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11강
| 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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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일자 | 2015. 12. 12. 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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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자 | 2016. 02. 04. |
| 동영상 길이 | 1:08:47 |
| 강의 중 인용 도서 | 천부경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zONHyRh9O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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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2번을 볼 때 요거 하나 다시 그려 볼 게요. 하나의 씨알이요, 태극이, 자 여기는 지금 靈의 세계 아닙니까? 영적인 세계예요. 태극이라는 거는. 이건 절대계의 얘깁니다. 이 씨알이요 이 천부경 몇 자 안 되는 81자 글에서 이 씨알이 어떻게 현상계의 존재가 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한 알이 일곱이 되면 현상계의 존재가 돼요. 전후좌우상하를 갖춰버리기 때문에. 세 축을 갖춰요. 삼차원적 존재가 되잖아요. 요게요 흔히 우리 𝓎축이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𝓎축 𝓍축 𝓏축 하면 예, 여기 + -, + -, + -, + -가 이렇게 나뉘니까 정6면체로 하며는 네 귀퉁이에서는 지금 8방에 8괘가 나와 버리죠. 자연히 우주에는 8괘가 들어있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 -, + -, + -, 음양 음양 음양이 정해지면 요게 대삼합육(大三合六)이었죠. 𝓎를 제가 천축(天軸), 하늘은 위아래가 중요하고. 땅은 동서가 중요하고. 사람은 앞뒤로 끝없이 이어져 가니까 천지인 세 축이라고 하면 천지인 세 축에서 둘둘둘 해서 합치면 6이 나온다. 6에서 만물 7 8 9. 6이 만물이 자라고 죽고 하는 과정이 6 7 8 9가 이루어진다. 요 얘기가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다시 이제, 그런데 그러려면 5행의 원리라는 게 선천적으로 있으니까 가능한 거고, 현실적으로 그 하나가 5행의 원리를 통해서 동서남북을 갖추면서 입체적으로 갖추게 되면 7이 돼버리잖아요. 1에서 만물이 나온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천지창조는 7일 걸려요. 이게 다 예시돼 있죠. 7일 걸리게. 전후좌우상하를 다 갖추고 마지막에 안식을 해요. 가운데서. 자신의 본 자리를 찾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일주일도 전후좌우상하에 해당되는 일주일 열심히 살고 마지막은 가운데서 안식을 취하는 거예요. 일요일 날은 안식을 취하시, 하느님 안에서 안식 취하는 날인 거죠. 충전을 해야 6방을 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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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충전 돼야 6바라밀 경영하고 6근을 경영하니까. 재밌죠. 양심을 경영하려고 해도 요 도형 하나면 충분합니다. 예. 이게 절대계에서 현상계 존재가 나오는 소식이라는 거죠. 이게 재밌잖아요. 간단한데. 자 보세요. 그래서 이 일곱이라는 거는 결국 하늘에서 봐도 5행이 있고 땅에서 봐도 5행이 있고 사람 측면에서 봐도 5행을 갖추고 있는 그런 존재니까 결국 핵심은 7이란 숫자보다도, 왜 황극을, 1은 태극이잖아요. 1태극. 황극은 대표로 왜 5로 하느냐. 5만 되면 이미 황극이기 때문에 5가 입체로 표현되면 7도 되고 나중에 9도 되죠. 7이 변화를 부리면 9도 되지만 9나 7이나 하는 건 다 결국 5황극의 입체적인 표현들을 얘기하는 거니까 3극으로 말 할 때는, 0 무극, 무극이 태극으로 작용해서 태극이 다시 황극으로 작용하는 게 현상계 창조되는 창조의 모습이에요. 창조의 관점에서 보면 텅 빈 데서 초점이 잡히고 고 초점이, 그 초점 안에 들여다 보면 초점 안에는 천지인의 세 요소, 세 에너지를 갖추고 있고, 고놈이 세 요소가 있다는 얘기는 3에서 4가 나오고 5가 나오는 거기 때문에 5행의 원리가 결국 우주를 만들어 내고 그 5행의 원리대로 동서남북 동서남북 해가지고 공간이 생기고 시간이 굴러가면서 만물이 생장수장의 원리로 계속 변해가게 되더라. 요게 이렇게 나온다.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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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몇 자 가지로 이렇게 하는 거 정말 잘 갖다 붙인다. 저 사람.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데, 이게 제가 막 임의로 갖다 붙이는 거면 제가 흥이 나겠습니까? 제가 갖다 붙여놓고 지가 신나면 그거 좀 또라이죠. 그쵸. 자기 얘기가 그렇게 막 대견하고 재밌으세요? 예? 진리에 맞아야 재밌죠. 그쵸. 진실에 맞아야 재밌는 거죠. 제가 애저녁에 흥미를 잃었겠죠. 제 얘기도 한두 번이지. 제가 제 얘기를 자꾸 듣다가 보면 뭐가 신선한 맛이 있겠습니까. 근데 매일 생각해 봐도 요 진리가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면 요 웬만하면 진리일 확률이 높은 거니까 제가 계속 파 보는 거죠. 그래서 특히 제가 제일 민감하지 않겠어요? 제가 제가 지어낸 얘기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강의할 때도 재미없는 얼굴이거나 크게 사기치려는 얼굴로 하고 있겠죠. 왜냐면 어차피 이건 재미가 없으니까. 근데 제가 이 신나서 얘기하는 건요 이게 너무 재밌으니까. 그리고 이 공식이 실제로 현실에서 계속 발견되고 체험되는 얘기니까 저도 여러분들한테 꼭 소개를 해 드리고 싶은 거죠. 이렇게 이런 관점을 가지고 함 보시면 참 재밌습니다. 자. 이는 하늘 땅 사람의 둘씩, 둘이 모여서 이루어진 입체물인 여섯, 여섯은요 요 중심점이 빠지고 나면요 하늘 땅에 다 음양 음양 둘이 모인 거밖에 안 돼요. 그런데 중심점 하나가 생김으로써 셋이 모였단 말도 가능해 지고 5행이 모였단 말도 가능해 지니까 요 점 하나가 참 귀하죠. 점 하나가 찍힘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물건이 돼버려요. 요 점 빠져버리면요 천지인이 다 음양 음양밖에 못 갖고 있는 거라, 뭐 많이 갖춰봤자 4상이죠. 근데 음양이나 사상이나 뭔가 중심이 없는 자리가 되죠. 그래서 요거는 움직이지 못 하는 물건이 돼서 씨앗밖에 안 돼요. 전후좌우를 다 갖추고 있지만 씨앗밖에 안 되는 존재랑, 중심을 잡고 살아 움직이는, 작동하는 7이랑 6은 차이가 크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기 좀 설명 드린 거고. 중심점을 갖추고 작용하는 입체물인 일곱이 된다. 여섯과는 달리 중심점을 갖고 전후좌우상하로 움직일 수 있는 일곱이 되니 사물은 일곱이 되어야 온전히 작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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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만 가지 재주를 부릴 수 있다. 그래서 재밌는 게요 7지보살, 불교에서 7지보살 자리까지 가면 비로소 만능이 됐다. 신통자재하다. 도교에도 보면 이 7단의 설명에는 다 이런 게 붙습니다. 드디어 이제 뭔가 신통자재하게 됐다. 5단에서도 먼저 붙어요. 재밌는 게. 5단만 돼도 바둑도 그렇고 5단만 돼도 여러분, 중심 잡을 수 있단 얘기죠. 5단만 돼도 불교에서 화엄경에서 5지가 뭐죠? 난승지. 이길 수 없는 사람. 무서운 사람. 5단만 돼도 얻기 어려운 경지를 얻었다. 이렇게 취급받습니다. 7단이 되면 이제 원행지. 멀리 가버렸다. 완전히 스스로 자립해서 완전히 다른 차원대로 진입했다. 라고 쳐줍니다. 이런 게 참 이 다 의미가 있어요. 그러나, 아 그러니 무형의 한 점인 하나가, 알이, 알에서 출발한 존재가 일곱이 되었으니까 일곱이 되어야 현상계에서 온전히 작용하는 전후좌우상하 중심을 갖춘 유형의 물건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천부경에 이걸 뭐라고 설명했습니까? 運三 四成環五한 다음에 七一,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이게(衍) 물이 불어났다는 거죠. 물이 이렇게 엄청나게 끝없이 흘러가는 모습에서 온 겁니다. 물이 불어났다.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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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다 이해되시죠. 천부경 어려울 게 없어요. 원리대로 따라가시다 보면 이미 당연히 하나가 불어나서 7이 됐구나. 하는 거죠. 묘하게 불어났다. 이것이 사물이 씨알에서 불어나 입체물이 되어. 씨알은 이 무극, 태극을 말 합니다. 태극의 씨알이 불어나가지고 입체물이 되어 상하 동서남북으로 작용하는 원리다. 우주 어디가도요 오행만 갖춰지면 동서남북만 갖춰지면 입체도 되고 더 고차원도 다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이 우주가 전개된단 얘기를 써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개된 우주는요 지금 7로 대표됐지만 7은 결국에 7은 어떻게 돌아갑니까? 자 보세요. 지금 7이란 숫자로 현상계의 존재를 대표했죠. 7은요 7은 8로 분열돼서 다 자라면 9가 되고 다시 8로 쪼개지고. 이렇게 말 할 수도 있겠죠. 8을 넣어서 얘기하며는. 그래서 다시 6으로 돌아가고 6은 다시 7로 나오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고, 아까 저것처럼 6에서 7은 9로 자랐다가 8로 쪼그라들어서 다시 6이 됐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구요. 