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 선생님의 견성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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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를 제가 하나 가져왔는데요. 이거 하나 읽어드려 볼게요. 그냥 이건, 깨어서 들으세요. 지금. 깨어서 천국 극락을 누리는 분들이 들으시면 좋을 거 같아서. 제가 예전에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봉우 할아버지가 쓰신, 봉우 할아버지의 견성론인데요. 이렇게, 견성론(見性論)은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봉우 할아버님 글 중에, 제가 이 글을 고2 때 본 글인데, 그 때는 이런 내용들이 안 보였는데, 나중에 공부하다 보니까 “봉우 선생님도 다 얘기 해 놓으셨네.” 하는 거를, 고2 때 만나서 읽었던 책인데, 이 글을 제가 쓴 건 2006년에 써 놨네요. 2006년이니까 학당 열고 한 3년 됐을 때, “어 이게 이렇게, 봉우 선생님도 견성을 강조했다.” 이 얘길 하고 싶어서 글을 정리해 놓은 게 있어요. 왜냐면 봉우 선생님 제자들한테 제가 그 때쯤에 견성 하라고 그랬더니 “봉우 선생님은 견성을 얘기한 적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호흡만 얘기했지 견성 얘기 안 했다.” 그러니까 제가 “그럴 리가.” 하고 선생님 글을 다시 보니까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써 놓은 건데 한 번. 선생님 글만 먼저 읽어 드리고 제가 이제 구절구절 한 번 풀이도 읽어 드릴게요. 이거 와 닿으시는지 한 번 읽어보세요. 봉우 선생님의 그 󰡔백두산족에게 告함󰡕이란 글에 이게 있습니다.<ref>󰡔백두산족에게 告함󰡕, 1989. pp. 19-22 「나의 한계」</ref> “내가 있다 없다 함도 모두 나요,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나라. 없고 또 없고 비고 또 비어도 나 아닌 게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은 것 또한 나로 말미암으니,” 걍 온통 나라는 거죠. 다 나니, “세상 사람들이여 삶과 죽음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빈 산 밝은 달에 참나를 깨달으라.”  
이거를 제가 하나 가져왔는데요. 이거 하나 읽어드려 볼게요. 그냥 이건, 깨어서 들으세요. 지금. 깨어서 천국 극락을 누리는 분들이 들으시면 좋을 거 같아서. 제가 예전에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봉우 할아버지가 쓰신, 봉우 할아버지의 견성론인데요. 이렇게, 견성론(見性論)은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봉우 할아버님 글 중에, 제가 이 글을 고2 때 본 글인데, 그 때는 이런 내용들이 안 보였는데, 나중에 공부하다 보니까 “봉우 선생님도 다 얘기 해 놓으셨네.” 하는 거를, 고2 때 만나서 읽었던 책인데, 이 글을 제가 쓴 건 2006년에 써 놨네요. 2006년이니까 학당 열고 한 3년 됐을 때, “어 이게 이렇게, 봉우 선생님도 견성을 강조했다.” 이 얘길 하고 싶어서 글을 정리해 놓은 게 있어요. 왜냐면 봉우 선생님 제자들한테 제가 그 때쯤에 견성 하라고 그랬더니 “봉우 선생님은 견성을 얘기한 적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호흡만 얘기했지 견성 얘기 안 했다.” 그러니까 제가 “그럴 리가.” 하고 선생님 글을 다시 보니까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써 놓은 건데 한 번. 선생님 글만 먼저 읽어 드리고 제가 이제 구절구절 한 번 풀이도 읽어 드릴게요. 이거 와 닿으시는지 한 번 읽어보세요. 봉우 선생님의 그 『백두산족에게 告함』이란 글에 이게 있습니다.<ref>『백두산족에게 告함』, 1989. pp. 19-22 「나의 한계」</ref> “내가 있다 없다 함도 모두 나요,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나라. 없고 또 없고 비고 또 비어도 나 아닌 게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은 것 또한 나로 말미암으니,” 걍 온통 나라는 거죠. 