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19강 문서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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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19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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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 |- !style="text-align: left;"| 부제 | 영생의 비결인 불멸하는 5그루의 나무 |- !style="text-align: left;"| 강의일자 | 2020. 02. 22. 土. |- !style="text-align: left;"| 게시일자 | 2020. 05. 21. |- !style="text-align: left;"| 동영상 길이 | 59:45 |- !style="text-align: left;"| 강의 중 인용 도서 | 도마복음 |- !style="text-align: left;"| 유튜브 주소 | https://youtu.be/C1hU9tGnwFY |} 《19절 영생의 비결인 불멸하는 5그루의 나무》 환타지하지 않습니까? 낙원에 있는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있데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천지만물이)》 이건 제가 붙인 해설이구요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게 된 사람은 축복받을 것이다. 만약 그대들이 나의 제자들이 되고, 나의 말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돌들도 그대들을 섬길 것이다.》 이거 이정도면 거의 암호죠, 그런데 아는 분들은 무릎을 칩니다. '와, 멋있다'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게 되신 분' 여러분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시나요? 몰라하고 계시고 영원한 나의 현존에 만족하시면 과거도 이 존재, 미래도 이 존재, 현재도 이 존재한, 그 존재에 만족하고 계시면 알파와 오메가 되는 존재에 만족하고 계신 분들은 천지만물이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시는 분들 입니다. '축복이 있을 것이다' 이 얘기는 예수님이 '나만 창조전에 존재했다'가 아니예요, 우리 모두 창조전에 존재했는데 이 사실을 깨닫고 그 현존에 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축복받을 것이다. 말이라는게, 이 형이상학적 말은 표현하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만 알지 모르면 이 말 한마디 한마디 함정이 너무 많아요, 개념으로 접근하면 함정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체험없이 개념으로 가신 분들은 웬만하면 함정에 빠집니다. 없는 함정도 지가 파고 빠져요, 의도하지 않은 함정까지 다 챙겨서 빠지고, 있는 함정 다 빠지고, 제가 예전에 수학공부할 때 그랬어요, 수학시험만 보면 있는 함정은 100% 빠지구요 없는 함정도 내가 만들어서 빠지더라구요, 그래서 남들 틀릴거 다 틀리고, 몇개 더 틀리고, 이러면 최악이거든요 '이건 맞췄어야지' 까지도 빠져요, 안될때는 그렇드라구요 그래서 영적공부도 안되시는 분들은 다 빠지고, 또 빠지고 이래요, 없는 것도 만들어서 빠지고, 그러니까 '축복받을거다' 이게 이렇게 되면 얼마나 축복이냐 이거죠, '영원한 나의 현존에 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만약 그대들이 나의 제자들이 되고, 내 말을 듣고 따른다면' 이 소리죠,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삶 속에서 내 말을 지침으로하고 산다면 '이 돌멩이도 그대들을 섬길것이다' 왜그럴까요? 설명보시죠,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게 된 자’ ‘태어난 적이 없는 자’ ‘여자가 낳지 않은 자’는] 다 같은 겁니다, 즉 [우리의 시공을 초월한 현존의 자리를 말한다.] 천지만물이 존재하기 전에 존재한 자리는 영 밖에 없거든요, 이게 현상계고 절대계라고 하죠, (절대계, 현상계) 여기는 영원한 하나님의 현존자리라고 한다면 여기는 천지만물자리 아닙니까? 천지만물이 존재하는 이 현상계, 여기는 시간도 공간도 있고, 여기에는 이원성도 있죠, 여기는요? 여기는 시공도 없죠, 이원성도 없죠, 하나님 자리에는 절대 사탄이 없습니다. 신기한 거예요, 하나님의 현존에는 사탄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현상계를 만드는 순간, 뭐가 작동해요? 사탄이 작동해요, 왜? 유혹을 해야되니까, 악의 가능성이 생겼다는게 사탄의 작동입니다, 사탄 또한 하나님의 작용의 일부예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한 순간 사탄도 작동하고, 왜? 하나님이 창조한게 결국 뭔데요? 보세요, 하나님이 창조한게 뭔데요? 생각, 우리 마음을 기준으로 보면 생각, 감정, 오감 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이 우주라는 사이버 게임을 만드셨어요, 온라인 게임을 만드셨어요, 그러면 그 재료가 뭐예요? 생각, 감정, 오감이요, 각자의 모니터에, 우리 각자의 모니터에 생각, 감정, 오감만 작동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 감정, 오감을 빚어서 온 우주를 똑같이 구현해서 보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죠? 각자의 모니터에서 비춰지는 게임의 세계, 그게 천지만물 이예요, 천지만물의 세계에서 각자대로 게임을 하는데 자기 모니터에 작동되는게 뭔가 보면 생각, 감정, 오감 밖에 없어요, 생각, 감정, 오감으로 천지만물을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역할) 그러면 이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 뭡니까? 에고라는 한 에고의 주체를 통해서 생각, 감정, 오감을 작동시키는 것도, 이게 마음의 세계에서요, 혼의 세계에서, 작동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작용이고 또 한편에서는요? 생각의 대상, 감정의 대상, 오감의 대상인 천지만물을 구현해서 인식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작용이예요, 게임으로 치면 게임하는 자도 하나님의 작용이고 게임의 세계도 하나님의 작용이예요, 그러니까 이쪽에서는 눈으로 보면 저쪽에서는 색깔이 보이고, 이쪽에서 냄새를 맡으면 저쪽에서 냄새가 있고 그렇죠? 안밖이 같이 돌아갑니다. 이 전체가, 이쪽이 주관세계고 이쪽이 객관세계면 이 모두가 크게 보면 다 천지만물의 작용입니다. 그렇죠? 천지만물의 세계, 이걸 초월해 있는게 하나님 자리, 천지만물을 하나님이 에고를 통해 대상세계를 보게 만들었는데, 이 주관의 세계, 이런 객관의 세계가, 주객이 함께 작동하는 모두가 하나님의 작용입니다. 아시겠죠? (사탄) 그런데 이런 존재 이전의 자리, 이 모든것을 알아차리는 주체이면서 알아차려지는 것들 마저도 창조하는 그자리, 죽이죠, 거기가 하나님 자리, 우린 이미 하나님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예요, 지금 게임의 세계에 빠져서 생각, 감정, 오감만 보고 있다가 '이 모든걸 알아차리는 그 자리가 뭐지?' 