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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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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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5. 10. 10. 土.
게시일자 2016. 01. 05.
동영상 길이 45:00
강의 중 인용 도서 천부경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cEkh1YESEps



00:00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가 뭐 그렇게 수학을 가지고 진리를 설명하려고 했는지, 여기 지금 이렇게 無를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텅 비어있지만 고 놈은 반드시 하나로 작용을 한다. 근데 이 1이 결국 신이란 말이에요. 하느님이라구요. 우주의 뿌리다. 거기서 만물이 다 나온다. 근데 그 1 안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1 안에 하늘이 있고 사람이 있고 땅이 있어가지고, 여기다 1은 여기다 쓸게요. 고 안에 들여다 보면 세 기운을 가지고 있다. 우린 음양의 태극만 얘기하는데 우리 민족은 3태극을 얘기하는 겁니다. 3태극. 두 개가 또 싸우는 게 아니에요. 각각 또 접근하는 입장이 다른 거지. 그 하나 안에서 세 기운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보시면. 고 내용을 뭐라고 하냐면. 그런데 이 동등한 하나들인 셋은 하나가 그랬듯이 모두 텅 빔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것들마저도 결국은 0이 본, 이 본바탕이다. 요 얘길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하는 게요 요게 저 뭔 말입니까? 하늘이, 하늘의 하나. 요게 다 하나잖아요. 자. 보세요. 풀면 다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요게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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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라는 하나, 사람이라는 하나, 땅이라는 하나죠. 하나인 점에서는 다 똑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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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결국 그래서 이 동등한 위상 동등한 자격이긴 한데, 그 안에서 또 굳이 位相을 조금 나눠보자면 하나 둘 셋이 또 쪼개진다. 자 하늘이 무형이 먼저요, 유형이 두 번째고, 유형과 무형이 합쳐진 사람은 세 번째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란 점에선 사실 동등하다. 고걸 뭐라고 말씀, 밑에 있나요.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이렇게 말 한 거를, 하늘의 씨알이 되는, 하늘은 동그라미로 상징하죠. 하늘의 씨알이 되는 하나가 첫째고. 땅의, 네모난 땅의 씨알이 되는 하나가 두 번째고. 세모난, 세모인 사람의, 지금 이 만물의 대표라는 건 동물 식물도 요 세모에 들어가니까 그래요. 예. 대표가 되는 하나는 세 번째가 된다. 이것이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 사이에 존재하는 위상이다. 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다. 요게 이제, 하나의 씨알이 요게 지금 숫자로 말 하면 뭘까요. 1이죠. 요 1이, 제가 가운데 비워놓을게요. 0을 넣어 놀게요. 가운데 비어있습니다. 0이 1로 작용하는데 여기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늘이 나옵니다. 천. 요 하늘은 主宰天이라고 하는 하느님일 수도 있고, 하늘을 경영해야 하니까요. 현상계 안에 실제 많은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작용하는 건 안 보이지만, 무위의 작용을 해서 현상계에 춘하추동이 오게 만들고 만물이 팽창하고 수렴되게 만들고 다 하고 있잖아요. 실제적인 힘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하늘도 현상계 안에서 그 작용하는 어떤 힘들을 설명할 때 하늘도 반드시 설명을 해야 되는 겁니다. 분명히 다르지만. 그리고 자연천, 자연의 하늘도 있어요.

03:30

아무튼 실제 우주 텅 빈 공간도 만들어지고 요 안에 그 안에서 작용하는 어떤 의식적인 전지전능한 주체도 분명히 있다. 요건 황극의 영역이죠. 황극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요게 지금 요게 물질인데요 물질인데 이 물질과 제 마음이 이제 함께 작용하죠. 제가 요 마음을 가지고 요걸 어떻게 굴리겠다. 하는 마음도 내고. 이것도 우주의 구성요소지만. 예. 이 결국은 이 모든 게 마음이고 물질이고 간에 다 일정한 공식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는 지금 하늘이 계속 잡아주고 있어요. 지금 현상계에 안 보이지만 하늘의 작용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현상계를 설명할 땐 반드시 천지인을 같이 얘기하고 이 때는 이 천에는 하느님도 들어가 있다고 보셔야 맞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 하늘이 생기고. 그 다음에요. 하늘 안에 네모난 땅이 생깁니다. 땅이 생기고 그 다음에. 많이 옆으로 나갔네요. 자 이렇게 사람, 머리를 아래로 쳐 박고 있는 식물, 동물들이, 생명체가 태어나서 그걸 삼각형의 동물들이 채운다는. 그럼 요거 하나에 지금 다 들어있죠. 우주의 진리가. 예. 이렇게 보면 재밌어요. 인도 철학식으로 보더라도 이 무가, 텅 빈 브라만이 빠라브라만 해야 맞죠. 빠라브라만이 이 삼종 에너지. 사트바, 순수한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사트바. 라자스, 요동하는 에너지. 중간에서 위 아래로 요동하는 에너지. 땅으로 타마스. 땅에서 그런 어떤 탁한 에너지가 이 빠라브라만을 감싸면 고 안에 이제 여 지금 브라만은 여전히 브라만이죠. 그래서 이거를, 제약받은 빠라브라만은 그냥 브라만 이렇게 부릅니다. 이 제약받은 이 브라만을, 브라만이 제약 속에서 이 세 가지 작용을 통해서 이 비슈누 시바 또 뭐죠. 브라마의 작용을, 이 삼극의 작용을 가지고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었다. 요거를 인도식으로는 신을 만들고, 인간으로 대표되는 에고를 만들고 땅으로 대표되는 세계를 세계, 물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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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도 설명을 한단 말입니다. 요게요 저기 힌두교의 기본 어떤 철학이고. 그래서 힌두교는 아무튼 요 양반(1)이 아니면 우주가 안 나왔을 텐데. 해서 신을 좀 저주하는, 이 신이 없으면 우주가 안 만들어지고 안 돌아갈 거 아닙니까. 요걸 저주하는 그게 있고. 자 이거를 서양철학을 가지고 한 번 해볼게요. 서양 철학에서는 플로티누스가 신 플라톤주의자라고 그러죠. 플로티누스가 죽을 때 이런 말을 해요. 나는 내 영혼 안에서 발견된 걸 가지고 우주를 설명하려고 했다. 결국 플로티누스도 자기 내면에서 실험한 내용을 가지고 우주를 풉니다. 제가 얘기한 거랑 똑같은 접근법으로 우주를 연구했어요. 그래서 그 분이 알아낸 게 뭐냐면 가운데 텅 빈 거 있죠. 요거를 뭐라고 하냐면 일자라고 설명했어요. 일자. 하나. 우리 지금 천부경이랑은 이름, 네이밍 하는 게 달라요. 천부경은 이걸 무라고 했는데 플로티누스는 하나 그래버립니다. 하나. 왜냐면 요놈만이 진짜 하나니까. 지금 태극만 와도 음양이 쪼개지잖아요. 이걸 플로티누스가 다 알아요. 똑같이 명상체험 했으니까. 요걸 뭐라고 설명하는지 아십니까? 누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정신’ 그럽니다. 왜 그러면 이거 뭐냐. 일자랑 차이는 뭐냐. 일자가 혼자 있다가 일자가 자신을 여기 뭐죠? 여기서(일자를 둘러싸는 것) 일자를 느낄 수가 있죠. 여기서 일자를 반성하면서 누스가 됐다.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면서 누스가 됐다. 이렇게 됩니다. 즉 일자 안에서 음양이 갈린 거예요. 일자 하나가 둘로 갈린 겁니다. 그 안에서. 여전히 누스가 우주의 신이에요. 일자는 그 신성의 아주 본질이고 누스가 신성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돌아다보는 게. 이게 아주 정확한 설명이에요. 여러분이 있음만 있죠. 있음을 자기가 어떤 미묘한 에너지를 통해서 있음을 느끼면서 내가 있다. 라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나는 우주적인 나예요. 에고가 아니고. 참나에 대한 미묘한 체험이 같이 동반되는 상태를 태극 그러는 겁니다.

