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4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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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text-align: left;"| 부제 | !style="text-align: left;"| 부제 | ||
| | | 천국을 찾는 것을 멈추지 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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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i4w_82bsdoU | | https://youtu.be/i4w_82bsdo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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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은 이런 얘기하기 좋습니다. 성경인데 불경같은 성경이고, 도경같은 성경이고요. 자! 이 그림 보시죠. 영, 영은 뭐라구요? 영 그러면 항상 성령입니다, I AM. 이 정도까지는 항상 같이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의 영이 쉬운 자리가 아니예요. 왜냐? 여러분은 혼만 알고 산단 말이예요. 혼의 세계, 육의 세계 그러니까 육이 여러분 혼을 자극합니다. '먹어라, 저거 보고 싶지 않냐? 듣고 싶지 않냐? 먹고 싶지 않냐? 만지고 싶지 않냐? 맛보고 싶지 않냐?' 고 자극을 주면 어떻게 하겠어요? 혼이 끌려가죠. 이 자극에 취약하죠. 왜? 자극이 강렬하거든요. 엄청난 쾌락을 보장해 주거든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걸 혈육의 자녀라고 하는 거예요. 혈육에 끌려다니 잖아요. 혈육의 자녀,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취약하게 살고 있냐? 영을 몰라서 그래요. 영이 육체만큼 여러분에게 자극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혼은 당연히 영도 따라가죠. 영만 따라간다고 못하겠지만 영으로부터 강렬한 자극을 받으면, 성령의 자극을 받으면, 여기에(혼) 끌려가는 만큼 여기에도 (영) 끌려가겠죠. 중생들이 원하는게 이겁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자극 좀 줬으면 좋겠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의 소원이죠. '하나님이 나타나서 딱 한번만 한번이라도 괜찮으니까 한번만 방문해 줬으면 좋겠다. 그럼 진짜 열심히 믿을텐데' 왜? 날마다 육에 끌려가니까요. 이게 영을 만나버리면 24시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이 어려운 자리입니다. 영이 성령 자리고, 그래서 영을 만나면 이 혼은 변화합니다. 혼이 영에 끌릴 때 하나님 자녀 그래요. 수없이 말씀 드렸고요. 자! 그런데 | 도마복음은 이런 얘기하기 좋습니다. 성경인데 불경같은 성경이고, 도경같은 성경이고요. 자! 이 그림 보시죠. 영, 영은 뭐라구요? 영 그러면 항상 성령입니다, I AM. 이 정도까지는 항상 같이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의 영이 쉬운 자리가 아니예요. 왜냐? 여러분은 혼만 알고 산단 말이예요. 혼의 세계, 육의 세계 그러니까 육이 여러분 혼을 자극합니다. '먹어라, 저거 보고 싶지 않냐? 듣고 싶지 않냐? 먹고 싶지 않냐? 만지고 싶지 않냐? 맛보고 싶지 않냐?' 고 자극을 주면 어떻게 하겠어요? 혼이 끌려가죠. 이 자극에 취약하죠. 왜? 자극이 강렬하거든요. 엄청난 쾌락을 보장해 주거든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걸 혈육의 자녀라고 하는 거예요. 혈육에 끌려다니 잖아요. 혈육의 자녀,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취약하게 살고 있냐? 영을 몰라서 그래요. 영이 육체만큼 여러분에게 자극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혼은 당연히 영도 따라가죠. 영만 따라간다고 못하겠지만 영으로부터 강렬한 자극을 받으면, 성령의 자극을 받으면, 여기에(혼) 끌려가는 만큼 여기에도 (영) 끌려가겠죠. 중생들이 원하는게 이겁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자극 좀 줬으면 좋겠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의 소원이죠. '하나님이 나타나서 딱 한번만 한번이라도 괜찮으니까 한번만 방문해 줬으면 좋겠다. 그럼 진짜 열심히 믿을텐데' 왜? 날마다 육에 끌려가니까요. 이게 영을 만나버리면 24시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이 어려운 자리입니다. 영이 성령 자리고, 그래서 영을 만나면 이 혼은 변화합니다. 혼이 영에 끌릴 때 하나님 자녀 그래요. 수없이 말씀 드렸고요. 자! 그런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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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저는 그 분들도 편해지실 것 같아요. 봉쇄해서 살아가시는 그 분들도 그 안에서 성령 충만해서 예수님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수도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이러면 저는 그 분들도 편해지실 것 같아요. 봉쇄해서 살아가시는 그 분들도 그 안에서 성령 충만해서 예수님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수도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
왜냐하면 제가 그걸 못느꼈어요. 서양까지 수도원들 다큐나 그런 걸 보는데 서양의 어느 수도원 가니까 그 분들은 알더라구요. 여유로워요. 하나님의 현존안에 있다는 얘기를 계속 입버릇처럼 얘기해요. '나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있다' '이런 적절한 제약 안에 있으니까 하나님 현존이 | 왜냐하면 제가 그걸 못느꼈어요. 서양까지 수도원들 다큐나 그런 걸 보는데 서양의 어느 수도원 가니까 그 분들은 알더라구요. 여유로워요. 하나님의 현존안에 있다는 얘기를 계속 입버릇처럼 얘기해요. '나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있다' '이런 적절한 제약 안에 있으니까 하나님 현존이 잘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인정 한다니까요. 사람마다 역량이 다르고 근기가 다르니까, | ||
그런데 그 안에서 맨 밥먹고 뭔가와 싸우고 계시면 제가 볼때는 안타까운 거죠. 거기가서 왜 그러고 계시나? 처지에 따라 봉쇄를 했어도 하나님 현존에 충만한 모습을 보여달라는 거죠. 왜냐하면 누군가가 봉쇄까지 하면서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분들이 혈육의 자녀로 살다가 그 분을 보고 '이렇게 살게 아니구나' 하고 승려나 성직자를 보고 감화 받을 수도 있죠. 그것도 하나의 보살도죠. | 그런데 그 안에서 맨 밥먹고 뭔가와 싸우고 계시면 제가 볼때는 안타까운 거죠. 거기가서 왜 그러고 계시나? 처지에 따라 봉쇄를 했어도 하나님 현존에 충만한 모습을 보여달라는 거죠. 왜냐하면 누군가가 봉쇄까지 하면서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분들이 혈육의 자녀로 살다가 그 분을 보고 '이렇게 살게 아니구나' 하고 승려나 성직자를 보고 감화 받을 수도 있죠. 그것도 하나의 보살도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