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1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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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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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6. 02. 20. 土.
게시일자 2016. 03. 17.
동영상 길이 50:32
강의 중 인용 도서 천부경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brt6Mgnok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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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가 이제 덧붙인 거는, 박스 안에 있는 말들은 추가로 더 보태본 거예요. 설명을 더 해본 거예요. 자, 우리는 한편으로는 텅 빈 하나를 지키며. 텅 빈 하나, 無極자리를 지키구요. 자, 무극과 하나는 태극이죠. 텅 빈 무극, 하나 태극. 하나로 보시라는 거예요. 자, 이 둘을 이렇게 찢어서 보다 보면 너무 이제 이 두 개가 분리돼서 느껴지시니까 무극 태극은 여러분 안에 있는 본심 자립니다. 본심자리가 뭐죠. 뭐 이렇게 예 이렇게 삼태극으로 설명될 수 있죠. 이 삼태극이 본래는 근데 결국 空이겠죠. 그래서 예. 공이, 텅 빈 하나라는 건 空인데 하나로서, 그런데 하나 안에 셋이 포함돼 있는. 요 우주의 근원에서 우주만물이 다 나왔다. 우주의 이 수정란 같은 거죠. 우주의 씨알이죠. 태극은 씨알이고 태극의 근원은 空 결국 텅 빔입니다. 텅 빔이 어떤 창조의 근원으로 작용할 때 하나 그럽니다. 그래서 텅 빈 하나라고 하는 게 결국 우리 참나를 말 하는 거예요. 텅 빈 하나까지가 참나예요. 텅 빔만 참나가 아니고 하나까지 참납니다. 삼태극이 다 참나예요. 태극이, 우리나라 태극기가 참나예요. 우리나라는요 국기도 끝내줘요. 우주의 근원인 태극을 그려놨어요. 참나자리를. 예. 그러니까 중국이 뭐 아무리 태극 우기고 해도 중국 국기에 태극 없죠. 우리나라가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도 인연인 거 같애요.

01:36

태극 중국이 썼을 수고 있는데 신기하게 우리가 먼저 지르고 잘 쓰고 있다는 거. 그래서 되게 배아파한다는 것도 얘기 들었는데. 중국에서. 우리 건데 태극을 뺏겼다. 근데 태극의 근원이 결국은 복희씨니 누구니 다 동이족들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한테 온 거 같애요. 그렇게 우길, 우기면 되죠. ㅎ. 아이 뭐 그 이 우리나라는 좀 잘 우겨야 돼요. 없는 걸 우기는 거는 좀 찜찜하지만 아 솔직히 상대방보다 우리가 더 유리한데도 못 우기는 게 많아요. 우리는 너무 체면 따지구요, 우리가 우리 거 자랑하는 걸 너무 부끄러운 걸로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누가 좀 질러줘야 돼요. 좀 얼굴에, 얼굴 좀 두꺼운 분들이 나와서 좀 자랑을 해 줘야 됩니다. 안 그러면 우리 민족은요 부끄러워서. 근데 다른 나라는 없는 거 우기고 있는데. 근데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게요 우리 옆 나라들은요 없는 것도 만들어서 우길 사람들이에요. 다. 근데 거기에 그렇게 겸손 떨고 있으면요 다 뺏깁니다. 그러니까 이 보살도는요 좋은 솜씨를 부려서, 아까 얘기했지만, 이것도 지켜줘야 돼요. 예. 그래서 태극이나 이런 것도 우리 민족의 어떤 하느님觀과 연결돼 있는 어떤 그런 상징으로서 이해해주시면 좋겠구요. 자, 이 하나가 이 太極자리가, 무극이자 태극 자리가 한편으로는 생각 감정 오감으로 자신을 끝없이 시공간 안에 표현. 이거 보시면 되겠죠. 예, 이 참나 자리에서 끝없이 시공간 안에 생각 감정 오감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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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공간 안에 표현하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결국 이 우리는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시공간 안에 생각 감정 오감을 구현하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더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하시란 말이에요. 七一妙衍이라는 말은 그 하나, 하느님이 일곱으로 불어났단 말이잖아요. 불어나니까 뭐가 됐어요? 우리요. 우리가 됐단 말이에요. 우리는 하느님이란 말이에요. 불교적으로 말 하면 우린 비로자나불이구요 우리는 기독교적으로 다 聖子들이에요. 聖父의 化身인, 分身인 성자들이에요. 다 각자가 사람의 아들들이란 말이에요. 사람의 아들들이, 아들이란 존재는 이제 이 성자 중에서도 메시아를 말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우린 다 성자란 말이에요. 그것도 아셔야 돼요. 우린 다 하느님이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이요, 예수님한테 누가 “어떻게 당신이 신의 아들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할 때 예수님이 「시편」을 들면서 “너희가 믿는 성경에서 하느님이 우리더러 다 아들들이라고, 신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냐?” 이 아들들을 신들이라고 불러요. 하느님들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예수님이 그걸 딱 들이댑니다. 그 예수님은요 단순히 하느님 아들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거기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런 똑같은 발상이요 지금 우리는 하느님이라고 생각하셔야 돼요. 자꾸 죄인으로 몰아가면 안 돼요. 그 죄인이란 관념을 자꾸 일으키고 있는 자리가 문젭니다. 누구냐 이거예요. 에고냐 양심이냐. 고걸 잘 파악해 보세요. 그 쓸데없는 죄책감 갖지 마시고. 양심이 뭐라고 하는 거 따르기도 힘든데 본인이 만든 죄책감까지 신경 쓰시다 보면 예, 힘들죠. 그래서 자, 여러분은 하느님입니다. 시공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이다. 그런데 되게 솜씨가 없는 하느님이다.

05:01

솜씨도 없고 뭐가 부족해요. 모자라고 솜씨도 없고 한데 하느님이긴 하느님인데. 뭐가 지금 잘 못 해요. 안 돼요.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욕심도 컨트롤이 안 되고. 그거 배우는 거예요. 자. 전혀 다른 발상입니다. 하느님인데 너무 솜씨가 부족해서 지금 재교육 받는 거랑, 전혀 나는 그런 데 자질이 없는 사람이 와가지고 갑자기 억지로 하느님처럼 되겠다는 거랑은 다른 얘기죠. 여러분은 하느님인데 안에서 양심은 계속 터져 나오는데 고거를 어떻게 처리를 못하고 있단 말이에요. 안에서 나오는 그 양심의 소리를 그리고 또 양심의 능력을 온전히 수용을 못 하고 있어요. 못 따르고 있단 말이에요. 고거에 대해서 교육받는 겁니다. 7은, 일곱은 10, 어, 7이 되어야만 1은 온전해진다. 하나가 현상계 안에서 작용하려면 7이 돼야 되죠. 자, 이 얘기는 또 재밌는 얘긴데 7을 단순히, 7은 현상계 하나는 절대계가 아니고, 하나가 현상계 안에서 구르는 모습이 7이에요. 현상계이자 동시에 그 안에 절대계가 들어가 있죠. 절대계와 현상계가 함께 구르는 모습이란 말이에요. 7은. 그것도 갖고 있습니다. 그쵸.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굴러다니는 게 그냥 현상계의 존재만, 제가 그냥 현상계의 존재만 될까요? 제 안에 지금 참나가 있으니까 이러고 다니는 거죠. 몸도 움직이고 경영하고. 말도 계속 이 말을 해야 될지 저 말을 해야 될지 따지고 분석하고 울고 웃고 다 뭐가 해요. 참나가요. 즉 참나가 발현된 모습이, 지, 현상계에 발현된 모습을 7이라고 하니까 지금 7 안에는 지금 절대계 현상계가 하나로 돌아가는 그런 그 모습도 다 담겨져 있다. 하는 것도 아셔야 되구요. 그러니까 1은 7이 돼야 온전해진다. 우리가 수련하는 목적은 無極 太極의 자각과, 우리가 수련하는 목적은요 보세요, 무극과 태극은 이미 완결돼 있는 우리 안의 신성이에요. 자각과, 황극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皇極은 성취에 있다. 여러분 에고가 노력을 못 해주며는 우주적인 황극은 제대로 돌아가겠지만 우리 에고 안에서 온전한 황극은 못 드러나겠죠. 올바른 생각도 안 나오고 올바른 감정도 안 나오고 올바른 언행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황극이 이루어졌다고 합니까.