예. 그러니까 生七八九에 해당되는 부분이 어떻게 결국은 6에서 6이 6은요 지금 씨앗이 작동 안 하면 6이 되겠죠. 그러니까 씨앗으로 있으면 정보로만 지금, 정보만 갖추고 있고 작동을 안 하면 씨앗이 됐다가 중심점이 이제 작동하면 7이 됐다가 7이 제대로 작동하면 9가 돼요. 보세요. 천지인, 보세요. 요기 요 그림에는요 9가 들어있어요. 실제로는. 그래서 7과 9는요 같이 칠 수도 있는데 왜 그러냐면, 보세요. 하늘축을 봤을 때 양 음 가운데. 사람축도 양 음 가운데. 땅축도 양 음 가운데. 각각 이미 셋을 다 갖추고 있는 모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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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7의 중심점) 지금 셋을 다 먹고, 셋의 중심이 돼주고 있는 거니까 한 자리가, 이 안에 이미 9가 들어있다는 거 아시겠어요? 풀면 9가 돼요. 그쵸. 보세요. 하늘도 하늘도 양 음 가운데. 하늘 사람 땅 했을 때. 사람도 양…. 그럼 숫자를 풀며는 이게 9가 되게 돼 있잖아요. 9를 입체로 해 놓으면 7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7이 펼쳐지면 9가 된다는 게 이미 그 안에 내재돼 있어요. 9가. 7이 작동하면 9가 돼요. 작동을 멈추면, 8에서 6으로 돌아갑니다. 작동을 멈추면 6이 돼요. 다시 6이 되겠죠. 쪼그라들어가는 과정. 정지돼가는 과정을 8이라고 한다면 정지되면 6이 되고 작동하면 7이에요. 그럼 7이라고 하면 이미 9가 들어있다구요. 그래서 바둑에서도 7단은 具體. 7단은요 具, 갖출구자. 몸체자. 형체를 다 갖췄다. 이거예요. 9단은 入神. 그럼 입신의 경지에 이를 어떤 형체가 이미 다 갖췄다. 그, 이해되시죠. 이 이후 변화의 모든 기본 틀이 완성됐다. 7을 말해야 결국 자립체가 나와요. 하나의 온전한 자립체가. 그래서 7이란 숫자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숫자 7은 아까도, 예전에 갑골문에서도 7은 하나의 완성을 이뤘단 의미로 이렇게 따로 표시해줬어요. 이게 열십자처럼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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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게 지금 이렇게 싹 모양(七)이 된 거는 의미가 좀 더 부여된 거죠. 뒤에. 자 여기까지. 이미 여러분 너무 많은 걸 아셨습니다. 천부경인데요 우주 돌아가는 소식인데 요정도 아셨으면 우주가 지금 손바닥 위에 보이지 않으세요? 뭐 잠깐 기분 내 보는 거죠 뭐. 5분 안에만 돌아오면, 제 주장은 항상 5분 안에만 빨리 돌아오시. 이 기분으로 뛰쳐나가지 마시고 맛 보시고 돌아오시고 하면서 또 공부에 다시 참고하시고. 예 이렇게 됐죠. 그래서 이 숫자 가지고 별로 복잡한 숫자 많이 쓰는 거 아니에요. 실제로. 6 7 8 9 가지고 계속 굴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런, 입체가 됐는데 그러니까 그 다음 보세요.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만 번 가고 만 번 오는데 이게 이거예요. 만왕만래. 끝없이 왕래하는 거 아닙니까? 가고 오고 가고 오고 예. 봄이 또 사라졌다가 다시 봄이 또 오고. 그쵸. 가고 오고 그래서 지금 천부경에서는 만번, 갈왕자, 만번 가고 만번, 또 뭐죠, 올래. 자 이거는 현상계. 현상계의 이 7이란 숫자는요 고정돼서 있는 게 아니고 9로 발전했다 8로 쪼그라들었다 다시 6으로 정지됐다가 비활성화 됐다가 다시 7로 또 활성화됐다, 끝없이 돌고 돌고 있다는 거예요. 현상계의 우리 존재는. 현상계의 우리 에고는 이런 식으로 끝없이 오고 가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고, 절대계의 우리 본심은 변하질 않고. 그러니까 만왕만래 하는데 用變不動本. 요 작용은 작용은 끝없이 변하는데 본질은 절대 안 변한다. 부동본. 本心本 太陽昻明. 그 본질의 핵심은, 이걸 뭐라구요? 무극이자 태극인 이 자리를 뭐라고 부르냐면 本心 이렇게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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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늘 잘 그리는 이 도너츠로 그려볼까요? 여기는요. 본심. 참나자리. 여기는요. 작용. 작용은 끝없이 만왕만래. 이렇게 태극모양만 그려주면 되겠죠. 끝없이 + -로 돌고 도는, 생겨났다 사라지고 생겨났다 사라지고. 본심은요 절대 불변으로. 불변색으로 있다. 요 본심이 그런데 뭘 닮았다구요? 태양앙명. 태양처럼 광명하다. 본래 어디에다 뿌리를 두고 있냐. 본심은 본래 태양처럼 광명하다. 이렇게 풀어도 되고. 본심은 태양의 광명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렇게 풀어도 되고. 근데 왜 태양이 갑자기 등장했을까요. 태양은 그냥 물질인데. 절대계의 존재는 아니잖아요. 태양은. 우리 눈에 보이는 유형의 존잰데. 태양을 왜 끌어들이냐면 예전에 태양은요 유형의 하느님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하느님. 신을 볼 순 없죠. 신을 눈으로 볼 순 없는데. 예전 생각해 보세요. 예전 여러분 움집 짓고 살 때. 기억나세요? 그래서 예전에 혹시 그 때 기억나시는 분, 전생에 그때 참 힘들었지. 막 돌 가는 재주가 없어서 늘 뭐 사냥이 힘들었지. 이런 생각 날 수도 있죠. 자, 그 당시에 태양이 안 떠주면 죽어요. 태양이 떴다는 건요 하느님이 진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온 거에 해당돼요. 그러니까 아침에 태양 뜨면 사는 겁니다. 밤새 추위에 떨다가도. 그래서 이 태양이 하느님이에요. 그래서 태양이 떠야 또, 밤새 캄캄한 밤중에 천지분간이 안 됐어요. 태양이 뜨니까 그 빛으로 천지가 확 분간돼요. 여러분 여기서 불만 꺼도요 지금 캄캄한 밤이라면 여기서 불 끄면 여러분 다 이 이제 혼란에 빠져버립니다. 분간이 안 돼요. 가까이에 있는 지척에 있는 길도 안 보여요. 이게 사실 인생 지금 살아가는 방, 사실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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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의 길이 안 보이죠. 道가 안 보이죠. 어디로 가야 사는 길인지 안 보이죠. 근데 태양 뜨면 보여요. 그 견성하면 보인다는 게 참나가 나타나면 보인다는 게 이겁니다. 우리 안에 태양이 뜨면 만물이 보인다는 거죠. 그니까 이 태양이 결국 상징하는 게 보세요. 첫째는 태양은 우리한테 빛을 줘요. 그니까 이 빛이, 빛은 사실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하느님은 지혜로우시다. 하느님이 태양이 나타나면 만물의 그 혼란이 다 종식되고 선명해지는 것처럼 태양은 지혜를 주는 분이다. 또 태양이 뜨면요 熱이요. 따뜻해져요. 태양은 우리를 살려주시는 자비를 갖고 있는 분이다. 또 태양이 뜨면요 에너지. 태양에서 힘이 옵니다. 힘이 와요. 그래서 이 힘, 능력. 힘이나 능력을 상징. 그래서 이 전통적인 우리 민족의 神觀은 이겁니다. 삼일신고에 뭐라고 나오죠. 하느님의 세 모습. 하나님의 세 모습을, 삼일신고를 미리 공부할게요. 大慧 지혜혜자 써서 대혜. 또 大德. 그리고 大力. 이게 태양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모습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태양은 유형의 하느님이다. 이게 좀 와 닿으시죠.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에요. 그래서 태양을 보면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안 보이는 신이지만 태양을 통해서 우리한테 빛을 주고 열을 주고 힘을 주는 그런 분이 하느님 아닙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안 보이지만 태양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하느님은 큰 지혜를 가지고 우주를 경영하는 존재고, 큰 자비를 가지고 만물을 살리는 존재고, 큰 능력을 가지고 만물이 창조되고 살아가고 또 이렇게 끝없이 순환할 수 있게 우주가 경영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계신 분, 능력이 있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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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겠다는 지혜가 있으면 창조를 진짜 해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분이다. 하는 게 다 들어있죠. 그래서 이, 그러니까 본심본 태양앙명에서 여기까지 보셔야 됩니다. 태양처럼 광명하다. 하는 거 안에는요 고 안에 이런 속성도 있다. 실제로 삼일신고에서 대덕 대혜 대력하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요런 부분까지도 한 번 연계해가지고 이해해보세요. 자, 제가 풀이한 거 한 번 볼게요. 13번. 유형의 만물은 무형의 원리들에 의해 인도되며. 유형의 만물은요 무형의 원리가 끌고 가죠. 생수가 성수를 끌고 가겠죠. 선천수가 후천수의 변화를 주도하겠죠. 원래 설계된 프로그램대로 돌아가겠죠. 여섯에서 아홉에 이르는 발산과 아홉에서 여섯에 이르는 수렴에 음양의 변화를 반복하며 끝없이 생명을 펼쳐낸다. 원래 설계된 대로 6 7 8 9가 끝없이 돌고 돌면서 만물을 낳고 기르고 또 소멸시키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 자. 열이라는 존재의 완성을 목표로. 자 여기에 열이라는 숫자가 6 7 8 9 밖에 10이 있는데 10은요 영원한 목표예요. 보세요. 태어나서 자라고 할 때는 목표가 있어야 돼요. 나는 뭐가 되겠다. 어떤 존재가 되겠다. 그래서 목표가요 항상 이 안에, 10은 존재는 하지 않지만 이 목표가 하나의 원리로서 우리 안에서 끝없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여러분 안에서 보세요. 부모, 자 부모님과 관계에서 사랑하라. 라고 내면에서 양심이 외칠 때 어떤 완벽한 사랑에 대한 이미지가 내 안에 떠오르겠죠. 그런데 내가 해 보면 완벽하지는 않아요.
