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와 열반 2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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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반야심경 1 |
| 강의일자 | 2023. 10. 28. 土. |
| 게시일자 | 2024. 01. 27. |
| 동영상 길이 | 45:51 |
| 강의 중 인용 도서 | 반야심경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LQtD9AxFDeU |
반야바라밀의 핵심
00:07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이죠, 원래 긴말이. 반야바라밀다 심경. 어떻게 이해하시면 되냐면 심(心)은 핵심이거든요. 반야바라밀의, 보통은 어때요? 일체 반야경의 핵심을 담았다 이렇게 말 많이 하는데요. 그냥 여기 써진 대로 반야바라밀의 심법이 들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반야바라밀의 핵심이 들어 있는 경. 반야바라밀이라는 건 지혜바라밀이죠. 이 반야바라밀은 우리 지금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강의 중에게 이게 뜨면 바로 공성의 직관. 이게 뭐죠? 무분별지.
01:01 이 공성은 또 다른 의미로는 자성이라고 그랬죠. 텅 비어 있다는 측면에서 공하되 꽉 차 있다는 측면에서는 자성입니다. 이 공성의 직관과 또 뭐죠? 이런 공성의 분석, 자성의 분석, 그래서 이거는 뭐죠? 분별지. 반야바라밀은 이게 다예요. 무분별지와 분별지. 무분별지가 반드시 먼저 옵니다. 직관이 와야 직관으로 분석을 해야 돼요. 직관이 온 걸 분석할 때 분별지라고 그래요. 안 그러면 덜 분별지죠. 왜냐하면 분별이라고 그래요. 지혜라고 할 때는 무분별지 뒤에 옵니다. 그래서 무분별 후득지라고 부릅니다. 뒤 후(後)자 얻을 득(得)자. 후에 얻어지는 지혜. 무분별 후득지. 무분별지. 분별없는. 여기서 분별이 없다는 건요
02:00 주객이 없다는 겁니다. 진리와 내가 통으로 하나라는 거예요. 자 보세요. 공성의 진리와 통으로 하나인 의식이 가능할까요? 그 의식은 뭘까요? 공성의 진리와 통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의식. 일반의식이 아니죠. 이게 초의식이에요. 이 초의식 자리고 이 자리가 뭐예요? 청정광명심. 정광명이 아니면 이렇게 못합니다. 일반 의식으로는, 우리의 일반 의식으로는 분별밖에 못 해요. 분별지 써야 돼요. 분별지. 그래서 이 무분별지는 분명히 선정광명심이기 때문에 이 무분별지를 터득하려면 반드시 선정이 전제됩니다. 이걸 그려놓으면 어떻게 돼요? 옆에 그림 있죠. 제트(Z) 자 이론. 어때요. 진여의 법신 자리. 진리가 꽉 차 있다는 의미로 법신 그래봤어요.
03:01 여기는 선정. 선정에 들어서, 여기는 청정광명심이에요. 청정광명심. 접속하면요 자동으로, 이건 자동입니다. 선이 일방이에요. 이건 자동이라서 자동으로 뭐가 터득돼요? 공성의 직관이. 이건 한 덩어리란 말이에요. 이건 한 덩어리예요. 청정광명심 상태에서 청정광명심에 접속을 하면 반드시 청정광명심은 직관해요. 부처님 께왓다경에서 뭐라고 하셨죠? 청정광명심. 모든 곳에서 빛나는 그 순수의식 상태에서는 5온도 없더라. 4대도 없더라. 지수화풍도 없더라는 소리죠. 오온도 없더라. 일체의 2원성이 없더라. 그게 공성의 직관이에요. 부처님이 얘기하신 그대로입니다. 청정광명심에 접속했더니, 일체가 텅 비었다는 걸
04:00 직관했어요. 그렇죠. 그런데 이게 말로 안 게 아니에요. 청정광명심 상태에서는 지금 언어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직관이라고 쓴 거예요. 이게 무분별지입니다. 무분별지는 반드시 선정 상태여야 돼요. 선정이 안 들었는데 무분별지를 말할 수 없어요. 선정에서 나오면 어떻게 돼요? 여기서 나오면 분별지가 됩니다. 그래서 분별지에서는 공성을 어떻게 해요? 분석을 해요. 그래서 지금 반야심경도 오온이 공하더라는 것을 이렇게 이해하셔야 돼요. 관자재보살이 선정해 들어야 돼요 먼저. 청정광명심에 접속해서 일체의 언어의 유희를 떠나야 돼요. 희론(戱論)을 떠나서 뭘 직관해요? 공 자체밖에 못 봐요. 오온이 공하더라도 아니에요. 그건 나와서 하는 말이에요. 그렇죠. 5온도 없다니까요. 거기는 공만 있어요. 직관을 하고 있다가 나와서 하는 소리예요, 분석으로. 오온이 공하더라, 그 자리가. 지수화풍도
05:00 공하더라. 12연기도 공하더라, 그 자리에는. 일체의 사성제, 팔정도도 거기는 없더라. 그냥 공 자체다. 이 말이 나와 있죠. 그렇죠. 그게 분석입니다. 그래야 바라밀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이걸 밖으로 실천으로 옮기면 이제 육바라밀이 펼쳐져요 여기서 이 자체가 반야바라밀인데 이건 선정바라밀이에요. 선정에 들었더니 직관이 왔어요. 직관 온 걸 가지고 말하면 반야바라밀이에요. 분석을 하면 반야예요. 이 분석한 걸 가지고 실천에 옮기면 예 요게 이제 뭐냐면 우리 육바라밀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거죠. 반야바라밀이 분석을 해 주고 그걸 실천에 옮기는 겁니다. 분석과 실천. 이게 우리가 움직일 때 실천할 때 분석 안 하면, 머리를 써서 분석을 못하면 실천을 못 하죠. 그래서 이렇게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이 실천을 잘하려면
