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와 열반 24강

홍익학당 아카이브
보급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11일 (월) 15:43 판 (https://cafe.naver.com/bohd/77753)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진여와 열반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부제 정토사상의 핵심
강의일자 2023. 10. 21. 土.
게시일자 2024. 01. 20.
동영상 길이 35:30
강의 중 인용 도서 반야경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hHpL3bKBP64


정토종의 핵심 구절

00:08 반야경에 정토 사상이 나왔었잖아요. 그것을 따로 뽑아서 볼게요. 제가 이번에 뽑을 때 정토종을 따로 뽑지는 않았어요. 정토종의 핵심 구절을 각주로 넣었어요. 예전 교재에 있는 겁니다. 예전 교재 있으신 분들은 8천송반야경 3번 글을 보시면 돼요. 3번 글하고 각주를 따로 페이지 뽑아 놓은 겁니다. [3. 불국토에서 여래들의 면전에서 서로 마주보며 재차 바로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상세하게 들을 것이다.] [1) “큰 근기를 지닌 사람은 일심으로 일억 번 ‘염불’한 후 ‘망념’이 떨어지고 ‘분별심’이 사라지면서 ‘본래성품’을 보아(見性) ‘삼매’(염불삼매)를 증득하게 되는데, 그래서 ‘한 가닥으로 두루 통한다.’(철오선사 염불송)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명호’를 통하여 ① 자기의 ‘본래 성품’을 증오證悟(견성)한 후에(아공我空의 증득). ② 바로 ‘극락세계’가 우리들 ‘자기의 마음自心이 현현한 것’(一切唯心)임을 이해하여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둘이 아니며(법공法空의 증득). ③ 자기의 ‘공덕’과 아미타불의 ‘과상果上의 공덕’(6바라밀의 공덕)이 전부 상응하는 것(구공具空의 증득)이 ‘한 가닥으로 두루 통한다’라는 말의 뜻입니다.”(허만항 편역, 철오선사의 염불송, 운주사, 35쪽)] 거기에 뭐라고 돼 있었냐면요 불국토에서 여래들의 면전에서 여래들이 거기 계시고 면전에서 서로 마주보며 재차 바로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상세하게 들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정토에 가서도 뭐해요? 공부해요 또. 지금 미리 해놓고 가시는 게 가서 우등생반에 들어가겠죠.

01:00 어떠세요. 인생은 시험이다. 그래서 시험의 연속이다. 정토가도 또 시험입니다. 반야바라밀다를 또 공부합니다, 여래들과. 이런 게 아주 고전적인 정토 불국토 사상인데 이게 희랍에도 똑같아요. 그리스 철학자 중에 뭐예요? 소크라테스도. 죽을 때 신나했거든요. 나 죽으면 신들의 세계에 가면 진짜 제우스랑 신들 만나서 거기서 철학 공부할 거라고. 옆에서 마누라 울고 있는데 막.. 전형적인 덕후의 약간 들떠 있는.. 글을 그렇게 썼죠. 실제로 안 그랬겠죠. 그런데 플라톤이 글을 좀 그렇게 썼어요, 제자가. 약간 신나서 들떠서 독이 든 잔도 좀 빨리 마시려고 하고 이렇게. 왜냐하면,

02:00 빨리 가서 신들 만나서 내가 공부한 것 좀 확인도 해야 되고 이런 거예요. 면전에서 재차 이런 걸 검토해야 된다. 공부의, 덕후의 마음입니다. 이게 불교에서는 정토거든요. 기독교에서는 이게 천국이죠. 기독교가 보면 잘못되어 있어요. 자꾸 천국 가서 천국관이 잘못됐어요. 이게 올바른 겁니다. 소크라테스나 이 불국토, 이 정토의 천국관이라고 하자면요 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잖아요. 기독교는요 가서 흰 옷 입고 찬송가 찬양할 생각을 해요. 흰 옷 입고 자꾸 찬양만 하려고 그래요. 아니 어떤 변태가 자꾸 노래 불러 달라고 하겠어요. 아니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예수님이 무슨 변태입니까? 합창단 부족해서 천국으로 끌어가려고 하는 것 같으세요. 가서

03:00 같이 진리를 논하려고 데려갑니다. 예수님 지상에 오셔서 뭐 했어요? 수다요. 계속. 이봐, 내 얘기 좀 들어줘. 여러분 천국 가면 뭐하겠어요? 예수님과 깊은 수다를 떠시게 될 겁니다. 거기가 천국인 거예요. 천국이죠. 그렇죠. 수다삼매만한 게 있어요. 지상에서도 뜻 맞는 사람과 수다 떠는 게 최고죠. 그걸 이어서 천국 가서 예수님하고 천국 카페에서 수다 떨 생각해 보세요. 설레지 않으세요. 이렇게 영업을 해야 됩니다. 자꾸 흰 옷 입고 찬양만 하고 있으면 가고 싶겠어요, 천국에? 노래도 잘 안 되는데 그렇죠. 진리를 나누는 곳이지 천국이. 진리를 나누는 곳이지. 나와 함께 통치할 것이다. 그러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천국 가야 되고 진리대로 살아가는 곳이 천국인 거죠. 진리를 연구하고 진리를 구현하고 하는 장이죠. 똑같아요, 불교도.

