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와 열반 1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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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11일 (월) 15:20 판 (https://cafe.naver.com/bohd/76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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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와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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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티벳불교의 근根ㆍ도道ㆍ과果
강의일자 2023. 08. 26. 土.
게시일자 2023. 11. 13.
동영상 길이 47:09
강의 중 인용 도서 -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ec8APLWj4bY



00:04 오늘은 밀교를 좀 할 것 같습니다. 밀교랑 반야부로, 이제 반야경 쪽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초기 불경과 소승불교, 소승불교적 가르침들을 근래 아잔, 고승들이 이제 아잔 이러거든요. 아잔 아잔차 아잔문 해서 한번 살펴보고 힌두교도 한번 봤고요. 힌두교 힌두교를 모르면 또 불교가 이해가 안 되니까 힌두교도 한번 봤고 지금 불교의 모든 거를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경허 스님까지 이렇게 제목 지금 걸고 있잖아요. 실제로는 이제 경허 스님 더 지나서 원불교의 핵심까지 살펴보고 끝낼 거예요. 교재는 그렇게 준비돼 있고요. 그래서 공부하시는 데 불교가 뭔지 한번 총 정리하시려면 이 강의를 앞으로 들으시면 됩니다. 그래서 진여와 열반을

01:00 많이 보시면 어디에서도 지금 논의되지 않은 얘기까지 다 샅샅이 제가 파헤쳐드릴 테니까 너무나 그냥 자명해서 더 할 말이 없게 해드릴 테니까 그냥 보고 즐기세요. 진여와 열반 강의는 전체적으로 께왓다경 디가니까야에 있는 이런 거 좀 써줘야 그럴싸하잖아요. 잘 몰라도 니까야 막 이러고 께왓다경이 있어요. 이것만 이번에 카드화해 가지고 또 올렸습니다. 저희 페북이나 이렇게 유튜브 올렸어요. 께왓다 깨운 카드 하나 그것만 아셔도 불교의 전체를 핵심을 안다. 그러니까 소승 대승이 갈려도요 하나가 있어요. 제가 소승 대승은 다른 종교다라고 말할 때는 다른 면을 갖고

02:00 얘기한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예요. 그 딱 하나가 있어요. 연결된 하나가 있어요. 거기 하나가 없다면 불교가 아닌 거죠. 소승이고 대승이고도 불교라는 기반은 하나잖아요. 소승 대승은 마인드가 너무 달라요. 현상계를 긍정할 거냐? 부정할 거냐? 정도의 마인드거든요. 현상계를 참나의 작용 법신불의 작용으로 볼 거냐 현상계를 부정하고 탈출을 꿈꿀 거냐 이 정도 차이니까 완전히 다른 종교죠. 소승 대승은 완전히 다른 종교예요. 소승 철학을 여러분이 공부하신 다음에 지금 이 숨 쉬는 것도 혐오하셔야 돼요. 숨 안 쉬려고 공부하는 거예요. 열반에 들어가려고 공부하는 거예요. 숨만 쉬어도 여러분은 미생물하고 수작을 해야 되고 세균하고 수작을 해야 되고 이게 모든 게 업보입니다. 모든 업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수행을 해요. 완전히 다른 얘기죠. 대승은요? 그 세균도 다 뭐예요? 참나 작용이에요 일체가 법신불의 작용이에요

03:00 금강심의 작용이에요.. 완전히 다른 철학이에요. 그래서 이 두 종교가 서로를 이해하려면 너무 멀어요. 이건 불교랑 기독교 정도의 차이거든요. 기독교랑 오히려 유사해요. 대승불교는 특히 대승불교 중에 정토종은요 그대로 기독교입니다. 저는 애초에 기독교의 영향으로 나왔다고 봐요. 그 정도로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체계인데 그런데 불교라는 점에서 하나다. 이 얘기는 또 해드려야죠. 하나예요. 그 하나인 걸 끝까지 제가 밀고 나가니까 석가부터 경허까지 강의가 되죠. 이해되시죠? 다른 점이라면 밀고 나갈 수가 없어요. 제가 한 가지 주제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끌고 갈 겁니다. 께왓다경에 나온 정광명(淨光明)으로요. 볼 수 없고 무한하며 모든 곳에서 빛나는 의식 이게 정광명입니다. 이거는 딱

04:00 머리에 박아두시라고요. 이거 말고 진여가 없고 이거 말고. 이게 진여요. 이게 진여라는 거에요. 진여 법신 그러죠. 진여요. 법 진리의 몸이요. 이게 해탈이고요. 이게 열반이에요. 다른 열반이 없어요. 이건 하나예요. 이걸 얻었는데 내 안에 알아차림이에요. 알아차림. 정광명이라는 건요 청정한 광명이죠. 청정하다는 건 순수, 광명하다는 건 의식입니다. 순수 의식 아니면 순수 알아차림. 오늘 이것만 들으셨어도 여기 오신 보람이 있어요. 지금 여러분이 저를 보고 계시죠. 보고 계신 중에 육근이 굴러갑니다. 육근이. 육근이 작동해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면 안근(眼根)이에요 안근

0501 근이 눈이 안근이에요. 눈이라는 인식 주체예요. 인식기관. 근이라는 건 인식기관이에요. 뭘 인식해요? 색깔이라는 걸 인식해요. 색깔이라는 경계를. 경(境). 경계를 뭐 해요? 식(識) 죄송합니다. 글자가 엉망인데. 이게 말씀 언(言)자예요. 식(識) 알아차려요. 이것도 알아차림이에요. 눈이 색깔을 알아차려요. 이것도 알아차림입니다. 근데 이거는요 주(主)가 있고 객(客)이 있죠. 주객이 있는 알아차림이에요. 그런데 순수 알아차림은 주객이 없어요. 그래서 순수입니다. 청정광명의 알아차림이 있어요. 요게 태양빛이면 요건 달빛이에요. 왜? 이건 태양. 태양은 자체가 광원이죠. 달은요? 눈이, 무슨 눈이 알아차릴 수 있는 근거가 뭐가 있어요? 눈이 이게(태양) 비춰서 알아차리는 거죠. 이 알아차림의