그 자리 들어갔더니 거긴 시공도 없고, 이원성도 없어요, 여긴 시공이 있고 이원성이 작동해요, 하나님이 뭘 창조했어요? 생각, 감정, 오감이요, 그럼 이건 뭔데요? 탐진치죠, 기본 속성이 탐진치죠, 다 좋은거 생각하려고 하고, 좋은거 느낄려고 하고, 좋은거 보고, 듣고 하려고 하죠, 그게 좌절되면 분노하죠, 이렇게 설정되있어요, 탐진치가 기본 작동입니다. 그래서 뭔가 생각하면 거기에 몰입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생겨요, 그거만 생각하느라 딴거 생각 못하니까, 그거 느끼느라고 다른거 못느끼니까, 내 감정 느끼느라고 남의 것 못느끼니까 어리석음이 작동하죠, 보고 듣는데 빠져서 거기 분별하고 집착하다보면 다른 중요한 걸 놓칠 수가 있죠, 생각 못하는게 생기죠, 그래서 하나님하고 벌써 달라요, 플레이어가 되면 이 우주라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는 순간 하나님하고는 벽이 생깁니다. 우리가 천지창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현존했다고 하더라도 에고성을 가지고 작동하는 순간, 이 에고성은 사탄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에고는 누구를 상대로 생각해요? 남이랑, 벌써 이원성의 지배를 받으면 모든 이원성의 세계에서 비양심으로 향하게 만드는 작동이 없을 수가 없어요, 남와 남이 나뉘잖아요, 그러면 '너를 더 사랑해 남은 남이야' 라고 여러분을 이끄는 영의 작용이 발생합니다. 그게 사탄이예요, 사탄이 다른게 아니고, 탐진치가 사탄의 작용이 아니고, 이건 하나님이 창조해 준거예요, 인간의 육신, 인간의 마음작용 이건 하나님이 창조해 준거예요, 이걸 하나님 뜻대로 쓰지, 않게 하고, 에고 뜻대로 쓰게 하는 힘이 사탄이라니까요, 나 위주로 해서, '하나님 뜻은 져버리더라도 내 뜻은 성취해야지' 라고 마음을 먹게 만드는게 사탄의 영의 작용입니다. 그 영이 작동하면 여러분은 그 생각, 감정, 오감을 엉뚱하게 쓰는 거예요, 이게 불교랑 차이입니다. 불교는요? 불교는 뭐예요? 참나에서 이 주객의 세계가 펼쳐진거 자체가 무명 때문에 (근본무명 때문에) 생긴 거예요, 이게 힌두교에서 말하는 마야, 참나만 있으면 우주는 좋았는데, 하나님만 계시면 좋았는데, 참나에서 이원성 나온 것 자체를 인도문명은 저주해요, 근본무명이, 마야가 생각, 감정, 오감을 만든 것 자체가 마야예요,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마야가 아니죠? 누가 만들었어요? 하나님이요, 만든 다음에 어때요? 보시기 좋았데요, 탐진치 만들어 놓고 좋아하셨어요, '어구 고 놈 탐내고 아주 잘 뛰어 다니네' 풀밭에 쳐먹겠다고 막 뛰어다니는 동물을 보고 '고 놈 잘뛰어다니네, 보기 좋네' 라고 하셨다구요, 보세요, 쥐새끼 잡겠다고 고양이가 뛰고 있으면 시야가 콩알만 해졌죠? 천지가 없어요, 쥐새끼 밖에 안보입니다. 치, 그거 잡겠다고 하는 마음이 탐, 그거 놓칠까봐 성내는 마음에서 분심이 끌어서 놓치면 큰일난다고 뛰는거 아니예요? 그걸보고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더라' 불교랑 기독교는 이렇게 벽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 불교, 소승불교, 인도적 불교는 이 부분에서 기독교랑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영지주의) 천주교, 기독교 말고 유대교의 변종중에 기독교랑 관련이 있고, 영지주의가 초기 불교랑 비슷해요, 이 우주를 만든 하나님 자체가 악이었다고 사탄이라고 규정하는 가르침이 영지주의예요, 그 사람들은 물질 자체를 혐오합니다. 이 현상계를 혐오합니다. 이 우주는 생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잘못된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게 영지주의 학파예요, 세상에 도마복음을 영지주의 계열이라고 분류할 정도죠, 무지하니까 별소리 다하는 겁니다. 진짜 영지주의는 현상계를 혐오하는, 왜그러냐? 예수님도 얘기하시다보면, '육은 무의미하다' 이렇게 현상계를 혐오하는 것 같은 발언이 있어요, 그 맥락을 안따지고 '비슷하네' 하고 보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영지주의는 발상이 이래요, 이 자체를, 현상계가 나오지 말았어야 된다는 발상이예요, 인도적인 사상과 유사해요. 그런데 대승불교는 어떨까요? 유마경 보세요, 대승불교는 탐진치의 세계를 다 인정해버려요, '탐진치 버리지마' 이러고 나옵니다, '탐진치를 육바라밀에 맞게 잘 쓰면 되는거지 보살도의 좋은 재료인 탐진치를 버리고 무슨 보살도를 해?' 관점이 다르죠? 대승불교랑 소승불교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대승불교는 기독교랑 거의 한 사상이다. 이게 제가 늘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이게 차이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전한 “나는 스스로 현존하는 나이다!” (출애급기 3 :14) 하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를 말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오직 존재할 뿐!”인 자리에 안주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현존’(I Am)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참나)의 현존에 안주하는 것이 진정한 ‘영과 진리의 기도’이다. 하나님에게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하고 외치는 기도는 ‘에고’의 울부짖음일 뿐이다.] 좀 과하게 말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8장 57절, 58절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하길 ‘그대는 아직 50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아브라함도 나를 보았다, 아브라함도 내가 나올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니까 '아니 너는 50살도 안됐는데 무슨 아브라함이냐?' 50살 아니라 100살도 안되죠, 아브라함은 볼 수가 없죠, 그런데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 이전에 나는 현존했다(I am)!’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8:57~58)] 그러니까 지금 유대인들이 더 빡치죠, 그런데 이 말을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기존 4대복음은 되어 있어요, 도마복음은 안그래요, 너희도 그렇게 존재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축복받을 것이다. '너희는 원래 그런 존재야, 너희는 원래 신들이니까' 왜냐하면 4대복음에서도 신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모독했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이 구절 관련해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구약에, 시편에 너희 하나님들 이라고 여호와가 하지 않았느냐?' 