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7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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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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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일자 2015. 11. 14. 土.
게시일자 2016. 01. 20.
동영상 길이 54:28
강의 중 인용 도서 천부경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S4qn2m50i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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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선생님이 예전에 천부경에 대해 설명하신 거 생전에 육성녹음 해놓은 거를 이렇게 제가 구해서 들어보니까 저도 천부경에 대해 그분이 어떻게 생전에 육성으로 푸셨는지 제가 모르는 정보가 많죠. 저는 저대로 그 분의 풀이를 보고 ‘아 이렇게 푸는 관점이 자명하다.’라고 인가가 돼서 그런 방향으로 연구는 했지만 그분이 생전에 어떻게 그걸 설명하고 했는지는 정확히 못 들었는데 나중에 최근에 그런 자료들을 구해서 보니까 ‘천부경은 점 하나 찍는 거다.’ 이런 얘기를 막 하시더라구요. ‘천부경이라는 건 결국 점 하나 찍는 거다.’ 그 점이 이제 제가 말씀드린 無, 無이면서 또 뭐죠? 無이면서 一始無 할 때 一. 그럼 수리로 표현하면 텅 빈 데서 하나가 나왔다 하는 고 한 점이에요. 그러니까 無만 점으로 아시면 안 돼요. 無랑 1이 하나다. 라는 얘기를 제가 천부경 처음 강의 때도 말씀 드렸죠. 텅 빈 게, 텅 빈 게 결국은 이 텅 빔으로만 있는 게 아니고. 텅 빔이라는 게 존재. 존재의 하느님. 존재 자체라면, 예 1이라는 거는 예 또 이건 창조의 주체로서 우주의 씨알로서 그 하나의 작용을 한다. 이렇게. 그래서 이게 결국 하나다. 텅 비어서 없는 것 같지만 그게 거기서 선명하게 알아차리고 있고 그 힘이 또 부풀어서 이 태극이라는 걸 형성한다. 이래서 제가 그 때 뭐라고 말씀 드렸죠? 예 여기서는 그냥 존재(無). 뭔가 있다. 이런 느낌이라면 창조(1)는 뭐죠? 내가, 나는 있다. 이랬나요? 예. 그 다음에 이 창조가 실제로 이제 진행이 돼서 이렇게 만물을 만들어 내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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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제 황극이라고 하죠. 이 자리를, 똑같은 자린데 그 때는 이 자리를, 이 뭐죠. 경영의 자리니까 경영한단 의미로 황극이라고, 이때는 ‘나는 있다.’에서 ‘나’는 뭐죠? 예 뭐 생각한다. 이런 감정을 느낀다. 이런 오감을 느낀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의 이 소우주의 문제에서는요 여러분의 그냥 순수한 존재감이 느껴지신다면 고게 여러분의 무극자리 입니다. 無. 텅 빔이에요. 그 자리에선 나와 남도 가르지 않고 어떤 구분도 없어요. 그런데 그 자리가 ‘나는 있다.’라고 할 때 이 ‘나’라는 거는요. 지금 ‘나는 있다.’만 있지 지금 술어가 안 붙었잖아요. 그 때의 ‘나’는 참납니다. 예 이 때는 나하고 남의 구별이 없어요. 그냥 우주가 나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요고(1 - 창조 - 참나)랑 요고(경영 - 에고)를 구분하셔야 합니다. 이때의 나는 이미 에고의 영역이고 에고가 발생하죠. 에고가 생겨요. 그러면 이 에고의 배후의 존재로 또 참나는 여전히 황극 작용을 하겠지만 이제 에고가 등장해버립니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나라는 거는 이미 제약을 입은 나기 때문에 에고가 돼요. 여러분이 맨몸일 땐 참난데 옷을 입는 순간 특정 옷을 입은 나가 되니까 이게 에고가 돼요. 제약이 일어나요. 그래서 이게 여러분 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원리고 이게 이제 천부경이라는 게 결국 한 점. 하나의 우주의 근원. 태극 자리에 대한 연구고 태극 자리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해서요 이렇게 연구하시는 게 좋아요. 중간(창조)자리, 이게 태극이죠. 존재 자체는 무극이라고 하고 경영은 황극이라고 그래요. 이 중간을 가지고 공부하시면 좋습니다. 이 중간, 한 점에 더 근원이 있고 한 점의 작용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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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중간의 한 점을 가지고, 우주가 나온 한 점을 가지고 그 씨알에 더 근원이 있고 씨알의 본바탕은 텅 비었더라. 그런데 이 씨알은 우주를 낳았다. 그런데 이 씨알이 우주를 낳을 때는 황극으로서 경영을 한다. 그래서 경영이라는 건 생각, 天地人을 낳듯이요 보세요. 생각이 天이고 감정이 人이고 오감이 地라고 하면 대우주로 치면 천지인이 나온 거죠. 소우주로 치면 생각이 일어나고 오감이 일어나고 감정이 일어난 겁니다. 요게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죠. 요건 내 얘기고 요걸 대우주로 확장하면 이런 원리로 우주를 파악한다. 천부경은 이런 경전이에요. 그래서 우리 마음의 근원을 정확히 설명한 다음에 여기서 그냥 구조를 설명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냐 이거죠. 어떻게 사느냐? 내 안의 이 태극. 여기서 부터는 시공을 초월한 영역입니다. 여기서부터 이 이상(창조단계 포함 그 위)은 에고가 없잖아요. 에고는 여기까지(경영)고 여기(그 위)는 에고를 초월한 세계기 때문에 나의, 여기서 이 두 마음(존재=무극 & 창조=태극)을 천부경에서 나의 本心 그럽니다. 앞으로 설명할 것 좀 미리 요약 좀 하시라고 제가 설명 드립니다. 그래서 나의 본심 자리는, 본심 자리는 영원하다는 거죠. 시공을 초월한 자리니까. 이 본심자리가 작용을 드러내는 거죠.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 끝없이 작용을 드러내는 게 그게 음양 오행으로 끝없이 이 생각 감정 오감을 굴리는 거죠. 현상계에서. 이 두 모습(本心과 用)이 나다. 하는 거죠. 이게 다 나다. 이것도 나고 이것도 나죠. 다 나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면서, 텅 빈 無에서 우주가 다 나온 것 같지만 그렇다고 無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無는 1로, 그리고 1은 더 큰 하나로. 더 큰 하나죠. 더 큰 하나로 이 끝없이 자신을 표현 하면서 이렇게 우주가 굴러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부경 끝날 때도 一終無終一 하는 게요 하나도 끝내고 無도 끝내기를 어서 하냐. 더 큰 하나에서 끝낸다는, 無로 돌아간다는 게 아니라 一終無終一. 一始無始一, 시작할 때는요 하나가 시작하기를 無에서 했고 그 시작한 하나란~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끝낼 때는 그런데 결국은 一終無終一. 하나도 無도 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마지막 하나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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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하나. 그 하나는 뭘까요? 천부경에서 말 했던, 하나가, 七一妙衍이라는 말이 나오죠. 七一妙衍. 천부경에.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말 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도 하나가 부풀어져서 前後左右上下를 갖추면 이 하나가 입체물이 되는 거죠. 형이상학적 하나가 입체적인 하나가 되는 거. 요게 7이 1이 묘하게 불어난 거, 그래서 천지창조도 꼭 7일 걸리는 이유가 그겁니다. 7일 걸린다는 게 실제 7일 걸렸을까요? 그게 아니라 일곱이라는 수로 설명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야 전후좌우상하가 갖춰지고 그리고 마지막에 그 안(가운데 점)에서 안식을 하잖아요. 神이 안식하는 자리가 있어요.