06:00 작용입니다. 달빛처럼 태양빛을 반사해서 쓰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달이 지구를 비출 수 있죠. 달이 무슨 능력으로 비춰요? 자기는 빛을 못 내는데. 달이. 태양빛으로요.. 그게 광원이 순수 알아차림. 그래서 모든 곳에서 볼 수도 없고 무한한데 모든 곳에서 빛나고 있는 청정광명이 있다는 거. 이게 석가모니께서 알아낸 인류 구원의 소식입니다. 이거 없으면요 구원불가라고 했어요. 이 자리가 열반이기 때문에 우다나에서 석가모니 가르침, 시를 적어놓은 게 우다나거든요. 석가모니가 막 노래한 시들을 적어놓은 건데 우다나에 보면 지난번에도 했죠. 지수화풍이 없는 불생불멸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없었다면 우리는 육근의 세계, 육근이 이 생멸의 세계죠. 이 생멸의 세계에서 여기는 불생불멸의 세계거든요. 불생불멸의 세계로 탈출한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07:01 그 세계가 없다면 우린 탈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불생불멸의 세계, 지수화풍이 없는 세계가 있어서 우리는 탈출할 수 있다. 탈출을 얘기해 주신 거예요. 석가모니께서 당시 소승적 가르침을 폈어요. 왜? 당시 인도는 탈출을 원했어요. 지금 인도도 탈출을 원할 수도 있어요. 보면 삶이 너무 힘들어요. 일단 너무 덥고 인간들도 너무 기본이 안 돼 있으면요 그 세계에 조금만 있으면요 다시 태어나야겠다든가 이런 생각 안 드실 거예요.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그래서 벗어나서 그래서 불교는 처음에 여기서 벗어나서 천국 가자. 정토 가자였어요. 처음에 힌두교식 정토입니다. 브라만교식 정토가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계, 천상계로 가길 원했어요. 하지만 그게 이제 티벳 불교에서 말하면 하사도(下士道)죠. 육도에서 삼악도(三惡道)로 안 태어나고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싶은 거. 육도 중에서 악한 세 곳 말고

08:00 좋은 세 곳으로 가고자 하는 게 하사도. 아랫 선비들의 꿈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소승불교가 등장해요. 중사도(中士道) 육도 자체에서 탈출해버리자. 이 육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육도는 육근이 만드는 세계죠. 보세요. 육도라는 건요 탐진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지옥은요? 예 분노가 엄청 큰 곳이고요. 축생계는요 어리석음이 큰 곳이에요 아귀계는 탐욕이 큰 곳이에요. 탐욕이 약한 곳이 있어요. 인간계. 아귀보다 약하다는 거예요. 분노가 지옥보다는 약해요. 수라계, 거기는 늘 싸우는 신들의 세계. 수라도 신들이에요. 싸우는 신들이에요. 어리석음이 약해요. 그럼 그게 천상계예요. 견성은 못 했는데 사는 건 만족스러워요. 욕망은 성취돼요. 그래봤자 탐진치 세계입니다. 여기서 탈출해 버리자는 거예요. 6도에서 육근에서 탈출해버리자. 그게 중사도입니다. 중간 선비, 소승불교. 대승불교는요

09:00 탈출 안 해요. 정토에 집을 짓고요. 육근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육근이 오히려 청정한 정토라는 곳을 설정해가지고요. 정토에 살면서 불보살들을 지구로 파견해가지고 온 우주 중생들을 다 불국토로 끌고 가버리겠다는 겁니다. 이건 이상한 발상이죠. 탐진치를 안 버려요. 이 육근 전체가 알아차림 참나의 작용이라고 봐버려요. 이게 대승입니다. 이 대승의 가르침의 핵심이 법공이에요. 만법이 본래 공에서 참나 작용이라는 거. 이 공 자리가 알아차림이 공 자리인데 이 알아차림이 텅 비어 있으니까 공자리니까 공적영지라고 해요. 텅 빈 알아차림. 순수 의식의 다른 말입니다. 텅 비어 있는 이 알아차림이 본래 공 자리기 때문에 만법이 사실은 본래 알아차림의 작용이니까 만법도 본래 공이다. 이게 반야경이에요. 이걸 이 공을 주장한 게 반야경 계통이 수많은 반야경들이 있어요. 반야심경은 이 반야경을 제일 잘

10:01 핵심을 정리했다고 해서 반야심경이라고 불리는데 핵심 심(心)자예요. 결국 말하고 싶은 게 법공인데 이 법공이 등장한 거는 소승불교에서 대승으로 이제 전향한 겁니다. 완전히 바뀐 거예요. 그 소승불교의 핵심은 아공이었어요. 내가 공하다 예요. 내가 공하다. 나라는 게 없다. 보세요. 이게 나예요. 우리가 흔히 나 하는 거는 우리 에고, 에고를 말해요. 에고는 이 육근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안이비설신의. 어느 게 나죠? 이 중에 뭐 하나라도 고정돼 있는 게 있나요? 다 무상해요. 다 무상하죠. 육근의 세계에서 다 무상하니까 이 육근의 세계를 연구해서 뭐라고 했어요? 석가모니께서 이 육근의 세계를 연구해가지고 이 육근이 일체입니다. 일체(一切)는 고(苦)더라. 제행(諸行)도 육근입니다. 다른 거 없어요. 육근밖에 관찰이 안 되니까

11:00 여러분 육근 말고 다른 거 관찰돼요? 육근의 작용 말고 지금.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이거 개념들 의(意)의 대상이 되는 개념들 말고 다른 거 있어요? 지금 다른 게 없어요. 경험하는 모든 게 제행이에요. 제행은 뭐예요? 무상(無常)하더라.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하더라. 그 일체는 변하니까 어때요? 괴롭더라.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해도 계속 변하니까. 그래서 제법(諸法). 제법은요? 무아(無我) 내 것이 없더라. 여기서 아공이 나옵니다. 제법무아는요 이 자체로는 되게 골때립니다. 이 자체로는 제법은 법이죠. 무아는 공하다는 얘기거든요. 이 자체로는 법공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공이에요. 왜? 제법에 내 것이 없더라. 나라고 할 게 없더라. 포인트가 어디에 있어요? 아공에 있어요. 석가모니께서는 법공을 얘기해 놓고도 어떻게 포인트를 어디다 두신 거예요? 아공 쪽에 포인트를 둔 거예요.