18:35
현실은 내가 구현해놓고 보면 양에 안 차는 게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안에는 양에 안 찬다. 후회스럽다. 찜찜한 게 있다. 라는 얘기는 우리 안에 완벽하게 자명하면 어떻게 된다는 이미지가 있는 거죠. 정보가. 이해되세요? 여러분 그 완벽한 정보가 없으면 후회를 할 일이 없습니다. 찜찜하지 않으실 거예요. 아 이 정도 했으면 됐지. 하고 당당할 텐데 뭘 꼭 해놓고 찜찜한 게 있죠. 그림 그려보라고 하면 여러분 그림 그리고서 나면 아 계속 수정하고 싶을 거예요.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글을 한 번 써도 찜찜해요. 찜찜하다는 얘긴요 인간은요 저 내면에 완벽한 어떤 이상을 그리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요. 뭔가 안 맞다는 걸 알아요. 진선미에 뭔가 부합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결국 어떤 존잽니까? 거기에 부합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면서 거기에 알맞은 재능을 갖춘 분들이 예술가를 하는 거예요. 저 내면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선 하나 긋고 자명하다. 그러면 작품이 되는 거고 선 하나 그었는데 찜찜 뜨면 뭐 계속 다시 해보는 거죠. 내면에서 자명하다고 자기가 자기한테 허락받고 인가받을 때까지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럼 내 안에 뭐가 있잖아요. 진선미의 뭔가 본질을, 본질이 사실 내 안에 있단 얘기 아닙니까? 그 본질과 통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나로 하여금 끝없이 움직이게 만들죠. 끝없이 움직이는 데는요 10이 반드시 전제됩니다. 이 10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뭔가 양에 안 차고, 아니면 뭔가 기특하고 자기가 잘한 거 같고 뭔가 못한 거 같고 끝없이 완벽한 기준을 가지고 여러분 재고 있어요.
20:09
고게 10이에요. 그 10은 현상계에 구현 안 돼도 돼요. 구현 될 수도 없어요. 또 바로 변해가니까. 그 상황이 아무리 내가 자명해도 무상한 현실 속에서 바로 흘러가면서 또 문제가 생겨나니까. 그쵸. 이 10이라는 거는 우리의 영원한 목표이지만 그걸 구현한다는 거는 중요한 게 아니고 구현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 그럴수록 우리는 더 찜찜한 부분이 줄어들면서 자명해져가니까.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10이 중요한데. 결국 이 10이라는 열이라는 존재의 완성을 목표로 하면서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해 나가는 것이 지금 이 변화, 발산과 수렴의 변화의 본질이라는 거죠. 이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우주 안의 모든 개체들도 그러하고 우주 자체도 그렇다. 우주도 그렇게 굴러가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별이나 생명체들도 다 이런 원리로 살아간다. 자 이렇게 수없이 오고 가는 중에 그 작용은 탄생으로, 보세요, 탄생으로 탄생 자람 수렴 저장으로 끝없이 생장수장으로 변해가나, 탄생돼서 자랐다가 다시 쪼그라들어서 수렴돼가다가 마지막 정보를 남기고 또 사라지고. 그게 다시 또 탄생으로 이어지고. 이런 변화의 바탕이 되는 텅 빈 하나. 텅 빈 하나라고 이 부른 게 뭘까요. 무극이란 측면에서도 텅 비어있고, 늘 텅 비어있어요. 참나자리는. 텅 비어있으면서 또 하나예요. 우주의 씨알이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 자체로, 여러분 자체로는 텅 빈 존재라면 여러분이 집에 들어가면 자녀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집안 그 자녀들한테는 아버지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텅 빈 하나라는 게 이겁니다. 이 하느님 자리, 본심 자리는 그 자체로는 텅 비어있으면서 우주를 낳는다는 측면에서는 하나로 작용해요. 하나.
22:01
하나가 있어야 우주가 생기니까요. 그래서 텅 빈 하나. 요게 지금 무극과 태극을 말하는 거고 하느님자리를 말하는 겁니다. 텅 빈 하나는 움직이는 법이 없다. 변질되는 법이 없죠. 여기는 절대계니까. 절대계는 안 변합니다. 오직 불변하는 자만이 만변하는 만물을 굴릴 수 있는 법이다. 서양철학에서 이 이런 존재를 뭐라고 하죠? 자기는 안 움직이면서. 不動의, 예, 부동의 動者라고 해요. 부동의 동자. 자기는 안 움직이는데 만물을 움직이는 자리. 북극성 같은 존재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말인데 신을 설명할 때 이렇게 썼어요. 부동의 동자. 자기는 안 움직이면서 만물을 움직이는 그 자리. 그게요 완벽한 이상입니다. 완벽한 이상, 10의 자리. 텅 빈, 0이나 1, 10은 다 하나예요. 사실은. 완벽한 이상으로 존재하면서 만물이 그 이상을 따라오게 만들어 내면서 끝없이 변하게 만드는데 자기는 움직인 적이 없어요. 발전할 수도 없어요. 근데 만물을 통해서 또 발전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만물을 통해서 우주를 발전시켜요. 근데 본인은 발전할 수 없어요. 변할 수도 없는 자리예요. 북극성 같이 움직일 수 없는 자리예요. 근데 만물을 다 움직여요. 요게 요런, 이게 절대계를 얘기하는 거예요. 신의 모습을. 그러니까 지금도 불변하는 자만이 만변을 변화시키니까 本心은 변해선 안 되겠죠. 본심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주의 본 뿌리다. 자 그리고요, 시공을 초월하여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가는 이 하나야말로 항상 그대로인 우리의 본래 자리이자 우주만물의 뿌리가 된다. 하나라는 게 결국 우주의 뿌리가 된다. 하는 고 얘기를 또 말씀드렸습니다. 근데 이게 재밌는 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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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있죠. 줄기가 있고 예, 가지가 있고 이제 여기 잎사귀가 열리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자. 근데 여기는 나무, 이게 나무목자죠. 나무목자중에 나뭇가지가 위로 간 것도 있고 아래로 간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그리는 거예요. 이 나무의 뿌리부분을 그려놓으면 이게 근본본자죠. 나무의 말단에다가 체크를 하며는 말단말자가 됩니다. 그쵸. 그런데 중요한 거는요 한 나무예요.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본심과 현상계는 하나예요. 이 전체가 하나란 말이에요.