(神이 안식하는 자리)

그래서 이 신이 결국은 이렇게 해서 이 자신을 입체화 시킨 겁니다. 物現시킨 거죠. 이게 이 우주거든요. 신이 자신을 물현 시킨 게 현상계 우줍니다. 그래서 신과 둘이 아니에요. 신이 부풀어진 게 지금 7이라는 거죠. 즉 더 큰 하나라는 건 지금 수리적으로 말 하면 7인 거죠. 그러니까 一終無終一이라는 거는 하나도 無도 결국은 7이 되려고 지금 이 우주에서, 즉 결국 우주에서 끝없이 창조하기 위해서, 현상계를 펼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라는 결론으로 끝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本心은 불변이지만, 본심은 영원히 불변이지만 이 萬往萬來 하면서 만 번 오고 가면서 끝없는 작용을 통해서 예 또 이 道를 펼쳐내야 된다. 요게 천부경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이걸 해석을 잘못 하면 無로 돌아가자. 하고 끝날 수도 있어요. 예. 그러면 인도 철학처럼 됩니다. 인도 철학에 제가 반대하는 게 인도 철학은 無로 돌아가자는 거니까 1마저도 거부해요. 태극도 저주합니다. 태극이 있으면 우주가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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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문제. 무극만이 진실하다. 라고 믿는데 그런데 이 재밌는 건데요. 지금 이런 식으로 無에서 하나가 나오고 하나에서 현상계가 나온, 이 현상계를 이 하나가 또 경영하는, 이런 철학은요 우리 민족만 갖고 있는 게 아니고, 천부경이 설명이 참 잘 되어 있는 게 기가 막히지만, 인도에도 그대로 있고 서양 철학에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이런 철학은 제가 ‘이건 우리만의 것이다.’ 이렇게 얘기 안 합니다. ‘공부한 사람은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죠. 인도 성자들도 이걸 정확히 알아요. 이걸 眞我라고 그래요. 無만 진아에요. 이 진아가 에너지를 입는 순간요, 삼태극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맑은 사트바 에너지. 탁한, 요걸, 이게 맑아 보이지 않죠. 요걸 맑은 사트바 에너지. 예. 중간인 라자스 에너지. 요걸 탁하다고 할게요. 탁한 타마스 에너지. 요게 輕淸氣. 동양에서는 경청기 그럽니다. 맑은 기. 중간 기. 마지막 重濁氣 그래요. 중탁기가 땅을 만들고 경청기가 하늘을 만들고 중간기가 사람을 만듭니다. 요게 힌두교 철학에 그대로 있어요. 이 순수한 브라만이 에너지를 입는 순간, 이걸 인도 철학에서는 구나라고 그래요. 3구나. 세 가지 구나를 입는 순간 경청기에선 神이 나오고 중간기에선 에고가 만들어지고 중탁기에선 타마스 에너지에선 이 현상계가 만들어집니다.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이 에고가 살아가는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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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왜 그럴까요? 명상을 해 보면 다 똑같은 경험을 하게 돼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왜 초기불교에서 무아 주장하는 분들 많죠. 에고라는, 아니 그 ‘나’라는 건 결국 없다. 참나도 없다. 그건 제가 왜 그 그거는 그 말을 주장하실수록 챙피한 얘기라는 걸 저는 말씀드리는 거예요. 실험을 안 해보셨으니까 지금 그 얘기를 해요. 실험을 해 보시면 모든 걸 해체하고 열반에 들었을 때 그 열반에 든 놈은 누군데요. 열반에 들었다는 걸 아는 의식이 있습니다. 고거를 참나라고 부르는 건데 ‘아 나라는 건 없다. 나라는 건 없다.’ 이렇게 하면요 요게 뭔가 실험과 전혀 다른 얘길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실험해 보시라는 거예요. 참나건 아트마건 뭐 아무런 용어 뭐에 어떤 제약받지 마시고 용어 안 붙여도 좋으니까 실험해 보시라는 거예요. 여러분 의식에서 생각과 감정 오감을 다 없애고 한 번 존재해 보시라는 거예요. 그 때 있는 그게, 누구나 똑같은 체험. 그때도요 여러분 간단한 체험을 안 해요 생각 감정 오감이 다 사라져도 전 세계적으로 명상을 한 사람들이 보고한 얘기가 이겁니다. 태극과 무극의 체험인데 이 두 개가 또 달라요. 생각 감정 오감이 다 사라진 뒤에도 벌써 또 다른 체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가지 체험이. 크게는 둘로 나뉘는. 태극의 체험과 무극의 체험이 있어요. 이게 전 세계 명상의 달인들은 다 이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이걸 다 거짓이라고 하고 글로 배운 개념으로 이 무아를 떠들면 말이 되겠습니까. 이걸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실제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울 웃 뭐 슬프다. 나는 뭘 본다. 듣는다. 요걸 다 내려놓으시고 한 번 존재해 보세요. ‘나는 있다.’로만 계셔보세요. 존재한다는 상태로만 들어가 보세요.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여기선 이미 에고가 아니에요. 여러분이요 이게 나만의 어떤 개체적인 자아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어져요. 존재만 해요. 그런데 그때도 가만히 보면요. 존재하는 중에도 알아차리는 자와 그 미묘한 느낌이 같이 있습니다. 아직 이원성이 있어요. 이원성이 있는데 이건 현상계의 이원성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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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가 없기 때문에 이원성이면서 통합돼있어요. 이거를 그리는 걸 태극이라고 그리는 겁니다. 음과 양과 그 중간으로 그리던지 음양으로만 그리던지 똑같에요. 우리나라 태극기가 하느님을 그려 놓은 건데 이원적으로 그려놨죠. 음양을. 거기 세계에서는 음양이 싸우는 게 아니라 통합돼있어요. 통합돼 있지만 분명히 여러분 느껴보시면 분명히 에고도 다 사라지고 생각도 안 일어나고 아득히 혼자 존재하지만 환한 빛과 함께 존재한다는 자체가 참나를 빛으로 느끼고 있어요. 여기서부터 벌써 분열이 있어요. 분명히. 그걸 보는 놈이 있고. 보세요. 이게 셋이 나옵니다. 참나 자체가 있고요 여전히 지금 바라보는 놈이 있고, 또 이 바라보는 놈을 느끼는 주체가 있고, 바라보는 놈을 결국 빛으로라던가 어떤 느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세 개가 등장하죠. 참나가 있고 참나를 느끼려는 의식이 있고 그럼 참나에 대한 느낌이 있어요. 셋이 존재하죠. 이게 삼태극이에요. 고요한 중에도 이 셋이 있어요. 그럼 결국 근원적인 참나는 뭐겠습니까? 바라보는 놈만 참나예요. 그래서 그 자리가 무극입니다. 그래서 이 태극에 들어가시면 여러분 무극이 뭔지 알아요. 근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와 그걸 둘러싼 미묘한 에너지가 있고 근데 에고는 없어요. 이 체험을 누구나 똑같이 합니다. 그래서 힌두교 성자 마하리쉬 책 좀 구해다 보세요. 바라보는 자 眞我가 있고. 진아가 벌써 이 에너지 안에 들어오면 이 에너지 안에서 이거를 마하리쉬가 뭐라고 표현했냐면 진아가 부풀어졌다고 설명해요. 씨가 터지기 전에 부풀어지듯이 부풀어 오른 상태를, 태극이라곤 안하죠. 거기서는. 여기서는 이게(그림 가운데의 無) 브라만이라면 이거는요(無를 둘러싼 SRT 삼태극) 마하트라는 상태에요. 이게 우주의 하느님이라고 봐요. 거기서는. 참나가 부풀어 졌다는 거예요. 에너지의 옷을 입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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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직 만물은 안 나왔어요. 에고도 안 나왔죠. 이게 씨가 터지면 만물이 나오죠. 우리가 말하는 황극에 해당되는 상태가 벌어집니다. 이 두 가지 구분을 미묘하게 설명해 내면서 마하리쉬가 진아, 아무리 깊은 삼매에 들어도 진아만 있다면 그 진아에 대한 미세한 느낌이나 지각은 뭐란 말인가? 하면서 아무리 깊은 삼매에 들어도 우리는 참나를 미묘하게 느끼고 있는 미묘한, 지극히 순수한 에고라고 부르더라도, 그 순수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 이건 에고는 아니다. 묘하죠. 왜 이 미묘한, 명상의 몇 십년간 명상에 들었던 달인이 결국 참나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깊은 명상에 들어도 참나를 느끼는 미묘한 의식이 있다. 미묘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 이건 에고의 마음은 아니다. 순수한 에고라고 만약에 부른다고 해도 그 때는 우리 에고로 말하는 게 아니고 순수한 나라는 의미로만, 순수한 나의 상태. 따라서 마하리쉬가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이 상태(삼태극)부터는 이미 다 브라만이다. 이 상태는 다 브라만. 그런데 분명히 구분을 해요. 여기서 마하리쉬는 요즘 어떤 그 책 번역 마하리쉬 책 번역 많이 하신 그 스님이 있죠. 그 분이 뭐라고 번역하시냐면 이거(無)를 순수 의식. 이거(삼태극)를 순수 마음. 미묘하게 구분을 줍니다.