반야바라밀의 의미

04:10 이 반야바라밀다라는 건 진리를 직관하는 거잖아요. 진리의 직관. 이 반야바라밀이라는 건 진리의 직관인데 결국 진리에 대해서 논한다는 얘기예요. 반야바라밀에 대해서 상세하게 듣는다는 건요 더 큰 진리, 더 큰 진리 거기서 배운다는 겁니다. 부처에 이를 때까지. 요거 하나 그려놓고 설명 드릴게요. 반야심경 할 때 그려진 건데요, 제가 그릴게요. 보지 마세요. 반야심경에 나와요. 거기 교재에 있는 겁니다. 진여의 법신 자리를 여러분이 저의 제트(Z) 자 이론이 있죠. 이게 선정을 통해서 진여의 법신의 현존, 진여의 현존이죠. 진여의 현존을 만난다면

05:01 무분별지, 이게 지금 무분별지가 반야바라밀의 핵심이잖아요. 공성을 직관합니다. 공성의 직관. 이 공성이, 공성 안에 만법의 자성이 들어 있다는 측면, 공성이 또 만법의 자성이 된다는 측면에서는 자성의 직관이기도 해요. 그래 가지고 공성의 분석으로 이어지겠죠. 왜냐하면, 여기 직관이니까, 직관은 분석이니까 무분별, 이 분별지라는 것의 공식 이름이 뭐죠? 무분별후득지예요. 무분별 뒤에 온다고 해서. 그러니까 직관이 먼저 와야 돼요. 직관에서 온 느낌, 진리의 느낌, 제가 어떻게 온다고 그랬죠? 자명하거나 찜찜하거나

06:00 이런 자찜으로 오는 이 느낌을 분석해 보는 겁니다. 언어화하는 거예요. 언어화. 이게 언어화. 개념화. 언어화 개념화 하지 않으면 여러분께 아니에요. 느낌 같은 느낌으로만 있어요. 그렇죠. 느낌을 붙잡으려면 언어화해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 게 돼요. 여러분 소유가 돼요. 아직은 참나의 소유를 엿본 거밖에 안 돼요, 이 느낌은. 에고 입장에서는 개념화를 해야 내 것이 됩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써먹을 수 없는 진리는요 내 것이 아니에요. 에고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분석을 뭐예요? 바라밀, 바라밀로 실천하는 것. 이건 방편의 세계죠. 그래서 이렇게 나누면

07:01 이게 반야경을 통틀어서 이것밖에 없어요. 반야경은요, 반야경은 선정에서 시작됩니다, 반야바라밀은. 반야는 선정에서 시작됩니다. 정혜쌍수죠 선정에서 뭐가 나와요? 선정에서 특히 무분별 지혜가 나옵니다. 무분별 지혜는 직관이에요. 즉 무분별이라는 건요 주객이 없어요. 주객이 없는 텅 빈 자리에서 알아차려요. 텅 비었는데 알아차려요. 이 텅 빈 자리에서 알아차리는 이 직관이 분석은 이제 주객이 있습니다. 주체인 내가 객체인 진리를 분석해요. 주객이 분리된다는 것은 이제 다른 거예요. 내가 내가 아닌 진리를

08:00 다루게 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여기서 이 직관이 오는 게 뭐가 오겠어요. 아공 법공 구공밖에 없어요. 공성의 직관이라는 거. 이렇게 이해하시면 불교가 지금 다 들어오죠. 그리고 이 분석한 것을 반드시 현실화시켜라. 실천에 옮겨라. ①선정 ②직관 ③분석 ④실천, 실천한다는 건 방편입니다. 방편이라는 건요, 방편이라는 말은요, 가장 정밀해진 이론을 가지고 분석하면 형편에 따른, 형편에 따른, 각각의 형편에 따른 처방. 이러면 다양한 상황에서 방편을 쓰는 것에 대한 설명이 돼서 좋긴 한데