07:13

황극의 성취는 우리의 몫이라는, 여러분 각자의 몫이에요. 여러분 우주는 여러분이 주인공이고 여러분이 황극을 만들어가야 됩니다. 그럴려면 여러분의 에고, 여러분의 카르마를 여러분이 경영할 수 있어야 돼요. 경영자가 못 되는데 어떻게 황극입니까. 예. 이해되시죠? 생각 감정 오감을 씀은 1이 부풀려진 7의 모습이며, 1의 완성이다. 그러니 1도 끝나기를 이 온전해진 1인 7에서 하는 것이며 0도 끝나기를 온전해진 1인 7에서 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 이 모습 안에 無極과 太極이 온전히 다 담겨있다. 하는 겁니다. 우리가 性通功完, 道德合一, 中庸 이런 말을 하는데요. 여기다가 한 번. 저쪽 가면 울리네. 아. 자, 보세요. 性通功完. 본성을 통하고 공을 완수한다는 겁니다. 三一神誥에서 나온 말이에요. 본성과 공. 자, 이게 본성이죠.

08:21

우리 안에 있는 불변의 본성을 깨치고, 현, 이건 절대계 얘깁니다. 현상계에서 功德을 완수한다. 생각 감정 오감을 가지고 생각으로는 지혜를, 감성으로는 德을 자비를, 오감으로는 능력을 이뤄내서 공을 완수하는 겁니다. 깔끔하죠. 외우기 쉽죠. 성통공완. 여기 시험 봐도 쓰시겠죠. 본성, 본성은 절대계. 공을 세운다는 거는 공덕을 쌓는다는 건 현상계. 공덕은 뭘, 뭐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요? 생각과 감정과 오감을 가지고. 그래서 여러분 이게 공부의 목표고 이걸 가지고 다른 중국 뭐죠, 에서 정리된 유교에서는 道(性), 德(功에 대응)이라고 했습니다. 도와 덕. 道는 불변에 새겨진. 이 불변의 절대계에 새겨져있는 길. 그 길이 뭘까요. 예. 불변의 요, 요, 요걸 뽑아볼까요? 요 안에 동양식으로 하면 仁義禮智信이 들어있겠죠. 仁 義 예, 禮 智 信. 이게 우주의 길이에요. 사랑하라, 남의 입장을 배려하라. 정의로워라, 남한테 죄 짓지 마라. 禮, 우주와, 겸손하고 조화를 이루어라. 智, 늘 자명한 판단을 하라. 信, 항상 仁義禮智가 성실하게 굴러가게 하라. 요 다섯 가지 명령만 따르면 여러분 어디 가서도 죄를 못 짓고 선을 하게 돼 있죠.

09:54

그러니까 본성에 통해야, 이런 인의예지의 본성에 통해야 지혜도 이루고 덕도 이루고 능력도 이루죠. 절대계에 있는 거를 부풀려내는 게 덕입니다. 게 잼, 부풀린단 말 아시겠어요? 참나 안에 있는 정보를, 감춰진, 그 감춰진 정보를 현상계에 드러내는 게, 여러분, 드러난 정보로 만드는 게 덕이에요. 여러분이 남한테 사랑을 베풀어야 그 정보가 드러나게 되는 거죠. 안 그러면 감춰져 있어요. 여러분 참나 안에. 꽁꽁 이렇게 감춰져 있어서 절대 밖으로 안 나와요. 그게 있다는 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주에 道가 아무리 선명해도요 인간이 그 길을 안 걸어주면 그 길은 없는 거랑 똑같습니다. 사랑하란 명령어가 우리 몸 안, 우리 그 마음 안에 매일 매일 울리고 있어도요 우리가 아무도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없는 거랑 똑같죠. 우주의 길은 사랑하란데 인간은 그 길을 안 걸어요. 그럼 그 길은 황폐화됩니다. 그래서 인간 중에 그 길을 걸으신 분들이 예전 성인들이고 그 분들 땜에 그 길이 있는 거라도 알지 지금, 그 뒤로 그 길을 잘 안 걸어서 황폐화 돼있어요. 開闢이 뭔지 아십니까? 그 鳳宇선생님이 개벽을 딱 이렇게 설명해요.

11:02

예전 聖人들은 험난한 인간의 길을 걸었는데, 그 길을 걸으면서 힘들게 힘들게 길을 개척해서 걸었는데, 뒷 사람들은 이렇게 걸으면 쉽게 오리라. 까지는 못 해줬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시대가 이제, 허락하지 않아서. 그런데 앞으로 오는 개벽시대라는 거는, 인류 모두 그 길을 쉽게 걸을 수 있게 아주 쉬운 표현으로 쉽게 쉽게 그 길로 인도하는 가르침이 나올 거라는 겁니다.

11:29

이게 조선 예전에 道人들이 꿈꿨던 개벽이에요. 개벽이 오면 다 도인 되는 시대가 올 거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집집마다 부처 난다. 집집마다 성자(聖者) 난다.” 이 말이 고 같이 개벽 이야기에 같이 동반되는 겁니다. 집집마다 聖人 난다. 원불교의 그 少太山 先生같은 분은 뭐라고 했냐면 “앞으로는 집에서 見性은 다 하고, 成佛하러, 레벨 올리려고 스승 찾아다닐 거다. 예전에는 인지(人智?)가 떨어져서 견성만 해도 도인 대접 받았는데, 앞으로 견성은 집에서 하는 시대가 올 거다.” 가능하죠. 유튜브 있잖아요. 유튜브 들으시면 견성할 수 있죠. 짐 재밌지 않아요? 이제 집에서도 견성할 수 있는 시댑니다. 그래서 이게 性通이 견성이죠. 본성이 뭔지 알고 공덕을 이루고. 현상계에서. 절대계를 부풀려내는 거. 그러니까 결국 하나랑 7의 얘기예요. 하나 안에 담겨져 있는 정보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능력을 되찾는 게 그 성통이나 道를, 道를 이룬다는 공부고. 德을 펼친다. 예, 공을 세운다. 하는 거는 이 하나에 있는 정보를 부풀려내는 거예요. 시공간 안에다가 표현해 내는 거. 좋은 생각으로 부풀려 내고 좋은 말로 부풀려 내고 좋은 행동으로 부풀려 내요. 그래서 저기 저희 선생님인 鳳宇선생님이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道와 德을 딱 두 개로 얘기합니다. 공부, 어떻게 공부할 거냐. 行行行 예, 裡覺. 가고 가고 가다가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 깨닫게 된다.