다 나니, “세상 사람들이여 삶과 죽음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빈 산 밝은 달에 참나를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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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산 밝은 달. 딱 이렇게 산에, 아무도 없는 산에 그 뭔가 나 홀로 있는 산에서 달을 보고 있는 그 마음을 상상하시면서 “나라는 건 본래 광명하니 필요한 거는 달 가리는 구름만 사라지면 된다.” 달이 훤히 뜬 거에서 이걸 보셔야 됩니다. 구름 걷히면 달이네. 근데 구름 있을 때도 원래 달은 있었죠. 그러니까 구름이 있건 말건 달은 늘 있는데 구름 걷히니까 달이 보이네. 요것은, 필요한 거는 달을 가리는 구름만 사라지면 되니까, 생각 감정 오감으로 분주하게 참나를 찾지 마시고, 생각 감정 오감을 내려놓고 나면 참나가 싱그럽게 드러날 거다. 그냥. 구름 걷히면 달 훤히 뜨듯이 원래 그냥 달이 떠 있었듯이. “시공 초월하여 존재하는 참나 자리를 시공에 의해 제약된 알음알이로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내려놓으라. 요즘 같으면 이제 “몰라 하라.”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죠. 그러면, “만약에 알음알이로 찾으면 분주할 뿐이지 참나를 결코 못 찾을 거다.” 요렇게 제가 풀이해 놓은 게 있어서 읽어 드렸습니다. 그게 하나고 두 개 더 있는데요. 다 󰡔백두산족에게 告함󰡕이란 책에 있어요. 요 구절 한 번 읽어 드릴게요. 원문으로. “물 흘러가고 구름 걷히면 본래 면목이 절로 드러나니 구차하게 이리저리 억지로 조장함이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맑은 향 한 대 피우고 차 한 잔 마시고서 고요히 앉아 참나를 돌이켜 보니, 푸른 산 흰 구름은 한가로이 자유로우며 흐르는 물은 밤낮으로 공연히 분주하구나.”<ref>上揭書 pp. 44-45 「예순 다섯에 쓴 시」</ref> 이렇게 써 놓으신 게 있어요.  
빈 산 밝은 달. 딱 이렇게 산에, 아무도 없는 산에 그 뭔가 나 홀로 있는 산에서 달을 보고 있는 그 마음을 상상하시면서 “나라는 건 본래 광명하니 필요한 거는 달 가리는 구름만 사라지면 된다.” 달이 훤히 뜬 거에서 이걸 보셔야 됩니다. 구름 걷히면 달이네. 근데 구름 있을 때도 원래 달은 있었죠. 그러니까 구름이 있건 말건 달은 늘 있는데 구름 걷히니까 달이 보이네. 요것은, 필요한 거는 달을 가리는 구름만 사라지면 되니까, 생각 감정 오감으로 분주하게 참나를 찾지 마시고, 생각 감정 오감을 내려놓고 나면 참나가 싱그럽게 드러날 거다. 그냥. 구름 걷히면 달 훤히 뜨듯이 원래 그냥 달이 떠 있었듯이. “시공 초월하여 존재하는 참나 자리를 시공에 의해 제약된 알음알이로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내려놓으라. 요즘 같으면 이제 “몰라 하라.”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죠. 그러면, “만약에 알음알이로 찾으면 분주할 뿐이지 참나를 결코 못 찾을 거다.” 요렇게 제가 풀이해 놓은 게 있어서 읽어 드렸습니다. 그게 하나고 두 개 더 있는데요. 다 『백두산족에게 告함』이란 책에 있어요. 요 구절 한 번 읽어 드릴게요. 원문으로. “물 흘러가고 구름 걷히면 본래 면목이 절로 드러나니 구차하게 이리저리 억지로 조장함이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맑은 향 한 대 피우고 차 한 잔 마시고서 고요히 앉아 참나를 돌이켜 보니, 푸른 산 흰 구름은 한가로이 자유로우며 흐르는 물은 밤낮으로 공연히 분주하구나.”<ref>上揭書 pp. 44-45 「예순 다섯에 쓴 시」</ref> 이렇게 써 놓으신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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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참나 찾고자 한다면, 아까, “향 한 대 피우고 차 한 잔 하고 딱 참나를 돌이켜 보라.” 했듯이 “그냥 정신 맑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밖으로 향하는 내 의식을 안으로만 돌이키십시오. 