08:12

4선정에 들어가면 그 상태에 도달해요. 미묘하게 참나를 느끼고 있어요. 고 안에 사실 미묘하게 갈라져 있으면서 하나로 연결돼있어요.

08:22

요런 얘기도 이제 같이 체험해 보시면, 이거를 플로티누스가 체험한 거예요. 그래서 일자와 누스라고 딱 나눕니다. 일자와 누스를 나눈 다음에 그 다음에 보세요. 여기서 이제 우주가 나오죠. 누스가, 누스에서 이 황극에 해당되는 게 뭐냐면 세계영혼이 나와요. 우주를 경영하는 영혼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인간의 개별적인 영혼이 나오고 그 다음에 물질이 나와요. 이게 플로티누스의 流出說입니다. 원래 하나만 있었는데 여기서 유출되가지고 뭐가 흘러나, 유출은 흘러나왔다는 얘기예요. 누스가 흘러나오더니 누스에서 세계영혼, 우주적인 에고죠. 우주적인 에고는 이미 에고가 아닙니다. 우주가 나라고 여기는 그런 영혼이니까 우주의 영혼이 튀어나오더니. 이거는 신이에요. 전지전능하다는 얘기거든요. 전지전능의 신이 나오더니, 전지전능자비 하면 딱 맞아요. 지혜와 능력과 이런 덕까지 갖춘. 선하고 지성을 갖추고 있고 선한 그 마음을 갖고 있고 능력을 갖고 있는 이 존재가, 그래야 영혼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순수정신이 영혼으로 변하더니 거기서 개별 영혼들은 뭐죠? 지성 의지 감정을 갖고 있죠. 전지 전능 자비라곤 못하고.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갖춘 영혼이 나오고 거기에서 물질이 나와요. 이렇게 유출돼 나왔다는 게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입니다. 다 똑같은 소리 하고 있다는 거 아시겠어요? 뭐라도 이렇게 다를까 해서 제가 들어다보면요 플로티누스 전집을 제가 쭉 읽는데, 플로티누스 설명이 너무 기가 막혀서 무극 태극 황극을 제일 잘 설명한 말 중에 하나예요. 플로티누스 말에 제가 뭐 토 달게 없더라구요.

10:04

일자 설명할 때 순수한 존재, 누스 설명할 때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 보면서 이렇게 성립된 그러면서 원주, 원의 중심인 상태. 그래서 플로티누스 어떻게 설명한지 아세요? 일자는요 원의 중심 그 자체. 누스는요 일자가 반성해서 난. 누스는 원의 중심자리. 영혼부터는요 영혼부터는 여기서(원의 중심자리) 이 점 안에 이 원주까지 이제 원주에 이르는 수많은 선이 이제 내포된 점. 이렇게 설명해요. 그냥 있음, 만물의 있음, 만물과 연결된 수많은 그런 선을 갖고 있는 있음. 이런 식으로 해서 설명까지 해요. 그러니까 이게 철학자들은요 다 이게 지금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하나. 여러 개를 포함한 하나. 누스는. 그리고 이제 영혼은 진짜로 이제 그 여러 개와 다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 그럼 이제 영혼까지 내려와 버려요. 그럼 이게 무극 태극 황극입니다. 일자 누스 세계영혼이 무극 태극 황극이랑 정확히 일치해요. 그래서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근데 그분 공부법이 뭐냐. 우주를 가 봤냐. 아니에요. 이분도 무아지경에 삼매에 든 체험이 일생에 몇 번 있었대요. 이 분도 늘 들었던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밀리지 않는다니까요. 이런 위대한 철학자도 내 일생에 세 번인가 몇 번 크게 삼매에 들었. 누구는 그 세 번 정도 삼매에 든 것만으로 철학을 만들어요. 체험을 정확히 한 거죠. 누구는 백날 삼매에 들어도 몰라요. 아까 좀 고요했다가 시끄러웠다 이것만 알아요. 마음이 고요했다 시끄러웠다. 예. 아무튼 이게 짐 안타깝죠. 그래서 이게 그래서 결국 그분들도, 서양 철학자들 제가 다 뒤져봤단 말이에요. 얼마나 공부했는지 볼려고.

