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와 열반 5강: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진여와 열반}}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 |- | 부제 || 열반은 순수한 알아차림이다! |- | 강의일자 || 2023. 05. 14. 土. |- | 게시일자 || 2023. 08. 12. |- | 동영상 길이 || 48:03 |- | 강의 중 인용 도서 || -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nkP6-rvXqVM |} 0:07 불교도 우리가 이렇게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지금 공부할 때가 아니에요. 불교를 넘어서야죠. 뭐냐면? 넘어선다... |
편집 요약 없음 |
||
| 6번째 줄: | 6번째 줄: | ||
| 부제 || 열반은 순수한 알아차림이다! | | 부제 || 열반은 순수한 알아차림이다! | ||
|- | |- | ||
| 강의일자 || 2023. 05. | | 강의일자 || 2023. 05. 13. 土. | ||
|- | |- | ||
| 게시일자 || 2023. 08. 12. | | 게시일자 || 2023. 08. 12. | ||
| 21번째 줄: | 21번째 줄: | ||
0:07 | 0:07 | ||
불교도 우리가 이렇게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지금 공부할 때가 아니에요. 불교를 넘어서야죠. 뭐냐면? 넘어선다는 것은 부처님이 “내가 해 놓은 말 2000년이고 3000년이고 언젠가 이해해 봐라” 하고 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그 자리에서 “듣고 바로 써먹으라”고 말을 했을까요? 지금 불교를요 바로 이해하고 써먹지 못 하면 뭐 잘못된 거예요. 그걸 못 가르치면 지금 절이 잘못된 거고요. 똑같아요. 기독교도 성령을 바로 성령 받아라. 예수님은 제자들 앉혀놓고 바람 불면서 “성령 받아라” 그랬다고요. 그리고 “땅끝까지 가가지고 너가 본보기가 되어줘라. 성령 받은 사람의 본보기가 돼주라”고 그랬어요. 이게 다예요. | 불교도 우리가 이렇게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지금 공부할 때가 아니에요. 불교를 넘어서야죠. 뭐냐면? 넘어선다는 것은 부처님이 “내가 해 놓은 말 2000년이고 3000년이고 언젠가 이해해 봐라” 하고 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그 자리에서 “듣고 바로 써먹으라”고 말을 했을까요? 지금 불교를요 바로 이해하고 써먹지 못 하면 뭐 잘못된 거예요. 그걸 못 가르치면 지금 절이 잘못된 거고요. 똑같아요. 기독교도 성령을 바로 성령 받아라. 예수님은 제자들 앉혀놓고 바람 불면서 “성령 받아라” 그랬다고요. 그리고 “땅끝까지 가가지고 너가 본보기가 되어줘라. 성령 받은 사람의 본보기가 돼주라”고 그랬어요. 이게 다예요. | ||
1:01 | 1:01 | ||
제가 여러분한테 얘기해도 그러지 않을까요. “참나 깨달으세요. 참나랑 함께 사는 삶이 어떤 건지 그 자명한 깨어있는 삶이 어떤 건지 다른 사람들한테 본보기가 돼주세요.” “제가 지금 한 얘기가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한 2000년 정도 더 연구해 보세요”라고 얘기하면 제가 실패한 거예요. 대화 실패. 말을 했는데 전달이 안 됐으면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여러분 잘못은 이해를 못 하면 그건 이제 듣는 사람 잘못도 있겠지만 아무도 이해를 못 시켰다면 제 잘못도 커요. 그렇죠. 말 어떻게 했길래 2000년간 아무도 말을 이해를 못 해요. 그 정도 말은 안 하니만 못한 말 아니에요.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불교를 가지고 아직도 연구를 하겠다. 뭐 무슨 학설을 더 파보겠다. 학설을 만들어 보겠다. 이 지랄하고 있으면 망한 거예요. 망한 거. 그냥 인류는 망한 거예요. 부처님이 다시 와도 답이 없어요. 그 지경이면 그냥 부처님 쪽도 | 제가 여러분한테 얘기해도 그러지 않을까요. “참나 깨달으세요. 참나랑 함께 사는 삶이 어떤 건지 그 자명한 깨어있는 삶이 어떤 건지 다른 사람들한테 본보기가 돼주세요.” “제가 지금 한 얘기가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한 2000년 정도 더 연구해 보세요”라고 얘기하면 제가 실패한 거예요. 대화 실패. 말을 했는데 전달이 안 됐으면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여러분 잘못은 이해를 못 하면 그건 이제 듣는 사람 잘못도 있겠지만 아무도 이해를 못 시켰다면 제 잘못도 커요. 그렇죠. 말 어떻게 했길래 2000년간 아무도 말을 이해를 못 해요. 그 정도 말은 안 하니만 못한 말 아니에요.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불교를 가지고 아직도 연구를 하겠다. 뭐 무슨 학설을 더 파보겠다. 학설을 만들어 보겠다. 이 지랄하고 있으면 망한 거예요. 망한 거. 그냥 인류는 망한 거예요. 부처님이 다시 와도 답이 없어요. 그 지경이면 그냥 부처님 쪽도 | ||
2:04 | 2:04 | ||
포기할 거예요. “아 인류는 아닌 거 같다.” 예수님도 “아 그냥 천년왕국은 없던 걸로. 인류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이럴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인류가 말이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렇지 말이 되는 소리예요. 지금 예수님이 계시다면 여러분 얘기할 때 못 알아먹게 얘기하겠냐고요. 근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뭔가 이상한 거죠. 불교도 정말 간단합니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데 엄청나게 어려워져 버렸고 복잡해져서 제가 또 이런 강의를 해야 되잖아요. 저는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냥 제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K 철학의 제일 핵은 뭐예요. 그냥 홍익학당 철학이에요 핵심이 뭐야 몰괜자. 이거 어디 없잖아요. 몰괜자. 접속 인가 맡김. 실천지침 14조 끝. 뭐 더 할 얘기가 | 포기할 거예요. “아 인류는 아닌 거 같다.” 예수님도 “아 그냥 천년왕국은 없던 걸로. 인류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이럴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인류가 말이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렇지 말이 되는 소리예요. 지금 예수님이 계시다면 여러분 얘기할 때 못 알아먹게 얘기하겠냐고요. 근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뭔가 이상한 거죠. 불교도 정말 간단합니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데 엄청나게 어려워져 버렸고 복잡해져서 제가 또 이런 강의를 해야 되잖아요. 저는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냥 제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K 철학의 제일 핵은 뭐예요. 그냥 홍익학당 철학이에요 핵심이 뭐야 몰괜자. 이거 어디 없잖아요. 몰괜자. 접속 인가 맡김. 실천지침 14조 끝. 뭐 더 할 얘기가 | ||
3:02 | 3:02 | ||
뭐가 있어요. 저도 이거밖에 공부 안 하는데 뭘 하겠어요. 거기다 그 호흡수련. 참나 각성, 호흡수련, 양심성찰이면 끝이에요. 사실 이게 K 철학입니다. 무슨 갑자기 뭐 되도 않는 참전계경 들고 오고 막 이상하잖아요. 왜냐면 족보를 의심하니까 들고 오는 거지 이게 뭔 의미가 있냐고요. 사실 지금 몰괜자 바로 알아들을 말. 몰라 괜찮아 자명. 참나 접속했냐? 했다. 거기서 자명하더냐? 인가해보니까 자명하더라. 양심이란 게 자명하더라. 욕심은 찜찜하더라. 자명하게 양심 따라 산다. 맡겼다. 끝. 어느 철학 어느 종교 와도 이거 없으면 그거 가짜 종교예요. 앞으로 천년만년 뒤에도 수많은 종교가 나오겠지만 제가 말한 몰괜자, 접속 인가 맡김, 14조 실천지침 없다면 고등종교가 아닐 거고요. | 뭐가 있어요. 저도 이거밖에 공부 안 하는데 뭘 하겠어요. 거기다 그 호흡수련. 참나 각성, 호흡수련, 양심성찰이면 끝이에요. 사실 이게 K 철학입니다. 무슨 갑자기 뭐 되도 않는 참전계경 들고 오고 막 이상하잖아요. 왜냐면 족보를 의심하니까 들고 오는 거지 이게 뭔 의미가 있냐고요. 사실 지금 몰괜자 바로 알아들을 말. 몰라 괜찮아 자명. 참나 접속했냐? 했다. 거기서 자명하더냐? 인가해보니까 자명하더라. 양심이란 게 자명하더라. 욕심은 찜찜하더라. 자명하게 양심 따라 산다. 맡겼다. 끝. 어느 철학 어느 종교 와도 이거 없으면 그거 가짜 종교예요. 앞으로 천년만년 뒤에도 수많은 종교가 나오겠지만 제가 말한 몰괜자, 접속 인가 맡김, 14조 실천지침 없다면 고등종교가 아닐 거고요. | ||
4:01 | 4:01 | ||
요게 있다면 고등종교일 겁니다. 그럼 끝이죠. 여러분은 앞으로 나올 무수한 종교도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본질을 알고 있으니까. 과거에 있었던 무수한 종교도 그 본질을 알고 계세요. 근데 K 철학인데 가장 우리 민족적인 건데 우리끼리 신명나는 건데 전 세계인이 같이 즐길 수 있어요. 왜? 진리는 하나니까. 끝인 거예요. 가장 민족적인 K 철학이 가장 전 세계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라면 끝난 거예요. 인류도 복 받는 거예요. 다른 종교는 더럽게 설명 못 하더니 여기는 너무 쉽다. K 철학, K 붙으니까 쏙쏙 들어오네. 그냥 이해가 쉽고 보면 자명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끝. 이게 중요한 겁니다. 포인트는 이겁니다. 아직 진도 안 나갔어요. 여기서부터 나갈게요. 진도 시작. 불교도 쉽다. 여러분 불교하면요 뭐가 떠오르고 진여와 열반하면 엄한 게 막 떠오르시면 안 돼요. 진여와 열반은요 | 요게 있다면 고등종교일 겁니다. 그럼 끝이죠. 여러분은 앞으로 나올 무수한 종교도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본질을 알고 있으니까. 과거에 있었던 무수한 종교도 그 본질을 알고 계세요. 근데 K 철학인데 가장 우리 민족적인 건데 우리끼리 신명나는 건데 전 세계인이 같이 즐길 수 있어요. 왜? 진리는 하나니까. 끝인 거예요. 가장 민족적인 K 철학이 가장 전 세계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라면 끝난 거예요. 인류도 복 받는 거예요. 다른 종교는 더럽게 설명 못 하더니 여기는 너무 쉽다. K 철학, K 붙으니까 쏙쏙 들어오네. 그냥 이해가 쉽고 보면 자명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끝. 이게 중요한 겁니다. 포인트는 이겁니다. 아직 진도 안 나갔어요. 여기서부터 나갈게요. 진도 시작. 불교도 쉽다. 여러분 불교하면요 뭐가 떠오르고 진여와 열반하면 엄한 게 막 떠오르시면 안 돼요. 진여와 열반은요 | ||
5:04 | 5:04 | ||
육근의 세계에,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내가 살아가는 VR의 세계, 매트릭스의 세계, 내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어요. 여러분 무섭지 않아요.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육근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경험하는 건 다 여러분 의식의 작용입니다. 내가 보는 세계만 볼 수 있지 객관적 세계는 볼 수가 없어요 여러분. 객관적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세계만 인지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험하는 세계는 다 주관적인 세계예요. 남하고 대화해 보니까 남도 나랑 유사한 걸 경험하는 것 같아서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사는 거지 사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 우주가 어떤 배경음악이고 어떤 세계로 보이는지 여러분 몰라요. 아마 다른 사람 마음으로 접속하면 배경음악부터 다를 수 있어요. 뭐 이렇게 우울해. | 육근의 세계에,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내가 살아가는 VR의 세계, 매트릭스의 세계, 내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어요. 여러분 무섭지 않아요.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육근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경험하는 건 다 여러분 의식의 작용입니다. 내가 보는 세계만 볼 수 있지 객관적 세계는 볼 수가 없어요 여러분. 객관적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세계만 인지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험하는 세계는 다 주관적인 세계예요. 남하고 대화해 보니까 남도 나랑 유사한 걸 경험하는 것 같아서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사는 거지 사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 우주가 어떤 배경음악이고 어떤 세계로 보이는지 여러분 몰라요. 아마 다른 사람 마음으로 접속하면 배경음악부터 다를 수 있어요. 뭐 이렇게 우울해. | ||
6:01 | 6:01 | ||
그렇죠. 우울한 분의 법계는 같은 걸 봐도 우울해요. “하늘 너무 파랗지 않냐?” “하늘까지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내 마음이 온 우주에 다 그 우주를 물들이는 거죠. 왜? 그 사람 법계니까. 배경음악이 바뀌어요. 딱 우울해지면 바뀝니다. 진짜 제가 예전에 큰 시련당하니까 진짜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걸 경험했어요. 말로만 들었거든요. 하늘이 노랗더라. 제 법계에서는 하늘이 진짜 노랗더라고요. 신기하죠.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경험하는 육근의 세계가 여러분이 사는 세계 전부고요. 이거는 그냥 최근에 그 저희 학당 회원분이 번역하신 책 “당신이 우주다” 양자물리학의 대안으로 제시한 그 양자 물리학자와 디팍 초프라라는 그 의사분하고 뭐죠. 미나스 카파토스 이름 어려우신데 저도 한번 만나서 대화 나눴던 분인데 이분은, 이분들은 둘 다 힌두교 | 그렇죠. 우울한 분의 법계는 같은 걸 봐도 우울해요. “하늘 너무 파랗지 않냐?” “하늘까지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내 마음이 온 우주에 다 그 우주를 물들이는 거죠. 왜? 그 사람 법계니까. 배경음악이 바뀌어요. 딱 우울해지면 바뀝니다. 진짜 제가 예전에 큰 시련당하니까 진짜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걸 경험했어요. 말로만 들었거든요. 하늘이 노랗더라. 제 법계에서는 하늘이 진짜 노랗더라고요. 신기하죠.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경험하는 육근의 세계가 여러분이 사는 세계 전부고요. 이거는 그냥 최근에 그 저희 학당 회원분이 번역하신 책 “당신이 우주다” 양자물리학의 대안으로 제시한 그 양자 물리학자와 디팍 초프라라는 그 의사분하고 뭐죠. 미나스 카파토스 이름 어려우신데 저도 한번 만나서 대화 나눴던 분인데 이분은, 이분들은 둘 다 힌두교 | ||
7:02 | 7:02 | ||
기반이에요. 간단하게 법공을 전개해 버립니다. 순수의식에서 온 우주가 나왔고 우리가 경험한 우주는 1인 우주다. 인간적 우주다. 그러니까 인간 중에서도 개인적인 주관적 우주죠. 내가 참여해서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그래서 각자가 참여해서 경험하는 우주를 만들어서 경험하기 때문에 인간적 우주라고 하시고 참여 우주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그 책에서. 그래서 과학적으로도 지당한 얘기죠. 이게 제일 지당한 과학적인 얘기입니다. 과학이 말하는 것도 상상이에요. 뭐냐면 모든 과학자들은요 나 밖에 객관적 시공간이 있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인간 밖에 객관적 시공간이 있고 우주에 인간이 우연히 태어나서 그걸 인식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금 불교는 안 그래요. 불교가 더 팩트예요. 여러분이 경험하신 거 갖고 얘기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우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 기반이에요. 간단하게 법공을 전개해 버립니다. 순수의식에서 온 우주가 나왔고 우리가 경험한 우주는 1인 우주다. 인간적 우주다. 그러니까 인간 중에서도 개인적인 주관적 우주죠. 내가 참여해서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그래서 각자가 참여해서 경험하는 우주를 만들어서 경험하기 때문에 인간적 우주라고 하시고 참여 우주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그 책에서. 그래서 과학적으로도 지당한 얘기죠. 이게 제일 지당한 과학적인 얘기입니다. 과학이 말하는 것도 상상이에요. 뭐냐면 모든 과학자들은요 나 밖에 객관적 시공간이 있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인간 밖에 객관적 시공간이 있고 우주에 인간이 우연히 태어나서 그걸 인식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금 불교는 안 그래요. 불교가 더 팩트예요. 여러분이 경험하신 거 갖고 얘기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우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 ||
8:02 | 8:02 | ||
객관적 시간이 있다고요. 보신 적이 있어요. 객관적 공간이요 객관적으로 지금 이 컵이 있는 거 같으세요.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여러분은 확인할 길이 없다. 왜? 이미 이 컵을 인지한 순간 여러분은 여러분 우주에 등장한 컵이니까 인지가 된 거기 때문에 여러분은 객관적인 컵을 말할 수가 없어요. 아시겠죠. 이게 전제예요. 앞으로 과학자들도 이걸 전제해야 됩니다. 이걸 전제하지 않고 얘기해요. 물리학자들도 다. 객관적 우주가 마치 있는 것 마냥. 자기는 그 뭐 벗어나서 본 거 마냥. 그 논리의 한계를 계속 지적하는 게 불교가 해온 작업입니다. 그건 다 언어뿐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경험하는 객관적 세계라는 건 사실은 알고 보면 언어로만 존재합니다. 언어로만. 여러분 그런데 그럼 여러분이 실제 경험하는 거 있잖아요. 자 | 객관적 시간이 있다고요. 보신 적이 있어요. 객관적 공간이요 객관적으로 지금 이 컵이 있는 거 같으세요.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여러분은 확인할 길이 없다. 왜? 이미 이 컵을 인지한 순간 여러분은 여러분 우주에 등장한 컵이니까 인지가 된 거기 때문에 여러분은 객관적인 컵을 말할 수가 없어요. 아시겠죠. 이게 전제예요. 앞으로 과학자들도 이걸 전제해야 됩니다. 이걸 전제하지 않고 얘기해요. 물리학자들도 다. 객관적 우주가 마치 있는 것 마냥. 자기는 그 뭐 벗어나서 본 거 마냥. 그 논리의 한계를 계속 지적하는 게 불교가 해온 작업입니다. 그건 다 언어뿐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경험하는 객관적 세계라는 건 사실은 알고 보면 언어로만 존재합니다. 언어로만. 여러분 그런데 그럼 여러분이 실제 경험하는 거 있잖아요. 자 | ||