06:00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쪽에서 반야바라밀이 작동하고 이쪽에서 나머지 다섯 바라밀이, 나머지 다섯 바라밀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합쳐서 이 육바라밀이 같이 굴러가야 원만하게 방편이 펼쳐져요. 방편 자체는 실천이지만 분석이 분명히 있어야죠. 판단을 해줘야죠. 아무리 실천력이 좋아도요 판단 안 서면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차가 아무리 좋아도 네비가 없으면 지도를 모르면 못 가요, 어디도. 판단을 해 주는 거예요. 내비 역할을 해 주는 게 저 분석입니다. 이거 아셨으면 지금 반야바라밀을 다 아신 거예요. 반야바라밀은요 선정 상태에서 공성을 직관하는 겁니다. 직관이라는 건 주객이 없어요. 그러니까 반드시 언제 이루어져야 돼요? 무분별지는 언제 이루어져야 돼요? 청정광명심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주객이 없어야 되니까, 진짜 순수한 직관은. 무분별지라고 할 수 있는
07:00 직관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오감 쓰는 것도 직관이거든요. 생각 안 하고 보시잖아요. 생각 안 하고 듣고. 생각 안 하고 하는 것들은 또 직관입니다, 그것도. 불교에서 그걸 현량(現量)이라고 그래요. 현량. 드러날 현(現)자에 헤아릴 량(量)자 해가지고. 따지는 건 비량(比量)이라 그럽니다. 그럼 비량은? 분별지는 비량이죠. 따져보는 건. 그런데 현량은 직관이거든요. 오감이나 지금 이 영감이나 다 직관이에요. 그래서 오감도 그러면 생각 안 하고 알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현량이에요. 그런데 무분별지는 정말 진리를 알아차리는 거죠. 오감은 색깔을 알아차리는 거잖아요. 소리를 알아차리고. 예. 차원이 달라요. 이제 2원성도 떠나가지고 시공도 없는 자리에서, 오온도 지수화풍 없는 데서 알아차리는 거거든요. 이거는 그냥 진리랑 하나라고 봐야죠.
청정광명심
07:58 그래서 청정광명심을 그대로 진리로 본다가 뭐예요? 지난 시간에 배웠던 닝마파의 입장이었습니다. 닝마파를 포함한 모든 선불교 다 청정광명심이 그대로 진리다. 달라이 라마가 속한 귀류논증파라는 겔룩파는 어쨌다 그랬죠? 지난 시간에 한 거 기억 안 나세요? 달라이 라마가 이렇게 설명했잖아요. 이 무분별지 상태에서만, 딱 직관할 때만 진리랑 둘이 아니지 바로 떨어지면 또 주객은 원래 둘인 것처럼 원래 둘인데, 잠깐 직관할 때만 오감이 소리를 들을 때 합치되는 것처럼 잠깐 진리를 알아차릴 때만 주객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었죠. 닝마파는 그래서 그거를 그냥 청정광명심이 그대로 진리라고 가르친다고 설명을 했죠. 닝마파랑 겔룩파는 다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중관파 안에서도,
09:00 중관파 안에서도 귀류논증 중관파는 청정광명심을 무상한 것으로 보려고 한다. 그냥 의식, 무상하다는 건 끝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들이 전체적으로 보면 흐르는 것 같잖아요. 물이 이렇게 흐를 때 그런 현상이 있던데요. 잘 물을 조절해서 물을 흐르게 하면 딱 흐르는데 정지된 것으로 보여요. 딱 물이 얼어 있는 걸로 보여요. 만져보면 흐르고 있어요. 물 잘 흐르게 하면요. 자세한 건 유튜브 찾아보시고요. 그런 걸로 보는 거예요. 연속체. 그러니까 청정광명심은 고정된 것 같지만 사실 안에서는 계속 생각이 흐르고 있다는 거예요. 알아차림이 찰라찰라 알아차림이 생멸하고 있다는 거예요.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하나인 것 같은 의식이지만 자세히 보면 계속 생멸하고 있는 무상한 의식이라는 것을 자꾸 주장해요, 그 달라이 라마는. 달라이 라마의 학문 체계
10:00 기본입니다. 청정광명심, 즉 초의식 가장 미세한 의식은 무상한 존재다. 왜? 이게 영원해 버리면 힌두교 아트만이랑 다를 바가 없어지니까. 너무 잘 알고 계시죠. 이걸 불변하다고 해 버리면 참나가 돼 버립니다. 그래서 변한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닝마파나 까규파나 다 기본적으로 불변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초의식은 변치 않는다. 생멸하고 있으면 그건 인과세계고 생멸계지 절대계가 못 된다. 그래서 거기서 입장차가 나는데 이 얘기 자세히 각주에 있어요. 뒤에 읽어드릴게요. 달라이 라마의 주장을 하나씩 읽어드립니다. 달라이라마 주장이 왜 중요하냐? 전 세계적으로 지금 그런 식의 중관파 중에서도 이렇게, 이런 청정광명심을 무상한 거로 보려는 주장은 달라이 라마가 제일 선두에서 하고 계시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러면 참나가 영원한 거라는 주장을 제가 하려면
11:00 이 비판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거기를 안 건드리고는 설명이 안 돼요. 지금 거기에서 제일 중심이 돼서 비판하고 있고 학자분들이 또 달라이라마 말이니까 불교의 최고 수장의 말인 것처럼 해서 그대로 받아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참나 공격할 때 항상 그런 주장들이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전 우리 강의 시작 때부터 그랬죠. 참나라는 말 안 써도 좋다고요. 이게 뭔데요. 청정광명심이 중요하다고요. 부처님이 말한 빛나는 의식, 순수의식. 청정한 순수한 빛나는 의식. 스스로 빛나는 이 의식이 있다는 거예요, 영원히. 상주 불변으로. 요게 있다는 게 전제입니다. 왜 부처님은 이게 불변의 세계로 봤어요. 왜 어떤 2원성도 없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갑자기 거기다 2원성을 넣어가지고 이 의식을 생멸한다고 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말이 안 되죠. 근데 이런 주장을 하신다니까요. 지금 귀류논증 중관파의