사실. 이 7이란 숫자 안에 이 참나가 작동, 참나의 모습도 있는 거잖아요. 사실은. 본질이 있어야 현상계가 굴러가죠. 그러니까 본질과 현상계가 사실 한 덩어리라는 것도 아셔야 돼요. 本末이라는 의미에는 그게 있어요. 하나예요. 그러니까 말단을 파고, 말단에서 시작해서 계속 파고 들어가면 뿌리를 만날 수밖에 없어요. 마찬가지로 현상계에서 지금 여러분을 구성하고 있는 생각 감정 오감의 근원을 파고들어 가면 참나를 만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뭣꼬 화두가 왜 먹히는지 아시겠죠. 요 열매 이거는 이것을 낳은 자리는 무슨 물건인고. 하고 파 추적해 들어가면 뿌리를 만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 여러분의 감정 여러분의 오감 어떤 거 하나라도 붙잡고 고게 근원이 이게 어디서 나왔느냐. 나는 오감을 어떻게 느끼는가. 나는 생각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있는가. 내 마음에서 어떻게 감정이 출현했는가. 하는 고거를 그 근원자리를 추적해 들어가면 참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게(뿌리) 지금 참나라고 생각하시고 이 줄기가 에고라고 생각하시고 이 에고에서 가지가, 생각이라고 생각하시고, 예 이 잎사귀가 감정이고 꽃 피고 열매맺고 하는 게 오감이라고 생각해 보시면 이 전체가 하나란 말이에요. 그럼 여러분 지금 시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분은 말단이고, 에고는 말단이고 에고의 뿌리는 뭐죠. 말단이 있단 얘기는 뭐도 있단 얘기죠. 본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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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의 본질도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는 거 아닙니까. 본질로 인해 사실 여러분 살아 움직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하나가, 하나가 불어나서 7이 됐다는 건 이 7 안에 하나가 안에서 작동하고 있단 얘기죠. 그 안에서. 불어난 모습으로. 그럼 결국 하나가 불어났다는 얘기는 일곱도 하나 아닌가요? 하나예요. 똑같은 하나예요. 하나가 현상계 안에서 작동까지 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이렇게 생각해 보셔야 재밌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상계에 비집고 들어와서 활동하고 계신 그 하나예요. 참나가, 아바타죠 여러분은. 캐릭터 하나 골라서 지금 현상계 안에 들어와 있어요. 참나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치면 현상계 안에 여러분 이름이 ID고 들어와서 여러분 캐릭 만들어서 뭐 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런 캐릭터를 굴리고 있어요. 그냥 이번 판은 이걸로 하자. 마음에 안 드는데. 이번 판은 나가리. 막 이럴 수도 있는데 그냥 하자. 하고 이제 게임을 하시면 지금 이런 모습이에요. 그럼 요 안에서 작동을 하는 거죠. 근데 재밌는 거는 이 게임을 하는 존재는요 절대계에 있죠. 게임 밖에 나가면 없어요. 남이. 다 하나예요. 여러분과 제가 사실 하나예요. 이걸 아는 것도 재밌습니다. 왜냐 절대계는 나와 남이 없으니까. 현상계 안에 들어와서 나눠진 거니까. 현상계 안에선 이렇게 다양하지만 우리는 본래 하납니다. 본질적으로. 한 우주의 한 생명의 다양한 변주예요. 다양한 모습으로, 한 생명이 있으면 현상계 안엔 끝없이 그 시공간 안에 다양한 탄생과 소멸을 통해 다양한 생명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게 공식이에요. 이게 우주 공식이라. 우리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싫다. 이래서 안 태어나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윤회를 벗어나겠다는 것도 하나의 탐욕이에요. 나는 이 우주 공식과 좀 따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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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外하고 싶다. 왜냐. 아 이 좀 태어나서 다시 또 뽀로로 보고 다시 공부하고 이런 게 나는 좀 와 닿지 않는다. 또 가서 뭐 누구랑 밀당해야되고 난 그 짓 못 하겠다. 여기서 끝내고 싶다. 이것도 탐욕 아닌가요? 왜냐면 우주 공식을 지금 모르잖아요. 우주가 어떻게 우주를 경영하는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내가 주장한 거기 때문에 癡, 어리석음이고. 거기에서 나온 탐욕은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분노로 끝납니다. 그런 탐욕, 탐진치를 내려놓고 우주의 실상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요 수긍이 일어나고 당연하게 나는 받아들이게 돼요. 6바라밀이 작동해서 수용이 일어나요. 忍辱. 진리라는데 어떻게 해요. 그럼 이 순간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하자는 결론만 남죠. 오히려 이런 윤회나 영원한 세상에 대한 긍정은요 뭐가 남냐면요 결국 미래 것 따져봤자. 라는 거죠. 벗어날, 여기서 벗어나겠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단 얘기예요. 그냥 받아들이면 돼요. 그럼 오히려 뭐가 되는지 아세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밖에 없는 거예요. 이렇게 영원한 생을 가정해 버리면 여러분 영원한 생은 고민해봤자예요. 지금 여기서 잘하잔 결론에 도달해요. 근데 윤회를 벗어나자. 열반을 주장해버리면요 지금 이 생에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생을. 떠날 생각밖에 없어요. 짐 싸놓고 지금 기다리는 거죠. 하늘에서 연락만 오면 난 간다. 다음 생도 미련 없다. 그러니까 이번 생에 이번 하나의 삶이라고 하더라도요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요. 마음이 떠있어요. 또 다음 생에 잘 살자. 이것도 또 잘못된 철학이, 이번 생엔 자꾸 오체투지나 하면서 돌아다니면서, 뭐 하러 그렇게 기도하시고 뭐 하러 그렇게 염불하시고 절하십니까. 다음 생에 좋은 데 태어나려구요. 그럼 요것도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삶이죠. 옳지 않아요. 그래서 이 원리를 알고 나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나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영원한 본심과, 변화하는,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현상계가 만나는 중간지점에 딱 서있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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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을 대변해야 되고, 이 순간에, 우주의 원리 본심대로 내가 이 삶을 잘, 탄생 측면이면 탄생, 태어났으면 태어난 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자라는 동안 자라는 데 최선을 다 하고, 또 열매를 맺는 동안 한 생의 열매를 맺고 결실을 맺는 데 최선을 다 하고, 깨끗이 또 정보를 남기고 가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또 다음생을 또 받아들이고. 또 거기서 또 내가 또 양심과 6바라밀을 구현하고. 이렇게 한 번 생을 받아들여 보는 요거 어떨까 하는 거죠. 요게 대승 철학인데 대승불교나 지금 천부경이나 똑같에요. 요 대승철학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자들이 이런 대승철학을 얘기한다는 측면에서 한 번 바라보시면 저게 진리일 확률이 높죠. 그럼 여러분 진리라면 한 번 받아들여 보시는 것도 좋죠. 마음을 한 번 수긍해 보세요. 수긍이 되는지. 요걸 수긍하고 나면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집니다. 과거랑은. 막 어딘가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던 삶에서, 여기가 극락이다는 생각을, 여기 내가 있는 곳이 극락이다. 지금 참나가 6바라밀을 통해, 6근을 통해 지금 현재 구현되고 있는, 참나가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장은 여기라는 거죠. 나의 본질, 그럼 참나는 결국 하느님인데 하느님이 지금 이 순간에 여기 와 계신 게 난데 요걸 받아들여야 돼요. 하느님이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생각 감정 오감의 옷을 입고 계신, 7로 불어난 하느님. 7로 불어난 하나가 여러분이란 말이에요. 그럼 여러분 삶에 대해서 당당해질 필요가 있죠. 아무리 최악의 삶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이 선택해서 들어와서 지금 이 모습을 하고 여기서 지금 작용하고 계신다. 라고 생각하면요 하느님답게 굴자. 품위유지를 해야죠. 하느님답게. 그러면 하느님답게 굴려면 뭐 해야 되냐. 양심 지켜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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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지키면서 우주의 원리대로 여러분 본심을 표현해 보면 여러분 그 자체로 그 삶에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게 진짜 해탈이고 구원인데, 자꾸 여기서 떠나서 어딘가 내 오감이 만족되는 곳을 가야, 나는 극락을 가야 공부하겠다. 여기선 안 하겠다. 극락 가서 좋은 도반 좋은 스승 만나기 전엔 공부 안 하겠다. 요게 극락 사상이거든요. 극락 가서 하겠다. 아니면 열반에 들겠다.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다. 어떤 조건에서도 다 벗어나서 나는 참나로만 존재하고 싶다. 7로 태어난 게 저주스럽다. 하나로 있을 때로 나는 들어가고 싶다. 엄마 자궁이라도 난 기어 들어가고 싶다. 자, 요 발상이 옳겠습니까? 현실에 최선을 다 못하게 돼요. 현실에서 양심을 덜 하게 돼있습니다. 기가 막히게 진리 아닌 것들은 양심을 막아요. 뭔가 막아요. 양심이 발현되는 걸. 여러분 허심탄회하게 이게 진리라서 이렇게 산다. 이렇게 속 시원하게 생각하시고 나면요 그렇게 살아가시면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펼쳐집니다. 