12:04

배울 거 있으면 배울려고. 이 분들도 삼매에 자유자재로 드는 분들은 드물어요. 철학자들이 한 번의 찐한 체험에서 엄청 정보를 뽑아내는 분들이지 삼매를 자유롭게 드는 분들은 아니에요. 그런 정도가 서양에서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됩니다. 그럼 여러분이 삼매에 늘상 들고 참나에 대해서 그 사람들보다 더 자명한 정보를 얻어 가면 그 전혀 겁낼 거 아니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뭐 제가 너무 긍정적으로 얘기한지 모르겠습니다만.

12:36

아무튼 실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아무튼 요 내용들도. 내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거 재밌는 현상 아니에요? 그래서 요거 한 번, 방금 요게, 사실은 이게 진짜 나죠. 나라는, 있음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이게 진짜 나긴 나예요. 그런데 요 미묘, 더 뭔가 미묘한, 나에도 층차가 있는거죠. 있음으로밖에 말 할 수 없는 나를 이 놈이 의식하는 겁니다.

13:10

내가 나를 보고 있는 상태.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가지고 억지로 구분할 때 내 안의 있음을 있음을 보면서 내가 있구나 하고 있는다는. 나가 나를 보고 있는 상태예요. 그러니까 보는 주체가 여기(겉에 있는 거) 있고 객체로서 나가 느껴져요. 근데 이놈들이 통합돼 있단 말이에요. 한 덩어리로. 내가 나를 보고 있으니까 나눠지지 않죠. 남이라는 게 안 끼니까 우주에 나 밖에 없는 상태예요. 이때가. 내가 나를 보고 있어요. 미묘한 에너지로, 결국 이 들여다보면 아까처럼 이 나라는 놈이(속에 있는 거) 결국은 알아차리는 주첸데 요놈이 미묘한 에너지를 통해서 나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내가 나를 보고 있다고 느껴요. 그런데 통합된 상태예요. 요게 태극 상태예요. 정확하게.

14:01

요런 얘기를 어서 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게 제일 정확한. 내가 나만 보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다른 존재를 보고 있지 않아요. 내가 나만 보고 있어요. 여러분이 가장 손쉽게 참나의 세계에 들어가는 비법은 내가 나만 보면 돼요. 그래서 제가 몰라 괜찮아, 주변을 안 봐야 되니까 주변에 대해서는 몰라 하고 부정해버린 다음에 내가 존재한다는 그 느낌에만 집중하시라는 게 이거예요. 내가 있다는 거만 보고 있다 보면 이제 남이 있다는 걸 못 느껴요. 내가 나만 보니까 그게 우주의 전부가 되고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 돼요. 그 상태가 지금 정확히 표현하면 이거예요. 내가 나를 느끼고 있어요. 미묘하게. 근데 그 결국 미묘하게 느끼고 있단 얘기는 더 본체가 있단 얘기죠. 그러니까 무극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어요. 근데 내가 미묘하게 나를 느끼고 있어요. 순수한 존재감을. 순수한 존재감을 내가 느끼고 있어요. 미묘하게. 요게 4선정 상태. 태극상태예요. 무극상태는 내가 존재한다는 그 느낌 자체가 무극인데 결국 우리는 무극으로만 존재할 순 없다는 겁니다. 멸진정에 들어가면 무극상태, 4선정은 태극상태. 이렇게 구분하긴 하지만 실제 멸진정이라 하더라도 무극 자체만은 아니고 아까 얘기했죠. 더 비활성화된 상태로 사실은 무극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맞거든요. 그러니까 멸진정에서 나오면 고스란히 다 나오죠. 다시. 그대로 다 나옵니다. 어디 간 게 아니라. 진짜 끊어진 거라면, 예. 무극에 안주할 수 있어야 되지만 안 끊어졌기 땜에 그대로 다시 나와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겁니다. 소승철학이 잘못돼 있다는 게 아무리 들어가도 다시 나오게 돼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열반에 들어가서 끝낸다는 겁니까. 이 힘을 이해 못 하는데. 그 철학을 아무리 뒤져도 현상계 카르마에 대한 무상성만 얘기하지 지금 이 힘에 대한 얘기가 없어요. 근원적 우주가 갖고 있는 이 힘에 대한 설명이 없이 안주라는 거는 불가능하단 말이죠.

15:58

이걸 당연히 끊어진다. 라고 전제해 버리고 들어가 버리면. 힌두교는 요걸 설명은 하는데, 끊어진다. 라고 전제하고 시작된단 말이죠. 저거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하고 시작하는데 살아서 죽을 때 까지 못 없앴던 분이,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게 믿기는 얘기냐 이거죠. 저는 그래서 자명하지 않다는 게 제. 저는 제가 실험해서 자명하다 하는 것만 자명하다고 인정해야지 남의 말 듣고 그러리라 라고 믿는다는 건 안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연구한 나의 속성. 내가 있음의 속성. 태극의 속성 무극의 속성은 다 연구해 봐도 없어질 물건이 아니에요. 두 개 다 절대계기 때문에. 내가 없앨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이미. 그걸 없애겠다는 건 뭐죠?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엄청난 열망으로밖엔 저한텐 안 들려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여긴 지옥이다. 난 정말 못 온다. 예, 이렇게 이런. 어떤 탐진치가 꼈으니 저런 왜곡된 데이터 분석이 나온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밖에 생각 못 합니다. 그래서 제 얘기가 석가모니에 대한 비판도 돼버리거든요. 법구경 슷타니파타에 계속 가능하다고 한 걸 제가 지금 안 된다고 얘길 해야 되니까 제 입장은 되게 지금 난처한데 그래도 제가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 제가 아무리 실험을 해도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기 땜에 저는. 제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여지는 두시되 제 입장은 단호하게 그건 잘못 된 결론 같다. 라는 게 제 입장입니다. 어떤 방편 때문에 그렇게 얘기했을 수도 있으시겠죠. 아무튼 고 입장 자체는 제가 비판하는 겁니다. 그래야 제가 이 주장을 펼 수가 있죠. 천부경식의 이런 주장을. 되게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요 들어가면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요게(바깥 거) 안 없어지면요, 근데 지금 힌두교는 그래도 여기에 대해서 분석하면서 뭐라고 하는데 슷타니파타나 법구경을 보면 요 내용이 없습니다. 즉 오온만 떠나면 그냥 열반에 드는 걸로 설명되고 끝나요.