13:12

요거(去去去中知)는 道를 말하고, 요거(行行行裡覺)는, 굳이 나누면 德을 말해요. 이거 밖에 없다는 거예요. 道라는 건. 하고 하고 하고 가고 가고 가고. 그러다 보면 다 알게 된다. 예, 그래서 이 안에 보며는요 절대계를 알아낸다는 건 여긴 원래 완성된 세계죠. 원래 완성된 거를 여러분이 여러분 에고를 닦아가다 보면 원래 원래의 그림을 깨닫게 돼요. 그게 去去去中知고. 行行行裡覺은 여러분이 만들고 만들고 만드는 중에 뭔가 이 멋진 작품을 만드는 거죠. 그 법칙을 깨닫는. 현상계의 법칙을 깨달아서 예, 작품을 만들어요. 仁義禮智를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아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걸 德이라고 하고 인의예지의, 우주가 인의예지 하라고 이렇게 명령하는구나 하는 거를 근원적으로 깨치는 거는 이제 형이상학적인 性通이나 道를 닦는 공부라고 하고 德을 세우는 공부는요 그걸 현실에서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구현해야 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든다는 게 이거예요. 시공간 안에 어떤 작품을 하나씩 만들어 내요. 생각 감정 그 오감을 재료로 해서. 이해되세요? 그래서 지금 요 안에 들어가 있는 힌트 보실래요? 去去去는 셋이죠. 하나 둘 셋. 去가 셋이니까 뭘 깨치겠어요. 法을요. 우주의 법을 깨쳐요.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우주의 법이 알아져요. 원래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이게 性通이고 道 공부예요. 德은요. 하고 하고 해가지고 뭐가되죠? 行이 세 번이죠. 이거 불어날연자(衍) 아닙니까. 아까 七一妙衍에서 요 衍字예요.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거다. 이해되세요? 하고 하고 하다 보면 현실에서 작품이 나와요. 그러면서 또 작, 현실에서 작품 만드는 도리를 깨치는.

15:04

현상계 법칙을 깨치고 절대계의 법칙도 깨치고 현상계에서 그 법칙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도 깨치고. 자, 이렇게 해서 공부해가는. 저 말씀으로 다 포괄하신 적이 있어요. 현상계에서 부풀려내셔야 돼요. 속으로 갖고 계시지 마시고. 속으로만 갖고. 사랑이 막 안에서 넘쳐요. 그런데 가족들한텐 절대 표현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안 하신 거죠. 그쵸. 사랑하라는 양심의 신호를 매일 느끼면서 밖으로는 한 마디 뭐 안 했다. ARS 한 번 눌러본 적 없고 자녀한테 따뜻한 말 한 번 해 본적이 없다. 예, 그럼 안 한거잖아요. 그럼 道가 황폐해진다니까요. 道가 있다는 건 아는데 아무도 안 걸어요. 그 길을. 그럼 그 길은 그 아무도 안 가는 길이죠. 폐쇄된 길이죠. 인간이 만들어 내요. 인간이 그 이 길을 폐쇄되게 만들 수도 있고 아주 지금 고속도로 이상으로 모두가 다니는 큰 길로 만들 수도 있어요. 10차선 뭐 몇십차선 만들 수도 있어요. 이 인간에게 달린 거예요. 그래서 논어에 뭔 말이 나오죠? 道不能弘人. 道가 인간을 넓혀줄 수 없고. 人能弘道. 사람이 道를 넓히는 거다. 에고가 노력해야 道가 넓어지지 道가 우리를 넓혀줄 순 없다. 道는 어디로 가라고 그 길로서 늘 존재하면서 이리 오라고, 이 길을 걸으라고 얘기해 줄 순 있지만 인간이 가야 그 길이 넓어지지, 인간이, 그 道가 인간을 넓혀줄 순 없. 억지로 가게 할 순 없다는 거죠. 이게 인간의 실, 그 실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안에서 神이 매 순간 외쳐요. 그거 아니다. 찜찜하다. 다시 생각해라. 自明하다. 옳다. 그 길로 가라. 그 길로 가지 마라. 매순간 그 道가 다 가르쳐주는데 여러분이 그 길을 안 걸어요. 안 걸으면서, 신은 어디 계십니까. 이렇게 외칩니다. 신은 어디 계십니까. 이 지구가 이렇게 도탄에 빠졌는데. 그럼 신 입장에선 돌아버리죠.

17:00

매순간 그렇게 그 몇 십억 인구 안에서 외쳤는데 아무도 안 듣더니, 신은 어디 계십니까. 가지 마라고. 그 길로 가지 마라고. 찜찜한 짓 좀 하지 마라고. 자명하게 좀 살으라고. 끝없이 외쳤단 말이에요. 외치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런 힘도 줬어요. 실제 감정이 그렇게 바뀌었었잖아요. 애틋해지기도 하고 잘못된 거 보면 분노도 하고. 四端이라는 게 신의 작용입니다. 답을 알기 전엔 찜찜하기도 하고. 이렇게 부추겼는데도 그거를 끝까지 누르고 다스려서 안 갔단 말이에요. 그 길을. 그러며는 그 과보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게 신과 인간의 그 수작입니다. 이렇게 같이 협업을 해가야 돼요. 이렇게 수작하면서. 근데 이게 수작을 제대로 우리가 인간이 안 하면 이제 못 따라가는 거죠. 그래서 그 수작을 도울려고 예전에 占書도 나오고 했지만 점서는 다 2차적이구요. 내면에서 이미 신이 소리를 가지고 지금 자명 찜찜의 소리로 우릴 인도하는데요. 점을 친 뒤에야 안다는 게 말이 됩니까. 바로 알아야 맞지. 그것도 아주 방편일 뿐이에요. 점이라는 것도. 우리 양심분석 하면 최고의 점입니다. 거기 다 답이 나와요. 어디 해야 되겠다. 말아야 되겠다. 그리고 그 길을 자꾸 걸어버리세요. 그러면 우주에서 그 길이 드러나요. 나로 인해서 우주에 길이 점점 선명해지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이면 다 그 길로 뛰어들 때가 옵니다. 그걸 해보자는 거예요. 개벽이란. 동영상 하나 페북에 도는데 보셨어요? 한 사람이요 공원에서 정말 추잡스러운 춤을 춰요. 보고 있기만 해도 막 오그라드는 민망한 춤을 막 미친 듯이 추고 있어요. 옆에 한 놈이 붙습니다. 둘이 춰요. 긍가 또 이게 사람 심리가 또 어떻게 되나 보는 거죠. 한 놈이 또 붙어요. 그 사람, 아 붙는 놈이 있네. 하고 나도 붙어. 몇 명이 붙기 시작, 어느 선을 딱 넘어서잖아요? 제가 주장하는 50%도 아니에요. 진짜 몇 %만 모여도요 뛰어가기 시작해요. 춤을 같이 추려고.