분명히 4대복음 상에도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표현하신 것을 4대복음에서도 채용한 거예요, 다만 그 구절을 되게 축소해서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그 구절이 가진 함의를 잘 모르는 거예요, 도마복음하고 연결해서 보면 이게 빵터져요, 뭔 구절이었던 거예요? '너희는 사실 하나님들이야' 라고 얘기했던 거예요, 그걸 그냥 막연히 한 소리가 아니었던 거예요, 에고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고 우리 본질의 측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들 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당하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거죠, 내 안에 있는 신성을 가지고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런데 사실은 뭐냐면 '너희들 안에도 길과 진리가 다 있다' 라는 거랑 같은 거예요, '그대들 안에 성령이 있다' '성령자리에 현존해라' 이게 존재하기 전에 존재해라, 이 소리 입니다. 자, 태고집, 태고 보우 스님 말씀 들어볼까요, 선불교랑 너무 잘맞아서 이게 재미있죠? [“그대는 스스로에게 ‘어떤 것이 부모가 낳기 전의 본래 면목인가?’] 본래 얼굴인가 [라고 물어 보아야 한다.] 수행을 이렇게 하래요, '무엇이 부모가 날 낳기전에 내 본 모습인가?' 하고, 그럼 부모가 날 낳았다는 걸 보니까 시공 안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시공안에 들어오기전에 나의 본 모습은 뭔가? 그럼 영원한 현존일 뿐이죠, [이 한소리를 듣고 곧장 깨치면 그뿐이다,] 이 말을 듣고 이런 거예요, '부모가 날 낳기 전에 내 본 모습은 뭐지?' 하니까, 생각, 감정, 오감이 멈춰지고 '음~ 이거군' 하면 끝이라는 거예요, '그럼 끝이다, 시간도 안걸린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거든] 수행은 한 순간에 못깨달은 사람을 위한 겁니다.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요 [걷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는 24시간 내내 (이 의문만을 생각하여)] 이 의문만을 쭉 생각하라는 거예요, '부모가 날 낳기 전에 본래 모습은 뭐지?' 하고 [마음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하고, 생각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여, 닭이 알을 품듯이,] 계란에 일정한 온도를 줘야 하니까 은근히 마음을 내서 품고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은근히' 또 너무 세면 계란 상해요, 은근히 이 화두를 은근히, 은근히 계속 의심하면 어떻게 된다구요 [고양이가 쥐구멍을 노려보듯이 하면, 빠르면 3일 늦어도 7일 안에는 반드시 뭔가 분명하게 감응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빠르게 곧장 깨닫는 단서가 될 것이다.”] (公自問云 那箇是父母未生前 本來面目 才擧起一聲 便了則已 不然則行住坐臥之際 十二時中 心心不昧 念念相續如鷄拘卵 如猫捕所鼠相似 便直下如此 不過三日乃至七日之內 必有相應分 此路正是先生徑直發明之端也, 태고집) '곧장 견성하려면 이렇게 해봐, 3일에서 7일 해봐' 7일 템플스테이하면 견성하고 나오셔야 돼요, 이 말대로 라면, 이렇게 말하면 요즘 스님들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이거는 태고 보우 스님이나 그랬지 우리는 오래 걸린다' 이렇게 나가버립니다. 그러니까 공부가 죽도밥도 안되는 거예요, 의심하는 법도 몰라요, 보세요, '부모가 날 낳기 전에 난 누구였지?' 하면 생각, 감정, 오감은 부모가 날 낳은 뒤에 작용이니까 딱 스탑하고 존재해야지 그 자리에 들어가는데 망상으로 찾으니까 찾아집니까? 개념에서 개념으로, 머리만 복잡해지지, 바로 들어가야 되는데 또 경허집에 뭐라고 나왔나 볼까요? [“대저 이 현묘한 법문을 참구하는 이는 항상 ‘반조’ (返照, 회광반조回光返照. ] 뒤집어 봐라, 생각, 감정, 오감의 세계로 뻗어나가지 말고 자신의 뿌리를 돌아봐라, 나 자신의 뿌리를 보면 어때요? 내 자신의 뿌리를 곧장 들여다보면 [‘나는 누구인가?’하고 참나를 찾는 공부)에 힘써야 한다.] 참나를 찾으라는 거죠, '이 뭐꼬?' 로 '나는 누구인가?' 는 줄여서 그냥 '이 뭐꼬?' 입니다. '이건 뭐냐?' 하고 연구하는 마음을 또랑또랑하게 하고 세밀하게 하되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가 지극히 간절해지면, 마음을 쓰지 않고도 연구가 진행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때 문득 ‘마음 길’이 끊어지면서 자신의 ‘본래 생명’ 자리를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夫參此玄門者 常務返照 究之用心 惺密無間斷 究之至切 至於無用心可究之地 驀然心路忽絶 踏着本命, 경허집鏡虛集) 이게 머리 안쓰고 하는 연구예요, 의문만 가지고 있고 머리는 안써야 돼요, '나는 누구지?' 하고, 왜냐하면 생각을 굴리는 순간 그거는 말단에 빠지니까 자기 자신의 본체를 관조해야 돼요, 나의 현존만 바라보고 여기서 일어나는 온갖 생각, 감정, 오감의 작용들은 몰라몰라 하면서 생각의 뿌리, 감정의 뿌리를 계속 관찰하시면 바로 본래 생명의 실제 자리를 체험한다. 그러면 창조되기 전에 현존하는 거죠, 이걸 지금 이렇게도 그릴 수 있겠죠, 여기서는 설명하다가 막 그려서 그런데 여기 참나자리, 성령자리에서 혼의 마음이 먼저 펼쳐진다는 점에서 볼때는 생각, 감정, 오감 이쪽의 영의 세계면 혼의 세계예요, 생각, 감정, 오감이 펼쳐지겠죠? 이 생각, 감정, 오감의 주체가 뭐예요? 에고의 세계, 에고는 생각, 감정, 오감의 주체입니다. 영은? 에고가 아니죠, 이 모든걸 알아차리는 자고 생각이 하나 일어나고, 감정이 일어나고, 오감이 일어날때 그때의 주체가 에고라고 생각을 하게돼요, 이것도 미세한 생각이예요, (18:31) '남과 다른 내가 생각하고 있다' 라고 생각을 해요, 영일때는 순수한 나일뿐이다가, 순수한 나의 현존만 있다가 한 생각만 일어나면 주체가 설정됩니다. '나라는 존재가 생각하고 있다' 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 에고가 발생해요, 남과 다른 나라는 정체성이 혼의 세계에만 존재해요, 영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아요, 혼의 세계에 오면 나라는 정체성이 성립됩니다. 그래서 이건 설사 윤회를 하다라도 계속 유지되는 거예요, 에너지가 바뀌고, 생각, 감정, 오감이 다 바뀌더라도 그냥 참나에서 나오는 생각 이예요, 이건 나라고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건 내 생각이야, 이건 내 감정이야, 이건 내 오감이야' 라는 이런 미세한 생각이 항상 여러분 에고의식 입니다. 이게 함께하기 때문에 여러분 에고도 영원한거예요, 참나가 영원하면 에고도 영원한 거예요, 천국가고 지옥가건 원래 혼은 기독교적으로도 영원한 거잖아요? 혼이 영원하지 않으면 지옥불로 겁을 줄 수가 없습니다. 죽고 끝이면, '지옥에 너 떨어질거야' '죄송한데 죽으면 사라지거든요' 그럼 지옥불로 위협이 안돼요, 기독교, 유대교 기본 논리도 혼이 영원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유대교 안에서 여러 학파들이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학파도 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천국을 논하고, 부활을 논하고, 지옥을 논하는 입장은 원래 혼은 영원하다는 거예요, 불교적인 거랑 맞춰보면 윤회를 하더라도 불교도 영원해요, 윤회를 안하다라도 기독교적으로 보더라도, 유대교적으로 보더라도 혼은 영원해요, 성령이 영원하기 때문에 혼도 영원하다는 걸 이해하셔야 돼요, 혼 하나하나를 보면 혼의 구체적인 작용을 보면 무상하지만 에고성 자체는, 에고는 미세한 생각이 계속 변하더라도 동일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영원한 거예요, 여러분, 에고 또한 계속 무상하게 움직이겠죠? 