12:01 그래서 이 법공을 전개하니까 뭐가 나와요? 반야경이 나온 거예요. 제법무아를 더 끌고 나가니까 어때요? 만법이 본래 공하더라. 만법이 공하다는 건 만법이 다 정광명의 작용 아닌가. 이렇게 가버린 거예요. 그런데 석가모니께서 거기까지 전개 안 하고 여기서 끊는 거죠. 만법에, 만법은 니것이랄 게 없더라. 만법에는 너랄 게 없더라. 만법에는 너랄 게 없더라. 6근 중에 어디가 너냐? 니 뜻대로 되는 게 뭐가 있으며 이 중에 뭐가 너냐? 다 이 6개가 다 변하고 있는데 이 중에 뭐가 너냐? 이랬어요. 할 말이 없죠. 그래서 아공이 나옵니다. 아공 도리를 가르쳤어요. 이게 일체가 내가 아니라고 놔버리니까 탈출이 일어났어요. 아공을 통해 열반에 들어가서 탈출하는 게 소승도입니다. 그런데 이 제법무아를 가지고 더 파고 들어가서 제법무아니까 만법이 본래 알아차림의 작용 아니야 하고 다시 육근을 수용하는

13:00 철학이 나온 겁니다. 요게 대승철학이에요. 이 대승은 그래서 이 육근의 세계를 안 떠납니다. 왜? 이 또한 참나 작용으로 보고 이도 본래 공하다고 봐버리는 거예요. 지상 천국이 선포되겠죠. 그래서 대승불교에 오면 특징이 불국토를 선포합니다. 모든 중생을 다 탈출시키는 게 아니라 불국토에 들어가게 하는 거. 불국토에서 살게 만들어주는 거. 이해되시죠? 이게 소승 대승 간단한 차이입니다. 제법무아에서 만나요. 법공과 아공이 여기서 만나요. 만법이 내 것이 아니더라 하면 아공이고요. 만법에 나라고 할 실체가 없더라. 자성이, 무아를 무자성으로 봐서 만법 자체, 만법 자체에 고유한 자성이 없더라. 만법이. 그럼 결국 다 참나 작용이니까 자성이 없는 거죠. 반대로 만법이랄 게, 만법에는 나라고 할 게 없더라. 그러면 그래서 내가 없다는 거야. 나라는 게 없다는 거야. 근데 뭐는 있어요? 알아차림은 있어요. 이 알아차림

14:00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제법무아라고 했을 때 알아차림은 있어요. 이 알아차림이 열반이니까 이건 없을 수 없어요. 이게 없다면 육근의 세계에서 탈출할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다나에서 교재에 있었어요. 우다나에서 지수화풍이 없는 세계가 있고 불생불멸의 세계가 있는데 거기가 없다면 탈출한다고 내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께왓다경에서 이 볼 수 없고 무한하고 순수한 모든 곳에 빛나는 이 순수한 빛의 세계에서는 지수화풍이 없다. 똑같이 묘사하죠. 지수화풍이 없다라는 점에서 이게 열반이라는 걸 말해주는 거예요. 열반 자리는 의식이다라고 얘기해준 거고 이 열반이라는 의식이 순수 의식이 있어서 우리는 육근에서 탈출할 수 있다. 지수화풍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한 겁니다.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지금 이거 이해하셨으면요 한국불교가 바로 섰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아마 또 이해 못할 거예요.

15:01 근데 이해하신 분은 귀 있는 자 들으라 하잖아요. 눈 있는 자 봐라. 이거 이해하셨으면 게임 끝난 거예요. 진아인가요? 뭐 무아인가요? 막 이 지랄 안 해도 돼요. 윤회를 하나요? 마나요? 윤회를 안 하면 불교가 아니죠. 애초에 윤회를 안 할 거면 여러분 공부도 하지 마세요. 이 지랄 해봤자 여러분 이번에 10지 못 가요 불지 못 가요. 불지 가면 뭐해요? 죽으면 끝인데. 뭔 의미가 있어요. 그럼 이번 생에 부처는요 복불복인가요? 랜덤으로 돌렸는데 이번에 부처가 된 거예요. 존경할 게 없어요. 그거 타고 나서 한 거예요. 나는 머리도 안 되고 지능도 안 되고 선근도 부족하고 근데 선근이라는 것 자체가 복불복이라면 누가 공부해요? 윤회가 없다면 다 지랄을 하는 겁니다. 선근, 선근이라는 게 애초에 영성 지능인데 전생 공덕으로 육바라밀 공덕 쌓았다는 건데 그냥 음악지능,

16:00 나 음악 못 해요. 음치예요. 그러면 이번 생 끝인 거죠. 태어났더니 영성 지능이, 선근이 박해요. 끝이에요. 그러면 그냥 사시는 거죠. 복불복이라 굳이 더 해야 되는 뭐 별 의무감도 없어요. 죽으면 끝인데. 이해되세요? 다 쓸데없는 지랄이고. 윤회를 하니까 우리가 지금 모여서 이 연구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래도 다음 생도 위험해서. 이번 생만 이러고 끝내면 다행인데 지금 놀면 다음 생에는? 이해되시죠. 그래서 그런 쓸데없는 논리에 빠지지 마시고 지금 공부하셔야 돼요. 저 순수한 알아차림이 여러분 안에 있고 지금 이 순간 그 자리가 저를 보고 계시단 말이에요. 안이비설신의. 색깔을 보고 계시고요. 제 소리를 듣고 계시고 맛을 보시진 않고요. 아무튼 생각으로 저에 대해서 판단하고 계세요. 저 사람은 어떻다 저렇다 판단하고. 그렇죠 이거를 단박 몰라 해버리면 이 자리입니다.