09:00 그러면 방편에 아주 예전부터 쓰던, 원래 인도에서 쓰던 의미는 뭐냐? 방편 그러면 뭐랄까요? 방법이에요. 방법. 방편이라는 방법. 그런데 이 방법이 다양한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방법을 찾아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요령이 좋다 그러죠. 저 사람 요령이 좋다.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방법을 찾아내는 거 있죠. 그런 의미예요. 그래서 일단 근본적인 뜻은 방법인데요. 방법, 편리한 방법, 그냥 편리한 방법, 이렇게 아무튼 내가 이렇게 어떤 상황에서 일을 처리하는 데 적합한 일처리 방법이에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그래서 다양한 형편에 맞춰서 처방을 내린다는 의미가 강조될 때는, 형편에 따른 처방 하면 방편에 대한 가장 좋은 풀이가 됩니다. 방편바라밀 만약 이렇게 하면 어떤 경우에도

10:00 방법을 찾아낸다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어떤 경우에도 해결해 낸다는 겁니다. 방편이 좋다는 건. 그래서 결국 근본적으로 해결 방법을 말해요. 그래서 실천이라는 건 실제로 해결해 내는 겁니다, 방법을 찾아내서. 그래서 정혜쌍수가 되고요. 보세요. 선정과 지혜인데 이렇게 묶으면(직관+분석) 뭐가 돼요? 이게 반야바라밀이에요.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은 이 직관과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직관과 분석. 그래서 이것을 현실화시키면 방편이 되는 거죠. 그래서 반야방편쌍운도 되고, 선정과 반야 해서 정혜쌍수, 반야방편쌍수 다 가능해지죠. 이 그림 가지고 이해할 수 있죠. 이렇게 이해하면(선정+분석) 선정에서 반야가 나오니까 정혜쌍수(定慧雙修), 정혜쌍운(定慧雙運). 이렇게 하면요(분석+실천) 반야방편쌍운(般若方便雙運). 반야방편쌍운을 다른 말로 지혜, 복혜쌍수(福慧雙修)

11:00 이렇게 얘기하죠. 복혜쌍운(福慧雙運). 자 반야바라밀의 의미는 이 정도입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은 특히 그런데 포인트는 직관이죠. 선정 속에서 진리를 꿰뚫어 봐요. 그러니까 결국 선정 속에서 진리를 꿰뚫어본다는 건 이건 지금 참나 상태죠, 정광명 상태죠, 정광명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반야바라밀 그 자체가 그냥 참나 자리를 말합니다. 참나 각성 상태. 참나 각성 속에서 진리를 직관하고 있는 상태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지금 이게 절대계와 세속제를 가르는 기준은 이거예요. 이쪽이 절대계, 승의제(勝義諦)라고 하죠. 승의제. 이쪽은 현상계예요. 현상계는 세속제(世俗諦)라고 하죠. 세속제. 왜? 분석은 벌써 생각이 주객이 찢어지거든요. 주객이 나뉘어서 생각이 굴러가야 돼요. 생각도 이미 실천이거든요. 생각이 굴러가면서 이게 육근을 통해서

12:00 실천되는 겁니다. 육근으로 실천, 분석과 실천은 이미 육근 작용이에요. 생각 오감이 막 굴러가고 활동하는 겁니다. 그렇죠. 이 정도, 이 정도 구분하시고 이거 그림만 갖고도요 별의별 거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딱 이 정도.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통해서, 반야바라밀을 통해서 우리 정토에 가서 결국 뭘 하느냐? 반야바라밀을, 정토 가서도 불국토 가서도 반야바라밀을 닦는다. 이 얘기를 우리가 이해해 볼 때 이 공성의 직관인 반야바라밀을 통해서 우리는 첫째, 아공, 제가 뭐라고 했냐면 자신의 자성을 깨달아야 돼요. 반야경 논리에 입각해 볼 때 먼저 이 반야바라밀로 자신의 자성을 깨달아야 된다. 자신의 자성을 깨달아야 돼요. 그다음에 법공 뭐예요? 만법의 자성, 만법의 자성. 그런데 이 자성이 둘인가요?

13:00 둘이 아니죠. 이 공성 자리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공을 통해서 먼저 자신 내면에 있는 청정광명심의 텅 빈 자리를 알아서 내 자아를 초월하고, 나아가서 그 자리에서 만법이 다 나온다는 걸 알아서 만법의 자성 자리라는 걸, 같은 자리인데 만법의 자성 자리라는 걸 알게 되고. 그 안에 구공, 안에 육바라밀이 갖춰졌다는 거, 이거를 실천적으로 방편상에서까지 증득해야 됩니다. 반야에서 더 나아가 방편 속에서, 즉 제가 실천할 수 있다는 얘기죠. 실천을 통해서 입증해야 된다. 이게 공부의 전부란 말이에요. 이 얘기는 뭐냐? 우리가 공부하는 모든 것은 사실은 반야바라밀로 얘기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반야바라밀이 아공 법공 구공을 얼마나 꿰뚫어 보느냐에 따라서 밖으로 실천 행이 달라지겠죠. 그렇죠.