19:04

그 공원에서 저 쪽에서 방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까는 춤을 추면 모자란 건데 지금은 앉아있는 게 모자란 때가 와요. 압박을 받는 때가 와요. 그 춤판에 못 끼는 게 모자란 거예요. 그러니까 뛰어요. 이제 마음이 급하니까. 뛰어가서 같이 또 춤을 춥니다. 자, 이게요 양심 운동도 이렇게 진행돼야 돼요. 누군가가 양심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미친 사람 소리 들을 수도 있지만 해요. 또 몇 명이 또 동참해요. 같이 하겠다고. 이러다 이러다가 이게 판이 커지면요 안 하면 이제 내가 소외된 게, 때가 와요. 한국인은 소외되면 진짜 못 참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할 민족이에요. 둘레길 좋다. 뭐 이제 목적은 이미 상실됐어요. 둘레길을 가 봐야만 이제 사회에 인정받는. 안 간 사람은 소외돼요. 대화에서도 소외되고 그, 잘못 산 게 돼요. 내 삶이 부정당한다구요. 어떻게 살길래 둘레길도 못 가봤어. 그러니까 한 밤중에 버스를 대절해서 둘레길에 내려요. 그러니까 이미 목표는 둘레길에서 뭐 여유롭게 걷고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 길을 걸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이 막 미쳤잖아요. 미치겠다고 예, 둘레길을 막 하도 시끄럽게 사람들이 막 낮 밤이 없이 돌아다니니까. 그 그게 한국인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운동이 재밌다는 소문이 조금만 나면요 그걸 해보고 싶은 게, 난리가 한 번 날겁니다. 이게 그거 안 하면 이제 양심노트 하나 안 들고 다니면 되게 챙피한. 내가 양심 없는 사람이 된 거 같은. 그 꼭 뭔가 억울하겠죠. 왜 갑자기, 난 잘 살았는데. 양심분석을 안 했다는 이유로 내가 이렇게 몰리나. 양심분석법을 모른다는 것 만으로 내가 이렇게 멸시를 받나. 이렇게 느낄 정도로 된다니까요. 한국인들의 그 동안의 행보를 보면 분명히 그렇게 될 때가 와요. 그러니까 말이 50% 넘기자는 거지 그거는 목표구요. 그 전에, 대한민국 한 10%만 양심분석 하면 어떻게 될까요.

21:03

뛰어오기 시작할 텐데요. 그 다음부터는, 분명히. 10% 뭐 몇 %인진 몰라요. 제가. 하는 데까지 해 볼 겁니다. 아마 어느 선을 돌파하면 분명히, 나도 원래 양심 했었어. 하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나오면서 양심분석노트를 사다가 밤새 잠 안자고 분석을 해서, 내일 가서 잘난 체를 해야 되니까. 대화에 소외 안 돼야 되니까. 그러면 뭐 이렇게 “양심분석이 그렇더라고.” 하면서 이렇게 뭔가 얘기를 해야 되잖아요. 이럴 때가 올까요? 안 올까요? 금 전 올 거 같단 말이에요. 그래서 해 보는 겁니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요. 그렇게 타오르기 정말 잘 해요. 그래서 그런데 양심이 한 번 타오르면 쉽게 안 꺼질 거예요. 다른 불은 쉽게 꺼져도. 우리나라가 또 냄비 기질이 있어서 금방 잊어버리는데요. 아직도 둘레길 다니니? 또 이렇게 될 수도 있어요. 나중에. 한국인은 분명히 그럴 텐데. 양심은 그래도 이게 보편적 주제고 분명히 오래 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이거 한 번 해 보는 거, 한국인이 한 번 이렇게 미치면 한국인 때문에 또 전 세계가 또 한 번 같이 영향을 받게 될 거라고 봐요. 또 그 또 어디 가서 막 양심분석 모르면 무시하고 멸시하고 이러실 거잖아요. 이래가지고 또 주변에 퍼뜨릴 검. 자, 이건 좀 에고의 나쁜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서 작업을 하며는 에고, 한국인의 에고를 활용해야 되잖아요. 한국인의 카르마를 활용해서 양심을 전 세계에 편다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개벽은. 제가 생각하는 개벽의 시나리오예요. 이렇게 될 거다. 뭐 이렇게 무슨 뭐 怪疾이 돌고 이런 거는요 저기 그런 말 좀 그 본인들 좀 본인들 건강관리나 신경쓰시라고 하고 싶구요. 괴질이 퍼져야 개벽이 오는데…. 그건요 정말 답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양심의 시나리오, 어떤 답이 없으니까. 양심의 개벽 시나리오가 아니라 다 죽고 우리만 살면 좀 세상이 살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시나리오예요. 얼마나 답이 없으면 다 죽기를 바랄까요. 이해되세요? 감당을 못 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개벽이라는 걸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23:03

개벽은 인구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심을 하냐 못 하냐의 문제지. 그래서 이건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에 고게 우리 민족에서 싹이 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뭔 얘기 하다 거기까지 갔죠? 그래서, 道德合一. 성통공완 도덕합일 그리고 中庸. 아까 말씀드렸죠. 중심을 중심의 입장에 서서 중심 입장에 서서 생각 감정 오감을 가지고 조화를 잘 이루는 게 중용이다. 다 같은 말이에요. 중용이나 도덕합일이나 우리민족 그 경전에 나오는 성통공완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이걸 이루어야 하니 자신 안에 천지를 품어 하나로 합일시켜 큰 덕 큰 지혜 큰 능력을 지닌, 생각 감정 오감의 성취를 이룬 이라야. 재료는 생각 감정 오감이고 그 재료를 가공해서 이루어 낼 작품은 뭐죠? 德과 智慧와 능력. 그래야 여러분이 진정한 하느님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 솜씨가 없는 하느님이라고 했죠. 솜씨 좋은 하느님이 되려면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 자기 생각 감정 오감도 경영 못하시면서 하느님이라고 하기 부끄럽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그 부분을 좀 연구하셔야 된다. 0은 있음이요, 우주의 근원적인, 근원적인 존재는 있음이요. 1은 내가 있음입니다. 이 내라는 거는 에고의 내가 있다는 게 아니고 여러분 참나로서 내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있다. 즉, 있음이, 있음이 초점이 잡힌 거예요. 텅 빈 있음이 또렷한 있음으로 거듭나요. 왜냐면 우주의 근원으로서 작동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까지는 지금 참납니다. 에고가 아직 없어요. 근데 물론 에고의 근원이 이미 시작됐다고 여기서부터 말 할 순 있지만 실제로 여기까지는 에고가 오염시킬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1 까지가 참나구요.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모든 현상계의 다양한 있음이 이제 여기서 시작돼요. 그래서 에고의 뿌리이자 세계의 뿌리이긴, 뿌리 자리이긴 합니다. 그래서 거기를 태극이라고 그래요. 위대한 꼭지점. 우주가 나온 위대한 극치점. 이런 소리구요.