12:00 대표께서. 그래서 우리가 말 안 할 수가 없고 참나는 경우에 따라 참나는 진짜로 없는 겁니다. 이거 구분하셔야 돼요. 참나를 첫째, 청정광명심을 순수 초의식을 참나라고 부른다 이거는 인정해야 돼요. 이건 부처님이 있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런 참나는 없어요. 참나를 어떻게 공격했냐면 예전에. 진짜로 에고성이야. 에고성. 남과 다른 나라는 게 영원한 나라는 게 있느냐 예요. 영원한 에고가 있을 것 같으세요? 영원한 에고, 변치 않는. 그건 없죠.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영원한 에고로 참나를 보고 공격하는 거랑 청정광명심을 참나로 보는 거랑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유식학의 참나
12:46 그래서 유식학도 그건 참나 인정 안 해요. 유식학도. 그런데 유식학은 뭘 인정해요? 변치 않는 청정광명심을 인정해요. 그러면 참나론자인가요? 아닌가요? 이상하죠. 그래서 유식학도 참나를 공격할 때 뭐를
13:00 공격하냐면 이 오온을 중심으로 공격합니다. 오온이라는 게 보통 우리 에고성의 핵심이니까. 이 오온이라는 걸 나라고 집착하는 사상. 그런데 오온은 영원하지가 않잖아요. 따라서 영원한 에고는 없어요. 이해되시죠. 그리고 에고성을 아무리 깊게 파 들어가 봐도 유식학적으로 7식밖에 안 돼요. 8식, 벌써 에고성이 없어요. 따라서 영원한 에고는 없다는 거예요. 영원한 자아는 없다. 이 말과 헷갈리시면 안 된다고요. 영원한 자아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거냐에 따라 다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영원한 에고가 없다는 말이면 우리도 긍정한다고요. 하지만 순수광명의 이 의식을 참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열반경에서는 이걸 참나라고 한단 말이에요. 불경에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 못할 게 아닌 거죠. 이걸 참나라고 한다면, 이건 인정해야 돼요. 이게 다르다는 얘기 초반부터 드렸죠. 그래서 헷갈리시면
14:00 참나 했을 때 인상이 안 좋으면 청정광명심이라고 빨리 바꾸세요. 아, 아니다. 청정광명심. 그러면 청정광명심을 부정하지는 않잖아요. 또 만약에 겔룩파를 만났어요, 여러분이. 티벳 여행 갔다가 마침. 참나 얘기를 하고 싶어요. 청정광명심이라고 하시고 가장 미세한 의식이라고 하면, 다 알아들어요. 그런데 그게 불변한다 그러면 안색이 안 좋아질 거예요. 영원하다고 하면 동의합니다. 영원히 고정된 것 같거든요.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게 겔룩파의 입장이에요. 그래라. 아무튼 청정광명심이라도 인정해 주니까. 그래라. 내 건 안 변하지롱 이러면 되잖아요. 속으로. 이해되시죠. 어디 가서도 이렇게 타협하는 법 말씀드린 겁니다. 항상 조화를 이뤄야죠. 싸우고 다니면 좋겠어요. 싸우는 것은 제가 동영상에다 딱
15:00 박제해서 올려놓을 테니까. 여러분들은 가서 친하게 지내시라. 좋지 않나요? 친하게 지내시라. 말만 이렇게 바꾸면 된다. 영업하는 법 다 말씀드렸어요. 자 들어가 볼까요. 반야심경의 기본적 전제가 될 만한 정보는 말씀드렸어요.
반야바라밀의 심법
15:24 600권 대반야경의 정수 핵심이다. 이래서 반야심경 이렇게도 말하는데요. 그냥 반야바라밀의 심법이 들어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의 심법이 들어 있으니까. 반야경 600권을 볼 바에 한 권을 본다면 반야심경 봐야겠지 않겠어요. 한 편을 본다면. 정수가 들어 있으니까. 첫 대목에서 이미 정수를 바로 얘기합니다. [1.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공성의 지혜)를 행할 때, ‘5온’의 자성(독자적 불변의 실체)이 모두 텅 비어있으며, 공성(청정ㆍ진여ㆍ법신ㆍ열반)을 자성(불변의 실체)으로 삼음을 꿰뚫어 보고 일체의 고통과 재앙을 넘어갔다.]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 공성의 지혜를 행할 때
16:01 오온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이럽니다. 뭘 깨달았어요? 반야바라밀의 핵심은 5온이 공이더라. 안 보이시죠. 오온이 공이더라. 오온, 그런데 원문에는 오온의 자성이 공이더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온의 자성이 공이더라. 그래서 이것을 달라이라마 같은 학파에서는 오온의 오온이 연기하니까, 오온이 연기하니까 오온공을 어떻게 풀어요? 오온이 연기하니까 무상하고 그것이 공이다. 연기하니까 공이다. 이게 중관학파의,
17:00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핵심 주장이거든요. 왜 귀류논증만 얘기하냐면 나머지는 주장들이 대동소이해요. 거기만 특수하게. 그러니까 용수보살의 우리가 정수를 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달라이라는 말을 배출하고 있는 학파 입장이 이렇다는 거예요. 연기하니까 공하다. 오온은 연기하니까 오온의 자성이라는 게 없다는 소리입니다. 여기서 그냥 없다는 소리가 돼요. 이 중관학파식으로는 이쪽 중관학파식으로는. 그래서 결국 이게 뭐예요? 이 말은 공이라는 건 무자성(無自性), 자성이 없다. 오온에 자성이 없다. 왜? 연기하니까. 그러니까 오온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 중관학파 입장은 오온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얘는 있어요. 있는데 관찰해 보니까 연기하고 있어요. 연기한다는 것은 상호 의존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거거든요. 여러 요소가 모여서 상호 의존적으로 일시적으로 이 펜을 만든 거예요.