그대로 구원받는 삶이 바로 그대로 일어나요.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그 보살은요 空만 중시합니까? 아니죠. 色을 중, 색만 중시합니까? 아니죠. 그 보살은 뭐죠? 색 속에 살면서도 색이 본래 공인 줄 알고 공은 반드시 색으로 표현돼야 된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고 나니까 5蘊이 본래 공한 줄 아니까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로, 6바라밀을 열심히 하는 중에 딱 보니까 5온이 본래 공하더라. 6근이 본래 공하더라는 걸 깨치고 나서 6근 안에서도 자유를 얻게 돼서 5온이 공한 줄 알고 度一切苦厄, 일체의 苦에서 벗어나셨다. 이게 대승식 해탈입니다. 소승식 해탈은요. 5온이 본래 無常 苦 無我인줄 알고 5온을 싫어하여 떠나니 청정한 열반에 도달했다. 이게 法句經식이거든요. 소승식. 저는 달라요. 결론이. 그리고 반야심경에서 그 다음에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란 얘길 바로 해 버립니다. 요게요 趙州스님 선문답에 이런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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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자가 와서 묻는데 그 스님도 고수죠. 말을 잘 해요. 만법이, 이게 만법이죠(칠판에 있는 7의 그림). 만법이 하나에서 나왔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질문했다구요. 萬法歸一하니 一歸何處. 그 하나는 어디로 갑니까. 조주스님이 뭐라고 했게요.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뺨 한 대 때리고 난, 뺨 한 대 때리는 것도 답이에요. 나 지금 그 하나가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너 뺨을 때리고 있다. 현상계에서 작용하고 있다. 뭔 얘긴지 아세요? 그러니까 조주스님은 뭐라고 답했냐면 근데 멋지게 답해요. 내가 옛날 청주에 있을 때 장삼 한 벌을 샀는데 무게가 몇 근이었다. 요 얘길 해요. 뭔 얘긴지 아세요? 내가, 나와 남에서 이미 나와 남이 갈라져요. 내가 옛적 청주에 있을 때, 지금 여기가 아니라 청주에, 공간이 나와요.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시간성이 등장해요. 공간성이 등장해요. 主客이 찢어져요. 무게가 나오고 개수가 나와요. 일곱으로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상하전후좌우로 현상계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하나는. 이해되세요? 이게 대승철학입니다. 선 사상이에요. 그래서 선에는요, 그릇 하나가 쪼개지니 일곱 조각으로 쪼개지는구나. 요런 말들을 막 써요. 이게 하나가 7이 되는 얘기를요 선문답에서도 막 나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그러니까 원숭이 한 마리가 문이, 창문 여섯 개로 소리가 들리는구나. 그럼 그 원숭이는 뭐 하겠어요. 그 참나는. 6근을 거부하겠습니까? 껴안고 살아가겠습니까? 6근을 그대로, 6근조차도 참나의 작용이라고 알고 살아가는 거예요. 요게 대승선입니다. 요게 이제 선불교의 본질인데 견성까지만 하고 나면 또 문제가 생겨요. 견성까지만 하고 6바라밀 경영을, 양심 경영을 안 배운 선사들은, 이 모든 게 참나의 작용이다. 하고 별 짓 다 하고 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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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가서 술을 먹어도 참나의 작용이요 저쪽 가서 뭔 짓을 하다 걸려서 뒤지게 맞아도 참나의 작용이요 막 이 모든 걸 참나의 작용이라고 생각합. 이해되시죠. 그래서 문제가 됩니다. 경영을 못 하는 그 참나의 작용은요 오히려 악을 엄청 양산할 수도 있죠. 그래서 항상 결국 본심대로, 양심대로 잘 경영해 간다는 거. 仁義禮智에 맞게 이 진리를 알고 살아간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단순히 이 모든 게 참나의 작용이다. 하는 것만 알아서 되는 게 아니고 그 다음에는 결국 양심이라는, 오직 양심이라는 답을 찾으셔야 돼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도 본심이 태양처럼 광명하다 하는 게, 광명하게 살으란 얘기 아닙니까? 광명하게 살아라. 제가 풀어놓은 거 함 보실래요? 만변하는 음양의 뿌리는 불변하는 하나이며, 만변하는 현상계를 일곱이라고 말 했지만 결국 핵심은 음양의 변화니까 그 음양의 변화의 핵심엔 하나인 태극이 있고, 그 하나의 뿌리에는 텅 빈 무극이 있다. 고로 만변하는 음양은 불변하는 하나와 텅 빔, 그 무극이죠. 그 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심이 되는, 무극과 태극을 합쳐서 텅 빈 하나, 이렇게 불렀습니다. 텅 빈 하나는 무극 태극 황극의 삼극의 원리를 모두 갖춘 하나이다. 자, 본인이 혼자 있을 때는 텅 비어있어요. 집에 들어 가며는 애들이 있어요. 그럼 아버지가 돼요. 태극이 돼요. 애들한테 용돈이라도 주면 경영이 시작돼요. 경영이 되면 황극이 됩니다. 예. 집안의 가장이 되는 거죠. 경영자가 되는 거죠. 한 자리가, 하느님 자리가 텅 비어있으면서 우주의 뿌리가 되면서 우주를 경영하는 자리가 된다는 얘기를 이렇게 어렵게 쓰면 이렇게 돼요. 무극 태극 황극의 삼극의 원리를 갖추고 있다. 요게 한 하느님 자리 안에 요 셋의 모습이 다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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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여러분 불교도 아시죠. 불교, 절에 가면 요거 있죠. 요것도 그겁니다. 절에 가면 지금 학당은 이렇게 그리죠(☉). 이게 태극을 그린 거거든요. 태극에서 만물이 나온다는 것도 의미하구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무극이(○) 태극으로 한 점을 가지고 집중했다는 의미도 있고, 무극이 태극으로 하나로서, 텅 빈 하나가 되기도 하고, 무극이 태극으로 집중돼있는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초점이 잡힌 상태. 아니면 태극(중심점)에서 만물(원주)이 나왔다고 말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 한, 하나 안에 들어가 보면 삼태극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불교에서는 삼태극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텅 빈 중에 셋의 원리가 갖추어져 있다. 천지인이 되기도 하고 요게, 본체 예, 본체를 불교에서는 體. 본체. 형상(相), 작용(用) 셋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요 본체를 法身 그래요. 相을 반야. 작용을 해탈 이렇게 말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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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는요 텅 비어있죠. 텅 빈 중에 만법의 형상이, 만물의 근원의 정보가 다 들어있어요. 선천팔괘가 그러져 있다구요. 동양철학으로 말하면 선천팔괘가 그려져 있어요. 형상이 있어요. 그리고 그 형상대로 후천팔괘를 돌려요. 작용을 일으켜요. 현상계에서. 그럼 이게 무극 태극 황극에도 상응합니다. 이해되시죠. 다 결국 하나예요. 텅 빈중에 무극, 태극, 우주의 뿌리가 되죠. 텅 비어있는 본체, 우주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모습, 그리고 실제로 우주를 경영하고 있는 경영자의 모습. 그러니까 본체 측면에서 법신, 우주의, 우주로부터 초월해있는 참나 자리를 말 하는 거고. 그 안에 반야, 지혜가 꽉 차있고, 그 지혜대로 현상계를 자유자재로 경영한다 해서 해탈. 법신 반야 해탈 해서 一心三德 그럽니다. 법신 반야 해탈을 이 중에, 요 중에 요거를요 특히 일심삼덕이라고 그래요. 한 마음 안에, 한 마음 안에 세 덕이 들어있다. 요걸 그려놓은 거예요. 체상용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무극 태극 황극이라고 말 할수도 있어요. 다 설명돼있지 않습니까? 어느 종교나 있어요. 요 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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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을 대신, 그러니까 잘 쓰시면 어떻게 돼요? 한 마음을. 항상 텅 비어있으면서 항상 진리가 뭔지 알고 그 자리에서 진리대로 생각하고 말 하고 행동하고 해 버려요. 요게 하나로 돌아가요. 요게 결국 본체와 작용이 하나로 돌아가는 거죠. 뿌리와 본질이 하나죠. 그러니까 지금 또 이렇게 말 하면 이 본체적인 측면은 眞空, 상이나 용은 妙有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텅 비어있는데 묘하게 뭔가 있어서 그게 작용을 일으켜요. 또 갖다 붙이기 신공을 쓰면 여기다가 원불교는 空 그럽니다. 본체를. 상을 뭐라고 할까요? 이것도 다 재밌습니다. 다른 종교는 뭐라고 하나. 원만하게, 원만구족한 정보가 들어있으니까 圓. 작용할 때는 항상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고 선악이 나뉘니까 바를정자 正. 空圓正 이렇게 말 하기도 합니다. 둘로 말 하면 眞空妙有. 대승기신론은 體相用. 또 一心三德의 관점에선 법신 반야 해탈. 여러분 아무튼 이게 다 뭐예요. 여러분 참나 찬양이에요. 여러분 갖고 계신 여러분이 이미 갖고 계십니다. 태어날 때 이미 갖고 태어났어요. 고 참나자리 안에 저렇게 무궁한 힘이 들어있다는. 우주를 굴리는 힘이 지금 여러분 안에 절대 눈치 챌 수 없게 잘 감춰져 있다는, 그런데 누군가 눈치 있는 사람이 이걸 찾아내서 쓰면 어마어마한 일이 가능해 진다. 인간이 아니라 그 때는, 이게 우주에서 소외된 인간이 아니라 우주의 열매로서의 인간으로 살아요. 멋진 창조해내는 개체성이 돼요. 개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끝없이 진리에 맞게 우주에서 끝없이 창조를 해 내는, 그럼 그걸 보살이라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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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중생이라. 보리 살타 해서 깨달은 중생. 보살. 그럼 보살 이상의 여러분 인생의 그게 없다니까요. 