반사상이 나와요. 우린 그대로 열반이지 우리가 뭔 짓을 해도 이미 무극인데 무극에 들어가 안주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냐 하는 사상이 나온 겁니다. 우리는 지금 남하고 멱살 잡고 싸워도 여러분 존재 자체는 무극이에요. 열반이라구요. 열반이 태극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뿐이에요. 이해되시죠. 이렇게 이해하는 게 반야심경의 본질입니다. 지금 여기가 그대로 오온이 공하다 하는 게 내가 오온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이 자체가 본래 텅 비었다. 라는 걸 안다는 거는요 다른 천국 구하지 않고 여기가 극락이다 하는 사상이랑 똑같은 말이에요. 내가 울고 웃고 있는 이게 그대로 극락이다. 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제일 큰 사상이에요. 더 어려워요. 울고 웃는 중에. 울고 웃고 싶지 않거든요. 좀 쉬고 싶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격렬하게 울고 격렬하게 웃고 하면서 살아야 돼요. 그런데 관점을 하나 전환시켜서 울고 웃고 즉 오온을 다 버렸더니 空하더라 그래서 고해를 벗어났다. 반야심경에 그렇게 안 돼있고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로 봤더니 즉 육바라밀 닦아서 연구해 봤더니 오온이 본래 공한줄 알고 度一切苦厄 일체 고액을 벗어났다. 즉 이 양반은(?) 울고 웃고를 떠난 겁니까? 아닙니까? 안 떠났어요. 울고 웃는 중에 이게 그대로 공의 작용이라는 것만 안 거예요. 그래서 괴로울 일이 없어졌다. 다르죠. 소승식 해탈법은 오온을 버려야 돼요.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세계를 버려야 돼요. 여기(무극) 기어 들어가야 끝나요. 대승식 해탈법은 황극이 무극이여. 이겁니다. 황극이 무극이야. 생각 감정 오감이 무극이여. 하고 살아갑니다. 즉 울고 웃고 있는 것도 깨어서 울고 웃으면요 이게 그대로 참나의 작용이라는 느낌이 들지, 이게 반야바라밀입니다. 여러분 지금 몰라 해보세요. 여러분의 존재 자체에 좀 더 관심 가져보세요. 지금 생각 감정 오감의 작용보다 여러분의 그 밑바탕인 존재 자체, 태극이나 무극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구분하지 마시고 그냥 태극 무극이 하나니까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데만 관심을 기울여 보시면요 초연해집니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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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고 다 해도 초연해요.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울고 웃고 하는 느낌이, 이걸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요. 그 상태가 반야바라밀을 얻기 제일 좋은 상탭니다 이 때 보면요 이걸 떠나고 말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돼요. 그대로 지금 나는 공하구나. 이해되세요. 요게 천부경에도 기본 원리입니다. 그래서 창조는 텅 빔의 본성이에요. 창조가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얘기 하면 이제 초기불교 공부하신 분들은 소승이라고 지금 대승에서 불리는 초기불교 공부하신 분들이 석가모니 이론을 가지고 제 얘길 들으면 안 맞잖아요. 이건 대승불교 이론이지 석가모니의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너는 석가모니의 이론과 어긋난다. 라고 하면요. 그리고 불교 아니다. 라고 하면 저는 맞다. 당신이 그렇게 말 하면 나는 불교가 아닐지언정 이게 맞다고 본다. 라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수행해서 체험해서 얻은 거는 그 초기불교 이론이 아니고 요거였어요. 대승불교 이론이 맞았어요. 저는 제 체험담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 드리죠. 제가 잘못 말씀 드린 건 제가 나중에 책임지는 거고 현재까지 제가 체험해본 바로는 대승이 맞지 소승불교가 맞지 않았어요. 열반에 든다는 거 자체가 허황된 얘깁니다. 이번 생에 죽고 끝나는 거지 추적할 길도 없고 확인할 길도 없는 내용이고 살아서 한 번도 열반에 안주해 보지 못했어요. 그분들이. 이해되세요? 열반에 들어가면 튕겨 나오게 돼있어요. 다시 생각 감정 오감이 일어나게 돼있어요. 창조하게 돼있어요. 다시. 반야심경이 그걸 써 놓은 거예요. 色이 空인데 空은 꼭 色으로 다시 나타난다. 요 말만 이해하면 전혀 다른 불교가 펼쳐지겠죠. 