17:01 바로 들어가요. 그래서 지난 시간에 맨 위에 있죠. 다시 한 번 족첸 명상 한번 해볼까요? 바로 들어가는 방법이요 족첸 명상입니다. 족첸. 그냥 들어가 버려요. 보세요.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거에도 바로 들어가는 게 있고 관찰해서 들어가는 게 있어요. 바로 들어가는 거는요 기억나세요? 제가 무아선이다 했던 게. 과거 몰라 과거도 과거에는 지나가고 없고 미래는 뭐죠? 미래에도 머물지 말고 과거에도 머물지 말고 지나가고 없는 과거에도 머물지 말고 아직 안 온 미래에도 머물지 말고 지금 현재도 머물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로 열반에 들어간다. 이게 최상승선입니다. 바로 이게 뭐예요? 육근으로 하여금 어디도 쉴 수 없게 해가지고 바로 참나 자리로 들어가게 만들어버리는 거. 이게 최상승선이에요. 여러분 육근이 대상에 끄달리지 않게 중심으로 들어가게. 여기서 중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걸 뭐라 그래요? 회광반조라 그래요. 자

18:01 여러분의 의식은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어요. 이 알아차림의 태양빛으로 밖을 비추게 돼 있는데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비추게 돼 있는데 이 빛을 회, 돌릴 회(回)자 회광(回光), 빛을 돌려가지고 뒤집어서 봐 버려요. 뒤집어서 비춰요. 밖으로 나갈 후레쉬를 뒤집어서 나를 비춰 버려요. 회광반조가 이걸 다른 이름으로 회광반조를 뭐라고 하냐면 불교에서 직지인심(直指人心) 그럽니다. 곧장 원래 이제 이 지(指)자인데 이렇게(旨) 써요. 요거(扌) 생략해도 같아요. 직지인심 곧장 니 마음을 들여다봐라. 밖을 보지 말고 곧장 니 마음을 들여다봐라. 직지심체(直指心體) 이러기도 해요. 직지, 곧장 니 마음을 봐라. 끝이에요. 이게 최상승선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석가모니께서 가르친 거는 주로 가르친 거는 신수심법(身受心法) 호흡이건 몸이건 감정이건 그 생각의 대상들을 알아차리다가, 알아차리는 대상을

19:00 정해서 알아차리다가, 하나를 알아차리는 데 몰입했다가, 몰입했다가 알아차리는 나 자신을 깨닫는 방식이에요. 대상에 대한 몰입을 이용해서 나를 깨달아요. 나에 대한 몰입으로 전환합니다. 이게 일반적인 명상법이에요. 대상을 하나 주고 몰입하라고 한 다음에 다른 잡념이 사라지고 몰입이 이루어지면, 신기하게 몰입이 이루어지면요 몰입하는 것 자체가 돋보기 되는 것 같아서 알아차림이 밋밋했는데 요 하나를 몰입하다 보면 불이 나요. 태양빛이 불을 못 일으키는데 돋보기를 통과하면 불이 나죠. 지금 저를 알아차리고 계시면서도 못 느끼는데 한 가지 대상을 정해서 알아차리면요 정신이 점점 광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때 나 자신을 알아차리는 방식이에요. 나 자신을. 그런데 족첸 같은 최상승선, 우리나라 선불교 중에서도 직진인심 하는 이 선불교는요 반조선(返照禪)이라 그래요.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선은요 곧장 나를 들여다봐요.

20:00 대상을 설정 안 해요. 예전에 모택동이 중국에서 참새는 해로운 새다 그랬어요. 잡으라는 명령이죠. 온 인민이 다 동원됐어요. 그때 참새 잡으러 다니느라고. 그때 한 몇 천만이 굶어 죽습니다. 그래가지고 잡는 방법이 뭐냐 하면 계속 땅에 못 앉게 해서 죽였어요. 땅에 못 안게 하니까 새가 날다 지쳐서 떨어져 죽었어요. 살벌하죠. 여러분 최상승선이 뭐라고요? 생각 감정 오감에 관심을 안 줘버리는 거예요. 일어나건 말건 관심을 안 줘버리면요 무관심 속에서 애들이 힘을 잃어요. 어느 곳에서 여러분 마음이 어느 곳에도 정착을 안 하게 되면요 깨어나 버립니다. 이해되세요? 이게 최상승선입니다. 족첸명상법 정말 쉬워요. 보세요. 석가모니 가르침이랑 똑같아요. 정광명도 석가모니 가르침, 티벳 밀교의

21:00 최고 요결도 정광명, 그리고 티벳 밀교 최고의 요가인 무상 요가 중에 제일 심오하다는 요가인 족첸이 결국 이것도 석가모니 법구경에 나온 과거에도 미래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머물지 않으면 곧장 열반이라는 가르침하고 똑같아요. 보세요. 첫 번째 따라해 보세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마라. 몰라 하세요. 과거 몰라. 미래 몰라. 두 번째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마음이 그 자신의 흐름대로 가도록 놓아둔다.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순간 마음의 변화에도 몰라 해보세요. 과거 몰라. 미래 몰라. 지금 움직이는 마음도 몰라. 세 번째 마음의 빛나는 명료함, 이게 정광명이죠. 빛나는 그 알아차림이라는 본질을 관찰해 보세요. 오직 나 자신에만 몰입해 보세요. 과거 몰라요. 미래 몰라요. 또 지금 현재라는 것도 모르겠어요. 오직 나는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22:00 그 본질을 인식하며 한동안 머무르세요. 이게 뭐냐 하면 제가 “존만”이라고 한 거죠. 존재만으로 만족해 보세요. 이게 다예요. 학당에서 늘 하는 몰라. 약간 상스럽지만 “몰라 존만” 이게 다예요. 최상승법입니다. 티벳불교에는요 무상 요가라는 게 있어요. 무상이 더 위가 없다는 거예요. 무상 요가가 있는데 마하 요가가 있어요. 아누요가가 있어요. 아띠요가가 있어요. 티벳 불교 3대 요가입니다. 마하요가를 부(父), 부탄트라라고 그래요. 탄트라 그러죠. 부. 이쪽을 엄마(母) 탄트라. 아빠 탄트라 엄마 탄트라. 이거는 불이(不二)탄트라라 그래요.