18:00 얘(펜)도 좀 지나면 분해돼서 또 이 요소들이 다 흩어질 거예요. 일시적으로, 잠시, 이 모습을 하고 있는 거고요. 무상한 거고, 이 재료들도 계속 지금 변하고 있어요. 시시각각 뭔가 요소들이 연기하고 있고. 따라서 자성이 없다는 건요? 이때 자성이라는 건 자성은 뭐라고 그때 정의해 드렸죠. 일단 불변의 본질이나 불변의 존재를 말합니다. 실체라고 하는데요. 불변의 실체인데 본질일 수도 있고 존재일 수도 있어요. 그때그때 그 문맥 따라 읽으시면 돼요. 그런데 여기에서 뭐라고 하느냐면 본질이 있으면 또 존재가 있으니까, 존재를 강조해서 불변의 존재가 되면 윤회 안 하는 존재거든요. 그러면 이 펜이 윤회 안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밖에 안 돼요. 오온이 공합니다. 이 말은 뭐예요?
19:00 색즉시공을 중관학파식으로 분석해서 이해하면 연기하니까 영원히 변치 않는 존재가 아닙니다. 끝. 그러면 여러분은 지당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하겠죠. 너무 지당하잖아요. 뭐라고 하겠어요? 충격적인 진리를 얘기해 줄게요. 이게 무상합니다. 그래 갖고 어 씨! “펜이 무상하다니” 이런 분 계세요 지금. 이 얘기 듣고 충격 받아가지고. 펜이 나는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게 무상하다니. 원자 분자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진동하고 있다니. 충격 받으신 분 계세요 지금? 이걸 또 어떻게 포장해요? “과학과 제일 잘 만나는 게 불교입니다.” 그러면 과학자들은 뭐라고 하겠어요? “그럴 바에는 과학을 배우세요.” 과학과 철학이요 철학이 너무 과학적이라는 얘기는요 정말 형이상학이 없는 겁니다. 형이하학만 있다는 얘기예요. 그럴 바에는 과학을 배우시고 그게 그냥 과학이에요. 이미 철학이 아니에요. 이해되세요?
20:00 이미 그건 그냥 과학이지 뭔 철학이에요? 분석해보면 쪼개보면, 스님들이 이런 말씀 많이 하세요. “이게 공합니다.” “왜요?” “쪼개보면 공이거든요.” “충격적이네요. 쪼개면 공이 된다는 거.” “원자 분자 또 그것도 다 원래 진공에서 나왔거든요.” 그 얘기를 하는 걸까요, 지금? 그럴 거면 물리학을 배우세요. 오온 공은 전혀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과학적인 얘기랑 바로 막 매칭 시키시면 안 돼요. 이건 철학적인 얘기입니다. 오온이 공이라는 걸 분석해서 공하다 해버리면 별 의미가 없는 말이 돼요. 진짜 핵심은 뭐예요? 이 오온의 자성이 텅 비어 있다는 거고요. 텅 비어 있다는 얘기와 동시에 이 공을 공성의 청정광명심의 공성으로 봐야 돼요. 청정광명심에, 청정광명심에는요 나니 법이니 하는 게 없단 말이에요. 나니, 나를 구성하는 온갖 법,
21:00 생각 감정 오감이 법입니다. 육근이 법이에요. 청정광명심에는 나도 육근도 없더라는 거예요. 오온도 없다고 그러잖아요. 부처님이. 오온도 지수화풍도 없더라 이 말을 했죠. 말이 과학적입니까? 부처님이 한 말은 과학계 얘기가 아닌데요. 영원히 빛나는 순수의식부터 벌써 과학적이지 않은데요. 의식이 뇌에 의존해서 작동하는 것뿐인데, 전기 신호인데 뭔 소리지? “영원한 의식이 있어.” 부처님이 벌써 이렇게 판을 짰다고요. “영원한 의식이 있는데 그 의식 상태에서는 지수화풍도 어떤 2원성도 하나도 없어. 시공도 거기서는 다 꺼져. 시공도 없고 영원한 텅 빔이 있어.” 그래서 관자재보살도 역시 마찬가지로 깊은 반야바라밀 상태에 들어가서, 심오한 반야바라밀에 들어갔다고 했죠. 뭘 알았겠어요? 부처님하고 똑같은 걸 봤겠죠.
22:02 “여기는 오온이 없더라. 지수화풍도 없고 12연기도 없고 18계도 없고 어떤 것도 없더라”는 걸 직관했겠죠. 그것도 생각으로 한 게 아니죠. 진리 그 자체가 되셨던 거예요. 진리가 됐기 때문에 달라이라마 식으로 하더라도 잠깐이라도 진리가 됐든가 원래 진리와 하나인 청정명령심에 접속해서 그렇든가 간에 진리를 직관한 겁니다. 텅 비었다는 걸 안 거예요. 순수의식 상태에서는 어떤 2원성도 어떤 특정한 존재도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온의 자성이 텅 비었더라 하는 걸 아신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번역하는 게 제일 좋아요.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의 자성, 즉 독자적인 불변의 실체가 모두 텅 비어 있더라. 오온의 자성이라는 건요? 이때 자성은 불변의 본질이나 실체라고 그랬죠. 불변의 본질 실체 그런 존재가 텅 비어 있더라.