17:53

그러면 이게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요 태극이 있으면 다시 나오게 돼있다는 걸 힌두교는 알아요. 그러니까 자꾸 태극을 공격합니다. 근데 초기불경에 태극 자체에 대한 비판, 그러니까 이런 태극상태에 대한 얘기 자체가 없잖아요. 오온 넘어가면 그냥 끝나는 걸로 얘기가 되기 때문에 저는 더 그 부분에 대해서 의심하시는 게 옳다는 겁니다. 열반에 안주한다는 게 쉬운 얘기가 아니에요. 힌두교는요 이거에 대해서 진짜로 우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치밀한 논리가 다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느끼는 이런 거 힌두교 경전에는요 설명이 간간히 나옵니다. 요 부분에 대해서. 왜냐 요 진짜 이것까지 없애야 되거든요. 근데 그런 분들마저 논리의 비약이 있어요. 살아선 안 없어지는데 죽으면 없어져. 라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고 부분까지도. 근데 안 없어진다. 라고 전제하면 대승불교가 펼쳐집니다.

18:44

이게 안 없어진다. 가 대승불교예요. 절대. 이걸 아뢰야식이라고 부릅니다. 태극의식(?). 아뢰야식은 안 없어진다. 근데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안 없어진다. 하며는 나는 열반에 들 수가 없게 되고 해탈한다고 해도 오히려 더 전지전능한 존재로 거듭나지 없어질 순 없다는 이론이 나와요. 이제 이러면서 논리가 대승, 이제 또 나뉩니다. 전지전능해질 수 있다.랑 아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의미가 있기 땜에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10지보살까지 가는 게 목표다. 아니다. 아예 전지전능해질 수 있다. 제대로 없애면. 아니다 완전히 없앨 순 없다. 우리의 그 이런 이 카르마를 다 우리가 지울 수 없기 때문에 태극의 작용이 카르마를 통해서 표현되는 모습이, 그래서 중생성이 사라질 수 없다.랑 카르마를 다 지울 수 있기 때문에 태극의 모습이 온전히 나오면 우리도 전지전능해진다. 우리 안에도 똑같은 전지전능한 신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렇게 두 파가 나뉘는 것도 제가 늘 강의중에 많이 말씀 드리는 내용입니다. 요런 좀 이상한 얘기까지 좀 들어와 봤는데 이해되시죠? 이런 것까지 정립을 안 하고 이렇게 함부로 우리가 마음에 대해서 뭘 연구했다 말 할 수가 없어요. 들어가 보면요 되게 자명하게 쓰여진 거 같지만 그 논리 안에서는 들여다 보면은 많은 허점이 나옵니다.

20:06

근데 그 허점에 대해서 제가, 어 이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사해 보면 그냥 막연히 믿고 넘어가요. 예전의 전통들을. 저는 제가 실험해 보고 아닌 거 같으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또 논리를 전개해 봅니다. 그러다가 얻은 것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제 얘기 다 믿지 마시고 또 참고해 보시고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까지 또 해보죠. 一積十. 일,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된다. 鉅, 이것은 결국 無를, 무를 다듬었다는 얘깁니다. 無를 다듬어서, 이건(櫃) 상자궤잡니다. 상자로 만든 거다. (鉅無櫃化) 요것만 함 볼까요?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됐다. 결국 1이라는 숫자가 성립되면요 그대로 10까지 이미 1 안에 내포돼 있습니다. 지난번 제가 설명 드렸죠. 그 정육면체 갖다. 가져다가 설명 드렸죠. 정육면체가 하나다. 라고 하는 순간 이미 하나에는요 위아래 음양이 들어있고, 위아래 중심이 들어있고 셋이 숫자가 셋이 나오고, 동서남북 넷이 나오고, 그럼 또 그 중심까지 다섯이 나오고, 정육면체니까 여섯이 나오고, 꼭지점이 여덟이 나오고, 고걸 또 일곱으로도 말 할 수 있구요 정육면체랑 중심을 합하면. 그리고 여덟 꼭지점과 중심을 합하면 아홉이란 숫자가 나와요.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10이란 숫자가 또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가 시작되면 무조건 거기에는 열까지 가야 된다는 게 예정돼 있는 거죠. 여기 담배꽁초 하나가 쌓였다. 곧 여기에 이제 산이 만들어질 거라는 게 이미 예정돼 있죠. 거친 비윱니다만.