23:00 3대 요가입니다. 마하요가는요 본존요가라는 겁니다. 이거는 시각화를 하는 거예요. 시각화. 그리고 풍요가라고도 해요. 풍요가는 풍기를 말해요. 풍기. 바람 풍(風)자에다 기운 기(氣)자 해서 풍기(風氣) 마하요가는요? 내 몸이 그대로 부처님 본존이라는 거는 부처님, 부처님 몸이라고 상상하는 거. 그리고 내가 있는 세계는 정토라고 상상해요. 부처님 몸은 정토에 있겠죠. 내 몸이 팔다리가 부처의 몸이요. 내가 있는 곳이 정토다. 그럼 그대로 만다라가 돼요. 지금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게 만다라라고 상상하는 거예요. 시각화. 그러면서 맑은 에너지를 상상하는 겁니다. 풍기라는 건 에너지예요. 에너지를 상상하면서 맑은 청정에너지가 온몸을 꽉 채우는 걸 상상하면서 시각화를 통해서 요가를

24:00 닦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대상에 먼저 집중했다가 그다음 나에 집중해요. 그러다가 풍요가, 본존요가를 할 때요 내가 부처요. 몸이요. 일체 경험되는 게 모두 정토요. 그럼 옴마니반메훔 같은 또 진언(眞言)을 외요. 진언하면서. 시각화만 하는 게 아니라 옴마니반메훔 하면 이 말은 진언이에요. 부처의 진언이고 청정한 몸에서 청정한 진언이 흘러나오면서 하는 그 주체 알아차린 의식은 정광명이라고 생각해요. 정광명 법신이, 부처의 법신 정광명이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외면서 온몸이 정토로 화하는 거. 부처의 몸이자 정토를 화하게 하는 거. 이 시각화를 하다보면 깨어나겠죠. 대상에 대한 몰입이 깊어지면, 깨어나게 되면 일체가 진짜 부처의 몸으로 보이겠죠. 참나 자리에서 보면. 알아차림 정광명이 각성해버리면 진짜 나 자신,

25:00 순수한 나에 대한 몰입으로 들어가고 다시 거기서 또 나와 가지고 일체가 진짜로 부처의 몸인 걸 또 확인합니다. 이런 식으로 법공을 깨달아요. 내 몸이 부처의 몸이라고 상상하고 내 몸에 청정한 에너지가 꽉 찬다고 상상하면서 깨어나서 나에 대한 몰입을 통해 깨어나서, 다시 대상에 대한 몰입으로 돌아와서 일체가 부처의 몸, 법신불의 작용, 참나의 작용임을 확인하는 거. 이게 마하요가에서 하는 겁니다. 아누요가는요 이렇게 시각화를 안 해요. 저희가 홍익학당에서 하는 식이 아누요가예요. 이 엄마탄트라라는 게 이제 시바의 부인 샥티. 샥티라는 게 청정쿤달리니 에너지를 상징해요. 원기. 풍기의 핵심인데요. 그래서 이제 인도에서 영향 받아서 이런 이름들이 정해져요. 그래서 에너지를 다루는 요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는 시각화보다 뭐예요. 저희 학당이 오면 저희가 시각화시키지 않죠.

26:00 단전 잡으라고 하죠. 여기는 차크라 여는 걸 중시합니다. 그래서 밀교 이쪽 아누요가의 3요소는 풍기가 에너지고요. 맥관 이게 경락이에요. 빈두라고 하는 이게 정액이에요. 그래서 빈두는 물방울을 상징해요. 정액. 그럼 여성은 혈, 남성은 정액 이렇게도 부르는데 그냥 통합해서 정액이라고도 해요. 굳이 나누면 정혈이에요. 에너지 에너지의 액체 형태, 그리고 에너지와 그 액체의 형태가 돌아다니는 우리 몸 안에 있는 경락, 맥관 이게 아누요가의 3요소입니다. 이걸 통해서 에너지체를 만들어버려요. 실제 에너지체 만드는 걸 중시하는 게 아누요가예요. 에너지체를 만듭니다. 이 에너지체를 만드는 거를 방편도라 그래요. 요거 개념만 하나 알아두실게요. 방편도라는 건 뭔가 작업을 한다는 겁니다. 인도식으로 말하면

27:00 방편 요가 같은 거는 뭐에 해당되냐면 크리아요가 같은 거. 뭔가 작업을 하는 거예요. 작업을. 에너지를 쌓는 작업을 해야 되죠. 그런데 이 에너지체만 닦는 게 아니라 정광명을 또 닦아야 되죠. 정광명을 바로 깨닫는 건 해탈도라 그래요. 이 정도만 알아두세요. 더 깊이 안 들어갈게요. 방편도와 해탈도 교재에도 나와요. 1페이지에 보면 방편도랑 해탈도란 말이 있을 거예요. 방편도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동양식으로 하면은 뭐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우리 동양에도 있어요. 이게 동양 도교랑 통해요. 도교 공부가 신선 공부가 이러거든요. 방편도는요 뭐라고 하냐면 유위(有爲) 공부라 그래요. 작업을 하잖아요. 인도 크리아요가라는 게 작업한다는 겁니다. 에너지 쌓아가는 작업을 해요.

28:00 해탈도는요 무위(無爲) 공부라 그래요. 그래서 이거는 성(誠) 공부 이거는 명(命) 공부. 그래서 이거는 에너지 생명 연구하는 수행, 닦는 수행, 본성 닦는 수행, 해서 합쳐서 성명쌍수(性命雙修) 그러죠. 불교는 쌍운(雙運)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쌍수(雙修)나 쌍운 같이 써요. 불교는 티벳불교 밀교에서는 쌍운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성명쌍수를 닦습니다. 이거를 티벳식으로 할까요? 공상쌍운(空相雙運)이라 그래요. 텅 빈 공, 무위, 공, 무아. 유형의 상. 형상과 형상 없음을 같이 닦는다고, 해탈도와 방편도를 같이 닦는다고 공상쌍운 그럽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성명쌍수 그래요. 도교까지 지금 이해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아띠요가는 방금 배우신 거예요. 족첸이 아띠요가예요.

29:00 족첸이 아띠요가. 바로 나 몰입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 육근 놔버리고 바로 나로 들어가는 거예요. 생각도 명상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명상도 하지 마라는 게 뭐냐 하면? 명상. 여기서 보세요. 이것도 대상에서 나로 들어가죠. 이것도 대상, 방편도는 대상이죠. 대상이 있는 몰입하다가 대상 없는 나 몰입으로 들어가죠. 여기는요 곧장 나 몰입이에요. 곧장 나 자신에 몰입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명상도 하지 마라는 게 어떤 대상을 세우는 명상을 하지 마라는 거예요. 족첸 명상은 그것도 명상인데 대상 없는 명상이에요. 그냥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최근에 한국 닝마파 지부 세첸코리아 거기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제목이 이래요.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기” 이게 “나 몰입”이에요.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기. 육근을 알아차리기가 아니라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기. 반조선이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나에 대한 몰입이에요.