23:02 여기서 독자적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가 이해를 도우려고요. 독자적이라는 건요 청정광명심과 별도로 어떤 오온의 실체가 있지 않더라는 겁니다. 텅 빈 청정광명심이, 보세요, 그런데 이 청정광명심이 결국 뭐가 될까요? 청정광명심이요 오온을 나툰 거예요. 오온의 본질이 공인데 이 공의 나툼이 뭐예요? 오온이요. 신기하지 않아요. 신기하지 않으세요. 부처님 말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알아차린다는 그 의식 상태 안에는 오온도 없고 지수화풍도 없었는데 실제 우리는 오온을 알아차리잖아요. 의식을 다운시키면 알아차려져요. 다시 주객이 생기고 오온이 나타나고 육근이 나타나요, 내 마음의 세계에. 그렇죠. 그럼 이거를 체험하신 분들이
24:00 법공 사상을 깨달은 거예요. 원래 공했는데 공에서 만법이 나오더라는 거예요, 중요한 건. 중요한 건 여러분이 밤에 주무실 때 지수화풍도 없고 나도 남도 없었는데 눈을 뜨니까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지수화풍이 펼쳐지고 내 우주에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펼쳐지고 지수화풍과 온갖 2원성이 가득 채우더라는 거죠. 여러분 주무시다가 깨신 거 생각하면 그게 그거예요. 깊은 명상에 들었다 나온 거랑 똑같아요. 갑자기 나타났죠, 내 우주가. 그걸 의식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는 거예요. 의식에서 만법이 나퉜다. 그러니까 지금 5온이 공하다는 건요? 깊은 무분별지 상태에서는 일체가 공하더니, 분별의 상태로 돌아오니까 일체가 펼쳐져요. 이걸 경험하시고 뭐라고 하셨어요? 오온이, 오온의 자성, 오온의 독자적인 실체가 없더라. 그런데
25:00 동시에 뭐가 또 자성이더라는 거죠? 그 청정광명심, 진여, 법신, 열반 자리가 자성이더라. 왜? 거기서 나왔으니까. 오온의 자성은 공이더라는 거예요. 공성이더라. 이게 오온개공(五蘊皆空)의 뜻입니다. 이게 각주에 보시면, 각주 2번 보시면, 전순환 님이 번역하신 8천송반야경 354쪽에 있는 말이에요. [6) “5온은 자성이 없고 ‘공성’을 자성으로 갖는다.”(전순환, 팔천송반야경, 354쪽, 불광출판사)] 오온은 자성이 없고 공성을 자성으로 갖는다. 이걸 한마디로 받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기존에 있던 팔천송반여경의 핵심 가르침을 딱 한 마디로 받은 게 오온의 자성이 공하더라 한 거예요. 5온은 자성이 없으면서, 이 공을 없음으로 풀면요, 5온의 자성이 없으면서 동시에 5온의 자성은 공성이더라. 이 공성을 진여로 본다면 그대로 공이 되는 겁니다. 오온의 본질이 공성이더라가 되는 겁니다. 전혀 다른 얘기죠. 이거를
26:00 이렇게 입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시면, 부분만 그냥 5온에 자성이 없더라만 파악해버리면 연기공(緣起空)으로 빠집니다. 연기하니까 공하더라. 여기 연기한다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드립다 오온이 공하더라 한 거예요. 부처님 말씀 또 보실까요. 께왓다경. [5) “‘의식’(열반의식, 광명심, 반야지, 무분별지)은 볼 수 없고 무한하고(무분별, 공성空性) 모든 곳에서 ‘빛’이 난다(지혜, 영지靈 知). 여기서 ‘지수화풍’(4대)은 견고하게 설 수 없으며, 길고 짧은 것, 미세하고 거친 것, 아름답고 더러운 것(선善과 불선不善), 즉 ‘정신과 물질’(5온, 명名과 색色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알음알이’(5온의 식별)가 소멸하면 모두 남김없이 소멸한다(5온ㆍ4대ㆍ이원성의 무자성ㆍ공성, 무분별지로 공성ㆍ무자성의 직관, 열반의 증득).” [께왓다경 디가 니까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무분별지 자리에서는 자아를 이루는 5온의 자성이 공함(승의무자성)을 주장하여 ‘아공我空의 진리’(자아에는 독립ㆍ고정ㆍ불변의 실체가 없음)를 강조하였다면, “반야심경”은 5온의 자성이 공성(승의무자성)이며 공성의 작용이 5온임을 주장하여 ‘법공法空의 진리’(만법에는 독립ㆍ고정ㆍ불변의 실체가 없음)를 강조한다.] 잊을 만하면 또 나오죠. 끝없이 나와요. 왜냐하면 다 연결돼 있어요. 부처님 말씀을 알아야 다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의식, 이 무분별지 광명심 청정광명심의 반야지, 열반의식은 볼 수 없고 무한하고. 무분별하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여러 측면, 계속 등장하지만 조금씩 다른 측면에서 검토돼요, 이 글이 상황에. 맞게 무한하고 볼 수 없다고 했으니까. 무분별 상태고 공성이라는 거랑 통하죠. 하지만 모든 곳에서 빛난다고 했으니까. 지혜며 영지죠. 공적 영지를 얘기하신다는 거 아시겠죠.
27:00 무분별지를 얘기한다는 것도 아시겠죠. 무분별한데 알아요. 그래서 여기에서 지수화풍도 여기는 설 수 없고, 견고하게 설 수 없고, 길고 짧고 미세하고 거칠고 아름답고 더러운 거 온갖 2원성 다 날아가고, 정신과 물질, 즉 오온의 요소들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정신은 수상행식이고 물질은 색이죠. 색수상행식이 둘로 줄여서 말하면 정신과 물질은 명과 색 그럽니다. 수상행식은 개념으로만 이름 붙일 수 있거든요. 물질이 없거든요. 색은 물질이 있거든요. 그래서 수상행식은 이름으로 명(名)이라고 하고요. 이름과 형태로 다 포괄합니다. 정신작용과 물질작용이 다 소멸한다. 그러면 이거는 멸진정 상태죠. 선정으로 말하면 다 멸진했다는 거죠. 일체의 정신과 물질 작용이 다 사라졌고 알음알이가 소멸하면
28:00 이렇게 알음알이가 소멸해 버리면 모두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오온 4대 2원성의 무자성, 공성을 말합니다. 부처님이 이미 얘기하신 거예요. 5온 4대 2원성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고 얘기하신 거예요. 순수의식 상태에는 없더라는 거예요. 무분별지 들어가 보니까 없더라 그랬단 말이에요. 연기해서 분석해 보니 없더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없다라고 했지. 그건 또 다른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연기에서 무상하다는 건 제법무아의 가르침이지 지금 이 무분별지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에요.