15:23

이 다르니까. 그리고 여기(삼태극)는 우주의 씨알이 된다. 여기(無)는 우주로부터 완전히 초월된 자리다. 이게 무극 태극 구분이거든요. 자 이 힌두교 성자의 이 얘기랑 서양 철학자 중에 플로티누스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주에는 一者(無)가 있다. 오직 그 자신만 존재하는 자가 있다. 그 다음에 우주에는 누스(태극), 정신으로 번역하죠. 정신이 있는데 정신에 오면 이원성이 생기는데 정신은 오로지 이 일자만을 바라보고 일자만을 반영하는 자리인데 정신에 오면 일자를 보는 주체와 일자에 대한 어떤 객체적 느낌이 같이 존재하면서 이 객체를 이데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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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주체) 엄밀한 의미로 누스죠. 누스와 이데아가 통합된 형태예요. 그런 누스를 얘기해요.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있는데 이 때는 우리의 개체성을 초월해 있고 그래서 이걸 설명할 때 플로티누스가 오직 하나인 것(無), 그리고 이걸(태극) 설명할 때는요 다수를 포함한 하나, 다수를 머금고 있는 하나죠. 그 다음에 황극까지 설명합니다. 일자 누스에서 여기서 이제 우주가 만들어지는데 우주를 만드는 주체로서 작용하는 이 누스 다음에 오는 누스의 작용을 세계영혼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황극이에요. 세계를 경영하는 자리. 누스의 명령에 따라 전 세계를 일정한 질서에 따라서 경영합니다. 여기에서 그 다음에 인간의 개체적 영혼이 나와요. 그래서 이러면서 요 세 개. 일자와 누스와 세계영혼은 우주를 구성하는 우주를 지배하는 세 가지 주요 원리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이 사람은 삼매에 계속 들었어요. 죽기 전에 내가 설명한 모든 거는 내 마음 안에서 발견된 것들을 우주에다가 접목해 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명상을 하면요, 일반인도 명상에 똑같이 듭니다. 이렇게. 재밌죠. 일반인도 명상 다 이렇게 들었다 나와요. 포착을 못 하는 거예요. 자기 의식의 이 선명한 구분들을. 그런데 이 영성지능이 예리한 사람들은

17:32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 미묘한 구분들을 느끼고 나와요. 그러니까 이 플로티누스도 삼매에 많이 든 분 같지는 않은데 큰 삼매는 몇 번 들었다. 인생에. 이렇게 얘기할 정도니까 뭐 많이 든 분은 아닌데도 정확히 그거를 성질을 구분해 냅니다. 고게 대단해요. 그러니까 예리하게, 그런 우주여행을 다녀온 분들도 설명 잘 해줘야 우리한테 도움이 되지 이 영적인 세계를 탐험한 분들도 설명을 정확히 해줘야 우리가 그 세계를 우리도 같이 탐험해 볼 수 있죠. 맞춰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이 명상의 제일 달인들, 그리고 서양철학에서 이 그걸 철학적으로 풀어낸 분들이 한 체험들이 똑같다는 거예요. 그게 동양에선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간단한 용어로 설명해 냅니다. 그래서 이 게, 이런 거 무시하고 에고란 뭐죠, 이 에고의 세계. 에고의 세계는 생각 감정 오감인데. 이게 초기불교식 접근입니다. 지금 소승불교식 접근이 이래요. 에고는 생각 감정 오감인데 이놈들이 다 무상하니까 에고도 망상인거고 에고도 원래 없는 거고 참나도 없는 거고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요런 식 접근은요 정말 피상적인 접근입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하셨을 리가 없어요. 부처님의 설명 이면에는요 열반이라는 게 참나라고 생각하고 얘기하신 거죠. 열반이라는 걸 無로 돌려버리고 진짜 무로 알고 얘기해 버리면 정말 피상적인 설명에서 끝나요.

19:00

에고는 생각 감정 오감인데 그걸 다 내려놓으면 이게 다 무상한 거니까 요거 없으면 우주는 없는 거 아닌가요? 이건 개념으로 지금 접근하고 계신 거예요. 진짜 한 번 없애보세요. 생각 감정 오감을 다 없애보세요. 뭐가 있나. 열반이라는 게 기다리고 있고 여러분 열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열반에 대한 미묘한 체험은 태극 상태고 더 근원적인 궁극의 열반 상태는 우리 안에 있는 무극의 요소가 있어요. 순수한 존재가 있어요. 순수한 알아차림. 거기에 대한 미묘한 느낌이 있어요. 근데 그걸 에고의 느낌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이제 에고가 발생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요. 이런 차원들을요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 드리지만 4선정에 들며는 극치에 들면 이 태극상태에 들어갑니다. 멸진정이라는 거는 그 안에 있는 무극이 더 드러난 상태. 태극이, 자 뭔 차이냐. 태극의 존재는 뭐죠? 플로티누스가 정신이라고 말한 이 존재는 이 무극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또 동시에 현상계를 이끌어 내는 힘입니다.