30:00 재밌는 거는 제가 몰입책 낼 때 몰입책에 나에 대한 몰입까지 다 써놨다는 거예요. 공부 좀 해보려고 몰입책 봤다가 최상승선을 닦게 해놨어요. 대상에 대한 몰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몰입으로 들어가게 해놨어요. 그 나에 대한 몰입을 정확히 하시면 견성을 하시게 돼 있어요. 최상승선을 닦게 돼 있어요. 이게 아띠요가입니다. 최상승선 불이요가. 좋아요. 그런데 보시면 여기 해탈도라는 것도 나에 대한 몰입이죠. 요 해탈도가 거기서는 대표적인 해탈도가 방편도랑 같이 닦으니까 지금 해탈도라고 써놓은 거예요. 방편도가 나로빠 6법이라는 티벳 까귀파 에너지체 배양하는 수행법이 있고요. 그 까귀파의 방편, 나로빠 6법을 닦을 때 같이 닦는 게 마하무드라입니다. 사실은 마하무드라랑 족첸은 같아요. 마하무드라 자체만 보면 불이요가랑 같은 거죠. 그런데

31:00 에너지체를 닦으면서 같이 닦으니까 아누요가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거 기억하세요. 까귀파 수행. 오늘 지금 좀 중점적으로 살펴볼 게 이 까귀파 수행이고 방금 족첸 명상도 해봤잖아요. 지금 요가 다 하고 있어요. 이 마하요가는요 그냥 제가 마하요가를 응용해서 제가 동영상 올려드린 거 있어요. 나무아미타불할 때 내 몸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생각하시면서 하시라. 그게 저기 지금 마하요가예요. 내 몸이 부처님 몸이라고 상상하면서 몰입하면서 염하되 염불하면서 맞춰서 같이 염하다가 참나 각성으로 들어가면 그게 마하요가입니다. 그러면서 일체가 불국토요 부처님 몸이라고 상상하는 거. 내 몸이 부처님 몸이요 일체가 불국토다. 이렇게 자꾸 염하는 게 이 3개가 다 보면은 법공에 기반하고 있다는 거 아시겠죠. 결국 다 나에 대한 몰입에 들어가도요.

32:00 결국 나에 대한 몰입을 통해 뭘 깨달아요? 일체가 참나 작용임을 알아요. 결국 뭔 얘기냐? 저 대승불교의 핵심은 다 법공이라는 거예요. 만법이 공하다는 거는 만법에 대한 초긍정적 접근입니다. 이 만법이 그대로 이 육신이, 이 육신도 안 버린다는 거예요. 이 육신이 그대로 부처님 몸인데 뭘 버려요. 이걸 왜 탈출해요. 탐진치도 번뇌도 그대로 보리인 거예요. 탈출할 게 아닌 거예요. 잘 쓰면 되는 거지. 이렇게 인식이 바뀌어버리는 이게 대승이에요. 소승하고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요가들만 봐도 아실 수 있어요. 다 결국은 이 육근 작용을 참나 작용으로 활용하려는 방편들입니다. 다양한 방편들입니다. 아무튼 여기까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요 법공이 대승불교의 핵심이다. 이 법공을 닦으려고 이런 무상요가 같은 요가들을 활용하고 있다.

33:01 곧장 참나를 접속해서, 곧장 알아차림에 접속해서 이 육근을 부처의 몸으로 이해하든가. 부처의 몸으로 상상하면서 알아차리든가. 결국은 이거 안에서 놀고 있는 겁니다. 이 그림만 기억해 두세요. 알아차림과 육근행. 그래서 결국 이 육근을 싹 빼버리겠다 그러면 소승. 육근을 안고 가겠다. 대승. 이해되시죠. 대승인데 대승 안에서 또 이 지금 에너지, 저 아까 말씀드린 저 세 가지 체계가 금강승에서 제일 중시한 무상요가입니다. 티벳 불교는 금강승 불교거든요. 금강승을 이제 밀교라고 그래요. 그래서 소승, 대승 너머에 또 금강승이 있다고 하는 게 티벳 불교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냥 대승의 한 부분이에요. 대승불교에 원래 이런 밀교적인 게 다 있어요. 밀교를 따로 빼가지고 금강승이라고 말하는 건 저는 안 좋아합니다.

34:00 티벳 불교는 저걸 자꾸 따로 빼려고 그래요. 왜? 우리가 금강승, 그러니까 대승보다 더 위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해요. 그거는 망상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어설프게 하면 그런 망상들이 많이 생겨요. 제대로 하면 대승불교를 공부해 보면 그 안에 어마어마한 바다예요. 대승불교는 바다 같은 거예요. 그 안에 금강승도 밀교의 수련법으로 있는 거예요. 그걸 따로 뺄 필요가 없습니다. 따로 뺐을 때 완전히 잘못 인식하는 게 그럼 대승에는 밀교가 없어야 돼요. 금강승을 따로 빼버려 보세요. 빼서 보세요. 그럼 대승은 밀교 수련이 없어야 되잖아요. 말이 안 되는 소리죠.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티벳 불교는 항상 이게 근(根)․도(道)․과(果)로 봅니다. 근(根)은요 기반이에요. 수행의 기반. 도(道)는요 수행을 의미해요. 수행 방법 접근 방법 수행법

35:00 자 수행은 기반이 있어야 되고요. 그리고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 있어야 되고, 그래서 결과물이 있어야 돼요. 결실과 성취. 그렇죠. 그런데 이걸 이해하시기가 아주 쉬워요. 모든 4대 문파 5대 문파 따지는데 모든 문파의 공히 통하는, 현상계는 저 육근의 세계 그대로 가져옵니다. 육근의 세계, 여기가 지금 육근이고요. 여기가 알아차림의 자리라면 여기는 진제(眞諦) 여기는 속제(俗諦)겠죠. 속제라는 거는 이거는 이제 세속제라 그래요. 세속의 세계. 진제는요 승의제라고도 합니다. 승의가요. 뛰어날 승(勝)자예요. 뛰어난 의미(의義) 뛰어난 의미라는 뜻입니다. 궁극의 의미라는 뜻입니다. 궁극의 진실 이런 뜻이에요.