22:01

즉 하나가 시작됐다. 그런 느낌이에요. 이미 열이 거기 들어있어요. 열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원리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나는 무조건 10으로 쌓인다는 게, 왜 제가 10을 완성이라는 의미로 풀었냐면 지금 10에서 끝날 일이 아니잖아요. 원래는. 100 1000 10000 한 없이 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10으로 끝냈다는 건요 10에, 10까지만 가지고 지금 우주를 분석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거든요. 그러면 마지막 10이 갖고 있는 의미는 완성의 의미거든요. 이 논리대로 지금 모든 동서양 경전이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수리는요 언어, 우리가 쓰는 언어보다 더 추상적이에요. 수리는. 모든 경전을 수리로 풀면 다 똑같은 원리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이 10이라는 거는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고 이 10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게 이러다 보니까 화엄경도 다 열, 10, 레벨도 10레벨, 화엄경 안에 있는 그 모든 설명을 열 개로 합니다. 열 개로. 열 개 단위로. 하나가 쌓이면 열 개가 된다는 원칙을 알고 계세요. 그 로고스대로 맞춰서 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동양의 모든 경전들도 궁극의 완성은 9고, 현실계에서 궁극의 완성이라는 거는 결국은 없는 거니까 상대적으로 궁극의 완성은 9고. 진짜 완벽한 완성, 궁극의 완성 10은 현상계에 없다. 그래서 10을 안 씁니다. 9만 씁니다. 그래서 10까지 쓰는 그 이유도, 9까지에서 끝내는 이유도 지금 결국 다 연결돼 있는 공통의 원리에서 이제 나온 거니까 알아 두시면. 그래서 바둑도 9는 入神의 경지 9. 그래서 9단에서 끝이에요. 그래서 원래 화엄경도 9단에서 끝내야 됩니다. 9. 10이란 건 현실에 없으니까. 근데 이게 모든 걸 10으로 나눈 거는 가장 이상적인 목표로서. 자. 궁극의 목표로서 10란 건 또 제시 돼야 돼요. 그래야 현상계가 힘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쌓여서 10이 된다는 거는요 저기 하도를 보면요 五十土 三八木 삼팔은 木이구요 二七火 四九金 一六水 자, 水生, 가운데 土고. 水生木 木生火. 여름에 뜨거운 거, 겨울에 추운 거, 봄에 나무가 잘 자라는 거, 가을에 서늘한 거. 이 중심이 土. 이렇게. 토가 음과 양이 다 같이 들어있죠(+&- → ±). 균형을 상징합니다. 토는. 그래서 요렇게 들어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10이 이 땐 들어있어요. 이거는 현실에 없는 순데 들어있어요. 완성의 의미로.

24:34

그래서 하도에는 10이 들어있는데. 낙서를 만들 때는 저기 3 8 이렇게 하구요, 1 6. 2 7하고 4 9가 여기 화랑 금이 바뀌어요. 그래서 뭐 금화교역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을. 그래서 바꿉니다. 왜냐면 그래야 여기 1 (9), 4 (6) 합치면 10이 되거든요. 2 7, 가운데 5. 이러면 양 쪽을 합치면 10이 돼요. 이게 마방진이라고 서양에 전해져서 마방진이 되는데 이게 원래 낙서 홍범구주의 원리거든요. 낙서의, 동양의 철학에서 나온 겁니다. 이 낙서의 원리에서는 10이 없어요. 요게 상징하는 게 큽니다. 요거는(河圖) 형이상학, 선천수구요 선천 프로그램이고, 이건(洛書) 우주가 돌아가는 후천 프로그램이거든요. 후천 프로그램에선 10이 없어요. 그런데 더하면 10이 돼요. 양쪽을. 10이 내재돼 있어요. 이게 상징하는 게 뭐냐. 선천적으로는요 인간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을 때 완성되는 인간은 지덕체가 완성된 모습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거예요. 후천에서는요 그게 없다는 거죠. 후천은 10을 목표로 끝없이 나아가는, 현실은 끝없이 무상하게 변하니까 나아갈 뿐이지 완성이라는 게 없기 땜에, 그렇지만 10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땜에 그 안에 영원한 목표로서 10은 또 필요해요. 현상계에. 아까 현상계에 하느님을 넣어서 계산해야 된다고 하듯이 지금 이 현상계에선 10도 넣어야 돼요. 사실. 그렇지만 현실에서 10은 발견되진 않는다는 거죠. 요 차이 아시겠죠. 여러분이 완벽한 어떤 바둑의 달인이 되려고 목표를 세우면 고 원리가 10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이 도달할 수 있는 건 9예요. 왜냐. 오늘 연습하면 내일 좀 더 거기 다가가는 거거든요.

26:11

근데 오늘이 완성이냐. 오늘 밤에 연습 좀 더했더니 내일 좀 더 다가간단 말이에요. 이 무상한 현상계에서 완성이라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10은 그대로 0이랑 통합니다. 이건 무극이에요. 이거는 완벽한, 이 완벽한 완성이라는 거는 우주의 정지고 그건 없는 거기 때문에 현실에 없는 거기 때문에 이건 무극의 세계라고 이 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 예전에 그 정역 쓰신 김일부선생같은 경우 一太極 五皇極 그 다음 무극을 뭐로 했을까요? 十無極. 10을 무극으로 봐요. 즉 10은 0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현상계의 수로 보지 않아요. 하지만 10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해요. 거기가 우리가 향해 가야 할 목표기 때문에. 그런데 완벽해진다는 건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거죠. 그럼 현상계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한 완성은 현상계에 없어요. 그거는 무극, 무의 세계지 그건 현상계엔 없다. 요렇게. 이해되시죠. 그래서 결국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됩니다마는, 결국 이 모든 거는요 보세요. 텅 빈 무에서 예, 1이 나오고 그 1에서 우주가 다 나왔어요. 1에서. 이렇게 1이 우주를 경영할 때 5란 숫자가 나오죠. 동서남북의 중심이니까. 이렇게 경영하고 있는데 결국은 그, 그래서 이 현상계에서 이 10까지 다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하나에서 5가 나오고 입체가 되고 이렇게 하다가 10이 된다고 하더라도, 입체가 나오고 또 뭐가 나오죠? 앞에 전후좌우가 돼서 상하가 돼서 팔방이 되고 9가 돼서 완벽해지면 10이 되는데 그 모든 게 결국은 無를 다음어서(鉅) 상자화(櫃化) 한 거다. 무를 다듬어서 빚어낸 거예요. 다. 모든 변화는 무를 빚어서 만들어 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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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쌓여서 열이 된다. 이 열은 모든 존재의 완성이자 종식이 되니 일체 만물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 모든 존재는 탄생부터 그 완성을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공통의 원리다. 하나 그러면요, 그러니까 하나인 태극은 창조가 본성이라는 게 뭡니까. 하나 안에 이미 열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게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하나에서 절대 못 멈춘다구요. 하나만 있으면 반드시 우주는 펼쳐집니다. 그래서 힌두교에서 이 하나를 싫어하는 거예요. 에고 이전에 이 하나가 우주를 망친다. 라고 본거예요. 근데 불교는 이런 설명이 없이 그냥 오온만 넘어가면 열반에 들어갑니다. 하고 끝내버려요. 되게 간단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부분에 대해 보강하려다가 唯識學이 나와요. 대승불교들이 나와요. 더 분석해 들어갔더니 이제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태극의 영역이 나와요. 그래서 내 모든 마음의 원, 마음의 현상들 육근과 오온을 경영하는 더 근원적인 의식에 대한 탐구가 일어나는 이유가 힌두교의 그런 설명의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그런 연구가 된 게 그 부분을 설명 안 하고는 뭐가 열반에 대해서 확실한 설명이 안 된다는 거를 대승불교에 오면서 알아낸 거예요. 연구해 봤더니 결론이 다르게 나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열반에 들어가고 끝난다는 말을 못 하게 된 거예요. 이해되시죠. 하나만 있으면, 아뢰야식이 영원하면 무조건 우리 우주는 펼쳐지게 돼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되면 오히려 더 완벽한 오온을 갖추게 된다는 주장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게 완전히 완벽하면 대승기신론 쪽이고 중생성을 가지면서 완벽하면 저기 화엄경 쪽이지만 차이는 있지만 열반에 가까이 갈수록 더 완벽해진다는 발상이, 왜 소승하고 완전히 뒤집어진 소리가 나왔냐. 결국 이 태극에 대한 연굽니다. 요게 아뢰야식에 대한 연구예요. 대승기신론 그 소를 낼 때 원효스님도 이걸 아주 강조합니다. 아뢰야식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30:03