하지만 무상한 중에 참나의 빛을 받아서 '이 생각, 이 감정, 이 오감은 내거야' 라는 생각이 계속 유지된다면 여러분 정체성이 유지되는 거죠,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내 에고는 끊어지지 않는다구요, 문제가 지옥가도 나라고 생각한다구요, 이 생각을 없애주면 좋겠는데 지옥가도 나라고 생각한다구요, 왜? 성령이 영원하니까 그 성령의 빛을 받아서 작동하는 생각, 감정, 오감의 창조물을 내거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있단 말이예요, 이 의식은 항상 함께하기 때문에 에고도 영원한 거예요, 미묘한 얘기입니다만 이해하시면 많은 의문이 풀립니다. 윤회니, 천국, 지옥 어디든 내가 있어야 의미가 있지 내가 없고 죽고 끝이라면 그건 고민할 내용이 아니죠, 문제는 내가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문제인 거예요, 나라는 정체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문제인데 정체성을 부정하고 끝내려는 학파도 있는데 다 안될 소리입니다. 그거는 해결이 아니라 회피구요 제대로 답을 내려면 그것을 알아야 된다. 그 미세한 에고의식을 불교에서, 이 참나를 의식중에 8식이라고 한다면 이 에고의식은 7식이라고 하고, 오감은 5식이고, 전 5식이라는 말을 씁니다, 앞에있는 5식이고, 생각/감정을 6식이라고 해요, 그럼 6식과 7식의 차이는 뭐냐? 7식은 무의식 세계예요, 더 미세하게 판단하고 있어요, 나와 남을 구분합니다. 6식은 표면의식 이예요, 그냥 평상시 알아차리는 의식이라면 배후에서 이 의식이 이미 이건 내것, 남의 것 구분해놔요, 문제는 이 에고의식은 안사라진단 말이예요, 윤회를 하더라도 영원하다구요, 모든게 갈무리되서 참나로 돌아갔더라도 참나에서 다시 펼쳐질때 참나에 저장된 업보를 가지고 '이건 내거다' 하고 또 의식이 나타나서 활동하기 때문에 에고의식은 안사라진다는 거예요, 영원한 여러분의 정체성이 됩니다. 이해되시죠? 이해가 되도 이상한 얘기입니다만 어쩌겠어요? 관찰해보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걸 어쩌겠어요? 우리가 하루하루, 하루가 한생이라 하더라도 주무시고 완전히 무의식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때 내거라는게 또렷이 나와요, 어제와 이어지는 나라는 생각이 또렷이 일어나는걸 어떻게 할거예요? 이 생각이 안일어나야 끝나는거지 아라한이 되도 이 생각 안일어날 것 같으세요? 석가모니도 일어나요, 자고나면 어제의 나 라는 걸 아니까 떠드는거지 '여긴어디?' 이래야 될거 아니예요? 에고의식이 끊어지는 거라면 석가모니 주무시기만 하면, 명상에 들어갔다가 나오시기만 하면 '여긴 어디야?' 막 이런, 난 누구? 여긴 어디?' 막 이래야죠. 안끊어져요, 석가모니도 한순간도 안끊어져요, 이게 계속 되니까 우리가 윤회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되는거고 천국, 지옥도 고민하는 거예요, 내가 안사라지니까 문제인 거예요, 왜 안사라지느냐? 성령이 영원하니까, 참나가 영원하니까 안사라지는 거예요, 지금 이런 얘기를 초기불교에서는 이해 못하는 소리입니다. 이런 걸 가지고도 저를 비판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항상 드리고 싶은 말은 견성을 못해서 그래요, 맛을 본적이 있어야, 그 맛집을 안가보고 후기 읽고 떠드는 걸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안먹어봤지?' 이거죠, '너 안먹어봤지?' '먹어보면' 달인 같네요, '이거 먹어보셨어요? 안먹어보셨으면 말을 말라, 그것은 그런게 아니다, 그런 차원이 아니다, 맛보면 알 수 있다' 단, 이렇게 이 생각/감정/오감이 대상으로 삼는 이 대상의 세계, 색성향미촉법, 색깔, 소리, 냄새, 맛 이런, 오감의 대상, 감정의 대상, 생각의 대상들도 참나가 창조하고 혼의 작용도 일체를 참나가 창조하는 것이다. 이 그림을 이렇게 그려볼 수도 있겠죠, 이제 본격적으로 나갑니다. 시간은 10분밖에 없는데 이제와 왔어요, 제가 이래요, 뭐 좀더 달려보죠, 자, 가볼께요, 《그대들을 위해 준비된 낙원에는》 자, 낙원얘기 나왔어요, 낙원이라고 번역하는데요 여러분들이 갈 낙원에는 《 ‘5그루의 나무들’(생명의 나무)이 있는데,》 유대교는 항상 생명의 나무를 좋아합니다. 생명의 나무가 있는데, 카발라의 세피로트라는 것도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죠, '생명의 나무가 있는데' 《그것들은 여름이나 겨울에 변하지 않으며, 그것들의 잎사귀들은 떨어지지 않는다.??》 영생한다는 거예요, 영생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는데 《그것들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이거는 단순히 성령얘기가 아니죠? 자 그러니까 '불과 물로 거듭나게 해주겠다' 하는데 이 성령불은, 불은 성령이라고 하자구요, 그런데 물에 해당되는 이 생명수, 생명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거냐? 성령은 '성령 받아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뱃속에서 샘솟아야할 '이 생명수는 어떻게 우리가 얻어야 됩니까?' 여기에 대한 답이 5섯그루의 생명의 나무를 얻어야 된다 이겁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 자,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6번 각주보죠 [“승리하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줄 것이다.” (요한계시록 2:7)] 그러니까 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돼요, 이 다섯그루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셔야 됩니다. 그런데 하필 요한계시록에는 다섯그루라는 말이 없는데 도마복음에는 힌트가 있어요, 그 나무가 다섯그루가 있다. [대승불교의 경전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부처님의 ‘무량한 수명’ 즉 ‘영생’을 강조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하다는 말을 듣고 그 뜻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그 사람이 얻는 공덕은 무한하여, 능히 여래의 최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법화경 「분별공덕품」) 무량하다는 것을 안다는게 엄청 중요하다. 불교에서도 영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좀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영생, 영생 하니까 사이비 교주들이 하도 영생 떠들어가지고 좀 똥값이 됐습니다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생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건 불교에서도 엄청 중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걸 무량수라고 그럽니다. 무량한 수명, 자, 보세요, 참나는 원래 영원해요, 이게 포인트 입니다, 참나는 원래 영원한데 현상계 안에서도, 에고의 영역에서도 영생을 성취해야 된다는게 포인트 입니다. 