아공의 진리
28:36 나와서 분별해 보고 얘기하신 거예요. 만법이 무상하더라. 내 것이랄 게 없더라 이건 다른 차원입니다.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중관학파는 무분별지 얘기하는데 지금 제법무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얘기예요, 그 얘기랑. 그래서 이 무분별지로 공성, 무자성을 직관하고
29:00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자리에서. 이게 열반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요, 이건 뒤에는 제가 붙인 말인데요. 무분별지 자리에서는 자아를 이루는, “그러면 석가모니도 이미 법공을 논하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석가모니 때는 아공을 주로 논했다고 하십니까?”라고 한다면요 아공과 법공의 차이는요, 지금 이 오온이 공하다는 걸 깨친 거에서도 아공의 요소가 있고 법공의 요소가 있고 법공의 요소가 있어요. 뭐냐면 이 오온은 나를 구성하잖아요. 무분별지 가니까 오온이 없더라. 따라서 나라는 게 없다. 이 말을 강조하고 싶으실 때가 있고 또 어떨 때는 이 말을 써서 오온이 없더라 따라서 만법이 본래 공하더라. 이 말을 강조하고 싶은 때가 있겠죠. 이게 아공 법공 차이예요. 지금 같은 체험을 한 겁니다. 같은 체험을 했는데 거기서 뽑아내는 지혜가 달라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무분별지 자리에서 자아를 이루는 오온의 자성이 공하다.
30:00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걸 아셨어요. 그래서 아공의 진리를 강조하셨습니다. 자아에는 독립 고정 불변의 실체가 없다.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무분별지 가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나라는 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에고가 있을 수 없다. 독자적 실체가 없다, 에고는. 이 아공을 강조하셨고. 반야심경에서 지금 관자재보살은요 오온의 자성이 공하다는 걸 강조해서 일체 만법이 다 공성의 작용이라는 측면을 강조해서 공성의 작용인 오온이 텅 비어 있다는 겁니다. 공성의 작용이라는 거고. 오온이 본질이 공하다는 걸 얘기해서 법공의 진리, 즉 만법에는 나를 구성하는 요소였던 그 만법에는 독자적인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걸 강조했다는 겁니다. 이게 아공과 법공의 차이예요. 이해되세요. 내가 없다는 걸 강조했느냐? 제법무아인데 왜? 제법무아면요
31:00 중관론 식으로 보면 만법이 무아라고 한 건 만법에 자성이 없다고 한 거거든요. 만법에 자성이 없다. 그러면 석가모니 때 이미 법공이 선포된 거예요. 그렇죠. 따라서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에서는 대소승 간의 깨달음 간의 구분이 근본적으로 없다고 봅니다. 그냥 보리심 차이라고 봐요. 아라한들은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출리심(出離心)만 있고 보살들은 보리심(菩提心)이 있는 이 마음 차이지 깨달은 법공은 똑같다고 봐요, 근본적으로. 차이는 따져보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봅니다. 왜 그래요? 제법무아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제법무아를 가지고 집착해서 법공을 강조하는 건 진짜 대승이 아니라 그랬죠. 소승의 변종이지. 그래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부처님의 무분별지
31:53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보면 부처님도 이미 다 얘기하셨어요. 법공을 깨달으셨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이걸 강조했다는 거예요.
32:04 무분별지에는 만법이 없더라. 만법에 자성이 없더라. 이미 5온에 자성이 없다는 걸 아셨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래서 5온이 만법의 다툼이다. 작용이다. 이렇게 법공을 더 천명한 게 아니라, 오온이 자성이 없으니까 너라는 것이 영원한 너라는 게 없다라고 하는 아공 쪽에 포인트를 두고 가르치셨던 거예요. 왜? 초기불경에서는 결국 그래서 이 공성이 어떻게 나퉈서 5온과 만법을 구성하는가? 이런 얘기는 자세히 안 나오니까요. 다만 힌트들은 있어요. 부처님한테 누가 “일체가 뭡니까?” 하니까 “일체라는 건 육근밖에 없다. 너가 사는 일체 세계라는 거는 너 마음의 세계일 뿐이다”라는 걸 강조했어요. “육근밖에 없다.” 지금 오감 정보 말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이 바깥의 세계가 진짜로 있나요? 없나요? 그건 우리가 말할 수 없다니까요.
33:03 즉 내가 경험한 우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포인트는 이거예요. 내가 경험하는 우주는, 일체 세계는 육근밖에 없다는 거예요. 석가모니가 이 말을 하죠. 다 했었죠. 이 말 하시면서 “다른 일체 세계를 얘기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구라다. 왜? 다른 건 없으니까. 됐죠. 자명한 얘기만 해야 돼요. 내가 경험해 보니 자명하게 이렇더라. 내 우주는 육근 작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럼 부처님께서 이걸, 자 만법의 본질이 공한 줄도 아셨고, 무분별지 상태에서는 만법이 공하다는 것도 아셨고, 육근이 펼쳐지면 그게 내 우주의 전부라는 것도 아셨는데 법공을 모르셨을까요? 강조를 안 했다는 거예요, 포인트는. 법공을 강조하면 이제 일체 우주가 다 공성의 작용이라는 측면도 강조해야 되잖아요.
34:00 그런 부분은 강조 안 하셨다고. 그냥 너라는 게 실체가 없다는 거, 에고의 아집에서 벗어나라는 걸 더 위주로 가르치셨다는 거예요. 부처님의 관심은 탐진치 벗어나기였고요. 번뇌에서 빠져나오기였어요. 분노에서 빠져나오기. 고통 클리닉에 대가셨죠. 안 아프게 해 주는 데 초점을 두고 가르쳤어요. 아프냐 탐진치 때문에 그렇다. 탐진치가, 무분별지 상태에서는 탐진치도 없다. 거기가 열반 자리다. 열반에 들어가라. 거기 가면 에고가 없기 때문에 고통도 없다. 에고를 초월하게 가르치셨어요. 왜? 사실 에고가 본래 없는 거다. 육근 중에 뭐가 너냐? 고정된 너가 있냐? 너랄 게 없다. 이렇게 가르치신 거예요. 그러니까 강조된 게 아공이었다는 것뿐이에요. 공통된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체험에서, 부처님 가시고 몇 백 년이 지나니까 체험에서 법공을 끌어낸 보살들이 안 나왔겠어요?