9:04 | 9:04 | ||
여러분이 실제 경험하는 건 육근 작용이에요. 근데 육근 작용이란 말은 없다는 거죠. 육근 작용을 경험해요. 그런데 육근작용 경험한 거에다가 언어를 딱 붙이는 순간 이게 지금 과학자들도 또 속는 게 뭐냐면 자기가 경험하는 건요 육근이 연기법으로, 연기적으로 쉼 없이 인과작용, 인과 연기 속에서 경험된다는 겁니다. 나도 계속 생각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감정이 작동하고 보고 듣고 맛보고가 쉴 새 없이 지나갑니다. 여러분 저기 남방불교에서 오늘 남방불교 스님들 할 텐데 위빠사나 수련한다고 사띠라고 하죠. 위빠사나는 사실은 좀 안 맞는 말이에요. 이제 지혜고 사실 실제 그분들이 제일 강조하는 거는 사띠에요. 사띠. 알아차리기 수련. 육근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 육근 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감정을 | 여러분이 실제 경험하는 건 육근 작용이에요. 근데 육근 작용이란 말은 없다는 거죠. 육근 작용을 경험해요. 그런데 육근작용 경험한 거에다가 언어를 딱 붙이는 순간 이게 지금 과학자들도 또 속는 게 뭐냐면 자기가 경험하는 건요 육근이 연기법으로, 연기적으로 쉼 없이 인과작용, 인과 연기 속에서 경험된다는 겁니다. 나도 계속 생각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감정이 작동하고 보고 듣고 맛보고가 쉴 새 없이 지나갑니다. 여러분 저기 남방불교에서 오늘 남방불교 스님들 할 텐데 위빠사나 수련한다고 사띠라고 하죠. 위빠사나는 사실은 좀 안 맞는 말이에요. 이제 지혜고 사실 실제 그분들이 제일 강조하는 거는 사띠에요. 사띠. 알아차리기 수련. 육근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 육근 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감정을 | ||
10:02 | 10:02 | ||
몸의 오감 작용을 계속 알아차리는 거예요. 알아차리다 보면 뭘 알겠어요. 이 알아차린다는 게 몰입이에요. 몰입해서 알아차려야 되거든요. 그럼 제 책 몰입책에 몰입 4단계에 도달하면 알아차림이 딱 몰입이 잘 되면 뭐가 될까요? 제 책에 뭐라고 돼 있죠. 몰입책에. 몰입 4단계. 1단계는요 알아차리려고 노력을 해요. 근데 잡념이 심해요. 2단계는 잡념보다는 알아차리는 힘이 커져요. 몰입의 힘이 커져요. 왜 알아차림이 몰입이냐. 두 개는 다른데 같은 거예요. 몰입은요 몰입을 이렇게 번역해 볼까요. 다른 식으로 마음 챙김이라는 거예요. 마음을 하나로 내가 모아주는 거죠. 자 마음의 돋보기를 딱 드는 게 몰입이라는 행위입니다. “나는 다른 거 안 보겠어. 요놈만 보겠어.” 돋보기를 이걸 딱 비춰요. 이게 몰입의 행위예요. 몰입이라는 거는 마음챙김이라는 건 내 마음에 포커스를 여기다 두겠다고 딱 | 몸의 오감 작용을 계속 알아차리는 거예요. 알아차리다 보면 뭘 알겠어요. 이 알아차린다는 게 몰입이에요. 몰입해서 알아차려야 되거든요. 그럼 제 책 몰입책에 몰입 4단계에 도달하면 알아차림이 딱 몰입이 잘 되면 뭐가 될까요? 제 책에 뭐라고 돼 있죠. 몰입책에. 몰입 4단계. 1단계는요 알아차리려고 노력을 해요. 근데 잡념이 심해요. 2단계는 잡념보다는 알아차리는 힘이 커져요. 몰입의 힘이 커져요. 왜 알아차림이 몰입이냐. 두 개는 다른데 같은 거예요. 몰입은요 몰입을 이렇게 번역해 볼까요. 다른 식으로 마음 챙김이라는 거예요. 마음을 하나로 내가 모아주는 거죠. 자 마음의 돋보기를 딱 드는 게 몰입이라는 행위입니다. “나는 다른 거 안 보겠어. 요놈만 보겠어.” 돋보기를 이걸 딱 비춰요. 이게 몰입의 행위예요. 몰입이라는 거는 마음챙김이라는 건 내 마음에 포커스를 여기다 두겠다고 딱 | ||
11:03 | 11:03 | ||
정한 겁니다. 이게 몰입이고 이 몰입이 왜 그대로 알아차림이 되느냐. 알아차림은요 원래 존재해요. 알아차림은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알아차림은 태양빛이면 몰입은 돋보기예요. 그래서 마음챙김은 돋보기고요 알아차림은요 태양빛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뭔가에 대해서 포커스만 어디 두느냐 예요. 포커스를 지금 그래서 스님들이 주장자 들고 “이거 보라”고 하는 겁니다. 자 제 주먹 보세요. 여러분 알아차림은 원래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한테 변화를 준 거는 마음 챙김의 대상만 바꿔준 거예요. 제 주먹을 보세요. 주먹에 포커스를 두세요. 여기다 몰입해 보세요. 다 같은 소리죠. 여러분은 마음을 이쪽에다 몰아줬을 뿐이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하신 거 있어요 지금? 아는 능력은 원래 있으시죠. 알려고 노력하시지는 않죠. 뭐 하려고 노력해요. 이걸 보려고 노력하시는 | 정한 겁니다. 이게 몰입이고 이 몰입이 왜 그대로 알아차림이 되느냐. 알아차림은요 원래 존재해요. 알아차림은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알아차림은 태양빛이면 몰입은 돋보기예요. 그래서 마음챙김은 돋보기고요 알아차림은요 태양빛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뭔가에 대해서 포커스만 어디 두느냐 예요. 포커스를 지금 그래서 스님들이 주장자 들고 “이거 보라”고 하는 겁니다. 자 제 주먹 보세요. 여러분 알아차림은 원래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한테 변화를 준 거는 마음 챙김의 대상만 바꿔준 거예요. 제 주먹을 보세요. 주먹에 포커스를 두세요. 여기다 몰입해 보세요. 다 같은 소리죠. 여러분은 마음을 이쪽에다 몰아줬을 뿐이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하신 거 있어요 지금? 아는 능력은 원래 있으시죠. 알려고 노력하시지는 않죠. 뭐 하려고 노력해요. 이걸 보려고 노력하시는 | ||
12:02 | 12:02 | ||
거죠. 이거 보려고 노력만 하시면 돼요. 마음을 여기다만 두시면 알아차리는 힘은 여러분이 어떤 노력을 안 해도 알아차리고 있거든요. 이게 포인트입니다. 알아차림은요 그래서 이 스님들이 고승들이 깨달으시면 알아차림은 영원하다는 거예요. 태어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이게 죽는다고 사라질지 여러분 모르는 거예요. 죽어봐야 아는 거예요. 그 정도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알아차리는 인식 능력이 있어요. 저는 기절했었는데요 기절했다가도요 기절한 중에도 무의식중에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기절했다는 거 아는 거예요. 깊은 잠을 주무셔도 알아요. 푹 잤네. 어쨌네. 뭐가 있어요. 의식은 없었는데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알아차림이 영원하다는 게 이게 부처님도 강조하신 빛나는 알아차리는 능력, 의식이 있다. | 거죠. 이거 보려고 노력만 하시면 돼요. 마음을 여기다만 두시면 알아차리는 힘은 여러분이 어떤 노력을 안 해도 알아차리고 있거든요. 이게 포인트입니다. 알아차림은요 그래서 이 스님들이 고승들이 깨달으시면 알아차림은 영원하다는 거예요. 태어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이게 죽는다고 사라질지 여러분 모르는 거예요. 죽어봐야 아는 거예요. 그 정도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알아차리는 인식 능력이 있어요. 저는 기절했었는데요 기절했다가도요 기절한 중에도 무의식중에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기절했다는 거 아는 거예요. 깊은 잠을 주무셔도 알아요. 푹 잤네. 어쨌네. 뭐가 있어요. 의식은 없었는데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알아차림이 영원하다는 게 이게 부처님도 강조하신 빛나는 알아차리는 능력, 의식이 있다. | ||
13:03 | 13:03 | ||
무한하더라. 부처님부터 이걸 뭐라고 했죠. 무한하더라. 또 뭐라고 했죠. 무한하다. 특징이 없다. 그러니까 무한한데 빛나더라. 광명하더라. 그럼 특징이 없고 무한한 이 광명한 의식 이걸 지금 우리가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한문으로 표현한 것뿐이에요. 어떤 특징도 없어요. 텅 비어 있어요. 텅 비어 있는데 알아차리고 있어요. 이상한 물건이죠. 이게 한 물건이니 뭐니 막 온갖 모든 종교에서 신성화되고 있는 게 이 존재입니다. 이걸 바로 아셔야 돼요 여러분. 그냥 모든 종교 현상은요 같아요. 인간이 하는 짓거리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여기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불러도요 이슬람하고도 왜 원래 하나인지 아세요. 이슬람이 뭐라고 해도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게 이슬람이 | 무한하더라. 부처님부터 이걸 뭐라고 했죠. 무한하더라. 또 뭐라고 했죠. 무한하다. 특징이 없다. 그러니까 무한한데 빛나더라. 광명하더라. 그럼 특징이 없고 무한한 이 광명한 의식 이걸 지금 우리가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한문으로 표현한 것뿐이에요. 어떤 특징도 없어요. 텅 비어 있어요. 텅 비어 있는데 알아차리고 있어요. 이상한 물건이죠. 이게 한 물건이니 뭐니 막 온갖 모든 종교에서 신성화되고 있는 게 이 존재입니다. 이걸 바로 아셔야 돼요 여러분. 그냥 모든 종교 현상은요 같아요. 인간이 하는 짓거리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여기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불러도요 이슬람하고도 왜 원래 하나인지 아세요. 이슬람이 뭐라고 해도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게 이슬람이 | ||
14:05 | 14:05 | ||
알라를 논하고 있죠. 알라는 공적영지 말고는 알라일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우리 안에. 알라란 말이 결국 하느님이란 말인데 그럼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은 시공 밖에 있어야 돼요. 우리가 경험하는 이 육근의 세계는 철저히 시공 안의 세계입니다. 시공 안이에요. 시공 없는 세계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시공 없는 자리는 여기밖에 없어요. 여기는 시공이 없습니다. 생각도 없어요. 인과도 없어요. 기독교에서도 여기를 신으로 밖에 I AM, 오직 I AM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존재하는 자만 있는 거예요. 존재는 해요. 알아차리곤 있으니까. 알아차림이 존재니까.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외에 I AM 뒤에 뭐가 붙어버리면 육근이 되겠죠. 플러스 알파가 돼서 I AM 뒤에 뭐가 붙어버리면 봤다, 들었다, 맛봤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 알라를 논하고 있죠. 알라는 공적영지 말고는 알라일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우리 안에. 알라란 말이 결국 하느님이란 말인데 그럼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은 시공 밖에 있어야 돼요. 우리가 경험하는 이 육근의 세계는 철저히 시공 안의 세계입니다. 시공 안이에요. 시공 없는 세계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시공 없는 자리는 여기밖에 없어요. 여기는 시공이 없습니다. 생각도 없어요. 인과도 없어요. 기독교에서도 여기를 신으로 밖에 I AM, 오직 I AM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존재하는 자만 있는 거예요. 존재는 해요. 알아차리곤 있으니까. 알아차림이 존재니까.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외에 I AM 뒤에 뭐가 붙어버리면 육근이 되겠죠. 플러스 알파가 돼서 I AM 뒤에 뭐가 붙어버리면 봤다, 들었다, 맛봤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 ||
15:03 | 15:03 | ||
느꼈다, 그렇죠. 나는 들었다, 나는 만졌다. 이 뒤에 이게 안 붙어 버리면 뭐가 돼요. I AM만 딱 남기면. 그래서 그 부처님의 이건 무아선이라니까요. 부처님도 법구경이 이미 얘기하신 거예요. “과거를 모른다 하라. 미래를 모른다 하라. 현재를 모른다 하라. 오직 그러면 열반만 존재할 것이다. 열반의 세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그 열반이 뭐겠어요. 상식이 있으면 조금만 실험해 보시면 알아요. 알아차림밖에는 없다는 거. 열반의 후보자는 알아차림 말고는 없습니다. 왜? 알아차림 말고 다 몰라가 돼요. 여러분이 몰라 해보시면 다 몰라가 돼요. 듣는 것도 접속 끊어지면 못 들어요. 보는 것도요 접속 끊어지면 못 봐요. 못 만져요. 근데 뭐는 있어요? 그 끝에 가도 알아차리곤 있어요. 오늘 얘기해 드릴 아찬차 스님이 견성체험하신 것도요 남방불교 스님인데 결국 열반을 체험한 거죠 이분은. | 느꼈다, 그렇죠. 나는 들었다, 나는 만졌다. 이 뒤에 이게 안 붙어 버리면 뭐가 돼요. I AM만 딱 남기면. 그래서 그 부처님의 이건 무아선이라니까요. 부처님도 법구경이 이미 얘기하신 거예요. “과거를 모른다 하라. 미래를 모른다 하라. 현재를 모른다 하라. 오직 그러면 열반만 존재할 것이다. 열반의 세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그 열반이 뭐겠어요. 상식이 있으면 조금만 실험해 보시면 알아요. 알아차림밖에는 없다는 거. 열반의 후보자는 알아차림 말고는 없습니다. 왜? 알아차림 말고 다 몰라가 돼요. 여러분이 몰라 해보시면 다 몰라가 돼요. 듣는 것도 접속 끊어지면 못 들어요. 보는 것도요 접속 끊어지면 못 봐요. 못 만져요. 근데 뭐는 있어요? 그 끝에 가도 알아차리곤 있어요. 오늘 얘기해 드릴 아찬차 스님이 견성체험하신 것도요 남방불교 스님인데 결국 열반을 체험한 거죠 이분은. | ||
16:02 | 16:02 | ||
견성했다는 게. 그럼 열반을 체험할 때 그 제가 동영상 올려놨죠. 읽어드렸어요. 이분의 체험기 다 사라져요. 시공도 사라져요. 그런데 뭐는 있어요? 아는 자는 있어요. 그래서 아는 거예요 내가. 이 모든 체험한 거를 내가 열반을 체험했다는 걸 아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아라한들이 나는 열반을 체험했고 나는 해탈을 얻었다라는 걸 알아요. 아는 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지 않았다면 중간중간 끊겼다면 아는 놈이 없을 때 뭔 일이 일어났을지 어떻게 알아요. 말이 안 돼요. 증언력이 없습니다. 이 알아차리는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지켜봤기 때문에 증언력이 있는 거예요. 너가 해탈했다라고 여기서 다 인가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우리 안에는 아는 자가 있다. 이거를 참나라고 하면 이제 거품을 뭅니다. “와아.” “그럼 참나라 하지 말고 열반으로 합시다.” 그러면 진정됩니다. “오케이. 오케이.” 그러니까 “아 이거 깨달았다.” 깨달음이 장난인가 하는 거죠. | 견성했다는 게. 그럼 열반을 체험할 때 그 제가 동영상 올려놨죠. 읽어드렸어요. 이분의 체험기 다 사라져요. 시공도 사라져요. 그런데 뭐는 있어요? 아는 자는 있어요. 그래서 아는 거예요 내가. 이 모든 체험한 거를 내가 열반을 체험했다는 걸 아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아라한들이 나는 열반을 체험했고 나는 해탈을 얻었다라는 걸 알아요. 아는 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지 않았다면 중간중간 끊겼다면 아는 놈이 없을 때 뭔 일이 일어났을지 어떻게 알아요. 말이 안 돼요. 증언력이 없습니다. 이 알아차리는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지켜봤기 때문에 증언력이 있는 거예요. 너가 해탈했다라고 여기서 다 인가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우리 안에는 아는 자가 있다. 이거를 참나라고 하면 이제 거품을 뭅니다. “와아.” “그럼 참나라 하지 말고 열반으로 합시다.” 그러면 진정됩니다. “오케이. 오케이.” 그러니까 “아 이거 깨달았다.” 깨달음이 장난인가 하는 거죠. | ||
17:01 | 17:01 | ||
언어 하나 바꿨다고 깨달았냐 못 깨달았냐가 갈립니다. 사탄에서 막 성인이 됐다 마구니가 됐다 바뀝니다. 그러니까 언어가 무섭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얘기만 하고 있어요. 여러분 경험하신 얘기. 지금 본인이 자명하지 찜찜한지 다 판단하실 수 있어요. 알아차림 말고는 후보자 자체도 없다. 왜? 다 육근 작용이기 때문에. 시공도 다 육근으로 느끼거든요. 시공감각이 다 사라지고 진짜 나라는 생각도 사라져야 돼요. 나라는 생각 감정이 다 사라지면 에고도 발붙일 수가 없어요. 에고는 생각이거든요. 에고는 생각이에요. 다만 무의식적인 생각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여러분은 남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그게 에고예요. 여러분의 에고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남과 나를 다르다라고 알고 계실 거예요 기본적으로. 이거는 우주가 인간 낼 때 탑재시켜서 낸 거기 때문에 이거 없는 존재는 사실 살 수가 없죠. | 언어 하나 바꿨다고 깨달았냐 못 깨달았냐가 갈립니다. 사탄에서 막 성인이 됐다 마구니가 됐다 바뀝니다. 그러니까 언어가 무섭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얘기만 하고 있어요. 여러분 경험하신 얘기. 지금 본인이 자명하지 찜찜한지 다 판단하실 수 있어요. 알아차림 말고는 후보자 자체도 없다. 왜? 다 육근 작용이기 때문에. 시공도 다 육근으로 느끼거든요. 시공감각이 다 사라지고 진짜 나라는 생각도 사라져야 돼요. 나라는 생각 감정이 다 사라지면 에고도 발붙일 수가 없어요. 에고는 생각이거든요. 에고는 생각이에요. 다만 무의식적인 생각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여러분은 남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그게 에고예요. 여러분의 에고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남과 나를 다르다라고 알고 계실 거예요 기본적으로. 이거는 우주가 인간 낼 때 탑재시켜서 낸 거기 때문에 이거 없는 존재는 사실 살 수가 없죠. | ||