성령은 원래 영원해요, 그런데 에고의 세계에서도 영생을 성취한다. 생각/감정/오감의 세계에서도 영생을 성취해야 된다. 그 비법을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야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된다' (생명나무) 그런데 밑에 다섯개의 생명의 나무를 제가 그려놨습니다. 그러면 뭐죠? 이게 지수화풍, 힌두교에서도 강조하는게 지수화풍공, 5대원소 거든요, 서양철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게 이 4대원소 입니다. 사실은 5대원소예요, 제 5원소 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금술의 근원이 되는 이 4원소설에서 여기 위에를 불, 여기를 물, 여기를 바람, 여기를 흙 그래서 이 원기에서 조금씩 어떤 성질 차이에 따라서 4대원소가 나온다. 이게 나중에, 그러면 지수화풍이 서로 교환되는 거라면 원기가 본래 하나니까, 그러면 '우리가 조작만 적절히 잘하면 잡철도 순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연금술 사상의 근원이 돼요, 모든 바탕에는 원기, 에테르가 있습니다. 이 에테르가 바람과 물, 불과 흙 이러면 바람과 불은 일단 따뜻한 쪽이죠? 따뜻한 쪽, 이쪽은 차가운 쪽, 차가운데 습한 것, 차가운데 건조한 것, 따뜻한데 습한 것, 따뜻한데 건조한 것, 이 기본 원기는 어떤 특징이 없는 순수 에너지고, 순수 에너지에 어떤 성질을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지수화풍이 나온다는 거예요, 이 원리만 알면 잡철도 순금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외적인 4원소설, 5원소설의 활용이고, 내적으로 활용되면 이게 영적 연금술의 뿌리입니다. 에너지체 만드는 비밀이예요, 이 지수화풍, 5대원소를, 힌두교에서는 지수화풍공 그러죠, 공이 원기 입니다. 지수화풍공의 5대원소를 다스릴줄 알자, 다스리는 자는 에너지에서 자기 에너지의 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가 자기 몸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사실 하나님 덕으로 만든거죠, 그런데 자기 몸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불, 바람, 흙, 물 이고요 (후천8괘) 그런데 이것은 불 위로 그려 놓은건데 이건 신기하게 유교의 후천8괘랑 통해요, 감괘, 리(괘), 여기 진괘, 여기는 태금 (금)태괘, 우리나라 태극기는 바람이 위에 있죠, 건, 원기로 하면, 여기는 흙, 곤, 여기는 불, 물, 이렇게도 그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천8괘랑 통해요, 하늘, 땅, 불, (감리) 물, 유교에서는 이걸 사상이라고 하는데, 지수화풍, 그런데 원기까지 치면, 선천사상, 선천5원소설 이럴 수 있고, 이것은 후천적인 5원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후천사상, 동양식으로는 지수화풍을 사상이라고 하는데 사상이거나 후천적인 5원소거나, 이것도 재미있죠? 불과 바람은 기본적으로 양이고, 금하고 감은 기본적으로 음인데 여기보면 음이 많잖아요? 그러면 습하고[진], 음이 적죠? 건조하고[불], 이거는 이것도 음이 많으니까 습하고[감], 건조하고[태] 해서 설명드릴 수 있죠, 아무튼 이렇게, (용호비결) 이 5원소를 몸에서 장악하는 방법이 호흡을 고르게 해서 몸 안에 지수화풍의 공의 기운이 아랫배에서, 단전부위에서 샘솟아서 영적인 생명수가 배로 넘쳐서 하늘까지, 머리에 까지 도달하게해서 인체에서 배는 땅이고 머리는 하늘이니까 위와 아래가, 그래서 이겁니다, 머리에 있는 불이 아랫배로 내려오고 아래에 있는 물이 위로 올라가야 되는 거예요, 이래야 이게 되잖아요, 머리는 타오르고 배는 냉한게 인체인데, 땅은 더 차갑고, 하늘은 따뜻한데 이게 합쳐져서 밑에서 불이 타오르고 위에서 물이 계속, 생명수가 흘러내리고 밑에서 불이 그걸 계속 태워서 기화시키고, 계속 액화시키고, 기화시키고 이게 수행법 이예요, 저 그림 안에 수행법이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단전이 뜨거워지면, 뜨거워야 아랫배에서, 아랫배는 원래 냉한데 아랫배는 불타고, 머리는 뜨거워야 되는데, 여기 컴퓨터죠, 인체 컴퓨터, 늘쓰면 머리가 뜨거운데 여기는 늘 시원해지고, 여기는 늘 따뜻해지고 하면서 수화가 균형을 이루면 다윗의 별이 나오죠, 온전한 인간, 그래서 에너지적으로도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루고 또 성령이 불이되고 에너지가 물이 되어서 이 에너지 안에도 또 불과 물이 있는거죠, 그러니까 불과 물, 상단전 에너지 양과 하단전 에너지 음이 서로 교류를 해서 온전해지면 이게 그대로 물이 되어서 또 성령의 불과 조화를 이루어서 성령의 몸뚱이가 만들어집니다, 이게 성령의 몸뚱이죠, 성령이 탈 몸뚱이가 정확히 만들어지면 저게 부활체인 거예요, 음양이 합일된 몸이 부활체 입니다. 몸 안에 있는 음기와 양기가 합일된 것, 다윗의 별로 표현이 가능해요, 자, 그래서 보세요 [5가지 생명의 원소 : ① 차갑고 습한 ‘물’, ② 뜨겁고 습한 ‘바람’, ③ 뜨겁고 건조한 ‘불’, ④ 차갑고 건조한 ‘흙’, ⑤ 나머지 4원소의 뿌리가 되는 어떠한 특성도 지니지 않은 ‘순수 에너지’인] 에테르라고 하죠, [‘원기元氣’.] '이 다섯가지 생명의 나무를 얻은 자'는 영성의 결정체해서 이거 그려놨죠, 다윗의 별, 이게 영생의 결정체 입니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하늘에 있는 해와 땅을 상징하는 달, 영원하고 불변하는 태양, 한달 사이로 계속 변하는 달, 이게 음양이 되어 이게 합쳐진 글자를 '단(丹)' 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거랑 똑같은 거예요, 이게 동양에서 단, 연금술에서는 이것을 '현자의 돌'라고 그래요, '현자의 돌을 얻으면 영생한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힌두교에서는 이 양기가 '시바, 음기가 '삭티' 시바의 와이프거든요, 시바와 삭티가 만나면 '감로수'가 되서 이 감로수를 먹는 자는 영생한다. 이론이 다 똑같아요, 음양의 합일의 어떤 기운을 얻으면, 그 기운을 내가 복용하면, 내가 획득하면 내 몸안에서 음양이 합일되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몸이 생겨난다, 정자/난자 이게 양기가 정자고 음기가 남자라면 이 두개가 만나서 육체가 아니고, 에너지적인 정자와 난자가 내 안에서 만나서 새로운 에너지 몸이 만들어진다는 이론이 동서양 어디에나 있어요, 그래서 '영성의 결정체'가 단에 해당되는 건데요 상하, 위아래, 음양, 남녀의 에너지가 하나가된 모습을 그려놓은 겁니다, 설명보세요 [머리의 ‘불’(△, 양적 에너지, 남성)과 아랫배의 ‘물’(▽, 음적 에너지, 여성)이 결합하면(✡), 단단한 땅(□)이 이루어지고, 이를 부드러운 바람(○)이 안팎으로 감싼다. 이렇게 4원소를 얻으면] 4원소 얻는 법을, 이건 음양으로만 하면 이렇게 되고, 지금 물과 불이 조화를 이뤄서 네모난 땅이 되고, 이 땅을 동그란 바람이 감싸주면 그러니까 지금 땅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죠, 물이 위에서 흘러내리고 밑에서 불이 타오르는, 수화가 균형을 이룬, 이게 땅이 되서, 육체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걸 하늘의 바람이 감싸준다면 하나의 새로운 몸뚱이가 만들어집니다. 이건 에너지 세계의 얘기예요, 에너지인데 음기와 양기가 교류를 해서 뭉치게 되고 그게 또 하늘의 바람이 그걸 감싸주면 지수화풍이 지금 합쳐진 겁니다. 