25:10

고로 1은 창조자이다. 창조자는 창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바, 1은 결코 그 창조행위를 멈추는 법이 없다. 창조하지 않는 1은 이미 1이 아니다. 자, 태극은요 목표가 창조예요. 창조하지 않는 태극이란 건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참나는 창조하지 않을 수 없고, 자, 뭘 창조해요? 생각 감정 오감을 여러분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계속해서 창조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우주가 아침마다 또 창조돼요. 잠깐 또 그 꿈이라고 해서 또, 또 창조가 아닌 것도 아니죠. 또 숙면상태라고 해서 또 창조가 아닌 건 아닙니다. 다만 이 우주가 다시 지금 모습처럼 또 나타나는 거는 깰 때 다시 또 원만하게 이 우주가 다시 또 재구성이 돼요. 이래서 끝없이, 현상계는 잠, 꿈, 生時를 이 세 가지를 반복합니다. 뭐든지 셋입니다. 셋을 계속해서 창조해요. 각각의 속성들이 달라요. 무의식 상태냐 무의식과 의식이 또 섞인 상태냐 아니면 순 의식이 더 강한 상태냐에 따라서 이제 잠과 꿈과 생시가 계속 반복되면서 창조가 일어납니다. 사실은 매 순간 창조가 되고 있는 거예요. 꿈이 창조되고 있어요. 잠이 창조되고 있어요. 생시가 창조돼요. 그런데 제일 우리가 창조되는 걸 알아보기 쉬운 게 잠에서 생시로 나올 때 보면요 현상계가 또 다시 나타나죠. 사라졌다가. 그런 측면 한 측면만 봐도 우리가 이 우리 내면에서 매일매일 창조가, 매순간 창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는 거구요, 자, 그래서 참나는 창조를 멈추는 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은 “색(色)이 공(空)이고 공이 색이다.” 해 버리는 거예요.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復如是). 느낌도 생각도 의지도 식별도 다 매순간 空에서 창조되고 있다”고 空과 둘이 아니다. 창조, 짐 태극에서 나온 건데 태극에서 流出된 건데 태극과 둘이겠습니까? 창조된 피조물이.

27:05

창조자와 피조물이 사실 하나라는. 성경에도 나오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이 연결돼 있어요. 피조물이 하나님하고 다른 존재가 아니라구요. 연결돼있단 말이에요. 안에 있는 게 밖으로 나온 거죠. 안에 있는 정보가 저, 여러분은 밖으로 튀어나온 하나님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뿌리로서의 하나님이에요. 감춰진 하나님, 드러난 하나님 차이에요. 이걸 아셔야 돼요. 色은 밖으로 드러난 空이에요. 그러니까 色하고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경영만 잘 하면 되지 싸울 필욘 없단 말이에요. 小乘은 싸워요. 色을 없애야 내가 空에 들어간단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이게 다릅니다. 1이 존재하는 한, 자, 1은 창조의, 아주 창조 덩어리에요. 1은. 창조의 존재예요. 창조의 하느님 그랬죠.

28:00

1이 존재하는 한, 3은 자동으로 존재한다. 하나가 존재하면요 그 하나 안에는 대등한 하나가 또 등장해서 천지인 삼태극이 또 나눠지더라. 지금 여러분 우주 돌아가는 공식을 배우는 겁니다. 예, 우주가 이렇게 굴러가는구나. 여러분 빅뱅 실험을 해봐야 아는, 과학적으로 아는 것도 있지만 여러분 주무셨다가 일어날 때만 정확히 파악하셔도 창조 공식을 알아요. 시공이 없는 의식에서 시공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매 순간, 꼭 자다가 일어날 때만 아니라도 지금이라도, 지금 내 마음에서 시공이 어떻게 생기고 생각 감정 오감이 어떻게 발생하나 그 공식을 알면 그게 창조공식이라는 거예요. 이런 원리로 접근하세요. 시간 공간도 여러분 마음 안에 있습니다. 시간을. 지금 이 시점에서는요 태극 가지고 얘기해 볼게요. 지금 여기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어요. 지금 여기 나. 이런 용어들로밖에 설명 못합니다. 근데 여기는 지금 다 이게 영원한 거예요. 에고의 시공간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말로 이렇게 붙여놓은 거지 여러분이 깨어계실 때 그 느낌이 지금 상태예요. 여기. 참나가 여기 있죠. 지금이죠. 오직. 오직 나예요. 자아밖에 없어요. 말로 붙이니까 이렇다는 거죠. 이게 한 번 구르면, 시공 밖으로, 아 시공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에서 이 지금이 현재의 지금이 돼요. 그럼 뭐가 되냐. 과거가 나타나고 미래가 나타나요. 한 생각이 구르면. 시공 안에 들어오면. 여기는요 들어오며는요 동서남북이 나타나요. 앞뒤가 나타나고. 앞뒤 좌우가. 나는요. 남이 생겨요. 자 그러니까 여러분이 제대로 참나상태에 있다는 증거는 뭐죠? 과거 미래를 모르겠고. 앞뒤를 모르겠고. 남을 모르겠을 땐 여러분 참나상태예요. 고게 태극상태예요. 위상이(?).

30:01

태극의 근원이 무극이고 여러분 태극 상태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 생각이 탁 일어나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고 앞뒤가 느껴지고 남이 느껴, 의식이 돼요. 나를 둘러싼 남들이 의식. 자 이게 에고의 세계로 들어온 거. 이게 하나로 돌아가고 있어요. 지금 여러분 마음에. 여러분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여러분은 지금 참나에서 계속해서 영원한 지금 여기 나라는 게, 지금 시공 안에 들어와 있는 지금 여기 나, 에고의 나,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지금, 동서남북 안에 있는 그 여기가 난, 여기로 살아가시는. 이해되시죠? 그래서 이게 지금 창조되는 공식입니다. 그래서 하나에서 셋이 자동으로 생기며 5와 7로 불어난다. 앞 뒤 전후 좌우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다 더 온전해지기 위한 유형 만물의 生長收藏. 6 7 9 8가, 春夏秋冬이라고 그랬죠? 춘하추동. 아시죠 설마. 6 7 9 8는 하도 제가 얘기해서. 예, 춘하추동이 일어난다.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예. 자, 여기서 이걸로 그려볼게요. 이 절대계에서 현상계가 나타나면 6 7 9 숫자로 8 이런다 그랬죠. 짝수는 음수, -, 홀수는 양수구요. 이 양은요 봄에서 여름으로 반드시 양은 더 커지는 게 맛이고 음은 8에서 6으로 쪼그라드는 게 맛이에요. 쪼그라들수록 음이 더 커지는 거고 陰은 쪼그라드는 힘이니까 숫자가 적어질수록 큰 거구요. 陽은 발산하는 거기 때문에 커질수록 커요. 그래서 봄(7) 여름(9) 가을(8) 겨울(6)로 끝없이. 6은 다시 7로 솟아나고 9는 다시 8로 쪼그라들고. 이렇게 해서 끝없이 춘하추동으로 돌고 돈다. 6 7 8 9로 돌고 도는데 이 과정에서 이게, 보세요, 이게 한 생 한 생이에요. 한 생, 7, 태어나요. 태어나요. 生. 9, 여름, 성長해요. 한참 자라요. 收, 이제 쪼그라들어요. 거두어졌다가. 藏, 감출장자. 완전히 사라져요.