그래서 대승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대승은 사실 석가모니의 사상이 아니에요. 전혀 달라요. 그래서 다르다는 걸 저는 계속 얘기 합니다. 누가 저더러 너는 석가모니가 볼 때 이단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이단이 돼야죠. 저는 이 말이 더 맞는 거 같은데. 그래서 오직 낳고 또 낳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제가 이거는요 주역 공부해서 얻은 로고스입니다. 주역 공부, 주역에 이렇게 나와요. 生生之爲易. 역이라는 거는 낳고 또 낳는 거다. 역이라는 건 우주의 음양의 도리죠. 음양의 로고스는요 우주의 태극의 로고스는 낳고 또 낳는 게 본식이다. 여러분 태극기만 해도 지금 그려져 있는 태극기 봐보세요. + -를 그, +가 발산하고 陰이 쪼그라드는 이 역동적인 작용을 지금 잉태하고 있죠. 속에. 태극이 가만있겠습니까? 요놈이 태극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작용을 일으키면. 현상계에서는요 양이 치솟고 음이 쪼그라들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요. 태극은 영향받지 않아요. 뭐랄까요. 이 태극은요 이 참나의 세계, 제가 늘 그리는 도너츠. 태극이 여기(가운데)예요. 여긴(둘레) 에고의 세계, 현상계. 태극이 이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에고에서는 알아서 양이 치솟고 음이 쪼그라들고 해요. 누가 시킨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현상계에서는 태극을 못 찾아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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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현상계에서는 그냥 발산하고 그냥 쪼그라들고 해요. 누가 시킨 존재가 안 보인다고요. 작용도 안 보여요. 태극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현상계는 같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 이걸 여러분 마음으로 가져와 볼게요. 여러분이 양심 인의예지의 마음을 품죠. 신기하죠. 여러분이 마음을 비우고 명상을 할수록 자비로움과 지혜로움이 커져요. 자 그런데 그건 분명 여러분 마음이에요. 여전히 여러분 에고예요. 여러분 에고가 왜 자비로워지고 왜 지혜로워졌을까요. 참나가 태양이라면. 천부경에선 태양으로 보죠. 참나가 태양이라면 태양에 가까이 간 것만으로도 지구는 뜨거워지죠. 태양이 지구한테 뭘 해주려고 안 해도 거친 비윱니다만 태양 가까이 가면 지군 뜨거워서 못 견디죠. 마찬가지로 여러분 에고가 마음을 비우고 참나에 가까이 가면요 이상하게 여러분 에고는 지혜로워지고 자비로워지고 인의예지를 갖추게 되고 육바라밀이 나오게 돼요. 자 그러면 참나가 뭘 했다는 건 안보여요.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변한 거예요. 이거는 無爲法이기 때문에 참나의 작용은 안 보여요. 그런데 신기하게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해요? 인의예지에 맞게 변해요. 자비로워지고 지혜로워져요. 공정해지고 선명해지고 자 이걸로 우리는 참나를 직접 관찰은 못 해도 뭐로 알 수 있을까요? 내 에고만 관찰해도 참나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죠. 참나는 항상 내 마음을 인의예지로 바꿔 놓습니다. 이걸 알면 참나는 텅 비었다고 하지만 참나 안에는 인의예지란 로고스가 선명하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내 마음이 꼭 그렇게 변하니까. 이런 식으로 연구하는 겁니다. 이렇게 끝없는 명상과 분석으로 지혜로 연구하다 보면 여러분 안에 있는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럼 내가 사는 동안 여기 기어들어가는 게 아니라 인의예지를 멋지게 구현해야 된다는 게 내 사명이란 걸 알게 돼요. 예수님은 정확히 그 얘기 한 거예요. 무극과 태극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는 그 하느님의 법을 우주의 황극에서는 구현되고 있는 하느님의 법을 내 마음에서 제대로 이 황극이 펼쳐지게 만들어야겠다. 하는 게 결국 그 땅에서도 하늘에서와 같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리이다. 