14:00 선정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반야를 얻느냐에 따라서 밖으로 드러나는 방편이 달라지겠죠. 실천이 달라지겠죠. 따라서 그게 이제 초발심보살부터 여래까지 펼쳐진단 말이에요, 8천송 반야경에 근거하면. 이래서 여래들을, 그래서 보살마하살은 이 반야바라밀을 얻은 보살마하살은 죽어서도 불국토 가서 태어나고 정토, 반야바라밀 염불해서 간다는 게 아니에요. 반야경은 반야바라밀을 얻은 양반은 몸도 안 아프고 만병이 낫고 이런 얘기들이 계속 나와요. 꼭 공효를, 원래 효과는 세게 쓰는 거죠. 원래 밑에 주의사항이 있죠. 팜블렛은 약간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경우에 따라 케바케(case by case: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다. 넌 안 될 수도 있다 이런 거죠. 경우에 따라 적용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딱 보험약관처럼. 써서 딱 해 놓은 거죠. 왜냐하면, 원래 책 쓸 때 제일 잘된 것만 모아서

15:00 씁니다. 제일 안 된 사례 모아서 쓰지 않죠. 제일 잘된 것만 모아서. 자 그다음. 그래서 이 반야경은 염불도 아니에요. 반야, 반야바라밀을 증득하면 불국토에 태어나서 여래들한테 직접 배운다고 얘기한 거예요. 이게 원초적인 불국토 사상입니다. 정토 사상 이전에 더 원초적인 불국토 사상이 이거예요. 기원전부터 나온 거니까. 죽이죠. 이 부분에서 우리가 앞으로 향후 나올 정토 사상도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거죠. 아공 법공 구공을 깨달음 이게 아공 법공 구공은 이미 반야경, 8천송 반야경부터 이미 등장해요. 왜냐하면, 자신의 진여를 깨달으라고 나오고요. 자신의 진여가 만법의 진여와 둘이 아니라고 얘기하고요. 그다음 무슨 얘기하냐면 육바라밀을 두루 갖춰야만 된다고 얘기하거든요. 그렇죠. 그러니까 다 나오고 있는 거죠. 나올 게 다 나왔어요.

16:00 그 밑에 있는 건요 허만왕님이 편역하신, 이 허만왕님도 저희 학당 흥여회 모임 와서 명상 조별 모임도 하고 하십니다. 이분이 그때 오셨을 때 주신 책이 “철오선사의 염불송”이었어요. 그래서 그 내용이 지금 내용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안에. 철오선사의 염불송을 후대 중국학자들이 푼 거예요. 염불송 자체 내용은 아니고 염불송 책 자체가요 저기 후대 중국학자들의 풀이를 번역해 놓은 거예요. 철오선사의 염불송은 짧아요. 원문과 그 풀이를 같이 번역해 놓으신 건데요. 이분이 쓰신 게 아니고 다 번역입니다, 전체가. 그런데 내용에 이런 게 나옵니다. 중국 염불의 대가들도 결국 똑같은 걸 보고 있다는 거를 이 글을 통해 보실 수 있어요. 보세요. 큰 근기를 지닌 사람은 일심으로 1억 번 염불한 후.

17:00 1억 번. 세네요. 그렇죠. 이런 거 있죠. 이제 그 계수기, 카운터기, 계수기 가지고 1억 잴 수 있나요? 나눠서 하면 되겠네요. 염불할 때마다 이렇게 하면 아시겠죠. 3000배 할 때 쓰신다면서요. 1억 번 염불한 후에 망염이 떨어지고. 그런데 1억 번 염불해서 결국 뭘 얻느냐? 한번 봐 보세요. 망염이 떨어지고 분별심이 사라지면서 그럼 무분별 상태에 들어가겠죠. 본래 성품을 본다. 결국 염불해서 뭐해요? 견성이요. 염불에서 견성해서 삼매를 증득한다. 그래서 결국 정토종도요 얻어야 되는 게 뭐냐 하면, 염불삼매입니다. 염불삼매. 염불삼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취해야 되는 게 일심불란(一心不亂)이요.