나에 대한 몰입을 하십시오.” 이게 回光返照라고 그러죠. “밖으로 나가는 빛만 안으로 돌이켜서 나라는 존재감의 근원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아까 “푸른 산 흰 구름은 한가로이 자유롭고, 흐르는 물만 밤낮으로 분주하구나.” 이렇게 해 놓은 게, 참나 상태에서 보면 이게 법공입니다. 참나 상태에서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알아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참나를 모를 때는 막 우주가 다 문제 있는 거 같고, 참나 못 만난 나도 문제 있고, 참나 못 만나면 어쩌나 하다가, 참나 만나고 보니까 어때요? 나도 본래 참나였고, 산도 물도 다 원래 지 알아서 다 자득하고 있더라는. 각자 자기 본성 지키고 있더라 하는 걸 깨닫습니다. 이게 법공이에요. 존재까지 이해하게 됩니다. 나를 이해하고 나니까 존재가 이해가 돼요. 우주가 이해가 돼요. 그러니까 선비들이 我空 法空 체험을 못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진리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참나 알고 나면. 그래서 “흰 구름은 한가롭고 물은 바쁘고 이게 다 참나 나툼일 뿐이다.” 요런. 그래서 “마음 비우고 나니 만물이 본래부터 유유자적하였음을 알겠다.” 이렇게 얘기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하는 거고. 마지막 말이요 저한테 제일 감동을 준 말입니다.<ref>上揭書 pp. 15-18 「나에게서 구하라」</ref> 제가 수심결(修心訣)(강의)<ref>󰡔윤홍식의 수심결 강의󰡕</ref> 쓸 때도 이 구절을 강조했어요. 뭐냐. 이 말씀 이게 제일 저한테 감명 깊었어요. 들어보세요. 그냥 한 문장이에요. 아, 두 문장이군요. “나에게서 구하라.” 모든 답을 나에게서 구하라. 그리고 “나 밖에 내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서 구하라. 이게 저한테 되게 강력했어요. 나를 찾아야 되는데 어디에서 찾습니까. 나한테서 찾아야죠. 그래서 지금 내가 존재한단 느낌 밖에서 나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존재한단 느낌에 집중하시는 게 견성의 제일 최고 요결인 이유가, 나는 나에게서 찾아야 되니.
그대가 참나 찾고자 한다면, 아까, “향 한 대 피우고 차 한 잔 하고 딱 참나를 돌이켜 보라.” 했듯이 “그냥 정신 맑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밖으로 향하는 내 의식을 안으로만 돌이키십시오. 나에 대한 몰입을 하십시오.” 이게 回光返照라고 그러죠. “밖으로 나가는 빛만 안으로 돌이켜서 나라는 존재감의 근원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아까 “푸른 산 흰 구름은 한가로이 자유롭고, 흐르는 물만 밤낮으로 분주하구나.” 이렇게 해 놓은 게, 참나 상태에서 보면 이게 법공입니다. 참나 상태에서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알아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참나를 모를 때는 막 우주가 다 문제 있는 거 같고, 참나 못 만난 나도 문제 있고, 참나 못 만나면 어쩌나 하다가, 참나 만나고 보니까 어때요? 나도 본래 참나였고, 산도 물도 다 원래 지 알아서 다 자득하고 있더라는. 각자 자기 본성 지키고 있더라 하는 걸 깨닫습니다. 이게 법공이에요. 존재까지 이해하게 됩니다. 나를 이해하고 나니까 존재가 이해가 돼요. 우주가 이해가 돼요. 그러니까 선비들이 我空 法空 체험을 못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진리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참나 알고 나면. 그래서 “흰 구름은 한가롭고 물은 바쁘고 이게 다 참나 나툼일 뿐이다.” 요런. 그래서 “마음 비우고 나니 만물이 본래부터 유유자적하였음을 알겠다.” 이렇게 얘기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하는 거고. 마지막 말이요 저한테 제일 감동을 준 말입니다.