하는 한 마디로 구현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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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분이 또 그러길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는 건 에고 뜻대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도는 우주 황극의 뜻 우주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순응하고 맞추는 거라는 걸 얘기 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우리도 당당한 하느님의 분신이 될 수 있다. 요 내용이 모든 종교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 드리는 거예요. 이 작용이 안 보여요. 그래서 태극이 없는 것 같고 지금 신이 없다고 말해도 누가 반박을 바로 하기 힘든 겁니다. 그런데 조금만 연구해 보면 철학자들이 연구해 보면 우리 안에 그런 무형의 신과 그 신의 질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이 없이 굴러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나와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다는 것도 나와요. 그걸 성경에서는 성령의 뭐 은총이니 성령의 열매니 하고 하나님이 주는 뭔가 내 에고에 뭔가 변화를 일으키는 그걸 열매라고 부르는 겁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四端이 성령의 열매죠. 아버지만 만나면 이상하게 측은지심이 감돌고 시비지심이 계발되고 수오지심이 극대화되고 사양지심이 커진단 말이에요 확충된단 말이에요. 요게 신기하죠. 그래서 명상이 빠지고 양심이나 육바라밀을 닦을 수가 없는 겁니다. 명상을 통해 끝없이 여러분 마음을 내려놓고 순수 존재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해야 순수존재가 순수작용을 통해 여러분 마음을 바꿔놔요. 끝없이 하늘한테 내 마음의 그 뭐죠 힐링을 맡겨야 돼요. 하느님한테 맡겨야 돼요. 부탁해야 돼요. 하느님이 끝없이 내면에서 힐링을 안 해주면 여러분이 양심적으로 살 수 없어요. 에고의 의지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의지 강한 사람이 오히려 공부 못합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하늘한테 안 맞기고 자기가 계획한 대로 해요. 그래서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그래요. 하늘한테 인정은 이미 포기했고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근데 순수한 사람은 의지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근원적인 은총과 열매가 나와서 일어난 작업이기 때문에 또 다시 겸손하게 돌리고 돌리고 하는 중에 힘이 더 커지는데 의지력이 강한 분은 자기 의지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늘이 못 도와줘요. 의지로 하는 보살. 의지로 하는 인욕. 암 걸리세요. 그렇게 가다가. 그러니까 뭔가 부작용이 나타나요. 몸에서. 마음에서. 이해되세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희생하고 봉사했는데 왜 아무도 이렇게 알아먹질 못할까. 하는 걸 늘 또 거기에 대해 한이 생깁니다. 요게 지금 자신의 힘으로 하고 있단 증거예요. 의지력 강한 분들이 세속에서 성공은 해도요 도 닦는 건 어렵습니다. 의지력으로 하려고 그래요. 맡겨야 돼요. 게으른 사람이 더 잘 해요. 아버지 모르겠으니까 다 맡깁니다. 하고 있는 분들이 오히려 자꾸 마음을 비우니까 도는 더 나가는 게 있어요. 재밌죠.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개의 中을 잡아 보자는 거죠. 비우되 열심히 또 해 보는. 그러니까 의지력과 이 내면의 힘을 조화시키는 그 방법을 배우자는 게 바라밀이에요. 그래서 바라밀이라는 건 참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에고 혼자 하는 것도 아니에요. 즉 참나가 안에서 밀어주고 에고가 도와줄 때 바라밀이 구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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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에서 내면의 양심이 계속 보시하라고 외쳐도 에고가 안 하면 안 하는 거예요. 모르겠다. 하고 그 때 딱 몰라 해버리면 끝나요. 옆집 지금 사정 되게 안 된 거 막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 우리집이 아니라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딱 끊는 순간 딱 멈춥니다. 