20:04

그런데 일체 생각 감정 오감이 완전히 끊어진 멸진정에 들어가면요 이 현상계하고 접속이 완전히 끊어져요. 그럼 그 때는 태극적인 요소보다는 무극적인 요소가 더 뚜렷해집니다. 그 때를 멸진정이라고 하는 거예요. 4선정은 무극적인 요소보다는 태극적인 요소가 아직 강력해요. 곧장 생각이고 말이고 행동이고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는 그 근원적인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 거고. 멸진정이라고 하면 생각 감정 오감을 일으키려고 해도 끊어져버렸던 상태거든요. 그 상태 들어가면 무극이 더 중심이 되고 4선정 정도로 이제 생각, 출정해서 곧장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 명상에서 생각을 자기가 의지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선정에서는 태극성이, 즉 우주를 경영해 내는 뿌리로서, 주체로서 작용하는 태극의 이 성질이 더 중요하죠. 태극이 한 생각 일으키면 황극이 되는 겁니다. 태극과 황극은요 같은 거예요. 태극은 우주의 근원이라는 입장에서 말 하는 거고 황극은 태극이 우주를 경영할 때를 말하는 거거든요. 예. 이렇게 이해하시면, 그리고 이 무극은 뿌리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죠. 무극의 작용이 태극이고 태극의 작용이 황극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태극과 황극은 사실 같은 거구요. 우주의 경영자로서의 입장이냐 우주의 뿌리로서의 입장이냐 그 차이고, 그리고 왜냐면 우주가 돌아가면 황극 작용이 멈추는 때가 있을까요? 우주가 지금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그럼 태극은 사라지고 지금은 황극인가요? 그게 아니에요. 태극이 황극으로서 지금 작용하고 있죠. 그런데 그 자체로 볼 때는 우리가 태극이라고 부르는 거죠. 경영할 때는 황극이라고 하고. 경영하는 입장이 아니라 우주를 낳은 근원, 우주의 근원이라는 입장에선 태극이라고 하고. 그런데 이 태극이라는 것도 들어가 보면 분명히 음양의 2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근원적인 모습, 無라고 하는 텅 빈 무극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라고 얘기 하는 거죠. 그러니까 천부경에서, 제가 이 얘기 드리는 거는, 천부경에서 하나가 無에서 생겨났다. 一始無 하나가 무에서 시작했다 그러면 無가 더 본질이라는 얘기지 하나는 없고 無만 있을 때가 있었다. 라고 생각하시면 신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 한다는 겁니다.

22:17

하느님은 항상 태극으로 존재하거든요.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무극을 그 안에 본질로서 갖고 있으면서 태극으로서 우주를 창조해내는 주체가 하느님 아닙니까? 그래서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그러면 생겨났다 죽었다 한다. 라고 말 하는 거랑 똑같죠. 이 1은 신이에요. 우주를 창조하는 신은 직접적으론 이 1을 말하잖아요. 태극자리. 태극이 죽었다 살았다 하면 되나요? 그러니까 無에서 시작했다. 그러면 태극이 언젠가 무극에서 기어 나왔단 얘기죠. 그럼 언젠가 끝날 때도 있겠죠. 여기서 잘못 되니까 인도 철학은 태극이 생겨났다고 보는 겁니다. 원래 無만 있었는데 생겨났다. 요놈이 생겨나서 우리가 힘들어졌다. 태극을 없애고 다시 無로 돌아가면 우리는 근원적인 화평을 얻는다. 이론이 그렇게 전개돼버려요. 전제가 잘못 되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잘못 되니까 이 천부경을 이해하실 때 無 중심으로 이해해 버리면 결국 우리도 無로 들어가고 끝나야 되나보다 하는 결론에 도달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一始無始一이라는 거는 우주에 하나가 있는데, 한 점이, 그 한 점의 근원은 無다. 그런데 이 하나에서 우주가 나왔다. 이 하나가 神이다. 이거거든요. 이렇게 해서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셔야 되고 이런 논리 비슷한 게 지금, 이게요 大乘起信論 있죠? 대승기신론에서 이게(태극-창조) 한마음입니다. 한 마음의 본체는, 한 마음의 본체는 空이고, 한 마음의 작용은 황극으로서 生滅門이라고 하죠. 心生滅門. 마음이 생멸하는 에고의 세계가 한 마음의 작용이고 한 마음의 본체는 心眞如門이라고 해서 진여 그 자체.

24:03

항상 참되고 항상 똑같은 그 자체. 이렇게 해서 구분합니다. 그래서 한 마음을 중심으로 풀어가죠 대승기신론도. 眞如門을 중심으로 안 풀어요. 한 마음의 본질이 진여고 한 마음의 작용이 생멸이라는, 이런 논리가요 똑같에요. 그래서 공부하신 분들은 다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진리니까 받아들여 주시면, 받아들이시라는 게 믿으시라는 게 아니라 아 요게 유력한 가설이다 하고 공부를 할 때 이 설에 맞춰 보시라는, 그래야 빨리 습득이 되고 가장 이 뭐죠, 보편적인 설명을 가지고 여러분 공부하시는 게 좋지 치우친 설명을 갖고 공부하면은 되게 치우쳐지고 보편적으로 경전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전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서 이런 영적인 세계를 탐험한 그 기록인데 이 기록을 치우친 기록을 먼저 중심으로 읽고 보면 더 보편적인 체험도 무시하게 돼요.

24:57

그래서 제가 가장 동서양 모든 성인들 중에 보편적인 어떤 체험들을 설명 잘 하신 분들 얘기를 엮어서 지금 해 드리는 거예요. 이 정도 큰 그림을 그려놓고 공부 하셔야지 균형을 안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안에 이게 있다는 걸 명상으로 꼭 체험해 보세요. 생각 감정 오감을 내려놓으시고요 내 이름도 모르겠다. 하면 바로 이리 들어갑니다. 그래서 내 이름 모른다가 제일 중요해요. 내 이름을 모르겠다. 해버리면 여러분은 이미 존재만 하는 상태에 들어가요. 그래서 존재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보면 미묘하게 알아차리는 자가 있고 또 그 알아차려지는 미묘한 느낌들이 있어요. 이걸 이데아라고 하는 겁니다. 그 미묘한 느낌을. 에고가 없는데 미묘한 느낌들이 있어요. 그 상태에서 결국 더 근원적인 건 알아차리는 자 자체니까 고 놈이 ‘아 하나라는 건 無에서 나왔구나.’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거기서 부풀어진거구나. 그런데 말을 이렇게 하면 꼭 시작이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하나라는 것의 작용이에요. 하나가 無에서 나왔고, 無가 일정 에너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하납니다. 이건 현상계의 에너지가 아니에요. 고차원적인 에너지지. 그래서 현상계 안에 들어온 순간 여러분은 에고를 갖게 되고 개체적 자아감을 가지고 좋다 싫다를 따지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 안 해드리면 여러분 나중에요 참나 상태에 들어가서도요 미묘하게 뭔가 내가 이렇게 참나 상태만 들어가면 단순히 텅 비었다. 라고만 배웠는데 실제 들어가 보면 느낌이 좀 다르거든요. 그 느낌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예전에 이미 다 있었고 몇 십년씩 평생을 명상에 빠졌던 분들도 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다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26:50