35:01 가만히 보니까, 이거 부처님이 다 힌트 주신 거잖아요. 무분별지에서는 어떤 2원성도 없다. 그런데 한 생각이 일어나면 육근이 펼쳐지는데 육근이 결국은 객관적 우주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다 주관적 우주에서 살아간다. 이 주관적 우주는 어디서 나왔냐? 무분별지에서. 분별은 어디서 일어났냐? 무분별에서. 그러면 만법은 어디서 나왔냐? 공에서. 머리 좀 달린 보살들은 여기까지 갔겠죠. 왜 이걸 가냐면 이걸 가야 현상계를 긍정하고 현상계에 뛰어들어서 현상계가 본래 공인 줄 알고 여기서 육바라밀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거든요. 안 그러면 숲에 갇혀서 소승 계율 지키면서 중생하고, 아라한들은 돈도 만지면 안 돼요, 이래가지고 어떻게 해요? 돈 만지면 바르르 떠는 분들이 중생 제도하겠어요, 제대로? 초월하실 분들이죠. 그러니까 “나는 이제 현상계
36:00 이번 생이 마지막이고 떠납니다. 그러니까 돈 같은 더러운 거 안 만집니다.” 하는 부류, 이게 아라한인데 이 아라한으로는 중생 구제가 한계가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중생 구제를 해야 되는데 아공 사상만 강조하다 보면, 한계가 있으니까 법공이 나온 거예요. 내가 경험하는 모든 존재가 본래 공인데 뭘 그걸 가지고 시비 거느냐? 하는 사상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관자재보살이 법공을 외친 겁니다. 5온의 자성이 텅 비어 있되 동시에 공성, 진여, 공성이 텅 비어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또 뭐도 돼요? 진여 자체를 말하거든요. 청정광명심을 말하기도 하니까 두 의미를 다 제가 번역에 써본 거예요. 그래서 이걸 꿰뚫어 보고 나서 일체의 고통과 재앙을 넘어갔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그러면 여러분도 이것도 역시 고통과 재앙을 벗어나야 부처님 가르침이죠. 고통과 재앙을 벗어나는 방법이
37:01 아집을 깨는 것, 에고가 본래 무상 고 무아임을 꿰뚫어 보고 에고가 본래 공함을 꿰뚫어 보고 무분별지적인 공, 이것을 승의의 무자성이라고 그래요. 그냥 무자성은 이것도 무자성이잖아요. 연기하니까 자성이 없다도 무자성이죠. 그러면 이건 연기의 무자성이고요. 승의(勝義)라는 것은 뛰어난 의미, 궁극의 의미라는 거라서 궁극의 의미의 무자성은 뭐예요? 무붑별지에는 없더라는 거예요. 이게 승의의 무자성입니다. 그냥 이거는 연기하니까 무자성이죠. 연기하니까 무자성이라는, 그래서 저는 연기공이라고 하고요. 승의공이라고 합니다. 그냥 승희공 차원과 연기공 차원은 구분하자고요. 연기하니까 공하다는 건 없다는 것도 아니에요. 실제로 다 있는데, 무상하다는 소리 밖에 아니잖아요. 연기공의 의미는 무상하답니다. 없다가 아니에요. 그런데 승의공의 의미는 없다 예요 진짜로.
38:00 없다. 없는데 동시에 있다 예요. 이해되시죠. 텅 비었는데 꽉 차 있다는 겁니다. 거기서 나왔으니까. 승의공이 지금 부처님 말씀처럼 진짜 없다 예요. 그게 5온도 없고 4대도 없고 없더라. 없어서 없더라 하는 겁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발 좀 샅샅이 찾아보세요. 있나? 이럴 게 아니라고요. 시공을 초월했고 이원성을 초월한 의식 상태이기 때문에 거기서는 분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분별 상태에서 자기가 자기를 보는 거예요. 사실은 알고 보면 청정광명, 공성직관이라는 건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겁니다. 왜?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뭐만 있겠어요?
반야바라밀의 공
38:42 청정광명심만 있겠죠. 청정광명심이 자기가 자기를 본다니까요. 그래서 보여지는 쪽은 진리고요. 이게 공성이고. 보는 쪽은 지혜죠. 직관이고. 그렇죠. 지가 지를 보는 겁니다.
39:00 남이 없거든요, 저기서는. 시공을 초월해 가지고요 거기는 2원성이 없기 때문에 봐도 자기가 자기를 봐요. 그래서 직관이라고 하는 거예요. 무분별지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본 거예요. 자 이렇게 반야심경을 이해하시는 것은 딴 데서는 이렇게 얘기를 안 해요. 계속 연기 끄집어들입니다. 여기 연기라는 게 나오질 않는데. 연기하니까 공하다는 논리를 자꾸 들이밀려고 해요. 그러면 심오한 반야바라밀이 아니에요 그거는. 그렇죠. 초급 반야바라밀이죠. 분별지. 이건 누구나 이해하잖아요. 분석해 보니, 분석해 보니 일체는 연기에 의해서 존재하니까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니까 독자적인 펜이라는 게 없죠. 독자적인 고정 불변의 펜이 있을 수가 있어요. 없어요.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걸 가지고 법공을 주장해버리면 이런 얘기는
40:00 초기 불교 때부터 다 나온 얘기인데 이걸 가지고 법공을 얘기해 버리면 대승이 따로 또 법공을 외쳤던 이유가 사라지는 거예요. 지금 대승을 날려버리는 거예요. 이런 식 사상은. 법공을 무력화시키는 겁니다. 대승의 법공은요 강력한 사상이에요. 아공에 비해서. 이 펜 자체가 참나의 작용이고 이 자체가 참나라는 거예요. 이 자체가 진여라는 거예요. 이 펜의 진여, 즉 영원불변의 참된 모습은 공이라는 거예요. 이게 그대로 참나니까 이 펜이 그대로 공이고 진여라는 거예요. 법신이고. 열반이고. 만법이 본래 다 열반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지금 황당한 사상이 되는 거예요. 조금 발전시켜 보니까. 이 대승의 폭발력을 날려버리는 거예요. 제법무아식으로 풀고 끝내는 것은. 그래서 이 중관 사상을 공부하면 진대승이 될 수가 없습니다. 폭발력이 없어요. 그냥 또