18:00 | 18:00 | ||
지구의 시공간 안에 접속해 오려면 아이디 하나 파서 와야 돼요. 룰입니다. 그 아이디가 에고예요. 여러분 계정이. 계정이 없으신 거예요. 에고가 없다는 분은 계정이 없는 거기 때문에 쌓이는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공덕도 악업도 쌓일 데가 없어요. 헛사시는 거예요. 존재할 수가 없지만. 있다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에고도 생각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에고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건요 알아차림이라는 우주적인 의식에 빨대를 꽂아서 살아가시는 거예요. 빨대 꽂고 에고, 남과 다른 나라는 생각이 가동되면서 여러분이 존재하신 거예요. 여러분 영혼의 시작은 실질적인 시작은 에고가 존재할 때부터예요. 에고가 없는 나라는 거는 그냥 대아적인 나잖아요. 그럼 우주의식만 있었겠죠.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어요. 여러분 이게 지금 어려운 얘기 하나도 안 | 지구의 시공간 안에 접속해 오려면 아이디 하나 파서 와야 돼요. 룰입니다. 그 아이디가 에고예요. 여러분 계정이. 계정이 없으신 거예요. 에고가 없다는 분은 계정이 없는 거기 때문에 쌓이는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공덕도 악업도 쌓일 데가 없어요. 헛사시는 거예요. 존재할 수가 없지만. 있다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에고도 생각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에고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건요 알아차림이라는 우주적인 의식에 빨대를 꽂아서 살아가시는 거예요. 빨대 꽂고 에고, 남과 다른 나라는 생각이 가동되면서 여러분이 존재하신 거예요. 여러분 영혼의 시작은 실질적인 시작은 에고가 존재할 때부터예요. 에고가 없는 나라는 거는 그냥 대아적인 나잖아요. 그럼 우주의식만 있었겠죠.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어요. 여러분 이게 지금 어려운 얘기 하나도 안 | ||
19:01 | 19:01 | ||
썼죠. 그래서 진짜 불교냐 도교냐 뭐 기독교냐 다 상관없는 소리입니다. 앞으로는 깨달았냐 못 깨달았냐로 가야 돼요. 종교 따지고 있으면 이거 웃긴 거예요. 공부도 잘하지도 못 하는 학원들이 꼭 난리 쳐요. 그러면 “합격생 얼마나 내봤어.” 그럼 말 못 해요. 자 여러분 어느 학원 다니냐가 중요해요? 합격했냐가 중요해요? 합격했냐죠. 합격도 못한 학원이 우리 학원만 나와야 된다고 자꾸 외치고 있으면 웃기는 거죠. 그럼 벽에 좀 걸어보든가 합격생 한번 걸어 보든가. 이겁니다. 중요한 거는 합격했냐 즉 깨달았냐다. 깨달았다는 거는 자 제가 장담하건대 3000년 내에 자료를 다 뒤져도 깨달았다고 할 때는 다 공적영지 깨달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거예요. 똑같은 걸 깨달아요. 알아차리는 의식, 그 의식을 시공을 떠나서 알아차리는 인식만 존재한 이걸 깨달았을 때 어느 | 썼죠. 그래서 진짜 불교냐 도교냐 뭐 기독교냐 다 상관없는 소리입니다. 앞으로는 깨달았냐 못 깨달았냐로 가야 돼요. 종교 따지고 있으면 이거 웃긴 거예요. 공부도 잘하지도 못 하는 학원들이 꼭 난리 쳐요. 그러면 “합격생 얼마나 내봤어.” 그럼 말 못 해요. 자 여러분 어느 학원 다니냐가 중요해요? 합격했냐가 중요해요? 합격했냐죠. 합격도 못한 학원이 우리 학원만 나와야 된다고 자꾸 외치고 있으면 웃기는 거죠. 그럼 벽에 좀 걸어보든가 합격생 한번 걸어 보든가. 이겁니다. 중요한 거는 합격했냐 즉 깨달았냐다. 깨달았다는 거는 자 제가 장담하건대 3000년 내에 자료를 다 뒤져도 깨달았다고 할 때는 다 공적영지 깨달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거예요. 똑같은 걸 깨달아요. 알아차리는 의식, 그 의식을 시공을 떠나서 알아차리는 인식만 존재한 이걸 깨달았을 때 어느 | ||
20:01 | 20:01 | ||
종교에서도 깨달았다고 그래요. 우리 백두산족 경전도 똑같아요. 이걸 신령이라고 그래요. 신령 각성을 못하면 아닌 거예요. 육근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럼 기본값이 달라요. 이 기본값과 이 기본값은 달라요. 이게 모든 철학의 전제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하면 이제 거부하는 분이 있어요. 중관학파 이런 분들은 이거 없다는 거예요. 알아차림도 이 생각으로만 생각해서 알아차림도 대상이 있으면 알아차리고 대상이 지나가면 알아차림이 사라진대요. 그때 뒤통수를 때리면 또 알아차리죠. 이때 또 생겨난 줄 알아요. 이해되세요. “어! 알아차림이 또 생겨났네.” 알아차림이 어디 있다가 생겨났을까요? 그건 몰라요. 그러니까 갑갑한 거예요. 그래서 남방불교 수련을 아무리 해도 아라한이 안 나오는 이유는 알아차림이 열반이라는 걸 모르니까. 모르고 수행을 하면요 미치게 알아차립니다. | 종교에서도 깨달았다고 그래요. 우리 백두산족 경전도 똑같아요. 이걸 신령이라고 그래요. 신령 각성을 못하면 아닌 거예요. 육근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럼 기본값이 달라요. 이 기본값과 이 기본값은 달라요. 이게 모든 철학의 전제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하면 이제 거부하는 분이 있어요. 중관학파 이런 분들은 이거 없다는 거예요. 알아차림도 이 생각으로만 생각해서 알아차림도 대상이 있으면 알아차리고 대상이 지나가면 알아차림이 사라진대요. 그때 뒤통수를 때리면 또 알아차리죠. 이때 또 생겨난 줄 알아요. 이해되세요. “어! 알아차림이 또 생겨났네.” 알아차림이 어디 있다가 생겨났을까요? 그건 몰라요. 그러니까 갑갑한 거예요. 그래서 남방불교 수련을 아무리 해도 아라한이 안 나오는 이유는 알아차림이 열반이라는 걸 모르니까. 모르고 수행을 하면요 미치게 알아차립니다. | ||
21:03 | 21:03 | ||
밥 먹는 거, 손 드는 거, 눈 깜빡이는 거, 부르고 싶은 마음이 이런 의도가 일어나는 것부터 알아차려서 부를 때까지. 알아차리고 서로 경쟁이 붙어요. 난 어디까지 알아차렸다. 난 뭐도 알아차렸다. 뭐도 알아차렸다.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뭐랑 똑같아요. 활주로에서 비행기들이 내가 더 빠르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나는 놈이 없어요. 한 놈도 날지를 않고 내 비행기가 더 빠르다고 자랑하는 격입니다. 즉 열반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 집을 짓고 있는 거예요. 이게 공부 못 하는 학원들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합격생이 없잖아요. 서열을 어떻게 나누냐? 이제 합격이 서열이 아니에요. “몇 년 차야?” 그 안에서 서열을 나눕니다. 뭐라도 나눠야 돼요. 몇 년 차냐? 뭐 되느냐? 어차피 시험장 가면 다 떨어져요 애들은. 다 떨어지지만 그 안에서 서열을 나뉘요. 왜? 나도 여기다 투자한 게 있는데 이 안에서 레벨업은 | 밥 먹는 거, 손 드는 거, 눈 깜빡이는 거, 부르고 싶은 마음이 이런 의도가 일어나는 것부터 알아차려서 부를 때까지. 알아차리고 서로 경쟁이 붙어요. 난 어디까지 알아차렸다. 난 뭐도 알아차렸다. 뭐도 알아차렸다.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뭐랑 똑같아요. 활주로에서 비행기들이 내가 더 빠르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나는 놈이 없어요. 한 놈도 날지를 않고 내 비행기가 더 빠르다고 자랑하는 격입니다. 즉 열반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 집을 짓고 있는 거예요. 이게 공부 못 하는 학원들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합격생이 없잖아요. 서열을 어떻게 나누냐? 이제 합격이 서열이 아니에요. “몇 년 차야?” 그 안에서 서열을 나눕니다. 뭐라도 나눠야 돼요. 몇 년 차냐? 뭐 되느냐? 어차피 시험장 가면 다 떨어져요 애들은. 다 떨어지지만 그 안에서 서열을 나뉘요. 왜? 나도 여기다 투자한 게 있는데 이 안에서 레벨업은 | ||
22:02 | 22:02 | ||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게 에고들이 하는 짓거리예요. 예전 같으면 고시촌 가면 이제 몇 년 차냐? 다릅니다. 장수생들은 거의 합격이 목표가 아닌 분들같이 고시촌에 자연인 같은 존재 있잖아요. 고시촌 사람인 거죠 그냥. 고시촌 주민. 주민이 돼 가지고 살아가세요. 막 다 해박해요. 모르는 게 없어요. 물어보면 다 알아요. 합격 빼곤 다 하신 분들이에요. 물어본 사람들이 합격해서 나가요. 제가 예전에 이런 분들 보면 보살이신가? 그런 거 있잖아요. “모든 고시촌 사람들이 다 합격하기 전까지 나는 합격을 미루고 정보만 주겠다.” 보살이시죠. 보살. 이게 에고가 하는 짓거리가요 다를까요. 종교도 가면 똑같아요. 딱 가면 견성 외에 다른 걸로 레벨을 나눠야 돼요 |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게 에고들이 하는 짓거리예요. 예전 같으면 고시촌 가면 이제 몇 년 차냐? 다릅니다. 장수생들은 거의 합격이 목표가 아닌 분들같이 고시촌에 자연인 같은 존재 있잖아요. 고시촌 사람인 거죠 그냥. 고시촌 주민. 주민이 돼 가지고 살아가세요. 막 다 해박해요. 모르는 게 없어요. 물어보면 다 알아요. 합격 빼곤 다 하신 분들이에요. 물어본 사람들이 합격해서 나가요. 제가 예전에 이런 분들 보면 보살이신가? 그런 거 있잖아요. “모든 고시촌 사람들이 다 합격하기 전까지 나는 합격을 미루고 정보만 주겠다.” 보살이시죠. 보살. 이게 에고가 하는 짓거리가요 다를까요. 종교도 가면 똑같아요. 딱 가면 견성 외에 다른 걸로 레벨을 나눠야 돼요 | ||
23:01 | 23:01 | ||
그럼 뭘로 나누는 게 제일 좋아요. 돈을 많이 내는 정도. 그게 목사도 좋고 다 좋잖아요. 돈 많이 내면 앞쪽으로. 여기(앞자리) 앉으시려면 지금 같은 돈 내셔서는 안 돼요. 지금 앉으신 자리가 천국에서 분양되는 그 아파트의 질의 차이라고, 평수의 차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렇게 몰고 가면 여러분 긴장되시죠. 그러니까 자 이상한 사이비학원일수록 뭘 잘하느냐. 뭘 잘하느냐 어차피 견성은 합격은 없습니다. 출구는 없어요. 이 안에서 얼마나 벗겨 먹을 것이냐. 얼마나 레벨을 정해서 의욕적으로 나오게 만들 것이냐. 흥미를 붙이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안에서 서열 정해 주는 거고 그 서열이 그 사이비 교주한테도 도움 되려면 돈이나 이런 걸로 | 그럼 뭘로 나누는 게 제일 좋아요. 돈을 많이 내는 정도. 그게 목사도 좋고 다 좋잖아요. 돈 많이 내면 앞쪽으로. 여기(앞자리) 앉으시려면 지금 같은 돈 내셔서는 안 돼요. 지금 앉으신 자리가 천국에서 분양되는 그 아파트의 질의 차이라고, 평수의 차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렇게 몰고 가면 여러분 긴장되시죠. 그러니까 자 이상한 사이비학원일수록 뭘 잘하느냐. 뭘 잘하느냐 어차피 견성은 합격은 없습니다. 출구는 없어요. 이 안에서 얼마나 벗겨 먹을 것이냐. 얼마나 레벨을 정해서 의욕적으로 나오게 만들 것이냐. 흥미를 붙이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안에서 서열 정해 주는 거고 그 서열이 그 사이비 교주한테도 도움 되려면 돈이나 이런 걸로 | ||
24:02 | 24:02 | ||
매겨져야지 제일 깔끔하죠.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 서로. 그러니까 그게 다 들어가 보면요 에고의 본성에 다 기반한 겁니다. 어차피 본인도 합격생이 아니에요. 이쪽도 어차피 합격의 길은 없어요. 근데 합격하러 왔잖아요. 합격하는 기분이 나게는 해줘야 될 거 아니에요. 장사가 되려면. 기분 나게 뭐라도 만들어 줘야죠. 뱃지라도 하나 달아주면 그렇게 또 좋아합니다. 이거 얻었다. 이거 한 1억짜리 뱃지, 1억 내야 받는 뱃지, 그럼 거기서 에메랄드 뭐 이렇게 나뉘는 거죠 서로. 인간이 모이면 하는 짓거리는 똑같다. 사바세계라는 게 돌아가는 기본 코드가 같아요. 기본값을 바꾸지 않는 한은 답이 없다. 기본값을 바꾼다는 건 이 자리 알아야 돼요. 알아차림에 딱 접속해 가지고 가끔 접속하는 걸로는 기본값이 안 바뀌니까 완전히 들어앉아 가지고 기본값이 바뀐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래서 교회를 천국이라고 한 거예요. 진짜 원래 교회는 천국이어야 돼요. | 매겨져야지 제일 깔끔하죠.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 서로. 그러니까 그게 다 들어가 보면요 에고의 본성에 다 기반한 겁니다. 어차피 본인도 합격생이 아니에요. 이쪽도 어차피 합격의 길은 없어요. 근데 합격하러 왔잖아요. 합격하는 기분이 나게는 해줘야 될 거 아니에요. 장사가 되려면. 기분 나게 뭐라도 만들어 줘야죠. 뱃지라도 하나 달아주면 그렇게 또 좋아합니다. 이거 얻었다. 이거 한 1억짜리 뱃지, 1억 내야 받는 뱃지, 그럼 거기서 에메랄드 뭐 이렇게 나뉘는 거죠 서로. 인간이 모이면 하는 짓거리는 똑같다. 사바세계라는 게 돌아가는 기본 코드가 같아요. 기본값을 바꾸지 않는 한은 답이 없다. 기본값을 바꾼다는 건 이 자리 알아야 돼요. 알아차림에 딱 접속해 가지고 가끔 접속하는 걸로는 기본값이 안 바뀌니까 완전히 들어앉아 가지고 기본값이 바뀐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래서 교회를 천국이라고 한 거예요. 진짜 원래 교회는 천국이어야 돼요. | ||
25:05 | 25:05 | ||
왜냐면 사바세계에서 핀 연꽃이어야 돼요. 진흙탕에 핀 연꽃. 저 교회만 가면 거기는 다 성령 받은 사람들만 존재한다. 기본값이 다르니까. 절도 원래 뭐여야 돼요. 정토여야 돼요. 절 자체가 정토여야 돼요. 원래 절이라는 건물이 포인트가 아니죠. 불교나 기독교 똑같아요. 기독교도 교회라는 건물이 포인트가 아니에요. 원래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군사 미션 조직이에요. 인적 조직을 말한 거라고요 원래. 그리고 절도 원래 승가라는 거는 인적 조직이에요. 승가 부처님 제자들의 조직을 인적 조직을 승가라고 했지 어떤 절을 지어놓고 승가라고 하지 않았어요. 부처님 때는 숲에서 했지. 절도 없이 했다고요. 나중에 누가 기부해 주니까 정사 같은 수련하는 공간이 생긴 거지. 포인트는 인적 조직이었다.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야 거기가 승가다. 불화(佛畵) 보면 머리 후광(後光) 하나씩 있죠. 후광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이 정토고 불국토고 한 겁니다. | 왜냐면 사바세계에서 핀 연꽃이어야 돼요. 진흙탕에 핀 연꽃. 저 교회만 가면 거기는 다 성령 받은 사람들만 존재한다. 기본값이 다르니까. 절도 원래 뭐여야 돼요. 정토여야 돼요. 절 자체가 정토여야 돼요. 원래 절이라는 건물이 포인트가 아니죠. 불교나 기독교 똑같아요. 기독교도 교회라는 건물이 포인트가 아니에요. 원래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군사 미션 조직이에요. 인적 조직을 말한 거라고요 원래. 그리고 절도 원래 승가라는 거는 인적 조직이에요. 승가 부처님 제자들의 조직을 인적 조직을 승가라고 했지 어떤 절을 지어놓고 승가라고 하지 않았어요. 부처님 때는 숲에서 했지. 절도 없이 했다고요. 나중에 누가 기부해 주니까 정사 같은 수련하는 공간이 생긴 거지. 포인트는 인적 조직이었다.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야 거기가 승가다. 불화(佛畵) 보면 머리 후광(後光) 하나씩 있죠. 후광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이 정토고 불국토고 한 겁니다. | ||
26:04 | 26:04 | ||
절이고 원래. 근데 이거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장사를 해야 돼요. “야 이거 큰일이다. 우리 시주가 줄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장사를 시작해야죠. 방석 이제 여기 방석은 누가 앉을 것인가 이걸 가지고 경쟁을 붙이면 에고들은 또 좋다고 합니다. 목표가 생기거든요 에고들은. 그럼 막 더 열심히 해 가지고 한 레벨 한 레벨 올라가는 거죠. 자녀들더러 게임 좋아하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본인들 하는 게 게임이에요. 아이템 모아서 렙업할려고 막 최선을 다합니다. 있는 돈 없는 돈, 생을 막 바치고 있어요 자기들은. 자식들보다 더 무서워요. 자식들은 그냥 게임 세계지만 여기는 현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어요 렙업할려고. 렙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 가는 거. 정토 가는 거. 그렇게 해서 정토가 가지겠냐고요. 제일 쉬운 법이 이 길입니다. 에고의 모든 본질을 간파하시고 보면 | 절이고 원래. 근데 이거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장사를 해야 돼요. “야 이거 큰일이다. 우리 시주가 줄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장사를 시작해야죠. 방석 이제 여기 방석은 누가 앉을 것인가 이걸 가지고 경쟁을 붙이면 에고들은 또 좋다고 합니다. 목표가 생기거든요 에고들은. 그럼 막 더 열심히 해 가지고 한 레벨 한 레벨 올라가는 거죠. 자녀들더러 게임 좋아하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본인들 하는 게 게임이에요. 아이템 모아서 렙업할려고 막 최선을 다합니다. 있는 돈 없는 돈, 생을 막 바치고 있어요 자기들은. 자식들보다 더 무서워요. 자식들은 그냥 게임 세계지만 여기는 현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어요 렙업할려고. 렙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 가는 거. 정토 가는 거. 그렇게 해서 정토가 가지겠냐고요. 제일 쉬운 법이 이 길입니다. 에고의 모든 본질을 간파하시고 보면 | ||
27:00 | 27:00 | ||