청정해질 뿐이다. 청정해질수록 전지전능해진다. 그럼 이게 완전히 논리가 달라져요. 그럼 열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요. 힌두교는 그걸, 힌두교랑은 하튼 뭔가 좀 미묘하게 서로 입장이 다르면서도 같은 걸 연구하고 있죠. 소승불교 힌두교 대승불교. 입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무와 1과 그 이 에고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천부경이요 시작부터 계속 그 얘기만 해요. 그러니까 같이 연구해 보면 재밌죠. 이 다 무를 빚어서 만들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힌두교 공부한 분들은 무릎을 치면서 여기서 더 안 읽겠죠. 이거 알았으면 이제 무로 빨리 들어가자. 이제. 모른다만 하고 있자. 이렇게 나오겠지만. 예. 이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태극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나면 요놈은 멈출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게 나와요. 끝없이 창조를 향해 간다. 완성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게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요 1부터, 보세요. 1 2 3 4 5를 先天數, 生水라고 합니다. 6 7 8 9 10을 後天數, 成數라 그래요. 이 때 10은 완성수라기 보단 아무튼 이제 生에 대응한다는 입장이니까 요건 그냥 좀 후천적인 그 형이하의 수로 봐주세요. 10이라는 것도 가능하니까. 반드시 완성의 의미만 갖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10도 있고 11도 있듯이 열 개, 현상계에서 열 개를 상징하는데. 자. 그러면서 동시에 또 어떨 때는 완성으로 봐주는 게 맞기도 하고. 그래서 이 쫌 여유 있는 시각으로 함 보시면 선천의 이 생수들이 후천적으로 여기다 +5만 하면 6 7 8 9가 돼요. 그런데 이 (10을) 완성이라고 만약에 보자면, 원래 생수 성수 할 때는 그냥 5에다 5 더한 수일뿐인데 만약에 여길 완성이라고 보고 빼고 보면요 6 7 8 9가 되게 중요해 집니다. 왜냐면 여기는(1~5) 선천수예요. 즉 이 형이상학적인 원리들의 수고 이 원리가 현실에 구현된 게 6이에요. 그러면요 6은요 끝없이 7로 나아가려고 할 거고 7은 8로 8은 9로, 이렇게만 설명해 볼 게요. 그런데요 그러면요 10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32:13

끝없이 영원한, 영원한 그 9죠. 아무리 끝에 가도 9예요. 그런데 그 안에 들여다 보면은 6이 음의 덩어리니까, 그리고 9가 太陽이고 7은 작은 양이고 8은 적은 음이니까. 이렇게 나눠보면 끝없이 6 7 9를 향했다가, 또 다시 8로, 8을 거치며 6으로 쪼그라들었다가 끝없이 돌고 돌 뿐입니다. 여기서. 돌면서 끝없이 6 7 8 9를 향해서 계속 가는 거죠. 10을 향해서. 한없이 10에 다가가는 거죠. 현실에서 6 7 8 9의 변화가 결국 6은 겨울이니까 藏 감출 장, 7은 태어날 생, 9는 장성할 장, 8은 거둘 수. 生長收藏을 봄 여름 가을, 이거는 겨울이죠. 여기는 봄이고 여긴 여름이고. 6 7 8 9할 때 여기(7과 9 사이)도 8이 작용합니다. 다만 8이 제대로 작용할 땐 가을이라서 여기다 써 놓은 거예요. 6 7 8 9 했다가 9가 다시 8로 무너져 내려요. 그래서 또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펼치고 접고. 그래서 6 7 8 9만 계속 돌아요. 결국엔 현실은. 춘하추동 춘하추동. 형이상학적인 숫자는 그 베이스로 존재하는 거고. 우리가 현실에서 체험하는 변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하면서 한없이 10을 향해 가요. 이게 화엄경에서 말한 이게, 결국 대승 철학도 이거예요. 전 그래서 완벽해지고 끝나자는 대승철학은 안 믿습니다. 대승기신론, 楞伽經에서 말하는. 끝없이 변하는 게 우주의 본 식이다. 하는 게 제가 천부경 공부를 통해서 아주 확고하게 제가 얻은 신념이에요. 그래서 제 안에서 연구해 봤을 때 이 하나는 끝없이 다섯을 통해, 다섯으로 작용하면서 5황극이 돼서 현상계를 경영하는데 경영이란 건 완성이 없단 말이에요. 끝없이 변하는 속에서 경영해가는 게 본성이면 영원히 창조하고 영원히 경영한단 말이에요. 그럼 어느 날 완성돼서 끝난다는 거를 받아들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34:12