실제 공부해 보시면 해탈이니 뭐 별의 별 이야길 다 하지만 제가 그 분들이 말 하는 대로 다 해봤더니 거기서 끝이 아니더라구요. 석가모니가 처음에 출가했을 때 해탈 추구한 사람들 찾아가서 배워서 힌두교인들한테 배워서 그 경지 금방 이루고 나니까 석가모니가, 여기는 끝이 아닌 것 같에. 하고 또 나가서 도를 닦으셨잖아요. 그런 심정으로 저도 그 분들이 얘기하는 거를 다 따라서 해 봤는데 양에 안 차더라는 거죠. 거기에 내 생을 걸기에는 양에 안 찼어요. 소승불교, 위빠사나 뭐 이런 거, 그것도 어느 날은 내가 며칠, 한 며칠 나는 이제 소승이다. 하고 해봅니다. 무상이 뚝뚝 떨어져요. 생각 하나 이뤄도 무상해요. 잘 해봐야지.도 무상해요. 다 무상해요. 뭐 가족, 가족에 대한 사랑도 무상하고. 저 가족도 곧 헤어질 사람이고 다 무상해요. 그래서 무상하니까 열반에 안주하는 힘이 점점 커져요. 그럼 이게 진짜 좋아 보이면 제가 거기 들어앉아야 되잖아요. 제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 다른 분들은 아마 에고 땜에 나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제 양심에서는, 이건 자명하지 않다. 사람이 이렇게 살으라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자, 이렇게 살으라고 있으면 순간 순간 드는 생각이니 감정이니 다 의미 없는 거예요. 버려야 할 대상이 돼요. 5온은 다 버려야 할 뭔가가 돼요. 그러라고 이 우주가 있을까요? 가족관계가 그러라고 있을까요? 인간관계가 그러라고 있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요 가족관계 인간관계 회사경영에도 다 道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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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 道가 있어요. 만물에 있는 도는 우주가 만들어 놓은 도 아닙니까? 우리가 만든 게 아닙니다. 여러분 조각의 도. 여러분이 만든 게 아니에요. 조각을 하다 보면 당연히 자연스러운 결이 있어요. 그 결을 어기면 작품이 안 나와요. 아름답지가 않아요. 모두에게. 어떤 결이 있어요. 그러면 이 우주에 있는 수많은 道, 수많은 결, 이거를 알아가는 게 인생의 목표 아닐까요? 그 결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현상계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절대계에서 나왔지. 그러니까 대승철학에서 뭐라고 주장 하냐면, 텅 빈 본체만 강조하면 소승에 들어가 버립니다. 그 본체 안에 우주의 원만한 어마어마한 만 가지 공덕이 다 들어있다. 좋은 정보가 다 들어있다. 그거 다 구현해 봐야 된단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 개체성을 버리면 안 된다. 보살이어야 돼요. 성불해 버리면, 부처가 되면 안 돼요. 열반에 들면 안 돼요. 열반에 든단 얘기는 본체에 안주해 버린단 얘기니까 안 돼요. 그래서 거부하겠다는 경전이 나오는 거죠. 사실은 거부할 필요도 없어요. 우린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예, 이런 의미까지도 천부경 읽을 때 생각해 보시구요. 15번부터 볼 게요. 생각 감정 오감은 끝없이 변화하나 그러한 변화의 바탕이 되는 본심은 움직이는 법이 없다. 인간에 내재한 텅 빈 하나인 본심은 본래 태양의 광명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양은 신의 모습을 상징한다. 신은 알, 자, 실제로 이집트에선 태양을 이렇게 그리죠(☉). 라, 태양신 라. 이렇게 할 때 태양을 이렇게 그립니다. 자 보세요. 그런데 이게 의미하는 게 학당의 이, 그 학당의 로고랑 비슷하죠. 가운데 태양, 그래서 저희가 가운데 빨간 색으로 붉은 태양을 그려놓은 거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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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빨간 점이 태양이고 그 태양이 미치는 범위(원주), 빛과 열과 힘이 미치는 범위를 그려놓은 거예요. 태양과 그 태양이 미치는 범위. 그게 하나의 알 같잖아요. 노른자와 흰자처럼 태양빛과 그 빛과 열과 힘이 미치는 범위가 있겠죠. 근데 우주적인 참나의 태양은 그 미치는 범위가 온 우주겠죠. 물질의 태양보다 훨씬 광명하다는 게 그런 걸 말합니다. 진짜 태양보다 진짜로 더 광도가 높나? 이런 게 아니구요 온 우주를 비춰주는 그 정신의 힘을 태양이라고 하는 거예요. 물질의 태양은 오히려 밝은 대신에 별 하나만 있어도 다 막히죠. 다 차단당하죠. 먼지 하나만 있어도 차단당하죠. 그래서 그런 어떤 물질적 빛보다 더 광명하다는 얘기지 형체로서 어떤 형색으로서의 그런 색깔의 광명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온 우주를, 별이 있건 먼지가 있건 뭐든지 뚫고 다 비춰버려요. 우주 끝까지. 고 이 참나의 힘은 그렇습니다. 참나의 태양이 의미하는 건 엄청나죠. 요 참나의 태양을 우리가 지금 태극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주의 근원이니까. 자 그런데 자 보세요. 태양은 알의 중심이 이, 중심이 되며 태양빛이 미치는 범위는 알의 주변이 된다. 태양은 만물을 궤뚫어 보는 광명한 지혜와 만물을 살리는 자비, 만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러한 지혜롭고 자비롭고 강력한 능력을 지닌 태양과 같은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참 마음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본래마음 또한 지혜롭고 자비롭고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하느님한테 우리가 빌 만 하죠. 지혜와 자비와 능력을 주세요. 그래서 나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홍익중생을 할 수 있는 보살로 인도해 주세요. 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런 기도가. 인간은 不動하는, 움직이지 않는 광명한 본심에 뿌리를 두되 만변하는, 만 가지로 변하는 음양의 현상계에 생각 감정 오감으로 그 작용을 나타내니 그 진화와 성장에는 다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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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궁극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끝을 상정할 수가 없죠. 현상계는 萬往萬來, 무상함이 본식이라 절대 멈추는 법이 없이 진화해 나갈 겁니다. 그리고 우리 참나는 그 모든 과정에서 변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두 세계를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석가모니도 兩足尊이라고 그래요. 양 다리 尊者. 어디에다 양 다리를 걸쳤냐. 진리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 그래서 우리는요 우리 인간도 다 똑같습니다. 석가모니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 인간은 생각 감정 오감을 끝없이 일으키면서 이 한 생을 살아가죠. 탄생부터 소멸까지 우리는 끝없이 생각하고 감정을 일으키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면서 살아갑니다. 매 순간 변화하는 것들을 체험하면서, 萬變을 체험하면서. 그런데 그 모든 그 과정을, 과정 속에서 우리 본식 참나자리는 순수한 알아차림은 절대 변함이 없이 이 모든 걸 비춰주면서 같이 굴러가요. 本이 없으면 末이 없어요. 참나가 없으면 여러분 생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말도 할 수가 없어요. 에고도 성립이 안 됩니다. 참나가 있어서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 소식을 좀 아셔야 되잖아요. 먼저. 그래 지금 천부경에서도 말 하는 게 결국 이 소식을 알아야죠. 萬往萬來하는데 만 번 오고 만 번 가는데 본심은 변하지 않잖아. 이 말이 여러분 입에서 나와야죠. 천부경에 그렇다더라. 나도 언젠간 알겠지. 이런 태도로 임하지 마시고 아 해보니 그렇더라. 하고 바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그래서 여러분 그런다는 걸 알면요 제가 [「http://cafe.naver.com/bohd/10338 우주대장부의 삶」]인가 거 글에 이렇게 해놨어요. 만변하는(?) 참나자리에 중심을 두고 변화하는 현상계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6바라밀, 양심을 구현하는 존재가 진짜 대장부다.
50:05
지옥에 있건 천국에 있건 그건 다 현상계예요. 지옥도 현상계예요. 보고 듣고 느끼는 작용이 있으면 현상계예요. 천국도, 극락도 현상계예요. 좋은 집에 뭐 좋은 환경 다 현상계예요. 거기서 여러분 어디 계시건 결국은 6근을 써야 됩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있어서도 이 상태고 천국에 있어서도 이 상태예요. 자 여러분 참나는 6근을 어떻게 경영할 겁니까. 6바라밀을 어떻게 활용하실 겁니까. 이것이 화두예요. 그래서 우주 어디에 있건 이게 본질이기 때문에, 해탈이 단순한 참나로의 해탈이 아니라 진짜 해탈은 현상계에서 현상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참나로 경영하는 해탈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어디 계시건 그건 걱정할 게 아니고 아까 관자재보살이 반야심경에서 일체고를 벗어난 것도 극락 가서 해탈에 들어서가 아니고요 그대로 그 깨달음 때문에 그래요. 그 깨달음 때문에 안이비설신의 6근이 있는 중에 그대로 6근이 空한 줄 알아버렸기 때문에 6근을 가지고도 6근이 무겁지 않게 된 거죠. 그렇게 이루어진 해탈이 진짜 해탈입니다. 소승식 해탈이 아니라 대승식 해탈을 추구하시라. 예, 이렇게 말씀 드리고. 그래서 여러분은 천지인 세 축에 항상 끼어있기 때문에, 보세요. 天, 하늘은 또 時間을 상징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속에 여러분은 계시고, 땅은 空間을 상징합니다. 동서남북 중에 여기 저기 중에 어딘가 계시고, 동서남북 중에 어딘가 계시게 되고. 예, 人間을 상징합니다. 나와 남. 인간은 나와 남 관계죠. 여러 인간관계 속에 여러분이 있어요.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끼어있고, 동서남북 속에 끼어있고, 인간관계 속에 끼어있어요. 그 속에 끼어서 인간 공간 시간 다 사이간자죠. 그 틈에 끼어서 살아가요. 그 틈 속에 끼어있는 모습이 이겁니다(7의 그림). 전후좌우상하 속에 끼어있어요. 천지인 세 축에 끼어있어요.