지수화풍이 결합되면, [이 4원소를 마지막 5원소인 ‘순수 에너지’(⊙, 원기, 성령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지수화풍의 후천적 노력을 통해 선천적인 성령의 에너지, 원기를 얻을 수 있다, 이게 원기옥 같은거죠, 원기의 구슬, 이 원기의 구슬을 얻을 수 있다. [이 ‘성령의 에너지’(▽)가] 보세요, 이거 다해서 이게 음기라는 거예요, 몸안에 있는 상단전 에너지, 하단전 에너지, 머리에 에너지와 아랫배 에너지가 만나서 그게 땅이되고 바람이 감싸줘서 지수화풍의 에너지가 다모이면 선천적인 진짜 성령에너지가 머물 터가 생기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에너지는 선천적인 거잖아요, 지수화풍의 합일은 후천적인 겁니다. 우리 몸안에 있는 물의 기운, 불의 기운 만나게 하고 거기 그게 뭉쳐서 내 몸안에서 땅의 기운이 되고 선선한 바람의 기운이 그걸 감싸게 만들어주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에너지가, 순수 에너지가 기틀 터가 생겼기 때문에 순수 에너지가 발동한다. 그런데 순수에너지가 물이되서 여기에 진짜 성령의 불기운이 응하게 되면 진짜 물과 불로 진짜 거듭납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도 따져보면 지수화풍의 원소를 다 얻은 걸 말합니다. '다섯그루의 나무의 열매를 얻어야 너는 부활체의 몸을 만들 수 있어' 이 소리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얻을 필요가 없잖아요, 성령은 그냥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면 얻는건데, 영생을 얻어서 사는 그 낙원의 세계는 '다섯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거기 열매를 얻어야 너는 사실은 온전한 부활체를 만들 수 있어' 자, 그러면 보세요, 물의 속성은 습한거고, 불의 속성은 열기고, 땅의 속성은 견고함이고, 에너지가 뭉쳐서 견고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드러운 바람, 더 부드러운 에너지가 에너지의 몸을 안밖으로 잘감싸서 그게 작동하게 만든다, 그러면 거기에 선천적인 에너지, 성령의 에너지가 깃들이게 된다. 성령의 에너지가 제대로 복원된다, 그 복원된 성령 에너지와 이 성령과의 만남이 사실은 본질이죠. 이 에너지가 물의 핵심이죠, 물의 핵심이고, 성령이 불의 핵심이고, 이거는 지금 선천적으로 말하면 물과 불의 만남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선천적인 물과 불의 만남, 후천적인 물과 불의 만남은 이렇게 우리 몸안에서 남성에너지와 여성에너지의 만남이고, 이거 이해되세요? 후천세계는 내 몸안에서 물기운과 불기운의 만남이고, 선천적인 거는, 형이상의 세계에서는 성령에너지와 성령의 만남이라고요, 그래서 동양에서도 구분합니다. 이걸 단이라고 할때 선천단이 있고, 후천단이 있어요, 후천단은 우리 몸에 있는 상단전에 모여있는 에너지, 하단전에 모여있는 에너지를 말하고 그거는 후천적으로 느껴지는 에너지예요, 시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에너지, 그런데 선천적인 단은 뭐예요? 원신이라는 순수의식과 원기라고 하는 순수에너지의 만남이예요, 이건 시공에 안잡혀요. 이게 후천에너지의 근원입니다, 자 그러니까 문제가 뭐냐? 원신이 기독교에서 성령에 해당되는데 원기가 성령의 에너지예요 성령만 받아서는 칭의, 성화는 할 수 있지만 영화는 못하는게 지금 불만있지 물이 없잖아요, 물과 불이 선천적으로 만나면 후천세계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뭉쳐서 몸을 만들 수도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에너지의 두부분을 아셔야돼요, 후천세계에서 지수화풍이 왜 내 말을 안듣느냐?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내말을 안듣느냐? 성령의 에너지가 온전히 발현이 안되서 그래요, 선천적으로는 이미 성령안에 있는 에너지인데 후천적으로 내몸에서 발동을 안하니까 지수화풍에 대한 통제력이 없어요, 지수화풍의 통제력을 배양하는 과정에서 선천에너지를 찾아야 온전하게 지수화풍이 내 말을 듣고 다스려집니다, 기독교인은 이거 모르고 기독교인임을 주장하면 안되는게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이 십자가가 뭘 의미하기도 하냐면 동서남북 춘하추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수화풍의 주재자라는 것도 의미해요, 지수화풍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 그리스도, 지수화풍을 제일 잘다스리는 사람, 그리스도, 그럼 지수화풍을 다스렸다고 하는 것은 육체의 창조력까지도 갖췄다는 겁니다. (용호비결) 그걸 갖추는 훈련이 뭐냐? 머리에 있는 뜨거운 에너지와 아랫배에 있는 차가운 에너지를 교류시키는 것, 그럼 어떻게 교류시키냐? 호흡, 바람을 불어주면서 뜨거운 불에 해당되는 상단전에 있는 에너지를 하단전에 보내야 되니까 아랫배를 의식하면서 호흡을 조절하고 있으면 에너지가 주입되고 머리는 시원해지고 머리에 있어야할 불이 하단전에 내려갑니다. 의식이 가는 곳에 에너지도 같이가요 그러면 아랫배에서 원래 차가웠던 물이 불로 데워지면 어떻게 될까요? 액체가, 에너지의 액체지만 똑같아요, 기화되면서 등줄기를 타고 머리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구름이되서 머리로 올라갔다가 다시 시원해지면서, 여기서 이마가 냉해져요, 이마가 냉해지면서 시원한 물이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러면 물과 불이 머리에서도 만나고 아랫배에서도 만나고 계속 물과 불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물이 있는 곳에 먼저 불이 내려가주니까 이 물이 기화되서 불이 있는 곳에 올라와줘요 여기를 식혀서 또 액화되서 내려와요 계속 서로 돌고돕니다, 물과 불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면 견고한 에너지의 몸둥이가 만들어지고 새 팔, 새 다리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그 에너지를 감싸는, 하늘의 에너지까지도 갖춰지면서 온전한 몸둥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성령에너지의 주재권이 복원되는 거예요. 성령에너지가 내 몸안에 있는 온전한 에너지의 배양을 통해서 내 몸안에 원래 갖추고 있던 성령의 파워풀한 에너지가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이제는 파워풀한 에너지를 가지고 내 몸안에 있는 에너지를 다스릴 수 있는 주재권이 생겨요, 통치권이 생겨요 그래서 이 영화는, 부활체는 통치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수화풍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했다는 거예요, 이거예요, 영생의 비밀 들으러 오셨으니까 여기까지는 가야죠, 자, 여기가 육의 세계입니다. 혹시 참고하시려면 12페이지 보세요, 인간 영혼육의 구조, 영이 여기 있어요, 일단 자세하게 할건 아닌데 오늘 간단하게만 하면, 생각과 감정의 세계가 다해서 혼이예요, 그렇죠? 그러면 육체가 맨 거죽이고 육체와 혼 사이에 뭐가 있죠? 기운체라고 하는 에너지체가 있습니다. 