<ref>上揭書 pp. 15-18 「나에게서 구하라」</ref> 제가 수심결(修心訣)(강의)<ref>『윤홍식의 수심결 강의』</ref> 쓸 때도 이 구절을 강조했어요. 뭐냐. 이 말씀 이게 제일 저한테 감명 깊었어요. 들어보세요. 그냥 한 문장이에요. 아, 두 문장이군요. “나에게서 구하라.” 모든 답을 나에게서 구하라. 그리고 “나 밖에 내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서 구하라. 이게 저한테 되게 강력했어요. 나를 찾아야 되는데 어디에서 찾습니까. 나한테서 찾아야죠. 그래서 지금 내가 존재한단 느낌 밖에서 나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존재한단 느낌에 집중하시는 게 견성의 제일 최고 요결인 이유가, 나는 나에게서 찾아야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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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시죠? 어디서도 못 듣는 겁니다. 이런 거는 제가 예전, 2006년에 써 놓고 제가 면우집에다 꽂아 놨더라고요. 근데 면우집(俛宇集)을 아까 우연히 낮에 다시 한참 찬찬히 다시 읽어 보다가 이게 하나 떨어지길래 “뭐지?” 하고 복사물을 보니까 이게, 이걸 그래서, 유튜브에 혹시 없으려나 해 가지고, 예전에도 한 번 읽어드린 기억은 나는데, 저희 소수 있을 때 읽어드린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가능하면 유튜브에 하나 올려 볼까 해서 들고 왔습니다. 재밌죠. 그러니까 이 마음 아시겠죠. 그러면요 이 마음 알면 우리가 그 마음 알고, 그 마음 우리가 지금 여기서, 우리도 그 마음이 되면 이게 이심전심(以心傳心)입니다. 그 분 마음이 지금 내 마음에 그대로 복사가 돼서 나타나요. 예수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우리 마음에 임하면 지금 그게 성령이 임한 거고, 예수님 마음과 하나면 우리가 지금 이미 천국에 있는 거예요. 예수님 마음은 천국 마음이니까, 천국에 사는 분의 마음이니까 우리 마음이 그대로 천국이자 천국에 사는 마음이 되는 거예요. 이게 이제 공부예요. 고전은 이 맛에 읽는 겁니다. 그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려고. 근데 그 사람 말을 내 말로 하려고 읽으면 그냥 지식욕인데, 그 분 마음이 내 마음이 되게 만들려고 읽으면 고전은요 지금, 이 순간 다시 꽃이 피어요. 공자님이 다시 현신하는 거고, 누가 막 제 유튜브에다 “현 시대의 공자다.” 막 이렇게 써놓고. 어떤 분은 막 “생불이다.”
재밌으시죠? 어디서도 못 듣는 겁니다. 이런 거는 제가 예전, 2006년에 써 놓고 제가 면우집에다 꽂아 놨더라고요. 근데 면우집(俛宇集)을 아까 우연히 낮에 다시 한참 찬찬히 다시 읽어 보다가 이게 하나 떨어지길래 “뭐지?” 하고 복사물을 보니까 이게, 이걸 그래서, 유튜브에 혹시 없으려나 해 가지고, 예전에도 한 번 읽어드린 기억은 나는데, 저희 소수 있을 때 읽어드린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가능하면 유튜브에 하나 올려 볼까 해서 들고 왔습니다. 재밌죠. 그러니까 이 마음 아시겠죠. 그러면요 이 마음 알면 우리가 그 마음 알고, 그 마음 우리가 지금 여기서, 우리도 그 마음이 되면 이게 이심전심(以心傳心)입니다. 그 분 마음이 지금 내 마음에 그대로 복사가 돼서 나타나요. 예수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우리 마음에 임하면 지금 그게 성령이 임한 거고, 예수님 마음과 하나면 우리가 지금 이미 천국에 있는 거예요. 예수님 마음은 천국 마음이니까, 천국에 사는 분의 마음이니까 우리 마음이 그대로 천국이자 천국에 사는 마음이 되는 거예요. 이게 이제 공부예요. 고전은 이 맛에 읽는 겁니다. 그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려고. 근데 그 사람 말을 내 말로 하려고 읽으면 그냥 지식욕인데, 그 분 마음이 내 마음이 되게 만들려고 읽으면 고전은요 지금, 이 순간 다시 꽃이 피어요. 공자님이 다시 현신하는 거고, 누가 막 제 유튜브에다 “현 시대의 공자다.” 막 이렇게 써 놓고. 어떤 분은 막 “생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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