그걸 참고하지 않으시고 막연하게 공부하시면은 아마 나중에 가면 또 찜찜한 부분이 나오실 거라서. 이게 또 천부경을 이해하는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 말씀을 미리 드렸습니다. 예. 이거 다 지우고 다시 할게요. 천부경을 그냥 하나의 그림으로 설명해 드렸고요 이걸 이제 수리까지 등장시켜 설명하면은 복잡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본질은 이거에요. 본질은 내가 여기 지금 어떻게 살아야 되냐. 예요. 나는 지금 우주에 왜 존재하나. 나라는, 나의 몸에 얽힌 숫자는 일곱입니다. 위아래. 정육면체니까요. 몸뚱이는. 위아래. 전후좌우가 있잖아요. 그리고 내 중심자리인 이 참나. 이렇게 해서 보면 이게 난데. 그러면 그 나의 본질은 그러면 이 현상계의 본질은 하나에서 나왔잖아요. 그 하나는 어서 나왔냐는 거죠. 하나는 보니까 無에서 나왔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하나가 이미 神이더라는 거예요. 나의 본심. 영원한 내 마음인 거예요. 본심이라는 거 자체가 영원하다는 얘기죠. 하나도 영원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 하나라는 게.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이 영원한 하나를 나는 품고 이 태극으로 품고 현상계를 경영해야 돼요. 그런데 나의 자각이 옵니다. 인간은요 문제가 뭐냐면요 우주 만물은 태극 그대로 굴러가게 돼있는데 인간은 인간의 에고가 협조해 주지 않으면 태극이 구현되지 않아요.

28:25

양심대로 살 수도 있고 욕심대로 살 수도 있어요. 요게 인간은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서 내 마음이 내 양심의 뿌리가 그 하나라는 걸 알고 그 하나가 태양처럼 광명하다는 걸 알고 그 태양의 광명함에서 빛도 받고 열도 받고 에너지도 받아서 내 살림살이를 운영해서 萬往萬來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 윤회하는 중에 끝없이 더 온전한 일곱이죠. 더 온전한 일곱으로 자꾸 나를 가꿔가는, 그래서 이 몸뚱이를 지닌 하나님으로서 나는 이 우주에 내 기능을 하겠다는. 無는 無로서 기능하고 1은 1로서 기능하겠지만 그게 일곱으로 부풀어져 나올 때는 에고가 돕지 않으면 안 이루어져요. 여기서부터 인간의, 인간의 아주 그 임무가 생깁니다. 인간이 현상계에서 돕지 않으면 우주의 도리가 인간계에서 펼쳐지지 않습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이 이치를 알고 살아가겠다.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 끝없이 갈고 닦으면서 지금 이 순간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자리가 아니라 지금, 시공 안에 지금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도를 펴는 하나님의 모습을 내가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해 내겠다. 이게 인간의 임무가 됩니다. 이걸 자각하신 분들이 써 놓은 거예요. 이걸 자각하시면, 기독교로 말 하면,

29:53

나는 신의 온전한 분신이 되겠단 얘기고 불교로 말하면 佛子죠. 부처의 온전한 분신이 돼서 비로자나불의 화신이 되고 이 순간 신의 화신이 돼서 내가 살아가겠다. 하는 그 자각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와 같이. 하늘은 어디죠? 0과 1의 세계에선 도가 다 이미 구현돼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일곱의 세계. 현상계의 세계에 내려와서는 구현이 안 된단 말이에요. 땅에서도 하늘에서와 같이 뜻을 이루어 내겠다. 요게 성인들의 똑같은 공통 목표죠. 이런 같은 얘기를 우리 인류 보편적인 얘기를 우리 민족이 1부터 10이란 숫자를 써가지고 이렇게 설명해 낸 방식이 아주 멋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안에 또 동양 철학의 가장 뼈대가 되는 원리들이 다 들어있고, 그래서 제가 천부경 강의를 또 특별히 또 강의를 또 한 번 했는데 또 하고 하는 이유도 이걸 충분히 설명을 더 드리고 싶어서 한 겁니다. 여기 6페이지 한 번 보실래요?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 요 부분도 설명을, 여기 이 부분만 간단하게 드리고 좀 쉬었다 하겠습니다. 예. 자. 아까 여기가 이제 경청기라고 했죠. 하늘의 자리. 여기는 중간의 기. 여기는 사람의 자리라고 치죠. 이거는 그냥 임의로 제가 정한 겁니다. 보세요. 여기는 無예요. 순수한 알아차림만 있는 세곕니다. 동양에서는 순수한 알아차림을 虛靈不昧라고 그래요. 텅 비어서 어둡지 않고 꿰뚫어 보고 있는.

31:40

그 신령의 자리. 요 자리를 여기까지(天地人까지) 그리면 태극이 됩니다. 여기만 그리면(無까지) 무극. 여기까지 그리면 태극. 그래서 무극은 보통 混元一氣라고 태초에 한, 그 헤아릴 수 없는 어떤 부분도 없는 한 기운. 이렇게 설명도 합니다마는 그 이 한 기운이나 존재나 의식이나 다 같은 말이죠. 그 상태가 있고 거기에서 좀 더 맑은 에너지, 중간 에너지, 무거운 에너지의 미묘한 구분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이미 현상계가 아니기 때문에요, 현상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태극 상태에서는 중탁하다고 해서 땅이 있는 건 아니에요. 땅을 이루는 요소가 있는 거죠. 그래서 다 하나 하나씩 붙여주는 겁니다. 이것(天)도 태극이고 땅도 태극이고 사람도 태극이라 삼태극이거든요. 하나라는 거는 우주의 씨알이라는 뜻입니다. 이 자체가 하나잖아요. 無와 1의 문제잖아요. 1 안에 이런 세 가지 구분이 있더라 하는 얘기지. 지금 다 태극 얘깁니다. 요게 인도식으로 말 하면요 지금 이게 사트바 에너지. 이게 라자스 에너지, 요동하는 에너지고. 순수 에너지(사트바), 요동의 에너지(라자스), 타마스 탁한 에너진데 자 그러면 이 세 가지 에너지, 이건 구나라고 하는데 요게 인도말로 구나라고 하는데 요게 나타나 버리면 그럼 이 때 이미 에고도 있고 다 있는 거 아닙니까? 에고도 있고 세계도 있고. 그게 아니에요. 지금 이 전체(삼태극)가 사트바 에너지에요. 한 에너지 안에 또 세 개씩 나눠져 있거든요. 이해되세요?