그래서 저는 그걸 안 받아들이고 보니까 제 눈에, 이걸 더 먼저 정립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화엄경이 마음에 들더라는 거죠. 여러 경을 봤는데 양에 안 찼는데 화엄경을 보니까 10지보살을 설명하면서도, 아직도 멀었다. 영원히 나아가야 된다. 하고 끝내더란 말이에요. 아 이 양반이 알고 있다. 느낌을 알고 설명한 거다. 그 때 10단은 명예지 결국은 이 9단 중에, 우주에서 9단 중에 제일 동급최강의 9단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이 10단인 거예요. 그러지 그 사람도 결국 실지 본질은 9단이기 땜에 영원히 나아가고 있을 뿐인 거예요.

34:49

요게 화엄, 천부경에 너무 설명이 잘 돼있어서 화엄경하고 너무 그대로 맞아요.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겁니다. 1부터 10이라는 걸로 모든 걸 설명하는 것도 화엄경 철학이고. 어떻게 이렇게 신묘하게 맞냐는 거죠. 우주의 진리가 그러니까 뭐 그러겠죠. 그래서

35:06

하나는 자연히 존재의 완성인 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목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삼는다. 그래서 그러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완벽한 완성의 실현은 일체만물의 종식과 통합이 되니 텅 빔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열은 곧 0인 것이다. 자 숫자로 봐도 재밌어요. 장난입니다만 10이란 숫자를 분석해 보면 하나가 결국은, 하나가 0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기억하시면 재밌을 거 같아서. 10이란 숫자는 결국 0이다.

35:37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좋을 거 같다. 왜냐 그 그분 그러죠. 십무극 이렇게 썼단 말이에요. 예전 철학자들도 역학자들도 10은 무극이다. 완성은 결국 없는 거랑 똑같다는 겁니다. 없는 거다. 모든 존재의 뿌리인 하나가 그러듯이 모든 존재의 완성인 열에 이르는 모든 존재들 또한 결국 텅 빔을 다듬어서 빚어서 만든 거다. 여기까지 아예 해 볼까요?

36:01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 그건 다음에 할까요? 여기 이제 다음에 할 텐데요 미리 예고만 할게요. 하늘도 셋이 있죠. 땅도 셋이 있죠. 사람도 셋이 있죠. 그 중에 둘씩 둘씩만 취하며는요 숫자가 뭐가 나오죠? 6이란 숫자가 나와요. 근데 6이란 숫자는요 6 7 8 9 지금 요 얘기만 좀 더 하고 제가 끝내면요, 앞으로 장차 이제 6 7 8 9 얘기를 많이 할 텐데 6은요 겨울이니까 씨알 상태예요. 씨알. 7은요 씨알에서 싹이 난 상태예요. 8은요 이제 이게 나,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싹이 나서 끝없이 가지 치는 이 분열이 8이기도 해요. 9는요 이제 아주 장성해서 꽃 피고 열매 맺고 막 하는 겁니다. 아 열매까진 아니고 열매는 다시 쪼그라들어야 되니까 꽃피고 막 잎사귀 무성한 거예요. 그리고 이제, 그러면 이제 다 했는데 가을은 또 뭘로 해야 되냐. 가을은 다시 8로 설명해야 좋거든요. 그러니까 요놈들이 다시 가지만 앙상해지면서 쪼그라들면서 열매 맺는 현상을 8로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겨울은 6이 대표, 봄은 7이 대표, 가을은 8이 대표, 여름은 9가 대표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렇게 설명해요. 근데 재밌는 게 6이라는 숫자가 한자로 六 그러죠. 원래 원형이 집이에요. 집모양이에요. 집 안에 뭘 쌓아놓고 밖으로 안 내보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겨울을 대표합니다. 6이라는 숫자가. 그래서 이걸 태음수라고 그래요. 가장 음한 수. 7은요 소양, 양이 이제 막 작지만 양이 탄생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7이란 숫자가 보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력을 써 놓은 겁니다. 그림이. 8은요 쪼개진다는 거예요. 만물이. 가지치기도 쪼개지는 거지만 여름을 지나서 다시 쪼개지면서 낙엽지면서 분열되면서 쪼그라드는 것도 8이에요. 9는요, 이겁니다. 손이 최대한 구부릴 데 까지 구부린 거예요. 갈 데까지 간 궁극의 숫자라고 해서 9 그럽니다. 10을, 10은 그냥 완결된 하나로만 하지, 이건 현실에서는 의미가 없는 수라는 겁니다. 아주 완결된. 형이하의 10은 있겠지만 형이상학적, 이제 우리 현실에서는 뭐 열 개 열 한개 다 있겠지만 이게 수의 원리상 형이상학적 원리를 갖고 있는 10이라는 거는 완성을, 하나의 완결을 뜻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그 10이 없다. 요 정도 아시겠죠.

6 7 8 9가 돌고 돕니다.