36:00 궁극의 진실의 세계가 있고요. 그래서 참된 세계 진제, 세속의 세계 그럼 여기는 간단하게 시공이 있는 세계, 제가 늘 주장하는 시공, 이원성, 인과성이 다 있는 세계입니다. 여기는요? 그게 없는 세계, 진실의 세계, 진여의 세계를 말해요. 진여의 세계, 진제 그러면 진여의 세계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어요. 우리가 수행하는 기반도요 이 알아차림에 진제 석가모니식 가르침을 그대로 연결해서 보자고요. 석가모니의 저 께왓다경에서 얘기한 그 가르침이요 모든 불교에 그대로 통한다니까요. 그게 기반이에요. 알아차림이라는 무한한 열반의 세계가 있으면요 생멸 없는 세계, 생멸이 있는 세계가 있어요. 이거 생멸이 있다는 얘기잖아요. 시공 안에서 너와 내가 있고 인과가 있다는 건 생멸이 있다는 얘기죠. 생멸이 있는 세계가 있고 이게 진제와 속제가 모든 수행의 토대입니다. 이해되시죠?

37:00 여기서 우리는 수행해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육근 가지고 육근과 알아차림 가지고 이제 수행 시작해야 됩니다. 정광명 가지고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럼 수행법이라는 게 결국 뭐겠어요? 수행법이. 이 알아차림 이 알아차림을 정광명의 알아차림에서 지혜를 끌어내고요. 그 지혜를 가지고 육근을 잘 쓰는 거죠. 육근을 육바라밀로 잘 굴리는 거죠. 그래서 육바라밀도 들어가 보면 뭐로 구성돼 있어요? 반야바라밀이라는 지혜와 나머지 복덕 쌓는 거죠. 그래서 이 지혜, 이 형이상학적 지혜와 형이하학적인 복덕 쌓기에서 지혜와 복덕을 같이 쌓는 거. 복혜쌍수(福慧雙修) 이게 수행입니다. 결국 수행도 뭐예요? 한마디로 육바라밀만 잘 닦으면 돼요. 육바라밀 안에 있는 반야바라밀을 이쪽에.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의 제일 핵심은. 반야바라밀은 두 개가 있거든요. 육바라밀 중에 반야바라밀은

38:00 두 가지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무분별지가 있고요 분별지가 있어요. 그러면 무분별지는, 무분별이라는 건 주객이 없다는 얘기죠. 이 자체가 이미 진제죠. 무분별지 자체가 이미 법신입니다. 여러분. 무분별지라는 거는요 주객이 없는 상태의 알아차림을 말해요. 그게 그럼 순수 알아차림이잖아요. 이해되세요? 무분별지 자체가 순수 알아차림이에요. 따라서 이 알아차림 자체가 그대로 지혜인 거예요. 무분별의 지혜. 그래서 지혜와 복덕이라고 나눌 때 보면요. 육바라밀 중에 육바라밀 중에 이 복덕에는요 꼭 다섯 바라밀로만 얘기하는데 플러스 반야바라밀 중에 분별지도 여기 들어가요. 여기 무분별지와 분별지를 나눈다면 진제의 세계는요 무분별지의 반야바라밀을 말하는 거고요. 속제의 세계는 육바라밀 중에 나머지, 실제로 실천해야 되는

39:00 다섯 바라밀과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과 반야바라밀 중에 분별지도 여기다 넣으면 되는 거예요. 엄밀하게 말하면. 근데 경전에서는 반야바라밀로 진제를 대표하고 나머지 다섯 바라밀로 속제를 대표하고. 이렇게도 써요. 이해는 되시죠? 반야바라밀을 거기서 또 나누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반야를 이쪽에다 붙여버린다고요. 그래서 티벳에서는 지혜와 복덕으로 나눠서 진제 공부는 지혜바라밀로 속제 공부는 속제는 육근을 통해 뭔가 만들어내는 거니까 방편 바라밀, 복덕 바라밀. 이렇게 해서 두 개로 나눕니다. 그래서 따라서 이 기반, 수행의 기반이 진제와 속제기 때문에 수행법도 진제의 수행과 속제의 수행이 있는 거예요. 진제의 수행은요 순수 알아차림에 접속해서 진리를 직관하는 세계예요. 여기는 진제는 직관하고요. 속제에서는 분석하는 겁니다. 추론을 해야 돼요. 속제에서는 연구를 해가지고. 속제에서는 개념을 써서 추론합니다.

40:01 진제는 개념이 없어요. 시공 인과 이원성이 없는데 어떻게 개념이 있어요? 여기는 개념이 없어요. 그냥 진리와 한 덩어리가 돼서 아는 거예요. 진제에서는 진리 그 자체가 돼요. 진제는 진리의 세계잖아요. 진여의 세계고. 속제는 변화하는 시공 속의 세계니까 시공 속에서는 개념으로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분석하며 진제에서는 여러분은 이제 판단할 수 없고 머리를 쓸 수가 없어요. 시공도 이원성도 인과성도 없기 때문에, 주객이었기 때문에 진리를 내가 주체가 돼서 진리를 알아차리는 게 아니라 그냥 진리가 돼요. 이때는 진리와 내가 벽이 없어요. 그래서 이 알아차림이 그대로 지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혜가 되면서 지혜가 알아차리는 진여도 돼요. 동시에 지가 지를 알아차리고 있다니까요. 이때를 그려놓으면요 이런 상태입니다. 태극처럼 생각하면 돼요. 무분별 지혜와 진여가 한 덩어리로 돼 있어요. 이게 주(主)면 이게 객(客)이죠. 그런데 통합돼 있다고요.