이거밖에 없습니다. 알아차림. 때가 묻지 않아요. 왜? 에고가 여기에 작동을 안 해. 에고가 작동하는지 보세요 진짜로. 몰라 괜찮아 해가지고 알아차림만 남았는데 거기 나라는 게 있는지? 존재는 해요. 신기하죠. 존재는 하는데 아무개 내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본래의 신이고 여러분이 본래 부처라는 말이 가능한 겁니다. 이 자리 안 가보고 얘기하는 건 가짜예요. 이 자리 안 가보고 열반을 논하고 부처를 논하고 뭐 하느님 논하고 신성을 논하고 양심을 논하는 그런 양심은 다 가짜예요. 이 자리 가봐야 그런 우주적인 양심이 뭔지 알아요. 기본값이 바뀌어 버리거든요. 이게 답이다. 이게 포인트다. 그래서 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그대로 열반이고, 번뇌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열반이고 이 자리를 나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참나라고 하는 것뿐이다. | 이거밖에 없습니다. 알아차림. 때가 묻지 않아요. 왜? 에고가 여기에 작동을 안 해. 에고가 작동하는지 보세요 진짜로. 몰라 괜찮아 해가지고 알아차림만 남았는데 거기 나라는 게 있는지? 존재는 해요. 신기하죠. 존재는 하는데 아무개 내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본래의 신이고 여러분이 본래 부처라는 말이 가능한 겁니다. 이 자리 안 가보고 얘기하는 건 가짜예요. 이 자리 안 가보고 열반을 논하고 부처를 논하고 뭐 하느님 논하고 신성을 논하고 양심을 논하는 그런 양심은 다 가짜예요. 이 자리 가봐야 그런 우주적인 양심이 뭔지 알아요. 기본값이 바뀌어 버리거든요. 이게 답이다. 이게 포인트다. 그래서 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그대로 열반이고, 번뇌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열반이고 이 자리를 나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참나라고 하는 것뿐이다. | ||
28:00 | 28:00 | ||
참나란 말에 또 걸리면 안 됩니다. 자 언어가 문제가 있어요. 결국 우리 지금 하는 이 모든 건 언어죠. 근데 언어는 어떤 특징이 있냐면요. 여러분 이번 기회에 언어의 문제점 하나 알고 가시는 게. 이게 중관학파라든가 수많은 이상한 궤변론자들의 그 괴설에 안 빠지는 비결입니다. 언어라는, 언어는 결국 뭔가? 우리가 정의를 해야 돼요. 자 이거를 뭐라고 할까요. 펜. 아니면 뭐 우리가 제일 쉬운 여러분 교과서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뭐라고 정해야죠. 정의를, 정의를 내려야 돼요. 정의는요 이걸 먼저 아셔야 돼요. 논리학적으로 유 개념과 종 개념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거는 종 개념이라는 건요 개별 개념이에요. 개별 개념들인데 개별 개념을 포함하는 게 유개념이에요. 더 커요. 자 요게 A면 요게 B라고 할게요. A 그룹 안에 B 그룹이 있어요. C그룹도 있어요. 그럼 이게 종 개념이에요. 종 | 참나란 말에 또 걸리면 안 됩니다. 자 언어가 문제가 있어요. 결국 우리 지금 하는 이 모든 건 언어죠. 근데 언어는 어떤 특징이 있냐면요. 여러분 이번 기회에 언어의 문제점 하나 알고 가시는 게. 이게 중관학파라든가 수많은 이상한 궤변론자들의 그 괴설에 안 빠지는 비결입니다. 언어라는, 언어는 결국 뭔가? 우리가 정의를 해야 돼요. 자 이거를 뭐라고 할까요. 펜. 아니면 뭐 우리가 제일 쉬운 여러분 교과서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뭐라고 정해야죠. 정의를, 정의를 내려야 돼요. 정의는요 이걸 먼저 아셔야 돼요. 논리학적으로 유 개념과 종 개념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거는 종 개념이라는 건요 개별 개념이에요. 개별 개념들인데 개별 개념을 포함하는 게 유개념이에요. 더 커요. 자 요게 A면 요게 B라고 할게요. A 그룹 안에 B 그룹이 있어요. C그룹도 있어요. 그럼 이게 종 개념이에요. 종 | ||
29:04 | 29:04 | ||
종자 종(種)자입니다. 종류(種類). 합치면 종류가 돼요. 근데 이렇게 나눠 쓴 거예요. 종(種)개념 유(類)개념. 그러면 이 종들간의 차이가 종차(種差)라 그래요. 요걸 아셔야 돼요. 그러면 이게 결국 뭐가 되냐면 지금 유(類)라는 것도 불교적으로 보면 자성이에요. 종(種)들도 다 자성이에요. 종차(種差)라는 것도 다 자성입니다 결국. 그러니까 언어를 쓴다는 건요 이미 자성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자성이라는 건 뭐냐면 자성은 고정 불변하는 어떤 독립된 실체, 이데아라고 하는 것들이에요. 이데아. 여러분 이데아 없이는요 우리가 여러분 일상생활 자체도 못해요 실제로. 뭐냐면 여러분 사람과 개가 다르다고 생각하시죠. 다르다는 걸 알고 계시죠. 그러면 | 종자 종(種)자입니다. 종류(種類). 합치면 종류가 돼요. 근데 이렇게 나눠 쓴 거예요. 종(種)개념 유(類)개념. 그러면 이 종들간의 차이가 종차(種差)라 그래요. 요걸 아셔야 돼요. 그러면 이게 결국 뭐가 되냐면 지금 유(類)라는 것도 불교적으로 보면 자성이에요. 종(種)들도 다 자성이에요. 종차(種差)라는 것도 다 자성입니다 결국. 그러니까 언어를 쓴다는 건요 이미 자성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자성이라는 건 뭐냐면 자성은 고정 불변하는 어떤 독립된 실체, 이데아라고 하는 것들이에요. 이데아. 여러분 이데아 없이는요 우리가 여러분 일상생활 자체도 못해요 실제로. 뭐냐면 여러분 사람과 개가 다르다고 생각하시죠. 다르다는 걸 알고 계시죠. 그러면 | ||
30:01 | 30:01 | ||
그 중관학파 같은 불교학파는 전혀 설명 못 하는 게 있어요. 자성이 없다고만 주장하거든요. 이제 제가 중관학파 달라이라마 쪽의 중관학파를 제일 많이 거론하는 이유가 이 중관학파의 핵심 이론은 무자성(無自性)입니다. 이것만 아시면 돼요. 중관 무자성. 중관은 자성이 없다. 즉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 현상계에는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 자 그럼 이 말이 맞아요. 육근의 세계는 무상하게 연기로 굴러가는데. 같은 말입니다. 인과로 연기한다는 건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거 아닌가요. 불변이 아니다. 연기한다는 서로 상호의존적이니까 독립된 존재가 없다는 얘기죠. 저게 있어서 이게 있으니까. 그럼 해와 달이면 해가 있어 달이 있다. 만약에 낮이 있어 밤이 있다 이러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다는 거죠. 인연에 의해서 존재한다. 그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계속 변한다는 얘기고. | 그 중관학파 같은 불교학파는 전혀 설명 못 하는 게 있어요. 자성이 없다고만 주장하거든요. 이제 제가 중관학파 달라이라마 쪽의 중관학파를 제일 많이 거론하는 이유가 이 중관학파의 핵심 이론은 무자성(無自性)입니다. 이것만 아시면 돼요. 중관 무자성. 중관은 자성이 없다. 즉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 현상계에는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 자 그럼 이 말이 맞아요. 육근의 세계는 무상하게 연기로 굴러가는데. 같은 말입니다. 인과로 연기한다는 건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거 아닌가요. 불변이 아니다. 연기한다는 서로 상호의존적이니까 독립된 존재가 없다는 얘기죠. 저게 있어서 이게 있으니까. 그럼 해와 달이면 해가 있어 달이 있다. 만약에 낮이 있어 밤이 있다 이러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다는 거죠. 인연에 의해서 존재한다. 그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계속 변한다는 얘기고. | ||
31:06 | 31:06 | ||
변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독립적이지 않다. 그럼 실체가 없다. 자 중관학파 말이 현상계만 관찰해 보면 맞아요. 없으니까 실제로. 인연만 있지 인연의 생멸만 있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잖아요. 맞는 거 같죠. 그럼 이데아가 없는 거 같죠. 그렇게 철학이 쉬우면 저기 이데아니 뭐니 하는 게 철학에서 나왔을까요. 왜 나왔을까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태어나서. 태어나서도 아니고 지금 아침에 눈 떠서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이 뭔가 여러분 언어를 붙이지 않고 경험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언어를 붙이지 않고 경험했는데 뭔가 카테고리가 있지 않아요. 근데 경험하는 그 대상도. 내 가족들이 뭔가 가족들이라는 뭔가 카테고리에 있는 거 같고. 사람을 만났으면 사람이라는 뭔가 카테고리가 있는 거 같고. 나는 모르지만 그냥 | 변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독립적이지 않다. 그럼 실체가 없다. 자 중관학파 말이 현상계만 관찰해 보면 맞아요. 없으니까 실제로. 인연만 있지 인연의 생멸만 있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잖아요. 맞는 거 같죠. 그럼 이데아가 없는 거 같죠. 그렇게 철학이 쉬우면 저기 이데아니 뭐니 하는 게 철학에서 나왔을까요. 왜 나왔을까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태어나서. 태어나서도 아니고 지금 아침에 눈 떠서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이 뭔가 여러분 언어를 붙이지 않고 경험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언어를 붙이지 않고 경험했는데 뭔가 카테고리가 있지 않아요. 근데 경험하는 그 대상도. 내 가족들이 뭔가 가족들이라는 뭔가 카테고리에 있는 거 같고. 사람을 만났으면 사람이라는 뭔가 카테고리가 있는 거 같고. 나는 모르지만 그냥 | ||
32:03 | 32:03 | ||
언어를 안 쓰고 경험했더라도. 동물은 동물, 식물은 식물 그렇죠. 물질은 물질, 시간은 시간, 공간은 공간 다 달라요. 이게 자성이에요. 자성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자성은 있어요. 자성이 없는데 왜 우주가 이렇게 천차만별로 펼쳐져요. 자성이 없다는 논리는요 제일 허망한 게 그럼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없는 겁니다. 자성이 없다면. 인연 따라 잠시 이런 모습이다는 말 외에 아무것도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저런 철학은 사실 철학도 아닌 거예요. 중관론 같은 철학은요 철학도 아닌 거예요 그냥. 설명을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요. 뭐만 설명해요. 무상하게 변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철학은 뭘 얘기하냐. 남들이 어떤 철학적 주제를 할 때 까는 역할밖에 못 합니다. “아 이 우주에 뭐 우주의 신이 있는 거 같아.” “자 | 언어를 안 쓰고 경험했더라도. 동물은 동물, 식물은 식물 그렇죠. 물질은 물질, 시간은 시간, 공간은 공간 다 달라요. 이게 자성이에요. 자성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자성은 있어요. 자성이 없는데 왜 우주가 이렇게 천차만별로 펼쳐져요. 자성이 없다는 논리는요 제일 허망한 게 그럼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없는 겁니다. 자성이 없다면. 인연 따라 잠시 이런 모습이다는 말 외에 아무것도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저런 철학은 사실 철학도 아닌 거예요. 중관론 같은 철학은요 철학도 아닌 거예요 그냥. 설명을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요. 뭐만 설명해요. 무상하게 변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철학은 뭘 얘기하냐. 남들이 어떤 철학적 주제를 할 때 까는 역할밖에 못 합니다. “아 이 우주에 뭐 우주의 신이 있는 거 같아.” “자 | ||
33:01 | 33:01 | ||
따져 봅시다. 신이 자성일까요. 자성이 있을까요.” 그런 어려운 얘기 말고도 이걸로 할 수 있어요. 자 그럼 인간 한번 정의 내려 볼까요. 이러고 또 중관 논리 붙여 볼까요. 자 인간을 정의를 내리면 인간이라는 게 종(種)개념이 돼요 이때는. 그럼 이 개념보다 더 크기만 하면 유(類)개념이죠. 얘를 포함하는 개념이면 동물이다(類). 그러니까 보세요. 동물 중에 인간도 있죠. 그렇죠. 그럼 곤충도 있겠죠. 그러면 동물 중에 어떤 동물이에요. 이성적 동물이다. 그럼 이게 종차(種差)예요. 다른 종과의 차별성이에요. 다른 종과의 차별성. 이성적이라는 것도 자성이에요. 동물이란 것도 자성이에요. 구분되는 건 다 자성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독자적인 성질이 있는 건 다 자성이에요. 인간도 자성이에요. 이걸 중관학파가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진리 같지. 그럼 인간이 자성이라면 자성은 | 따져 봅시다. 신이 자성일까요. 자성이 있을까요.” 그런 어려운 얘기 말고도 이걸로 할 수 있어요. 자 그럼 인간 한번 정의 내려 볼까요. 이러고 또 중관 논리 붙여 볼까요. 자 인간을 정의를 내리면 인간이라는 게 종(種)개념이 돼요 이때는. 그럼 이 개념보다 더 크기만 하면 유(類)개념이죠. 얘를 포함하는 개념이면 동물이다(類). 그러니까 보세요. 동물 중에 인간도 있죠. 그렇죠. 그럼 곤충도 있겠죠. 그러면 동물 중에 어떤 동물이에요. 이성적 동물이다. 그럼 이게 종차(種差)예요. 다른 종과의 차별성이에요. 다른 종과의 차별성. 이성적이라는 것도 자성이에요. 동물이란 것도 자성이에요. 구분되는 건 다 자성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독자적인 성질이 있는 건 다 자성이에요. 인간도 자성이에요. 이걸 중관학파가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진리 같지. 그럼 인간이 자성이라면 자성은 | ||
34:03 | 34:03 | ||
고정 불변 독립의 실체인데 인간이 고정 불변 독립의 실체라고 인간이.” 그럼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은 고정 불변 독립의 인간이 없잖아요. 땡 가짜 판명. 무자성. “이성적이라고? 한번 이성이라는 건 영원 이성이어야 되는데 고정 불변 독립이니까. 또 인간이 감성적이면 안 되네.” 땡. “동물이라고 계속 움직일 것 같냐.” 땡. “계속 생명이 있을 것 같냐. 죽을 거 아니냐. 자성 없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게 느껴지세요. 이데아의 세계는요 자성이라는 거는 일단 추상적인 세계에서 기능하는 건데 개별 구체적 세계에다 갖다 붙여 가지고 차원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오류입니다. 여기다 적용해 가지고 없다고 주장하고 없는 걸로 밝혀졌다고 하면 잘못된 거예요. 현실에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언어적으로요 이데아의 세계에 빨대를 꽂은 것뿐이에요 우리는. 근데 이데아의 세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사물을 우리는 구분할 수가 없어요. | 고정 불변 독립의 실체인데 인간이 고정 불변 독립의 실체라고 인간이.” 그럼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은 고정 불변 독립의 인간이 없잖아요. 땡 가짜 판명. 무자성. “이성적이라고? 한번 이성이라는 건 영원 이성이어야 되는데 고정 불변 독립이니까. 또 인간이 감성적이면 안 되네.” 땡. “동물이라고 계속 움직일 것 같냐.” 땡. “계속 생명이 있을 것 같냐. 죽을 거 아니냐. 자성 없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게 느껴지세요. 이데아의 세계는요 자성이라는 거는 일단 추상적인 세계에서 기능하는 건데 개별 구체적 세계에다 갖다 붙여 가지고 차원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오류입니다. 여기다 적용해 가지고 없다고 주장하고 없는 걸로 밝혀졌다고 하면 잘못된 거예요. 현실에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언어적으로요 이데아의 세계에 빨대를 꽂은 것뿐이에요 우리는. 근데 이데아의 세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사물을 우리는 구분할 수가 없어요. | ||
35:05 | 35:05 | ||
근데 인간이 탁월한 겁니다. 탁월한 이성을 갖춰 가지고 인간이요 알아차림의 세계, 불변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정보에 빨대를 꽂아 가지고 언어로 끌어내려 가지고 쓰는 거예요. 이성적 동물이라면 동물이라는 이데아도 현실이 없구요. 인간이란 이데아도 현실이 없구요. 이성이라는 이데아도 현실에 없어요. 근데 우리가 시공간 안에서 무상하게 연기 속에 살아가면서도 이 모든 것들이 알고 보면 불변의 세계에서 다 나온 거라는 걸 안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 못 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게 중관학파예요. 이분들한테는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여러분 이해가 안 되세요. 간단하게 이 알아차림의 세계에 애초에 유식학에서 말하는 불변의 종자가 없다면 왜 이 우주에는 시간과 공간과 이런 인간, 이 모든 물질이 질서정연하게 창조됐을까요. 이 부분을 설명 못 | 근데 인간이 탁월한 겁니다. 탁월한 이성을 갖춰 가지고 인간이요 알아차림의 세계, 불변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정보에 빨대를 꽂아 가지고 언어로 끌어내려 가지고 쓰는 거예요. 이성적 동물이라면 동물이라는 이데아도 현실이 없구요. 인간이란 이데아도 현실이 없구요. 이성이라는 이데아도 현실에 없어요. 근데 우리가 시공간 안에서 무상하게 연기 속에 살아가면서도 이 모든 것들이 알고 보면 불변의 세계에서 다 나온 거라는 걸 안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 못 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게 중관학파예요. 이분들한테는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여러분 이해가 안 되세요. 간단하게 이 알아차림의 세계에 애초에 유식학에서 말하는 불변의 종자가 없다면 왜 이 우주에는 시간과 공간과 이런 인간, 이 모든 물질이 질서정연하게 창조됐을까요. 이 부분을 설명 못 | ||
36:02 | 36:02 | ||
해줍니다. 진화론 같아요. “무상하게 진화하다가 우연히 생겼어. 끝.” “우주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끝.” 그럴 것 같으세요? 아니면 인간이 인간의 어떤 불변의 그 법칙이 있는 거 같으세요? 요 감각 차이에요. 그래서 예전부터 철학자들은 이데아를 바로 얘기한 분들은 다 보편적 신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체험한 사람들은 그 안에 우주적 진리가 있다가 현실화되니까 이 과정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분명히 이 안에 우주적 정보가 있다가, 시공 안에 시공 밖에 있는 정보가 시공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근데 꼭 시공 안에 똑같이 굴러가요. 춘하추동이 펼쳐져요. 근데 춘하추동의 이데아가 어떤 작용을 해서 시공 안에서 꼭 춘하추동을 구현하는지 알 수는 없는데 그러니까 그 성리학자 우리나라 조선 선비들은 이기론(理氣論)으로 설명한 거죠. | 해줍니다. 진화론 같아요. “무상하게 진화하다가 우연히 생겼어. 끝.” “우주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끝.” 그럴 것 같으세요? 아니면 인간이 인간의 어떤 불변의 그 법칙이 있는 거 같으세요? 요 감각 차이에요. 그래서 예전부터 철학자들은 이데아를 바로 얘기한 분들은 다 보편적 신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체험한 사람들은 그 안에 우주적 진리가 있다가 현실화되니까 이 과정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분명히 이 안에 우주적 정보가 있다가, 시공 안에 시공 밖에 있는 정보가 시공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근데 꼭 시공 안에 똑같이 굴러가요. 춘하추동이 펼쳐져요. 근데 춘하추동의 이데아가 어떤 작용을 해서 시공 안에서 꼭 춘하추동을 구현하는지 알 수는 없는데 그러니까 그 성리학자 우리나라 조선 선비들은 이기론(理氣論)으로 설명한 거죠. | ||