32:09

이게 죽음이에요. 다시 나타나요. 다음 봄에. 또 태어나요. 또. 이 수많은 6 7 8 9. 10으로, 여기서 10으로 안 갑니다.

32:18

6 7 8 9만 계속 돌고 돌아요. 그래서 천부경에 6 7 8 9. 六은 生七八九. 6은 7 8 9를 낳는다. 여기서 10을 얘기 안 합니다. 이렇게 해서 끝없이 돌고 도는 중에 뭐를 추구해요? 10을 추구해요. 영원한 목표로서. 더 완벽해질려고 살아가요.

그럼 여러분 하루가, 자, 하루 하루가 한 생이죠. 하루 어때요. 여러분 일어나셨죠. 아침에 일어날 때 여러분 태어나신. 그 때라도 아셔야 돼요. 한 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지금도 매순간 여러분 안에서 시공이 창조되고 예, 나와 남이 창조되지만 지금도 창조되고 있어요. 시공이 계속 창조되고. 유지되고. 유지된다는 것도 계속 창조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사라지면, 명상에 들면 사라져 버려요. 명상에서 나오면 다시 창조돼요. 다시 나타나요. 또 돌아가요. 이런 식으로 해서 여러분 또 하루로 치면 하루가 한 번 또 아침에 창조돼요. 여름, 낮을 지나요. 저녁이 돼요. 밤이 되면 다시 잠들어요. 그래서 이게 이제 한 번 돌아가시는 게 힘드신 분은 잠이 안 오죠.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은 더 오래살고 싶어서 그런 게. 뭔가 마무리가 안 돼서 더 버티시는 건데 결국 주무시면 다시 또 한 생이 또 시작돼요. 그럼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의미가 뭘까요.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질려구요. 하지만 나아질 거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게 그 순간 그순간에 몰입을 못 하면 나아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한 생 한 생,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 하셔야 돼요. 하루의 사이클에 최선을 다 하셔야 돼요. 그래서 하루만 보시면 돼요. 하루 하루 6바라밀에 맞게 사시면 한 생이 당연히 좋고, 한 생이 6바라밀에 맞으면 당연히 수많은 윤회의 생이 다 이 올바른 삶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하루를 잘 쓰시는 거. 더 좁히면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한 생입니다.

34:07

그래서 옛날 선사들은 생사를 초월해라 하는 게 결국 한 생각 내려놔라는 말 할 때 써요. 그것도 이해가 되시죠? 이거는 다 공통이니까. 자. 이것이 지고(至高)한, 그래서 이렇게 막 “더 온전해지기 위한 생장수장(生長收藏)을 멈추지 않는다.” 하는 게 이겁니다. 하루 하루 한 생 한 생 살아가면서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 한다. 이것이 지고한 신성한 하느님의 계획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겁니다. 이 우주의 프로그램이 이렇다. 천부경은 우주의 프로그램을 말하면서 인간의 길을 얘기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프로그램 돼있고 인간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이걸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뿌리이자 모든 존재를 그 안에 품고 있는 텅 빔. 모든 존재의 뿌리이자 모든 존재가 그 안에 다 들어있는 이 텅 빔. 無. 예, 이 텅 빔이 천지만물의 창조를 위해 움직임에 이제 그 1이라고 하는 거구요. 태극이 형성되고 이 1에 그 품은 신성한 계획이 1차적으로 시공을 초월한 無形의 原象으로 나타나며. 이 하늘 안에서 이미 그 정보가, 인의예지의 정보가 온전하며 5행의 정보가 온전하며 이러한 원상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시공 안에 유형의 사물들이 만들어진다. 예, 그래서 유형의 사물로 표현될 때는 예, 이겁니다. 5가 7이 된단 얘기를 한 건 이거예요. 보세요, 1부터 5와 예, 6부터 9. 10은 완성이라고 빼구요. 이렇게 보면 요거를 선천수라고 하고 이걸 후천수라고 하고. 예, 이거를 뭐죠 生數, 만물을 낳는 수. 이거는 成數, 만물을 결실 맺게 하는 수. 이게(6에서 9로 올라가는 쪽) 생이고 이쪽이(9에서 6으로 내려오는 쪽) 성인데 陽陰으로 나누면 이래요. 그러니까 1부터 5까지 과정은요 무형, 아직 6이라는 게, 형체가 6이죠. 6면체부터 입체가 생기잖아요. 입체 생기기 이전에 우주가 앞으로 이렇게 5행으로 굴러가리라 하는 거를 표시한 거고, 예, 6부터 이제 9는 춘하추동으로 실제 만물이 굴러가는 모습이라는 거죠.

36:19

6 7 8 9로 우리가 굴러가니까 6 이전에 1부터 5는 더 선천적인 어떤 원리를 얘기하는 數잖아요. 그러니까 고걸 이렇게 표현해본 겁니다. 좀 어려워도 지나가세요. 앞에 제가 설명 드린 게 있으니까 어 이전 천부경 강의를 보시면 설명 돼있어요. 예. 그러니까 이겁니다. 텅 빔에서, 텅 빔이 우주의 근원으로 작용하면서 우주를 만들어내는데 먼저 자신 안에서 1부터 5의 숫자를 정립하고 그걸 가지고 6 7 8 9, 실제 만물 유형의 만물을 만들어서 굴리게 됐다. 그래서 그 5라는, 이 5라는, 5라는 수에서 이미 유형 만물의 원리는 다 갖춰져 있죠. 5행이. 그 5행이 제대로 모습을 나툴 때 6 7 8 9 중에 7이라는 게 만들어지면 확실하게 5행이 그 현상계가 굴러가는, 자립할 수 있는, 현상계에서. 6은 물질은 나왔지만 못 움직이고 있는. 겨울엔 못 움직이거든요. 7이 돼야 움직이는 모습이니까 5가 7이 됐다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제가 생각해서 여기 써 논 겁니다. 그래서 0은 존재하는 것이 본성이요. 다시 정리할게요. 0은 존재하는 것이 본성이요 1은 창조하는 것이 본성이며 5는. 지금 무극이죠, 0은. 1은 태극이구요. 5는 황극입니다. 황극은 중심을 잡고 다스려 경영하는 것이 본성이다. 그러니까 보세요. 7도 중심을 잡고 경영하는 거죠. 그런데 5만 돼도 여러분 이미 5부터는 황극이라고 하는 게 이겁니다. 가운데에서 동서남북을 경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5만 되면 이미 황극이고 5가 7이 된다는 거는 황극이 입체적인 황극이 됐다는 거죠. 현상계를 경영하는 존재가 됐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중심잡음, 균형잡음이 上下四方前後의 입체를 이룰 때 온전한 1인 7이 나오며. 5가 이제 부풀어지면 7이 된다는 겁니다. 이 균형이 정밀해질 때 7이 원만해질 때 9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38:15