52:03
그래서 여러분이 살아가고, 그게 제약도 되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그 안에서 여러분이 道를 펼 수 있는 도량이기도 해요. 도를 닦고 도를 펴고. 어떤 걸 내놓으시겠습니까. 어떤 걸 창조하시겠습니까. 에고도 경영 잘 하면서. 에고가 잘하는 거, 에고가 욕심내는 것도 잘 파악해서. 그걸 무시하고 현상계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에고가 하고 싶고 에고가 또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 거길 찾아가셔서 거기서 참나의 안목으로, 양심에 맞게 그 상황을 잘 경영해서 재능이 꽃 피우게 하면요 창조성이 배가됩니다. 그래서 현상계 안에서 끝없이 창조적인 존재가 보살이고 군자다. 진짜 사람이다. 사람 중에 사람이 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현상계에서 부지런히 살아가시면서 깨어서 부지런히 살아가면서 현상계에 조금이라도 더 뭔가 쓸모 있는 창작물을 남기고 가는 거, 남긴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거는 그 현장에서 나눈다는 거. 그 창작물을 만들어서 남과 나눈다는 거. 고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남들하고 나는 6바라밀의 창작물, 양심의 창작물을 얼마나 나누고 있는가.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죠. 인간으로서 산다는 게. 천부경을 읽으시면서 그런 내용을 배우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내용이 좀 애매하죠.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할까요 말까요. 더. 다음 시간에 또 남겨두게 될 거 같습니다만. 그럼 여기까지, 일단 진도는 여기까지 나가구요. 뒤의 얘기도 미리 좀 보죠. 그럼 사람 가운데 지금 천지가 다 하나가 돼있죠. 이미. 7이란 숫자 안에 그런 게 다 의미가 있죠. 여러분이 살아간다는 건요 어떤 하늘의 특성, 땅의 특성, 그걸 또 뭐죠 다 합친 통합한 인간의 특성, 요 세 부분을 다 갖고 살아가는 건데 또 이거를 또 어떻게 나누면요 이렇게 천지인, 어떤 천지인 안에서 내가 살아간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시간성 공간성 인간성 안에서 내가 살아간다는 의미로 천지인이 하나로 돌아가는 모습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거는 이겁니다.
54:30
절대계가 뿌리가 하늘이고, 현상계가 작용이 땅이라고 했을 때, 형체 없는 절대계와 형체 있는 현상계를 나눠봤을 때 여기가 天이 되고 여기가 地가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천부경에서 다음에서 얘기할 건 人中天地一, 사람 안에서 천지가 하나 됐단 얘기는요 참나가 현상계를 잘 경영한단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참나, 내 안에 있는 뿌리. 변치 않는 본심을 잘 알고 변화하는 현상계의 생각 감정 오감을 6바라밀로, 6근을 6바라밀로 잘 경영하시면 여러분 人中天地一이에요. 여러분으로 인해서 천지가 하나됨. 이것도 이해되시죠. 中庸 기억하세요? 중용. 중용에 중용에서 이런 거 했었는데 중용 설명 드리고 마무리 짓겠습니다만. 예, 여긴 여러분 참나 자리. 양심 자리. 여러분 에고 자리. 영혼 하고 얘기할 땐 여기가 靈이에요. 기독교 분들 이해하시기 쉬우려면 여기가 영이고 여기가 혼입니다. 혼은. 영은 시공을 초월한 여러분의 본질이에요. 그래서 이 영을 성령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안에 성령이 여러분의, 보세요. 성령이 여러분하고 별개로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한텐 제가, 여러분의 영이 있고 혼이 있는데 여러분의 영이 성령이랑 통하는 자립니다. 하면 안심을 해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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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좀 더 얘기해드려도 될 분은, 영이 성령입니다. 이렇게 얘기해 드려요. 왜 그럴까요. 보세요. 성령이 밖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분한테, 여러분 영이 성령입니다. 하면 힘들어하세요. 뭐 하느님한테 내가 몹쓸 짓 한거같이 느끼시더라구요. 죄책감 가지시고. 내가 감히 겸상을. 막 이런. 그게 아니고, 여러분이 여러분 영을 모르세요. 여러분이 아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혼이에요. 이 혼이 기능하게 하는 여러분의 본질적인 요소가 영인데, 이 영은 절대계의 영역이에요. 이미 성령이라구요. 이 영을 여러분 거로 생각하니까, 아 내 영이, 나의 영이 어떻게 감히 하느님과. 그래서 그런 분들의 영을 죽은 영이라고 그래요. 영은 영인데 때가 껴가지고 참나가 드러나고 있지 않은 영. 참나. 예. 무지와 아집의 때에 덮여있는 참나를 죽은 영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산 영은 요 때가 벗겨지면 산 영이 돼요. 이해되세요? 참나가 드러나면 산 영이고, 참나가 여러분 안에서 영이 못 드러나면 죽은 영이 돼요. 산 영이 사실은 성령이에요. 왜냐, 이게 더 건방진 생각 아니세요? 그럼 여러분이요 하느님하고 별도로 여러분의 혼이, 영으로 인해서 굴러가는데 여러분만의 별도의 영이 있다면, 혼이 여러분의 영에 의해서 여러분의 개인의 영에 의해서 굴러간다는 건요, 하느님을 오히려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하느님이 여러분 안에 임하지 않으시면 여러분은 보고 들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의 영혼의 본질인 영은 성령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느님, 그럼 하느님과 난 별도로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랑 똑같에요. 하느님 안 계셔도 제 영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자기 영이라는 게 어딨어요. 자기 영이라는 건, 魂이 자기죠. 자기 혼의 뿌리라는 면에서 자기 영이지 이 영은 여러분 게 아니라구요.
58:02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서 그걸 성령이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이 사실은 에고를 입으면 혼이 돼버려요. 에고성을 입으면 혼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이건 다 알아요. 혼의 작용이 뭡니까? 지성 의지 감성. 결국 이게 그러면 뭡니까. 생각이죠. 생각과 감정이죠. 여기에다가 혼이 이것만 하는 게 아니라 오감 작용도 한다구요. 오감을 수용하는 작용도 한다구요. 눈 귀 입이 봅니까? 결국 여러분 혼이 보지. 이걸 통로로 해서 혼이 보는 거죠. 혼이 보고 혼이 듣기. 육체에서 오는 정보는 오감으로 와서 그걸 가지고 감성 의지 지성이 요리해 내는 거죠. 다 혼의 작용이에요. 그게 여러분의 에곤데 결국 여러분은 혼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영은 걱정 안 해요. 영이 사는 세계는 걱정이 없어요. 혼이 사는 세계가, 요 여기가 지랄 같죠. 여기는 이제 매순간 여러분이 판단해야 돼요 여러분이 뭔가를 의지(意志인듯)해야 돼요. 즉 의욕 해야 돼요. 뭔가를. 이걸 할까 이걸 할까 결정해야 돼요. 죽겠죠.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야 돼요(지성). 뭘 할지 결정해야 돼요(의지). 웃을지 울지 결정해야 돼요(감성). 보고 듣고 맛보고, 뭘 보고 듣고 맛볼지 결정해야 돼요. 자 혼한테 갑자기 이 책임이 주어지면 죽죠. 힘들죠. 그래서 이 혼의 실존은 항상 허무하고 고독하고 잠깐 재밌다 싶으면 또 지루해지고. 권태와 지루를 반복합니다. 같은 거죠. 근데. 권태와 지루는. 고 반복하면. 권태와 고통을 반복해요. 지루와 고통을 반복해요. 괴롭거나 지루하거나. 중간이 없어요. 아 중간이 없어. 이런 말 많이 쓰시죠. 여러분 인생이 딱 중간이 없어요. 지루하거나, 지루해 죽겠다가 잠깐 재밌다가 다시 괴로워져요. 다른 걸 하면. 또 괴로움을 도피하고 나며는 괴로움이 사라지고 나면 지루해져요. 그러니까 이제 마약도 하고 뭐도 하는 게, 살라구요. 지루하니까.