18:01 한 마음이 조금도 어지럽지 않아야 돼요. 이게 뭐냐면 몰입 4단계입니다. 몰입 4단계, 염불삼매는 결국 이게 뭐냐 하면, 참나 안주예요. 이 참나가 뭔데요? 자성미타(自性彌陀)라고 해서요 아미타불의 자성이에요. 즉 법신 안주예요. 염불삼매는 안착한 것을 말해요. 염불에 안착했다는 것, 일심불란해서 염불삼매로 나아가야 됩니다. 기본적인 정토종의 구조예요. 수행의 구조. 그래서 일심불란은요, 아미타불 한번 외울 때 정신이 분산되지 않는 거예요. 아미타불과 내가 하나가 돼서 외는 거예요. 사랑이 몰입이라고 그랬죠. 사랑과 만족. 다른 거 바라지 말고 나무아미타불 그 말할 때 딱 정신이 모여서 애쓰지 않아도 정신이 흐를 정도로 딱 순간순간 몰입을 이뤄내는 겁니다. 그게 일심불란이면

19:02 그것을 또 1억 번 닦고 해서 본래 성품, 견성할 정도로 내 본성을 정확히 볼 정도로 해서 삼매를 증득하게 된다. 이때 염불삼매를 증득한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염불에 안주한 겁니다. 뭐냐 하면, 찰나 몰입하는 건 일심불란이라면 안착한 것은 염불삼매라고 그래요. 굳이 이 용어가 꼭 맞냐는 건 다른 문제예요. 거기서 그렇게 쓴다고요. 정토종에서. 그래서 염불삼매를 더 어려운 경지로 봅니다.

염불선

19:31 일심불란은 딱 한 마음으로 집중해가지고 조금도 요동하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아미타불 할 때 깊은 맛을 보는 거예요. 일심불란만 해도. 오 나 나무아미타불 하는데 잡념이 하나도 안 일고 딱 일심, 몰입했어. 그게 일심불란이고요. 그래서 완전히 내가 나무아미타불과 내가 둘이 아닌 게 딱 안착했어. 즉 내 본성을 보는 거를

20:00 아미타불을 봤다고 하는 거예요. 견성한 것을 아미타불을 봤다고 하는 거예요. 원래 염불선도요 이게 염불삼매가 결국은 일심불란과 염불삼매를 통틀어서 지금 염불선을 닦으신 건데요. 이때 견성이 돼요. 견성이. 염불삼매에서는 견성. 그런데 이 견성을 왜, 참나 안주인데 사실은, 왜 이걸 염불하고 연결 짓느냐? 시작할 때는 부처 자리를 염합니다. 그러면 이건 에고죠. 이거는요? 참나요. 그런데 이 불을 염하는데, 염불을 하는데 실제로는 참나로서의 불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염해요. 또 다른 인격체인 아미타불을 염하는데 염불이 일심불란에 들어가면요 사실은 자기 본성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이때 이 불을 아미타불의 본성을 본다고 해서

21:00 자성미타를 본다고 그래요. 자성의 아미타. 그러니까 인격적 보신(報身)으로서 아미타가 아니라 법신(法身) 아미타를 봐요.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내 밖에 있는 아미타불 부르는 것 같지만 부를 때는 보신의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부르죠. 몸도 나랑 다르고 이미 성불하신 그 아미타를 생각하고 어떤 인격을 생각하고 부르는데 염불 처음에는 보신불을 부르다가 딱 일 심이 되면 뭐가 되냐면 내가 아미타가 되는 거예요. 내 본성이 그대로 아미타의 본성이에요. 둘이 아닌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아미타불을 봐요. 그러면 그게 뭘 보는 거냐? 자기 법신을 보는 거예요. 내 법신과 아미타불의 법신은 둘이 아니니까. 이해되시죠. 이게 염불선은 이런 원리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자주 그리잖아요. 아령에다가 이렇게. 법신은 하나거든요. 그건 아미타불, 그러면 이쪽은

22:00 정토 행자란 말이에요. 정토 수행자가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계속 기도를 하다가 결국 뭘 만나게 되냐면 아미타불의 법신을 만나게 돼요. 아미타불을 부르는데 만나기는 아미타불 법신을 만나요. 이 법신이 자성미타란 말이에요. 아미타불의 자성이자 내 자성이거든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견성한다는 건 결국 견성(見性)이 견불(見佛)이에요. 그래서 이 견성한다는 것은 견성이 뭐다? 견불이다. 그래서 저기 이쪽 선불교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 강조하면 견불왕생(見佛往生)을 강조합니다. 정토종은 견불왕생. 아미타불을 직접 뵙고 극락에 가서 태어난다. 그게 달라요. 극락 가서 태어나면 무조건 성불은 따 놓은 당상이니까. 본래 성품을 보아서 삼매를 증득한다는 건 딱 자기, 아미타불을 늘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아미타불을