이게 동양에서는 혼백이라고 해서 백魄이라고 그래요, 흰 백자, 귀신 귀자죠, 귀신같은 영체인데 색깔이 있는 영체고 혼魂은 구름처럼 형체가 없는 귀신같은 영적 존재고, 영체고 이거는 흰 백자 구체적으로 물질화되는 영체라는 겁니다. (혼비백산) 이 두개가 다른데 죽으면 '혼비백산' 영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자기 본향으로 날아가고, 여기서 하늘이라는게 꼭 하늘이 아니라 저승세계로 가고 백은 육신과 함께 무덤에 묻혀서 거기서 흩어져가요, 공동묘지에서 흰 유령같은걸 보면 백을 보는 겁니다, 백을 봐요, 혼은 이미 빠져나가고 없죠, 혼은 자기자리 찾아가고 거기 있다가 천국에 가든, 윤회를 하건 혼은 자기 가야할 곳에 가고 혼은 원래 하늘 성질입니다. 혼은 하늘 성질이라 하늘로 갔다고 하는거지 이 하늘이 꼭 고차원하늘 의미하지 않더라도 혼은 영적인 차원의 세계에 간다는 거예요, 백은요? 이거는 음이라 땅으로 간다는 겁니다. 백은 육체와 함께 땅으로 소멸되서 흩어지고 혼은 하늘로 간다는 것은 영적인 세계로 간다는 겁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영적하늘의 세계로 가겠죠, 예전에 도마복음 삼천이 있다고 할때 그 위에 하늘, 높은 하늘이건 중간 하늘이건 자기 수준에 맞는 하늘로 갈거고 안그러면 천국/지옥설을 넣더라도 제대로 못산 혼은 땅밑에 지옥으로 끌려가는 혼도 있겠죠, 아무튼 혼은 영적 존재니까 하늘로 그려야된다, 혼은 육에 비하면 영적 존재니까, 백은 육과 함께 소멸되는 존재, 그런데 낙원에 있다는 그 다섯그루의 나무를 얻은 존재는 무슨 짓을 할 수 있느냐? 이 기운체를 살아서 자기 수중에 넣어버려요, 자기 통제력안에 둡니다, 성령이 이 기운체를 통제하려면 물과 불로 거듭나야돼요, 성령불과 성령에너지를 확보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도 말하는 성령, 성령불과 물의 부활이라는 것이 뭐냐? 성령은 불이요 물은 생명수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도마복음과 이어져요, 요한복음에도 생명수가 네 배속에서 샘솟아서 영생에 이루게 할것이다. 생수가 솟구칠 것이다, 엄청난 에너지가 네 안에 주입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게 성령에서 오는 에너지 거든요, 성령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넘칩니다만 그걸 온전히 구현하려면 지수화풍에 대해서 내가 이론과 실천을 통해서 분석해서, 실천을 통해서 지수화풍 다스리는 법을 마스터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온전하게 성령과 성령에너지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게 천국에 가서 왕노릇한다, 통치권자가 된다는 것과 직결되 있습니다. 지수화풍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이건 나름 천지창조에 창조력을 인간이 일부 갖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의미가 큽니다. (성화가 우선이다) 그래서 이거 이전에 물론 성령의 뜻에 따라서 사랑과 정의의 진리를 구현하는 성화가 먼저 되야돼요, 성화가 되고 더 나아가서 천지창조의 창조력까지 갖추게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훌륭한 자녀죠? 그래서 일반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을 도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자녀기 때문에 왕노릇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한다는 말을 쓰는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 도마복음은 분명히 구별하면서 강조하고 있어요, 애초에 낙원의 다섯그루의 나무, 이런거 말할필요가 없죠, 성령만 말하면 되죠, 자 지금 이 한 구절만 보세요, 19절 안에서 엄청난 얘기를 다했죠, 앞부분에서는 성령을 각성하라고 했고, 뒷부분에서는 성령의 에너지를 복원하라고 그랬어요, 엄청난 얘기 다했죠, (성명쌍수) 이게 지금 동양에서 말하는 성명쌍수 입니다. 본성공부랑, 에너지, 생명공부, 본성, 인간의 불생불멸의 본성공부와 시공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공부가 함께 갔다고해서 성명쌍수라고 그래요, 이걸 쌍으로 닦는다, 다윗의 별 자체가 성명쌍수 그 자체예요, 불과 물을 함께 닦아야된다, 형이상과 형이하를 함께 닦아라, 이게 모든 이원성의 통합을 얘기합니다. (이원성을 통합하라) 불에너지와 물에너지를 통합하라,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하라, 안과 밖을 통합하라, 위의 하늘과 아래 땅을 통합하라, 이걸 통합하면 새 팔, 새 다리가 생길거다, 이게 앞으로 공부할 도마복음에 있는 얘기입니다. 새 팔, 새 다리 얻는 법까지 얘기해줘요, 그러면 육신의 팔다리가 아니예요, 영으로 거듭난 팔다리인데 어떻게 생기느냐? 에너지체를 얻어야 되는데 그럴려면 물과 불, 아랫배에 호흡을 하면서 의식을 아랫배에 줘서 물과 불을 순환시켜서 교류시킨 다음에 수화가 합일되면 견고한 땅이되고 거기에 땅이 있으면 하늘도 있어서 지수화풍의 온전한 몸둥이가, 에너지적인 부활체가 만들어지는데 그걸 만들려면 엄청난 성령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만드는 과정에서 성령에너지가 단계적으로 점점 우리 몸안에서 복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불과 성령에너지, 물과 불이 온전히 거듭나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성령도 각성했고 성령에너지도 새로운 몸을 만들정도로 내 안에서 드러났다는 거, 복원됐다는 거, 그러니까 후천과 선천이 따로놀지 않아요, 내 몸안에서 이 지수화풍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성령에너지가 점점점점 더 드러나서 도와줘야지만 이게 완성됩니다, 그래서 지수화풍이 일차적으로 만들어지고 할때도 성령에너지가 복원됐다는 걸 강조하는 거예요, 함께가는 거예요, 우리가 후천적으로 우리 혼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성령이 임하듯이 호흡수련해서 에너지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성령에너지가 드러나는 거예요, 공부하는 방법이 똑같아요, 후천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선천과 접속해서 선천을 드러내는 것으로 공부는 끝납니다. 이 과정에서도 성령에너지가 도와야 이루어지고 이게 완성됐을때는 성령에너지가 온전히 복원된게 된다, 성령에너지를 되찾아서 성령불과 성령에너지가 온전히 만날때가 영화를 얻은건데 그게 기본적으로 불교로 보면 2지보살은 되야 이 원기옥을 얻은 상태가 됩니다. 이 원기의 구슬을 언제 얻느냐? 성령물과 성령불이 언제 만나서 하나의 구슬이 되느냐? 지수화풍을, 육체를 창조할 수 있는 구슬이 되느냐?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2지보살 정도 입니다. 그 뒤로 더 영광스러운 몸을 계속 닦아가요, 예수님의 경지까지 가야되니까, 칭의, 성화, 영화를 거쳐서 1차적인 완성을 보는게, 불교 1지보살이 성화급이고, 성화의 기본은 닦은게, 육바라밀이 돌아가면 성화가 이루어지거든요, 1지보살, 그러면 '법신의 몸'을 만들어주는건 언제냐? '성령의 몸'을 만들어주는건 언제냐? '영적 음양화합의 구슬'을 얻는건 언제냐? 다른말로하면 연금술에서 말하는 '현자의 돌'을 얻는건 언제냐? 