41:00 소승적인 계율 지키면서 절에서 의식, 번잡한 의식하면서 이렇게 그냥 절에 안주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해되세요? 왜? 사바세계를 두려워하니까. 사바세기가 두렵죠. 만법이 공인 줄 아는 분이 만법을 되게 두려워해요. 뭔가 문제가 있죠. 이거를 깨려고 법공이 나온 건데요. 숲에만 갇혀 있는 아라한들을 세상으로 파견하기 위해서 법공 사상이 나온 겁니다. 어디를 탈출해 어디 정토로 가겠다고. 어디 열반이 들겠다고. 만법이 그대로의 열반인데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이렇게 치고 나온 건데 이 폭발력을 다 날려버리고 똑같이 말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렇지 무상하니까 공하지. 이래서 법공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데 자 한번 보실래요. 각주 3번. [7) 심오한 반야바라밀(공성의 지혜)에 안주하면 ‘공성’(무루ㆍ무위의 진여)에는 ‘5온’으로 대표되는 만법의 ‘차별상’(시간성ㆍ공간성ㆍ인과성ㆍ이원성 속에서 나타나는 만법의 차별상)과 ‘오염된 법’(무명에 의해 아집ㆍ법집으로 오염된 만법)의 자성(독립ㆍ고정ㆍ불변의 실체)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만법의 승의의 자성인 ‘공성’(진여ㆍ법신)에 갖추어진 ‘청정한 법’(본유종자本有種子)을 닦아서 바라밀을 두루 갖추어 일체의 고통ㆍ재앙을 넘어간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무분별지 공성의 직관)을 행할 때 만법 자체의 형상이 ‘텅 비어 있음’(공성ㆍ청정ㆍ진여ㆍ법신ㆍ열반)에 들어간다(법공法空).” (菩薩摩訶薩 行般若波羅蜜時 入諸法自相空.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공종空宗)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자성’(독자적 불변의 실체)이 없으며(자성이 텅 비어있음),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며 자성(불변의 실체)이 열반이다(공성이 자성임).” (一切諸法 皆無自性 無生無滅 本來寂靜 自性涅槃, 해심밀경解深密經 상종相宗) “5온법의 자성이 생겨난 적이 없어서 소멸할 수도 없으니, ‘본래부터 열반(本來涅槃)이기 때문이다(공성이 자성임).” (五陰法自性不生則無有滅 本來涅槃故, 대승기신론, 성종性宗)] 심오한 반야바라밀에
42:00 안주하면 공성 무루 무위의 진여 자리에는 5온으로 대표되는 만법의 차별상과. 차별상이라는 건 시간성 공간성 인과성 2원성을 말합니다. 이 차별상과 오염된 법. 오염법 무명에 의해 아집 법집으로 오염된 만법. 탐진치로 오염된 만법. 이해되시죠. 오온과 탐진치를 말하는 거예요. 차별상은 오온이고요. 오염됐다는 건 탐진치들이요. 이런 차별상과 오염법의 자성을 얻을 수가 없고. 무분별지 자리에서 차별상이 있겠어요? 시공이 있겠어요? 2원성이 있겠어요? 5온이 없죠. 그러니까 그걸 5온으로 대표하는 겁니다. 만법의 대표가 5온이고 육근이에요. 보세요. 만법을 나누다 보면 펜이니 지구니 은하계니 나뉘겠지만,
43:00 이걸 통으로 딱 하면 뭐예요? 오온이요. 그렇죠. 육근이요. 보이는 거든가 들리던 거든가 다 이런 거죠. 그래서 오온과 육근이 만법을 대표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걸로 대표하지? 부처님은 일체 세계를 육근으로 대표했어요. 육근밖에 없다, 일체는. 그런 정신입니다. 오온으로 대표되는 만법의 차별상, 또 오온의 탐진치가 묻어 있으면요 뭐라고 부르냐면 오온이라고 안 하고 오취온(五取蘊) 그럽니다. 오취온, 오온인데 집착의 대상으로서의 오온을 말해요. 집착이 묻어있는 오온을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정토세계의 특징
43:41 취할 취(取)자 하여 가지려는 집착이 있는 오온. 내 거야 하는 오온, 내 오온 내 거야. 그러면 보세요. 그냥 오온 그러면 색수상행식. 오취온 그러면 탐진치 쩔어있는 오온. 그러면 차별상과 오염상이 다 보이죠.
44:00 차별상이나 일체의 오염법이 있겠냐고요 자리에? 없죠. 무분별지 자리에 없죠. 공성 자리에 없죠. 이 공성을 무루, 공성을 무루(無漏) 무위(無爲) 이렇게 얘기했는데요. 어려워하지 마시고요. 무루의 반대는 뭐죠? 유루(有漏) 무위의 반대는 유위(有爲) 그러면 이 공성 자리는, 공성의 진여 법신 자리는 무루유루 중에 뭐죠? 번뇌가 없겠죠. 번뇌가 없고 변화도 없겠죠. 무위는 하는 작용이 없다는 거예요. 유위는 작용이 있고. 그러면 이렇게도 가능하겠죠. 무루유위. 참나 상태에서, 청정광명심의 세계에서 보이는 오온의 세계가 청정한 오온이 보인다면요 그것은 유위인데 무루니까 무루유위입니다. 정토 세계는 무루유위의 세계예요.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유루유위의 세계예요. 번뇌 쩔고
45:00 작용 있고, 탐진치 살벌하게 굴러가고, 육근 굴러가고. 탐진치 있냐 없냐가 무루. 육근 작용하냐 안 하느냐가 무위유위의 구별입니다. 공성 자리에는 육근 없죠. 그러면 무위예요. 탐진치 없죠. 무루예요. 됐죠. 그래서 이 부분에서 여기까지만 보고 좀 쉬죠. 공종과 상종과 성종의 입장이 갈리죠. 공종 상종 성종의 입장. 이렇게 하고 여기서 쉬죠. 칠판을 지워야 될 것 같아요.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4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