23:00 늘 볼 수 있다는 건 뭐예요? 자성을 늘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견성했다는 거예요. 견성. 선불교에서는 그냥 견성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견불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겁니다. 이미 원만하게 구경각(究竟覺)을 이루신 부처님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결국 들어가 염불을 하다 보면, 누구를 만나요? 본각(本覺)을 만나요. 내 안에 있는 본래의 부처를 만나요. 이게 염불선의 독특한 구조입니다. 이게 기독교도 똑같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염하다가, 기도하다가 뭘 만나요?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을 만나요. 이해되시죠.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예수님과 다른 인격체지만 성령에서 하나예요. 한 성령이거든요. 예수님을 염하다가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한 성령을 만나요. 똑같아요. 불교 안에 있는 기독교입니다, 정토종은.

24:00 아미타불을 염하다가 자기 본성을 만나요. 그래서 결국 견성해야 돼요. 그러니까 “염불은 견성 안 해도 됩니다” 하면 사기예요. 저기 선불교는 견성해서 가지 않느냐? 염불선이 주로 정토종이 광고하는 게 이겁니다. “지상에서 견성은 힘들다 그러니까 일단 염불을 외워가지고 극락 가서 승부를 보자.” 극락가면 다시 지상에 안 오니까 완전히 최고의 8학군 같은 최고의 학군이다. 거기 가서 일단 그쪽으로 주소를 옮기고 염불만 하면 왕생이 돼서 주소가 전입이 되니까 전입해서 승부를 보자는 섬 아닙니까. 이번 생에 견성 포기하신 분들이 정토종을 가요, 주로. 포교를 그렇게 해요. 사기입니다. 이건 그냥 사기입니다. 브로커가 사기 친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 그 약관을 들여다보시면, 뭐라고 되어 있냐면, 염불만 해서는 저기 아미타불도 못 만나는 지역에 태어나요, 주소가.

25:00 한 500생인가는 따로, 500생인가를 따로 놀아야 돼요. 연꽃에서 바로 태어나려면 그것도 연꽃에 갇힌 채로 몇 겁을 있어야 돼요. 대기 타야 돼요. 바로 죽었을 때 연꽃 열리려면 견성해야 됩니다. 결국 들어가 보면 다 약관 따져보면 뭐예요? 견성하고 가자. 그래서 결국 철오선사의 염불선도 결국은 견성하자는 얘기예요, 들어가 보면. 쉬운 길이다. 우리는 쉽다. 견성도 안 해도 된다. 너 카르마 엄청 많지 카르마 그대로 갖고 가면 된다. 카르마 버리지도 마. 아미타불이 다 들어주니까 너는 조금도 고생할 게 없다. 그럼 뭐만 하면 되나요? 염불 1억 번만 하자. 빡세긴 한데 한번 해 볼게요. 결국은 뭐예요? 그런데 가면 또 지적받아요. “아직 분별심이 남아 있구나” 또 지적받아요. 더 들어가면 뭐예요? “견성을 못 했구나.” 그러면 이럴 거면 견성 그냥 하면 되지 않나요? 그런 식이에요.

26:00 그 정토에 갈 때 아홉 등급이 있어요. 아홉 레벨, 구품 연화대가 열리는데 아홉 레벨에서도 벗어나는 영역이 또 있어요. 아까 말한 바로 갔을 때 아미타불 못 만나는 경지까지. 그러니까 이게 뭔 소리냐? 얼마나 염불을 잘했느냐에 따라서 아홉 레벨, 열 레벨이 나눠요, 실질적으로. 그럼 결국은 그 얘기는 뭐냐? 그러면 저기 1등급은 누구인데요? 견성한 사람이요. 그럼 결국 가서 바로 견성해야지 아미타불 바로 만나지 안 그러면 사실 의미가 없죠. 그래서 보시면, 달콤하지만 들여다보면 또 결론은 견성이다.

아미타 사상

26:40 그래서 아미타 사상도 하나의 방편인 거예요. 그래서 보세요, 이분들 주장이. 삼매를 증득하는데 그래서 철오선사께서 뭐라고 염불송에 얘기했냐면? 염불송을 풀이하다 나온 거니까 이 구절이. 한 가닥으로 두루 통한다. 나무아미타불을 하나만 외면 한 가닥으로 두루 통한다. 이 말을 풀이하려고 이 말을 한 거예요.