즉 양심에서는 지금 바라밀을 사실은 내보내려고 하는데 에고가 막아버리니까 멈춰요. 즉 공부라는 건 뭡니까 결국. 양쪽이 서로 도와주는 거예요. 啐啄同時 그러죠. 안에서 바라밀이 샘솟을 때 에고가 OK 하고 호응해 버리면 일어나요. 바라밀은 참나와 에고의 합작이라는 것도 아셔야 돼요. 유교에서 양심 사단확충이라고 그래요 맹자가. 안에서 측은지심이 올라올 때 밖에서 그걸 도와줘서 확장시켜 버리면 끝나요. 이게 양면 합동작전입니다. 이게 성공하면 여러분 인격이 변하고 여러분이 이 순간 여러분도 당당한 하느님이 돼요. 자 여러분이 어디까지 될 수 있냐면요, 오늘 여기까지 하고 끝낼텐데 원래 완벽한 무극과 태극, 사실은 우주에서는 황극이 완벽한데 내 마음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황극을 내가 세워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그 내 안에 있는 그 완벽한 하느님이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그러니까 시간적으론 지금 공간적으로는 여기 내 마음자리에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내는 하느님이어야 돼요. 여러분은. 여러분은 하느님 되라는 게 지금, 하느님이고 본래. 하나님으로 제대로 당당하게 품위 있게 살아가시라는 게 천부경의 핵심입니다. 제가 마지막에 제일 끝에 가며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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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페이지 보세요. 12페이지. 이걸 읽고 끝낼게요. 12페이지. 미리 이제 예습을 해 보는 겁니다. 마지막 단락 한 번 읽어볼게요. 하늘과 땅과 하나 된 사람은 자신을 닦고 남을 돕기 위해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 천부경에선 만왕만래라고 합니다. 만 번 오고 만 번 간다는 게요 6789가 끝없이 돌아가는 걸 말해요. 겨울이 됐다가. 사라졌다가 이 현상계에서. 다시 나타나가지고 또 돌고 또 돌고 하는 중에 진정한 도인은 늘 오고감이 없는 그 자리 만왕만래하는 중에 변치 않는 참나자리. 보세요. 뭡니까. 무극과 태극이에요. 텅 빈 하나라고 부를게요. 지금. 하나로 합쳐서. 텅 빈 하나자리는 절대 여러분 안에서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靈의 자리죠. 魂은 윤회하는데 靈은 어떻게 돼요? 하는 분들이 있는데 영, 혼과 영은 함께 다닙니다. 왜냐. 영의 창작품이 혼이에요. 혼이고 肉이에요. 그쵸. 그러니까 영에서 그게 분리되지 않죠. 그래서 육은 떠날 수 있지만 혼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의 창작품이 혼이기 때문에 색수상행식의 작업은 계속 이루어진다구요. 그래서 만왕만래하는 중에 여러분 본질은 변치 않고 있고 오고가는 중에 여러분 생각 감정 오감은 계속 바뀝니다. 물질을 가졌다 안 가졌다도 역시 현상계 안에서 물질 없는 차원 물질 있는 차원을 오고 갈 뿐이지 생각 감정 오감은 항상 돌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는 중에 본질은 텅 비어있죠.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늘 땅 사람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가장 균형 잡힌 최고의 善을 실현해야 됩니다. 이것이 하늘 땅에 참으로 합하는 인간의 길이고 우리가 이런 인간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의 진정한 화신인 지금 여기서 시공간 안에서 이렇게의 하느님. 이러한 생각 감정 오감을 갖고 있는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시간 이 공간에서 내가 어떤 생각 어떤 말을 하고 있다. 그게 하나님의 모습의 발현이어야 되고 구현이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게 천부경의 목표고요 그래서 無에서 1이 나오고 그 1이 셋으로 쪼개져서 결국 본질은 無지만 셋으로 쪼개진 것들은 어떻게 될 까요? 셋이 또 셋을 낳아서 天地人 즉 결국 생각 감정 오감을 통해서 9, 숫자로는 9를 향해 가겠죠. 완벽하게 여러분 안에 있는 양심의 仁義禮智信 6바라밀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끝없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 그 시간에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 여러분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게 천부경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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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에요. 