37:00 | 37:00 | ||
인의예지의 원리가 기운을 통해서 꼭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연결해 주는 매체가 기(氣)예요. 시공 초월한 세계와 시공 안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게 기(氣)에요. 그래서 이 기가 모든 걸 해결해 줬어요. 서양 같으면 하느님이, 신이 해결해 줬어요. 신이 했다고 그랬어요. 근데 이제 근대철학에 오니까 이거를 해결해야 되니까 복잡한 문제에 봉착한 거죠. 특히 과학계에서는 이제 이런 부분을 배제하고 가버린 거죠. 그런데 이런 과학적 논의랑 중관학파가 참 닮아 있습니다. 불교 안에 있는 정말 과학적인 논리적인 주장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런 걸 하나도 설정 안 하니까 결국 왜 이런 게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말을 안 해줍니다. 다만 오로지 뭐만 외쳐요. “무자성.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는데 왜 동물은 동물로 낳고 식물은 식물로 인간은 인간으로 낳고 그 정보들이 왜 있느냐? 어디서 왔느냐? 이렇게 그럼 서로 다른 규정 속에서 살아가는 건 | 인의예지의 원리가 기운을 통해서 꼭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연결해 주는 매체가 기(氣)예요. 시공 초월한 세계와 시공 안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게 기(氣)에요. 그래서 이 기가 모든 걸 해결해 줬어요. 서양 같으면 하느님이, 신이 해결해 줬어요. 신이 했다고 그랬어요. 근데 이제 근대철학에 오니까 이거를 해결해야 되니까 복잡한 문제에 봉착한 거죠. 특히 과학계에서는 이제 이런 부분을 배제하고 가버린 거죠. 그런데 이런 과학적 논의랑 중관학파가 참 닮아 있습니다. 불교 안에 있는 정말 과학적인 논리적인 주장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런 걸 하나도 설정 안 하니까 결국 왜 이런 게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말을 안 해줍니다. 다만 오로지 뭐만 외쳐요. “무자성.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는데 왜 동물은 동물로 낳고 식물은 식물로 인간은 인간으로 낳고 그 정보들이 왜 있느냐? 어디서 왔느냐? 이렇게 그럼 서로 다른 규정 속에서 살아가는 건 | ||
38:00 | 38:00 | ||
뭐냐? 누가 이 우주를 굴리는 고도의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이 어디 있겠냐? 이 자리에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제 어느 종교나 철학을 막론하고 있습니다. 이 부류가 제가 얘기하는 진짜 철학자들이에요. 이데아의 세계를 논할 수 있어야. 그러면 이 양반들은 이데아가 어디 있어요? 신의 세계에 있어요. 신을 체험해야 돼요. 신을 체험하고. 그래서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같이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 구체적 사물 배후에 보편법칙이 있고 그 보편법칙 배후에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는 여기 있는 거고요. 보세요. 이데아는 정보가 여기 있어요. 원천적으로 인간의 정보가 여기 있으면 현상계에서 인연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져요. 뭔가 인간을 계속 잡아주고 있어요. 그래서 일정한 인간에 관한 모든 법칙들이 발생해요.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건 실제 인간이에요. 그래서 개별 구체적 사물은 인간이고 인간 속에서 관찰되는 보편법칙, 의학적이건 뭐든 심리적이건 법칙들은 그게 보편법칙이고. 그 너머에 | 뭐냐? 누가 이 우주를 굴리는 고도의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이 어디 있겠냐? 이 자리에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제 어느 종교나 철학을 막론하고 있습니다. 이 부류가 제가 얘기하는 진짜 철학자들이에요. 이데아의 세계를 논할 수 있어야. 그러면 이 양반들은 이데아가 어디 있어요? 신의 세계에 있어요. 신을 체험해야 돼요. 신을 체험하고. 그래서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같이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 구체적 사물 배후에 보편법칙이 있고 그 보편법칙 배후에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는 여기 있는 거고요. 보세요. 이데아는 정보가 여기 있어요. 원천적으로 인간의 정보가 여기 있으면 현상계에서 인연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져요. 뭔가 인간을 계속 잡아주고 있어요. 그래서 일정한 인간에 관한 모든 법칙들이 발생해요.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건 실제 인간이에요. 그래서 개별 구체적 사물은 인간이고 인간 속에서 관찰되는 보편법칙, 의학적이건 뭐든 심리적이건 법칙들은 그게 보편법칙이고. 그 너머에 | ||
39:06 | 39:06 | ||
동굴 밖에 나가면M 시공 밖에 나가면 원형의 정보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발상 자체가 너무 어려우시면 형이상학에 되게 취미가 없으신 건데 이런 분들이 딱 즐기기 좋은 게 중관학파인 거예요. 다 깨버리니까. 그래서 평소에 친구들이 자꾸 이데아니 뭐니 하고 나를 놀렸다. 어느 날 내가 중관학파를 들었다 하면 끝난 거죠. “이 새끼들 다 헛지랄하고 있어. 무자성이야 이것들아.” 이게 끝입니다. 제가 대학 때 경험했던 운동권하고 똑같아요. 유물론자들 하고. 제가 대학 때 가면 팜플렛 같은 철학책들 많아요. 뭐 철학의 AB.C 보면 뭔 내용이냐면 딱 이제 양대 세력이 있습니다. 유물론자와 관념론자. 관념론자는 뭐냐? 이데아를 주장한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한다. 유물론자. 오직 이 세계는 변화할 뿐이며 변화하지 않는 건 변한다는 법칙, 변증법 밖에 없다고 한다. 그대로 적용하면 맞아요. 중관학파 | 동굴 밖에 나가면M 시공 밖에 나가면 원형의 정보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발상 자체가 너무 어려우시면 형이상학에 되게 취미가 없으신 건데 이런 분들이 딱 즐기기 좋은 게 중관학파인 거예요. 다 깨버리니까. 그래서 평소에 친구들이 자꾸 이데아니 뭐니 하고 나를 놀렸다. 어느 날 내가 중관학파를 들었다 하면 끝난 거죠. “이 새끼들 다 헛지랄하고 있어. 무자성이야 이것들아.” 이게 끝입니다. 제가 대학 때 경험했던 운동권하고 똑같아요. 유물론자들 하고. 제가 대학 때 가면 팜플렛 같은 철학책들 많아요. 뭐 철학의 AB.C 보면 뭔 내용이냐면 딱 이제 양대 세력이 있습니다. 유물론자와 관념론자. 관념론자는 뭐냐? 이데아를 주장한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한다. 유물론자. 오직 이 세계는 변화할 뿐이며 변화하지 않는 건 변한다는 법칙, 변증법 밖에 없다고 한다. 그대로 적용하면 맞아요. 중관학파 | ||
40:04 | 40:04 | ||
참나, 영원한 거, 하나도 없다. 오직 존재하는 건, 불변하는 건 연기법 밖에 없다. 참나니 뭐니 얘기하는 것들은 다 관념론자다. 다 부정. 끝. 이렇게 보면 티벳 중관학파랑 여기 공산주의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과는 딱 만나 있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 그렇죠. 이쪽 연기법적인 뭐죠. 중관론. 딱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이런 불교의 속아가지고, 이런 불교에 속아서 “참나 없네” 막 이 지랄하면 여러분은 알아차리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하고 계시면 돌아버리는 거예요 선사들이. “부처는 제가 봤는데요. 부처는 없던데요.” 아 부처가 부처가 없다고 하니까 돌아버린 거죠 선사들은. 알아차리는 의식이 부처인데 “내가 다 알아차려 보니까 부처가 없더라고요.” 그러면 여러분 어떤 기분이시겠어요? 그 기분이에요. 그래서 자 | 참나, 영원한 거, 하나도 없다. 오직 존재하는 건, 불변하는 건 연기법 밖에 없다. 참나니 뭐니 얘기하는 것들은 다 관념론자다. 다 부정. 끝. 이렇게 보면 티벳 중관학파랑 여기 공산주의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과는 딱 만나 있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 그렇죠. 이쪽 연기법적인 뭐죠. 중관론. 딱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이런 불교의 속아가지고, 이런 불교에 속아서 “참나 없네” 막 이 지랄하면 여러분은 알아차리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하고 계시면 돌아버리는 거예요 선사들이. “부처는 제가 봤는데요. 부처는 없던데요.” 아 부처가 부처가 없다고 하니까 돌아버린 거죠 선사들은. 알아차리는 의식이 부처인데 “내가 다 알아차려 보니까 부처가 없더라고요.” 그러면 여러분 어떤 기분이시겠어요? 그 기분이에요. 그래서 자 | ||
41:06 | 41:06 | ||
언어의 세계는 따라서 불변의 자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이데아의 세계에 빨대를 꽂지 않으면 언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어화 해놓고 보면 허점이 생긴다. 우리가 경험하는 건 개별 구체적 사물인데 언어는 보편추상적이에요 이미. 요 갭을 이용해서, 이 갭을 공격해 가지고 자성이 없다는 걸 입증하고 뿌듯해 하는 게 중관론이다. 사실은 깨닫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기서. 원래 언어는 이렇게 불확실한 겁니다. 언어는 불변의 세계에 빨대를 꽂아야 되니까 불확실해요. 이해되시죠. 보세요. “저는 인간입니다.” 이미 불확실해요. 인간이란 건 보편 추상적인 거거든요. 여러분 인간을 보신 적 있으세요. 보편 추상적인 인간을 개별 구체적으로 보신 적 있으세요. 이것이 인간이다 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건 맨 이런 사람들이에요. 이런 존재들만 경험했어요. | 언어의 세계는 따라서 불변의 자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이데아의 세계에 빨대를 꽂지 않으면 언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어화 해놓고 보면 허점이 생긴다. 우리가 경험하는 건 개별 구체적 사물인데 언어는 보편추상적이에요 이미. 요 갭을 이용해서, 이 갭을 공격해 가지고 자성이 없다는 걸 입증하고 뿌듯해 하는 게 중관론이다. 사실은 깨닫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기서. 원래 언어는 이렇게 불확실한 겁니다. 언어는 불변의 세계에 빨대를 꽂아야 되니까 불확실해요. 이해되시죠. 보세요. “저는 인간입니다.” 이미 불확실해요. 인간이란 건 보편 추상적인 거거든요. 여러분 인간을 보신 적 있으세요. 보편 추상적인 인간을 개별 구체적으로 보신 적 있으세요. 이것이 인간이다 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건 맨 이런 사람들이에요. 이런 존재들만 경험했어요. | ||
42:01 | 42:01 | ||
근데 누구 만나고 왔냐면 “사람 만나고 왔지.” 뭘 만난 거야? 여러분 사람을 만날 수가 있나요? 이런 거예요. 이 허점을 지적해 가지고 공격해서 다 무상하고 영원한 건 없다. 입증하고 무자성 도장 꽉 찍고 끝내는 게 중관파예요. 그래서 “무자성이니까 어떤 거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다. 끝.”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런 분이면요 부처님은 지금까지 성인으로 존경도 못 받았어요. 소피스트 중에 한 명이 됐겠죠. 알아차림. 빛나는 무한 광명 의식을 얘기했어요. 이 알아차리는 자리 이게 있으니까 우리가 내가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하는 거고. 이게 있으니까 이렇게 시공을 초월한 세계가 있으니까 내가 탐진치의 세계를 떠날 수 있다고 얘기한 거다. 이게 지난 시간까지 한 얘기였죠. 쉬어야 될 것 같죠? | 근데 누구 만나고 왔냐면 “사람 만나고 왔지.” 뭘 만난 거야? 여러분 사람을 만날 수가 있나요? 이런 거예요. 이 허점을 지적해 가지고 공격해서 다 무상하고 영원한 건 없다. 입증하고 무자성 도장 꽉 찍고 끝내는 게 중관파예요. 그래서 “무자성이니까 어떤 거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다. 끝.”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런 분이면요 부처님은 지금까지 성인으로 존경도 못 받았어요. 소피스트 중에 한 명이 됐겠죠. 알아차림. 빛나는 무한 광명 의식을 얘기했어요. 이 알아차리는 자리 이게 있으니까 우리가 내가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하는 거고. 이게 있으니까 이렇게 시공을 초월한 세계가 있으니까 내가 탐진치의 세계를 떠날 수 있다고 얘기한 거다. 이게 지난 시간까지 한 얘기였죠. 쉬어야 될 것 같죠? | ||
43:00 | 43:00 | ||
근데 오늘 되게 중요한 얘기했습니다. 이게 언어 이것도 그냥 말로만 들으면 왜 언어가 문제인지 안 와 닿아요. 언어는 애초에 문제예요. 왜 보편 추상적인 개념들을 갖고 와서 놀아요. 그리고 보편추상적 개념은 불변의 이데아를 전제한 얘기들입니다 사실은. 불변하는 자성을 전제하고 하는 얘기예요. 안 그러면 설명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플라톤의 파이돈 같은 게 설득력이 없는 소크라테스가 영혼불멸론을 주장해요. 왜 설득력이 없냐면요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주장해요. 소크라테스가 죽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막 소크라테스 죽는다고 걱정하니까 “인간 영혼이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화두를 던져요. 뭐라고 얘기해요. 소크라테스가 “영혼은 뭐냐? 속성이 뭐냐?” “살아있는 거죠.” “자 영혼이라는 거는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의식이다. 생명이다. 그러면 살아있는 생명이 죽을 수가 | 근데 오늘 되게 중요한 얘기했습니다. 이게 언어 이것도 그냥 말로만 들으면 왜 언어가 문제인지 안 와 닿아요. 언어는 애초에 문제예요. 왜 보편 추상적인 개념들을 갖고 와서 놀아요. 그리고 보편추상적 개념은 불변의 이데아를 전제한 얘기들입니다 사실은. 불변하는 자성을 전제하고 하는 얘기예요. 안 그러면 설명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플라톤의 파이돈 같은 게 설득력이 없는 소크라테스가 영혼불멸론을 주장해요. 왜 설득력이 없냐면요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주장해요. 소크라테스가 죽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막 소크라테스 죽는다고 걱정하니까 “인간 영혼이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화두를 던져요. 뭐라고 얘기해요. 소크라테스가 “영혼은 뭐냐? 속성이 뭐냐?” “살아있는 거죠.” “자 영혼이라는 거는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의식이다. 생명이다. 그러면 살아있는 생명이 죽을 수가 | ||
44:02 | 44:02 | ||
있냐?” 어떠세요? 머리로는 납득되는데 하나도 안 와 닿죠. “자 지금 나 살아있지 영혼이란 건 살아있다.” 내 생명이라고 하죠. 생명은 살아있는 걸 생명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생명이잖아요. 그럼 살아있는다는 속성은, 그 언어에는 죽음이라는 게 없지 않아요. 고정 불변 독립이죠. 살아있다라는 메시지만, 뜻만 있잖아요. “그럼 영혼은 살아 있겠냐? 죽겠냐?” “살아 있겠네요.” 제자들이 마지못해 동의를 하면 계속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데요. 좀 위로 받으시는 게 있나요? 그냥 죽을 것 같은데? 뭔 말인지 아시겠죠. 개별 구체적 세계에서는 죽을 것 같은데 보편 추상적 개념을 갖고 와 가지고 “내가 살아있냐? 죽어있냐?” “살아계시죠.” “자 그럼 나의 속성은 살아 있다는 거 아니냐.” “네.” “그럼 살아있다는 거는 계속 살아 있지 않겠냐.” 왜냐하면 정의 자체가 | 있냐?” 어떠세요? 머리로는 납득되는데 하나도 안 와 닿죠. “자 지금 나 살아있지 영혼이란 건 살아있다.” 내 생명이라고 하죠. 생명은 살아있는 걸 생명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생명이잖아요. 그럼 살아있는다는 속성은, 그 언어에는 죽음이라는 게 없지 않아요. 고정 불변 독립이죠. 살아있다라는 메시지만, 뜻만 있잖아요. “그럼 영혼은 살아 있겠냐? 죽겠냐?” “살아 있겠네요.” 제자들이 마지못해 동의를 하면 계속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데요. 좀 위로 받으시는 게 있나요? 그냥 죽을 것 같은데? 뭔 말인지 아시겠죠. 개별 구체적 세계에서는 죽을 것 같은데 보편 추상적 개념을 갖고 와 가지고 “내가 살아있냐? 죽어있냐?” “살아계시죠.” “자 그럼 나의 속성은 살아 있다는 거 아니냐.” “네.” “그럼 살아있다는 거는 계속 살아 있지 않겠냐.” 왜냐하면 정의 자체가 | ||
45:03 | 45:03 | ||