제대로 얻는 것은 2지보살때 얻어요, 성령과 성령에너지를 제대로 얻는 것은 2지보살때 성령에너지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통제가 가능한 성령을 얻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주적으로 의미가 큰겁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는 과정이예요, 그럼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같이 파트너 관계가, 아버지를 도와서 나도 뭔가 하나 영역을 맡아서 할 수 있는 그런 창조자가 된거예요, 지수화풍의 창조자죠, 자 그래서 이것만 읽고 끝내겠습니다. 아까 읽은대로 '머리의 ‘불’과 아랫배의 ‘물’이 결합하면, 단단한 땅이 이루어지고, 이를 부드러운 바람이 안팎으로 감싼다. 이렇게 4원소를 얻으면 마지막 5원소인 ‘순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 성령의 에너지' [온전히 ‘성령’(△)과 결합하면, 연금술에서 말하는 ‘현자의 돌’이라고 부르는 ‘영생의 결정체’(✡, 영적 수정란)가 이루어지고,] 이제 수정란이 몸에 착상되서 배양이 되면 온전한 부활체로 거듭나는 겁니다. 이때 영생의 결정체만 만들어져도 여러분은 이미 영생을 얻으신 거예요, 에너지 부활의 핵심 답을 얻으신 거거든요, 그래서 '현자의 돌이라고 불리는 영생의 결정체가 이루어지고' [갓난아이로 거듭나서] 이 영적 수정란이 자라면 우리 몸안에서 에너지체가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이미 생명은 시작되었습니다, '갓난아이로 거듭나서' [불멸하는 5가지 원소들을 원만하게 갖춘 낙원(천국)의 몸인 ‘부활체’(영적 육체)를 얻게 된다.] '불멸하는 5가지 원소를 원만하게 갖춘 낙원의 몸인 ‘부활체’를 얻게 된다.' 이렇게 되고요, 영적 육체를 얻게된걸 말합니다. '천국의 몸'이, 이게 천국의 몸이다 이겁니다. 성령의 몸이예요, 천국의 몸이라고 불리는게 성령의 몸이다, [즉 ‘성령’(△)이 ‘불멸하는 5그루의 나무’(▽)를 얻으면 ‘불사의 영적 육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영화榮華의 성취).] 이 다섯그루나무의 열매를 얻는거죠, 열매를 얻으면 불사의 영적 육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게 영화의 성취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6절 얘기가 이거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을 것이다. … 누구든지 ‘물’(성령의 에너지, ▽)과 ‘성령’(불,△)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온전한 부활, ✡),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육체는 ‘물질의 육체’를 낳고, 성령은 ‘영적인 육체’를 낳는다.” (요한복음 3:3~6)] 사실은 성령만 얻어도 하나님 왕국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또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천국의 진정한 차원을 보려면 물과 불로 거듭나야 된다, 그래야 진짜 성령을 온전히 구현하는 몸을 얻어서 체험하는 그 천국은 다르다, 혼만 천국가서 누리는 천국과는 다르다, 혼백합일체를 얻은, 부활체를 얻은 사람이 경험하는 천국은 또 다르다, '더 고차원적인 천국을 경험한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어요, (만다라) 자, 만다라 보시면, 불교 만다라 별거 아닙니다. 이게 만다라 아닌가요? 성령에너지가 수,화,지,풍을 얻어서 성령에너지가, 이게 성령도 들어있는거죠? 성령 플러스 성령에너지, 성령과 성령에너지가 따로 가겠습니까 함께가지, 성령불과 성령에너지의 물이 이 안에도 또 이게 있겠죠, 이게 결합된, 이게 불교로 말하면 온전한 불성입니다. 온전한 불성, 부처님이, 이게 선천적 불성이예요, 선천적 불성, 여래장이 지수화풍의 몸을 얻어서 불국토를 건설하는 걸 그려놓은게 만다라입니다. 만다라에는 에너지체를 불교에서는 의성신이라고 해요, 마음으로 만든 몸이라고 의성신이라고 하는데 의意 마음으로, 성成 만든, 아니면 생生 낳은, 몸身 이걸 얻어서 부처님이 시공간안에서도 영생을 얻는 걸 그려놓은 거예요, 지수화풍을 다스리는 자는 시공간 안에서도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이 육이 죽더라도 영혼육, 기운체를 육으로해서 영혼육을 이루기 때문에 영혼육이 온전해져서 이 육체는 버리더라도 이 육체는 버려야 돼요, 이건 지구거거든요, 그런데 영으로 거듭난 육체를, 영적 육체를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다, 천국의 몸도 후천적인 몸과 이 자체가 선천인 몸이죠, 성령의 몸이 성령의 에너지를 얻은 거니까, 선천적인 몸, 후천적인 몸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천적인 몸을 먼저 중심에 놓고 후천적인 몸을 둘러 놓은건 이건 이제 후천적인 몸이죠, 이거는 선천적인 몸, 선천적인 몸을 현자의 돌이니, 단이니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이게 성령과 성령에너지의 결합이고, 원래 결합되있어요, 왜? 천지창조전에 성령이 광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우주를 창조한거 아니예요? 성령이 성령에너지를 가지고 우주를 창조한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아요, 성령이 성령에너지를 가지고 성령이 수면위라는게 광대한 성령에너지를 위에 성령이 운행하다가 '빛이 있으라 함에 빛이 생겼다'는 건 지수화풍을 다 만들어냈다는 거예요, 성령이 어마어마한 성령에너지를 가지고 알아차리고 있다가 우주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성령만 얻어서 천지창조를 내가 못하면 그건 불완전한 자녀죠, 하나님의 자녀이긴 한데 하나님의 창조력은 가지고 있지 못한 자녀이기 때문에 더 온전한 자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는 단계가 영화고 그게 이런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 만다라도, 자, 이것만 읽어드릴께요, 불교 만다라도 별개 아니고 [불교의 만다라는 ‘불성’(⊙, 참나, 참나 에너지)가 ‘地□ㆍ水▽ㆍ火△ㆍ風○’의 영적인 몸을 모두 갖춘 모습을 말하니,] 불교에서는 만다라를 뭘로 번역하냐? [‘윤원구족輪圓具足’] 그래요, 윤이 수레바퀴인데 [(만법을 원만하게 갖춘 진리의 수레바퀴)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윤원구조, 이게 선후천이 다 들어있잖아요, 선천과 후천, 지수화풍, 공을 다 갖춘, 원만한 수레바퀴, 원만한 원을 만다라라고 합니다. 윤원구족이 만다라의 번역어예요, 그래서 이 만다라라는 것은 [‘참나’(성령)가 불멸의 5그루의 나무(5원소)를 두루 갖추고 ‘영적 육체’(부활체)를 이룬 것을 말한다.] 만다라랑, 부활체가 다른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하는, 도마복음에서 말하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 영생의 비밀이 다섯그루의 나무에 들어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자,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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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도마복음 강의 19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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