1:00:02
뭔가 신날 일이 없을까를 찾다가 자극을 자극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이 잘못돼가는 과정이요 이 원리로 다 설명이 돼요. 힘들어서 그래요.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데 최고의 마약이 있습니다. 영에서 오는 이 마약은요 이 혼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어떻게 만들어줘요? 常樂我淨으로 인도합니다. 영원하게 산다는 느낌을 주고요 영원하단 느낌을 줘요. 무상한 이 혼한테 미래를 걱정 안하게 만들어줘요. 생사를 걱정 안 하게 만들어 줘요. 樂을 줘요. 근심 자체를 날려버려요. 我, 우주 전체가 나라는 수준 높은 의식을 줘요. 淨, 이런 현상계의 모든 것들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줘요. 요게 기적이죠. 영에서 이 세례를 받은 분은, 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 혼은 이제 살만 해집니다. 답이 나와요. 요게 인간의 실존입니다. 어느 종교 불문하고 다 이 원리로 돼있어요. 중용에서 이걸(양심) 뭐라고 하느냐.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양심 이 자리를 중심이라고 하고 중심, 天下之大本. 천하의 큰, 예, 큰 뿌리. 모든 만물은, 여러분 지금 이 말이 참 재밌어요. 여러분 마음의 본질인데 희노애락이 없는 이 자리가 천하의 뿌리다. 하는 건 천지만물이 다 여기서 나왔단 얘긴데, 이거 지극히 관념론적인 얘기 아닙니까? 중용, 유학자들은 되게 객관적인 얘기를 하는 분인데 중용에서 얘기하는 건요 마음의 본질을 정확히 설명해 놨어요. 천지만물이 다 내 마음 뿌리에서 나왔다. 왜냐. 보고 듣고 맛보는 모든 건 우리 마음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생각 감정 오감, 이거 말고 여러분 이 체험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현상계를 다 체험하는 거 같지만 여러분 마음을 통해서 체험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 모니터에 감지된 거만 봅니다. 여러분 마음에 감지된 거만 봐요. 그래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천하라는 모든 거는 혼을 통해서 해석된 거예요.
1:02:01
그러니까 여러분은 혼 밖에 사실은, 느낄 수 있는 건 혼 밖에 없어요. 혼이 느낄 수 있는 건 혼 밖에 없어요. 그쵸. 재밌죠. 근데 뭘 느낄 수 있어요? 자신의 뿌리를 느낄 순 있죠. 요건 잘 안 느껴요. 보통 우리가 혼만 느끼고 삽니다. 혼에 들어온 정보들 막 그거 조합해 살아가느라고 정신없습니다. 혼의 뿌리를 돌아보진 않아요. 그래서 回光返照가 필요하다는 게 빛을 안으로 돌이키는 이 작업. 혼은 혼만 느끼고 살아가니까. 주로. 자신의 뿌리를 느끼는 이 작업을 함으로써 혼이 고아인줄 알았는데 자기 부모를 만나고 나면, 어 내가 부잣집 아들이었잖아. 이 당당해집니다. 상락아정을 배워버려요. 無常 苦 無我의 자녀인줄 알았는데 상락아정의 자녀란 걸 알아요. 내가 하느님의 자녀란 걸 알고 나면 이 혼이 이제 성스러워집니다. 달라져요. 돌아온, 성경의 탕아의 비유가 이런 거예요. 자기 부모 없는 줄 알고 그렇게 힘들게 혼자 힘으로 버티다가 부모를 알고 나니까 내가 원래 하느님 자녀였구나. 하고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이 정체성 찾는 작업을 見性이라고 하는 거예요. 本性 봤어? 이게요 아 뭐 봤어 안 봤어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본성을 보고 나서 여러분 혼이 안 변한다면 안 본거랑 똑같은 거예요. 아버지를 만났으면 혼의 위상이 달라져야죠. 뿌리를 찾았는데. 이해되시죠. 뿌리를 찾았는데 에고에 대한 이해가 전하고 똑같다면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공부 안 한거랑 똑같에요. 그래서 진짜 견성은 뿌리를 보고 나서 혼이 바뀝니다. 오온이, 혼이 결국 이(생각 감정 지성 의지 감성 오감) 오온 아닙니까? 요, 色受想行識 아닌가요? 생각 감정 오감. 이 오온이 본래 공하더라. 공의 자녀더라. 법신의 자녀더라. 하는 걸 깨치고 나니까 자유가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교처럼 천하의 뿌리가 되는 그 자리를 알게 되니까 이제 혼을 경영하는 도리가 이 안의 양심에서 나오는데 오행, 지금 저 오행의 원리 그대로 적용하면, 봄처럼 仁 사랑하고, 가을처럼 정의롭고, 여름처럼 조화롭고, 겨울처럼 지혜롭고, 이 땅처럼 성실한 요 양심의 힘이, 양심이 새겨져 있는 천하의 큰 뿌리, 이걸 이 본체 안에 이런 상이 새겨져 있는 걸 배웠잖아요. 그렇게 해서 알고 나서 이 용대로 작용까지 해 버리면, 용을 펼치면 조화 그럽니다. 조화.
1:04:34
혼을, 생각 감정 오감을. 생각도 지혜롭게, 지성도 지혜롭게, 의지도 지혜롭게, 감정도 지혜롭게, 오감도 지혜롭게 써버리니까 조화를 이룬다고밖에 할 수가 없죠. 현상계에서 조화를 이루는 존재가 돼요. 생각 감정 오감을 경영하는 존재가 돼요. 그러면 이걸 뭐라고 하겠습니까? 중용에서 天下之達道. 뭡니까, 이 생각 감정 오감을 잘 조화롭게 인의예지로 경영하면서 가는 그 길이야말로 천하인 누구나 공통으로 가야 되는 길이다. 그 길을 걷는 게. 천하 어디 가도 먹히는 길이다. 인의예지만 분석만 잘 하면 천하 어디 가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 얘기예요. 천지만물의 뿌리인 천하의 뿌리인 중심을 정확히 알고 나면 현상계에서 생각 감정 오감을 잘 경영해서 천하 어디 가도 먹히게 살아갈 수가 있다. 요게 중용에 나온 얘기죠. 그러면서 뭔 얘길 하냐면 中은 하늘이고, 조화 이건 땅이라고 봐서, 이렇게 살아가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게 되고 만물이 길러진다. 여러분이 우주에서 천지를 제자리 찾게 하고 만물을 길러내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요 얘길 하고 끝냅니다. 요게 천부경에서 말하는 人中天地一의 확장판 아닙니까? 천부경에선 딱 한 마디만 하죠, 인중천지일. 사람 가운데서 천지가 하나가 된다. 근데 그 전엔 또 뭐라고 했죠? 用變 不動本. 작용은 변하는데 본심은 변하지 않는다.
1:06:05
이게 중용이랑 똑같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본심이야말로 천하의 뿌리가 되는 마음이고, 그 작용을 통해서 인의예지를 드러내는 거야말로 천하 어디가도 통하는 그 길을 걸은 거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이야 말로 천지를 진짜로 자신의 삶에서 하나로 통합시키는 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깨어있으면서 자신의 본질을, 참나자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현상계에서 끝없이 양심대로 살아가는 그거. 그래서 일 없을 때는 하느님한테 더 집중하고, 일 생기면 땅에서 하늘의 뜻을 구현하는 데 더 집중하고. 이렇게 살아가시면 여러분을 통해서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천지가 제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통해서 만물이 무럭무럭 자라게 돼요. 천지가 하는 일이 원래 만물 키우는 거거든요. 근데 천지가 어그러져서 여러분 주변에 만물이 못 자라다가 여러분으로 인해서 천지가 통합되니까 여러분 삶 속에서 이 接化群生, 만물을 모든 중생들을 돕고 살리는 그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 여러분이 소천지가 되는 거예요. 그럼 이런 인간하고, 이런 개념 하나도 모르고 사는 인간하고는 좀 차원이 다르겠죠. 그래서 이런 사람이 되자는 거지 사람이라면 다 천지를 통합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천지를 갖추곤 있지만 여러분 통합을 못 시켰기 때문에 여러분으로 인해서 만물이 죽어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내용이 천부경의 핵심이고, 천부경은 우주의 진리대로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불변하는 본질을 잡고 살아갑시다. 하는 거예요. 노자에선 이걸 아주 쉽게 얘기합니다. 도인에 대한 묘사를 하면서, 大象을 잡고, 위대한 형상을 잡고 천하를 행, 횡행한다. 돌아다닌다. 선비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요. 선비는 자기 안에 우주적인 큰 그림을 품고 현상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중생들과 그걸 나누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또 좀더 뭔가 보살이나 군자가 돼야겠다. 이런 좀 발심이 되시지 않을까. 우리말론 선빕니다. 선비가, 보살이 우리말로 선비예요. 선비. 그래서 옛날 보살 번역할 때 大士. 큰 선비. 이렇게 번역했다구요. 불교에 보면 대사라고 번역합니다. 보살을. 큰 선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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