재밌죠. 이게 대승철학의 골수죠. 그러니까 예전에 우리 어른들이 弘益人間. 철학의 결론은 뭐냐? 홍익인간.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는 뭐냐? 홍익인간.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게 목표다. 해탈하고 열반하고 無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 無에서 기어 나와가지고 이 시간 이 공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서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위를 나누면서 서로 돕는 게 목표다. 잘 돕는 게 9의 모습이거든요. 잘 돕는 게 모든 우리 수행과 철학의 목표다. 이렇게 얘기 하는 게 이게 딱 맞아 떨어지죠. 홍익인간 철학과 천부경의 이 이야기랑 三一神誥의 性通功完하자. 본성을 뚜렷이 깨치고 실제로 현상계에서 공을 완수하자. 남을 돕는 그 사업을 완수하자. 요 철학이 다 회통되고 있죠. 이게 우리 민족의 철학이고 대승철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랑하셔야 돼요. 대승불교는 2000년 전에 나왔습니다. 홍익인간 철학은 최소 5000년 전에 나온 겁니다. 이 천부경도 언제 만들어 졌는진 모르지만 그 철학을 잘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기 때문에 후대 작품이라 하더라도 철학의 원형이 거기 있다고요. 지금 紅山文化라고 해서 파고 있는 다 그 지역에서 원형이 나왔을 거라고 봅니다. 실제로 재밌는 게 홍산지역 가가지고 파니까 동그라미 세 개로 된 제단. 네모 세 개로 된 제단이 나왔죠. 삼층으로. 三地 三天이죠. 재밌지 않아요? 그래서 또 사람 모양을 상징하는 동서남북에 이렇게 사당이 나왔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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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이렇게 들어가 가지고 동서남북 각 室이 있는 사당이 나왔다구요. 요게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圓方角이 다 나온 거죠. 재밌지 않으세요? 제가 봉우 선생님 얘기 들을 때 마다 거기 가면 막 있다고 하셔도 설마 동그라미 네모 저런 게 다 있을까. 의심했는데 가신지 한참 뒤에 나왔죠. 다. 재밌죠. 증거까지 갖춰주잖아요. 저 얘기를 일찍이 하셨단 말이에요. 동그라미 네모. 재밌는 게, 이게 또 재밌는 게요. 세모가 나온 건 아니죠. 근데 좀 이상하잖아요. 근데 재밌는 거는 본인이 봉우 선생님이 大倧敎 가장 총전교 어른이실 때도 대종교 깃발이 이래요. 원방각.

그런데 봉우 선생님은 불만이셨다고요. 알도 표현이 안 돼있고. 우주가 나온 건 다 알에서 나왔는데 알에서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온 다음에 거기서 동서남북이 나오면 이게 다 삼각형들인데 이렇게 그려야지 원방각이 제대로다. 이렇게 주장하셨단 말이에요.

재밌죠. 근데 저기서 나온 유물이 어때요. 동그라미 네모랑 십자가가 나왔죠. 재밌죠. 이런 것도 이제 공부하면서 재미죠. 그래서 이 로고스에 맞는 연구를 하면요 매일 매일 자명해집니다. 로고스에 어긋난 공부를 하면 매일 매일 찜찜함이 커져가요. 혹시 삶이 지금 찜찜함이 커지신 쪽이면 뭐 우울증이건 뭐건 마음이 어떤 병을 가지고 우리가 탓하겠지만 근원적으로 저는 진리에서 어긋났기 때문에 찜찜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몸이 어긋났거나 마음이 어긋났거나. 그래서 진리를 자꾸 음미하고 여러분 진리를 연구하시는 중에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의 건강도 찾아질 거라고 봐요. 결국 의학이라는 것도 이 병이. 병 들어가는 원리를 生理 살아나는 로고스를 가지고 병 들어가는 로고스를 치유하는 거죠. 병 들어가는 로고스가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살아나는 로고스가 여러분 몸 안에서 구현되게 만드는 거죠. 결국 로고스의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안 분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지 않나. 저도 늘 아프면서 이런 얘기 하기는 찔리지만 마음만이라도 건강하게 관리하려고 노력. 