27:00 한 가닥으로 두루 통한다는 게 뭐냐? 먼저 부처님 명호를 증득하면요, 부처님 명호 아미타불을 계속 외면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외면 자신의 본래 성품을 증오, 깨닫게 된대요. 견성을 먼저 하죠. 아공을 얻죠. 그다음 바로 극락세계 자체가 우리 마음의 현현이라는 걸 알게 된대요. 법공 깨달아야죠. 염불를 하다 보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 자체가 내 자성미타의 작용이고 내 몸뚱이, 내가 사는 세계가 다 극락으로 보이거든요, 실제로 하다 보면. 그럼 깨닫는 거예요. 극락이 애초에 내 마음의 작용이구나. 법공을 깨달아요. 더 나아가서 자기 마음과 극락이 둘이 아님을 깨달아야 되며 그다음 더 나아가 자기의 공덕과 아미타불의 과상의 공덕. 정토행자는요 인위(因位)에 있습니다. 이제 공부 시작한 씨앗 뿌리는 자리죠. 아미타불은

28:00 과위(果位)에 있습니다. 열매를 거두셨다고요. 인위(因位)에서 염불을 하면서 과위(果位) 이미 열매를 거두신 아미타불을 상상하면서 기도하는 거죠. 염불하는 거죠. 그래서 내 인위에 있는, 이제 씨앗 뿌리는 육바라밀의 공덕과 이미 원만하게 익어서 열매를 맺은 아미타불의 공덕이 전부 상응한다. 그러면 이 얘기는 뭐냐면 나도 아미타불처럼 육바라밀을 펼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기독교에서 쓰는 논리예요. 요한복음 곧 이번에 나갈 건데요. 요한복음의 핵심 가르침이 저겁니다. 요한복음은 정토종(淨土宗)이고 도마복음은 밀교(密敎) 책이라고 제가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는데, 요한복음이 딱 정토종인 게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계속 강조합니다. 나랑 연합하라고. 나랑 연합하면 나랑 영원히 하나로 엮여가지고 내가 가진 걸 다 너네들이 갖게 되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 아미타불과 내가, 자꾸 염불을 하다 보면요 내 본성이 만법의 본성인 줄 아공 법공 깨닫고 구공까지 가면요

29:00 결국 아미타불이 열매 맺은 육바라밀이라는 것도 아미타불의 본성에서 나온 거죠. 그 똑같은 본성이 나한테 있어요. 그럼 내 안에서도 똑같이 육바람이 열매 맺을 수 있겠죠. 그게 구공의 증득입니다. 완전히 열매 맺으면 내가 극락에서 아미타불과 똑같은 부처가 되는 거예요. 이게 염불선의 목표예요. 그러면 결국 염불선도 결국 할 거 다 해야 되죠. 그거 아시겠죠. 아미타불이 도와준다고 분명히 했는데, 들어가 보면 아미타불의 본성이 도와준대요, 근본적으로는. 아미타불도 밖에서 도와주는데 안에서는 자성미타가, 밖에서는 아미타불이 도와주는 구조거든요. 그러면 근본적으로 아미타불이 밖에서 도와준다 그래도 한 자성이 도와주는 거예요, 나투어서. 여러분이 부처님한테 하면 부처님이 바로 도와주는 것 같잖아요. 가피(加被)를 내려주실 것 같잖아요. 한 법신이 작용하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여러분 참나가 여러분한테

30:00 쏘는 거예요. 누가 와서 나한테 쏘더라도 한 참나의 작용으로 나한테 오거든요. 한 참나가 우주의 부처님을 통원해서 여러분을 돕는 거라고요, 근본적으로. 자기 참나한테만 빌어도 다 하나로 통합니다. 그런데 에고가 그래가지고는 에고가 좀 섭섭하거든요. 부처님도 좀 만나 뵙고 악수라도 좀 해 보고 뭐 이런 게 에고한테는 다 다르거든요. 여러 부처님한테 공양도 하고, 빌고 하는 게 염불도 하는 건 부처님이란 인격을 자꾸 느껴봄으로써 실감하려고 해요. 스승을 실감하려고. 스승이 없으니까 눈앞에. 그래서 부처님, 아미타불을 직접 보고 스승삼아 공부하면 공부 잘 될 것 같은데 해서 정토종이 나온 거예요. 그래 그럼 가서 하자. 아미타불 면전에서 공부하자. 극락 가서 바로 공부하자. 어! 혹 했는데 들여다보니까 결국은 너의 참나가 아미타불의 참나와 둘이 아니다. 요한복음도 기본 구조가 그래요. 예수님과 하나가 될 것 같지만 결국 보면 뭐예요? 한 성령 안에서