9가 이루어진다. 8방을 경영하는 거죠. 자, 0부터 9까지가 대충 보면 이런 원리라는 겁니다. 천부경의 원리 이제 다 이해하신 거예요. 각각의 본성이 제대로 작동될 때 우주는 그 기능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각각의 숫자가 상징하는 기능들이요 온전히 굴러가야 돼요. 여러분 그러면 지금 상하사방에서 중심잡고 사십니까? 인간이 할 일은요 해탈, 이 해탈은 맞는 말인데 小乘的 해탈이 아니고 大乘的 해탈이에요. 어떤 자유죠? 해탈이라는 게 걸림이 없다는 건데, 현상계 밖으로 뛰쳐나가는 데 걸림이 없는 게 아니라 현상계 안에서 균형을 잡아버리면 걸림이 없는 거예요. 그쵸. 욕심에, 욕심과 번뇌에서 걸림이 없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욕심과 번뇌를 다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경영만 잘 하면 돼요. 자, 이 경영 잘하자는 게 중용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동양은 중용을 추구했지 이 열반에 들어가는 걸 강조하지 않았다구요. 우리 민족도 홍익인간하자 그랬지 예 우주에서 사라지자고 안 했단 말이에요. 지긋지긋한 이놈의 우주 사라지자. 이 얘길 안 하고 서로 그래도 코 묻은 뭐라도 좀 나눠먹고 살자는 홍익인간을 주장했단 말이에요. 인간을 이롭게 하자 그랬지 인간을 떠나자고 안 했단 말이에요. 그게 너무 다른 철학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도 것만 지금 위대해 보이는데 안 그래요. 우리 민족 게 훨씬 위대한 철학이에요. 이 천부경을 통해 제가 그 얘기 해 드리고 싶은 거예요. 우리 민족에 이 우주를 통으로 아우르면서 그 안에서 중심 잡고 仁義禮智 하자는 이 사상이 우주에서 제일 큰 사상인데 이거를 下賤視하고, 아~ 저기 인도는 세상을 그냥 가볍게 버리드라. 힘드신 건 알겠는데 그러지 마세요. 가정땜에 힘드시고 이 사회땜에 힘들고 뭐 이념땜에 힘들고 뭐 이런 계급땜에 힘드신 건 알겠는데 이걸 경영하고 끝내야지 도망가고 끝내실겁니까?

40:07

저 내면에서 찜찜하지 않으세요? 뭔가. 그래서 이럴 때 더 제대로 된 대승철학이 안 나오면 사람들은 오히려 더 힘들어져요. 소승도 못 하겠고 대승도 못 하겠는 그 중간에 껴가지고 힘들어지니까 제가 속 시원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제부터 소승 잊어버리시고 대승의 길로 갑시다. 자, 그래서 이 인간이 천지의 변화에 발 맞추어 황극을 잡지 못 하면 우주는 그 기능이 어그러지게 된다. 그래서 중용에 이 말이 있는 거예요. 사람이 中庸을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 찾고.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만물이 길러진다. 여러분이 우주의 한 분자기 땜에 여러분이 마음을 관리 못 하시고 생각 감정 오감을 관리 못 하시면 우주가 어그러져요. 그 과보가 지금 우주에 나타나서 천지가 제 자리를 못 찾고 만물이 죽어갑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이 마음을, 仁義禮智를 가지고 마음을 경영하실 때 우주도 온전해 진다. 여러분이 그렇게 큰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하는 거 이해 하시구요. 천지는 제 자리를 잃게 되고 만물은 제대로 길러지지 못하게 된다. 이게 중용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이 本心을 각성하여 천지를 품을 수 있게 되면. 여러분 본심은 원래 天地人을 넘어선 겁니다. 여러분의 참나자리는요 天地보다 높은 자리예요. 時空을 초월한 자리니까. 천지는 시공 안의 얘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본심을 깨쳐서 천지를 넘어서고 천지를 품고 그런 상태에서 살아가시면 여러분 천지가 제자리 찾고 만물도 다 길러지게 된다. 그 본심을 표현하면서 살면.

41:38

자, 이러, 여기까지 천부경 마치겠습니다. 예, 천부경 이제 좀 다 이 좀 와닿으신가요? 그래서, 그래서 여러분, 천부경의 핵심은 지금 여기서 이런 모습의 하느님으로 살아가자는 겁니다. 지금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여기 우리가 있는 우리 에고가 있는 이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이런 몸 이런 생각 이런 말을 갖고 있는 이런 언행을 하는 그런 존재의 하느님으로서 곧장 살아가시자. 살아가자. 이겁니다.