이해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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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진리 속에서 힐링이 있지 진리랑 안 맞는 힐링이라는 건 그거는 그 그거는 그냥 잠깐 위안만 얻는 거지 일시적인 처방이지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라는 것도 우리가 다 아니까 천부경 수리 이런 게 어려워 보여도요 이걸 더 뭐가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제가 강의해 드린 수리철학만 아시면 죽을 때 까지 인간이 만든 철학은 거기서 더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걸 자꾸 연구하시다 보면 영감이 또 많이 오실 거예요. 진리에 맞는 공부를 하면 재미난 게 영감이 오구요 그 영감이 또 반드시 증거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계신 거예요. 잘못된 공부는요 어거지로 맞춰논 거기 때문에 계속해서 잘못 된 그 내 주장을 깨는 자꾸 증거가 나와요. 그럴 때 마다 그걸 변명하느라고 힘들어져요. 어거지를 억지를 부리고 합리화 하고 변명할 때 까지 하다가 여러분 어떻게 돼요? 더는 못 하겠다 할 때 수용이 일어납니다. 그 전에 미리 수용하면 좋고 진리를 많이 수용해 놓으면 여러분이요 공부 하시는데 엄청 편해요. 그래서 자꾸 더 밝은 쪽 더 자명한 쪽으로만 향해 가시면 여러분 절대 잘못 되지 않으니까 이런 철학 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시고 자명한 쪽으로 가고 있는가만 잘 점검해 보시면 여러분 그 선대 철학자들이 미처 못 밝혀놓은, 찾았더라도 말로 못 해놓은 것도 있을 수 있고 우주의 진리는 무한합니다. 로고스의 작용은. 이런 조합은 생각 못해봤을 수도 있어요. 과거에는. 요즘이니까 이런 조합이 되게 중요하게 드러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로고스의 수많은 조합은요 무한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요 끝없이 예전 철학자들이 다 캐서 남는 거 없을 것이다. 생각하시면 안 되고 철학은 뭐 배제하는 게 아닙니다. 물건이. 같이 쓰면서 그 분들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밝혔을 그거를 여러분이 밝혀내는 게 몫이에요. 이해되세요? 공자님이 지금 태어났다면 이 시대를 보고 뭐라고 했을까요? 다른 말을 했을걸요. 좀더. 그걸 여러분 입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게 여러분의 사명이기 때문에 그게 매 순간 지금 여기서 이렇게의 하느님이 되자는 얘기고 완벽한 9를 향해 가자는, 완벽한 건 10이겠지만 10을 최대한 구현한 9의 모습을 향해 우리가 최선을 다 하자는 그 천부경 철학도 결국은 그 메시지를 얘기하고 있으니까 여기서 더 열심히 살자는 결론이고 저는 그게 이 몽골족들은 그 철학이 맞지 열반으로 들어가자는 철학 별로 안 와 닿으실 걸요. 여기서 더 잘 살고 싶으시지 열반에 들어가서 나도 없고 남도 없는 그 세계 들어가고 싶으세요? 이게 좀 다릅니다. 그게 진짜 원하는 또 문명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문명으로 살아온 적도 없고요 그래서 전 세계에서 지금 대승 하는 데는 다 몽골족들이에요. 부탄 티벳 중국 한국 일본 대승 하는 데들은 다 몽골족이 하고 있습니다. 소승 하는 데들은 다 더운 나라들. 하도 더우니까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을 수 있죠. 이해는 해요. 이해는 하지만 이 부지런함을 생명으로 하는 몽골족들은요 사시사철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끝없이 변화하는 중에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더 중시합니다. 중용을. 그러면서 홍익인간. 남하고 나누려고 해요. 그걸 더 지상가치로 봐요. 내가 태어난 이유는 이거다. 라고 말하고 이 더운 나라 분들은 내가 태어난 이유는 여기서 도망가기 위해 태어났다. 여기에서 맺는 인간관계는 별 의미가 없다. 다 업보일 뿐 나는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발상을 갖고 있습니다. 빨리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한다. 완전히 다른 철학이니까 구분 하시면서 홍익철학의 근거를 천부경에서 찾는 그런 공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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