33:11

여기서 이제 이 에고(라자스)가 커져서 진짜 에고를 입으면 그 때 라자스 에너지가 있고 그 안에 또 사트바, 더 맑은 에고, 에고의 맑은 영역 중간 영역 탁한 영역이 있는 거고. 이게(타마스) 땅을 이루어서 세계를 만들어 낸 다음에 그 안에 또 더 맑은,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의 영역이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하늘이라는 건요 이 사트바, 정말 맑은 차원의 태극의 하늘이 아니죠. 땅과 쌍이 되는 맑은 영역이죠. 공기 부분이죠, 대기 부분. 그럼 이거는 사실 물질계의 하늘이에요.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 건. 그러니까 지금 하늘 그럴 땐, 동양에서 하늘 그럴 땐 물질의 이 하늘만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얘기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지금 이 원리로 말하면 인도식 표현으로 사트바 에너지를 지금 하느님이라고도 부르는 거고요 또 이 라자스 영역 타마스 영역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뭔 얘기냐면 태극 안에 陰陽中이 있다고 해서 그 음양중이 꼭 현상계의 음양중은 아직 아니라고요. 태극 상태에서의 미묘한 구분이니까. 요 때 이 세 개를 구분해 놓고 요 세 개가 각각 동등한 하나다. 이렇게 얘기한 겁니다.

34:26

그런데 자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는 하늘도 결국 그러니까, 우리나라 철학도 똑같에요. 하늘도 그러면 셋으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늘도 더 양적인거 더 음적인 거 중간적인 거. 이게 인도철학으로는 사트바, 순수한 사트바, 탁한 타마스,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고 중간에서 요동하고 있는 라자스, 요 세계가. 자. 여기도, 땅도 더 양적인거 더 음적인 거 더 중간적인 거. 사람도 더 양적인거 중간적인 거 음적인 거. 요 부분에 대해서요. 자 그런데 보세요. 태초의 하나가 셋으로 나뉘었는데 하늘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로 또 양음중으로 나뉘고. 도형으로 하면 제가 양은 이렇게 했죠. 동그란 하늘을 닮았고 음은 네모난 땅을 닮았고 중간은 위로는 하늘을 지향하고 밑으로는 두 발을 가지고 있는 건 땅을 닮은 거고.

35:34

셋으로 나누어진다. 하늘과 땅의 가운데 사람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땅의 하나와 사람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로 셋으로 나뉜다. 각각 나뉩니다. 이 셋이 셋으로 모이면 아홉이 되는데. 아홉, 이걸 다 더하면 아홉이라는 수죠. 그래서 우주를요 우주를 설명할 때 9면 이게 가장 지극한 수죠. 현상계에서 10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9가 가장 어떤 극치에 이른 수죠. 극치의 수. 현상계. 그걸 상징합니다. 천지인이 양음중 양음중을 다 구현하면 아홉이라는 숫자가 나온다는 건, 9가 이 현상계를 설명하는 최고의 수다. 자 그런데 이는 발산의 수인 양수 셋의 합이니. 자, 각각. 동양에서는요 三天兩地 그럽니다. 3은 하늘이고 둘은 땅이다. 1은 태극이거든요. 그러니까 원래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인데 1을 하늘이고 2를 땅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이렇게 얘기하는 건 1은 태극으로 놓고 빼고 그럼 홀수 중에 그 다음은 3이죠. 하늘은 셋이고 땅은 둘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이렇게도 설명해요. 하늘은 똥그랗고 땅은 네모나니까 하늘이 면적 셋을 먹고 땅이 둘을 먹죠. 또 이렇게도 설명합니다. 乾卦는 셋을 다 먹으면 坤卦는 3분의 2만 먹었죠.

그래서 삼천양지 삼천양지 이런 식으로 하늘은 셋이고 땅은 둘이고. 합치면 5가 되죠.

37:05

그래서 5가 되면 천지가 합해지는 숫자로 상징하기도 합니다. 5를. 자 그런데 아무튼. 그러니까 지금 셋 셋 셋씩 더했다는 얘기가 벌써, 9가 나온다는 게요 셋을 더했다는 것 자체가 양적인 어떤 결합인거죠. 음적인 결합이 되려면 둘만 더해야죠. 둘씩. 그러면 보세요. 둘씩만 더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 이렇게 양수 셋의 합이니, 하늘 땅 사람의 모든 변화를 총괄하구요 반대로 이 음적인 결합은요 이 음수를 취하니까 둘씩만 취합니다. 양음 양음 양음 이렇게 하면 6이 나오죠. 이게 지금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라는 뜻입니다. 하늘도 원래 셋인데 그 중에 둘을 뽑고 땅도 셋인데 둘을 뽑고 사람도 셋인데 둘을 뽑았다. 그래서 밑에 보시면 하늘의 셋 중에 둘을 취하고 땅의 셋 중에 둘을 취하고 사람의 셋 중에 둘을 취하여 하늘 땅 사람의 알짬을 함축한 유형 만물의 씨앗이 6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게 정6면체가 갖춰지면요 덩어린 나온 거잖아요. 이게 이 형이하의 세계에서는 씨알인거죠. 씨알도 정6면체죠. 위아래 좌우 상하는 갖추고 있단 말이에요. 아직 작동을 안 하더라도. 즉 6은 작동 안한 씨알의 모습을 갖고 있고요 이미 입체물이니까. 전후좌우상하가 있으니까요.

38:36

그게 이제 7이 되면 중심점이 잡힌 거죠. 중심점이 잡혀서 이 씨알이 싹이 나서 살아 움직이는 겁니다. 이게 봄의 그 싹을 상징하고요. 이제 8이 되면은 8방으로 다시 찢어지죠. 8방으로의 분열을 뜻하니까 이거는 봄에서 여름 가는 동안 싹이 분열되는 것도 말하고요 여름 지나서 무너져 내리는, 보통 가을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가을의 어떤 분열상이죠. 쪼개지는 모습. 그리고 봄에서 여름 갈 때는요 가지가 자꾸 뻗어나가는, 자라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자라는 모습이라고 일단 보시고 상징하는 거는 이제 가을을 상징하는 거라는 것도 알아 두시고여. 8. 9는요, 이 팔방으로 찢어진 것들이 가운데로 통합 돼서요 지금 천지인이 셋씩 나뉘었을 때 극치에 이른 숫자 9가 되죠. 즉 이게 여름입니다. 여름에 만물이 자신의 존재를 다, 씨알에 있는 거를요 마음껏 펼쳐내는 계절이 여름이거든요. 감춰졌던 6이 지금 봐도 숫자도 꼭 뒤집어져 있죠? 아라비아 숫자로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6이 뒤집어지면 9가 되듯이 씨알이 완전히 정반대로 자기가 갖추고 있는 거를 다 드러내요. 더 뭐 할 수가 없어요. 9라는 숫자가 극치니까. 그래서 이 9가 다시 무너져 내리면 8이 되죠. 그래서 그 때는 가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9가 다시 무너지면 8이 돼요. 그랬다가 씨알. 뭐죠. 가을을 거쳐서 겨울이 됐다가 겨울에서 다시 봄이 됐다가 봄이 가지치기 하다가 9까지 가면, 극치에 이르면 다시 무너져 내리면서 8이 돼서 다시 6이 되는.