41:00 이게 주객을 나눌 수가 없다고요. 저게 원래 찢어져야 돼요. 나라는 주체가 머리를 써서 지혜로 상대방의 객체를 알아낸다. 이거는 개념으로 아는 거예요. 분석지는 이런 식이에요. 분석지는 나라는, 나의 지혜가 저 대상인 진여를 연구하고 있다. 이러면 개념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밖에 안 돼요. 속제는 이원성 속에서 연구하는 거예요. 이원성이 사라지면 어떻게 돼요? 진여와 지혜가 하나가 돼요. 내가 나를 알아차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냥 직관으로 알아지지 머리를 써서 아는 게 아니에요. 이게 무분별지 상태입니다. 아시겠죠. 이게 참나 상태예요. 그래서 무분별지가 그대로 법신이에요. 그래서 반야경에 보면요 반야바라밀이 법신이라는 말이 나와요. 육바라밀 중에 하나인 반야바라밀이 어떻게 갑자기 법신이 될까요? 반야바라밀이 법신이 되는 소식을 알면 지금 이게 뭔 말인지 아시는 거예요. 반야바라밀이 그대로 법신이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그렇게 높이 치는 겁니다. 반야바라밀이 지금 그대로 참나란 말이에요.

42:00 그래서 반야바라밀 연구하는 모든 경들이 다 반야바라밀이 최고라고, 육바라밀 중에 최고는 반야바라밀이라고, 이 얘기를 자꾸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반야바라밀에서 무분별지를 말하는 거다. 무분별. 그 자리는 영원불변한 시공을 초월한 자리거든요. 그래서 그 8천송반야경에 보면요 반야바라밀 상태로만 있어도 만병이 낫는다고 돼 있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 참나 상태이기 때문에 그래요. 시공을 초월한 참나 상태에 접속해서 진리를 직관하고 있고 진리랑 한덩어리가 돼서 존재하기 때문에 진리이자 진리를 알아차리는 정광명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온몸에 병이 물러가고 막 이런 말들이 반야바라밀경에서 붙는 거예요.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경도 금강은 여기서 원래는 다이야가 아니죠. 금강저(金剛杵)를 말해요. 벼락을 치는 도구. 반야바라밀은요 벼락처럼

43:00 모든 걸 다 부숴버린다는 거예요. 모든 번뇌를. 반야바라밀에 접속만 하면. 그걸 제가 우리식으로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뭔지 아세요? 몰괜자만 하면 짱입니다 하는 게, 이게 어렵게 형이하학적으로 막 어렵게 얘기하면 반야바라밀만 하면 금강저의 작용을 한다. 무지와 아집을 깨는 금강저와 같은 벼락을 치는 반야바라밀 이렇게 얘기하면 이게 어렵게 얘기한 거고. 몰괜자 하면, 몰라 괜찮아 자명이면, 몰라 괜찮아는 무분별이요 자명은 지혜잖아요. 그게 다 깨부순다고요. 어떤 번뇌도 어떤 괴로움이 있으시건 몰괜자 하고 계시면요 초긍정으로 변합니다. 무분별이라는 건 초긍정이에요. 분별하면 우울해져요. 무분별하면 초긍정입니다. 초긍정으로 가면 어디가 아픈지도 몰라요. 그때 딱 모드가 바뀌면서 긍정적인 소리가 딱 외침이 나오고 직관이 나옵니다. 자 그렇게 해서 닦은 결과물이 뭐겠어요? 그럼 이게 이 진제는 그대로 법신이고 이 속제는요? 색신이 되겠죠. 색신. 법신과 색신을 닦는 겁니다. 색신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법신은 진리 그 자체. 알아차림 그 자체가 무분별지 그 자체가 법신이에요. 무분별을 자꾸 수행하다 보면 법신을 성취합니다. 그리고 복덕을 닦다 보면은 보신(報身)을 성취해요. 보신은 뭘로 성취해요? 일단 포인트는 육바라밀이죠. 육바라밀 플러스 저기 밀교 수련이요. 밀교 에너지체 수련. 이 두 가지를 하면 뭐가 나와요? 이제 보신. 여러분이 공부해서 과보로, 열매로 얻는 몸이 나와요. 왜냐하면 법신은 시공을 초월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법신은요 닦았다 해도 닦은 게 없어요. 여러분이 법신을 더 드러냈을 뿐이지 법신을 닦을 수는 없어요. 원래 완벽한 세계니까.

45:00 그런데 보신은 여러분이 만든 세계입니다. 그래서 과보 보(報)자를 쓰는 거예요. 여러분이 공덕을 쌓아서 만든 거예요. 육바라밀의 아이템을 모아서 만든 거고요. 밀교의 풍기(風氣), 맥관, 빈두를 닦아서 만든 거예요. 이 방편도 유위(有爲)의 공부를 닦아서 만들어낸 거예요. 그래서 보신이에요. 그래서 법신과 보신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데 색신(色身)이라고 하는 거는요 색신은 방금 말한 보신과 화신, 육신까지 합쳐서 말하는 거예요. 보신은 에너지체잖아요. 에너지의 몸 말고 육신의 몸까지 합쳐서 색신이라 그래요. 물질도 색깔이 있잖아요. 에너지도 색깔이 있고 둘 다 합쳐서 색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속제의 몸은 색신, 진제의 몸은 진실제의 몸은 법신. 이렇게 했다. 외우기 쉽죠? 이거 이거 틀리면. 두 개인데 그냥 이 중에 하나인데. 수행의 기반은 뭡니까? 참나와 에고. 이렇게라도 외우세요.

46:00 수행의 기반은 참나와 에고. 그럼 공부는요? 참나각성과 에고. 육바라밀 통해 참나 각성하고 에고 복 짓기, 복덕 짓기. 그래서 뭘 성취합니까? 또 도로 참나와 색신, 법신과 색신, 에너지체. 참나와 에너지체. 깔끔하죠? 티벳 불교는 이게 기본이에요. 모든 문파가 이건 공통입니다. 어떠세요? 좋아요? 어떠세요? 여기까지 이해되세요? 한 10분 쉬고 다시 할 건데요. 본격적으로 밀교 들어가 볼게요. 이제 준비입니다. 지금 몸만 좀 풀었습니다. 몸만 좀 풀었는데 밀교 좀 들어가 볼게요. 지금 밀교의 핵심만 제가 얘기해 드리고 어려운 건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핵심은 근데 다 얘기해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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