42:10

나중에 하느님으로 살게. 이런 게 아니에요. 지금 이미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각성하셔야 돼요. 조금이라도 더 솜씨 좋게 일을 처리하시고자 올바른 선택을 하시고자 지금 매순간 노력하셔야 돼요. 이 책임을 방기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 책임이 무서워서 자꾸 열반으로 도망가시면 안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이게 이제 천부경 사상입니다. 왜 해결이 안 되냐? 여러분 아무리 도망가도 어디로 도망갑니까? 태극으로 도망갑니다. 태극은요, 창조가 본성이에요. ㅎ 돌아버리겠죠. 그래서 인도철학은 태극을 詛呪합니다. 태극을 마야라고 부르면서 저주해요. 태극이 원흉이다. 그래서 인도 철학은 無極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합니다. 근데 동양철학은 一始無, 무극은 또 태극을 낳네요. 돌아버리겠죠. 그래서 여러분 못 도망가세요. 여기서 그냥 잘 하세요. 여기서 여유롭고 여기서 지혜롭고 여기서 자비로운 게 답이다. 조금도 도망갈 생각 하시면 안 된다. 대승은, 대승불교는요 이걸 알아낸 거예요. 그런데 재밌는 거는 우리 홍익 철학이 먼접니다. 먼저라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먼저란 말이에요. 古朝鮮때 國是가 홍익인간인데 그럼 최소 5000년 전이란 말이에요. 지금부터. 인도에서 대승 나온 건 2000년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럼 그 아이디어들이 어디서 갔겠냐. 모르죠. ㅎㅎㅎㅎㅎ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어디서 갔겠습니까. 모르죠 뭐 ㅎ 그래서 근데 저희 선생님은 아, 아주 단언한데 우리 민족에서 갔다고 주장하시던데. 예. 그건 더 더 증거가 나와야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연대적으로 앞섭니다. 그럼 최소한 여기서 뭐 거기 갔다. 주장하고 싶진 않지만 재밌는 게 있어요. 최소한 뭐가 이어지냐면 인도에서도 이런 대승 사상은 인도 안에 있는 몽골리안들의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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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얘기냐면 우리 몽고족들이 이걸 좋아해요. 대승 기질이 있어요. 인도인들은 자꾸 초월하고 싶어 하는데 이 몽고족들은 자꾸 이 우리가 이ㅈ 우리 동이족도 포함해서 자꾸 현실에서 뭔갈 하고 싶어 해요. 의미 있는 일 하고 싶고. 기질이 달라요. 최소한 우리가 그 다른 기질 때문에 대승적인 철학을 먼저 주장했구나. 이 정도까지는 저는 얘기할 수 있다고 봐요. 이런 거 있잖아요. 기질이. 뭔 일 생기면 도망갈 생각 먼저 하는 기질이 있고 더 직접적으로 뛰어들자는 기질이 있고.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봤을 때 안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더 파고들어서 인간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버리는 치유까지 하자는 쪽이 있고 이게 달라요. 입장이. 전 우리 민족의 기질이 좋다고 봅니다. 양심을 구현하는 데. 좋은 기질을 갖고 있어요. 다만 성취욕이 너무 세요. 성공 욕구가 너무 세요. 보니까 미국인들도 그런 거 같애요. 제가 미국을 안 가봤지만. 기질이 뭔가 통하는 게 둘 다 성공 욕구들이 너무 센 사람들이 있어요. 긍까 누리면서 못 살고 끝없이 성공을 향해서, 남이 못 이룬 뭔가를 이루어야겠다고 닦달하면서 살게 돼요. 잠 안 자고. 근데 이 성공욕구가 에고에게 초점을 맞춰지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소모적이고. 그것도 머리가 IQ가 좋은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머리 좋은 사람들이 너무 좁은 곳에 취직도 안 된 채로 모여서 성취를 향해 달려간다. 이거는 죽음이죠. 헬. 헬지옥이 열리는 거예요. 이 조건 맞으면 거긴 지옥입니다. 이해되세요? 미국은 땅이라도 넓죠. 좁은 데 그렇게 모여 있으면 빤하거든요. 그럼 서로가 서로를 헐뜯게 돼있어요. 잡아먹어야 돼요. 이건 이거 똑똑한 쥐들을 아마 좁은 우리에 몰아넣고 하면요 아마 그거 난리 날겁니다. 예전에도 그런 실험도 본, 들어봤는데. 그렇게 좁은 지역에 머리 좋은 친구들 모아놓고 계속 성공을 향해 부추기면요 이 정도 사는 게, 그 힘으로 이 정도 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작용도 감수해야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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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래서 저는 뭘 주장하냐면 아무리 경쟁해도 좋은, 영성으로 좀 성취욕구를 돌려보세요. 어 내가 이번 생에 아주 제대로 한 번 보살 돼야지. 홍익인간 누구보다 끝내주게 해야지. 이런 쪽으로 좀 돌려보시면 어떨까요. 예, 이해되시죠. 세속의 성공이라는 건 내가 올라가기 위해 남을 밟아야 되잖아요. 보살도의 성공이라는 건 내가 올라가기 위해 남한테 더 베풀어야 돼요. 이 좀 돌려야 되지 않을까요? 이왕 성공욕구가 강한 기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 기질을 좋은 데 쓰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양심 잘 하는 데 한 번, 우리가 한 번 서로 경쟁을 해 보는 게 어떨까. 그래서 서로 더 보살도 하는 데 경쟁해보는 게 어떨까. 이런 생각입니다. 이왕 우리 기질이니까. 그러는, 그런 면에서 또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아주 그런 고대부터 양심감각이 탁월했던 민족이기도 하고. 그런데 성취욕구가 강하고 현실이 예, 너무 힘들다보니까 우리가 어떻게(?)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어떤 경쟁을 많이 하게 됐는데 그 이게 영원, 우리 민족이 영원히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니에요. 近者에 와서 이렇게 된 거니까 근자의 그 카르마, 나쁜 카르마들을 또 다시 씻어내는 것도 양심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양심운동으로 서로, 서로가 서로를 북돋아줘서 좀 우리의 묵은 기질들 나쁜 기질들 한 번 뜯어고쳐보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게 가능합니다. 아까 그 이 기억하세요? 공원에서 혼자 이렇게 미친 듯이 춤 추고 있는 그 뻘짓을 해도 사람들이 여럿이 하면요 재밌어보여서 뛰어가는 게 이 사람이라는 거. 그런데 의미있는 일이면서 그게 진짜 진정 그 올바른 길로 보이면요 한국인들은요 분명히 호응합니다. 저는 그걸 믿어요. 뭐냐면 못된 인간, 우리 대한민국의 인간들의 기질인데도 보세요. 청문회 할 때 보면 그렇게 도덕군자들이 없죠. 즉 남 지적할 때는요 정말 도덕적이죠. 0.00001㎜까지 정확히 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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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아’ 그러면 안 되지, ‘어’ 했어야지. 그런 표정으로 얘기하는 건 아니지, 상대방을 어떤 표정으로 보면서 이런 얘길 했어야. 다 알고 있어요. 여러분 사실은. 양심 어떻게 해야 남에 대한 배련지 뭔지. 뭐가 옳은 건지. 다 알고 있는데 자기한테 먼저 안 쓰고 남한테만 쓰고 있다는 거죠. 자, 이 얘기는 어떻게 보면 최악의 지금 헬지옥을 만드는데 일조한 기질인데 거기에 희망의 싹도 있어요. 알고 있다는 거예요. 자, 이게 왜 의미가 있냐면요 다른 민족 어떤 민족은 되게 유순해가지고 남한테 함부로 안 굴면서 행복한 데도 있을 거예요. 근데 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지, 사실 더 힘들어요. 뭔 얘기냐면 6바라밀을 잘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돼요. 더 나은 6바라밀 하려면 머리가 받쳐줘야 끝없이 끝없이 더 우주의 창조적인 영감들을 받아서 소화해 냅니다. 남의, 남의 입장을 배려하려고 해도요 피해 안 주는 선은 다른 민족도 이렇게 유순하면 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인간의 길을 개척해가려면 머리가 더 좋아서 셈이 더 빨라야 돼요. win-win 하면서 빨리 빨리 계산해서 더 나은 걸 창조해내야 돼요. 그런 면에서 한국인들이 되게 자질이 있다는 거예요. 다만 그걸 되게 파괴적으로 쓰고 있다는 거죠. 그 기질을. 그러니까 저는 그걸 돌리기만 하면요, 다들 알고 있거든요. 알고 있는데 지금 그걸 표현하면 나만 뭐 되니까 못 하고 있던 그거를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지해주면서 한 번 같이 해 보고, 그거 잘 하는 사람이 인정받지, 인정까지 받는 시대로 가면요 무섭게 변합니다. 조선시대 500년간 선비 왕국을 만들었던 건 그거, 거 보통 얘기 아니에요. 선비들이 이 사회에서, 스타워즈 보면 제다이 있듯이요 조선에는 선비들이 이 나라의 元氣다. 氣運이다. 에너지다. 할 정도로 선비들이 나라를 살린다 할 정도로 500년간 선비들이 뭐죠 시골까지 구석구석에서 선비들이 배양되고 그 선비들이 仁義禮智 연구해가지고 자기 삶을 이렇게 무장, 그 진리로 무장하고 살았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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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안에서 욕심꾼도 많이 나오고 다 했지만 그래도 그런 전통이 있다는 거를 기억하시고 좋은 쪽으로 활용하시려고 노력하시면 천부경을 단순히 옛날 얘기로 듣지 마시고 천부경 철학을 이 땅에 지금 구현해 내야 된다.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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