40:23

그래서 지금 6 7 9 8이면요 주역은 이 숫자만 아시면 예 주역점도 다 이 숫자로 칩니다. 점을 쳐서 요 네 개의 숫자를 뽑아내요. 그럼 요게 태양이 되고요 양이 너무 과하잖아요. 6은요 음이 과하잖아요. 왜 태음(?)인지 아세요? 곧 음으로 넘어가버려요. 양이 너무 지금 상한가라고요(태양). 갈 데까지. 여긴(태음) 지금 하한가 친 거예요. 이제 반등하거든요. 반등하는 기운이 7입니다. 소양. 작은 양 젊은 양. 여기도 이제 노양이라고도 해요. 늙은 양을 말 할 땐. 자, 작은 양 늙은 양. 또 8은요? 소음이라고 하죠. 자 이 때 보세요. 주역점을 쳐서 蓍草점이라고 막대기를 계산을 다 합니다. 그럼 마지막 숫자가 탁 나오잖아요. 고 숫자를 보고 결정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만약에 6이 나오면요 태음수죠 태음수. 태음이 나오며는요 지금은 음인데 곧 양으로 바뀐다는 뜻을 갖게 돼요. 만약에 7이 나오면요. 앞으로 당분간 양이에요. 이놈은 안 바뀝니다. 이렇게 점을 쭉 쳐서 지금 태음이나 태양이 나온 데만 뒤집어져요. 그게 變爻가 돼요. 보세요. 乾乾乾乾乾乾. 점을 쳐서 이게 나왔는데 요놈만 지금, 나머지는 소양이고 7이란 숫자가 나오고 이건(初爻) 9라는 숫자가 나왔어요. 이건 태양이에요. 그럼 이 괘는 앞으로, 지금 현재는 乾卦의 상이 지배하지만 이 건괘의 로고스가 이 현상을 지배하지만 곧 어떻게 바뀐단 얘깁니까? 요게 변효가 나왔다는 건 지금 여기서 태양이 나왔다는 거는 곧 음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이게. 그러면 전혀 다른괘가 되죠. 앞으로는 요 로고스가 지배한다는 겁니다.

42:18

그래서 점을 치면 이 건괘 9의 초효를 읽으면 초효가 동했다. 라는 의미거든요. 초효를 읽으면 潛龍不用. 잠룡이니까 쓰지 마라가 써 있습니다. <6룡이 나르샤> 최근에 하는 게 요거예요. 건괘를 가지고. 이게 다 한 개 한 개가 용이에요. 요 하나 하나가 震卦거든요. 진괘 여섯 개가 쌓인 게 건괩니다. 용이 여섯 개가 지금 쌓여있다구요. 용 기운이. 하늘 땅. 천지에 꽉 차있는 겁니다. 밑에 두 개가 땅이고 위에 두 개가 하늘이고 가운데 두 개가 사람이에요. 천지인 삼계에 양기가 꽉 차 있는 상태에요. 乾이. 그런데 밑바닥에 있는 요 용이 움직여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용은 용인데 곧 음으로 변하니까 음이면 이게 巽卦는 숨으란 뜻이거든요. 용은 용인데 숨어 있는 용이 돼버리기 때문에 요 용은 못 쓴다 해서 乾卦 初爻를 치면 潛龍不用 딱 나옵니다. 반대로 이제 건괘의 이 九五가 뜨면요 飛龍在天 합니다. 요게 음으로 변한단 얘기는 여기가 태양이 하늘 위에 뜬 격(☲)이죠. 요 용이 주인 노릇 한다 해서 비룡재천. 그래서 이 여섯 용의 기운을 천지에 꽉 찼다고 보고 이 중에 어느 기운이 변동을 일으켜서 지금 소양이면 한참 뻗어 나가니까 당분간 양이고 노양이면 곧 음으로 바뀐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지금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는 거예요. 주역은 이런 식으로 점을 칩니다. 이 원리. 그래서 6789가 중요해요. 6789만 알면 저게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이 계속 돌고 도는 이 6789가 중요하고, 천부경에서도 뒤에 나오지만 萬往萬來할 때 이 6789를 얘기하는 게 만물은 6789로 돌고 돌아요.

44:07

12345는 여러분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형이상학적인 수고 현상계에서 여러분이 중요시할건요 몸뚱이 자체 씨앗 여섯, 씨앗에 싹 난거 일곱, 아주 번성한 거 9, 쪼그라든 거 8 요게 여러분 현상계에서 지배하는 후천적인 수는 6 이후가 여러분을 지배하는 후천적인 수거든요. 1부터 5는 형이상학적인 수예요. 여러분이 생겨날 때 그 원리로 생겨난 거고 생겨난 후천적인 몸의 근원은 6이에요. 그래서 지금 천지인의 이건 다 형이상학적인 얘기들이죠. 하나, 0에서 1이 나오고 1에서 셋으로 쪼개지고 셋에서 5행이 나오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물건을 6 그럽니다. 6. 그러니까 지금 밑에 보시면 三大三合六. 이렇게 천지인의 위대한 세 개가 삼합. 셋이 서로 합치면 둘씩 둘씩 합쳐 놓으면 6이란 숫자가 나오는 데 6에서 789가 나온다.

45:02

지금 6789가 따로 얘기되는 이유가 이건 후천수예요. 요건 후천적인 만물의 춘하추동 생장수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숫자기 때문에 따로 설명한 겁니다. 아까 1에서 5 나오는 얘기나 지금 이런 얘기는 뒤에 또 나올 거예요. 따로 나와요 아무튼. 예. 1에서 5가 나오고 이런 건 따로 나와요. 지금 6789 먼저 나온 거는 요게 만물을, 현상계에서 만물이 자라고 죽고 하는, 소멸됐다가. 보세요, 이게 윤회론 입니다. 이 동양철학은 무조건 윤회론 이에요. 인도에서 윤회론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원래 윤회론 이에요. 주역 사상이. 우리나라 태극기 그려놓은 거 보시죠? 이 순환이 멈출 때가 있나요? 태극기 보세요. 양이 커졌다 음이 커졌다 양이 커졌다…. 밤낮이 멈출 때가 있나요? 春夏秋冬이 멈출 때가 있나요? 生長收藏이 멈출 때가 있나요? 멈출 때가 없어요. 여러분은 죽으면 또 어떻게 해야 돼요? 또 기어 나와야 됩니다. 우주 도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주역은 무조건 이 윤회론 입니다. 주역을 윤회론으로 안 풀려고 노력한 분들이 朱子, 宋나라 때 性理學者들이에요. 그 땐 왜 그랬냐면 불교가 하도 불교가 윤회론의 끝장판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윤회론이라는 거를요 뺀 철학을 만들려고 주자가 만들어요. 당나라 송나라 때 계속 제사만 지내고 왕들이 종교에 심취한 그 극치를 보여줘, 즉 우리가 중세 카톨릭의 어떤 극치를 한 번 보고 개신교가 나왔듯이 아 저 교리를 가지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왕들이 계속 윤회론이나 이런 걸로 누구 하나가 좀 잘못 하면 전생의 죄로 돌리고, 왕이 권력 가졌다 하면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이 이미 돼버리고.