31:00 하나라는 얘기예요. 그 성령이 나랑, 내 안에서 역사한 성령이 너 안에서도 역사할 거라는 거예요. 예수님 가르침 똑같아요. 아미타불을 아미타불로 만든 법신불이, 육바라밀을 갖추고 있는 그 텅 빈 공성 자리가 너 안에도 똑같이 있어서, 자성미타가, 즉 아미타불의 법신이 너 안에 있어서 역사할 거다 예요. 불교식 이론으로 보면 요한복음은 간단합니다. 요한복음이 어려워지는 게 시작부터 예수님이 태초의 로고스가 있었다. 그러면 그 로고스는 뭐예요? 기적교적으로 보면 어려워요. 로고스였다가, 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다가, 그 육신하고, 그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랑 연합을 하려다 보니 또 예수님의 로고스랑 연합이 되고, 골 아프거든요. 불교식으로는 쉬워요. 예수의 법신(法身)을 얘기한 겁니다, 로고스는. 육으로 왔다는 건 예수의 화신(化身)을 얘기한 겁니다. 돌아가신 뒤에는 예수의 보신(報身)과 우리가 접속하는 거예요. 염불해가지고.

32:00 그러면 예수의 법신이 또 우리를 도와주는 겁니다. 간단하죠. 불교로 보면 쉽습니다. 법신 보신 화신을 얘기한 거예요, 요한복음이. 그거를 법신 보신 화신 개념 없이 이해하려니까 힘든 거예요. 로고스로 봐야 되는지? 육을 위주로 봐야 되는지? 그러면 기독교 요한복음도 불교식으로 말하면 예수의 법신과 하나 되자는 겁니다. 예수의 보신을 상상하면서, 천국에 계신 예수님은 보신이죠, 보신을 상상하면서 기도를 하다 보면, 예수의 법신과 하나가 돼서 내 안에서도 사랑의 진리가 펼쳐져 나온다.

정토종의 핵심

32:36 똑같아요, 염불은. 아미타부처의 보신을 상상하면서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다 보면, 아미타불의 법신과 내가 원래 둘이 아니기 때문에 법신을 깨달아서 내가 그대로 아미타가 돼 버리는 거예요. 똑같아요. 결국 닦을 거 다 닦게 된다고요. 그게 결국 아미타의 법신이 내 안에서 나를 인도하고, 밖에서 아미타불의

33:00 보신이 나를 이끌어주고 가르쳐주고. 그러면 부처 안 될 도리가 없죠. 이 논리입니다. 예수님도 이 논리로 요한복음에서 얘기해요. 똑같은 내용입니다. 정토종과 기독교는 제가 볼 때는 둘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도 똑같이 나오죠. 자기의 공덕과 아미타불의 과(果), 이미 과위(果位)에 계신, 과보(果報)를 얻으신 아미타불의 공덕이, 즉 육바라밀의 공덕이 전부 상응하는 것, 이게 구공의 증득이죠. 이것을 한 가닥으로 두루 통한다. 나무아미타불 하나, 염불 하나에 아공 법공 구공을 다 꿴다라고 해 놨어요. 그러면 이거 철오선사가 주를 단 것도 아닙니다. 후대 중국학자가 단 거예요. 중국의 염불 닦는 학자 수준이 높죠. 이 정도 얘기를 못 해요, 염불 닦는 분들이 지금. 수준 높은 얘기입니다. 엄청 그래서 제가 정토적인 핵심은 이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반야바라밀만 닦으면 여래들 앞에 가서 가르침 받는다는 얘기나

34:00 정토종의 염불하다 보면, 우리가 아미타불과 완전히 하나 된다는 얘기나 이게 원래 불교의 정토 사상이다, 근본적으로. 결국은 견성해야 된다. 견성해서 자기가 닦는 것을 여래의 법신과 여래의 보신, 화신이 안팎으로 도와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근원은 다 법신 작용이에요. 여러분을 누가 어떤 주문, 어떤 수행을 하든 누군가 여러분을 도와준다. 신장(神將)이 와서 도와준다. 성종이 와서 도와준다. 성인들의 무리가 도와준다고 해도 근원은 누가 도와준 거라고요? 그 모든 걸 하나로 꿰는 법신 자리가 도와주는 겁니다. 내 안에 있는 내 참나가 약사여래 끌고 오고, 과외 선생님 끌고 오는 거예요. 나한테 필요하다고. 이 양반한테 수학 배워. 이 양반한테 영어 배워. 다 누가 해줬어요. 알고 보니까, 내 뿌리가. 내 참나가. 주인공이 다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이 약사이래도 됐다가 관세음도 됐다가 한다는 그 대행 스님 얘기가 그런 거예요.

35:01 이해되시죠. 예. 오늘 정토종까지 마스터했고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반야심경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