살아 있다는 거니까. 영혼은 살아 있어야죠. 영혼은 살아서 그 생각 감정을 느끼는 존재잖아요. 살아 있어요. “그럼 네가 이미 못 죽게 했네.” 이제 이런 거죠. 이런 식 논리가 파이돈에 나옵니다. 들으시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시는 건 이거예요. 그런 논리를 깨려고 나온 게 중관입니다. “그거 말장난이다. 존재하는 건 다 생멸할 뿐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이런 반박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지 소크라테스도 방편이고 중관론도 방편으로 봐야지 저기에 목을 매면 안 됩니다. 그럼 납득이 안 되실 거예요. 이게 신기한 게요 여러분이 철학을 알건 모르건 법을 알건 모르건 뭐 철알못(철학 알지도 못하는 사람) 법알못(정치 알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도 제 얘기 들으시면 찜찜하다는 거 알아요. 설득이 안 된다는 거 아시죠. 여러분 안에 신성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신성이 있지 않고 | 살아 있다는 거니까. 영혼은 살아 있어야죠. 영혼은 살아서 그 생각 감정을 느끼는 존재잖아요. 살아 있어요. “그럼 네가 이미 못 죽게 했네.” 이제 이런 거죠. 이런 식 논리가 파이돈에 나옵니다. 들으시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시는 건 이거예요. 그런 논리를 깨려고 나온 게 중관입니다. “그거 말장난이다. 존재하는 건 다 생멸할 뿐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이런 반박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지 소크라테스도 방편이고 중관론도 방편으로 봐야지 저기에 목을 매면 안 됩니다. 그럼 납득이 안 되실 거예요. 이게 신기한 게요 여러분이 철학을 알건 모르건 법을 알건 모르건 뭐 철알못(철학 알지도 못하는 사람) 법알못(정치 알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도 제 얘기 들으시면 찜찜하다는 거 알아요. 설득이 안 된다는 거 아시죠. 여러분 안에 신성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신성이 있지 않고 | ||
46:06 | 46:06 | ||
그 신성 안에 보편적 진리에 대한 기준이 없으시다면 제 얘기 듣고 “그게 뭐가 문제죠.” 이런 분도 있으셔야 돼요. 이해되세요. 왜 똑같이 다 찜찜하다고 느끼죠? 보편적 기준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본유종자(本有種子)가 있어요 여러분 안에는. 여러분의 의식 안에는 불변의 종자가 있어요. 그게 이데아예요. 이런 얘기하면 벌써 형이상학적이 돼 버리잖아요. 석가모니가 이런 게 싫어서 형이하학적으로 얘기해 놨더니 어떤 문제가 생겼냐면 지나친 형이하학이 불교라는, 형이하학적 불교론이 등장해 버린 거예요. 연기법만을 불교로 아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가 결국 열반에 도달할 수 없는 길이 돼 버린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가 열반에 도달했다면 끌어내리기만 하는 거예요. “네가 참나를 깨달았다고. 참나라 함은 영원한 난데 너가 영원하지 않다고. 나라 함은 모름지기 오온인데 오온이 | 그 신성 안에 보편적 진리에 대한 기준이 없으시다면 제 얘기 듣고 “그게 뭐가 문제죠.” 이런 분도 있으셔야 돼요. 이해되세요. 왜 똑같이 다 찜찜하다고 느끼죠? 보편적 기준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본유종자(本有種子)가 있어요 여러분 안에는. 여러분의 의식 안에는 불변의 종자가 있어요. 그게 이데아예요. 이런 얘기하면 벌써 형이상학적이 돼 버리잖아요. 석가모니가 이런 게 싫어서 형이하학적으로 얘기해 놨더니 어떤 문제가 생겼냐면 지나친 형이하학이 불교라는, 형이하학적 불교론이 등장해 버린 거예요. 연기법만을 불교로 아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가 결국 열반에 도달할 수 없는 길이 돼 버린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가 열반에 도달했다면 끌어내리기만 하는 거예요. “네가 참나를 깨달았다고. 참나라 함은 영원한 난데 너가 영원하지 않다고. 나라 함은 모름지기 오온인데 오온이 | ||
47:00 | 47:00 | ||
영원하지 않다고.” 그럼 이상하잖아요. “그렇지. 생각 감정 오감은 무상한데 따라서 나라는 건 영원할 수가 없다. 근데 참나라고. 그 말은 거짓이다. 무자성. 따라서 너는 참나가 없다.” 그럼 납득 되세요. 깨어있는데 계속. 참나가 계속 느껴지는데. “그러네. 내가 없는 걸 느꼈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사죄하고 끝내실 거예요? 뭐 이상하죠. 이런 것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 지금 불교가 겪는 문제들을 제가 진단해 본 것뿐입니다. 중관론이나 참나론자들이 서로 다 알아야 될 부분들. 오늘 여기까지 하고 잠깐 쉬고, 잠깐 쉬고 진도 나갈게요. | 영원하지 않다고.” 그럼 이상하잖아요. “그렇지. 생각 감정 오감은 무상한데 따라서 나라는 건 영원할 수가 없다. 근데 참나라고. 그 말은 거짓이다. 무자성. 따라서 너는 참나가 없다.” 그럼 납득 되세요. 깨어있는데 계속. 참나가 계속 느껴지는데. “그러네. 내가 없는 걸 느꼈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사죄하고 끝내실 거예요? 뭐 이상하죠. 이런 것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 지금 불교가 겪는 문제들을 제가 진단해 본 것뿐입니다. 중관론이나 참나론자들이 서로 다 알아야 될 부분들. 오늘 여기까지 하고 잠깐 쉬고, 잠깐 쉬고 진도 나갈게요. | ||
47:48 | 47:48 | ||
2024년 3월 11일 (월) 15:04 기준 최신판
| 진여와 열반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 51 | 52 | 53 | 54 | 55 | 56 | 57 | 58 | 59 | 60 |
| 61 | 62 | 63 | 64 | 65 | 66 | 67 | 68 | 69 | 70 |
| 71 | 72 | 73 | 74 | 75 | 76 | 77 | 78 | 79 | 80 |
| 81 | 82 | 83 | 84 | 85 | 86 | 87 | 88 | 89 | 90 |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百 |
| 부제 | 열반은 순수한 알아차림이다! |
| 강의일자 | 2023. 05. 13. 土. |
| 게시일자 | 2023. 08. 12. |
| 동영상 길이 | 48:03 |
| 강의 중 인용 도서 | - |
|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nkP6-rvXqVM |
0:07
불교도 우리가 이렇게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지금 공부할 때가 아니에요. 불교를 넘어서야죠. 뭐냐면? 넘어선다는 것은 부처님이 “내가 해 놓은 말 2000년이고 3000년이고 언젠가 이해해 봐라” 하고 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그 자리에서 “듣고 바로 써먹으라”고 말을 했을까요? 지금 불교를요 바로 이해하고 써먹지 못 하면 뭐 잘못된 거예요. 그걸 못 가르치면 지금 절이 잘못된 거고요. 똑같아요. 기독교도 성령을 바로 성령 받아라. 예수님은 제자들 앉혀놓고 바람 불면서 “성령 받아라” 그랬다고요. 그리고 “땅끝까지 가가지고 너가 본보기가 되어줘라. 성령 받은 사람의 본보기가 돼주라”고 그랬어요. 이게 다예요.
1:01
제가 여러분한테 얘기해도 그러지 않을까요. “참나 깨달으세요. 참나랑 함께 사는 삶이 어떤 건지 그 자명한 깨어있는 삶이 어떤 건지 다른 사람들한테 본보기가 돼주세요.” “제가 지금 한 얘기가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한 2000년 정도 더 연구해 보세요”라고 얘기하면 제가 실패한 거예요. 대화 실패. 말을 했는데 전달이 안 됐으면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여러분 잘못은 이해를 못 하면 그건 이제 듣는 사람 잘못도 있겠지만 아무도 이해를 못 시켰다면 제 잘못도 커요. 그렇죠. 말 어떻게 했길래 2000년간 아무도 말을 이해를 못 해요. 그 정도 말은 안 하니만 못한 말 아니에요.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불교를 가지고 아직도 연구를 하겠다. 뭐 무슨 학설을 더 파보겠다. 학설을 만들어 보겠다. 이 지랄하고 있으면 망한 거예요. 망한 거. 그냥 인류는 망한 거예요. 부처님이 다시 와도 답이 없어요. 그 지경이면 그냥 부처님 쪽도
2:04
포기할 거예요. “아 인류는 아닌 거 같다.” 예수님도 “아 그냥 천년왕국은 없던 걸로. 인류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이럴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인류가 말이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렇지 말이 되는 소리예요. 지금 예수님이 계시다면 여러분 얘기할 때 못 알아먹게 얘기하겠냐고요. 근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뭔가 이상한 거죠. 불교도 정말 간단합니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데 엄청나게 어려워져 버렸고 복잡해져서 제가 또 이런 강의를 해야 되잖아요. 저는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냥 제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K 철학의 제일 핵은 뭐예요. 그냥 홍익학당 철학이에요 핵심이 뭐야 몰괜자. 이거 어디 없잖아요. 몰괜자. 접속 인가 맡김. 실천지침 14조 끝. 뭐 더 할 얘기가
3:02
뭐가 있어요. 저도 이거밖에 공부 안 하는데 뭘 하겠어요. 거기다 그 호흡수련. 참나 각성, 호흡수련, 양심성찰이면 끝이에요. 사실 이게 K 철학입니다. 무슨 갑자기 뭐 되도 않는 참전계경 들고 오고 막 이상하잖아요. 왜냐면 족보를 의심하니까 들고 오는 거지 이게 뭔 의미가 있냐고요. 사실 지금 몰괜자 바로 알아들을 말. 몰라 괜찮아 자명. 참나 접속했냐? 했다. 거기서 자명하더냐? 인가해보니까 자명하더라. 양심이란 게 자명하더라. 욕심은 찜찜하더라. 자명하게 양심 따라 산다. 맡겼다. 끝. 어느 철학 어느 종교 와도 이거 없으면 그거 가짜 종교예요. 앞으로 천년만년 뒤에도 수많은 종교가 나오겠지만 제가 말한 몰괜자, 접속 인가 맡김, 14조 실천지침 없다면 고등종교가 아닐 거고요.
4:01
요게 있다면 고등종교일 겁니다. 그럼 끝이죠. 여러분은 앞으로 나올 무수한 종교도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본질을 알고 있으니까. 과거에 있었던 무수한 종교도 그 본질을 알고 계세요. 근데 K 철학인데 가장 우리 민족적인 건데 우리끼리 신명나는 건데 전 세계인이 같이 즐길 수 있어요. 왜? 진리는 하나니까. 끝인 거예요. 가장 민족적인 K 철학이 가장 전 세계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라면 끝난 거예요. 인류도 복 받는 거예요. 다른 종교는 더럽게 설명 못 하더니 여기는 너무 쉽다. K 철학, K 붙으니까 쏙쏙 들어오네. 그냥 이해가 쉽고 보면 자명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끝. 이게 중요한 겁니다. 포인트는 이겁니다. 아직 진도 안 나갔어요. 여기서부터 나갈게요. 진도 시작. 불교도 쉽다. 여러분 불교하면요 뭐가 떠오르고 진여와 열반하면 엄한 게 막 떠오르시면 안 돼요. 진여와 열반은요
5:04
육근의 세계에,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내가 살아가는 VR의 세계, 매트릭스의 세계, 내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어요. 여러분 무섭지 않아요.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육근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경험하는 건 다 여러분 의식의 작용입니다. 내가 보는 세계만 볼 수 있지 객관적 세계는 볼 수가 없어요 여러분. 객관적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세계만 인지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험하는 세계는 다 주관적인 세계예요. 남하고 대화해 보니까 남도 나랑 유사한 걸 경험하는 것 같아서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사는 거지 사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 우주가 어떤 배경음악이고 어떤 세계로 보이는지 여러분 몰라요. 아마 다른 사람 마음으로 접속하면 배경음악부터 다를 수 있어요. 뭐 이렇게 우울해.
6:01
그렇죠. 우울한 분의 법계는 같은 걸 봐도 우울해요. “하늘 너무 파랗지 않냐?” “하늘까지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내 마음이 온 우주에 다 그 우주를 물들이는 거죠. 왜? 그 사람 법계니까. 배경음악이 바뀌어요. 딱 우울해지면 바뀝니다. 진짜 제가 예전에 큰 시련당하니까 진짜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걸 경험했어요. 말로만 들었거든요. 하늘이 노랗더라. 제 법계에서는 하늘이 진짜 노랗더라고요. 신기하죠.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경험하는 육근의 세계가 여러분이 사는 세계 전부고요. 이거는 그냥 최근에 그 저희 학당 회원분이 번역하신 책 “당신이 우주다” 양자물리학의 대안으로 제시한 그 양자 물리학자와 디팍 초프라라는 그 의사분하고 뭐죠. 미나스 카파토스 이름 어려우신데 저도 한번 만나서 대화 나눴던 분인데 이분은, 이분들은 둘 다 힌두교
7:02
기반이에요. 간단하게 법공을 전개해 버립니다. 순수의식에서 온 우주가 나왔고 우리가 경험한 우주는 1인 우주다. 인간적 우주다. 그러니까 인간 중에서도 개인적인 주관적 우주죠. 내가 참여해서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그래서 각자가 참여해서 경험하는 우주를 만들어서 경험하기 때문에 인간적 우주라고 하시고 참여 우주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그 책에서. 그래서 과학적으로도 지당한 얘기죠. 이게 제일 지당한 과학적인 얘기입니다. 과학이 말하는 것도 상상이에요. 뭐냐면 모든 과학자들은요 나 밖에 객관적 시공간이 있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인간 밖에 객관적 시공간이 있고 우주에 인간이 우연히 태어나서 그걸 인식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금 불교는 안 그래요. 불교가 더 팩트예요. 여러분이 경험하신 거 갖고 얘기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우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8:02
객관적 시간이 있다고요. 보신 적이 있어요. 객관적 공간이요 객관적으로 지금 이 컵이 있는 거 같으세요.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여러분은 확인할 길이 없다. 왜? 이미 이 컵을 인지한 순간 여러분은 여러분 우주에 등장한 컵이니까 인지가 된 거기 때문에 여러분은 객관적인 컵을 말할 수가 없어요. 아시겠죠. 이게 전제예요. 앞으로 과학자들도 이걸 전제해야 됩니다. 이걸 전제하지 않고 얘기해요. 물리학자들도 다. 객관적 우주가 마치 있는 것 마냥. 자기는 그 뭐 벗어나서 본 거 마냥. 그 논리의 한계를 계속 지적하는 게 불교가 해온 작업입니다. 그건 다 언어뿐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경험하는 객관적 세계라는 건 사실은 알고 보면 언어로만 존재합니다. 언어로만. 여러분 그런데 그럼 여러분이 실제 경험하는 거 있잖아요. 자
9:04
여러분이 실제 경험하는 건 육근 작용이에요. 근데 육근 작용이란 말은 없다는 거죠. 육근 작용을 경험해요. 그런데 육근작용 경험한 거에다가 언어를 딱 붙이는 순간 이게 지금 과학자들도 또 속는 게 뭐냐면 자기가 경험하는 건요 육근이 연기법으로, 연기적으로 쉼 없이 인과작용, 인과 연기 속에서 경험된다는 겁니다. 나도 계속 생각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감정이 작동하고 보고 듣고 맛보고가 쉴 새 없이 지나갑니다. 여러분 저기 남방불교에서 오늘 남방불교 스님들 할 텐데 위빠사나 수련한다고 사띠라고 하죠. 위빠사나는 사실은 좀 안 맞는 말이에요. 이제 지혜고 사실 실제 그분들이 제일 강조하는 거는 사띠에요. 사띠. 알아차리기 수련. 육근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 육근 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감정을
10:02
몸의 오감 작용을 계속 알아차리는 거예요. 알아차리다 보면 뭘 알겠어요. 이 알아차린다는 게 몰입이에요. 몰입해서 알아차려야 되거든요. 그럼 제 책 몰입책에 몰입 4단계에 도달하면 알아차림이 딱 몰입이 잘 되면 뭐가 될까요? 제 책에 뭐라고 돼 있죠. 몰입책에. 몰입 4단계. 1단계는요 알아차리려고 노력을 해요. 근데 잡념이 심해요. 2단계는 잡념보다는 알아차리는 힘이 커져요. 몰입의 힘이 커져요. 왜 알아차림이 몰입이냐. 두 개는 다른데 같은 거예요. 몰입은요 몰입을 이렇게 번역해 볼까요. 다른 식으로 마음 챙김이라는 거예요. 마음을 하나로 내가 모아주는 거죠. 자 마음의 돋보기를 딱 드는 게 몰입이라는 행위입니다. “나는 다른 거 안 보겠어. 요놈만 보겠어.” 돋보기를 이걸 딱 비춰요. 이게 몰입의 행위예요. 몰입이라는 거는 마음챙김이라는 건 내 마음에 포커스를 여기다 두겠다고 딱
11:03
정한 겁니다. 이게 몰입이고 이 몰입이 왜 그대로 알아차림이 되느냐. 알아차림은요 원래 존재해요. 알아차림은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알아차림은 태양빛이면 몰입은 돋보기예요. 그래서 마음챙김은 돋보기고요 알아차림은요 태양빛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뭔가에 대해서 포커스만 어디 두느냐 예요. 포커스를 지금 그래서 스님들이 주장자 들고 “이거 보라”고 하는 겁니다. 자 제 주먹 보세요. 여러분 알아차림은 원래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한테 변화를 준 거는 마음 챙김의 대상만 바꿔준 거예요. 제 주먹을 보세요. 주먹에 포커스를 두세요. 여기다 몰입해 보세요. 다 같은 소리죠. 여러분은 마음을 이쪽에다 몰아줬을 뿐이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하신 거 있어요 지금? 아는 능력은 원래 있으시죠. 알려고 노력하시지는 않죠. 뭐 하려고 노력해요. 이걸 보려고 노력하시는
12:02
거죠. 이거 보려고 노력만 하시면 돼요. 마음을 여기다만 두시면 알아차리는 힘은 여러분이 어떤 노력을 안 해도 알아차리고 있거든요. 이게 포인트입니다. 알아차림은요 그래서 이 스님들이 고승들이 깨달으시면 알아차림은 영원하다는 거예요. 태어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이게 죽는다고 사라질지 여러분 모르는 거예요. 죽어봐야 아는 거예요. 그 정도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알아차리는 인식 능력이 있어요. 저는 기절했었는데요 기절했다가도요 기절한 중에도 무의식중에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기절했다는 거 아는 거예요. 깊은 잠을 주무셔도 알아요. 푹 잤네. 어쨌네. 뭐가 있어요. 의식은 없었는데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알아차림이 영원하다는 게 이게 부처님도 강조하신 빛나는 알아차리는 능력, 의식이 있다.