46:46

이게 벌써 이게 현상계에서 仁義禮智 할 생각은 안 하고 자꾸 공덕론으로 해가지고 죄나 공덕으로만 몰아가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것도 저는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배제해 버리면 안 되죠. 그런데 그건 좀 잘못이라고 봅니다만, 윤회론을 배제한 철학을 만들었어요. 그건 佛道를 거치면서 불도의 융성을 거치면서 유학자들이 뭔가 반발한 내용이구요 원래 동양철학 유학 자체는 주역의 이 팔괘를 그려놓고 뭐라고 계사전에 써 있는지 아십니까? 팔괘를 알면 귀신을 알 수가 있고, 귀신, 만물이 태어나고 죽는 걸 알 수가 있고, 精氣爲物, 보세요. 정기를 얻으면 다시 물건이 돼서 나오고, 물건이 돼서 다시 탄생하고. 游魂爲變, 여기서 魂이 떠나면 죽고, 精氣爲物, 정기를 얻으면 다시 물건이 돼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계사전에 써있어요. 고게 재밌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鬼神死生之說을 알 수 있다고 딱 써있어요.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와 안 보이는 세계를 다 알 수 있다. 음양의 세계를 다 알 수 있다. 괘를 연구하면 다 알 수 있다. 거기엔 이미 윤회론이 전재돼 있죠. 그게 아니고는 그걸 풀 수가 없습니다. 고게 재밌는데 고 얘기, 요거만 하고 잠깐 쉴게요.

48:14

이게 건괘가 있고 곤괘가 있으면요. 乾. 여기는 震, 양이 하나 생겼죠. 양이 두 개 생겼죠(☱) 음이 하나 생기고(☴) 음이 두 개 되고(☶) 양이 음을 포위하고(☲) 음이 양을 포위하고(☵). 지금 순음에서, 태극의 형상입니다. 순음이 음 자체에서 양이 하나 생겼는데 양이 음을 포위해 나가다 양이 두 개가 돼서 양이 세 개가 되면 극치에 이르죠. 팔괘, 선천팔괘는 아주 쉬워요. 다시 그때쯤 음이 생겨요. 음이 양을 이제 포위해 나가다가 음이 양을 밀어내다가 완전히 음 세상을 만듭니다. 이걸 그려놓고 계사전에서, 보세요(☶) 이게 지금 정신이면(위의 陽爻) 이게 천지인이거든요 그대로(세 획이 각각 천지인). 天人地 항상 괘(효) 세 개일 때는 위에가 하늘 가운데 사람 밑에는 땅. 효가 여섯 개면요 획이 여섯 개면 맨 위에 두 개가 하늘 두 개가 사람 두 개가 땅 이렇게 먹으면 됩니다. 요거 삼획일 때는 위에가 하늘 가운데 사람. 즉 가장 하늘적인 요소 영혼이 지금, 보세요. 요거는(人) 기운 요거는(地) 물질에 해당된다면 이게 精이고 이게 氣죠. 정기신이, 神이 제일 輕淸氣고 중간기고 重濁氣거든요. 요렇게 있다가 떠나버리죠(☷). 혼이. 다시 생겨나죠(☳). 뭔가 여기서 정기가 분열됐다가 신이 다시, 여기선(☳) 이게(위의 두 陰爻) 정기를 상징하겠죠. 정기를 다시 만나서 요 신이 다시 소생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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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이런 거 보셔도, 이 게 이 괘를 염두에 두고 글로 써 놓은 거예요. 游魂爲變, 혼이 떠나버리면 변괴가 일어나고. 혼이 떠나버리면 변괴가 일어나고. 精氣爲物 정기를 만나면 다시 물건이 된다. 요런 것도. 여기는(☳) 이 정기신 순서대로가 아니죠. 여기는 순서대로 보기 좋아서 제가 설명을 따로 드린거고 아무튼 음 두 개를 만난다는 거는 정기를 만난 혼의 모습을 갖고 있죠. 이 주역은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러분 태극기를 국기로 가졌으면서 만물의 돌고 도는 윤회를 못 받아들이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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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죠. 그래서 이게 제가 지금 뭐 강의는 천부경입니다만 뭐 그 역학이나 이런 것들이 천부경을 이해하시는 데 필요한 것들은 설명 드리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이해해 보시면 천부경 뒤에 가면 萬往萬來라는 말이 나와요. 만 번 오고 만 번 간다. 이겁니다(선천팔괘 도는 거).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 여러분 현상계의 모습은 끝없이 생장수장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에고는요 끝없이 자라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쪼그라들고 죽고 다시 또 태어나고 이걸 만왕만래, 만번이라는 건 딱 만 번이 아니죠. 수없이 오고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뭐라고 써있냐면 用變不動本, 작용은 그렇게 변하는 거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本心本 太陽昻明. 본심은 태양처럼 광명하다. 이렇게 돌고 도는 중에 우리 참나 자리는요 영원히 광명하다는 거 알고 돌고 돌으란 얘기예요. 돌고 돌지 말란 얘기도 없습니다. 그쵸. 계속 돌고 돌으라 그래야 돌고 돌수록 더 완성을 나게, 더 완성된 7을 만들어가니까요. 수리적으로. 더 완성된 7. 더 완성된 이 육체적 모습을 만들어 갈 거 아닙니까. 이 육체가 꼭 물질적 육체가 아니더라도 이런 영적인 몸이더라도 그 몸이 팔다리가 있고 오감이 있고 있다면 그건 다 몸이죠. 꿈 속의 몸이건 현상의 몸이건 그건 이미 7이라는 숫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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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그래서 생각 감정 오감을 갖추고, 생각 감정 오감을 갖췄다는 게 7이란 숫자고 생각 감정 오감을 통해 끝없이 끝없이 진리를 더 잘 구현하기 위해서 진보하라. 그런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요 얘기를 천부경이 하고 있죠. 이게 우리 민족의 예전 고대 철학자들이 얻은 결론이죠. 요 글은, 천부경 나오기는 언제 나왔는지 모릅니다. 지금. 뭐 고려 말에 그 두문동 72현 중에 하나란 분이 갖고 있는 갑골문 천부경도 발견되긴 했는데 뭐 그 연대조사 한다더니 뭐 그 뒤로 연대측정을 어떻게 했는지 제가 못 들어서 그게 진짠지 아닌지 저도 몰라요. 아무튼 저는, 이 내용이 제대로 다시 등장하기에는 1910년대 20년댄데, 내용을 봤을 때 너무 우리 단군철학을 정리를 잘 해놓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누가 지었는진 몰라요. 후대 사람이 지었을 거라고 보는데 단군 철학을 계승한 사람이 지었기 때문에 제가 이거는 단군 철학의 아주 귀한 유산으로서 삼일신고랑 천부경을 우리가 공부해야 된다고 보는 겁니다. 실제로 이 문헌화 하신 분이 누구인진 모르지만요. 예. 지금 여기까지 이해 안 되시는 거 있습니까? 음양중 음양중 뭐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는 모르셔도 돼요. 그냥 인도 용언데 우리랑 똑같에서 말씀 드린 거고, (선천)8괘가 이렇게 돌고 도는 거. 6789란 숫자도 결국 그게 설명이 다 된다는 거. 요정도 지금 이해하시면 지금 천부경 뒤에 안 하셨어도 대강 지금 이미 천부경 뒷내용까지도 예습 한 셈이 되니까요 그거 다 잘 염두에 두시고 5분 쉬었다 다시 하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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