38:27

근데 이제 이렇게 해서 현상계에서 6 7 8 9가 돌고 돌면서 우리는 현상계에서 만나는 거는 6 7 8 9예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러니까 천부경에서 뭐라고 설명했습니까. 뒤에. 三大三合六 生七八九. 결국은 천지인 세 개가 둘씩 둘씩 합쳐져서 6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만물의 씨알이 나오면 6 7 8 9. 끝없이 탄생하고 소멸되면서 6 7 8 9로 돌고 돈다는 얘길 하는 겁니다. 요거 한 번 재미로 함 보세요. 한문으로요 一 하면 이게 진짜 한문하고 되게 비슷해서 그래요. 한문하고 아라비아 숫자랑. 1. 二, 二 빨리 써보세요. (2) 두 점을 찍은 겁니다. 三은요. (3) 석 점 찍은 거예요. 四는요. 사방으로 찢어졌단 뜻이거든요. 그럼 이게(4) 뭡니까. 동서 뭐죠. 동서남북 딱 되죠. 이 되게 의미가 비슷하죠. 五는 이제 하늘과 땅 사이를 가운데서 중재한다는 건데 어떻게 신기한 게 이것도 아무튼 이거 비슷하죠(5는 가운데를 한 번 지나감). 요거는(5) 어거집니다. 근데 모양이 왜 이렇게 만들어 진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왜 닮았어요. 6은요. 아주 밑으로 쪼그라져 있죠. 6의 반대가 9가 되죠. 太陰數 太陽數인데 왜. 신기하지 않아요? 6과 9가 주역에도요 주역은 아예 陰爻는 6이라고 부르고 陽爻는 9라고 부릅니다. 初六 그러면 첫 번째 있는 음효. 그쵸. 재밌죠. 九五, 다섯 번째 있는 양효. 그래서 6과 9로 음양을 대표하는데 지금 신기하게 두 개가 서로 딱 반대되는 형상을 하고 있어요. 7은요 9보다는 좀 뭔가 밖으로 표현이 작고 9는 밖으로 뭔가 표현이 크고. 6은 음으로 말렸고. 八은요 요건 ‘쪼개다’죠. 동양에서. 8 숫자는요. 두갤 딱 쪼개 논 겁니다.

40:26

재밌죠. 이건 뭐 어디다 발표할 건 아니고. 제가 이 공부하다 보니까 이상하게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요. 이것도 우주의 섭린가 싶게. 동서양이 숫자를 쓰는데 어떻게 신기하게 비슷하게 쓰고 있다는. 그 안에 이미 철학들이 들어있어요. 6하고 9가 대표, 6하고 9가 서로 정 반대 관계에 있다는 게 이미 들어있죠. 7은 9만 못한 양이고. 6은 아주 말렸는데 8은 이제 쪼개지고 있는 모습이죠. 덜 음이고. 이게 이 재밌는 거예요. 한자로 가지고 분석해도 재밌고 숫자로 분석해도 재밌고 아라비아 숫자를 가지고 또 따져봐도 재밌고. 아무튼 이 원리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라는 걸 보면서 1부터 10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좀 묵상을 많이 해보시면 10을 완성으로 놓고 연구해 보면요 여기에 인간의 영성 레벨의 진화도 1부터 10으로 설명이 다 됩니다. 그게 화엄경 10지 체계예요. 화엄경 십지품 강의, 제 강의 들으시면서 천부경이랑 같이 보시면요 정확히 맞게 돼 있어요. 그러면 1에서 시작 된 영성 공부가 언제 좀 볼만하게 될까요? 7단 됐을 때. 그래서 화엄경에서 7단부터 사람 노, 사람답다. 이제. 이제 번뇌의 진흙탕에서 갓 빠져 나왔다. 하는 게 7단입니다. 재밌죠. 8단 되면 8방으로 노련해지고. 요렇게 돼있어요. 어린아이도요 일곱 살 돼야 얘가 자아가 형성됩니다. 그럼 이제 못 볼 꼴이 되죠.

42:00

에고가 이제, 역량은 딸리는데 나도 이제 군주다. 하고 주장하니까. 이제 주변에 좀 힘들어 지는 게. 일곱 살은 좀 힘들어 한다 하는 게. 일곱 살이 딱 자아가 이제 에고가 전후좌우상하를 갖췄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때부터 예전에는 일곱 살 지나서 이제 하나가 또 완결됐으니까 학년을 바꿔줘요. 어디 보내요. 소학에 집어넣어요. 예전에. 여덟 살에 소학 갔다구요. 여덟 살 들어가 또 일곱 수를 지내며는 열다섯 살 쯤에 또 대학에 집어넣었다구요. 예전에. 고 숫자대로 사람을 키웠습니다. 지금도 비슷해요. 고 수리대로. 재밌죠. 고 때쯤 돼야 에고가 변해요. 그러니까 뭐든지 한 7년 해야 여러분 7년 하면요 거기서 전후좌우상하가 나옵니다. 열심히 하면 더, 성과는 다르겠지만 아무튼 7년 정도 하면 뭔가 전후좌우상하가 보여요. 한. 그래서 8년 9년 되면 이제 노련해집니다. 10년 되면 또 하나의 완성이 지어져요. 그러고 또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고. 요런 수리들이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됩. 그래서 열 살 스무 살 삼십 살이 다 달라요. 그게 단 이제 올라가는 거예요. 1단 2단 3단 하나 하나의 완결을 짓고 다음 레벨로 다음 레벨로. 요런 게 참 이게 우리가 수리 속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도 아시면서 천부경은 그걸 간단하게 1부터 10까지 설명하면서 1을 가지고 태극으로 놓고 설명을 다 합니다. 요게 신기하게 서양에서 지금 유행한 세피로트랑 이게 뿌리는 유대교라고 하지만 퍼지기는 서양에서 퍼졌습니다. 결국 서양의 신비주의의 뿌린데, 텅 빈 무극에서 하나가 나왔는데 그 하나에서 열이 나온다는 사상이에요. 신기하죠. 모든 건 무가 근본이다. 무에서 하나가 나왔다. 이게 태극이에요. 제일 왕이에요.

43:51

이 태극의 왕한테서 열 개의 또 이렇게 가지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열 개의 이걸 세피로트라고 그래요. 일적십도 들어있죠 무에서 1이 나왔다도 들어있죠. 천지인이 각각 셋인데 둘씩, 삼 삼 삼인데 그 중에 둘씩 취해서 여섯이 나왔다는 것도 들어있고. 더 얘기할 게 많지만 나중에 또 말씀드릴게요. 그래서 이런 게 신기하게 통하게 돼있다. 하는 것도 아시면서 그러니까 이건 저는 뭐 진리를 우리 거다. 라고만 주장하려는 게 아니고 보편적인 게 진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진리에 대해서 엄청 자명한 연구를 해왔다. 어디에 세계 수준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연구를 해왔다. 이런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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