13:03
무한하더라. 부처님부터 이걸 뭐라고 했죠. 무한하더라. 또 뭐라고 했죠. 무한하다. 특징이 없다. 그러니까 무한한데 빛나더라. 광명하더라. 그럼 특징이 없고 무한한 이 광명한 의식 이걸 지금 우리가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한문으로 표현한 것뿐이에요. 어떤 특징도 없어요. 텅 비어 있어요. 텅 비어 있는데 알아차리고 있어요. 이상한 물건이죠. 이게 한 물건이니 뭐니 막 온갖 모든 종교에서 신성화되고 있는 게 이 존재입니다. 이걸 바로 아셔야 돼요 여러분. 그냥 모든 종교 현상은요 같아요. 인간이 하는 짓거리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여기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불러도요 이슬람하고도 왜 원래 하나인지 아세요. 이슬람이 뭐라고 해도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게 이슬람이
14:05
알라를 논하고 있죠. 알라는 공적영지 말고는 알라일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우리 안에. 알라란 말이 결국 하느님이란 말인데 그럼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은 시공 밖에 있어야 돼요. 우리가 경험하는 이 육근의 세계는 철저히 시공 안의 세계입니다. 시공 안이에요. 시공 없는 세계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시공 없는 자리는 여기밖에 없어요. 여기는 시공이 없습니다. 생각도 없어요. 인과도 없어요. 기독교에서도 여기를 신으로 밖에 I AM, 오직 I AM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존재하는 자만 있는 거예요. 존재는 해요. 알아차리곤 있으니까. 알아차림이 존재니까.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외에 I AM 뒤에 뭐가 붙어버리면 육근이 되겠죠. 플러스 알파가 돼서 I AM 뒤에 뭐가 붙어버리면 봤다, 들었다, 맛봤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15:03
느꼈다, 그렇죠. 나는 들었다, 나는 만졌다. 이 뒤에 이게 안 붙어 버리면 뭐가 돼요. I AM만 딱 남기면. 그래서 그 부처님의 이건 무아선이라니까요. 부처님도 법구경이 이미 얘기하신 거예요. “과거를 모른다 하라. 미래를 모른다 하라. 현재를 모른다 하라. 오직 그러면 열반만 존재할 것이다. 열반의 세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그 열반이 뭐겠어요. 상식이 있으면 조금만 실험해 보시면 알아요. 알아차림밖에는 없다는 거. 열반의 후보자는 알아차림 말고는 없습니다. 왜? 알아차림 말고 다 몰라가 돼요. 여러분이 몰라 해보시면 다 몰라가 돼요. 듣는 것도 접속 끊어지면 못 들어요. 보는 것도요 접속 끊어지면 못 봐요. 못 만져요. 근데 뭐는 있어요? 그 끝에 가도 알아차리곤 있어요. 오늘 얘기해 드릴 아찬차 스님이 견성체험하신 것도요 남방불교 스님인데 결국 열반을 체험한 거죠 이분은.
16:02
견성했다는 게. 그럼 열반을 체험할 때 그 제가 동영상 올려놨죠. 읽어드렸어요. 이분의 체험기 다 사라져요. 시공도 사라져요. 그런데 뭐는 있어요? 아는 자는 있어요. 그래서 아는 거예요 내가. 이 모든 체험한 거를 내가 열반을 체험했다는 걸 아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아라한들이 나는 열반을 체험했고 나는 해탈을 얻었다라는 걸 알아요. 아는 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지 않았다면 중간중간 끊겼다면 아는 놈이 없을 때 뭔 일이 일어났을지 어떻게 알아요. 말이 안 돼요. 증언력이 없습니다. 이 알아차리는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지켜봤기 때문에 증언력이 있는 거예요. 너가 해탈했다라고 여기서 다 인가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우리 안에는 아는 자가 있다. 이거를 참나라고 하면 이제 거품을 뭅니다. “와아.” “그럼 참나라 하지 말고 열반으로 합시다.” 그러면 진정됩니다. “오케이. 오케이.” 그러니까 “아 이거 깨달았다.” 깨달음이 장난인가 하는 거죠.
17:01
언어 하나 바꿨다고 깨달았냐 못 깨달았냐가 갈립니다. 사탄에서 막 성인이 됐다 마구니가 됐다 바뀝니다. 그러니까 언어가 무섭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얘기만 하고 있어요. 여러분 경험하신 얘기. 지금 본인이 자명하지 찜찜한지 다 판단하실 수 있어요. 알아차림 말고는 후보자 자체도 없다. 왜? 다 육근 작용이기 때문에. 시공도 다 육근으로 느끼거든요. 시공감각이 다 사라지고 진짜 나라는 생각도 사라져야 돼요. 나라는 생각 감정이 다 사라지면 에고도 발붙일 수가 없어요. 에고는 생각이거든요. 에고는 생각이에요. 다만 무의식적인 생각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여러분은 남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그게 에고예요. 여러분의 에고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남과 나를 다르다라고 알고 계실 거예요 기본적으로. 이거는 우주가 인간 낼 때 탑재시켜서 낸 거기 때문에 이거 없는 존재는 사실 살 수가 없죠.
18:00
지구의 시공간 안에 접속해 오려면 아이디 하나 파서 와야 돼요. 룰입니다. 그 아이디가 에고예요. 여러분 계정이. 계정이 없으신 거예요. 에고가 없다는 분은 계정이 없는 거기 때문에 쌓이는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공덕도 악업도 쌓일 데가 없어요. 헛사시는 거예요. 존재할 수가 없지만. 있다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에고도 생각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에고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건요 알아차림이라는 우주적인 의식에 빨대를 꽂아서 살아가시는 거예요. 빨대 꽂고 에고, 남과 다른 나라는 생각이 가동되면서 여러분이 존재하신 거예요. 여러분 영혼의 시작은 실질적인 시작은 에고가 존재할 때부터예요. 에고가 없는 나라는 거는 그냥 대아적인 나잖아요. 그럼 우주의식만 있었겠죠.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어요. 여러분 이게 지금 어려운 얘기 하나도 안
19:01
썼죠. 그래서 진짜 불교냐 도교냐 뭐 기독교냐 다 상관없는 소리입니다. 앞으로는 깨달았냐 못 깨달았냐로 가야 돼요. 종교 따지고 있으면 이거 웃긴 거예요. 공부도 잘하지도 못 하는 학원들이 꼭 난리 쳐요. 그러면 “합격생 얼마나 내봤어.” 그럼 말 못 해요. 자 여러분 어느 학원 다니냐가 중요해요? 합격했냐가 중요해요? 합격했냐죠. 합격도 못한 학원이 우리 학원만 나와야 된다고 자꾸 외치고 있으면 웃기는 거죠. 그럼 벽에 좀 걸어보든가 합격생 한번 걸어 보든가. 이겁니다. 중요한 거는 합격했냐 즉 깨달았냐다. 깨달았다는 거는 자 제가 장담하건대 3000년 내에 자료를 다 뒤져도 깨달았다고 할 때는 다 공적영지 깨달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거예요. 똑같은 걸 깨달아요. 알아차리는 의식, 그 의식을 시공을 떠나서 알아차리는 인식만 존재한 이걸 깨달았을 때 어느
20:01
종교에서도 깨달았다고 그래요. 우리 백두산족 경전도 똑같아요. 이걸 신령이라고 그래요. 신령 각성을 못하면 아닌 거예요. 육근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럼 기본값이 달라요. 이 기본값과 이 기본값은 달라요. 이게 모든 철학의 전제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하면 이제 거부하는 분이 있어요. 중관학파 이런 분들은 이거 없다는 거예요. 알아차림도 이 생각으로만 생각해서 알아차림도 대상이 있으면 알아차리고 대상이 지나가면 알아차림이 사라진대요. 그때 뒤통수를 때리면 또 알아차리죠. 이때 또 생겨난 줄 알아요. 이해되세요. “어! 알아차림이 또 생겨났네.” 알아차림이 어디 있다가 생겨났을까요? 그건 몰라요. 그러니까 갑갑한 거예요. 그래서 남방불교 수련을 아무리 해도 아라한이 안 나오는 이유는 알아차림이 열반이라는 걸 모르니까. 모르고 수행을 하면요 미치게 알아차립니다.
21:03
밥 먹는 거, 손 드는 거, 눈 깜빡이는 거, 부르고 싶은 마음이 이런 의도가 일어나는 것부터 알아차려서 부를 때까지. 알아차리고 서로 경쟁이 붙어요. 난 어디까지 알아차렸다. 난 뭐도 알아차렸다. 뭐도 알아차렸다.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뭐랑 똑같아요. 활주로에서 비행기들이 내가 더 빠르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나는 놈이 없어요. 한 놈도 날지를 않고 내 비행기가 더 빠르다고 자랑하는 격입니다. 즉 열반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 집을 짓고 있는 거예요. 이게 공부 못 하는 학원들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합격생이 없잖아요. 서열을 어떻게 나누냐? 이제 합격이 서열이 아니에요. “몇 년 차야?” 그 안에서 서열을 나눕니다. 뭐라도 나눠야 돼요. 몇 년 차냐? 뭐 되느냐? 어차피 시험장 가면 다 떨어져요 애들은. 다 떨어지지만 그 안에서 서열을 나뉘요. 왜? 나도 여기다 투자한 게 있는데 이 안에서 레벨업은
22:02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게 에고들이 하는 짓거리예요. 예전 같으면 고시촌 가면 이제 몇 년 차냐? 다릅니다. 장수생들은 거의 합격이 목표가 아닌 분들같이 고시촌에 자연인 같은 존재 있잖아요. 고시촌 사람인 거죠 그냥. 고시촌 주민. 주민이 돼 가지고 살아가세요. 막 다 해박해요. 모르는 게 없어요. 물어보면 다 알아요. 합격 빼곤 다 하신 분들이에요. 물어본 사람들이 합격해서 나가요. 제가 예전에 이런 분들 보면 보살이신가? 그런 거 있잖아요. “모든 고시촌 사람들이 다 합격하기 전까지 나는 합격을 미루고 정보만 주겠다.” 보살이시죠. 보살. 이게 에고가 하는 짓거리가요 다를까요. 종교도 가면 똑같아요. 딱 가면 견성 외에 다른 걸로 레벨을 나눠야 돼요
23:01
그럼 뭘로 나누는 게 제일 좋아요. 돈을 많이 내는 정도. 그게 목사도 좋고 다 좋잖아요. 돈 많이 내면 앞쪽으로. 여기(앞자리) 앉으시려면 지금 같은 돈 내셔서는 안 돼요. 지금 앉으신 자리가 천국에서 분양되는 그 아파트의 질의 차이라고, 평수의 차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렇게 몰고 가면 여러분 긴장되시죠. 그러니까 자 이상한 사이비학원일수록 뭘 잘하느냐. 뭘 잘하느냐 어차피 견성은 합격은 없습니다. 출구는 없어요. 이 안에서 얼마나 벗겨 먹을 것이냐. 얼마나 레벨을 정해서 의욕적으로 나오게 만들 것이냐. 흥미를 붙이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안에서 서열 정해 주는 거고 그 서열이 그 사이비 교주한테도 도움 되려면 돈이나 이런 걸로
24:02
매겨져야지 제일 깔끔하죠.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 서로. 그러니까 그게 다 들어가 보면요 에고의 본성에 다 기반한 겁니다. 어차피 본인도 합격생이 아니에요. 이쪽도 어차피 합격의 길은 없어요. 근데 합격하러 왔잖아요. 합격하는 기분이 나게는 해줘야 될 거 아니에요. 장사가 되려면. 기분 나게 뭐라도 만들어 줘야죠. 뱃지라도 하나 달아주면 그렇게 또 좋아합니다. 이거 얻었다. 이거 한 1억짜리 뱃지, 1억 내야 받는 뱃지, 그럼 거기서 에메랄드 뭐 이렇게 나뉘는 거죠 서로. 인간이 모이면 하는 짓거리는 똑같다. 사바세계라는 게 돌아가는 기본 코드가 같아요. 기본값을 바꾸지 않는 한은 답이 없다. 기본값을 바꾼다는 건 이 자리 알아야 돼요. 알아차림에 딱 접속해 가지고 가끔 접속하는 걸로는 기본값이 안 바뀌니까 완전히 들어앉아 가지고 기본값이 바뀐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래서 교회를 천국이라고 한 거예요. 진짜 원래 교회는 천국이어야 돼요.
25:05
왜냐면 사바세계에서 핀 연꽃이어야 돼요. 진흙탕에 핀 연꽃. 저 교회만 가면 거기는 다 성령 받은 사람들만 존재한다. 기본값이 다르니까. 절도 원래 뭐여야 돼요. 정토여야 돼요. 절 자체가 정토여야 돼요. 원래 절이라는 건물이 포인트가 아니죠. 불교나 기독교 똑같아요. 기독교도 교회라는 건물이 포인트가 아니에요. 원래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군사 미션 조직이에요. 인적 조직을 말한 거라고요 원래. 그리고 절도 원래 승가라는 거는 인적 조직이에요. 승가 부처님 제자들의 조직을 인적 조직을 승가라고 했지 어떤 절을 지어놓고 승가라고 하지 않았어요. 부처님 때는 숲에서 했지. 절도 없이 했다고요. 나중에 누가 기부해 주니까 정사 같은 수련하는 공간이 생긴 거지. 포인트는 인적 조직이었다.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야 거기가 승가다. 불화(佛畵) 보면 머리 후광(後光) 하나씩 있죠. 후광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이 정토고 불국토고 한 겁니다.
26:04
절이고 원래. 근데 이거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장사를 해야 돼요. “야 이거 큰일이다. 우리 시주가 줄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장사를 시작해야죠. 방석 이제 여기 방석은 누가 앉을 것인가 이걸 가지고 경쟁을 붙이면 에고들은 또 좋다고 합니다. 목표가 생기거든요 에고들은. 그럼 막 더 열심히 해 가지고 한 레벨 한 레벨 올라가는 거죠. 자녀들더러 게임 좋아하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본인들 하는 게 게임이에요. 아이템 모아서 렙업할려고 막 최선을 다합니다. 있는 돈 없는 돈, 생을 막 바치고 있어요 자기들은. 자식들보다 더 무서워요. 자식들은 그냥 게임 세계지만 여기는 현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어요 렙업할려고. 렙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 가는 거. 정토 가는 거. 그렇게 해서 정토가 가지겠냐고요. 제일 쉬운 법이 이 길입니다. 에고의 모든 본질을 간파하시고 보면
27:00
이거밖에 없습니다. 알아차림. 때가 묻지 않아요. 왜? 에고가 여기에 작동을 안 해. 에고가 작동하는지 보세요 진짜로. 몰라 괜찮아 해가지고 알아차림만 남았는데 거기 나라는 게 있는지? 존재는 해요. 신기하죠. 존재는 하는데 아무개 내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본래의 신이고 여러분이 본래 부처라는 말이 가능한 겁니다. 이 자리 안 가보고 얘기하는 건 가짜예요. 이 자리 안 가보고 열반을 논하고 부처를 논하고 뭐 하느님 논하고 신성을 논하고 양심을 논하는 그런 양심은 다 가짜예요. 이 자리 가봐야 그런 우주적인 양심이 뭔지 알아요. 기본값이 바뀌어 버리거든요. 이게 답이다. 이게 포인트다. 그래서 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그대로 열반이고, 번뇌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열반이고 이 자리를 나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참나라고 하는 것뿐이다.
28:00
참나란 말에 또 걸리면 안 됩니다. 자 언어가 문제가 있어요. 결국 우리 지금 하는 이 모든 건 언어죠. 근데 언어는 어떤 특징이 있냐면요. 여러분 이번 기회에 언어의 문제점 하나 알고 가시는 게. 이게 중관학파라든가 수많은 이상한 궤변론자들의 그 괴설에 안 빠지는 비결입니다. 언어라는, 언어는 결국 뭔가? 우리가 정의를 해야 돼요. 자 이거를 뭐라고 할까요. 펜. 아니면 뭐 우리가 제일 쉬운 여러분 교과서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뭐라고 정해야죠. 정의를, 정의를 내려야 돼요. 정의는요 이걸 먼저 아셔야 돼요. 논리학적으로 유 개념과 종 개념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거는 종 개념이라는 건요 개별 개념이에요. 개별 개념들인데 개별 개념을 포함하는 게 유개념이에요. 더 커요. 자 요게 A면 요게 B라고 할게요. A 그룹 안에 B 그룹이 있어요. C그룹도 있어요. 그럼 이게 종 개념이에요. 종
29:04
종자 종(種)자입니다. 종류(種類). 합치면 종류가 돼요. 근데 이렇게 나눠 쓴 거예요. 종(種)개념 유(類)개념. 그러면 이 종들간의 차이가 종차(種差)라 그래요. 요걸 아셔야 돼요. 그러면 이게 결국 뭐가 되냐면 지금 유(類)라는 것도 불교적으로 보면 자성이에요. 종(種)들도 다 자성이에요. 종차(種差)라는 것도 다 자성입니다 결국. 그러니까 언어를 쓴다는 건요 이미 자성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자성이라는 건 뭐냐면 자성은 고정 불변하는 어떤 독립된 실체, 이데아라고 하는 것들이에요. 이데아. 여러분 이데아 없이는요 우리가 여러분 일상생활 자체도 못해요 실제로. 뭐냐면 여러분 사람과 개가 다르다고 생각하시죠. 다르다는 걸 알고 계시죠. 그러면
30:01
그 중관학파 같은 불교학파는 전혀 설명 못 하는 게 있어요. 자성이 없다고만 주장하거든요. 이제 제가 중관학파 달라이라마 쪽의 중관학파를 제일 많이 거론하는 이유가 이 중관학파의 핵심 이론은 무자성(無自性)입니다. 이것만 아시면 돼요. 중관 무자성. 중관은 자성이 없다. 즉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 현상계에는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다. 자 그럼 이 말이 맞아요. 육근의 세계는 무상하게 연기로 굴러가는데. 같은 말입니다. 인과로 연기한다는 건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거 아닌가요. 불변이 아니다. 연기한다는 서로 상호의존적이니까 독립된 존재가 없다는 얘기죠. 저게 있어서 이게 있으니까. 그럼 해와 달이면 해가 있어 달이 있다. 만약에 낮이 있어 밤이 있다 이러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다는 거죠. 인연에 의해서 존재한다. 그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계속 변한다는 얘기고.
31:06
변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독립적이지 않다. 그럼 실체가 없다. 자 중관학파 말이 현상계만 관찰해 보면 맞아요. 없으니까 실제로. 인연만 있지 인연의 생멸만 있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잖아요. 맞는 거 같죠. 그럼 이데아가 없는 거 같죠. 그렇게 철학이 쉬우면 저기 이데아니 뭐니 하는 게 철학에서 나왔을까요. 왜 나왔을까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태어나서. 태어나서도 아니고 지금 아침에 눈 떠서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이 뭔가 여러분 언어를 붙이지 않고 경험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언어를 붙이지 않고 경험했는데 뭔가 카테고리가 있지 않아요. 근데 경험하는 그 대상도. 내 가족들이 뭔가 가족들이라는 뭔가 카테고리에 있는 거 같고. 사람을 만났으면 사람이라는 뭔가 카테고리가 있는 거 같고. 나는 모르지만 그냥
32:03
언어를 안 쓰고 경험했더라도. 동물은 동물, 식물은 식물 그렇죠. 물질은 물질, 시간은 시간, 공간은 공간 다 달라요. 이게 자성이에요. 자성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자성은 있어요. 자성이 없는데 왜 우주가 이렇게 천차만별로 펼쳐져요. 자성이 없다는 논리는요 제일 허망한 게 그럼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없는 겁니다. 자성이 없다면. 인연 따라 잠시 이런 모습이다는 말 외에 아무것도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저런 철학은 사실 철학도 아닌 거예요. 중관론 같은 철학은요 철학도 아닌 거예요 그냥. 설명을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요. 뭐만 설명해요. 무상하게 변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철학은 뭘 얘기하냐. 남들이 어떤 철학적 주제를 할 때 까는 역할밖에 못 합니다. “아 이 우주에 뭐 우주의 신이 있는 거 같아.” “자
33:01
따져 봅시다. 신이 자성일까요. 자성이 있을까요.” 그런 어려운 얘기 말고도 이걸로 할 수 있어요. 자 그럼 인간 한번 정의 내려 볼까요. 이러고 또 중관 논리 붙여 볼까요. 자 인간을 정의를 내리면 인간이라는 게 종(種)개념이 돼요 이때는. 그럼 이 개념보다 더 크기만 하면 유(類)개념이죠. 얘를 포함하는 개념이면 동물이다(類). 그러니까 보세요. 동물 중에 인간도 있죠. 그렇죠. 그럼 곤충도 있겠죠. 그러면 동물 중에 어떤 동물이에요. 이성적 동물이다. 그럼 이게 종차(種差)예요. 다른 종과의 차별성이에요. 다른 종과의 차별성. 이성적이라는 것도 자성이에요. 동물이란 것도 자성이에요. 구분되는 건 다 자성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독자적인 성질이 있는 건 다 자성이에요. 인간도 자성이에요. 이걸 중관학파가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진리 같지. 그럼 인간이 자성이라면 자성은
34:03
고정 불변 독립의 실체인데 인간이 고정 불변 독립의 실체라고 인간이.” 그럼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은 고정 불변 독립의 인간이 없잖아요. 땡 가짜 판명. 무자성. “이성적이라고? 한번 이성이라는 건 영원 이성이어야 되는데 고정 불변 독립이니까. 또 인간이 감성적이면 안 되네.” 땡. “동물이라고 계속 움직일 것 같냐.” 땡. “계속 생명이 있을 것 같냐. 죽을 거 아니냐. 자성 없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게 느껴지세요. 이데아의 세계는요 자성이라는 거는 일단 추상적인 세계에서 기능하는 건데 개별 구체적 세계에다 갖다 붙여 가지고 차원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오류입니다. 여기다 적용해 가지고 없다고 주장하고 없는 걸로 밝혀졌다고 하면 잘못된 거예요. 현실에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언어적으로요 이데아의 세계에 빨대를 꽂은 것뿐이에요 우리는. 근데 이데아의 세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사물을 우리는 구분할 수가 없어요.
35:05
근데 인간이 탁월한 겁니다. 탁월한 이성을 갖춰 가지고 인간이요 알아차림의 세계, 불변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정보에 빨대를 꽂아 가지고 언어로 끌어내려 가지고 쓰는 거예요. 이성적 동물이라면 동물이라는 이데아도 현실이 없구요. 인간이란 이데아도 현실이 없구요. 이성이라는 이데아도 현실에 없어요. 근데 우리가 시공간 안에서 무상하게 연기 속에 살아가면서도 이 모든 것들이 알고 보면 불변의 세계에서 다 나온 거라는 걸 안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 못 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게 중관학파예요. 이분들한테는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여러분 이해가 안 되세요. 간단하게 이 알아차림의 세계에 애초에 유식학에서 말하는 불변의 종자가 없다면 왜 이 우주에는 시간과 공간과 이런 인간, 이 모든 물질이 질서정연하게 창조됐을까요. 이 부분을 설명 못
36:02
해줍니다. 진화론 같아요. “무상하게 진화하다가 우연히 생겼어. 끝.” “우주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끝.” 그럴 것 같으세요? 아니면 인간이 인간의 어떤 불변의 그 법칙이 있는 거 같으세요? 요 감각 차이에요. 그래서 예전부터 철학자들은 이데아를 바로 얘기한 분들은 다 보편적 신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체험한 사람들은 그 안에 우주적 진리가 있다가 현실화되니까 이 과정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분명히 이 안에 우주적 정보가 있다가, 시공 안에 시공 밖에 있는 정보가 시공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근데 꼭 시공 안에 똑같이 굴러가요. 춘하추동이 펼쳐져요. 근데 춘하추동의 이데아가 어떤 작용을 해서 시공 안에서 꼭 춘하추동을 구현하는지 알 수는 없는데 그러니까 그 성리학자 우리나라 조선 선비들은 이기론(理氣論)으로 설명한 거죠.
37:00
인의예지의 원리가 기운을 통해서 꼭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연결해 주는 매체가 기(氣)예요. 시공 초월한 세계와 시공 안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게 기(氣)에요. 그래서 이 기가 모든 걸 해결해 줬어요. 서양 같으면 하느님이, 신이 해결해 줬어요. 신이 했다고 그랬어요. 근데 이제 근대철학에 오니까 이거를 해결해야 되니까 복잡한 문제에 봉착한 거죠. 특히 과학계에서는 이제 이런 부분을 배제하고 가버린 거죠. 그런데 이런 과학적 논의랑 중관학파가 참 닮아 있습니다. 불교 안에 있는 정말 과학적인 논리적인 주장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런 걸 하나도 설정 안 하니까 결국 왜 이런 게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말을 안 해줍니다. 다만 오로지 뭐만 외쳐요. “무자성.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는데 왜 동물은 동물로 낳고 식물은 식물로 인간은 인간으로 낳고 그 정보들이 왜 있느냐? 어디서 왔느냐? 이렇게 그럼 서로 다른 규정 속에서 살아가는 건
38:00
뭐냐? 누가 이 우주를 굴리는 고도의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이 어디 있겠냐? 이 자리에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제 어느 종교나 철학을 막론하고 있습니다. 이 부류가 제가 얘기하는 진짜 철학자들이에요. 이데아의 세계를 논할 수 있어야. 그러면 이 양반들은 이데아가 어디 있어요? 신의 세계에 있어요. 신을 체험해야 돼요. 신을 체험하고. 그래서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같이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 구체적 사물 배후에 보편법칙이 있고 그 보편법칙 배후에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는 여기 있는 거고요. 보세요. 이데아는 정보가 여기 있어요. 원천적으로 인간의 정보가 여기 있으면 현상계에서 인연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져요. 뭔가 인간을 계속 잡아주고 있어요. 그래서 일정한 인간에 관한 모든 법칙들이 발생해요.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건 실제 인간이에요. 그래서 개별 구체적 사물은 인간이고 인간 속에서 관찰되는 보편법칙, 의학적이건 뭐든 심리적이건 법칙들은 그게 보편법칙이고. 그 너머에
39:06
동굴 밖에 나가면M 시공 밖에 나가면 원형의 정보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발상 자체가 너무 어려우시면 형이상학에 되게 취미가 없으신 건데 이런 분들이 딱 즐기기 좋은 게 중관학파인 거예요. 다 깨버리니까. 그래서 평소에 친구들이 자꾸 이데아니 뭐니 하고 나를 놀렸다. 어느 날 내가 중관학파를 들었다 하면 끝난 거죠. “이 새끼들 다 헛지랄하고 있어. 무자성이야 이것들아.” 이게 끝입니다. 제가 대학 때 경험했던 운동권하고 똑같아요. 유물론자들 하고. 제가 대학 때 가면 팜플렛 같은 철학책들 많아요. 뭐 철학의 AB.C 보면 뭔 내용이냐면 딱 이제 양대 세력이 있습니다. 유물론자와 관념론자. 관념론자는 뭐냐? 이데아를 주장한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한다. 유물론자. 오직 이 세계는 변화할 뿐이며 변화하지 않는 건 변한다는 법칙, 변증법 밖에 없다고 한다. 그대로 적용하면 맞아요. 중관학파
40:04
참나, 영원한 거, 하나도 없다. 오직 존재하는 건, 불변하는 건 연기법 밖에 없다. 참나니 뭐니 얘기하는 것들은 다 관념론자다. 다 부정. 끝. 이렇게 보면 티벳 중관학파랑 여기 공산주의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과는 딱 만나 있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 그렇죠. 이쪽 연기법적인 뭐죠. 중관론. 딱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이런 불교의 속아가지고, 이런 불교에 속아서 “참나 없네” 막 이 지랄하면 여러분은 알아차리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하고 계시면 돌아버리는 거예요 선사들이. “부처는 제가 봤는데요. 부처는 없던데요.” 아 부처가 부처가 없다고 하니까 돌아버린 거죠 선사들은. 알아차리는 의식이 부처인데 “내가 다 알아차려 보니까 부처가 없더라고요.” 그러면 여러분 어떤 기분이시겠어요? 그 기분이에요. 그래서 자
41:06
언어의 세계는 따라서 불변의 자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이데아의 세계에 빨대를 꽂지 않으면 언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어화 해놓고 보면 허점이 생긴다. 우리가 경험하는 건 개별 구체적 사물인데 언어는 보편추상적이에요 이미. 요 갭을 이용해서, 이 갭을 공격해 가지고 자성이 없다는 걸 입증하고 뿌듯해 하는 게 중관론이다. 사실은 깨닫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기서. 원래 언어는 이렇게 불확실한 겁니다. 언어는 불변의 세계에 빨대를 꽂아야 되니까 불확실해요. 이해되시죠. 보세요. “저는 인간입니다.” 이미 불확실해요. 인간이란 건 보편 추상적인 거거든요. 여러분 인간을 보신 적 있으세요. 보편 추상적인 인간을 개별 구체적으로 보신 적 있으세요. 이것이 인간이다 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건 맨 이런 사람들이에요. 이런 존재들만 경험했어요.
42:01
근데 누구 만나고 왔냐면 “사람 만나고 왔지.” 뭘 만난 거야? 여러분 사람을 만날 수가 있나요? 이런 거예요. 이 허점을 지적해 가지고 공격해서 다 무상하고 영원한 건 없다. 입증하고 무자성 도장 꽉 찍고 끝내는 게 중관파예요. 그래서 “무자성이니까 어떤 거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다. 끝.”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런 분이면요 부처님은 지금까지 성인으로 존경도 못 받았어요. 소피스트 중에 한 명이 됐겠죠. 알아차림. 빛나는 무한 광명 의식을 얘기했어요. 이 알아차리는 자리 이게 있으니까 우리가 내가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하는 거고. 이게 있으니까 이렇게 시공을 초월한 세계가 있으니까 내가 탐진치의 세계를 떠날 수 있다고 얘기한 거다. 이게 지난 시간까지 한 얘기였죠. 쉬어야 될 것 같죠?
43:00
근데 오늘 되게 중요한 얘기했습니다. 이게 언어 이것도 그냥 말로만 들으면 왜 언어가 문제인지 안 와 닿아요. 언어는 애초에 문제예요. 왜 보편 추상적인 개념들을 갖고 와서 놀아요. 그리고 보편추상적 개념은 불변의 이데아를 전제한 얘기들입니다 사실은. 불변하는 자성을 전제하고 하는 얘기예요. 안 그러면 설명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플라톤의 파이돈 같은 게 설득력이 없는 소크라테스가 영혼불멸론을 주장해요. 왜 설득력이 없냐면요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주장해요. 소크라테스가 죽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막 소크라테스 죽는다고 걱정하니까 “인간 영혼이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화두를 던져요. 뭐라고 얘기해요. 소크라테스가 “영혼은 뭐냐? 속성이 뭐냐?” “살아있는 거죠.” “자 영혼이라는 거는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의식이다. 생명이다. 그러면 살아있는 생명이 죽을 수가
44:02
있냐?” 어떠세요? 머리로는 납득되는데 하나도 안 와 닿죠. “자 지금 나 살아있지 영혼이란 건 살아있다.” 내 생명이라고 하죠. 생명은 살아있는 걸 생명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생명이잖아요. 그럼 살아있는다는 속성은, 그 언어에는 죽음이라는 게 없지 않아요. 고정 불변 독립이죠. 살아있다라는 메시지만, 뜻만 있잖아요. “그럼 영혼은 살아 있겠냐? 죽겠냐?” “살아 있겠네요.” 제자들이 마지못해 동의를 하면 계속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데요. 좀 위로 받으시는 게 있나요? 그냥 죽을 것 같은데? 뭔 말인지 아시겠죠. 개별 구체적 세계에서는 죽을 것 같은데 보편 추상적 개념을 갖고 와 가지고 “내가 살아있냐? 죽어있냐?” “살아계시죠.” “자 그럼 나의 속성은 살아 있다는 거 아니냐.” “네.” “그럼 살아있다는 거는 계속 살아 있지 않겠냐.” 왜냐하면 정의 자체가
45:03
살아 있다는 거니까. 영혼은 살아 있어야죠. 영혼은 살아서 그 생각 감정을 느끼는 존재잖아요. 살아 있어요. “그럼 네가 이미 못 죽게 했네.” 이제 이런 거죠. 이런 식 논리가 파이돈에 나옵니다. 들으시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시는 건 이거예요. 그런 논리를 깨려고 나온 게 중관입니다. “그거 말장난이다. 존재하는 건 다 생멸할 뿐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이런 반박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지 소크라테스도 방편이고 중관론도 방편으로 봐야지 저기에 목을 매면 안 됩니다. 그럼 납득이 안 되실 거예요. 이게 신기한 게요 여러분이 철학을 알건 모르건 법을 알건 모르건 뭐 철알못(철학 알지도 못하는 사람) 법알못(정치 알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도 제 얘기 들으시면 찜찜하다는 거 알아요. 설득이 안 된다는 거 아시죠. 여러분 안에 신성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신성이 있지 않고
46:06
그 신성 안에 보편적 진리에 대한 기준이 없으시다면 제 얘기 듣고 “그게 뭐가 문제죠.” 이런 분도 있으셔야 돼요. 이해되세요. 왜 똑같이 다 찜찜하다고 느끼죠? 보편적 기준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본유종자(本有種子)가 있어요 여러분 안에는. 여러분의 의식 안에는 불변의 종자가 있어요. 그게 이데아예요. 이런 얘기하면 벌써 형이상학적이 돼 버리잖아요. 석가모니가 이런 게 싫어서 형이하학적으로 얘기해 놨더니 어떤 문제가 생겼냐면 지나친 형이하학이 불교라는, 형이하학적 불교론이 등장해 버린 거예요. 연기법만을 불교로 아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가 결국 열반에 도달할 수 없는 길이 돼 버린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가 열반에 도달했다면 끌어내리기만 하는 거예요. “네가 참나를 깨달았다고. 참나라 함은 영원한 난데 너가 영원하지 않다고. 나라 함은 모름지기 오온인데 오온이
47:00
영원하지 않다고.” 그럼 이상하잖아요. “그렇지. 생각 감정 오감은 무상한데 따라서 나라는 건 영원할 수가 없다. 근데 참나라고. 그 말은 거짓이다. 무자성. 따라서 너는 참나가 없다.” 그럼 납득 되세요. 깨어있는데 계속. 참나가 계속 느껴지는데. “그러네. 내가 없는 걸 느꼈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사죄하고 끝내실 거예요? 뭐 이상하죠. 이런 것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 지금 불교가 겪는 문제들을 제가 진단해 본 것뿐입니다. 중관론이나 참나론자들이 서로 다 알아야 될 부분들. 오늘 여기까지 하고 잠깐 쉬고, 잠깐 쉬고 진도 나갈게요.
4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